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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9 09:09

法 係 譜 (법 계 보) - 전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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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계 보

7불(七佛)과 인도(印度)의 조사(祖師)

 7불(七佛)

 비바시불(毘婆尸佛)
 시가불(尸棄佛)
 비사부불(毘舍浮佛)
 구류손불(拘留孫佛)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가섭불(迦葉佛)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인도(印度) 15조

 제1조 마하가섭(摩訶迦葉)
 제2조 아난(阿難) (곁가지로 末田底迦가 있다. 기록이 없다. 원주)
 제3조 상나화수(商那和脩)
 제4조 우바국다(優婆?多)
 제5조 제다가(提多迦)
 제6조 미차가(彌遮迦)
 제7조 바수밀(婆須蜜)
 제8조 불타난제(佛陀難提)
 제9조 복타밀다(伏 蜜多)
 제10조 협존자(脇尊者)
 제11조 부나야사(富那夜奢)
 제12조 마명대사(馬鳴大師)
 제13조 가비마라(迦毘摩羅)
 제14조 용수존자(龍樹尊者)

 

 법계보

  7불(七佛)

 비바시불(毘婆尸佛)-시가불(尸棄佛)-비사부불(毘舍浮佛)-구류손불(拘留孫佛)-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가섭줄(迦葉佛)-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인도(印度) 15조

제1조 마하가섭(摩訶迦葉) - 제2조 아난(阿難) - 제3조 상나화수(商那和脩) -제4조 우바국 말전지가(末田底迦) 바국다(優婆?多) - 제5조 제다가(提多迦) - 제6조 미차가(彌遮迦) - 제7조 바수밀(婆須蜜) - 제8조 불타난제(佛陀難提) - 제9조 복타밀다(伏 蜜多) - 제10조 협존자(脇尊者) - 제11조 부나야사(富那夜奢) - 제12조 마명대사(馬鳴大師) - 제13조 가비마라(迦毘摩羅) - 제14조 용수존자(龍樹尊者)

  

7불(七佛)

세상에 출현하신 옛 부처님이 끊임없이 무궁하므로 다 알거나 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현겁(賢劫)만을 말하여도 천 부처님이 계시는데, 석가모니불에 이르기까지의 7불만을 기록한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는 「7불께서 정진하신 힘으로 광명을 놓으시어 어둠을 멸하시고, 제각기 나무 밑에 앉으셔서 정각을 이루신다」라고 하였다. 또 만수실리(曼殊室利)가 7불의 조사가 되고 금화선혜(金華善慧)대사가 송산 마루턱에 올라 도를 행하는데 7불이 앞을 인도하시고, 유마가 뒤를 따르는 일을 보았다 하였으나 이 전등록의 법을 전한 기록은 7불부터 시작한다.

 

비바시불(毘婆尸佛)의 게송

    몸이 형상없는 가운데서 태어나니
    마치 요술에서 갖가지가 나는 듯하다
    사람 곧 허깨비라 마음과 뜻, 본래 없어서
    죄와 복도 모두 공하여 머문 곳 없다

 

장아함경에서 「인간의 수명이 8만 4천 세일 때에 이 부처님이 세상에 나셨는데 종족은 찰제리요, 성은 구리야요, 아버지는 반두요, 어머니는 반두바제이다. 반두바제 성(城)에 계실 때에 파파라 나무 밑에서 세 차례 설법하셔서 34만 8천 사람을 제도하셨다. 제자가 두 사람이니, 하나는 건다요, 또 하나는 제사이며, 시자(侍者)는 무요, 아들은 방응이라」라고 하였다.

 

시기불(尸棄佛)의 게송

    착한 업을 짓는 것 본래가 허깨비요
    악한 업을 짓는 것도 모두가 허깨비라
    이 몸은 거품이요, 마음은 바람같아
    허깨비가 내는 것 실제 근거가 없네

 

장아함경에서는 「인간의 수명이 7만 세일 때에 이 부처님이 세상에 나셨는데 종족은 찰제리요, 성은 구리야요, 아버지는 명상이요, 어머니는 광요이다. 광상성(光相城)에 계실 때에 세 차례 설법하셔서 25만 사람을 제도하셨다. 제자가 두 사람이니, 하나는 제사요, 또 하나는 바라바요, 시자는 인행이요, 아들은 무량이라」라고 하였다.

 

비사부불(毘舍浮佛)의게송

    사대(四大)를 빌려서 몸이라 하고
    마음은 본래  없어 경계 따라 생긴다
    경계가 없으면 마음도 없어지니
    죄와 복이 요술 같아 일어나자 멸한다

 

장아함경에서는 「인간의 수명이 6만 세일 때에 이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는데 종족은 찰제리요, 성은 구리야요, 아버지는 선등이요, 어머니는 칭계이다. 무유성(無喩城)에 계실 때에 바라 나무 밑에서 두차례 설법하시어 13만 사람을 제돠셨다. 제자가 두사람이니, 하나는 부유요, 또 하나는 울다마요, 시자는 적멸이요, 아들은 묘각이라」라고 하였다.

 

구류손불(拘留孫佛)의 게송

    몸이 실제로 없음을 보면 그것이 부처의 몸이요
    마음이 허께비인 것을 깨달으면 부처라 하는 것도 허깨비라
    몸과 마음의 본 성품이 공한 것을 알면
    그 사람은 부처와 무엇이 다르랴

 

장아함경에서는「인간의 수명이 4만 세일 때에 이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니, 종족은 바라문이요, 성은 가섭이요, 아버지는 예득이요, 어머니는 선지이다. 안화성(安和城)에 계실 때에 시라사 나무 밑에서 한 차례 설법하시어 4만 사람을 제도하셨다. 제자가 두 사람이니, 하나는 살니요, 또 하나는 비로요, 시자는 선각이요, 아들은 상승이라」라고 하였다.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의 게송

    부처란 몸을 보지 않는 것이 부처를 안 것이라지만
    진실로 바로 알면 부처가 따로 없다
    지혜로운 이는 죄의 성품이 공한 것을 알아
    태연하게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장아함경에서는 「인간의 수명이 3만 세일 때에  이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니, 종족은 바라문이요, 성은 가섭이요, 어버지는 대덕이요, 어머니는 선승이다. 청정성(淸淨城)에 계실 때에 오잠바라문 밑에서 한 차례 설법하시어 3만 사람을 제도하셨다. 제자가 두 사람이니, 하나는 서반나요, 또 하나는 울다루요, 시자는 안화요, 아들은 도사니라」라고 하였다.

 

가섭불(迦葉佛)의 게송

    온갖 중생의 성품은 청정하여서
    본래부터 나거나 멸함이 없다
    그러한 몸과 마음, 허깨비에서 났으니
    허깨비에는 죄와 복이 본래 있을 수 없다

 

장아함경에서는 「인간의 수명이 2만 세일 때에 이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니, 종족은 바라문이요, 성은 가섭이요, 아버지는 범덕이요, 어머니는 재주이다. 바라나 성(城)에 계실 때에 니구율 나무 밑에서 한 차레 설법하시어 2만 사람을 제도하셨다. 제자가 두 사람이니, 하나는 제사요, 또 하나는 바리바요, 시자는 선우요, 아들은 집군이라」라고 하였다.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기원전 1027~949)

성은 찰제리요, 아버지는 정반천이요, 어머니는 대청정묘이시다. 보처(補處)의 지위에 올라 도솔천에 태어나셨을 당시에는 승선천인(勝善天人), 또는 호명대사(護明大士)라고 불리웠는데, 여러 하늘 무리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보처의 수행을 연설하셨고, 또 시방세계에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셨다.


보요경(普曜經)에서는 「부처님께서 찰제리 왕의 집에 탄생하실 때에 큰 지혜의 광명을 놓아 온 누리를 비추시니, 땅에서 근 연꽃이 솟아 자연히 발을 받들었다. 동서남북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두 손으로 각각 하늘과 땅을 가리키면서 "온 누리에 오직 나뿐이다"라고 사자후(獅子吼)를 하시니, 이 때가 주(周)의 소왕(昭王) 26년 갑인 4월 8일이다. 49년 2월 8일이 되어 나이 19세가 되니 출가하기를 바라면서 '무엇을 만나게 될까' 생각하다가 네 문을 돌아다니면서 네 가지 일을 보시고 마음 속에 기쁨과 슬픔을 느끼게 되어 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반듯이 벗어나리라고 결심하셨다.


그날 밤, 자시(子時)에 정거(淨居)라는 천인이 창밖에서 손을 모으고 태자께서 출가하실 때가 되었으니 떠나시라고 하였다. 태자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성을 넘어 떠나서 단특산(檀特山)에서 도를 닦았다. 처음은 아람가람에게 3년 동안 불용처정(不用處定)을 배웠으나 옳지 못한 것임을 알고 버렸다. 다시 울두람불에게로 가서 3년 동안 비비상정(非非想定)을 배웠으나 그것도 그른 줄 알고 버렸다. 다시 상두산(象頭山)으로 가서 외도들과 같이 날마다 삼지와 보리를 잡수시면서 6년을 지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경에서 「마음과 뜻도 없고, 받아 행한 것도 없이 모든 외도들을 항복시켰다」고 하였으니, 먼저 삿된 법을 두루 시험하면서 모든 방편을 보이시고, 온갓 것에서 뛰어난 견해를 모두 보여 모두를 보리에 이르게 하셨다.
  그러므로 보집경(普集經)에서는 「보살이 2월 8일, 샛별이 뜰 시각에 부처를 이루시니, 호를 인천사(人天師)라 한다」라고 하였다. 그때에 나이는 30세이니, 이는 주의 목왕(穆王) 3년 계미년이었다. 그리하여 녹야원( 野苑)에서 교진여 등, 다섯 사람에게 4제(諦)의 법을 설하시고 그로부터 49년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설법하셨다. 마지막으로 제자인 마하가섭에게 '내가 청정한 법안(法眼)과 열반의 묘한 마음인, 실상이며, 형상없음이며, 미묘한 바른 법을 그대에게 전하니, 잘 간직하라' 라고 하시고 더불어 아난에게 "전법교화를 잘 도와서 끊이지 않게 하라" 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게송을 말씀하셨다.

    법이라는 본래의 법은 법이 없으나
    법이 없단 그 법도 또한 법이다
    이제 법없음을 전해 줄 때에
    법을 법이라 한들 어찌 법이랴

그때에 세존께서 이 게송을 말씀한 뒤에 다시 가섭에게 "내가 이제 금난가사(金 袈裟)를 그대에게 맡기어 보처에게 전하노니, 자씨불(慈氏佛, 미륵불)이 세상에 나시기까지 파손시키지 말라" 라고 하셨다. 가섭이 게송을 받고 머리를 숙여 발에 예배한 뒤에 "그러하겠습니다. 제가 분부대로 하겠사오니, 부처님을 공경하고 순응하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 구시나 성(城)에 가셔서 대중에게 "내가 지금 등이 아프니, 열반에 들리라" 라고 하시고, 곧 니련하(尼連河) 곁에 있는 사라쌍수(沙羅雙樹) 밑으로 가셔서 오른 겨드랑이를 대고 누워 발을 포개고 조용히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다시 관에서 일어나셔서 어머니께 설법해 주시고, 특별히 두 발을 보이시어 바기(婆耆)를 제도하신 뒤에 무상게(無常偈)를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 무상하니
    그것은 생멸의 법이다
    생멸이 멸하고 나면
    적멸이 곧 즐거움이 된다

그때에 제자들이 향과 장작을 가지고 앞을 다투어 다비(茶毘)를 거행하였으나 불이 탄 뒤에도 매양 금관(金棺)은 여전하였다.

그때에 대중들은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범속한 불길이 사나우나
    어찌 불이 태울 수 있으리까
    청하옵나니 삼매의 불로
    금빛 몸을 사르시옵소서

그때에 금관이 앉은 자리에서 7다라수(多羅樹) 높이로 솟아올라 허공을 오락가락하다가 삼매의 불로 변하니, 잠깐 사이에 재에서 나온 사리(舍利)가 8섬 4말이었아. 이때는 곧 주나라 목왕 53년 임신년 2월 15일이었다.

세존께서 입멸하신지 1017년만에 교법이 중국으로 전해지니, 후한의 영평(永平) 10년 무진년이었다.

     

인도(印度) 15조

    제1조 마하가섭(摩訶迦葉, ?~기원전 905)

그는 마갈타(摩竭陀) 사람이니, 성은 바라문이요, 아버지는 음택이요, 어머니는 향지였다.


옛적에 단금사(鍛金師)로서 금의 성품을 잘 알아 부드럽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부법전(付法傳)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 비바사불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네 무리(四衆)가 탑을 세웠는데 탑 안에 뫼신 불상의 얼굴에 금빛이 조금 파괴되어 있었다. 이때에 어떤 가난한 여자가 금 구슬을 가지고 단금사에게 가서 불상의 얼굴을 장식해 달라고 하였다. 그기고는 단금사와 같이 육체관계(姻)가 없는 부부가 되자고 서원을 세웠다. 단금사는 이 까닭에 91겁 동안 몸이 모두 금빛이었고, 뒤에 하늘에 태어났다가 하늘의 복이 다한 뒤엔 중인도(中印度)의 마갈타 나라에 있는 바라문의 집에 태어나서 가섭이라 이름하니, 한문으로 번역하면 음광승존(飮光勝尊)인데 금빛에 의하여 불려진 명호이다. 이 까닭에 출가하여 유정을 제도하려는 뜻을 내니, 부처님게서 '어서 오라'고 하시자 머리와 수염이 저절로 깍이고 가사가 몸에 입혀졌으며, 항상 대중 가운데서 제일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부처님께서 다시 "내가 청정한 법안을 그대에게 전하노니, 그대는 잘펴서 끊이지 않게 하라" 라고 하셨다」라고 하였다.


열반경에서는 「그때에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에 가섭이 모임에 없었다. 부처님께서 큰 제자들에게, 가섭이 오거든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두러내리라고 하셨다」라고 전한다.


그때에 가섭이 기사굴산(耆  山)의 빈발라굴(賓鉢羅窟)에 있다가 수승한 광명을 보고, 바로 삼매에 들어 청정안 천안(天眼)으로 세존을 보니, 니련선하 곁에서 열반에 들고 계셨다. 그는 곧 그의 제자들에게 "여래의 열반이 어찌 이다지 급작스러운가"하고 곧 사라쌍수 사이로 가서 슬프게 우니, 부처님이 금관 안에서 두 발을 내보이셨다.


그때에 가섭이 비구들에게 말씀하였다.


"부처님은 이미 다비를 마치셨다. 금강사라는 우리들의 일이 아니다.우리들은 법안을 결집(結集)해서 귾이지 않게 하여야 한다."


이어 게송을 말하였다.

    여래의 제자들이여
    슬프다고 열반에 들려 하지 말고
    신통을 얻은 이는
    결집하는 자리로 오시오

이때에 신통을 얻은 이는 모두가 왕사성 기사굴산의 빈발라굴에 모였다. 그때에 아난은 번뇌를 다하지 못하여 모임에 들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가섭이 대중에게 일렀다.


"이 아난 비구는 아는 것이 많고 , 큰 지혜가 있으며, 항상 여래를 따라 모시면서 청정한 범행을 닦았고, 부처님께서 들은 법문은 그릇에 물이 옮기듯 하나도 빠트리지 않으므로 부처님께서 항상 총명함이 제일이라 하셨으니, 이제 그를 청해서 수다라장(修多羅藏)을 결집하게 함이 좋겠습니다."


대중이 모두 잠자코 있었다.
가섭이 아난에게 말했다.
"그대는 지금 법안을 발표하라."


아난이 그 말을 듣고, 승낙한 뒤에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면서 게송을 말했다.

    비구의 여러 권속들이
    부처님을 떠나서는 장엄하지 못하는 것이
    넓고 넓은 허공에 퍼진
    별들이 달을 여읜 것 같다

말한 뒤에 대중의 발에 예배하고 자리에 올라 말하였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아무 곳에 계시면서 아무경을 말씀하셨고, 인간과 하늘이 받들어 행하였다."

  가섭이 여러 비구들에게 물었다.
  "아난의 말이 틀리지 않는가?"
  모두가 대답했다.
  "세존의 말씀과 다르지 않소."
  가섭이 또 아난에게 말했다.
  "내 나이가 많아 오래 머무르지 못하겠으니. 이제 바른 법을 그대에게 맡긴다. 그대는 잘 지키라. 그리고 나의 게송을 들으라."

    법이라는 법의 본래의 법엔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으니
    어찌 한 법 가운데
    법과 법 아닌 것이 있으랴

이 게송을 마친 뒤에 곧 금난가사를 가지고 계족산(鷄足山)에 들어가서 자씨불이 하생(下生)하시기를 기다리니, 이는 곧 주의 효왕(孝王) 5년 병진년이었다.

    제2조 아난(阿難, ?~기원전 867)

그는 왕사성(王舍城) 사람이니, 성은 찰제리요, 아버지는 곡반왕으로서 부처님의 사촌 아우이다. 범어의 아난은 경희(慶喜) 또는 환희라 번역하나니, 여래께서 부처를 이룬 날 밤에 났으므로 그런 이름을 지었다. 아는 것이 많고 지혜가 막힘이 없으므로 세존께서 총지(總持)에는 제일이라고 칭찬하셨다. 더구나 전생에 큰 공덕이 있어서 법장(法藏)을 받아 지니되 물을 다른 그릇에 그대로 전하듯 하므로 부처님께서 시자로 임명하셨다. 그 뒤에 아사세 왕이 말하였다.


"존자여, 여래와 가섭, 두 스승이 모두 열반에 드셨지만 나는 일이 많아서 모두 뵈옵지 못했으니, 존자게서 열반에 드실 때엔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난은 이를 허락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내 몸이 위태하고 연약하기가 마치 거품과 같다. 하물며 늙고 쇠약하니, 어찌 오래 견디랴'라고 생각하여 곧 왕궁으로 가서 고했다.  "내가 열반에 들고자 하여 하직하러 왔다."


문지기가  "왕께서 주무시니, 아뢸 수 없소." 라고 하니, 아난이 그에게 "왕께서 깨어나시거든 내 말을 전하라"라고 분부하였다.


이때 아사세왕이 꿈을 꾸니, 한 보배일산이 있는데 칠보로 잘 꾸미고, 천만억 대중이 둘러서서 우러러 보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서 그 자루가 부러지고, 진기한 보배와 영락이 모두 땅에 흩어지는 겄을 보고, 몹시 놀랐다. 그 꿈을 깨니, 문지기가 와서 위의 일을 자세히 말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소리 높여 통곡을 하니, 천지가 감동하는 것 같았다. 곧 비사리 성(城)으로 가니, 아난이 항하의 중류에서 가부좌로 앉아 있었다. 왕은 절을 하고서 게송을 말했다.

