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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열전
2019.12.23 15:59

15. 한국편 - 의상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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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의상(義湘) 대사

의상법사는 아버지가 한신(韓信)이며 성은 김씨다. 나이 스물아홉에 서울 황복사(皇福寺)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얼마 후 중국으로 가서 부처님의 교화를 보려 하여 마침내 원효와 함께 요동으로 갔다가, 변경을 지키는 병사들이 정탐자로 잡아가둔 지 수십 일 만에 간신히 빠져나와 돌아왔다.


- 사실이 최치원이 지은 의상 본전과 원효대사의 행장에 있다.


(1) 의상이 지엄에게 배우다


영휘 초년에, 마침 당나라의 사신으로 본국에 돌아가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그 배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양자(揚州)에 머물렀는데, 주장(州將) 유지인(劉至仁)이 의상을 청하여 관아에 머무르게 하고 접대를 융숭히 했다. 조금 뒤에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를 찾아가서 지엄(智嚴)을 뵈었다.


지엄은 지난밤에 꿈을 꾸었다. 큰 나무 한 그루가 조선에서 나서 가지와 잎이 넓게 우거져 중국에 까지 와서 덮었다. 그 나무 위에 봉화새의 보금자리가 있었으므로 올라가보니 한 개의 마니보주(摩尼寶珠)가 있었는데 빛이 멀리 비치는 것이었다. 꿈을 깬 후 놀랍기도 하고 이상해서 깨끗이 소제하고 기다렸더니 의상이 왔다. 지엄은 특별한 예로 영접하고 조용히 말했다.


“내가 어젯밤 꿈을 꾼 것은 그대가 나에게 올 징조였구나"


그리하여 제자가 됨을 허락하니 의상은『화엄경』의 미묘한 뜻을 은미한 부분까지 분석했다. 지엄은 학문을 서로 질의할 만한 사람을 반가이 맞아 새로운 이치를 발명해 내었으니 심오하고 은미한 이치를 찾아내어서 남초(濫草)와 천초(茜草)가 그 본색을 잃은 것과 같다 하겠다.


(2) 의상이 국란을 구하다


조금 후에 신라의 승상 김흠순(金欽純) -혹은 인문(仁問) 이라고도 쓴다- 과 양도(良圖)등은 당나라에 와 갇혀 있었는데 고종이 장차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 하니 흠순 등이 몰래 의상에게 먼저 돌아가도록 권하므로 함형 원년 경오(670)에 신라로 돌아갔다.


신라 조정에 이 사실을 알리자 조정에서는 신인종(神印宗)의 고승 명랑(明朗)에게 명하여 밀단(密壇)을 가설하고 비법으로 기도하니, 국란을 벗어날 수 있었다.


(3) 부석사의 창건과 현수의 편지


의봉(儀鳳)에 의상은 태백산으로 돌아가 조정의 명령을 받들어 부석사(浮石寺)를 짓고, 대승(大乘)의 교법을 포교했더니 영감이 많이 나타났다.


지엄의 문인(門人) 현수(賢首)는「수현소(搜玄疏)를 찬술하여 그 부본을 의상에게 보내고 아울러 서신을 보냈는데 내용이 은근했다. 그 서신에 말했다.


“서경(西京) 숭복사(崇福寺)중 법장(法藏)은 해동 신라 화엄법사(華嚴法師)의 시자(侍者)께 글을 올립니다. 한법 작별한 지 20여년, 사모하는 정성이 어찌 염두에서 떠나겠습니까? 더욱이 연운(烟雲) 만리에 바다와 육지가 첩첩이 싸여 있으므로 이 몸이 다시 뵙지 못할 것을 한스럽게 여기오니 회포 연연하여 어찌 말로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전생에 인연을 같이 했고 금세에 학업을 같이했으므로 이 과보를 얻어 대경(大經)에 함께 목욕했으며, 특히 선사께 심오한 경전의 가르침을 입었습니다. 우러러 듣건데 상인께서는 고향에 돌아가신 후『화엄경』을 개연(開演)해서 법계의 끝없는 연기를 선양하고, 겹겹의 제망(帝網)으로 불국(佛國)을 새롭게 하여 이익 줌이 크고 넓다 하오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이에 불타가 돌아가신 후에 불교를 빛내고 법륜을 다시 굴려 불법을 오래 머물게 할 이는 오직 법사뿐임을 압니다. 법장은 진취(進趣)함에 이룸이 없고, 주선함에 도움이 적었는데, 우러러 이 경전을 생각하니 선사께 부끄러워 분수에 따라 공부하여 잠시도 놓지 않고 원하건대 이 업(業)에 의거하여 내세의 인연을 맺고자 하나이다.


