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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열전
2019.12.27 14:34

35. 한국편 - 부휴선사(浮休禪師)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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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부휴선사(浮休禪師)

- 名利 외면한 수행승의 본보기 -

(1) 생 애


浮休禪師는 속성이 김씨이고 법명은 善修이며 호는 浮休로 전북 獒樹(지금의 남원) 사람이다. 부친의 이름은 積山으로 조상은 일찍이 신라 조정에 높은 벼슬을 지낸 대성이었지만 신라가 멸망하면서 가족도 몰락하여 서민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李씨인데 자식이 없음을 근심하다가 부부가 함께 서원하기를 만약 자식을 얻으면 출가시키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길가에 있는 한 奇石에 자식을 얻기를 기도했는데 어느날 저녁 꿈에 한 신승이 하나의 둥근 구슬을 주자 이것을 받아삼키고 임신을 하였다. 선사가 태어난 해는 明의 世宗帝 嘉靖 22년(중종 38, 1543) 癸卯 2월이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를 “뜬세상이 매우 어두우니 저는 장차 출가하기를 바랍니다”고 하더니 마침내 출가를 결심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信明長老를 좇아 머리를 깎고 芙蓉靈觀대사의 게송을 듣고 그의 친절한 가르침을 받아, 마침내 그의 심법을 남김없이 터득하였다. 그의 신체적 특징은 배가 크고 눈썹이 길며 몸이 컸는데 다만 왼쪽 손이 조금 不仁하였다.

 

득법 후에는 京師에 나아가 당시의 재상 盧守愼(蘇齊)의 장서를 빌려 보았는데 7년 만에 그의 책을 남김없이 다 보았다. 그의 필법 또한 매우 뛰어나, 당시 사명대사와 더불어 二難(두 사람의 상대하기 어려운 명수)이라 불리어졌다.

 

壬辰亂을 당하여 덕유산의 초암에 있었는데 왜군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암굴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저녁 늦게 왜적이 지나갔으리라 생각하고 샛길을 따라 암자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돌연히 왜군 10여명이 숲속으로부터 나와서 칼을 휘두르며 기세를 떨쳤으나 선사는 叉手하고 서서 태연하게 동요하지 않았다. 왜적들은 이것을 크게 이상스레 여겨 모두 선사에게 엎드려 절하고 흩어졌다. 다음 해에 사명대사가 선사를 조정에 천거함으로 진중에 이르러 선사도 승장의 한 사람이 되어 전지를 전전하였다.

 

난이 평정되니 선사는 가야산으로 가서 다시 선창의 사람이 되었다. 그때 명나라 사신 李宗城이 황제의 명을 받고 豊臣秀吉을 일본 국왕에 봉하려고 서책과 함께 바다를 건너려 하다가 도중에 가야산 해인사를 유람하던 중 선사를 한 번 보고 심복하여 돌아갈 것을 잊고 며칠을 머물다가 돌아갔다.

 

선사가 九天洞으로 옮겨갔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눈을 감고『원각경』을 암송하는데 아직 경을 다 암송하기 전에 한 마리의 큰 구렁이가 계단 밑에 넘어져 있음을 보고 그 꼬리를 제쳐주니 다시 서서히 기어가는데 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날밤 꿈에 노인이 와서 선사에게 절을 하면서 말하기를 “화상께서 독경하는 것을 듣고 이미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고 하였다.

 

光海君朝에 선사가 두류산에 거주할 때의 일이다. 임자년에 광인의 무고를 받고 제자 碧巖과 함께 당시 수도에 압송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 광인이 누구인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당시 풍수설에 밝고 여러 큰 절을 짓게 하면서 궁중에 출입했던 性智라는 설이 있다. 선사가 옥에 갇히자, 옥을 관리하는 사람이 스님을 보니 氣宇가 軒昻하고 언설도 또한 비범한지라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것을 광해군에게 아뢰었다.

 

다음날 광해군이 선사를 안으로 들도록하여 법요를 물어보고는 크게 기뻐하여 紫蘭가사, 壁彩장삼, 염주 등을 하사하고 그 밖에도 진기한 물건들을 후하게 보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봉은사에 큰 재회를 열어 선사를 도사로 삼아 궁중에서 쓰던 좋은 말을 타게 하고 圉人들로 하여금 전도케 하니 당시 경성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그 모습을 우러러 뵈옵고 절을 하면서 그 뒤를 따랐다.

 

선사는 평생토록 신도로부터 받은 것을 일찍이 한 물건도 간직한 일이 없고 모두 흩어서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어 주었다. 선사의 기품과 도량은 매우 깊고 의연하였으며, 크고 넓어서 헤아릴 수 없었다. 선사의 法學(법력의 명예)가 해내에 분분하여서 스님을 찾아와 도를 배우려는 자가 7백여에 달했다.

 

광해군 6년 庚寅에 선사는 72세가 되어 송광사로부터 쌍계사 · 칠불암으로 갔는데, 이는 입적할 땅을 정하기 위함이었다. 다음 해 7월에 가벼운 병증세를 보이더니 上足제자 碧巖覺性을 불러 간절히 법을 부촉하였다. 11월 1일 午時에 목욕을 마치고 시자를 불러 지필을 가져오도록 하여 하나의 게송을 썼다.


‘七十三年을 幻海에 노닐다가 오늘 껍질을 벗고 初源으로 되돌아간다. 廓然空寂하여 원래 一物도 없거니 어찌 菩提와 생사의 뿌리가 있으랴.’


쓰기를 마치고 조용히 遷化하니 法臘이 57세였다. 문인들이 靈骨을 수습해 이것을 나누어 海印, 松廣, 七佛, 百丈 네 곳에 부도를 세웠다. 이 일이 있은 지 5년 후에 광해군이 ‘弘覺登階’ 라는 시호를 陽하였다.

 

(이상은 李能和 선생의 『조선불교통사』 高橋亨의 『李朝佛敎』 및 忽滑谷快天의 『朝鮮禪敎史』 金仁德 교수의 『浮休禪師의 禪思想』 을 참조하였음.)

 

무비 스님

 

[출처 :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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