    거룩하옵신 삼계의 어른이여
    저를 버리고 여기까지 오셨군요
    잠깐만이라도 자비를 베푸시어
    열반에 들지 말아 주소서

  그때에 비사리의 왕도 강가에 있다가 게송을 말했다.

    존자여, 어쩌면 이다지도
    빨리 열반에 드시나이까
    원컨대 잠시만 더 머무시어
    저의 공양을 받아 주소서

그때에 아난은 두 왕이 와서 권하고 청하는 것을 보고 게송을 말했다.

    두 왕이여, 잘계시오
    애타게 슬퍼하지 마시오
    열반은 '나'이며, 청정함이니
    있다는 것 일체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아난이 '내가 한 나라에서만 열반에 들면 여러 나라에 싸움이 일어날 터이니 옳지 못하다.


의당 평등한 법으로 유정을 베도하리라'라고 생각하고, 항하의 중류에서 그대로 열반에 들려 하는데 산하대지가 6가지로 진동하였다. 설산 안에 500선인이 있다가 이런 상서를 보고 허공으로 날아와서 아난의 발에 예배하고 꿇어 앉아 청했다.


"저는 큰 스님에 의하여 불법을 증득하려 하오니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드리우셔서 저희들을 제도해 주소서."


아난이 잠자코 허락하고, 곧 항하를 변하게 하여 온통 황금 땅으로 만든 뒤에 그들에게 거룩한 법을 말해 주었다.


아난이 다시 '먼저 제도한 제자들이 모두 모이리라'라고 생각하니, 잠깐 사이에 500 아라한이 허공에서 내려와 여러 선인들에게 출가하는 구족계를 주었다.


그 선인들 가운데 두 아라한이 있었으니, 하나는 상나화수요, 또하나는 말전지가였다. 아난은 상나화수가 법기(法器)임을 알고 말했다.


"옛적에 여래께서 거룩한 법안을 마하가섭에게 전하셨고, 가섭이 선정에 드실 때에 나에게 부탁하셨는데 나도 이제 열반에 들겠으므로 이것을 그대에게 전하겠노라. 그대가 나의 가르침을 받으려면, 나의 게송을 들으라."

    본래 있는 법을 전하는데
    전한 뒤에는 없는 법이라 하네
    각각 스스로 깨달으라
    깨달으면 법없음도 없다

아난이 법장을 다 전한 뒤에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8가지 변화를 지은뒤에 풍분신삼매(風奮迅三昧)에 들어 몸을 네 몫으로 나누니, 하나는 도리천( 利天)에 봉안하고, 하나는 사갈라(沙竭羅) 용궁에 봉안하고, 하나는 비사리에 봉안하고 하나는 아사세 왕에게 봉안하였는데 모두가 보배탑을 세워 공양하였다. 이때는 주의 여왕( 王) 12년 계사년이었다.

    제3조 상나화수(商那和脩, ?~기원전 805)

그는 마돌라국 (摩突羅國)의 사람이니, 아버지는 임승이요, 어머니는 교사야였다. 태에 있기 6년만에 태어났다. 범어에 상낙가는 자연복(自然服)을 말하나 이는 인도의 구지수(九枝秀)라는 풀의 이름이다.


아라한 같은 성인이 중생계에 태어나려면 이 풀이 정결한 땅에 난다고 하는데 상나화수가 날 때에도 이 상서로운 풀이 났다.


옛적에 여래께서 교화를 다니시다가 마돌라국에 이르러 푸른 숲에 가지와 잎이 무성한 것을 보시고 아난에게 "이 지역은 우류다라 하는데 내가 열반에 든 지 백년만에 상나화수라는 비구가 묘한 법수레를 굴리리라"라고 하셨는데 백년 뒤에 과연 상나화수가 탄생하였다.


상나화수가 출가하여 도를 증득한 뒤에 아난존자의 법안을 받아 유정들을 교화하다가 이 숲에까지 와서 두 불을 뿜는 용이 그 땅을 바쳐서 큰 절을 세웠다.


존자가 교화한 지 오래 되어 정법을 제자에게 전할 것을 생각하고 타리국( 利國)에서 우바국다를 만나 시자로 삼았다. 존자가 국다에게 "그대 나이 몇인가?"라고 물으니 국다가 "제 나이 열일곱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존자가 다시 "몸이 열일곱 살인가, 성품이 열일곱 살인가?"하고 물으니, 국다가 도리어 "스님 머리가 히신데 머리가 흽니까, 마음이 흽니까?"하고 되물었다. 존자가 "나는 머리만이 희다. 마음은 희지 않다"라고 대답하니 국다도 덧붙이기를 "저도 몸이 열일곱 살일지언정 성품이 열일곱 살인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상나화수는 그가 법기임을 알고, 그 뒤로 3년만에 머리를 깍아 구족계를 주고, 이렇게 말했다.

"옛적에 여래께서 위 없는 정법안장을 가섭에게 전하신 이래 차차 전하여 나에게 일렀는데 나는 이제 다시 그대에게 전하니, 그대는 끊이지 않도록 힘쓰라. 그대는 나의 가르침을 받고, 또 나의 게송을 들으라."

    법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며
    마음도 없고 법도 없나니
    마음이다 법이다 말할 때는
    그 법은 마음의 법이 아니다

이 게송을 마치고는 곧 계빈국( 賓國) 남쪽에 있는 상백산(象白山)에 가서 숨었다. 그 뒤에 사매 속에서 보니, 제자인 우바국다가 500제자를 거느리고 항상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다.


존자는 곧 그들에게 가서 용분신삼매를 나타내어 조복시키고, 이어 게송을 말해 주었다.

    통달하면 '너'니 '나'니 하는 것이 없고
    지극한 성인에겐 길고 짧음 없나니
    너희들이 교만함 뜻을 버리면
    빨리 아라한을 얻게 되리라

500비구들이 이 게송을 듣고, 모두가 분부하신대로 행하여 무루(無漏)의 과위를 얻었다.존자가 18가지 변화를 부려 화광삼매(火光三昧)로써 자기의 몸을 사르니, 우바국다가 사리를 거두어서 범가라산(梵迦羅山)에 장사지냈다. 500비구가 제각기 번(幡) 하나씩 들고 그리로 가서 탑을 세우고 공양하니 때는 주나라 선왕(宣王) 23년 을미년이었다.

    제4조 우바국다(優婆?多, ?~기원전 740)

그는 타라국 사람인데 우바굴다라고도 하고, 오바국다라고도 한다. 성은 수타요, 아버지는 선의이니, 17세에 출가하여 20세에 도를 증득하고서 사방으로 교화를 다니다가 마돌라 국에 이르렀을 때엔 제도된 사람이 매우 많았다. 이 까닭에 악마의 궁전이 진동하고, 파순(波旬)은 근심이 되어 마의 힘을 다해 바른 법을 해치려 하였다.


존자가 삼매에 들어서 가만히 이유를 살피는데, 파순이 다시 틈을 타서 영락(瓔珞)을 가지고 와 가만히 존자의 목에다 걸어 두고 갔다. 존자가 선정에서 나와 사람과 개와 뱀의 송장으로 만든 영락을 꽃쪽두리로 변화시켜 부드러운 말로 파순을 위로했다.


"네가 나에게 매우 진기하고 묘한 영락을 주었으니, 내가 가진 꽃쪽도리로 보답하겠다" 파순은 매우 기뻐하면서 목을 빼어 받으니, 곧 세 가지 냄새나는 시체로 변하여 구더기가 우굴거렸다. 파순은 이를 싫어하여 큰 걱정을 하면서 자기의 신통력을 다 하였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욕계 육천에 올라가서 하늘 무리에게 고하고, 또 번와들에게 가서 풀어주기를 청했으나 그들은 모두가 이렇게 말했다.


"십력(十力)의 제자들이 부린 신통을 우리들 같은 범속한 무리가 어찌 풀겠는가."
  파순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좋을까?"
  범왕이 대답했다.
  "네가 만일 존자님께 마음 바쳐 귀의하면 제거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게송을 말해주어 그의 마음을 돌리게 하였다.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이는
    땅으로 인하여 일어나야 한다
    땅을 떠나서 일어나려 하면
    끝끝내 될 수가 없다

파순이 분부를 받고 곧 천궁에서 내려와 존자의 발에 예배하고 슬프게 울면서 참회하였다. 우바국다 존자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부터 여래의 바른 법을 방해하지 않겠느냐?"
  파순이 대답했다.
  "저는 맹세코 불도에 귀의하여 영원히 악을 끊겠습니다."
  국다가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네입으로 귀의삼보(歸依三寶)를 외쳐라."
  마왕 파순이 합장하고 세 차례 외치자 꽃쪽도리가 모두 없어져, 그는 기뻐 뛰면서 존자께 예배하고 게송을 말했다.

    삼매의 어른이여, 십력의 성인이신
    부처님의 제자에게 귀의합니다
    제가 이제 불도에 회양하오니
    열등함과 연약한 맘, 없게 하소서

존자가 세상에 사는 동안 교화를 받아 도과를 증득한 이가 가장 많았는데  한 사람을 제도할 때마다 수를 세는 나무가지 하나씩을 석실(石室)에 넣었다. 그 석실은 세로가 18주요 , 가로가 12주인데 그 안에 나무가지가 가득하였다.


마지막으로 향중이라는 장자가 있었는데 존자께 와서 출가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존자가 물었다.
  "그대의 마음이 출가하는가, 몸이 출가하는가?"
  향중이 대답했다.
  "저의 출가는 몸이나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자가 말했다.
  "몸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출가하는가?"
  "출가란 '나 없는 나'입니다. 이 '나 없는 나'라고 하는 것은 생멸이 없으며 마음에 생멸이 없는 그것이 곧 항상한 도이기에  모든 부처님들 또한 항상 하십니다. 마음이 형상 없듯 본체도 그러합니다."
  존자가 말했디.
  "그대는 장차 크게 깨달아서 마음을 통달할 것이니 불·법·승에 의하여 삼보를 계승하라." 그리고는 곧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주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그대의 아버지가 꿈에 해를 보고 그대를 낳았으니, 제다가(提多迦)라 하라."
  다시 말하였다.
  "여래께서 거룩한 법안장을 차례 차례 전하시어 나에게 이르렀는데 이제 다시 그대에게 전하노라. 나의 게송을 들으라."

    마음은 본래부터의 마음이니
    본래의 마음에는 법이 있는 것 아니다
    법이 있고 본래의 마음이 있다면
    마음도 아니요 본래의 법도 아니다

법을 전한 뒤에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18가지 변화를 나타냈다. 그리고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서 가부좌로 앉아서 열반에 들었다. 제다가가 석실에 있던 산가지를 끌어내어 그의 시체를 사르고 사리를 거두어 공양하니, 주나라 평왕(平王) 31년 경자년이었다.

    제5조 제다가(提多迦, ?~기원전 690)

  그는 마가다국(摩伽陀國) 사람이니, 낳을 때에 아버지의 꿈에 황금 해가 집에서 솟아서 천지를 비추는데 앞쪽에 큰 산이 온갖 보배로 장식 되었고 산마루에서는 샘이 솟아 사방으로 철철 흐르는 것을 보았다. 뒤에 우바국다 존자를 만났는데 우바국다 존자는 "보배의 산은 내 몸아요, 샘이 솟는 것은 법이 다함이 없는 것이요, 해가 지붕에서 솟는 것은 네가 지금 도에 들어올 징조요, 천지를 비친 것은 너의 지혜가 초월하리라는 것이다"라고 해석하였다.
  보래의 이름은 향중이었는데 스승인 국다가 지금의이름으로 비꾸니, 범어에 제다가는 통진량(通眞量)이라 번역된다.
  제다가는 스승의 말을 듣고 기뻐 뛰면서 게송을 말했다.

    높고 높은 칠보의 산에서
    항상 지혜의 샘이 나는 것
    참됭 법문으로 바꾸어
    인연 있는 무리들을 제도하리

  우바국다 존자도 게송을 말했다.

    나의 법이 그대에게 전하여
    크 지혜가 나타나리니
    황금의 해가 지붕에서 솟아
    천지를 비치듯 하리라

  제다가가 스승의 묘한 게송을 듣고 예를 갖추어 받들어 지녔다. 그 뒤 중인도에 갔더니, 거기엔 8천 선인이 있었는데 미차가가 으뜸이었다. 미차가는 제다가 존자가 왔다는 말을 듣고 대중을 이끌고  와서 예배한 뒤에  존자에게 "옛날에 스님과 함께 범천(梵天)에 났었는데 나는 아사타 선인을 만나 선인의 법을 배웠고, 스님은 십력의 제자를 만나 선정을 익히었습니다. 이로부터 업보를 달리한 지 이미 여러 겁이 지났습니다"라고 말했다.
  존자가 미차가에게 "여러 겁 동안 헤어졌었다는 말, 허망치 않다고 여기니, 이제 삿된 것을 버리고 바른길로 돌아와서 불법을 배우라"하니 미차가가 "옛적에 아사타 선인이 나에게 수기(受記)를 주되 이로부터 여섯 겁이 지나면 동학을 만나 무루(無漏)의 과위를 얻으리라고 하셨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었으니 옛적의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스승께서 나를 해탈케 하여 주소서"라고 청했다.
  존자는 곧 그를 제자로 승낙하고, 이어 거룩한 유사에게 명하여 계를 주게 하였더니, 다른 선인 무리들이 교만한 생각을 내었으나 존자가 큰 신통을 보이자 모두가 승복되어 보리의 마음을 내고, 동시에 출가하였다. 그런 뒤에 미차가에게 "옛적 여래께서 정법안장을 가섭에게 전하시고, 차례로 전하여 나에게까지 왔는데 나는 이제 그대에게 전하니, 잘 간직하라"라고 하고, 이어 게송을 말했다.

    본래의 마음 법을 통달하면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다
    깨닫고 나면 깨닫기 전과 같나니
    마음도 없고 법도 없다

  게송을 마치고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18가지 변화를 지으니, 화광삼매가 저절로 몸을 태웠다. 미차가가 8천 비구들과 함께 사리를 거두어 반다산(산)에 탑을 세우고 공양하니, 주나라 장왕(莊王) 7년 기축년이었다.

 

    제6조 미차가(彌遮迦, ?~기원전 635)

  그는 중인도 사람이니, 법을 전해 받은 뒤에 교화의 길을 떠나 북인도에까지 왔다가 망루 위에 금빛 나는 상서로운 구름이 뜬 것을 보고 찬탄했다.
  "이는 도인의 서기이다. 반드시 나의 법을 이을 도인이 있으리라."
  그리하여 성으로 들어오니 , 떠드는 사람들 틈에 어떤 사람이 맞은편에서 손에 술 그릇을 들고 걸어오면서 물었다.
  "스승은 어디서 오시며, 어디로 가시려 하오?"
  미차가가 대답했다.
  "스스로의 마음에서 비롯하엿다고나 할까, 가려 한다 해도 갈 곳이 없다."
  그가 다시 물었다.
  "내 손에 있는 물건을 알 수 있겠소?"
  미차가가 대답했다.
  "그것은 더러운 그릇으로서 청정함을 등진  이다."
  그가 다시 물었다.
  "나를 아시겠소?"
  미차가 존자가 말했다.
  "'나'라 하면 알지 못할 것이요, 안다 하면 "나"가 아니리라."
  또 말했다.
  "그대의 성명이나 말해 보라. 그 다음엔 나도 본래의 인연을 말하리라."
  하니 그는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한량없는 겁부터
    이 나라에 나기까지
    성은 바라타라 하고
    이름은 바수밀이라 하오

  미차가가 말햇다.
  "나의 스승인 제다가께서 '세존께서 북인도를 지나시다가 아난에게 내가 열반에 든 지 300년에 성은 바라타요, 이름은 바수밀이라 하는 성인이 이 나라에 태어나 나의 선맥(禪脈)에서 일곱째 조사가 되리라고 하셨다.'하니, 세존께서 그대를 예언하신 것이다. 그대는 출가하라."
  그는 곧 술 그릇을 땅에 놓고 스승의 곁에 서서 말했다.
  "내가 지난 겁의 일을 기억하니, 한 신도의 몸으로서 어떤 여래께 보배 좌석을 바쳤소. 그 부처님이 '너는 현겁이 되면 석가의 법이 퍼지는 시기에 불법을 선전하리라'하고 수기를 하셨는데 지금 스님의 말씀과 부합됩니다. 바라건대 저를 제도해 주소서."
  미차가가 곧 머리를 깎아 주어 계상(戒相)을 뚜렷이 회복한 뒤에 말했다.
  "정법안장을 이제 너에게 전하니, 끊이지 않게 하라."
  그리고는 게송을 말했다.

    마음이 없으니 얻을 것도 없고
    말할 수 있으면 법이라 하지 못해
    만약 마음이라 하면 마음이 아닌 줄 알아야
    비로소 마음과 마음의 법을 알리라

  존자가 이 게송을 말한 뒤에 사자분신삼매(獅子奮迅三昧)에 들어 7 다라수 높이까지 몸을 솟구쳤다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니, 변화한 불이 자연히 생기어서 스스로 태웠다. 바수밀이 거두어서 칠보의 함에 담아 부도(浮圖)를 세우니, 양왕(襄王) 17년 갑신년이었다.

 

    제7조 바수밀(바수밀, ?~기원전 588)

  그는 북인도국(北印度國) 사람으로서 성은 바라타였다.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 손에는 술병을 들고 마을을 다니면서 읇조리기도 하고, 휘파람도 부니, 사람들이 미쳤다 하였다. 미차가 존자를 만나 여래의 예언을 전해 듣고 전생 인연을 깨달아 술 그릇을 버리고 출가하였다.
  법을 받은 뒤에 교화를 하면서 가마라국(迦摩羅國)에까지 가서 광대한 불사를 하였는데 법좌(法座) 앞에 있던 한 슬기로운 사람이 "나의 이름은 불타난제인데 이제 스님과 이치를 토론하고자 합니다."하고 외치니 바수밀이 말했다.
  "그대가 토론한다면 그것은 이미 이치가 아니다. 참된 이치라면 토론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치를 토론하려 하면 끝에 이치의 토론은 아닐 것이다."
  불타난제는 스승의 법이 더 수승한 것을 알고 충심으로 탄복하여 흠모하면서 말했다.
  "저는 도를 구하여 감로의 이슬에 젖고 싶습니다."
  존자가 그의 머리를 깎아 주고, 또 구족계를 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여래의 정법안장을 나는 지금 그대에게 전하니, 그대는 잘 지니라."
  그리고는 게송을 말해 주었다.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허공과 같은 법을 보이니
    참으로 둘 아닌 경지를 증득할 때에는
    옳은 법도 그른 법도 없다

  존자가 바로 자심삼매(慈心三昧)에 드니, 범왕, 제석과 여러 하늘들이 모두 와서 절을 하고 게송을 말했다.

