십우도(十牛圖)의 비밀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童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묘사한 불교 선종화(禪宗畵) 이다.
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자신의 본성을 잊고 찾아헤매는 것은 불도 수행의 입문을 일컫는다.
② 견적(見跡)
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간다. 수행자는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본성의 발자취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③ 견우(見牛)
동자승이 소의 뒷모습이나 소의 꼬리를 발견한다. 수행자가 사물의 근원을 보기 시작하여 견성(見性)에 가까웠음을 뜻한다.
④ 득우(得牛)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아 막 고삐를 건 모습이다.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佛性)을 꿰뚫어보는 견성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⑤ 목우(牧友)
동자승이 소에 코뚜레를 뚫어 길들이며 끌고 가는 모습이다. 얻은 본성을 고행과 수행으로 길들여서 삼독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소도 점점 흰색으로 변화된다.
⑥ 기우귀가(騎牛歸家)
흰소에 올라탄 동자승이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무애의 단계로 더할 나위없이 즐거운 때이다.
⑦ 망우재인(忘牛在人)
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소는 단지 방편일 뿐 고향에 돌아온 후에는 모두 잊어야 한다.
⑧ 인우구망(人牛俱忘)
소도 사람도 실체가 없는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텅빈 원상만 그려져 있다.
⑨ 반본환원(返本還源)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붉게 피어 있는 산수풍경만이 그려져 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는 것으로 이는 우주를 아무런 번뇌 없이 참된 경지로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⑩ 입전수수
지팡이에 도포를 두른 행각승의 모습이나 목동이 포대화상(布袋和尙)과 마주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육도중생의 골목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는 뜻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을 뜻한다.
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 뿐일까요?
중요한 것은... 원래 십우도는 <팔우도>라는 도교적 수행법의 설명 이였단 것입니다. 그것이 불가에 차용된 것입니다. 진리를 담고있다고 해서요.
어디까지나... <내단> 즉 자신의 <기운>입니다.
자신의 기운의 단련에 의해서만 <원신> 즉 <진아, 참나>가 제대로 갱생되고 회복되니까요.
광명한 내단內丹으로 설명합니다.
고로 이를 다시 재구성 해보면
(①, ②, ③, ④) 먼저 호흡을 통하여 기운의 행로를 더듬어 <검은 소> 즉 현빈(玄牝: 검은 암소)을 찾아내고 소주천을 완성하는 과정이며,
(⑤)(흰소는 선천기운의 회복을 의미, 여기까지 연정화기鍊精化氣) 소주천을 통해 고차원적 기운으로 단련하며 대주천이 시작되고,
(⑥)(여기까지 연기화신鍊氣化神) 이는 대주천으로 도태를 배양하는 과정이며,
(⑦)(여기까지는 연신환허鍊神化虛) 원신이 완전히 갱생되며,
(⑧)(여기까지 연허합도鍊虛合道) 갱생된 원신을 그 근원인 무극 혼원일기의 본원상태에 까지 도달시키는 것.
여기에.. 뒤의 2가지 그림까지 더해서 살펴보면
(⑨) 그러한 무극의, 空의, 열반의 상태에만 머물지 말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살펴서 시비선악을 자연 분별하고 격물치지를 완전히 한 다음...
(⑩) 세상에 뛰어들어 중생을 구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적 수행의 의미를 제대로 밝히면서도 곽암선사의 취지를 제대로 밝힌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출처: 네이버 카페 홍익학당 www.hih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