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목숨도 살리는 기도 그런데 바로 이때 또 한 분의 어머니가 기도로 아들을 살려내었습니다. 그 분은 바로 홍진기(洪璡基)의 어머니이십니다. 현재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건희씨의 장인이요 홍라희씨의 아버지인 홍진기씨는 1940년에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나온 법조인으로, 승승장구하여 1958년 법무부 장관에 취임하였고, 4.19의거 때 구속되어 이강학 등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1961년 12월, 홍진기의 어머니인 허씨 부인은 며느리를 불러 말했습니다. “아가야, 미안하다 모든게 내 책임이다. 이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와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느냐? 나 또한 아들이 죽을 목숨이 되었으니 더 이상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다.” 그리고는 며느리에게 부탁했습니다. “냉수 한 그릇 떠오너라.” 며느리가 물을 떠오자 허씨 부인은 쪽진 머리를 푼 다음, 가위를 꺼내어 싹둑 잘랐습니다. “이 머리카락은 네가 간수해라. 그리고 앞으로 7일동안은 나를 찾지 말아라. 나는 이 방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니, 만약 죽을지라도 7일이 지난 다음에 이 방문을 열도록 하여라. 7일이 지나 내가 살아있을 그때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허씨 부인은 눈물을 짓고 있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는 단정히 앉아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이틀,사흘…. 시간이 흐르고 날이 가도 방문은 열릴 줄 몰랐습니다. 나흘,닷새,엿새…. 불안해진 며느리는 방문 밖을 서성이다가 간간이 새어나오는 염불소리에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마침내 7일날 정오, 라디오에서 홍진기가 사형을 면하게 되었다는 특별뉴스가 울려나왔고, 반가움을 주체할 수 없었던 며느리가 허씨 부인의 방문을 열며 소리쳤습니다. “어머님, 아범이 살아났습니다. 사형을 면했습니다.” “아, 그래. 이제 다시 내 아들이 되었구나.” 조용히 변화를 받아들이는 허씨 부인! 그런데 허씨 부인의 앞에 놓여 있던 한 사발의 물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고 7일 동안 ‘관세음보살’을 염한 것입니다. 오로지 아들을 구하겠다는 일념 속에서…. 홍진기씨의 어머니! 이 얼마나 대단한 분입니까? 그녀는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아들을 살려낼 기도를 주저 없이 실천하였습니다. 어려운 그때. ‘나는 이렇게 처신해야 한다’며 목숨을 걸어 놓고 관음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식음을 전폐한 7일의 기도를 마치면 아들이 반드시 살아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녕 이러한 어머니요 이러한 지극정성이 있을진데, 다 죽은 아들인들 어찌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홍진기씨는 그 뒤 풀려 나와 1964년 중앙라디오방송 사장을 필두로 중앙일보,동양방송 사장을 지냈고, 1980년부터 중앙일보사 회장이 되어 1986년 죽는 날까지 재직하였습니다. 아들을 구하기 위한 대덕화 보살과 허씨 부인의 기도! 이처럼 지극한 기도는 ‘나’의 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업까지도 능히 녹일 수 있습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살인 등의 큰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불보살님 전에 지극히 기도를 하여 서상(瑞相)을 입으면 죄가 다 소멸된다.” 정녕 기도를 하면 새로운 삶이 열립니다. 새로운 빛이 찾아듭니다. 기도를 지극히 하면 어떠한 업장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일이란 낮과 밤의 원리와 같습니다. 어둠이 다하면 밝음이 오고, 밝음이 다하면 어둠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기도에 적용시켜 보면, 어둠은 업장이요 밝음은 기도 가피 입니다. 업장이 두터워 뜻과 같이 되지 않을 때, 일월(日月)과 같은 부처님의 자비에 의지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어두움이 사라지고 밝음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오직 ‘나’의 정성일 뿐이니, 이제부터 정성껏 기도 생활을 해보십시오. 그리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업의 껍질을 벗겨보십시오. 밖에서 구하기 보다는 기도로써 ‘나’부터 바꾸어 보십시오. 틀림없이 모든 것이 바뀌고, 주위에는 행복이 충만하게 됩니다.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기도할 것인가 이제 기도성취의 또 다른 예를 들어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가다듬어 보고자 합니다. 