    현겁의 여러 조사 가운데
    일곱째 어른에 해당하시는
    존자여, 저희들을 가엾이 여겨
    부처의 경지를 말씀해 주오

  존자가 삼매에서 일어나 대중에게 설법을 하였다.
  "내가 얻은 법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부처의 경지를 안다면 그는 있고 없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 게송을 말하고 다시 삼매에 들어가서 열반을 나투었다. 난제가 그 자리에다 7보의 탑을 세우고, 전신을 봉안하니 정왕(定王) 19년 신미년이었다.

 

    제8조 불타난제(佛陀難提, ?~기원전 533)

  그는 가마라국(迦摩羅國) 사람으로서 성은 구담이었으니, 정수리에 육계(肉 )가 있고, 말재주가 막힘이 없었다. 처음에 바수밀 존자를 만나 출가하여 교법을 받았는데 오래지 않아 무리를 거느리고 교화를 떠나 제가국(提伽國)의 서울에 있는 비사라라는 이의 집에 이르니, 지붕 위에 흰 광명이 위로 솟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 집에는 반듯이 성인이 있을 것이다. 입으로 말은 못하나 참으로 대승의 그릇이요, 사방의 거리를 다니지는 못하나 더러운 것은 알리라."
  말을 마치자 장자가 나와서 인사를 드리고, 이어 무엇을 요구하느냐고 물었다. 존자가 대답했다.
  "나는 시자를 구한다."
  장자가 말했다.
  "나에게 복타밀다라 하는 외아들이 있는데 나이가 오십이 되었건만 아직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합니다."
  존자가 대답했다.
  "그대의 말이 옳다. 그가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존자가 그를 보니, 벌떡 일어나 절을 하고 게송을 말했다.

    부모도 나와 친한 이가 아니니
    누가 가장 친한 이인가요
    모든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나의 도리라고는 못하리니
    무엇이 가장 거룩한 도인가요

  존자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네 말이 마음과 친하면
    부모에 견줄 바 아니요
    네 행이 도와 합하면
    모든 부처님이란 바로 네 마음이다

    밖으로 형상있는 부처를 구하면
    너와 같은 바탕이 아니리니
    너의 근본 마음을 알고자 하면
    합하지도 말고 여의지도 말아라

  복타밀다가 존자의 묘한 게송을 듣고 곧 7걸음을 걸었다. 존자가 말했다.
  "이 사람이 옛적에 부처님을 만나 비원(悲願)이 광대하였는데 부모의 애정을 버리기 어려울까 염려하여 말도 하지 않고 걷지도 않았었다."
  그때에 장자는 곧 아들을 놓아주어 출가케 하였고, 존자는 이어서 구족계를 주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내가 여래의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전하노니, 끊이지 않도록 잘지니라."
  그리고는 게송을 말했다.

    허공은 안팎이 없나니
    마음의 법칙도 그러하다
    만일 참으로 둘 아닌 경지를 깨달으면
    이것이 진여의 이치에 사무친 것이다

  복타밀다가 스승의 법을 받고 나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나의 스승은 선맥의 조사중에
    여덟째 지위를 차지하시고
    한량없는 무리를 교화하시니
    모두가 아라한을 얻게 되었네

  그때에 불타난제 존자가 신통변화를 나타내셨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점잖게 열반에 드시니, 대중이 탑을 세워 전신을 그대로 봉안했다. 이는 곧 경왕(景王) 12년 병진년이었다.

 

    제9조 복타밀다(伏 蜜多, ?~기원전 485)

  그는 제가국(提伽國) 사람이니, 성은 비사라였다. 불타난제의 법을 받은 뒤에 중인도에 가서 교화를 할 때에 향개(香蓋)라는 장자가 외아들의 손을 잡고 와서 존자께 예배하고 말했다.
  "이 아이가 탯속에 60년이나 있었으므로 난생(難生)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일찍이 한 선인을 만났는데 이 아이를 보고 말하기를 '범상치 않으니, 반드시 법기가 되리라' 하였습니다. 이제 존자를 만났으니, 출가케 하고 자 합니다."
  존자가 곧 머리를 깎아 주고 또 게를 주었는데 갈마(?磨)를 할 때에 사리 30개가 나타났다. 이로부터 피로함을 잊고 부지런히 정진하였는데 오래지 않아 스승이 말했다.
  "여래의 거룩한 정법안장을 너에게 전하노니, 잘 간직하여라."
  그리고 게송을 말했다.

    진리란 본래 이름할 수 없으나
    이름에 의하여 진리가 나타나니
    진실한 법을 받아 얻으면
    참도 아니요 거짓도 아니다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멸진삼매(滅盡三昧)에 들어 열반하니, 대중이 기름과 전단으로 유체를 화장하고 사리를 모아서 나란타 절에 탑을 세웠다. 이는 곧 경왕(敬王) 35년 갑진년이었다.

 

    제10조 협존자(脇尊者, ?~기원전 447)

  그는 중인도 사람으로서 본래의 이름은 난생이었다. 존자가 탄생할 때에 그의 아버지의 꿈에 한 마리의 흰 코끼리 등위에 보배의 좌석이 있고, 좌석 위에는 밝은 구슬 하나가 놓였는데 광채가 문으로 들어와 사방으로 비치는 것을 보았다. 이런 꿈에서 깨어나 존자를 낳았다. 뒤에 복타밀다 존자를 만나 곁에서 시봉을 하는데 잠시도 자지 않았으니, 즉 겨드랑이를 댄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협존자라 부르게 되었다. 처음 화씨국(華氏國)에 이르러 어느 나무 밑에서 쉬다가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가 금빛으로 변하면 성인이 이 모임으로 들어오리라."
  이 말을 마치자 땅이 금빛으로 변하면서 부나야사(부나야사)라는 장자의 아들이 합장하고 그 앞에 섰다. 존자가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야사가 대답했다.
  "내 마음은 가는 곳이 없습니다."
  "너는 어디에 머무는가?"
  "내 마음은 그침도 없습니다."
  "너는 일정하지 않다는 말이냐?"
  "모든 부처님이 그러하십니다."
  "너는 모든 부처가 아니다."
  "모든 부처라 해도 존귀한 자는 아닙니다."
  존자가 이어서 게송을 말했다.

    이 땅이 금빛으로 변하니
    성인이 이르러
    보리수 밑에 앉아서
    깨달음의 꽃을 피울 것이다

  야사도 게송을 말했다.

    스승께서 금빛 땅에 앉아
    항상 진실한 이치를 말씀하시고
    빛을 돌이켜 비추도록 하여
    나를 삼매에 들게 하시네

  존자가 그 뜻을 알고 곧 제자로 삼고, 또 구족계를 주었다. 그리고 다시 분부하였다.
  "여래의 거룩한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전하니, 그대여 잘지니라."
  그리고는 이어 게송을 말했다.

    참다운 본체는 자연히 참다운 것이니
    참다운 것으로써 진리를 말한다
    참되게 참법을 깨달으면
    행할 것도 그칠 것도 없다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신통변화를 나타내었다가 열반에 드니, 삼매의 불이 나서 저절로 탔다. 네 무리가 제각기 옷자락에다 사리를 담아다가 곳곳에다 탑을 세우고 공양하니, 정왕(貞王) 22년 기해년이었다.

 

    제11조 부나야사(富那夜奢, ?~기원전 388)

  그는 화씨국(華氏國)사람이니, 성은 구담이요, 아버지는 보신이었다. 협존자의 법을 전해 받은 뒤에 바라나국(波羅奈國)에 가니, 마명대사라는 이가 마중나와 예배하고 물었다.
  "저는 어떤 것이 부처인지 알고자 하는데 어떤 것입니까?"
  야사존자가 대답했다.
  "네가 부처를 알고자 하는데 알지 못하는바로 그것이니라."
  "부처도 모르는데 어찌 그것임을 알겠습니까?"
  "이는 톱(鉅)의 이치입니다."
  "너는 나무의 이치다. 톱의 이치란 무엇이냐?"
  "스승과 나옴이 다르지 않습니다. 나무란 뜻은 무엇입니까?"
  "네가 나의 쪼갬을 당한 것이다."
  마명이 활연(豁然)히 깨닫고, 머리를 조아려 제자가 되기를 원했다. 야사는 대중을 향해 말했다.
  "이 대사는 옛날에 비사리국(毘舍離國)의 왕이었다. 그 나라에 말과 같이 생긴 사람이 있는데 발가벗고 있었다. 왕은 신통력으로 많은 누에가 되어 실을 짜 그로 하여금 옷을 지어 입게 하였다. 그 뒤에 왕이 중인도에 태어날 때 그 말과 같은 사람이 감동되어 슬프게 우니 그 소리를 듣고 왕을 마명(馬鳴)이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여래께서 '내가 열반에 든 뒤600년 에 마명이라는 어진 이가 나타나서 바라나국에 외도를 굴복시키고 한량없는 사람을 제도하여 나의 법을 계승하리라'라고 수기하셨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그리고 마명에게 분부했다.
  "여래의 거룩한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전한다. 게송을 들으라."

    미혹과 깨달음은 가려지고 드러남에 불과하고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니
    이제 가려짐과 드러남의 법을 전한다지만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다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신통을 나타내었다가 조용히 열반에 드니, 대중이 보배탑을 세워 전신을 봉안했다. 이는 곧 안왕(安王) 14년 무술년이었다.

 

    제12조 마명대사(馬鳴大師, ?~기원전 332)

  그는 바라나국(波羅奈國) 사람으로 공승(功勝)이라고도 하나니, 함이 있거나 함이 없는 공덕이 모두 한량없이 수승하였으므로 그렇게 불렀다. 야사존자에게 법을 받은 뒤에 화씨국에서 묘한 법수레를 굴릴 때에 홀연히 어떤 노인이 자리 앞에 엎어졌다. 마명이 대중에게 말했다.
  "이는 예사 무리가 아니다. 반드시 특이한 상서가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더니, 잠깐 뒤에 땅에서 금빛이 나는 사람 하나가 솟았다가 다시 여자로 변하여 오른손으로 마명을 가리키면서 게송을 말했다.

    거룩하신 어른께 경례합니다
    여래의 수기를 받으시고
    지금 이 땅에 왕림하시어
    제일의 뜻을 선전하시네

  게송을 마치고 홀연히 사라지니, 마명이 다시 대중에게 말했다.
  "곧 마(마)가 와서 나와 힘을 겨루리라."
  조금 있으니 풍우가 갑자기 닥쳐왓 천지가 아득해졌다.
  마명이 말했다.
  "마가 온 것이 사실이다. 내가 제어하리라."
  그러고는 곧 공중을 가리키니 하나의 큰 금룡(금룡)이 나타나서 위력을 발휘하자, 산천이 진동하였으나 마명이 태연히 앉았으니, 마의 장난이 곧 소멸되었다. 7일이 지나서 메뚜기만한 작은 벌레가 자리 밑으로 숨어들었다. 대사가 손으로 잡아내어 대중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은 마가 변화한 것인데 나의 법을 몰래 들으러 왔다."
  그러고는 곧 놓아 주어 가게 하였으나, 마가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대사가 그에게 일러 주었다.
  "내가 삼보에 귀의하기만 하면 신통을 얻게 되리라."
  마는 드디어 제 형태를 회복하여 절응 하면서 참배하니, 대사가 물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며, 권속은 얼마나 되느냐?"
  "제 이름은 가비마라요, 권속은 3천입니다."
  "네가 신통력을 다하면 어떤 변화를 일으키겠느냐?"  
  "저는 아주 큰바다를 변해서 작은 물로 만듭니다."
  "너는 성품의 바다도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
  "무엇을 성품의 바다라 합니까? 저는 처음 듣는 말입니다."
  대사가 그에게 성품의 바다를 말해 주었다.
  "산하대지가 그에 의하여 건립되고, 삼매와 육신통(六神通)이 이로 말미암아 난다."

  가비마라가 이 말을 듣고, 신심을 내어 그의 권속 3천을 데리고 출가하기를 원했다. 대사는 500명의 아라한을 불러 구족계를 주게 하고, 이어 그에게 분부했다.
  "여래의 거룩한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전하니, 그대는 나의 게송을 들으라."

    숨거나 드러남이 본래의 법이요
    밝음과 어두움이 둘이 아니다
    깨달은 법을 오늘에 전하니
    취함도 아니요 여윔도 아니다

  법을 전한 뒤에 바로 용분신삼매(龍奮訊三昧)에 들어 마치 햇빛 같이 몸을 공중에 솟구쳤다가 열반에 들었다. 네무리가 참몸을 용감(龍龕)안에 봉인하니. 현왕(顯王) 37년 갑오년이었다.

 

    제13조 가비마라(迦毘摩羅, ?~기원전 274)

  그는 화씨국(華氏國) 사람이니, 처음에 외도가 되어 3천 여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온갖 외도의 이론을 통달하였다. 뒤에 마명존자를 만나 법을 받고서 무리들을 거느리고 서인도로 갔다. 거기에는 운자재(雲自在)라는 태자가 있었는데 존자의 소문을 듣고 추앙하는 마음으로 궁중에 청하여 공양하려 하였다. 존자가 그에게 말했다.
  "여래의 가르침에 서문은 국왕대신이나 세도 있는 집에 가지 말라 하셨소."
  태자가 말했다.
  "지금 저희 나라 서울 북쪽에 큰 산이 있는데 산 속에는 석굴 하나가 있으니, 스님께서 거기에 머무실 수 없겠습니까?"
  존자가"좋소."하고, 곧 그 산으로 들어가서 몇리를 가다가 큰 뱀 하나를 만났는데 존자가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가니, 드디어 존자의 몸을 칭칭 감았다. 존자가 삼귀의를 일러주자, 뱀이 듣고는 곧 몸을 풀어 갔다. 존자가 석굴에 이르렀을 때에 어떤 노인이 소복을 하고 나와서 합장하고 문안을 하니, 존자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 사는가?"
  노인이 대답했다.
  "저는 옛날에 비구였는데 조용한 것을 몹시 좋아하였습니다. 그때에 젊은 비구가 자주 와서 물었는데 대답하기를 귀찮게 여겨 성을 낸 탓에, 목숨이 다한 뒤에 뱀이 되어 이 굴속에서 산지가 이미 천년입니다. 이제 마침 존자를 만나 계법을 듣게 되었으므로 사례하러 왔습니다."
  존자가 물었다.
  "이 산에 다른 사람이 사는가?"
  그가 대답했다.
  "북쪽으로 십리를 가면 대수(大樹)라는 분이 있는데 큰 용과 같은 제자들이 500명 있습니
다. 왕이 그 분을 용수(龍樹)라 이름했는데 항상 용과 같은 무리들에게 설법을 해주는 것을 내 귀로도 들었습니다."
  존자가 무리를 거느리고 그곳으로 가니 용수가 존자를 맞이하면서 말했다.
  "깊은 산이 외롭고 적적하여 용과 뱀이나 사는 곳인데 대덕의 지극히 높으신 몸으로 어찌 오셨습니까?"
  존자가 대답했다.
  "나는 지극히 높은 이가 아니다. 그대를 보러 왔을 뿐이다."
  용수가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이 사람이 결정된 성품을 얻었을까? 도의 눈이 밝아졌을까? 큰 성인의 참 법을 이어 받
았을까?"
  존자가 말했다.
  "네가 마음으로만 생각하나 나는 안다. 출가할 결심을 하여라. 어찌 내가 성인 아닐 것을 근심하고 있는가?"
  용수가 이 말을 듣고 뉘우치며 사과하니, 존자가 곧 출가시켰도, 500명의 용과 같은 무리들에게도 구족게를 주었다. 그리고 다시 용수에게 분부했다.
  "여래의 거룩한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전한다. 나의 게송을 들으라."

    숨길 수도 없고 드러낼 수도 없는 법은
    진실의 실제를 말하는 것이니
    이 숨길 수도 없고 드러낼 수도 없는 법을 깨달으면
    어리석음도 지혜로움도 아니다

  법을 전한 뒤에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삼매의 불로 몸을 태우니, 용수가 오색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우고 모셨다. 이는 곧 난왕( 王) 41년 임진년이었다.

 

    제14조 용수존자(龍樹尊者, ?~기원전 212)

  그는 서인도(서인도) 사람이니, 용승(용승)이라고도 한다. 처음 가비마라 존자에게 법을 받고, 이어 남인도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은 보시를 행하여 복을 얻는 업을 많이 믿었는데 존자의 설법을 듣고는 서로들 수근 거렸다.
  "사람에게 보시를 행하여 얻은 복이 있으면 세간에서 제일이다. 헛되이 불성을 말하나 누가 보겠는가?"
  존자가 말했다.
  "너희들이 불성을 보고자 하면 먼저 아만(아만)을 없애라."
  그들이 말했다.
  "불성은 큰 것인가, 작은 것인가?"
  존자가 대답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 넓지도 않으며 복도 없고 갚음도 없으며 죽지도 나지도 않는다."
  그들이 수승한 이치를 듣고 모두가 첫 마음을 돌이켰다. 존자는 다시 자리 위에서 보름달 같은 자재한 몸을 나타내니, 모든 대중이 오직 법문의 소리만 들으나 존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그 대중 가운데 가나제바라는 장자의 아들이 있다가 대중에게 말했다.
  "이 형상을 알겠는가?"
  대중이 말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알겠는가?"
  제바가 말했다.
  "이것이 존자께서 불성을 나타내셔서 우리들에게 보이신 것이다. 어째서 그렇겠는가? 무상삼매(無相三昧)의 형체가 보름달 같다고 하는 것은 불성의 이치가 이러히 가엾이 비고 밝기 때문이다."
  제바가 말을 마치자, 존자가 달 같은 형상을 숨겼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게송을 말했다.

    몸이 뚜렷한 달과 같은 형상을 나타내어
    부처님의 본체를 표시하고
    설법은 형체가 없어
    소리와 빛이 아님을 변증한다

  그 무리들이 게송을 듣자, 모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닫고 출가하여 해탈을 얻고자 하니 존자는 곧 머리를 깎아 주고, 이어 아라한들에게 구족계를 주게 하였다. 그 나라에는 본래부터 5천 명의 외도가 있어 큰 요술을 부리므로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았는데 존자가 모두 교화하여 삼보에 귀의케 하였다.
  또 대지도론(大智度論)· 중론(中論)·십이문론(十二門論)을 지어서 후세에 전하였다.
  그 뒤 상수(上首)제자인 가나제바에게 분부하였다.
  "여래의 거룩한 정법안장을 지금 그대에게 전한다. 나의 게송을 들으라."

    숨고 드러난 법을 밝히기 위해
    해탈의 이치를 말하거니와
    법을 증득하여 얻음 없으면
    성냄도 기쁨도 모두 없다

  법을 전한 뒤에 월륜삼매(月輪三昧)에 들어서 널리 사람의 지혜로 헤아릴 수 없는 신비로운 변화를 나타내었다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열반에 드니, 가나제바가 네 무리들과 함께 보배탑을 세우고 장사 지냈다. 이는 곧 진시황(秦始皇) 35년 기축년이었다.


