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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열전
2019.12.30 14:47

44. 한국편 - 용성선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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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용성(龍城)선사

-불교현대화를 선도(先導)한 암흑기의 큰 별-

(2) 생애와 사상


선사의 생애를 크게 나누었을 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재속(在俗)기간이며, 둘째는 출가수행기이며, 셋째는 민중교화기로 구분된다. 이 중 선사의 법랍이 61세인데 이를 반으로 나누었을 때 전기는 수행기이며, 후기는 교화기에 속한다. 특히 후기의 교화기는 민족의 독립운동과 대중교화에 전력을 다 바치게 되며 이러한 결정체가 대각교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먼저 생애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선사는 1864년 5월 8일 전라도 남원군 하번암면 죽림리에서 아버지 수원(水原) 백씨(白氏)인 남현(南賢)과 어머니 밀양(密陽) 손씨(孫氏)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상규(相奎)이고 법명은 진종(震鍾)이며 법호는 용성(龍城)이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자비스러운 성품으로 자라났으며 이에 관한 일화가 많으나 생략키로 한다. 7세에 한학을 익혔으며 9세에 합죽선(合竹扇)이란 시를 짓기도 하여 총명함이 일찍부터 알려졌다.


14세 때 꿈에 부처님을 뵌 것이 인연이 되어 16세에 해인사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우수주(于手呪)를 9개월 동안 념(念)하여 업장을 소멸하고 난 뒤 화두참구(話頭參究)에 들어갔다. 23세 때에 낙동강을 지나는 도중 이렇게 게송을 읊었다.


금오산에는 천추의 달이 걸려 있고

낙동강에는 만리에 파도가 치는구나

저 고깃배는 어디로 가는고

예나 다름없이 갈대밭을 의지해 쉬는구나.


선사는 나중에 대각교를 세울 때 이 오도송을 종지천명(宗旨闡明)의 구(句)로 삼았다. 전 후 세차례에 걸쳐 오도한 선사는 그 뒤에도 보림과 정전에 소홀하지 않았으며 내전(內典)의 열람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이러한 선사의 산중생활은 47세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일찍이 선곡율사(禪谷律師)에게 비구계를 받기도 한다.


전국을 다니면서 안거와 운수(雲水)생활로 40세 때까지 선(禪)을 중심한 전통적인 한국 불교의 종맥을 확고하게 다지면서 제방의 납자들을 접인하게 된다. 그러다가 44세 때에는 중국의 북경에 가서 천하의 선지식들을 만났으나 여기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귀국하므로 세계의 정세와 시대의 변천을 간파하게 된다. 특히 뼈저리게 느낀 것이 기독교 세력의 범람이었다. 기독교에서 불교를 비방하고 조직적으로 교세를 확장해 가고 있음에 많은 자극을 받은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47세 되던 해에는『귀원정종(歸源正宗)』을 저술하여 기독교의 불교 비방에 대하여 강력하게 논박하고 있다.


선사에게 있어서는 47세가 중요한 전환기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수행과 산중선회(山中禪會)를 중심한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세계를 갈구해 왔으나 이때부터 선사의 삶은 사바세계에 뛰어든 보살의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실천하게 된다.


특히 이 해는 한일합방이 체결된 1910년이므로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라를 빼앗겨 민족이 방황하고 있을 때 서울에 상경하게 되며 1911년에는 신도 집에서 법회를 보다가 종로구 봉익동에 대각사를 창건하게 되니 이가 오늘날의 그 자리이다. 대각사는 장안의 선도량(禪道場)이었을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였다.


이때 한용운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이 민족의 장래에 대하여 선사와 상의하였으며 급기야는 1919년 3.1독립운동을 성사하기에 이르른다. 선사 역시 33인 가운데 불교 대표로 참여함으로서 서대문 감옥에서 3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한다. 선사의 옥중생활은 참으로 시야를 크게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출옥 후에 대각교 운동의 방향을 뚜렷이 하는 시원점이 되었다.


