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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여(一如)’는 ‘한결같다’는 뜻으로서 ‘여여(如如)’와 같은 말이다. “일여하다.” “여여하다”는 말은 바로 본래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2) 본래 마음은 언제나 여여한 것이지만, 깨달아야 이 여여함이 확인된다.

 

(3) 깨달음은 곧 분별에서 해탈하는 것이니, 분별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여여함이다.

 

(4) 깨닫고 보면, 원래부터 언제나 여여한 이 한 개 마음뿐이다. 그러나 깨닫기 전에는 분별 속에 있으니, 여여한 마음과 여여하지 못한 마음이 따로 있는 것처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5) 그러므로 지금의 이 마음을 떠나 여여함이라는 경계가 따로 없다. 다만 한 개 이 마음일 뿐이니, 이 마음 안에도 여여함이란 경계가 있을 수 없고, 이 마음 밖에도 여여함이란 경계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 마음이 행하는 분별이라는 작용에 속으면 여여하고 여여하지 못한 경계가 따로 있는 것처럼 분별되지만, 이 한 개 마음에서 분별에 속지 않으면 언제나 이 한 개 마음으로서 여여할 뿐, 따로 여여한 경계는 없다.

 

(6) <금강경>에서는 “모습을 붙잡지 않으면(즉, 분별하지 않으면) 여여하여 변동이 없다(不取於相如如不動)”이라고 하였다.

 

(7) 깨어 있을 때에 의식적으로 붙잡고 있는 것이 없으면, 잠들 때에 잃어 버릴 것도 없다. 깨어 있을 때에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붙잡고 있다면, 잠들 때에 반드시 그것을 놓칠 수밖에 없다. 유위(有爲)는 물거품처럼 무상(無常)하지만, 무위(無爲)는 언제나 여여(如如)하다.

 

(8)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한결같이 여여하다.’는 뜻인 오매일여(寤寐一如)는 변함 없는 어떤 경계에 마음이 머물러 있다는 뜻이 아니다. 만약 고정된 경계에 마음이 머물러 있다면, 이것은 의식적인 조작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짓이다. 경계의 입장에서는 마음은 언제나 흘러 통하는 것이지 머물러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본래 무주(無住)인 것이다.

 

(9) 문득 깨달으면, 분별된 경계에 머물지 않게 되니, 만법(萬法)에서 일여하다. 어찌 오매(寤寐)에서만 일여하겠는가? 깨달아서 분별 경계에 끄달리지 않으면, 언제나 이 하나의 마음일 뿐이다.

 

(10) 일여하지 못한 경계와 일여한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분별심에서 깨닫기만 하면 허망하게 변동하는 모든 차별 경계가 그대로 일여한 본래 마음이다.

 

(11) 스스로 분별에 속아 헤매지 않으면, 본래 일여한 하나의 마음이다. 일여라는 차별되는 경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12) 만약 일여라는 차별된 경계가 따로 있다면, “얻을 수 있는 법이 조금도 없는 것을 일러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한다.(無有少法可得 是名阿?多羅三?三菩提)”라는 <금강경>의 말씀을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13) 화두(話頭) 공부의 과정 속에 오매일여(寤寐一如)라는 경계가 나타나는 공부의 단계가 있을 수는 없다. 만약 이미 일여(一如)라면 정해진 경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니 오매일여라는 하나의 경계가 정해질 수 없고, 만약 오매일여라는 정해진 경계에 머물러 있다면 무주법(無住法)에 어긋나니 여법(如法)하지가 못하며, 오매일여라는 거쳐야 할 단계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곧 단계적인 점수문(漸修門)을 주장하는 것으로서 돈오문(頓悟門)인 간화선(看話禪)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화두(話頭) 공부에 오매일여(寤寐一如)라는 경계가 나타나는 단계가 있을 수 없다.

 

(14) 오매일여(寤寐一如)는 경계를 붙잡고 법이라고 착각하는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제시된 약(藥), 즉 방편(方便)이다. 경계는 언제나 깨어 있을 때 의식되는 것이므로, 경계를 지속적으로 의식하는 것을 여여한 법이라고 착각한다면, 혹은 깨어서 활동하는 의식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고서, 이것을 여여한 법이라고 착각한다면,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잠이 들어 의식이 희미해지면 그 여여함도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공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제시된 약방문이 바로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한결같아야 한다는 오매일여(寤寐一如)이다. 이 병은 의식 경계를 붙잡고서 여여한 법이라고 착각하는 병이니, 이런 병에 걸린 사람은 오매일여 앞에서 자신의 공부가 잘못 되었음을 알아차려 다시 공부에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15) 의식 경계에서 법을 찾아서는 안 된다. 의식으로 분별하여 ‘이것이 바로 법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곧 유위행(有爲行)이다. <아함경>에서는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이라 하였고, <금강경>에서는 “모든 유위법은 마치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고 하였다.

 

(16) <대혜서장(大慧書狀)>의 ‘향시랑(向侍郞)에 대한 답서’에 오매일여가 어떻게 약효를 발휘하는 지가 잘 나타나 있다.