 

                     경덕전등록 제2권

 법계보

 인도(印度) 35조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제16조 라후라다(羅 羅多)
 제17조 승가난제(僧伽難提)
 제18조 가야사다(伽耶舍多)
 제19조 구마라다(鳩摩羅多)
 제20조 사야다( 夜多)
 제21조 바수반두(婆修盤頭)
 제22조 마나라(摩拏羅)
 제23조 학륵나(鶴勒那)
 제24조 사자존자(師子尊者)

 사자존자에게서 곁가지로 나온 1인
   달마달(達磨達)
 달마달에게서 곁가지로 나온 2인
   인다라(因陀羅)
   구라기리바(瞿羅忌利婆)
 인다라에게서 곁가지로 나온 4인
   달마시리제(達磨尸利帝)
   나가난제(那伽難提)
   파루구다라(破樓求多羅)
   파라바제(波羅婆提)
 구라기비라에게서 곁가지로 나온 2인
   파라발마(波羅跋摩)
   승가라차(僧伽羅叉)
 달마시리제에게서 곁가지로 나온 2인
   마제예피라(摩帝隸披羅)
   가리발무(訶利跋茂)
 파루구다라에게서 곁가지로 나온 3인
   화수반두(和修盤頭)
   달마가제(達摩訶帝)
   전다라다( 陀羅多)
 파라발마에게서 곁가지로 나온 3인
   늑나라다(勒那羅多)
   반두다라(盤頭多羅)
   바라바다(婆羅婆多)


 승가라차에게서 곁가지로 나온 5인
   비사야다라(毘舍也多羅)
   비루라다마(毘樓羅多摩)
   비율추다라(毘栗芻多羅)
   우파전타(優波 馱)
   바난제다(婆難提多)
   (이상 22인은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원주)

 제25조 바사사다(婆舍斯多)
 제26조 불여밀다(不如密多)
 제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

 

 인도(印度) 35조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 제16조 라후라다(羅 羅多) - 제17조 승가난제(僧伽難提) - 제18조 가야사다(伽耶舍多) - 제19조 구마라다(鳩摩羅多) - 제20조 사야다( 夜多) - 제21조 바수반두(婆修盤頭) - 제22조 마나라(摩拏羅) - 제23조 학륵나(鶴勒羅) - 제24조 사자존자(師子尊者) -제25조 바사사다(婆舍斯多)  - 제26조 불여밀다(不如密多) -제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

 

                         인도(印度) 35조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기원전 161)

  그는 남인도국(南印度國) 사람으로, 성은 비사라였다. 처음엔 복스런 업을 구하다 나중에 용수대사(龍樹大士)를 뵈러 갔는데, 문에 들어가려 할때에 용수는 그가 지혜로운 사람임을 미리 알고 시자를 시켜 바루에 가득히 물을 떠다 앞에 놓게 하였다.
  존자가 이를 보고, 바늘 하나를 던지고 계속 걸어가니, 혼연히 뜻이 맞았다. 용수가 곧 그에게 설법을 해주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둥근달 모양을 나타내니, 그의 소리만 들리고 그의 형체는 볼 수 없었다.
  존자가 대중에게 말했다.
  "지금의 이 상서는 스승께서 불성을 나타내시어 소리와 빛에 관계치 않음을 보이신 것이다."
  존자가 용수의 법을 받은 후 비라국(毘羅國)에 가니, 그 곳에 범마정덕(梵摩淨德)이라는 장자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후원의 나무에 큰 버섯이 돋았는데 맛이 매우 좋았으나 장자와 둘째 아들인 라후라다만이 따다 먹을 수 있었다. 따다 먹는 대로 자라고, 다하면 다시 나고 하였으나 다른 친속은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
  이때에 존자가 그 전생 인연을 알고 집으로 갔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존자가 대답했다.
  "너희들은 전생에 어떤 비구를 공양하였다. 그러나 그 비구는 도의 눈이 열리지도 않았으면서 헛되이 남의 시주를 받았다. 그러므로 버섯이 되어 갚는 것인데 너와 네 아들은 정성껏 공양하였으므로 받을 수 있으나, 다른 이들은 받지 못한다."
  다시 장자의 나이를 물어 보니 79세라고 하였다.
  존자가 게송을 말했다.

    도에 들었으나 이치를 통달하지 못했으므로
    몸을 바꿔 시주의 물건을 갚는 것이니
    그대의 나이 여든 한 살이 되면
    이 나무에서는 버섯이 다시 나지 않으리

  장자가 게송을 다 듣고 더욱 탄복하여 말씀드렸다.
  "제자는 나이가 많아 스승으로 섬기지 못하겠으나 둘째 아들을 출가케 하고자 합니다."
  존자가 말했다.
  "옛날에 여래께서 이 아들에 대하여 '둘째 500년에 큰 스승이 되어 교화하리라' 하고 예언하셨는데 지금 만나게 되니, 옛 인연과 부합된다."
  그리고는 곧 머리를 깎아주고 시중을 들게 하였다.

  존자가 파연불성(巴連弗城)에 이르렀을 때에 여러 외도들이 불법을 방해하려는 계획을 세운 지 오래라는 말을 듣고 긴 번을 들고 그 무리로 들어가니, 그들이 존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앞서지 않는가?"
  존자가 말했다.
  "그대는 왜 뒤지지 않는가?"
  "그대는 천한 사람 같다."
  "그대는 양반 같다."
  "그대는 어떤 법을 아는가?"
  "그대는 아무 법도 모른다."
  "아는 부처를 깨닫고자 한다."
  "나는 분명히 부처니라."
  "그대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본래 부처라고 말했거니와 그대는 진실로 깨닫지 못했다."
  "그대는 깨닫지 못했는데 어찌하여 깨달았다 하는가."
  "그대는 '나'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지만 나는 '나'라는 것이 없으므로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니라."
  그는 끝내 말이 막히어 존자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존자가 대답했다.
  "나는 제나가바이다."
  그들은 존자의 명성을 진작부터 들었으므로 허물을 뉘우치고 사죄하였다.
  이때에 대중 가운데 여전히 토론이 일어났는데 존자가 걸림없는 말재주로써 판결하니, 모두가 항복하여 귀의하였다. 이어 상수제자인 라후라다에게 법을 전하고, 게송을 말했다.

    근본을 이룬 사람에게 법을 전하니
    해탈의 이치를 말하기는 하지만
    법에는 실제로 증득한 바가 없나니
    시작도 마지막도 모두 없느니라

  존자가 게송을 말한 뒤에 분신삼매(奮迅定)에 들어 몸으로 8가지 광명을 놓아 열반에 드니, 배우던 무리들이 탑을 세워 공양하였다. 이는 곧 전한(前漢)의 문제(文帝) 19년 경진년이었다.

 

    제16조 라후라다(羅 羅多, ?~기원전 113)

  그는 가비라국(迦毘羅國) 사람이었다. 교화를 하면서 실라벌성(室羅筏城)에 이르렀을 때에 금수(金水)라는 강이 있었는데 그 맛이 몹시 달고, 강가운데에는 다섯 부처님의 그림자가 나타나 있었다. 존자는 대중에게 말했다.
  "이 강의 근원 쪽으로 500리쯤 가면 승가난제라는 이가 살고 있다. 부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1천년 후에 그가 거룩한 지위를 계승하리라 하셨다."
  말을 마치고는 곧 배우는 무리들을 거느리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서 그곳에 이르니, 승가난제기 단정히 앉아 선정에 들어 있었다. 존자가 대중과 함께 기다리고 있으니, 37일 이 지나서야 바야흐로 선정에서 일어났다.
  존자가 물었다.  "그대는 몸이 정(定)에 드느냐, 마음이 정에 드느냐?"
  그가 대답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정에 듭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정에 든다면 어찌 들고 남이 있는가?"
  "들고 남이 있지만 선정의 형상을 잃지는 않습니다. 마치 금이 우물 안에 있더라도 금의 본체는 항상 고요한 것과 같습니다."
  "금이 우물에 있거나 금이 우물에서 나왔거나 금에는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음이 없다고 하면 어떤 물건이 들고 나는가?"
  "금이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무슨 물건이 들고 나겠습니까? 금이 들고 난다 하더라도 금은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물에 있었다면 나온 것이 어찌 금이랴? 만약 금이 우물에서 나왔다면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냐?"


  "만약 우물에서 나왔다면 안에 있는 것은 금이 아니요, 만약 금이 우물에 있다면 나온 것은 물건이 아닙니다."
  "이 이치가 옳지 않다."
  "그대의 주장이 분명치 않습니다."
  "이 이치는 당연히 무너진다."
  "그대의 주장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그대의 주장은 이루어지지 않을지언정 나의 주장은 이루어진다."
  "나의 주장이 이루어진다는 말하지만, 법에는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의 이치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은 나는 곧 '나 없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 없어야 한다면 다시 어떤 이치가 이루어집니까?"
  "'나'에 '나' 없어야 진실로 그대의 이치를 이룰 것이다."
  "당신은 누구를 스승으로 섬겼기에 이와같은 '나 없음'의 진리를 얻었습니까?"
  "나는 가나제바 존자를 스승으로 하여 이와 같은 '나 없음'의 진리를 얻었다."
  "당신보다 뛰어나신 가나제바님에게 경례합니다. 그러나 당신도 '나 없음'을 얻었으므로 나는 스승으로 삼고자 합니다."
  "나는 이미 나 없으므로 그대는 '나라는 나'('나 없음'의 나)를 보아야 한다. 그대가 만일 나를 스승으로 섬긴다면 '나'라 할 때 '나 없는 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승가난제가 마음과 뜻이 활짝 열려 그 자리에서 출가하기를 원하니 존자가 말했다.
  "그대의 마음은 자재(自在)하다. 나에게 매인 것이 아니다."
  말을 마치자 곧 오른손에 발우를 받쳐들고 범궁(梵宮)에 가서 그곳의 향기로운 음식을 가지고 와서 대중에게 공양하려 하였다. 그러나 대중은 홀연히 싫어하는 생각을 내었다.
  존자가 "나의 허물이 아니다. 그대들 스스로의 업이다."라고 말하고 곧 승가난제를 불러 자리를 같이하고, 같이 먹으니, 대중이 또 의심을 했다. 존자가 말했다.
  "너희들이 먹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이 때문이니, 나와 자리를 같이한 이는 과거의 사라수왕 여래인데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어 강림하셨다. 너희들도 과거 장엄겁(莊嚴劫)에 이미 셋째 과위에까지 이르렀으나 무루를 증득하지 못했다."
  대중이 말했다.
  "우리 스승의 신통은 믿을 수 있으나 그가 과거의 부처라는 말은 의심이 된다."
  승가난제는 대중이 교만한 생각을 냈음을 알고, 그들에게 말했다.
  "세존께서 생존해 계실 때에는 세계가 평화롭고 안락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며 지혜의 수준이 균등하고, 물은 모두가 단맛이고 초목이 무성하며, 온 나라에 풍년이 들고 여덟 가지 괴로움이 없고, 열 가지 착한 일이 잘 시행되었으나, 세존께서 사라쌍수(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신 지 80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세계에 언덕이 생기고, 수목이 마르고, 사람들은 바른믿음이 없어 경박한 일만 생각하며, 진여는 믿지 않고 신통만을 좋아한다."
  말을 마치자 오른손으로 차츰차츰 땅을 헤쳐서 금강륜(金剛輪)에까지 가서 유리그릇에 감로수를 떠다 대중에게 바쳤다. 대중이 이를 보고, 바로 흠모하고 뉘우치는 생각을 내었다. 이때에 라후라다 존자는 승가난제를 불러서 법을 전해주고 게송을 읊었다.

    법은 실제로 증득할 것이 없고
    취함도 여윔도 아니니라
    법은 있음과 없음의 형상도 아니니
    어찌 안팍이 일어나리요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단정히 앉아 열반에 드니, 네 무리의 대중이 탑을 세웠다. 이는 곧 전한의 무제(武帝) 28년 무진년이었다.

 

    제17조 승가난제(僧伽難提, ?~기원전 74)

  그는 실라벌성의 보장엄왕(寶莊嚴王)의 아들이었는데 갓 낳자마자 말을 하여 항상 불법을 칭찬하였고, 일곱 살에는 세상을 싫어하여 게송으로써 그의 부왕께 사뢰었다.

    인자하신 아버님께 경례하오며
    낳아주신 어머님께 합장합니다
    저는 이제 출가하기 소원하오니
    바라건대 저의 뜻을 들어 주소서

  부모가 간곡히 말렸으나 종일 먹지 않으므로 급기야는 출가를 허락하였고, 출가한 뒤에는 승가난제라 불렀다. 또 선리다라는 사문을 스승으로 삼았는데 19년 동안 잠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존자는 항상 '왕궁에서 편히 살던 몸이 어찌 출가하겠는가'하고 생각하였는데 하루는 저녁에 하늘 광채가 내려 비추어 한 가닥의 길이 평탄하게 뚫리는 것이 보였다.
  승가난제 존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10리쯤, 그 길을 따라 걸어서 큰 바위 앞에 이르르니, 거기에는 석굴이 있기에 그 안에서 조용히 살았다.
  부왕은 아들을 잃었으므로 선리다를 나라밖으로 쫓아내고, 아들을 찾게 하였으나 있는 곳을 알지 못했다. 10년이 지나 존자가 법을 깨달아 수기를 받은 뒤에 교화에 나서서 마제국(摩提國)에 이르렀다. 그때 홀연히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대중의 몸과 마음을 매우 서늘하게 하였으나 그 까닭을 아는 이가 없었다. 존자가 말했다.
  "이는 도덕의 바람이다. 곧 거룩한 이가 세상에 나타나서 조사의 등불을 잇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친 후 곧 신통을 부려 여러 대중들을 거느리고 잠깐 사이에 산과 골을 지나 한 봉우리 밑에 이르러 대중에게 말했다.
  "이 봉우리 위에 자주빛 구름이 일산(日傘)같이 서렸으니, 성인이 여기에 살 것이다."
  그리하여 대중과 함께 오래 서성거리고 있으니, 한 초막에서 어떤 동자가 둥근 거울을 가지고 곧바로 존자의 앞으로 왔다. 존자가 물었다.
  "너 몇 살이냐?"
  동자가 대답했다.
  "백 살입니다."


  "네 나이 아직 어린데 어찌 백 살이라 하느냐?"
  "나는 올바른 백 살의 이치를 알지 못합니다."
  "네가 좋은 근기(根機)이냐?"
  "부처님께서는 백 살을 살아도 부처님들의 근기를 알지 못하면 하루를 살면서 분명히 아는 것만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에 가진 것은 무엇을 표시 하느냐?"
  "부처님들의 크고 둥근 거울은 안팎으로 티와 가림이 없음을 표시합니다."
  두 사람은 마음의 눈이 열린 것이 서로 비슷하였는데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말을 듣고, 곧 놓아주어 출가케 하였다. 존자는 그를 데리고 본래의 자리로 데리고 가서 구족계를 주고, 가야사다라 이름하였다.
  다른 날, 바람이 불어 풍경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존자가 물었다.
  "바람이 우는가, 풍경이 우는가?"
  가야사다가 대답했다.
  "바람도 아니요, 풍경도 아닙니다. 오직 제 마음이 울 뿐입니다."
  "마음이란 무엇이냐."
  "모두가 고요하고 고요할 뿐입니다."
  "좋은 말이다. 나의 법을 이을 이가 그대가 아니면 누구이겠는가."
  곧 법을 전하고, 이어 게송을 말했다.

    마음의 땅에는 나는 것 본래 없으나
    인(因)의 바탕에 인연에 의해서 일으키나니
    연(緣)과 종자가 서로 방해치 않듯
    꽃과 열매도 그러하니라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오른손으로 나뭇가지를 휘어잡고 열반에 드니, 대중이 '존자께서 나무 밑에서 열반에 드시니, 그 그늘이 후손들에게  드리워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시체를 고원(高原)으로 옮겨 뫼시고 탑을 세우려는데 대중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어서 나무 밑에다 그대로 탑을 세웠다. 이는 곧 전한의 소제(昭帝) 13년 정미년이었다.

 

    제18조 가야사다(伽倻舍多, ?~기원전 13)

  그는 마제국(摩提國)  사람으로, 성은 울두람이며, 아버지는 천개요, 어머니는 방성이었다. 일찍이 큰 신장이 거울을 들고 있느 것을 꿈에 보고 태기가 있은 후 7일 만에 낳았다. 살과 몸이 유리 같이 비치어 한번도 씻지 않아도 자연히 향기롭고 깨끗했다. 어릴 때에 조용한 곳을 좋아하고, 말하는 것이 예사 어린이와 다르더니, 거울을 가지고 놀러 나갔다가 승가난제 존자를 만나 출가하게 되었다.
  무리들을 거느리고 대월씨국(大月氏國)에 갔다가 한 바라문의 집에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것을 보았다. 존자가 그 집에 들어가려 하니, 집주인인 구마라다(鳩摩羅多)가 물었다.
  "웬 무리들이요?"
  존자가 대답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다."
  그는 부처님이란 명호를 듣고 정신이 아찔하여 이내 문을 닫고 들어갔다. 존자가 조금 있다가 다시 그 문을 두드리니, 구마라다가 응답했다.
  "이 집엔 암도 없소."
  존자가 거듭 물었다.
  "아무도 없다고 대답하는 이는 누구인가?"
  구마라다가 이 말을 듣자 이상한 사람임을 알고 문을 열어 맞이하였다.
  존자가 그에게 말했다.
  "옛날에 세존께서 '내가 열반에 든지 천 년 뒤에 월씨국에 대사가 나타나서 나의 법을 이어 발전시키리라'하고 예언하셨는데 이제 그대가 나를 만난 것은 이런 좋은 운을 만난 것이다."
  이때에 구마라다는 숙명지(宿命智)를 얻고 출가하였다. 계를 받은 뒤에, 법을 전하고, 이에 게송을 말했다.

    종자가 있고, 마음의 땅이 잇으면
    인연에 의하여 싹이 솟지만
    인연이 서로 서로 걸리지 않으면
    바른 남(生)은 나도 남(生)이 아니다.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18가지 변화를 나타냈다가 화광삼매(火光三昧)로 변하여 스스로 몸을 태우니, 대중이 사리를 모아 탑을 세웠다. 이는 곧 전한의 성제(成帝) 20년 무신년이었다.