선사는 출옥과 더불어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하여『심조만유론(心造萬有論)』『각해일론(覺海日論)』등 많은 저술과 역경(譯經)을 하게 되며 불교의식을 완전히 한글화하며, 교단의 청정을 주장하게 된다. 선사의 정진과 교화사업은 계속되었으며, 61세 되던 해에는 왼쪽 이에서 우연히 치사리(齒舍利) 일과(一顆)가 나왔는데 이 사리는 지금도 해인사 용탑(龍塔)에 모셔져 있다. 1940년 2월 24일 새벽에 선사는 목욕재계한 뒤 제자들을 불러 두고 “그 동안 수고했다. 나는 간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입적하니 세수는 77세이며, 법락이 61세였다.


선사의 중심사상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대각(大覺)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가 부르짖던 대각이란 어디에서 기인하게 된 것일까?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선사는 전후 세차례에 걸쳐 대각을 얻었으므로 어디에든지 걸림이 없는 확고부동한 경지를 스스로 체득하게 된다. 이러한 흔들림 없는 경지를 바탕으로 새 불교운동을 전개한 것이 바로 대각교운동이다.


선사는 대각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석가모니불 법신불(法身佛)로 파악하였으므로 이를 구체화시킨 것이 비로자나불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점은 『심조만유론(心造萬有論)』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의하면 심(心) 이외의 것은 모두 부인하였으며, 불(佛)과 진심(眞心)과 아(我)를 일체로 보고 있다.

 

이 진심에 의하여 천지만법이 창조되며, 이는 나의 동근동체(同根同體)일 뿐만 아니라 일진심광명체(一眞心光明體)는 법신불의 이명(異名)이기도 하며, 이 는 대자재(大自在)의 위신력과 무연대비의 발휘로서 처처에 자비시설(慈悲施設)을 성취하고 경원히 무애위력을 발휘하기도 하며 역사 속에 석가모니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했다


또한 선사는 대각에 대하여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 즉, 근본심성을 자기 스스로 깨치고 또 다른 사람을 깨치고 하여 둘이 없이 원만하므로 구경각(究竟覺)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본각(本覺)과 시각(始覺) 구경각(究竟覺)을 다 깨친 것을 대각(大覺)이라 한다고 하고 있다.


선사는 대각사상의 논리적인 근거를 『기신론(起信論)』의 각사상(覺思想)에 두고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선사의 대각사상은『기신론(起信論)』의 여래장(如來藏)사상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근거는 선사의 대표적인 저술인『각해일륜(覺海日輪()』에 잘 나타나고 있다.


선사는 대각의 근원을 여래장에 두고 있으며,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그 불성의 계발에 전력을 다해야 하며 남에게도 그 깨우침을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이것이 바로 자각각타이며, 이의 완성이 대각이라고 볼 수 있다.


선사는 이와 같은 사상에 입각하여 대사회적 실천방법론을 전개하였다. 그 실천방법론의 이론적인 뒷받침을 여래장 연기(緣起)에 두고 있으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구현시킨 것이 바로 대각교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선사의 오도 후 전개된 생애는 그것이 그 시대를 산 오도자의 자기실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가장 근원적인 대도를 스스로 체득함으로서 자타를 초월하였으며, 민중을 떠나 불법을 구하지 않았다. 또 불법(佛法)을 떠나 민족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대각교의 모체요 토대를 민중으로 보았으며, 인인개개(人人個個)의 고유 진성으로서 일체중생은 법성을 본성으로 하고 거기서 절대적 혹은 상대적으로 영각성(靈覺性)을 나툰다고『임종결(臨終訣)』에서 말하고 있다.


그의 대각교운동은 새로운 신흥종교로까지 잘못 알려져 온 적도 있으나, 이는 기성종단이 일제(日帝)의 관제불교로 전략되자 일제와 관련없는 순수한 한국 전통불교를 되찾자는 운동이요, 현대민중에게 맞도록 혁신하자는 새 불교운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비 스님

 

[출처 :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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