다만 스님의 장소(章流)는 뜻은 풍부하나 글이 간략하여 후인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우므로 이로써 제가 스님의 미묘한 말씀과 선묘한 뜻을 기록하여「의기(義記) 」를 만들었습니다. 근일에 승전법사(勝詮法師)가 베껴서 고향에 돌아가 그것을 그 땅에 전할 것이오니 상인은 그 잘잘못을 상세히 검토하셔서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마땅히 올 내세에서는 몸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 함께 노사나불(盧舍那佛)께 이와 같은 무진한 묘법을 청수(廳受)하고 이와 같은 무량광대한 보현보살의 원행을 수행하기를 원하나이다. 혹 악업이 남아 하루아침에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상인은 과거의 교분을 잊지 마시고 제취(諸趣)에서 정도를 가르쳐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인편과 서신이 있을 때마다 안부를 부탁합니다. 이만 불비(不備)합니다-이글은「대문류(大文類)」에 기재되어 있다.


(4) 의상의 활동


의상은 이에 열 곳의 사찰에서 교리를 전하니 태백산의 부석사, 원주의 비마라사, 가야산의 해인사, 비슬산의 옥천사(玉泉寺), 금정산(金井山)의 범어사(梵漁寺), 지리산의 화엄사(華嚴寺)들이 그것이다.


또『법계도서인(法界圖書印)」과「약소(略流)」를 지어 일승(一乘)의 요긴함과 중요함을 포괄했으니 천년의 본보기가 될 만하므로 여러 사람이 다투어 소중히 지녔다. 그밖에는 지은 것이 없으나 솥 안의 고기 맛을 알려면 한 점 살코기만 맛보아도 되는 것이다.


『법계도』는 총장(總章) 원년 무진(668)에 이루어졌는데 이 해에 지엄도 세상을 떠났다. 공자가 ‘기린과 잡았다.’는 구절에서 붓을 꺾음과 같다. 세상에서 전하기는 의상은 불타의 화신이라 한다.


그의 제자에는 오진(悟眞) . 지통(知通) . 표훈(表訓) . 진정(眞定) . 진장(眞藏) . 도융(道融) . 양원(良圓) . 상원(相源) . 능인(能仁) . 의적(義寂) 등 열 명의 고승이 영수가 되었는데, 모두 아성(亞聖)이며 각기 전기가 있다.


오진은 일찍 이 하가산(下柯山) 골암사(鶻嵒寺)에 살면서 밤마다 팔을 뻗쳐서 부석사 석등에 불을 켰다.


지통은 「추동기(雄洞記)」를 지었는데 대개 친히 의상의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문사가 정묘한 지경에 도달하였다. 표훈은 일찍이 불국사(佛國)에 살았는데 항시 천궁(天宮)을 왕래했다.


의상은 황복사에 있을 때 무리들과 함께 탑을 돌았는데, 언제나 허공을 밟고 돌았으므로 의상은 그 무리들을 돌아다보면서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보면 반드시 괴이하다 할 것이니 세상에 교훈될 것은 못 된다"

이 나머지는 최치원이 지은 의상의 본전과 같다.


덤불을 헤치고 연진(烟塵)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니

지상사 문이 열려 귀한 손님으로 접대했다.

화염을 캐어 와서 고국에 심었으니

종남과 태백이 똑같은 봄빛이다.

 

무비 스님

 

[출처 : 염화실] 


  1. 22. 한국편 - 정중무상 선사

  2. 27. 한국편 - 보조지눌(普照知訥) ①

  3. 28. 한국편 - 보조지눌(普照知訥) ②

  4. 33. 한국편 - 편양선사 ①

  5. 3. 인도편 - 대가섭과 아난다

  6. 4. 인도편 - 아누룻다, 라훌라, 난다, 우팔리

  7. 6. 인도편 - 여성 출가와 비구니들

  8. 8. 중국편 - 석도안(釋道安)-東普도안, 달마(達磨) 대사

  9. 10. 중국편 - 영가현각, 한산습득, 남양혜충

  10. 14. 중국편 - 대혜선사, 고봉원묘

  11. 15. 한국편 - 의상대사

  12. 16. 한국편 - 혜초(慧超) 화상

  13. 18. 한국편 - 균여대사 ②

  14. 32. 한국편 - 서산휴정(西山休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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