 

    제19조 구마라다(鳩摩羅多, ?~ 22)

  그는 대월씨국(大月氏國)에 사는 바라문의 아들이었다. 전생에 자재천(自在天)에 태어났었다가 보살의 영락(瓔珞)을 보고 문득 사랑하는 마음을 낸 까닭에 도리천( 利天)으로 떨어졌었고, 거기서 교시가( 尸迦 제석천왕)가 반야바라밀다를 강설하는 것을 듣고는 수승한 법의힘 때문에 범천(梵天)에 태어났다. 그는 근기가 영리하여 법문을 잘하였으므로 하늘의 무리들이 스승으로 받들었고, 또 조사의 법을 계승하리라 하였는데 때가 뵈어 대월씨국에 탄생하였다.
  뒤에 중인도에 가니, 사야다라는 대사가 있다가 물었다.
  "우리 부모들은 본래 삼보를 믿고 섬기나 항상 병을 앓고, 또 하는 일이 모두 뜻대로 되지 않는데 우리 이웃집은 오랫동안 백정노릇을 하나 몸은 언제나 건강하고 하는일은 모두가 화합하니, 그는 무슨 다행이며, 우리는 무슨 죄이겠습니까?"
  존자가 대답했다.
  "그것이 어찌 의심할 바이겠는가. 선과 악의 과보는(세 때(과거, 현재, 미래)에 나타나는데, 보통 사람들은 항상 어진이가 단명하고 포악한 이가 장수하고, 거슬리는 이가 길하고 의로운 이가 흉한 것만 보고 얼른 인과가 없고 죄복도 없다 하나, 형상에 그림자가, 소리에 메아리가 따르듯 터럭 끝만치도 어김이 없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백천 만겁을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사야다가 이말을 듣고 의심이 모두 풀렸다. 존자가 다시 말했다.
  "네가 비록 삼 업(業)을 믿게 되었으나 아직도 업이 미혹으로부터 비롯된 것을 밝히지 못했다. 미혹은 식(識)으로 인하여 있고, 식은 깨닫지 못한 것에 의하며, 깨닫지 못한 것은 마음에 의하고, 마음은 본래 청정하여 생멸과 조작이 없고 보응(報應)과 승부도 없어서 고요하고 신령하다. 네가 만일 이문에 들어오면 부처님들과 같다. 온갖 선악과 유위와 무위가 모두 꿈이나 허깨비 같다."
  사야다가 이 말을 듣고, 깨달아 그 자리에서 옛 지혜를 일으켜 출가할 뜻을 간곡히 바랬다. 존자는 구족계를 준 뒤에 다시 말했다.
  "나는 이제 열반에 들 때가 왔다. 그대가 나의 뒤를 이어 교화를 퍼뜨리라."
  이렇게 법안을 전한 뒤에 게송을 말했다.

    성품에는 본래 남(生)이 없지만
    구하는 사람을 대하여 말해 준다
    법은 이미  얻을 바 없거늘
    어찌 깨치고 깨치지 못함을 걱정하랴

  존자가 다시 말했다.
  "이는 묘음여래(妙音如來)께서 견성하신 청정한 귀절이니, 그대는 후학들에게 잘 배풀어 전하라."
  말을 마치고는 앉은 자리에서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니 마치 홍련(홍련)이 피어나는 것 같이 되면서 거기에서 큰 광명이 나와 네 무리를 비친 뒤에 열반에 들었다. 사야다가 탑을 세우니, 이는 곧 신실(新室)의 14년 임오년(서기 22년)이었다.

 

    제20조 사야다(사야다, ?~ 74)

 그는 북인도국(北印度國) 사람으로, 지혜가 깊어서 교화된 이가 하량이 없었다. 뒤에 나열성(羅閱城)에 이르러 돈교(頓敎)를 드날렸는데 그곳에 있는 수행하는 무리들은 오직 사리를 밝혀주는 법문만을 숭상하였다. 거기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바수만두라 하였는데 항상 한 끼니만을 먹고 눕지도 않으며, 여섯 차례 예불하고 청정하며 욕심이 없어서 대중의 추앙을 받고 있었다.
  존자가 그를 제도 하고자 하여, 우선 그 무리들에게 물었다.
  "이 변행두타(遍行頭陀)가 범행(梵行)을 닦은들 불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 무리들이 대답했다.
  "우리 스승이 정진하거늘 어찌 옳지 못하다 하는가?"
  "그대들의 스승은 도와는 멀다. 설사 티끌 수 같은 겁을 고행하더라도 모두가 허망할 뿐이다."
  "그러면 존자께서는 어떤 덕행을 쌓았기에 우리 스승을 비웃으십니까?"
  "나는 도를 구하지는 않았으나 뒤바꾸지 않고, 부처에게 절하지는 않으나 교만하지 않고, 오래 앉았지는 않으나 게을리하지 않고, 한 끼니만 먹지는 않으나 잡되게 먹지 않고, 만족함을 알지는 못하나 탐하지 않나니, 마음에 희망하는 바가 없는 것을 도라 한다."
  이때에 변행두타가 이 말을 듣고, 무루의 지혜를 일으키어 기꺼이 찬탄하였다. 존자는 다시 그 무리들에게 말했다.
  "나의 말을 알아듣겠는가? 내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너희의 도를 구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이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므로 너희를 칭찬하지 않으니 너희들은 안락한 경지에 이르러 부처의 지혜에 들라."
  그러고는 다시 변행두타에게 말했다.
  "내가 아까 대중 앞에서 스님을 억누르는 말을 했는데 마음속에 괴로움이 없었는가?"
  변행이 대답했다.
  "내가 일곱 전생 일을 기억하는데 항상 안락국에 태어났었습니다. 그때 스님은 월정(월정)이라는 지혜로운 이로서 나에게 '오래지 않아서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증득하리라'하고 수기하셨습니다. 그 무렵에 대광명보살(大光明菩薩)이 세상에 나셨는데 내가 너무 늙어서 지팡이를 짚고 가서 예배하도 나니, 스님께서 '자식을 소중히 여기고 아비는 가벼이 여기니 어쩌면 그다지도 못났는가'하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허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스님께서 보여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스님이 '네가 대광명보살께 예배할 때에 벽에 그린 부처님의 얼굴에 지팡이를 기대었다. 이 교만으로 인하여 2과(果)를 잃었다'라고 말씀해 주시니 스스로를 경책하고 잘못을 뉘우친 그때부터 온갖 나쁜 말을 들어도 메아리 같이 여겼습니다. 하물며 이제 위 없는 감로수의 법문을 들었거늘 성을 내겠습니까. 바라오니 대자대비를 베푸시어 묘한 도를 보여 주옵소서."
  존자가 말했다.
  "그대는 오래 전부터 온갖 공덕을 심었으니, 나의 법을 계승하라. 그리고 나의 게송을 들으라."

    말이 떨어지자 무생(無生)에 합하면
    법계의 성품과 같으니
    만일 이와 같이 깨달으면
    현실과 진리를 통달해 마치리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살며시 열반에 드니, 화장하고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웠다. 이는 곧 후한의 명제(明帝) 17년 갑술년이었다.

 

    제21조 바수반두(婆修盤頭, ?~?)

  그는 나열서(羅閱城) 사람으로, 성은 비사카이며 아버지는 광개요, 어머니는 엄일이었다.
집은 부유하나 아들이 없어서 불탑에 빌어 자손을 구했는데 하루는 저녁에 그의 어머니가 꿈에 밝고 어두운 두 구슬을 삼키었다. 꿈을 깬 뒤에 태기가 있었는데 7일이 지나 현중이라는 아라한이 그 집에 왔다. 광개가 예를 드리니 현중이 절받기를 피하면서 말했다.
  "도리어 법신대사에게 예배합니다."
  광개가 그 까닭을 알 수 없어서 보배 구슬 하나를 갖다가 현중에게 바치어 그 참과 거짓을 시험하니, 현중이 얼른 받되 사양하는 빛도 없었다.
  광개가 참을 수 없어 물었다.
  "나는 남자인데 절을 하여도 돌아보지 않더니 나의 아내는 어떤 공덕이 있기에 존자께서 피허십니까?"
  현중이 말했다.
  "내가 절을 받고 구슬을 받은 것은 그대를 복되게 하기 위함이다. 그대의 아내는 반드시 세상에 지혜의 등불이 될 거룩한 이를 잉태하였기에 내가 피한 것이지 내가 여자를 중히 여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대의 아내가 두 아들을 낳을 터인데 첫째는 바수반두로 지금 내가 존경하는 자이고, 둘째는 추나(芻尼)라 하리라. 옛날에 여래께서 설산에서 도를 닦으실 때에 까치가 정수리 위에다 둥지를 지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신 뒤에 까치는 그 인연으로 나제국(那提國)의 왕이 되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네가 둘째 500년에 나열지성의 비사카 가문에 태어나되 성인과 같은 태에 들리라'라고 수기하셨는데 지금 어김이 없다."
  그 뒤, 한 달만에 과연 아들을 낳았다. 바수바두 존자는 나이 열 다섯이 되어 광도나한(光度羅漢)에 의하여 출가하고, 비바하 보살이 계를 주는 상서를 받았다.  교화에 나서 나제국에 이르니 그 나라의 왕, 상자재에게는 마하리와 마나라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그 왕이 존자에게 물었다.
  "나열지성의 풍토가 여기와 다른가?"
  존자가 대답했다.
  "그 국토에는 일찍이 세 부처님이 세상에 나셨었고, 지금 대왕의 국토에는 두 스승이 교화를 하십니다."
  "두 스승이란 누구인가?"
  "부처님께서 '둘째 500년에 하나의 신통력 있는 대사가 출가하여 성인의 법을 이으리라'하고 예언하셨으니, 왕의 둘째 아들인 마나라가 그 하나요, 제가 비록 덕은 없으나 그 다른 하나에 해당합니다."
  "존자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이 아들을 놓아서 출가케 하겠소."
  "장하십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의 유훈을 따르셨습니다."
  곧 구족계를 주고, 이어 법을 전하는 게송을 말했다.

    거품과 요술 같아서 걸림없거늘
    어째서 깨닫지 못하는고?
    법이 그 중에 있음을 깨달으면
    지금도 옛도 아니다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반 유순(由旬)높이에 몸을 솟구쳐서 우뚝 머물렀다. 네 무리가 우러러 보면서 간곡히 청하니, 자리로 다시 돌아와서 열반에 들었다. 화장을 하고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우니, 후한의 상제( 帝) 12년 정사년이었다.

 

    제22조 마나라(摩拏羅, ?~ 163)

  그는 나제국의 상자재왕의 아들이었다. 나이 30세가 되었을 때에 바수만두를 만나 출가하여 법을 전해 받고, 서인도로 갔다. 그 나라의 왕은 득도(得度)라 하는 이로, 구담(懼曇) 종족으로서 불법에 귀의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였다. 하루는 길을 가는데 하나의 조그마한 탑이 나타나니, 가지고 가서 탑을 공양하려 하였으나 대중 가운데에 아무도 드는 이가 없었다. 왕은 곧 범행(梵行)하는 이, 선관(禪觀)하는 이, 주술(呪術)하는 이 등의 세 무리를 모아 놓고 의심나는 바를 물으려 하였다.
  그때에 존자도 이 모임에 갔었는데 이 세 무리가 아무도 변론치 못하자 존자가 탑의 원인을 자세히 말하고 지금 나타난 것은 왕의 복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지극한 성인은 만나기 어렵고, 세상의 쾌락은 오래지 않다."
  곧 태자에게 왕위를 전하고, 조사께 귀의하여 출가해서 7일만에 과위를 증득했다. 존자가 신중히 위로하면서 말했다.
  "그대는 이 나라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잘 제도하라. 지금 다른 지역에 큰 법기(法器)가 있으니, 내가 가서 제도하리라."
  득도가 말했다.
  "스승께서는 마음대로 시방에 자취를 나타내셔서 생각하는 대로 이르시거늘 어찌 수고로이 가시려 합니까?"
  "그렇다."
  그리고는 향을 피워놓고, 멀리 월씨국에 있는 학륵나 비구에게 말했다.
  "그대는 그 나라에서 학의 무리를 교화하여 제도하였으므로 도과를 곧 증득하게 된 것을 알라."
  그때에 학륵나가 그 나라 국왕인 보인에게 설법을 해주다가 홀연히 기이한 향이 이삭을 이루는 것을 보았다. 왕이 물었다.
  "이게 무슨 상서인가."
  학륵나가 대답했다.
  "이는 서인도에서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해받은 마나라 존자가 오시려는데 먼저 강림하는 믿음의 향입니다."
  "그 스승의 신통력은 어떠하오?"
  "그 스승은 벌써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이 땅에서 신비한 교화를 선전하십니다."
  이때에 왕과 학륵나가 함께 멀리서 절을 하니, 존자가 이를 알고, 득도비구의 곁을 떠나 월씨국에 가서 왕과 학륵나의 공양을 받았다.
  그 뒤에 학륵나가 존자에게 물었다.
  "제가 숲에 의지한 지 어언 아홉 해가 되었습니다. 용자라는 제자 하나가 비록 어리지만 몹시 총명합니다. 제가 세 세상을 통해 알아보아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존자가 대답했다.
  "이 아이가 다섯째 겁에 묘희국(妙喜國) 바라문의 집에 태어났었는데 일찍이 전단향( 檀香)을 절에 보시하여 망치를 만들어 종을 쳤었다. 그 과보로  총명해서 대중의 흠모와 추앙을 받는다."
  "저는 무슨 인연이 있어서 학의 무리를 만났습니까?"
  "그대는 넷째 겁에 비구가 되어서 용궁에 공양을 받으러 가려고 하는데 그대의 제자들이 모두 따라가고자 하였다. 그때에 그대가 관찰하니 500명 제자 중에는 한 사람도 묘한 공양을 받을 만한 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대의 제자들이 '스님께서 항상 설법하시기를 음식에 동등하면 법에도 동등하다고 하셨는데, 이제 그렇지 않으니 무슨 성인이라 하겠습니까?' 라고 항의하였다. 그래서 그대는 그들을 데리고 갔었다. 이 까닭에 죽고 태어나는 동안 여러 나라 로 다니면서 교화할 때에 그 500제자들은 복덕이 얇아서 새의 종류가 되었고, 그대의 은혜에 감동되어 지금도 학의 무리가 되어서 따른다."
  "어떤 방편을 써야 저들을 해탈케 하겠습니까?"
  "나에게 위 없는 법보가 있으니, 그대는 잘 들었다가 미래의 중생을 교화하라. 나의 게송을 들으라."

    마음이 만 경계를 따라 구르나
    구르는 곳마다 진실로 그윽함으로
    흐름을 따라 성품을 깨달으면
    기쁨도 근심도 모두 없으리

  그때에 학들이 이 게송을 듣고 울면서 떠나갔다. 존자가 가부좌를 맺고 조용히 열반에 드시니, 학륵나와 보인 왕이 탑을 세웠다. 이때는 후한의 환제(桓帝) 17년 을사년이었다.

 

   제23조 학륵나(鶴勒那, ?~ 209)

  그는 월씨국(月氏國) 사람으로, 성은 바라문이며 아버지는 천승이고 어머니는 금광이었다. 그들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7불에게 빌었는데, 어머니의 꿈에 수미산(須彌山) 정수리에서 한 신동이 금고리를 들고 와서 '내가 왔소"하고 외치는 것을 보고 깬 후 태기가 있었다. 나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마을 사이로 놀러 나갔다가 동네사람들이 굿하는 것을 보고 곧 당집으로 들어가 꾸짖었다.
  "너는 허망하게 복과 재앙을 일으키어 세상 사람을 환(幻)으로 현혹시키고 해마다 산 짐승을 바치게 하니 이렇게 심한 살생이 어디 있느냐?"
  말을 마치자 당집의 화상(화상)이 저절로 무너지니 이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거룩한 아기라고 불렀다. 나이 22세에 출가하여 30세에 마나라 존자를 만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해 받았다.
  교화를 다니다가 중인도에 이르니, 그 나라의 왕을 무외해(無畏海)라 하였다. 그는 불법을 착실히 믿었으므로 존자가 그에게 설법을 해 주는데 왕의 눈결에 홀연히 두 사람이 소복을 입고 존자에게 예배하는 것이 보였다. 왕이 불었다.
  "이는 누구인가요?"
  존자가 대답했다.
  "이는 일월천자(日月天子)인데 내가 옛적에 설법하여 주었더니 사례하러 왔습니다."
  잠시 후에 보이지 않게 되고, 이상한 향 냄새만이 남았다. 왕이 물었다.
  "일월의 국토는 얼마나 되는가요?"
  "천 부처님이 교화하시는 세계에 각기 백 억의 수미산과 일월이 있으니, 내가 말하려 해도 다할 수 없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였다.
  이때에 존자가 위 없는 도를 설해서 인연 있는 무리를 제도하셨는데 맏제자인 용자가 요절(天折)하였다. 그에게는 사자라는 형이 있는데 널리 통하고 많이 알았으나 그가 섬기던 바라문 스승이 죽었던 차에 동생마저 죽으니, 존자에게 돌아와서 물었다.
  "제가 도를 구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마음을 쓰리까?"
  존자가 대답했다.
  "네가 도를 구하고자 하면 마음 쓸 바가 없느리라."
  "마음 쓸 바가 없다면 누가 불사(佛事)를 합니까?"
  "네가 만일 작용함이 있다면 공덕이 아니요, 네가 만일 작용함이 없다면 그것이 불사이니라. 경에 '내가 지은 공덕은 내것이랄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느니라."
  사자가 이말을 듣고 부처지혜를 깨달았다.이때에 존자가 홀연히 동북쪽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 기상이 보이는가?"
  사자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흰 무지개가 천지를 관통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검은 기운이 다섯 갈래로 뻗쳐 그 가운데를 흐르니, 존자가 물었다.
  "저 징조는 무엇이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내가 입멸한 뒤 50년에 북인도에서 환란이 일어날 것이므로 이제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전하노니, 잘 지키라. 그리고 게송을 말해 주리라."

    마음의 성품을 바로 알 때에
    부사의(不思議)라 말하니
    분명하게 깨달으면 얻음이 없어
    얻을 때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사자 비구가 게송을 듣고 기뻐했다. 그러나 어떤 환란이 걸릴까는 알지 못했다. 존자가 비밀히 보여주고, 말을 마친 후 18가지 변화를 나타낸 뒤에 열반에 들었다. 화장을 마치고 사리를 나누어서 제각기 탑을 세우려 하니, 존자가 다시 공중에 나타나서 게송을 말했다.

    한 법이 온갖 법이요
    온갖 법이 한 법이니라
    네 몸은 있지도 없지도 않거늘
    어찌 여러 탑을 나누려 하느냐

  대중이 게송을 듣고는 탑을 나누지 않고, 사리가 나온 자리에다 탑을 세우니, 후한의 헌제(獻帝) 20년 기축년이었다.

