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의상(義湘)과 선묘(善妙)낭자

by 短長中庸 posted Oct 2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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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義湘)과 선묘(善妙)낭자

신라 문무왕1년(661) 당나라로 유학을 간 의상스님은 登州해안에 도착해 어느 한 佛子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 집의 아릿다운 딸 선묘 낭자가 의상을 보고는 思慕의 정이 생겨 청혼을 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선묘를 감화시켜 菩提心을 발하게 하였다. 선묘는 이때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불사를 성취하는데, 도움이 되어 주겠다.”는 원을 세웠다.
의상은 종남산에 있는 智巖스님을 찾아가 華嚴學을 공부하였다.
그 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의상은 선묘의 집에 들려 그동안 베풀의 준 편의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뱃길이 바빠 배에 올랐다.
선묘는 스님에게 전하고자 준비한 법복과 집기들을 넣은 상자를 가지고 급히 선창가에 이르니,

배는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저 만큼 떠나가는 배를 향해 상자를 던져 전하고는,

다시 서원(誓願)을 세워 몸을 바다에 던져 스님이 탄 배를 파도에서 보호하는 용이 되었다.
의상스님이 화엄(華嚴)을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 에 이르렀으나,

500명의 도둑의 무리들이 그 땅에 살고 있었으므로,

善妙龍은 커다란 바위로 변해, 공중에 떠서 도둑들을 위협하므로써, 도둑들이 혼비백산 도망갔다.
그런 뒤 500의 도둑들이 感化하여 불자가 되어 일을 도와 그곳에 浮石寺를 창건 할 수 있었다 한다.
지금도 무량수전 뒤에 浮石(날아 다니는 돌) 이라는 바위가 있다.

대승불교(大乘佛敎, 禪宗)의 수많은 불보살(佛菩薩)들은, 부처님 가르침의 象徵(상징)적인 形象(형상)이므로, 모두가 釋迦牟尼 부처님 한분이란 것을 알아야만 佛敎를 올바르게 理解할 수가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생활하게되면 나쁜 마음과 행동을 하지 않게 되므로,

부처님이 功德을 주는 건 아니지만, 가르침을 따라 스스로 功德을 쌓게되었으니,

이게 바로 부처님의 功德인 것이다.
2001.11 범.불.대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 다 같이 성불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