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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열전
2019.12.30 17:43

47. 한국편 - 한암선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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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한암(漢嚴) 선사

(3) 교리(敎理)보다는 선(禪)을

한암은 그 후에 동지인 함해선사와 동반하여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는 운수(雲水)의 길에 올랐다. 남쪽을 향하여 흘러가다가 경북 성주(星主) 청암사(靑巖寺) 수도암(修道庵)에서 경허화상(鏡虛和尙)을 만났다. 경허화상은 한국불교계의 중흥조(中興祖)라고 불리던 인물이었다. 그들은 경허화상을 만나자마자 높은 설법(說法)을 청하였더니 화상은『금강경(金剛經)』 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무릇 형상(形相)있는 모든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일 모든 형상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 곧 여래(如來)를 볼지라"


한암은 이 구절을 듣자 안광(眼光)이 홀연히 열리면서 한 눈에 우주 전체가 환히 들여다보였다. 그리고 듣는 것이나 보는 것이 모두 자기 자신 아님이 없었다. 9살 때 서당에서 처음 가진 회의-반고 이전에 주가 있었느냐-는 비로소 아침 안개 걷히듯이 풀렸다. 반고 이전의 면목(面目)이 환희 드러났을 때는 그의 나이 24세 입산하여 3년 째 되는 가을이었다.


그런데 반고 이전의 면목이란, 유학에서는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이요, 도교학(道敎學)에서는 ‘천하모(天下母)’ 불교 교리에서는 ‘최청정법계(最淸淨法界)’ 선리(禪理)로서는 ‘최초일구자(最初-句子)’를 뜻한다. 이러한 신비스러운 경계(境界)를 시(詩) 한 수 읊어 이렇게 표현하였다.


다리 밑에 하늘이 있고 머리 위에 땅이 있네
본래 안팎이나 중간은 없는 것.
절름발이가 걷고 소경이 봄이여.
복산은 말없이 남산을 대하고 있네.


한암은 또 어느 날 경허화상을 모시고 앉아서 차를 마신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화상은 문득『선요(禪要)』의 한 구절, “어떤 것이 진실로 구하고 진실로 깨닫는 소식인가.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 라는 문답 대목을 인용하면서 거기 모인 대중을 향하여 “이것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이 물음에 한암은, “창문을 열고 앉았으니 와장(互墻)이 앞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하니, 상식(常識)의 세계에서는 얼른 이해가 안가는 문답이다


그러나 선리(禪理)의 세계에서는 이따금씩 상식의 언어 논리를 초월한 대화가 있는 것이다. 경허화상은 이튿날 법상(法床)에 올라가 대중을 돌아보면서. “한암의 공부가 개심(開心)을 초과했다" 고 말하였다. 역시 아는 사람만이 알아보는 선(禪)의 묘계(妙界)인 모양이다. 노화상은 한암을 알아본 것이다.


(4) 지음(知音)의 벗을 얻다


한 때 한암은 해인사 선원(禪院)에서 『전등록(傳燈錄)』 을 펴들고 읽은 일이 있었다.


‘약산선사(藥山禪師)가 석두선사(石頭禪師)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도 하는 것이 없다.’ 고 한 대목에 이르자, 그는 다시 심로(心路)가 끊어져서 미로(迷路)를 헤매게 되었다.

 

마치 통 밑이 빠져 버린 것 같은 허전한 경계를 맛보았다. 한편 경허화상은 그 해 겨울에 함경남도 삼수갑산(三水甲山) 등지를 긴 머리에 수염을 깎지도 않은 모습으로 방황하면서 한암에게서 자취를 감추었다. 경허화상이 해인사에서 한암을 이별할 때 은근히 그를 함께 데리고 가고 싶어 하며 서문 한 편과 시 한 구를 지어서 한암에게 준 일이 있다. 그 서문과 시는 다음과 같다.


“나[경허]는 천성이 화광동진(和光同塵 : 부처 보살이 중생(衆生)을 구제(救濟)하기 위하여 인간 세계에 섞여 사는 일)을 좋아하고, 겸하여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스스로 삽살개 뒷다리처럼 너절하게 44년의 세월을 지냈더니 우연히 해인정사(海印精舍 : 海印寺)에서 한암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성행(性行)은 순직하고 또 학문이 고명(高明)하여 1년을 같이 지내는 동안에도 평생에 처음 만난 사람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오늘 서로 이별하는 마당을 당하게 되니 조모(朝暮)의 연운(煙雲)과 산해(山海)의 원근(遠近)이 진실로 영송(迎送)하는 회포를 뒤흔들지 않는 것이 없다. 하물며 덧없는 인생은 늙기 쉽고 좋은 인연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즉, 이별의 섭섭한 마음이야 더 어떻다고 말할 수 있으랴"


옛날 사람은 말하기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 차 있지만, 진실로 내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랴" 고 하지 않았는가. 과연 한암이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지음(知音:마음이 통하는 친한 벗)이 되랴. 그러므로 여기 시 한 수를 지어서 뒷날에 서로 잊지 말자는 부탁을 한다.


북해에 높이 뜬 붕새 같은 포부
변변치 않은 데서 몇 해나 묻혔던가.
이별은 예사라서 어려운 게 아니지만
부생(浮生)이 흩어지면 또 볼 기회 있으랴.


한암은 이와 같은 경허화상의 이별시(離別詩)를 받아 읽고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써서 답했다.


서릿 국화 설중매(雪中梅)는 겨우 지나갔는데
어찌하여 오랫동안 모실 수가 없을까요.
만고에 변치 않고 늘 비치는 마음의 달
쓸데없는 세상에서 뒷날을 기약해 무엇하리.


한암은 시로써 이별을 아쉬워했을 뿐 경허화상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 후 경허화상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으니 그가 시에서 말한 것처럼 부세(浮世)에서는 영영 기약없는 이별이 되고 말았다.

 

무비 스님

 

[출처 :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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