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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7 10:57

번뇌를 녹이는 내면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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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부처님께서 코살라국을 유행하고 계실 때의 일이다. 손타리 강가에 머물고 계시던 부처님은 어느 날 수염과 머리를 말끔히 깎고 강변에서 밤을 보내셨다.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난 부처님은 파르라니 깎은 머리 위에 가사를 얹고 몸을 단정히 하고 앉아[正身端坐] 앞쪽에 생각을 모으고 계셨다[繫念在前]. 그 때 부처님이 계시는 강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불을 섬기는 한 바라문도 머물고 있었다. 그는 불을 피워 정성껏 제사를 지내고, 제사 지낸 음식을 다른 바라문들에게 보시하는 것을 종교적 의무로 삼고 있었다.

밤 동안 불을 피우고 제사를 지낸 바라문은 날이 밝자 제사 음식을 보시하기 위해 바라문을 찾아 나섰다가 부처님이 계신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부처님은 바라문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헛기침을 하며 인기척을 보이셨다. 바라문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강가에서 조용히 명상에 잠겨 계신 부처님을 발견하고 행여 바라문인가 해서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짧게 깎은 부처님을 보고 바라문이 아니라 사문(沙門)임을 알아차리고 발길을 돌렸다. 그때 문뜩 바라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은 머리를 깎았다고 해서 모두 사문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바라문 중에도 더러 머리를 깎고 생활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라문은 부처님에게 되돌아와 ‘어디서 태어났으며, 타고난 종성(種姓)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답하셨다.

태어난 곳이 어딘지 묻지 말고(不應問生處)
마땅히 행하는 바를 물어야 하리.(宜問其所行)
작은 나무에도 불꽃이 일어나듯(微木能生火)
비천한 신분에도 어진 사람이 태어나네.(卑賤生賢達)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바라문은 출신에 따라 공양 받을 자격을 따지는 자신의 기준이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바라문을 향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현재의 위대한 사람[大人]들은 번뇌를 다 없앴으니 온갖 음식을 가지고 가지가지로 공양해야 하나니. 복 밭[福田]을 일구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곳에 보시해야 하나니 만약 복을 지으려고 한다면 내가 바로 복 밭이라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바라문은 태생이 거룩한 바라문을 찾아 공양하기 위해 준비한 음식을 부처님께 올렸다. 하지만 부처님은 바라문이 내미는 음식을 받지 않으시고 벌레가 없는 곳에 버리라고 말씀하셨다. 바라문은 영문을 몰랐지만 부처님의 지시대로 음식을 벌레가 없는 물에 버렸다. 그러자 연기와 불꽃이 일면서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물이 끓어올랐다.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바라문은 두려움에 떨며 황급히 장작을 모아 다시 불을 피웠다. 신들에게 정성껏 제사를 지내며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서였다.


공포에 질려 불을 피우는 바라문을 지켜보신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대는 재계하고 장작불을 피워야만 부정함을 씻을 수 있다고 하는구나. 박복하고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자네처럼 그렇게 바깥의 불만 피울 따름이지. 하지만 바라문이여! 그렇게 장작불을 피울 것이 아니라 마땅히 내면에 불꽃을 피우고 그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네. 내면에서 타오르는 그 불길이야말로 참다운 제사(祭祀)이기 때문일세.”


불을 피우는 제사를 통해 업보를 정화(淨化)하고 종교적 구원을 얻고자 했던 바라문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다. 바라문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애지중지 해 왔던 불 피우는 도구들을 모두 버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장작불을 피우고 제사 지내던 사제에서 마음의 불꽃을 피우고 번뇌를 불사르는 사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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