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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선(參禪)은 바로 이것이다(손을 흔들며). 여기에서 더 할 말은 없지만, 생각나는 대로 억지로 한 번 말해 본다. 이런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한 번 설명해 보는 것이다.

 

(2) 사람의 불행은 곧 근원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데에서 온다. 즉, 현재의 자신이 전체가 아니라 무언가 부족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에서 불만족이 시작된다.

 

(3) 사실은 현재 자신의 세계가 전체이며 모자람도 남음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은 소외감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무언가를 찾아서 헤매게 된다.

 

(4) 참선이란 현재의 자신이 곧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진실임을 확인하는 것이며, 이 진실을 확인하면 소외감에서 해방된다.

 

(5) 세계와 자신이 따로 있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6) 둘이 없다는 이 사실을 확인하면 모든 분리감(소외감)은 사라지고 안심(安心)이 된다.

 

(7) <반야심경>에서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면, 모든 장애가 사라지고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확인의 체험을 가리킨다.

 

(8) 있는 그대로 전체라는 이 체험을 하면, 이원적 분리감이 사라지고, 매 순간 순간 분리 없는 전체를 체험한다. 즉, 매 순간 순간 경험하는 하나 하나가 그대로 전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9) <화엄경>에서 말하는 하나의 티끌 속에 우주 전체가 다 들어 있다고 하는 사사무애(事事無?)가 여기서 확인된다.

 

(10) 전체의 체험이 문득 찾아오면 한 순간 모든 분리감이 사라져 버린다.

 

(11) 코끝을 스치는 바람,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 눈앞에 펼쳐진 세상에서 아무런 분리감을 느끼지 못한다.

 

(12) 모든 움직임과 모든 경험이 평등하여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13) 그러므로 누가 도(道)를 묻고, 선(禪)을 묻고, 진리를 묻고, 마음을 묻고, 부처를 물으면, 언제나 즉각적으로 그 자리에서 당장 가리키고 드러낸다.

 

(14) “도가 무엇인가?” “날씨가 맑구나.”

 

(15) “선이 무엇인가?” “밥은 먹었는가?”

 

(16) “진리가 무엇인가?” “산책이나 나가자.”

 

(17) “마음이 무엇인가?” “초여름의 녹음이 짙구나.”

 

(18) “부처가 무엇인가?” “물 한 잔 다오.”

 

(19) 전체의 체험은 시공간(視空間) 개념 속에서 분별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체로 확인되기 때문에 이 체험에는 어떤 견해나 의미도 없다.

 

(20) 뜻이나 견해나 이치가 있으면, 이미 생각 속에서 조작된 분별심(分別心)이다.

 

(21) 중생이 전체로 깨어있지 못하고 분별 속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은 바로 분별지(分別知) 때문이다.

 

(22) 분별지는 곧 이름으로 구분하는 개념이니, 바로 인간의 지식(知識)이다.

 

(23) 인간은 세계를 이름으로 분별하여 인식하니, 인간의 마음은 세계의 실상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24) 전체의 체험은 어떤 고정된 정신적 상태가 아니다. 마음이 곧 우주 전체요, 우주 전체가 곧 마음이다. 그러므로 전체의 체험은 곧 마음의 체험이다. 마음과 전체 경험은 이름이 다를 뿐, 실상은 전혀 다르지 않다.

 

(25) 마음은 언제나 머묾 없이 활발히 살아 있고 인연을 따라 활동하며 머물거나 멈추지 않는다.

 

(26) 마음이란 어떤 분별로 정해질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의 체험은 개념으로 이해될 수 없다.

(27) 근원이니, 중도니, 해탈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이름이 가리키는 것은 절대로 분별되거나 규정될 수 없는 것임을 명심하라. 그러므로 <금강경>에서는 법(法)이라는 이름에 해당하는 것을 전혀 얻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28) 공부가 잘못되는 원인은 오직 한 가지이다. 깨달음이니, 마음이니, 근원이니, 중도니, 공(空)이니 하는 것을 어떤 상태라고 정해 놓고, 그 정해진 것에 머물려 하기 때문에 실상에서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29) 불이법문(不二法門)에서는 따로 이것과 저것을 분별하여, 여기든 저기든 머물 곳이 없다. 불이법(不二法)은 곧 무주법(無住法)이다.

 

(30) 색(色)에도 머물지 않고, 공(空)에도 머물지 않을 때에 비로소 색즉시공(色卽是空)이고 공즉시색(空卽是色)이며, 색과 공의 두 쪽을 세우지 않으며, 둘이 없는 법이며, 분리감이 없는 법이다.

 

(31) 오래도록 개념으로 분별하고 이름으로 정해 놓고 이해하는 습관을 길러온 사람이 이 습관을 극복하기는 매우 어렵다. 참선 공부가 힘들다고 느끼는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32) 이러한 습관을 극복하고 참선공부를 성공적으로 하려면, 오랜 기간 동안 일심(一心)으로 한결같이 정성을 기울여 공부하여야 한다.

 

(33) 오랜 동안의 망상하든 습(習)을 극복하는 것이 참선이므로, 참선은 결코 짧은 시간 내에 성취되는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매달려 있을 때에 비로소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34) 참선 공부를 하는 길은 두 가지 이다. 첫째, 법회(法會)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 둘째, 가슴속 의문을 붙잡고 씨름하는 것.

 

(35) 참선(參禪)은 스스로 오랫동안 간절히 갈구하는 것이지, 어떤 방법이나 요령을 통하여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36) 즉, 참선은 지속적으로 선(禪)에 참여(參與)하다가 어느 순간 문득 선과 하나임을 확인하는 경험이다. 선(禪), 마음, 우주, 법계(法界)는 이름만 다를 뿐, 실상은 다름이 없다.

 

(37) 확인하고 보면 본래 하나여서 분리감이 없는 것이 정상(正常)임이 분명하므로, 전혀 낯설거나 이질적이지 않다. 마치 길을 잃고 헤매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는 <법화경>의 비유와 같다.

 

(38) 참선에 어떤 방법이나 요령을 세운다면, 이것은 생각이 만든 허상을 뒤쫓는 것이다.

 

(39) 참선하는 사람은 참선에 관하여 어떤 관념도 가질 수가 없다.

 

(40) 참선은 “안다.” “알지 못한다.”는 문제와는 전혀 방향이 다르다.

 

(41) 참선에는 아무 이치나 도리가 없으니, 참선에 관한 견해도 있을 수 없다.

 

(42) 선(禪)은 곧 마음이니, 분별할 수 있는 모습도 방법도 없다. 그러므로 선에 참여하는 사람은 갈구는 할 수 있으나, 얻기 위하여 어떻게도 손을 쓸 수가 없다.

 

(43) 그러므로 갈구하면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거나, 의문을 붙잡고 씨름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거나 의문과 씨름할 때에 생각으로 이해하여 요령을 부릴 수가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44) 참선하는 사람은 어떤 세속적 가치보다도 이 공부를 우선시 하여야 하고, 이 공부가 자기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언제나 자신도 모르게 이 문제에 매달려 있게 된다. 이와 같이 매달려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문득 전체의 체험이 찾아온다.

 

(45)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말고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

출처 : 무심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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