지리산은 문수보살의 상주도량(常住道煬)이요, 그 중심은 칠불사(七佛寺)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출가하여 모두 도를 깨쳤다고 하여 절이름을 ‘칠불사’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칠불사는 6,25사변 전후로 모두 소실되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 통광(通光)이라는 스님이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칠불사 밑의 범왕리 출신으로, 칠불사의 중창을 다짐하며 천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김해 김씨였던 스님은 ‘지리산 칠불 복구위원회’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니며 권선을 했습니다. 그러나 뜻과 같이 복구에 필요한 돈은 모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쌍계사 주지인 고산(?山) 큰스님을 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큰 스님은 뒷꼭지가 아플 정도로 호통을 쳤습니다. “이놈아, 네 생전에는 아무리 해봐야 칠불을 복원 못한다. 승려가 승려의 할 일을 해야지, 천일 기도 한답시고 종이 쪽지에 권선문을 써서 다닌다고 누가 도와주느냐? 술은 사줄지언정 돈은 안 준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통광스님은 며칠 후 휘발유통을 들고 쌍계사 주지실로 찾아가 외쳤습니다. “스님, 나 좀 봅시다.” “누고?” “통광입니다. 스님 보는 앞에서 휘발유를 몸에 붓고 분신자살 할랍니다.” “야, 이놈아, 분신자살을 해야 네 속이 시원하겠느냐? 죽어라, 네 같은 놈은 죽어도 싸다.” 통광스님이 결심을 한 듯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고산스님은 말을 이었습니다. “죽어도 좋다. 그렇지만 후회없는 죽음이 되어야 한다. 내 말 좀 들어보겠느냐?” “무엇입니까?” “이놈아, 칠불은 문수보살님의 도량이다. 그 도량에 살면서 문수보살님과 같은 큰 어른을 모시고 있으면 ‘내가 불사하겠다’는 생각보다 ‘어른을 잘 모시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예?” “이제부터 생각을 바꿔! ‘문수보살님을 잘 모셔야 할텐데 법당도 없고 집도 없습니다. 법당도 짓고 요사채도 선원도 지어야 어른을 잘 모실텐데 저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부처님 도움 없이는 안되겟습니다.’하고 기도해라. ‘나는 죽었다’는 각오로 밥도 먹지 말고 잠도 자지 말고 기도해라. 안 하겠다면 지금 라이터를 켜서 기름통에 불을 붙여라. 어차피 죽을 결심을 하고 휘발유통을 가져 왔으니….” 통광스님은 그냥 “예”하고 칠불암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잠을 잘 생각도 밥을 먹을 생각도 잊고 오로지 ‘문수보살’을 외웠습니다. 그렇게 7일이 지나 염불 삼매에 잠겨 있을 때 노인 한 분이 비몽사몽간에 나타나 큼직한 열쇠 한 꾸러미를 주며 말했습니다. “이런 어린애한테 술을 사줄 수야 있나? 이 열쇠들을 줄테니 네가 알아서 해라.” 그 일이 있은 후 칠불의 불사는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권선문을 가지고 가면 누구할 것 없이 동참을 하였고, 많은 이들이 제 발로 칠불사로 찾아와 불사금을 보시하였습니다. 그리고 행정당국에서도 물심양면으로 협조를 하였습니다. 마침내 통광스님은 문수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선열당, 벽안당, 아자방, 보설루, 장경각, 종루, 대향적당을 일신 중창하여 대가람을 만들었으며, 유서 깊은 운상원(雲上院)까지 확장 재건하였습니다. 이 성취담과 같이, 기도의 힘이란 참으로 큰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이 이야기가 던져 주는 교훈을 이미 새겼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기도성취를 하는 이도 있고 못하는 이도 있습니다. 왜 못합니까? 기도의 인(因)을, 씨를 심었으면 과(果)인 열매를 거두는 것이 당연한 법인데, 왜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일까요? 불보살님께서 영험스럽지 못한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순수한 마음가짐으로 순수한 기도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불사를 이루기 위한 기도를 하면서 ‘나’를 내세우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서 ‘될까? 말까?’하는 의심이나 다른 것에 대한 유혹에 휩싸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비우고 불보살님께 온전히 내맡겨야 하는데도, ‘나’의 형편과 ‘나’의 고집을 남겨두고 기도를 하기 때문에 기도삼매에 젖어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성취는 삼매에 들 때 이루어집니다. 잠깐이라도 삼매에 젖어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의 번뇌, 나의 고집, 나의 의심을 담은 채 기도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절대로 삼매에 들지 못합니다. 