 

    제24조 사자비구(師子比丘, ?~ 259)

  그는 중인도 사람으로, 바라문 종족이었다. 법을 전해 받은 뒤 사방으로 다니다가 계빈국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파리가라는 이가 있었는데 본래 선관(禪觀)을 닦아 선정의 지견이 생겼으나 형상에 집착되기도 하고 형상을 버리기도 하면서 다섯 무리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었다. 존자가 꾸짖어 교화하니 네 무리가 모두 잠자코 마음 깊이 복종하였다. 그러나 선정을 닦는 달마달이라는 사람만이 네 무리가 질책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분개하며 달려왔다.
  존자가 물었다.
  "그대는 선정을 닦는다면서 어떻게 여기에 왔는가? 이미 여기까지 왔다면 어찌 선정을 닦는다 하겠는가?"
  달마달이 대답했다.
  "제가 비록 여기까지 왔으나 마음은 어지럽지 않습니다. 선정은 사람이 익히는 데 있거늘 어찌 장소에 있겠습니까?" 
  "그대가 이미 왔으니 익히는 것 또한 왔겠구나. 일정한 장소가 없다면 어찌 사람이 익히는데 있다고 하는가?"
  "선정이 사람을 길들이는 것이요, 사람이 선정을 익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비록 여기에 왔으나 선정은 항상 익히고 있습니다."
  "사람이 선정을 익히는 것이 아니요, 선정이 사람을 길들이는 것이라 하니 그대가 여기에 왔다면 선정은 누구를 길들이는가?"
  "마치 맑은 구슬은 안팎에 티없는 것 같이, 선정을 통달하면 반듯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선정에 통달하면 마치 밝은 구슬과 같으리라, 하지만 지금 그대를 보건대 구슬의 무리가 아니다."


  "그 구슬이 안팎이 환히 밝아서 모두가 안정된 것 같이, 제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것도 이 맑음과 같습니다."
  "이 구슬은 안팎이 없지만 그대를 어찌 선정에 들었다 하랴, 더러운 물건(몸)이 요동치 않을 뿐이니, 이 선정을 조촐하다고 할 수 없다."
  달마달이 존자가 깨우쳐 주자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다. 존자가 다섯 무리를 거느리고 명성이 널리 떨칠 때에 제자를 구하는데, 어느 장자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물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사다인데 날 적부터 왼손을 쥐고 있었습니다. 이제 장성했건만 끝내 펴지 못하니 존자께서 전생 인연을 보여 주십시오."
  존자가 그를 보자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내 구슬을 돌려 다오."
  동자가 갑자기 손을 펴고 구슬을 받들어 올리니, 대중이 깜짝 놀랐다. 존자가 말했다.
  "내가 전생에 중이었는데 바사라는 동자를 데리고 있었다. 그때 내가 서해용왕의 공양청을 받고 갔다가 구슬 보시를 받아서 맡겼었는데 이제 도로 돌려 주는 것이 옳지 않은가?"
  장자가 드디어 그 아들을 놓아주어 출가케 하니, 존자가 곧 구족계를 주고 전생의 인연을 따라 바사사다라 하였다. 존자는 이어서 분부하렸다.
  "나의 스승이 비밀히 예언하신 바가 있으니 네가 오래지 않아서 재난에 걸리리라. 여래의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전하니, 잘 보호하여 미래의 유정들을 두루 구제하라."
  이어서 게송을 말했다.

    올바른 지견(知見)을 말할 때에
    지견이라는 것은 모두가 마음에 갖춘 것이다
    올바른 마음이 곧 지견이요
    지견이란 곧 지금의 행(行)이니라

  존자가 게송을 말한 뒤에 승가리(僧伽梨)를 사다에게 비밀히 전해 주고, 다른 나라에 가서 인연 따라 교화를 하라 라였다. 사다는 분부를 받고 바로 남인도로 갔다.
  존자는 환란을 구차하게 면하려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홀로 계빈국에 머물렀다.
이때 그 나라에 두 외도가 있었다. 하나는 마목다이고, 또 하나는 도락차로서 온갖 요술을 배워 가지고 함께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리하여 거짓으로 중의 형상을 꾸미고 왕궁으로 숨어들면서 말했다.
  "성공치 못하면 죄를 중에게 돌리자."
  그들 스스로가 요망한 짓을 하였기에 재앙도 잇달아 일어났다. 일이 이미 완전히 실패되었을 때, 왕은 과연 중에 대하여 성을 내었다.
  "내가 본래 삼보를 독실히 믿었는데 어쩌면 이다지도 야속하게 나를 해치려 하느냐?"
  그리고는 곧 절을 파괴하고 중들을 모두 죽이라 하고 자기는 손수 칼을 들고 존자에게 가서 따졌다.
  "존자는 오온(五蘊)이 모두 비어있음을 깨달았는가요?"
  존자가 대답했다.
  "예, 깨달았습니다."
  "생사를 여의었는가요?"
  "예, 이미 여의였습니다."
  "이미 생사를 여의였다면 나에게 머리를 줄 수 있는가요?"
  "몸도 내 것이 아니거늘 어찌 머리를 아끼겠습니까?"
  왕이 즉석에서 칼을 휘둘러 존자의 머리를 치니, 흰 젖이 몇 자를 솟았고, 왕의 오른 팔도 땅에 떨어졌다가 7일만에 죽었다.
  태자 광수가 '우리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재앙을 불렀을까'하고 탄식하니, 이때 상백산(象白山) 선인이 인과의 법칙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광수에게 전생 인연을 두루 설명해 주어서 그의 의심을 풀게 하였다.
  그리하여 사자존자의 시체를 거두어 탑을 세우게 하였다. 이는 곧 위(魏)의 제왕(齊王) 20년 기묘년이었다.
  사자존자가 바사사다에게 법과 옷을 전하여 정통으로 삼는 이외에, 곁가지로 달마달 이하 4세에 이르는 22인이 방출되었다.

 

    제25조 바사사다(婆舍斯多, ?~ 325)

  그는 계빈국 사람으로, 성은 바라문이며 아버지는 적행이고 어머니는 상안락이었다. 처음에 어머니가 신기한 칼을 얻는 꿈을 꾸고 태기가 있었다.
  탄생한 뒤엔 왼손을 쥐고 있었는데, 사자존자를 만나 옛 인연을 깨닫고 심인(心印)을 비밀히 전해 받았다.
  뒤에 남인도로 가는 도중 중인도에 이르니, 가승이라는 그 나라의 왕이 예를 갖추어 공양하였다.
  그때 무아존이라는 외도가 먼저부터 왕의 존중을 받았는데 조사(祖師) 바사사다가 오는 것을 질투하였다. 그래서 그는 논쟁을 일으켜 다행이 이기면 일을 확고히 굳히리라 하고 왕의 앞에서 조사에게 말했다.
  "나는 잠자코 하는 토론을 압니다. 말을 빌리지 않습니다."
  조사가 대답했다.
  "누가 승부를 아는가?"
  "승부를 다투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 뜻만을 취합니다."
  "그대는 무엇을 뜻이라 하는가?"
  "무심(無心)을 뜻이라 합니다."
  "그대가 이미 무심이라는 뜻에 안정했는가?"
  "제가 무심이라 한 것은 이름이요, 뜻이 아닙니다."
  "그대가 무심은 이름이요, 뜻이 아니라 하지만 나는 마음 아님은 뜻이지 이름이 아니라 하노라."
  "뜻이지 이름이 아니라 하지만 누가 뜻임을 분별합니까?"
  "네가 이름이요, 뜻이 아니라 했으니 그 이름은 어떻게 이름하는가?"
  "판단한다 하지만 뜻이 없습니다. 이름이라 하지만 이름도 없습니다."
  "이름이 이미 이름이 아니라면 뜻도 뜻이 아닌데, 분별하는 이는 누구이며, 어떤 물건을 분별하는가?"
  이와 같이 59회를 반복하여 따지니, 외도가 말이 막히어 항복하였다. 이때에 조사가 홀연히 북쪽을 향해 합장하고 탄식하였다.
  "나의 스승, 사자존자께서 오늘 화를 당하시는데 참으로 슬픈 일이구나."
  그리고는 곧 왕을 하직하고 떠나 남인도에 이르러서 산골짜기에 숨었다.
  그때 그 나라의 왕은 천덕(天德)이라 하였는데 조사를 맞아 공양을 올렸다. 왕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포악하고 힘도 세었으나 또 하나는 부드럽고 항상 병에 시달렸다. 조사가 그 일에 대하여 인과를 설명해주니 왕이 의심하던 바가 모두 풀렸다.
  또 주술하는 이가 조사의 도를 시기하여 남몰래 독약을 음식에 넣었다. 조사가 그것을 알면서도 그 음식을 먹었으나 도리어 그가 화를 당했다.
  그로부터 60년 뒤에 태자 득승이 왕위에 올라 다시 외도를 믿으면서 조사에게 환란을 끼치니, 득승의 태자인 불여밀다가 왕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갇히었다. 왕이 갑자기 조사에게 물었다.
  "내 나라에는 본래 요망함이 없었는데 대사께서 전하는 것은 어떤 종파인가요?"
  조사가 대답했다.
  "대왕의 나라에는 옛부터 진실로 요망한 법이 없습니다. 내가 얻은 불법은 부처님의 종파입니다."
  왕이 말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이미 1200년이 넘었는데 대사는 누구에게 받았는가요?"
  "가섭대사가 직접 부처님의 심인을 전해 받은신 뒤에 차차 전하여 24세인 사자존자에 이르렀는데 나는 그에게 받았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사자 비구는 형육을 면치 못했다 하는데 어찌 뒷 사람에게 법을 전했으리요."
  "나의 스승은 환란이 일어나기 전에 나에게 계승의 표시로 믿음의 옷과 법, 게송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 옷은 어디에 있는가?"
  조사가 곧 주머니 속에서 꺼내어 보이니, 왕이 태워버리라 명령하였다. 그러나 가사는 오색이 더욱 선명해지고, 나무가 다 탄 뒤에도 여전하였다. 왕은 후회하며 제자의 예로 섬기었고, 존자가 참으로 법을 받은 것이 판명되자 존자를 놓아주었다.
  불여밀다 태자가 곧 출가하기를 원하자 조사가 그에게 물었다.
  "그대가 출가하려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함인가?"
  불여밀다가 대답했다.
  "제가 출가한다면 그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일을 하지 않으려는가?"
  "세속의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을 하려는가?"
  "부처의 일을 하겠습니다."
  "태자는 지혜가 하늘에까지 미칠 듯하니, 반듯이 여러 성인들이 다시 강림하신 몸이 틀림없다."
  곧 출가를 허락하니, 6년을 시봉하였다. 그 뒤에 왕궁에서 구족계를 받고 갈마를 진행할 때 땅이 진동하는 등, 여러 가지 영험하고 이상한 일이 있었다.
  그 끝에 조사가 분부를 내렸다.
  "나는 이미 늙었다. 어찌 오래 있을 수 있으랴. 그대가 정법안장을 잘 지켜서 유정들을 널리 제도하라. 나의 게송을 들으라."

    성인이 지견(지견)을 말하나
    그 경계에는 시비가 없다
    내 이제 참 성품을 깨달으니
    도도 없고 이치도 없다

  불여밀다가 게송을 듣고 다시 조사에게 물었다.
  "법의를 계속해서 전하오리까?"
  조사가 대답했다.
  "이 법의는 환란 때문에 임시 증표로 삼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대의 몸에 환란이 없을 것이니 무엇하러 법의를 전하리요. 덕화가 사방에 퍼지면 사람들이 자연히 믿고 향해 오리라."
  불여밀다가 이 말씀을 듣고 절하고 물러갔다. 조사가 삼매의 불을 나타내어 스스로의 몸을 태우니, 평지에 샇인 사리가 한 자나 되었다. 득승왕이 부도(浮圖)를 세워 봉안하니, 이는 동진(東晋)의 명제(明帝) 태령(太寧) 3년 을유년이었다.

 

    제26조 불여밀다(不如密多, ?~ 388)

  그는 남인도 득승왕의 태자였다. 중이 되어 법을 전해 받은 뒤에 동인도에 이르니, 그 나라의 왕인 견고는 외도의 스승인 장조범지를 받들고 있었다.
  존자가 그 나라에 이르려 할 때에 왕과 범지는 모두 흰 상서로운 기운이 위아래로 뻗는 것을 보았다. 왕은 그것이 무슨 상서냐고 물었다. 범지는 존자가 들어올 징조라는 것을 미리 알았으나 왕의 마음이 불법으로 향할 것이 걱정되어 거짓으로 대답했다.
  "악마가 나타날 징조입니다. 무슨 상서가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곧 자기의 무리를 모아 놓고 의논하였다.
  "불여밀다가 여기에 온다면 누가 그를 꺾겠는가?"
  제자들이 모두 말했다.
  "저희들에겐 제각기 주술이 있어 천지를 움직이고 물과 불에 들어가는데 무엇이 근심이 되겠습니까."
  전자가 이르러 먼저 황성의 담 위에 검은 기운이 서린 것을 보고 조그만 환란이 있을 것을 알고 바로 왕에게로 가니, 왕이 말했다.
  "대사는 무엇하러 왔는가요?"
  존자가 대답했다.
  "중생을 제도하려 합니다."
  "어떤 법으로 제도하시겠소?"
  "제각기의 부류에 맞는 법으로 제도합니다."
  이때에 범지가 이 말을 듣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요술로써 큰 산을 변화해 존자의정수리 위에 얹어 두었다. 그러나 존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홀연히 그의 머리 위로 옮아갔다. 범지들은 겁이 나서 모두가 존자에게 귀의했다. 존자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가엽게 여기어 다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허깨비 산이 즉시 사라졌다. 그리고는 왕에게 바른 법을 말해주어 그로 하여금 참법에 나아가게 하였다. 이어 왕에게 알렸다.
  "이 나라에서 성인이 나와 나의 법을 이을 것입니다."
  그때에 바라문의 아들로서 20세쯤 된 도자가 있었는데 어려서 부모를 잃었으므로 이름도 성도 멀랐다. 혹 스스로 영락(瓔珞)이라 하였으므로 영락 동자라 불렀다. 그는 마을로 다니면서 상불경(常不經)과 같이 누가 '너는 어찌 걸음이 급한가?'하고 물으면 '그대는 어찌 걸음이 느린가?'하고 대답하니 아무도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뒤에 왕과 존자가 같은 수레를 타고 나오는데 영락 동자가 그 앞에 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존자가 물었다.
  "너는 지난 일을 기억하겠느냐?"
  동자가 대답했다.
  "제가 생각해보니 지난 겁에 스님과 같이 살았는데 스님은 마하반야를 설하셨고, 나는 심히 깊은 수다라(修多羅)를 읽었습니다. 오늘의 일이 옛일에 계합되는가 합니다."
  존자는 다시 왕에게 말했다.
  "이 동자는 다른 이가 아니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입니다. 이 성엔 뒤에 다시 두 사람이 나올 터인데 하나는 남인도를 교화하고 하나는 진단(震旦, 支那)에 인연이 있으나 4,5년 안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하여 옛 인연에 따라 반야다라(반야다라)라 하고, 정법안장을 전해 주었으며, 아울러 게송을 말해 주었다.

    참 성품을 마음 바탕에 품었으나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다
    인연에 따라 유정을 교화하니
    방편으로 지혜라 부른다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왕에게 하직을 알렸다.
  "나는 교화할 인연이 다하여서 열반에 들어야 합니다. 바라오니 대왕은 최상승(最上乘, 佛法)을 잘 보호하시기를 잊지 마옵소서."
  곧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가부좌를 맺고 앉아 열반에 드시니, 삼매의 불이 일어나서 스스로 태웠다. 왕이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우고 모셨다. 이는 동진(東晋)의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13년 무자년이었다.

 

    제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 ?~ 457)

  그는 동인도 사람이었다. 법을 받은 뒤에 교화를 떠나서 남인도에 이르니, 나라의 향지(香至)라는 왕이 불법 몹시 숭상하여 존중하고 공양할 뿐 아니라 헤메는 무리들을 건져주고, 값진 보배 구슬을 보시하였다.
  이때에 왕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막내가 총명하였다. 존자가 그들의 지혜를 시험하고자 보배 구슬로써 세 왕자에게 물었다.
  "이 구슬이 둥글고 밝은데 이에 미칠 것이 있을까?"
  첫째 왕자 목정다라와 둘째 왕자 공덕다라는 모두가 똑같이 대답했다.
  "이 구슬이 7보에서도 가장 존귀하여 이를 지닐 이가 없습니다. 존자의 도력이 아니면 어떻게 이를 얻겠습니까?"
  그러나 셋째 왕자 보리다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는 세상의 보배이니, 귀히 여길 것은 못됩니다. 모든 보배 중에 법의 보배가 으뜸입니다. 또 이 광채는 세간의 광채이니, 귀할 것이 못됩니다. 모든 광명 중에는 법보 광명이 으뜸입니다. 이 구슬 광채는 스스로 비치지 못하고, 반듯이 지혜의 광명을 빌려야 이 광명을 분별합니다. 이를 분별한 뒤에야 구슬인 줄을 알게 되고, 구슬임을 안 뒤에야 보배임을 압니다. 그것이 보배임을 밝히었으나 보배는 스스로가 보배가 되지 못하고, 그것이 구슬임을 분별하나 구슬은 스스로가 구슬이 되지 못합니다. 구슬이 스스로 구슬이 되지 못하므로 반듯이 지혜의 구슬에 의하여 세간의 구슬을 분별하고, 보배가 스스로 보배가 되지 못하므로 반듯이 지혜의 보배에 의하여 법의 보배를 밝힙니다. 대사께서 그런 도가 있으므로 그런 보배가 나타난 것과 같이, 중생들이 도가 있으면 마음의 보배가 나타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존자가 그의 변재를 탄복하고, 다시 물었다.
  "모든 물건 가운데 어떤 물건이 형상이 없는가?"
  "모든 물건 가운데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형상이 없습니다."
  "모든 물건 가운데서 어떤 물건이 가장 높은가?"
  "모든 물건 가운데서 '나'와 '남'의 집착이 가장 높습니다."
  "모든 물건 가운데서 어떤 물건이 가장 큰가?"
  "모든 물건 가운데서 법성이 가장 큽니다."
  존자는 속으로 그가 법기임을 알았으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으므로 우선 잠잠히 해두었다. 뒤에 향지 왕이 세상을 떠날 때에 다른이들은 모두가 통곡을 하나 셋째 왕자인 보리다라만이 영구 앞에서 선정에 들어 7일만에 깨어나서 출가하겠다고 하였다. 구족계를 준 뒤에 존자가 분부했다.
 "여래께서 정법안장을 가섭에게 전했고, 차츰차츰 전하여 나에게 이르렀는데, 나는 이제 그대에게 전하니, 나의 게송을 들으라."

    마음에서 모든 종자가 생기고
    인연의 일(事)로 다시 이치가 난다
    과만하여 보리가 원만해지니
    세계를 일으킴이여, 꽃핌이로다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좌우의 손을 펴서 각각 광명을 놓으니, 27줄기에 오색이 찬란하였다. 또 몸을 허공에 7다라수(樹) 높이로 솟구쳐, 삼매의 불을 내어 스스로를 태우니, 허공에서 사리가 비오듯 하였다. 그를 거두어서 탑을 세우니, 이는 곧 송(宋) 효무제(孝武帝) 대명 원년 정유년이었다.