보내신 편지의 질문을 보니 바로 제가 36세 때에 의심했었던 것이더군요. 읽어보니 자신도 모르게 가려운 곳을 긁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일찍이 이 문제를 가지고 원오(圓悟) 선사(禪師)에게 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원오 선사는 다만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만, 그만하고, 망상을 쉬어라. 망상을 쉬어라.” 제가 다시 말했습니다. “제가 아직 잠이 들기 전에는 부처님이 칭찬하신 바에 의거하여 행하고 부처님이 비난하신 바를 감히 범하지 않으며, 이전의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에 의거하고 또 스스로 공부를 하여 조금 얻은 바도 성성하게 깨어 있을 때에는 전부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침상에서 잠이 들락말락할 때에 벌써 주재(主宰)하지 못하고, 꿈에 황금이나 보물을 보면 꿈 속에서 기쁘함이 한이 없고 꿈에 사람이 칼이나 몽둥이로 해치려 하거나 여러 가지 나쁜 경계를 만나면 꿈 속에서 두려워하며 어쩔 줄 모릅니다. 스스로 생각해보면 이 몸은 오히려 멀쩡하게 있는데도 단지 잠 속에서 벌써 주재할 수가 없으니, 하물며 죽음에 임하여 육체를 구성하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이 흩어지며 여러 고통이 걷잡을 수 없이 다가올 때에 어떻게 경계에 휘둘리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에 이르러면 마음이 허둥지둥 바빠집니다.” 원오 선사가 이 말을 듣고 다시 말했습니다. “그대가 말하는 허다한 망상이 끊어질 때에, 그대는 스스로 오매(寤寐)가 늘 하나인 곳에 도달할 것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에는 믿지 않고 매양 말하였습니다. “내 스스로를 돌아보면 깨어남(寤)과 잠(寐)이 분명히 둘인데, 어떻게 감히 입을 크게 벌려 선(禪)을 말하겠는가? 다만 부처님께서 설하신 깨어남과 잠이 늘 하나라는 말이 망녕된 말이라면 나의 이 병을 없앨 필요가 없겠지만, 부처님께서는 진실로 사람을 속이지 않으시므로 이것은 곧 내 스스로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뒤에 원오 선사가 “모든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에 따뜻한 바람이 남쪽으로부터 불어온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서 홀연 가슴에 걸려 있던 것이 내려갔습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부처님의 말씀이 진실한 말이며 있는 그대로의 말이며 속이지 않는 말이며 망녕되지 않은 말로서 사람을 속이지 않는 참으로 커다란 자비로서 몸을 가루로 만들어 목숨을 버리더라도 갚을 수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가슴에 걸려 있던 것이 없어지고 꿈꿀 때가 바로 깨어 있는 때이며 깨어 있는 때가 바로 꿈꾸는 때라는 것을 알고나서야, 비로소 부처님이 말씀하신 오매(寤寐)가 늘 하나라는 것을 스스로 알았습니다. 이러한 도리는 꼭 집어내어 남에게 보여줄 수도 없고, 남에게 말해 줄 수도 없습니다. 마치 꿈 속의 경계 같아서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습니다.

 

(17) 깨어 있을 때에 아무것도 붙잡고 있는 것이 없고 머물러 있는 곳도 없으니, 잠들었을 때에 잃을 것 역시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오매(寤寐)가 일여(一如)하다는 것이다. 만약 깨어 있을 때에 무엇을 한결같이 붙잡고 있거나 한결같이 머물러 있는 경계가 있다면, 잠이 들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놓치니 어떻게 오매가 일여하겠는가? 무엇을 한결같이 붙잡고 있거나 어디에 한결같이 머물러 있다면, 이것은 곧 유위(有爲)의 분별이다. 유위는 <금강경> 제32분에서 말하듯이 꿈같고 물거품같고 환상같은 망상(妄想)이다. 원오 선사가 대혜에게 ‘그대의 망상이 끊어져야 오매가 일여하게 된다’고 말한 뜻이 바로 이것이다. 대혜가 깨어 있을 동안 성성하게 깨어서 자신의 마음을 주재(主宰)한다고 하는 바로 그 행위가 곧 유위(有爲)요 망상인 것이고, 대혜가 원오의 설법을 듣고 문득 가슴에 걸린 것이 내려갔다는 것은 이런 유위에서 벗어나는 체험을 했다는 뜻이다.

 

(18) 문득 깨달으면 언제나 일여하지 않음이 없으니, 오매일여라는 것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취하고 버리는 분별에 머물면 차별의 망상세계에 떨어지는 것이고, 분별에 매여 있지 않으면 모든 차별세계가 그대로 한결같이 일여하다. <화엄경>에서는 “하나가 곧 다수요, 다수가 곧 하나다.(一卽多 多卽一)”라고 하였고, <유마경>에서는 “만법의 모습을 잘 분별하면서 첫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善分別諸法相 於第一義而不動)”라고 하였고, <반야심경>에서는 “(차별되는) 오온이 모두 (한결같은) 공이다.(五蘊皆空)”라고 하였고, <금강경>에서는 “모든 차별되는 모습이 차별되는 모습이 아님을 깨달으면 곧 여래를 만난다.(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차별되고 분별되는 만법이 본래 차별 없는 일여이다. 차별되는 만법을 떠나 따로 일여라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19) 이처럼 일여와 일여 아님은 따로 있는 경계가 아니다. 다만 스스로 분별을 따라가 경계에 머물면 일여란 없는 것이고, 깨달아 분별에서 풀려나면 ‘일여니, 일여가 아니니’ 하는 차별은 사라지는 것이다.

 

(20) 문득 깨달아서 분별에서 풀려나면 무상하게 변해가는 모든 차별되는 경계에서 언제나 일여할 것이고,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하더라도 일여는 없다.

 

(21) 깨닫지는 못하고 분별심으로 일여라는 경계를 찾으려 한다면, 언제나 자신의 마음이 조작하는 경계에 속을 뿐이다. 이런 경우에 필요한 방편의 약이 바로 오매일여이다.

 

(22) 분별망상의 꿈속에서 오매일여를 찾으면, 오매일여도 역시 분별망상의 꿈이다. 분별망상의 꿈에서 깨어나면, 깨어 있을 때와 잠잘 때라는 차별경계가 곧 하나로서 같으니 오매가 일여하다고 한다.

출처 : 무심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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