기도가 올바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내가 불사를 한다’가 아니라 ‘어른을 모시고 한다’ 이것이 기도의 결과를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그리고 분신자살을 하겠다는 그 결심을 되돌려 기도한다면 성취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평소 나는 불자들에게 자주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고 할 때, 거룩한 부처님께서도 우리에게 귀의를 하신다.” 쉽게 이해가 되십니까? 실로 부처님과 중생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지혜와 자비는 우리를 위해 있습니다. 우리 중생이 깨달음과 지혜와 자비의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부처님은 할 일이 없어집니다. 중생과 부처의 관계는 마치 식물들과 땅과의 관계와 같습니다. 식물들이 그 자신을 땅에 맡기면, 땅은 그 자신을 식물들에게 맡깁니다. 이처럼 우리가 스스로를 부처님께 맡길 때, 부처님 역시 자신을 우리에게 맡깁니다. 진정한 귀의, 진정한 기도는 불보살과 ‘나’를 하나로 엮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맡겨 하나로 엮어진다면, 불보살님의 큰 자비 속에서 녹아 내리지 못할 중생의 업이 어디에 있으며 이루지 못할 소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디 ‘나’의 마음가짐을 참되이 하여 귀의의 사이클, 기도의 사이클을 잘 맞추기를 당부 드립니다. 사이클!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사이클을 맞출 것인가? 나는 단연 ‘순수함’의 사이클을 첫손가락에 꼽습니다. 순수함, 맑은 마음가짐! 이와 관련된 한 편의 영험담을 함께 음미하면서 ‘이 달의 법문’을 마감하고자 합니다. ** 약 7년전, 정기적인 법문을 하기 위해 정초에 부산 관음사로 갔을 때입니다. 중학생을 데리고 온 부모가 절을 하더니 아이를 가리키며 말을 했습니다. “스님, 제 아들이 서울의 한 병원에서 머리를 가르고 큰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뇌 속에서 큰 종양이 자라고 있는데 그냥 두면 매우 위험하다고 합니다.” “ 그래? 그렇다면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런데 서울 가기 전에 먼저 부처님을 찾아 뵙고 간절히 부탁을 드려라. ‘부처님, 제가 그 동안 절에 다니기는 하였지만 아들이 이 모양입니다. 억지라도 좋으니 부디 저의 청을 받아주소서’하면서 기도부터 해라. 아들이 큰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의사에게만 맡겨 둘 건가? 기도를 하게 되면 수술을 받더라도 결과가 좋아진다.” “스님, 어디로 가서 기도할까요?” “기도 많이 한 통광스님이 있는 지리산 칠불사로 가거라. 기도 많이 한 스님이 계신 도량이 기운도 맑은 법이다.” 부모는 아들과 함께 지리산 칠불사로 갔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원을 두고 세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7일째 되는 날, 기도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아들은 잠이 들었고, 비몽사몽간에 큰 주사기를 든 할아버지가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옆구리에 주사를 놓고는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그들은 서울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수술 직전에 다시 뇌 촬영을 했습니다. 의사는 몇 번이나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습니다. “수술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적적으로 종양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중학생의 아들은 참으로 순수하게 기도하였고, 그 순수함이 그대로 불보살님의 사이클과 맞아 가피를 입었습니다. 수술의 결과가 아니라, 수술 자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몸이 된 것입니다. 부디 당부드리건데 기도를 할 때는 순수한 마음으로 임하십시오. 순수한 마음가짐으로 적극적인 기도를 하십시오. 요행수를 바라거나 엉뚱한 축원을 하며 기도 하지 말고, 맑고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이렇게만 기도하면 불보살님의 사이클이 ‘나’의 사이클과 일치하게 되고, 그 기도가 삼매를 이룰 때 크나큰 가피가 ‘나’에게로 다가서게 됩니다. 기도는 다생의 죄업을 녹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합니다. 기도는 우라의 진실한 마음을 성숙시키는 최고의 방편입니다. 기도! 그것은 ‘나’를 바꾸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좋습니다. 고통이 있고 갈등이 있고 두려움이 있거나, 전정으로 바라는 바가 있으면 기도하십시오. 지금 당장 시작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기도를 통하여 행복과 자유와 평화를 얻고, 영원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출처: 도서출판 효림 월간 법공양 2004년 2월호 |
방편
2009.09.03 15:52
죽을 목숨도 살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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