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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열전
2019.12.31 16:15

49. 한국편 - 효봉선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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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효봉(曉峰)선사

(1) 선동(禪童)의 환생(還生)

 

스님은 1888년 5월 28일 평안남도(平安南道) 양덕군(陽德郡) 쌍용면 (雙龍面)반성리(盤城里) 금성동(錦城洞)에서 수안(遂安) 이씨(李氏) 병억(炳億)을 아버지로 김씨(金氏)를 어머니로 오형제 중에서 삼남(三男)으로 태어났다. 이름은 찬형(燦亨).

 

어려서부터 유달리 영특해서 이웃 간에는 신동(神童)으로 알려졌다. 열 두 살 때까지 선비인 할아버지로부터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워 통달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귀여워했던가는 다음 일을 미루어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스님이 열 세 살 되던 정월 보름날 동무들과 밖에서 연을 날리다가 집에 돌아와 인절미 세 개를 먹은 것이 그만 관격이 되어 빈사의 지경에 빠졌다. 의원들이 와서 보고 최후의 수단으로 정수리를 쑥으로 뜨고 했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스님의 정수리엔 그때 쑥으로 뜬 흉터가 남아 있었다.

 

집안에서는 울고불고 하던 끝에 아주 죽은 줄 알고 이불에 말아 한쪽에 치워 놓았었다. 귀염둥이 손자가 죽은 것을 보고 상심한 할아버지는 홧술을 폭음한 나머지 그길로 돌아가셨다. 집안이 온통 뒤집혀 있는데 그때 마침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삼촌이 부득부득 조카의 시체를 보겠다고 이불을 헤쳤다.


그러자 죽은지 스무 시간이 넘은 몸에 맥이 돌고 있었다. 이 사실을 두고 스님은 가끔 ‘나는 아무래도 그때 할아버지의 운명을 대신 받고 살아난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열 네 살 때, 연례(年例)적으로 평양감사가 베푼 백일장(白日場)이 있었다. 사방에서 모인 수많은 재동(才童)들이 글재주를 겨루는 마당. 이때 스님은 어린 소년으로서 장원급제의 영광을 차지했다고 한다.


(2) 출가(出家)


스님은 평양고보(平壞高普)를 나온 뒤, 개화(開花)의 흐름을 따라 청운의 뜻을 품고 현해탄(玄海灘)을 건넌다.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서 법학(法學)을 전공한다. 안팎으로 어지러운 한말(韓末), 젊은이의 꿈은 인간 사회의 질서(秩序)를 바탕으로 한 법(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세속적인 출세(出世)의 첩경이라고 부모들은 인식했으리라.

 

스물여섯 살에 와세다를 졸업하고 귀국(歸國). 이로부터 서른다섯 살 때까지 십년 간(1913 ~ 1923)을 스님은 법관생활(法官生活)을 한다. 서울과 함흥(咸興)의 지방법원에서, 그리고 평양의 복심법원[지금의 고등법원]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판사(判事)직에 종사하게 된 것이다.


이때는 일제(日帝)의 잔악한 식민지정책이 날로 그 이빨을 드러내던 시절. 중국 상해(上海)에서는 우리 임시정부가 세워지고 뜻있는 인사(人士)들은 방방곡곡에서 일제(日帝)에 항거. 민족독립의 기치(旗幟)를 들었다. 그러자 일제(日帝)는 사상범(思想犯)의 색출에 혈안(血眼)이 되었다. 이 무렵 젊은 판사(判事)는 같은 겨레로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사상범을 다루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양심(良心)의 소리가 움트기 시작한다.

 

그러한 하루하루의 생활은 누구에게 입 벌려 말할 수도 없는 잿빛 고뇌였다. 한국人의 처지에서 그 당시 법관(法官)의 자리는 실로 화려한 지옥(地獄)이었다. 1923년 나이 서른여섯 살 때 그러니까 법관생활 십년 째 되던 해, 스님은 하나의 절벽에 부딪치게 된다.

 

판사(判事)로서 내린 사형(死刑) 선고(宣告)! 어떤 사건의 결과, 그 자료와 증거에 의해서 직책상 사형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막상 한 인간의 눈에 대고 사형을 선고한 그 순간부터 자신(自身)을 회의(懷疑)하고 나아가 인간의 사회구조에 대해서 회의하기 시작한다. ‘인간이 인간을 벌할 수 있는가. 범부(凡夫)인 내가 어떻게 같은 인간을 벌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무슨 권리로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나는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인간(人間)의 길인가.’


지난 날 찬란하던 청운의 꿈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꼬박 사흘 동안 이 인간적인 자책(自責)앞에 식음(食飮)을 전폐하고 밤을 새워 고뇌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가장 깊은 內心에서 우러나온다. ‘이 세상은 내가 살 곳이 아니다. 내가 갈 길은 따로 있을 것이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 생각이 떠오르자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왔다. 입은 옷에 맨주먹으로. 물론 직장에 사표를 내던질 여유도 어린 세 자녀를 거느린 아내에게 작별을 알릴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대개 출가(出家)의 경우가 그러듯이, 일단 마음이 작정되면 한시도 더 지체하기가 어렵다. 출가에 대한 한 생각 뿐 모든 분별(分別)과 사량(思量)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러니 그때의 선고는 결국 자신(自身)에 대한 사형선고이기도 했다.

 

무비 스님

 

[출처 :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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