 

 

                          경덕전등록 제3권
        (3권에서는 제28조 보리 달마에 대해서만 다루었습니다.)

 법계보

 중국(中國)의 5조와 그 법을 이은 25인

 제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

 보리달마의 곁 가지로 나온 3인
 도육선사(道育禪師)
 도부선사(道副禪師)
 이총지(尼總持)
   (이상 3인은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원주)

 제29조 혜가대사(慧可大師)
 혜가대사의 곁가지로 나온 6세 17인
 승나선사(僧那禪師)
 향거사(向居士)
 상주(相州) 혜만선사(慧滿禪師)
   (이상 3인은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원주)
 현산(峴山) 신정선사(神定禪師)
 보월선사(寶月禪師)
 화한거사(華閑居士)
 대사화공(大士化公)
 화공(和公)
 요거사(廖居士)
 앞의 화한거사에게서 나온 1인.
   담수(曇邃)
 앞의 담수에게서 나온 3인.
   연릉(延陵) 혜간(慧簡)
   팽성(彭城) 혜차(慧 )
   정림사(定林寺) 혜강(慧綱)
 앞의 혜강에게서 나온 1인.
   육합(六合) 대각(大覺)
 앞의 대각에게서 나온 1인.
   고우(高郵) 담영(曇影)
 앞의 담영에게서 나온 1인.
   태산(泰山) 명련(明練)
 앞의 명련에게서 나온 1인.
   양주(揚州) 정태(靜泰)
   (이상 14인은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원주)

 제30조 승찬대사(僧璨大師)
 제31조 도신대사(道信大師)
   (곁가지로 나온 76인은 제4권 참조)
 제32조 홍인대사(弘忍大師)
   (곁가지로 나온 107인은 제4권 참조)

 

 법계보

 중국(中國)의 5조와 그 법을 이은 25인

제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 - 제29조 혜가대사(慧可大師) - 제30조 승찬대사(僧璨大師) - 제31조 도신대사(道信大師) - 제32조 홍인대사(弘忍大師)

 

              중국(中國)의 5조와 그들에게서 나온 법손

 

    제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 약 470 ~ 543)

  그는 남인도국(南印度國) 향지왕(香至王)의 셋째 아들이니, 성은 찰제리요, 본
래의 이름은 보리다라였다.
  뒤에 제27조 반야다라가 본국에 돌아와서 왕의 공양을 받는 자리에서 보리다라의 비밀한 자취를 알고 보리다라의 두형과 보리다라, 이 삼형제에게 보시받은 구슬에 대해 한마디씩 이르게 했다. 이때 보리다라가 마음 자리를 깨달았다. 조금 있다가 존자가 말했다.
  "그대는 모든 법을 다 깨달았다. 달마라 함은 통달하고 크다는 뜻이니, 달마라 하라."
  그리하여 보리달마라 이름을 고쳤다. 대사는 이어 존자에게 여쭈었다.
  "제가 이미 법을 얻었으나 어디로 가서 불사를 하오리까? 일러주십시오."
  존자가 대답했다.
  "그대가 비록 법을 깨달았으나 멀리 떠나지는 말라. 우선 남인도에 머물렀다가 내가 열반에 든지 67년 뒤에 진단(震旦)으로 가서 큰 법약(法藥)을 마련해 놓고 상근기(上根機)들을 직접 대하라. 행여 너무 빨리 떠나서 햇볕에 시드는 일이 없도록 하라."
  대사가 다시 여쭈었다.
  "그 국토에 법기가 될 만한 대사들이 있겠습니까?"
  "그대가 교화할 지방에서 보리를 얻는 이가 셀수 없을 것이다. 내가 열반에 든지 60년 뒤 그 나라에 재난이 있으리니, 수중문포(水中文布)를 잘 항복시켜라. 그대가 간 뒤에는 남쪽에는 머물지 말라. 거기에는 유위(有爲)의 공덕만을 좋아하는 이가 있어서 부처님의 이치를 보지 못하리라. 또 그대가 거기에 갔더라도 오래 머물지는 말라. 나의 게송을 들으라."

    가다가 물을 건너서 다시 양을 만나네
    혼자서 쓸쓸히 강을 건넌다
    두 마리의 상마(象馬)는 한낯에 애처로운데
    두 그루의 계수나무 오랜만에 무성하리

  다시 여덟 게송르 읊으니, 모두가 불교의 앞날을 에언한 것이다.
  대사가 공손히 분부를 받고 곁에서 모시기 40년,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다가 존자가 세상을 떠난 뒤 본국에서 교화를 폈다.
  이때에 두 법사가 있었으니 하나는 불대선(佛大先)이요, 또 하나는 불대승다(佛大勝多)라 하여, 본래 대사와 함께 불타발타라의 소응선(小乘禪)을 배웠었다. 불태선이 반야다라 존자를 만나 소승을 버리고 대승을 배워 대사와 함께 교화를 펴니, 그때에 사람들이 두 감로문(甘露門)이라 하였다. 그러나 불대승다는 다시 교화문을 나누어 여섯 종을 만드니, 첫째는 유상종(有相宗), 둘째는 무상종(無相宗), 셋째는 정혜종(定慧宗), 넷째는 계행종(戒行宗), 다섯째는 무득종(無得宗), 여섯째는 적정종(寂靜宗)이었다. 이들은 제각기 자기의 견해를 고집하여 따로따로 교화를 펴니, 각각 그 무리가 매우 번성하였다.

  대사가 한숨을 쉬며 서글프게 탄식하면서 말했다.
  "불대승다는 자신도 소의 발자국에 빠졌거늘 하물며 어지럽게 번성하여 여섯 종파를 나누니, 내가 제도해주지 않으면 영원히 삿된 소견에 빠지리라."
  이렇게 말하고는 곧 약간의 신통을 나타내어 첫째 유상종에게 가서 물었다.
  "온갖 법에서 어떤 것을 실상이라 하는가?"
  그 무리 가운데 존장인 살바라라는 이가 대답했다.
  "모든 형상 가운데 어떤 형상도 끼어듬 없는 것을 실상이라 합니다."
  대사가 말했다.
  "모든 상이 끼어듬 없는 것이 실상이라고 밝힌 그것은 어떻게 알았는가?"
  "모든 형상 가운데는 진실로 결정할 것이 없소. 만일 모든 형상이 결정되었다면 어찌 진실이라 하겠소."
  "모든 형상을 결정할 수 없음이 실상이라면 그대가 지금 결정되지 않았다 함은 어떻게 얻었는가?"
  "내가 결정되지 않았다 함은 어떤 형상을 말한 것이 아니니 모든 형상을 말할 때에도 그 이치가 같습니다."
  "그대가 말하기를 결정치 않음이 실상이라 하지만, 그렇다면 그 결정마저 결정할 수 없으므로 실상은 아니다."
  "그 결정마저 결정할 수 없으므로 실상이 아니라 하나, 나의 잘못을 아는 까닭에 결정한 것도 없고 변한 것도 없습니다."
  "그대가 지금 변한 것이 없다고 이미 말했거늘 어찌 실상이라 하겠는가? 이미 변한 것이 분명하다."
  "변치 않는 것은 마땅히 있고, 있는 것은 있지 않음(不在)입니다. 바로 이러한 실상이 변해서 그 이치를 결정합니다."
  "실상은 변치 않고, 변하면 실상이 아니니, 있음과 없음 가운데서 어느 것을 실상이라 하겠는가?"
  시바라가 마음속으로 거룩한 대사임을 알고 깊이 사무쳐서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는 세간의 유위(有爲)한 형상이지만 또한 공합니다. 나의 이 몸도 그와 같을 수 있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만일 실상을 알면 형상 아님을 보게 되고 형상 아님을 깨달으면 물질(色)도 그러하리니, 물질 가운데서 물질의 본체를 잃지 않으며 형상 아님 가운데 있음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이와 같이 이해하면 이것이 실상이다."
  그 무리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열리어 가벼운 마음으로 믿고 예배하였다.
  대사는 다시 눈깜짝하는 사이에 몸을 숨기었다가 둘째 무상종에게 가서 물었다.
  "그대가 무상(無相)이라 하는 것은 어떻게 증득하는가?"
  그 무리 가운데 바라제라는 지혜있는 이가 대답했다.
  "제가 무상이라 밝히는 것은 마음은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사가 물었다.
  "그대의 마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밝히는가?"
  "제가 무상을 밝힐 때 마음에 취하거나 버림이 없으며, 또한 밝힐 때를 당하여도 상대가 없습니다."
  "온갖 있고 없음에 대하여 마음으로 취하거나 버림이 없으며, 또 상대도 없다고 하는 것은 모든 밝힘마저도 없는 까닭이리라."
 

부처님의 삼매에 들면 얻을 바가 없거늘 어찌 무상인들 알고자 하겠습니까/"
  "형상도 이미 알 수 없다면 누가 있고 없음을 말하며 얻을 바도 없다면 어찌 삼매인들 이름붙일 수 있겠느냐?"
  "제가 증득하지 않는다 함은 증득할 바 없음을 증득한다는 것이며, 삼매가 아니기 때문에 제가 삼매라 하였습니다."
  "삼매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름하며, 그대가 이미 증득하지 않았다면 증득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증득했다 하느냐?"
  바라제가 대사의 사리를 밝혀주시는 법문을 듣자 곧 본 마음을 깨닫고 대사께 절하면서 지난 잘못을 참회하였다. 대사는 그에게 수기를 주었다.
  "그대는 오래지 않아서 과위를 증득할 것이요, 이 나라에 마가 있는데 오래지 않아서 항복되리라."

  이 말을 마치자 홀연히 사라져서 다시 셋째 정혜종에게 가서 물었다.
  "그대들이 정헤를 배우는데 하나인가, 둘인가?"
  그 무리 가운데 바란타라는 이가 있다가 대답했다.
  "우리들의 이 선정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닙니다."
  "하나도 둘도 아니라면 어찌 정혜라 하는가?"
  "정(定, 禪定)에 머물러 있다면 정이 아니요, 혜에 머물러 있다면 혜가 아니니, 하나는 곧 하나가 아니요, 둘은 곧 둘이 아닙니다."
  "하나는 곧 하나가 아니요, 둘은 곧 둘이아니라면, 이미 정도 혜도 아니거늘 무엇을 정혜라 하는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지만 정헤는 알 수 있으며 정도 혜도 아닌 경우도 이와 같습니다."
  "정도 헤도 아닌 그것은 그러면 어찌 알았는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라 하면서 정과 혜는 누가 말하는가?"
  바란타가 듣고 의혹이 봄눈 같이 사라졌다.

  대사가 다시 넷째 계행종에게 가서 물었다.
  "무엇이 계이며 어떤 것을 행이라 하는가? 이 계행은 하나인가 둘인가?"
  그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의 현자가 대답했다.
  "하나와 둘, 둘과 하나가 모두 그에게서 나오니, 교법에 의해서 물들음이 없으면 이를 계행이라 합니다."
  대사가 다시 물었다.
  "그대가 교법에 의한다 함이 곧 물들음이다. 하나와 둘이 모두 부정(破) 되었거늘 어찌 교법에 의한다 하겠는가? 그렇게 어긋나면 수행이 될 수 없나니 안팎도 모르면서 어찌 계라 하겠는가?"
  "저는 이미 안팎을 알아 마쳤습니다. 이미 통달한 뒤에는 그것이 계행이니 어긋났다 한다면 모두가 옳다고도 할 수 있고 모두가 그르다고도할 수 있습니다. 말로써 어찌 청정함에 미치겠습니까. 그대로 곧 계요, 그대로 곧 행입니다."
  "모두가 옳고 모두가 그르다면 어찌 청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미 통달했다면 어찌 안팎인들 논하리요."
  현자가 이 말을 듣고 스스로 붂러이 여기어 굴복하였다.

  대사가 다시 다섯째 무득종에게 가서 물었다.
  "그대들이 무득이라 하니, 얻을 것이 없다면 무엇을 얻는가? 얻을 것이 없다 하면 이미 얻음을 얻은 것이다."
  그 무리 가운데 보정이라는 이가 대답했다.
  "내가 얻을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얻을 것 없음을 얻은 것도 아닙니다. 이 얻음을 얻음이라 말하지만, 이 얻음은 얻음이 없습니다."
  "얻음이 이미 얻음 없는 얻음이라면 그 얻음(얻음 없는 얻음)마저 얻을 수 없다. 그 얻음(얻을 것 없는 얻음)도 얻음 없다 하나 어떻게 그 얻음(얻을 것 없는 얻음도 얻음 없는 얻음)은 얻었느냐?"
  "얻음을 보면 얻은 것이 아니요, 얻음이 아니라야 얻나니, 만일 얻지 않음을 보면 얻을 것을 얻었다 합니다."
  "얻었다면 얻음이 아니요, 얻을 것을 얻었다 하면 얻음도 없을 것이고, 이미 얻은 것도 없을 터인데 어떻게 얻을 것을 얻었다 하는가?"
  보정이 듣고 의혹의 넝쿨이 모두 사라졌다.

  대사는 다시 여섯째 적정조에게 가서 물었다.
  "무엇을 적정(寂靜)이라 하는가? 이 법 가운데서 누가 고요하고 누가 적멸한가?"
  거기에 어떤 존자가 있다가 대답했다.
  "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적멸이라 하고, 법에 물들지 않는 것을 고요하다 합니다."
  대사가 다시 물었다.
  "본 마음이 적멸치 않다면 반드시 적정을 의지하여야 하겠지만 본래 적멸하거늘 어찌 적정을 이용하리요?"
  "모든 법이 본래 공하니, 공이 공하기 때문이요, 그 공이 공하므로 적정이라 합니다."
  "공이 공하다는 것도 이미 공했고, 모든 법도 그러하므로 적정하여 행상이 없거늘 무엇이 고요하며 무엇이 적멸하겠는가?"
  그 존자는 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확연히 깨달았다. 이리하여 여섯 무리가 모두 맹세하고 귀의하니, 이 까닭에 덕화가 남인도국에 퍼지고 명성이 인도의 전역에 알려졌으며, 멀고 가가운 곳의 학자들이 바람결에 기울이듯 모여 들었다. 이렇게 여섯 해가 지나면서 한량없는 무리를 제도하였다.

  뒤에 이견왕이 삼보를 경멸하면서 늘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조상들은 모두가 불법을 믿었으나 삿된 소견에 빠져 수명이 길지 못하고 왕운도 짧았다. 또 내 몸이 곧 부처인데 어찌 밖에서 구하리요. 선악의 과보는 모두가 말재주 있는 자들이 꾸민 것이다."
  그리하여 나라 안의 늙은이들이나 선왕의 존경을 받던이들 모두가 쫓겨 나갔다. 대사는 이런 사실을 알고 탄식하였다.
  "저 박덕한 사람을 어떻게 해야 구제하리요."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무상종에 있는 둘 가운데 하나는 바라제인데 왕과 친교가 있고, 머지 않아 과위를 증득할 것이다. 또 하나는 종승인데 변재가 좋고 박식하기는 하나 옛 인연이 없구나."
  이때에 여섯 종파의 무리들도 제각기 이런 생각을 하였다.
  "불법에 재난이 생기었는데 스승님은 어찌 혼자만 편히 계실까?"
  대사가 대중의 뜻을 미리 알고 손가락을 튕기어 응답하니, 여섯 무리들이 듣고, '이는 우리 스승, 달마대사께서 믿음을 표시하시는 소리이다. 우리들은 빨리 가서 분부를 받들어야 한다' 하고는 곧 대사에게 가서 예배하고 문안하였다.
  대사가 그들에게 물었다.
  "이제 한 잎사귀가 허공을 가리웠으니, 누가 베어 버리겠는가?"
  종승이 대답했다.
  "제가 비록 천박하지만 감히 그의 행리(行李)를 규탄하겠습니다."
  "그대는 비록 말재주는 있으나 아직 도력이 온전치 못하다."
  종승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스승께서 내가 왕을 뵈옵고 큰 불사를 하면 나의 명예는 드러나고 자신의 위신은 무색해질 것을 두려워하신다. 비록 복과 지혜로서 왕이 되었다 하여도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인데 어지 그를 적대하기 어려우리요.'
  곧 잠자코 왕궁으로 가서 왕을 뵈옵고, 요긴한 법(진리)과 세계의 고락을, 인간이나 하늘의 선과 악을 널리 설하였다. 왕은 그와 상대하여 토론을 거듭하는 사이에 모든 이치를 터득했다.
  왕이 물었다.
  "그대가 지금 가르치고 잇는 그 진리(法)는 어디에 있소?"
  종승이 대답했다.
  "왕이 펴는 정치의 길과 같아서 마땅히 그 도리에 합당한 것입니다. 대왕의 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의 도는 삿된 법을 없애기 위한 것이요. 그대의 법은 누구를 항복시키기 위한 것인가."
  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종승의 말이 막힌 것을 미리 알았다. 그리하여 곧 바라제에게 말햇다.
  "종승이 나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혼자서 왕을 교화하려다가 잠깐 사이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대는 빨리 가서 구원하라."
  바라제가 공손히 대사의 분부를 받고 다시 말했다.
  "바라옵건대 위신력을 배풀어 주소서."
  말을 마치자 발 밑에 구름이 생겨 이견왕 앞에 이르게 해주엇다.
이때, 왕은 바야흐로 종승에게 물으려 하였으나 홀연 바라제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자 깜짝 놀라 문답하던 것을 까맣게 잊고 이렇게 말했다.
  "하늘을 타고 온 자가 바른가,삿된가?"


