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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2009.10.27 11:31

묘정의 여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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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신라 38대 원성왕 8년(792) 봄. 경주 황룡사 지해법사를 궁중으로 모셔 50일간 화엄산림법회를 열었다.
지해 스님 시봉 묘정은 발우를 든 채 우물 속을 들여다봤다. 한낮의 물 속에는 한가롭게 떠가는 구름을 등진 사미승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묘정은 한동안 물 속의 사미승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내가 아냐. 물 속의 사미는 묘정이 아니야.』

그는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며칠 전 궁녀들이 주고받던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했다.

『묘정 사미 얼굴은 와 그러노?』

『스님 되길 잘했지. 그 얼굴 보고 누가 시집가려 하겠나?』

묘정은 아직껏 한 번도 자기 용모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나를 본 사람이 까닭없이 미움을 갖다니….』

묘정은 합장하고 눈을 감은 채 부처님 앞에 엎드렸다. 마음을 진정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는 벌떡 일어나 스님에게 뛰어갔다.

『스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스님, 온몸에 증오가 가득합니다.』

『증오라니? 너 누구를 어떻게 미워한단 말이냐?』

묘정은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고했다.

『묘정아, 네가 남을 미워하는 것은 너 자신을 남보다 아끼는 까닭이며, 물 속의 너를 추악하게 본 것 또한 너의 자만심 때문이니라. 오늘부터 너를 보는 사람이 기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일도록 수도해라.』

묘정은 곧장 법당으로 갔다 부처님 앞에 무수히 절하며 기도했다. 그러나 미움은 가시지 않고 홀로 버림받은 외로움이 엄습했다.

『부처님, 모든 사람이 소승을 보았을 때 환희심을 느끼고 서로 사랑하도록 착한 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열흘, 한 달이 자나도록 쉬지 않고 기도했다. 밥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기도를 계속했다.

묘정은 설법을 듣기 위해 바다에서 올라와 우물에 머무는 자라에게 먹이를 주며 자신의 소원을 독백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며칠 후면 자라와도 이별하게 되었다.

『자라야, 내가 네게 먹이를 주기 시작한 지도 벌서 4순(40일)이 지났구나. 이제 열흘 후면 너와 헤어져야 하는데 아무리 미물이지만 네게도 정이 있겠지. 나에게 무슨 정표를 하지 않겠니?』

묘정이 말을 마치자 자라는 홀연 목을 길게 빼더니 오색 열롱한 구슬을 입 밖으로 내밀었다.

묘정은 놀랐으나 구슬을 받아 품에 간직했다. 기도는 계속됐고, 서서히 그의 가슴에서 답답하고 어둠운 그늘이 가시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을 자비의 눈길로 보게 됐다. 물 속의 모습이 자기가 아니라는 생각도 사라졌다.

사람들도 그를 대하면 어느덧 환희심을 느끼게 됐다.

이제까지 묘정을 외면하던 사람들도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여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신라 백성 모두가 묘정을 사랑했다. 법회가 끝나는 날, 법당에서는 왕을 비롯하여 왕후와 공주 그리고 문무백관이 함께 공양을 하게 됐다.

『묘정 사미, 법회가 끝나거든 돌아가지 말고 짐과 함께 왕궁에서 지내도록 해라.』

왕은 한시도 묘정을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화려한 궁중 생활에 묘정은 그만 기도를 잊고 있었다.

그 해 가을. 나라에서는 당나라 천자에게 하례 올릴 정사사신(丁使使臣)을 보내게 됐다. 간택된 사신은 한사코 묘정과 함께 가길 원했다.

『상감마마, 이번 길은 단순한 새해 하례만을 위함이 아니오니 묘정 스님과 함께 가도록 윤허하여 주옵소서.』

『험한 뱃길에 묘정은 왜?』

『묘정은 비범한 도를 지니고 있으므로 당나라에 가서 닥칠 난관 극복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아옵니다.』

왕은 허락하였다.

수만 리 뱃길을 따라 당나라에 도착한 묘정은 천자를 비롯 문무대관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행정을 맡은 대신 지관이 천자에게 아뢰었다.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묘정은 조금도 존경할 인물이 못되옵니다.』

『지관은 무슨 말을 하는고?』

천자는 노하여 지관을 노려봤다.

『폐하, 황공하오이다. 세상사람들이 묘정에게 사랑을 느낌은 그 인품과 상에 있는 것이 아니옵고….』

『그렇다면?』

『묘정이 무엇인가 신령한 물건을 몸에 지닌 탓인 줄 아옵니다.』

묘정의 품속에서 영롱한 구슬이 나오자 왕은 추상 같은 호령을 내렸다.

『일찍이 짐이 네 개의 여의주를 갖고 있다가 지난 봄 그 하나를 잃어 버렸다. 그것이 묘정의 몸에서 나오다니… 내 너를 참할 것이로되 사미임을 가상히 여겨 목숨을 살려주니 이 길로 곧 네 나라로 돌아가거라.』

묘정은 허둥지둥 신라로 돌아왔다.

실의에 빠진 그의 얼굴에서는 자비로운 미소의 빛이 가시었다. 사람들은 다시 그의 용모를 비웃었다.

묘정은 다시 한번 여의주를 갖고 싶어 우물가에 나와 자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자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의주와 자라에 대한 생각과 중오가 뒤엉켜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사람들은 침식을 잃고 우물만 들여다보는 그를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다.

어둠이 깔리고 물 속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묘정은 눈을 감았다. 귓전에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발길을 옮겨 표연히 사라진 그는 자라와 함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우물은 남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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