  바라제가 대답했다.
  "저는 사(邪)와 정(正)이 아니지만 왔다면 정과 사가 있습니다. 만약 대왕의 마음이 바르면 저에게도 사와 정은 없습니다."
  왕은 비록 깜짝 놀랐으나 교만한 생각이 치솟아 종승을 쫓아내니, 바라제가 말했다.
  "대왕은 이미 도를 행하면서 어찌 사문(沙門)을 물리치십니까? 제가 비록 아는 것은 없으나 대왕께서 물어 주시길 바랍니다."
  왕이 성을 내면서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인가?"
  바라제가 대답했다.
  "성품을 본 이가 부처입니다."
  "대사는 성품을 보는가?"
  "나는 이미 성품을 보았습니다."
  "성품이 어디에 있는가?"
  "성품은 짓는(作用) 곳에 있습니다."
  "그것이 어찌 짓는 것이기에 나에게는 보이지 않소?"
  "지금 짓고 있음에도 왕 스스로가 보지 못할 뿐입니다."
  "나에게도 있소, 없소?"
  "대왕께서 만약 짓는다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짓지 않으면(不用) 본체를 스스로 보기 어렵습니다."
  "만약 짓는다면 그때 몇 곳에 나타나오?"
  "나타날 때엔 여덟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 여덟 가지 길을 나에게 말해주시오."
  바라제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태 속에선 몸이요
    세상에 나와서는 사람이요
    눈으로는 본다 하고
    귀로는 듣는다 하고
    코로는 냄새를 맡고
    입으로는 말을 하고
    손으로는 움켜잡고
    발로는 몸을 옮기네

    두루 나타나서는 무수한 세계를 덮고
    거두어 들이면 한 티클 속에 드네
    아는 이는 그것을 불성이라 하지만
    알지 못하는 이는 정혼(精魂)이라 하네

  왕이 이 게송을 듣고 마음이 열리어 앞의 허물을 뉘우치고 법문을 물었다. 아침 저녁으로 피로한 줄 모르고 법을 물어 90세까지 이르렀다.
  이 때에 종승이 물리침을 당하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숨어서 생각하였다.
  '내 이제 백살인데 80년은 그르쳤고, 20년 동안만 불도를 닦았다. 성품이 어리석고 둔하지만 행에는 티가 없었는데 업신여기는 재난을 막지 못했으니,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는 곧 벼랑에서 떨어졌는데 어떤 신인(神人)이 손으로 받아서 바위 위에 놓으니, 조금도 다친 곳이 없었다.
  종승이 말했다.
  "나는 사문의 수효에 들었으니, 의당 법주(법주)가 되어야 하겠는데 국왕의 비난을 막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 몸을 벼랑에 던져서 죽으려는 것인데 어떤 선인이 이다지 나를 도우시오. 원컨데 한 말씀 베풀어주시어 남은 생애를 마치게 하여 주시오."
  말을 마치니, 신인이 게송을 말하였다.

    스님의 나이 백살에
    80년은 그른 일을 했으나
    지존(至尊)을 가까이 한 까닭에
    차츰 닦아서 도에 들었소.

    조그마한 지혜가 있다 해도
    나와 너의 차별이 많으므로
    여러 현성들을 보아도
    공경하는 생각을 내지 않았소.

    20년의 공덕이 있으나
    그 마음이 조용하지 아니하여
    총명하고 교만함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소.

    국왕이 공경치 않은 것
    위와 같은 일의 과보를 받음이니
    지금부터 게을리 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서 기이한 지혜 얻으리.

    여러 성인들 모두가 명심하였고
    여래도 그렇게 하였소.

  종승이 게송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바위 사이에 조용히 앉았다.

  이때에 이견왕이 다시 바라제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혜롭고 변재가 있는데 누구의 제자시오?"
  바라제가 대답했다.
  "저는 사라사(娑羅寺)에서 중이 되어 오사바삼장(烏娑婆三藏)에게 수학하였으나 출세(出世)의 스승은 대왕의 숙부이신 보리달마 대사입니다."
  왕이 대사의 이름을 듣자 깜짝 놀랐다. 왕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못난 내가 외람되게 왕위에 올라 바른 길을 버리고 삿된 길에 들어 나의 숙부를 잊을 뻔하였소."
  이내 가까운 신하로 하여금 특별히 청해 오도록 했다. 대사는 사신을 따라 왕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왕으로 하여금 뉘우치게 하였다. 왕은 훈계하는 말을 듣고 울면서 대사에게 참회하고, 또 종승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라 명령하니 대신이 아뢰었다.
  "종승은 꾸지람을 받고서 벼랑에 떨어졌으니, 지금은 죽었을 것입니다."
  왕이 대사에게 말했다.
  "종승이 죽은 것은 모두가 내 잘못이니, 대자대비를 베푸시어 이 죄를 면하게 하여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종승은 지금 바위틈에 조용히 않았으니, 사람을 보내어 부르기만 하면 곧 올 것입니다."
  왕이 곧 사신을 보내어, 산 깊숙이 들어가니, 과연 종승이 단정히 앉아 선정에 든 것을 보았다. 종승은 왕의 부름에 감사하며 말했다.
  "대왕의 뜻을 어기는 것이 죄스러우나 빈도(貧道)는 바위틈과 샘 곁에 살기로 하였소. 대왕의 나라에는 어진 대덕이 숲 같이 많고 또 달마대사는 왕의 숙부이며, 여섯 무리의 스승입니다. 그리고 바라제는 불법안의 으뜸이니, 대왕께서는 이 두 성인을 추앙하시어 황제의 나라를 복되게 하기를 바랍니다."
  사자(使者)는 종승이 오지 않겠다는 뜻을 왕에게 전했다.. 이에 대사가 왕에게 말했다.
  "종승을 오게 하는 법을 아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모르오."
  대사가 말했다.
  "한번 청해서 오지 않으니, 두 번째 청하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조금 있다가 사자가 돌아왔는데 과연 대사의 말과  ㅌ았다. 대사는 끝내 왕을 하직하면서 말했다.
  "덕을 닦으시오. 오래지 않아 병환이 날 것입니다. 나는 떠납니다."
  7일이 지나 왕은 병이 났는데 국의(國醫)가 아무리 치료해도 병른 더할뿐이요, 낫지 않았다. 친척과 대신들은 전날 대사의 예언을 기억하고, 곧사자를 대사께 보내어 말했다.
  "대왕의 병환이 자못 위급하니, 바라건대 자비를 베푸시어 멀리 오셔서 구원해 주십시오."
  대사가 곧 왕에게 이르러 병환을 위로하였다.
  이때에 중승이 두 번째 왕명을 받고, 곧 바위틈을 하직하고 와 있었고 바라제도 오랫동안 국왕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왕의 병환을 위문하러 와 있었다.
  바라제가 말했다.
  "무엇을 어찌 하여야 왕이 고통을 면하게 될까요?"
  대사는 곧 태자로 왕을 삼고, 죄인들을 놓아주고, 은혜를 베풀고, 승보를 숭앙케 하였다. 또 왕으로 하여금 참회케 하고 '죄가 소멸하여지어다'하기를 세 차례 거듭하니, 왕의 병환이 잠시 그쳤다. 대사가 진단(震旦)에 인연이 익어서 교화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먼저 조사의 탑에 하직하고 뒤에 동학(同學)을 작별하였다. 그리고는 왕에게 가서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맑은 업을 부지런히 닦고 삼보를 잘 보호하시오. 내가 가더라도 오래 있지 않을 것이요,
9년이면 돌아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 나라는 무슨 죄가 있으며 저 나라에는 무슨 복이 있소. 숙부께서 이미 인연이 있으시다니, 내가 말릴 수는 없으나 부모의 나라를 잊지 마시고 일을 마치거든 곧 돌아와 주시오."
  왕은 큰 배를 마련하여 많은 보배를 싣고, 몸소 신하들을 인솔하여 바닷가에 나가 전송하였다. 대사는 바다에 떠서 3년을 지나 남해(南海)에 다다르니, 이는 양(梁)의 보통(普通) 8년 정미년 9월 21일이었다.

  광주자사(廣州刺史) 소앙이 예를 갖추어 영접하고, 무제(무제)에게 보고를 올렸다.
  무제는 보고를 받고, 사자에게 조서(詔書)를 주어 맞아 드리니, 10월 1일에 금릉(金陵)에 이르렀다.
  무제가 대사에게 물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 절을 짖고, 경을 쓰고 스님을 양성한 것이 셀수 없는데 어떤 공덕이 있소?"
  대사가 대답했다.
  "아무 공덕도 없습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소?"
  "이는 인간과 하늘의 작은 결과를 받는 유루(有漏)의 원인일 뿐이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 같아서 있는 듯하나 실제가 아닙니다."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이요?"
  "청정한 지혜는 묘하고 원만하여 본체가 원래 비고 고요하니, 이러한 공덕은 세상 법으로 구하지 못합니다."
  무제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성제(聖諦)의 제일 가는 이치요?"
  "이러히 벽없어 성인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짐이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
  "모릅니다."
  무제가 알아듣지 못하니, 대사가 근기가 맞지 않음을 알았다.
  그달 19일에 가만히 강북(江北)을 돌아서 11월 23일 낙양에 이르니, 이는 후위(後魏)의 효멍제(孝明帝) 태화(太和) 10년이었다.

  숭산(嵩山)의 소림사(小林寺)에 머물러 벽을 향해 해가 지도록 잠자코 앉았으니, 아무도 대사를 아는 이가 없어 대사를 일러 벽을 보는 바라문이라 하였다.
  이때에 신광(神光)이라는 중이 있었는데 활달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낙양에 살면서 여러 서적을 많이 읽고, 묘한 이치를 잘 이야기하였다. 그는 늘 이렇게 탄식하였다.
  "공자와 노자의 교리는 예절(禮)·술수(術)·풍류(風)·법규(規) 뿐이요, 장자와 주역 따위 글은 묘한 진리를 다하지 못했다. 요사이 듣건대 달마대사가 소림에 계시는데 찾아가는 사람을 맞이하지 않고 현묘한 경지에 이르렀다 한다."
  그리하여 그에게 가서 조석으로 섬기고 물었으나 아무런 가르침도 듣지 못했다. 신광은 '옛 사람이 도를 구할 때에는 뼈를 깨뜨려서 골수를 빼내고 피를 뽑아서 주린 이를 구제하고, 머리를 진 땅에 펴고, 벼랑에서 떨어져 주린 호랑이를 먹였다. 옛 사람도 이러하였거늘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생각하였다. 그해 12월 9일 밤에 큰 눈이 왔는데, 신광이 꼼짝도 않고 섰으니, 새벽녘에는 눈이 무릎이 지나도록 쌓였다.
  대사가 민망히 생각하여 물었다.
  "네가 눈 속에 오래 섰으니, 무엇을 구하는가?"
  신광이 슬피 울면서 말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감로의 문을 여시어 여러 중생들을 널리 제도해 주소서."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님들의 위 없는 묘한 도는 여러 겁을 부지런히 정진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을 참아야 하거늘, 어찌 작은 공덕과 작은 지혜와 경솔한 마음과 교만한 마음으로 참법을 바라느냐. 헛수고를 할 뿐이다."
  신광이 이 말을 듣고 슬며시 칼을 뽑아 왼쪽 팔을 끊어서 대사 앞에 놓으니, 대사가 비로소 그가 법기임을 알고 말했다.
  "부처님들이 처음 도를 구하실 때는 법을 위해 몸을 던지셨다. 네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끊으면서 구하니, 가히 할 만한 일이다."
  대사가 그의 이름을 혜가(慧可)라 고쳐주니, 신광이 말했다.
  "부처님들의 법인(法印)을 들려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님들의 법인은 남에게 얻은 것이 아니니라."
  "제 마음이 편안치 못하오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편안케 해주리라."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했다."

  뒤에 효명제가 대사의 특이한 행적을 듣고 사자와 조서를 보내어 부르기를 세 차례나 하여도 끝내 소림을 떠나지 않았다. 황에의 뜻은 더욱 굳어져서 마납 가사 두 벌과 금발우, 은병, 비단 따위를 하사했으나 대사는 굳이 사양하여 세 번이나 돌려보냈다. 그러나 황제의 뜻이 더욱 굳어지니, 대사는 그제야 비로소 받았다.
  그로부터 승속(僧俗)이 배나 더 믿고 귀의하였는데 9년이 되니 대사는 서쪽의 인도로 돌아갈 생각을 내고 문인(門人)들에게 물었다.
  "때가 되었다. 너희들은 얻은 바를 말해 보라."
  이때에 문인인 도부(道副)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으므로써 도를 삼가는 것입니다."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총지(總持) 비구니가 말했다.
  "제가 알기에는 아난이 아촉불국(阿 佛國)을 보았을 때에 한번보고 다시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이 말했다.
  "사대(四大)가 본래 공하고 오온이 따로 있지 않으니, 제가 보기에는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마지막에 혜가(신광)가 절을 하고 섰으니, 대사가 말했다.
  "옛날에 여래께서 정법안장을 가섭에게 전하였는데 차츰차츰 전해서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전하노니, 그대는 잘 지키라. 그리고 가사를 겸해 주어 법의 시표를 삼노니, 제각기 표시하는 바가 있음을 알라."
  혜가가 말했다.
  "자세히 살명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안으로 법을 전해서 마음을 깨쳤음을 증명하고, 곁으로 가사를 전해서 종지(宗旨)를 확정한다. 후세 사람들이 얄팍하여 갖가지 의심을 해서 내가 인도 사람이요, 그대는 이곳 사람이니 무었으로써 법을 증득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냐고 할 것이니, 그대가 지금 이 옷을 받아 두었다가 뒤에 환란이 생기거든 이 옷과 나의 게송을 내놓아서 증명을 삼으면 교화하는 일에 지장이 없으리라. 내가 열반에 든지 200년 뒤에 옷은 그치고 전하지 않아도 법이 항하사(恒河沙) 세계에 두루하리라. 허나 도를 밝힌 이는 많아도 행하는 이가 적으며 진리를 말하는 이는 많으나 진리를 통달하는 이는 적으리라. 진리에 부합해서 비밀히 증득할 이가 천만이 넘으리니, 그대는 잘 드날리어 깨닫지 못한 이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한 생각 돌이키면 본래 깨달은 것과 같으리라. 나의 게송을 들으라."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해 어리석은 이를 제도하려는 것이다
    한 송이의 꽃에 다섯 꽃잎이여
    열매는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대사가 말했다.
  "나에게 능가경(楞伽經) 네 권이 있는데 그것마저 그대에게 전하노니 이는 곧 여래께서 마음 자리를 가르치신 요긴한 법문으로서 중생들을 깨달음에 들게 하신다. 내가 여기에 온 뒤에 다섯 차례 독(毒)을 맞았는데 항상 꺼내어서 시험한 바 돌에다 놓으면 돌이 깨졌었다.
내가 본래 인도를 떠나서 여기에 왔을 때에 적현(赤縣) 신주(神州)에 대승의 기상이 있음을 보고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지나서 법 전해 줄 사람을 구했는데, 매양 만나면 계합되지 않아 마치 어리석은 이 같고 말더듬이 같더니 이제 그대를 만나서 전해주었으니 나의 뜻이 끝났다."
  이렇게 말하고는 무리들을 거느리고 우문(禹門)의 천성사(千聖寺)로 가서 사흘을 묵었다. 조금 있으니, 그 고을 태수 양현지(揚衒之)가 벌써부터 불법을 사모해 왔다 하면서 대사에게 물었다.
  "서역 인도에서 스승의 법을 전해 받고 조사라 한다는데 그 도가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님의 마음 자리를 밝혀 행과 지혜가 서로 응하는 것을 조사라 하오."
  "그 밖에는 어떠합니까?"
  "모름지기 다른 이의 마음을 밝히고, 고금을 알고, 있음과 없음을 싫어하지 않고, 법에 집착이 없으며 어질지도 어리석지도 않고, 미혹도 깨달음도 없나니, 이렇게 아는 이는 조사라 하오."
  "제가 삼보에 귀의한 지도 몇 해가 되었건만 지혜가 혼몽하여 아직도 진리를 미혹하고 있었는데 이제 스님의 말씀을 듣고, 미혹도 깨달음도 없나니, 바라옵건대 스님께서 자비로써
종지(種智)를 보여주소서."
  대사는 그의 정성이 간절함을 알고, 게송을 말했다.

    악을 보고도 혐오치 않고
    선을 보고도 부지런하지 않고
    지혜를 버리고 어리석음에 가지도 않고
    어리석음을 떠나 깨달음에 가지도 않는다

    큰 도를 통달하니 한량을 넘고
    부처의 마음을 통하니, 법도를 초월하여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히 뛰어난 것을 조사라 한다

  양현지가 게송을 듣고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말했다.
  "바라옵건대 대사께서 세간에 오래 머무시어 많은 유정들을 교화해 주소서."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가야 한다. 오래 머무를 수 없다. 근기와 성품이 만 가지 차이가 있으므로 많은 환란을 만날 것이다."
  "누구이옵니까? 제가 스님을 위해서 제거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비밀을 전해서 어리석은 무리를 이롭게 할 뿐인데 남을 해치고 내가 편함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일 스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어찌 스님의 신통변화와 관찰하는 힘을 표시하겠습니까?"
  대사는 부득이 예언을 말했다.
 
    강의 돛대가 옥 같은 물결을 가르고
    통 속에 횃불을 비쳐 쇠고리를 연다
    五자와 口자를 같이 행하는 이가
    九자와 十자를 분별하는 생각 없다

  양현지가 이 말을 듣고, 그 까닭을 몰라 하면서도 잠자코 속으로만 기억한 채 물러갔다.
  대사의 예언은 비록 당시에는 헤아리지 못하나 뒤에는 모두가 맞았다.
  그때에 위씨(魏氏, 魏王族)가 불법을 받들어 고명한 스님네가 숲같이 많았는데 율사인 광통(光統)과 삼장(三藏)인 보리류지(菩提流支)는 승단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사가 도를 설할 때에 형상을 배척하고 바로 마음을 지적하는 것을 보고 늘 대사와 토론을 벌리고 시비를 일으켰다. 그들은 대사가 현묘한 덕화의 바람을 널리 떨치고 법의 단비를 두루 뿌리는 것을 그들의 치우치고 옹색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없어서, 앞을 다투어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키어 자주 독약를 음식에 넣었다. 여섯 차례에 이르러서는 교화할 인연도 다하였고, 법 전할 사람도 만났으므로 독약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정히 앉아서 감을 보이니, 이는 후위의 효명제 태화 19년 병진년 10월 5일이었다.
  그해 12월 28일, 웅이산(熊耳山)에 장사지내고, 정림사(定林寺)에 탑을 세웠는데 그뒤로 3년만에 위의 송운이라는 이가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오는 길에 총령( 嶺)에서 대사를 만났는데, 손에 신 한 짝을 들고 훌훌히 혼자 가니 송운이 "스님 어디를 가십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서역으로 돌아가오. 그리고 그대의 군주가 이미 세상을 뜨셨소."라고 대사가 대답하니, 송운이 이 말을 듣고 아찔함을 느꼈다. 대사를 작별하고 동쪽으로 가서 복명하니, 과연 명제(明帝)는 이미 승하하고, 효장제(孝莊帝)가 즉위하였다.
  송운이 위의 사실을 자세히 보고하므로 황제가 광(壙)을  열어 보게 하니, 빈 관속에 신 한짝만이 남아 있었다. 온 조정이 깜짝 놀랐고, 황제의 명에 따라 남은 신을 가져다 소림사에서 공양하였다. 당의 개원(開元) 15년 정묘년에 도를 믿는 이들을 위하여 오대산 화엄사에 가만히 모셨다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처음, 양무제가 대사를 만났을 때엔 인연이 맞지 않더니, 그가 위(魏)에서 교화를 편다는 말을 듣고는 손수 대사의 비(碑)를 지으려 하였으나 겨를이 없어 하다가 나중에 송눙의 일을 듣고서야 이루었다.
  대종(代宗, 당 8대왕)이 원각대사(圓覺大師)라는 시호(諡號)를 내리고 탑은 공관(空觀)이라 불렀다. 대사가 위의 병진년에 입적하신 이래로 송(宋)의 경덕(景德) 원년 갑진년까지는 467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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