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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깨달음이란 분별망상(分別妄想)을 벗어나 하나의 본래 마음이 뚜렷한 것일 뿐, 어떤 지혜(智慧)나 도리(道理)를 새로 얻는 것이 아니다.

 

(2) 구름이 걷히면 맑은 허공에 태양이 빛나듯이, 망상(妄想)이 사라지면 본성(本性)이 뚜렷이 드러난다. 달리 얻을 도리도 지혜도 없다.

 

(3) 불교(佛敎) 즉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우리의 망상(妄想)이라는 병(病)을 치료하기 위하여 처방된 약(藥)이다.

 

(4) 망상이라는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처방된 약이 곧 불교(佛敎)이다.

 

(5) 망상이라는 병이 치유되어 자신의 본래 마음이 뚜렷이 드러나면 그 뿐, 다시 불교라는 약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6) 약은 병을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방편일 뿐, 약 자체가 곧 병이 치료된 건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병이 없으면 약도 필요 없는 것이다. 만약 병이 없는데도 약을 계속 먹는다면, 그것은 약이 아니라 또 하나의 병이다.

 

(7) 불교라는 약의 가장 중요한 약성분은 연기법(緣起法)과 중도(中道)라는 이름의 약성분이다.

 

(8) 연기법과 중도라는 약성분이 발휘하는 효험은 망상(妄想)인 분별(分別)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9) 우리의 마음이 하나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분별(分別) 때문이다.

 

(10) 분별이란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을 나누어 각각을 따로 세워 두는 것이다.

 

(11) 분별은 곧 삼라만상을 각각 따로따로 인식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즉, ‘사과’는 ‘사과 아닌 것’과 분별될 때 ‘사과’라는 이름을 가진 독립적 사물로 인식된다. ‘사과’, ‘배’, ‘행복’, ‘불행’, ‘선’, ‘악’, ‘옳다’, ‘그르다’ 등등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모든 삼라만상은 분별됨으로써 제각각 다른 이름을 가지고 성립된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란 분별을 통하여 인식된 세계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만법유식(萬法唯識; 삼라만상은 오직 인식됨으로써만 존재한다)이라고 한다.

 

(12) 이름은 뜻과 모양에 대응하여 붙인 것이다. 즉, 이름이 곧 뜻이고 모양이다. 그러므로 이름으로 분별한다는 것은 곧 뜻과 모양으로 분별한다는 것이고, 뜻과 모양을 다르게 인식하여 분별한다는 것은 곧 다른 이름을 붙여 분별한다는 것이다.

 

(13) 분별의 원리가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이 각각 구분되어 성립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이것 아닌 것’이 있을 때에 ‘이것’이고, ‘이것 아닌 것’은 ‘이것’이 있을 때에 ‘이것 아닌 것’이다. 즉, ‘이것’은 ‘이것 아닌 것’에 기대어 ‘이것’이고, ‘이것 아닌 것’은 ‘이것’에 기대어 ‘이것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 아닌 것’이라는 바탕 위에서 ‘이것’이 되며, ‘이것’이라는 바탕 위에서 ‘이것 아닌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은 함께 있거나 함께 없거나 함께 생겨나거나 함께 없어지는,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즉,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은 이름만 다를 뿐 사실은 하나이다.

 

(14) 이처럼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이 동시에 있고 동시에 없고 동시에 생겨나고 동시에 사라지는 것을 불교에서는 연기(緣起) 혹은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한다.

 

(15)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의 표현은 이렇다 :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도 생기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저것’은 곧 ‘이것 아닌 것’이다.)

 

(16) ‘사과’는 ‘사과 아닌 것’에 의하여 ‘사과’가 되고, ‘사과 아닌 것’은 ‘사과’에 의하여 ‘사과 아닌 것’이 된다. 즉, ‘사과’와 ‘사과 아닌 것’은 이름으로는 다르게 구분되지만, 사실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사과’는 ‘사과 아닌 모든 삼라만상’과 이름으로는 다르게 구분되지만 사실은 하나이다. 이 세계의 삼라만상 하나하나가 전부 이와 같다. 각자는 그 자신 아닌 모든 것과 이름으로는 다르게 구분되지만, 사실은 구분되지 않는 하나이다. 즉, 모든 삼라만상은 그 자신 아닌 다른 모든 것들에 의지하여 그 자신이 되므로, 각각의 삼라만상은 나머지 모든 삼라만상과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삼라만상은 제각각 성립되어 있지만, 하나의 세계이다. <화엄경>에서는 이것을 인드라의 그물이라 하였다.

 

(17) 이처럼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은 다른 이름으로 분별되지만 하나이다. 즉, 분별은 삼라만상을 하나하나 나누고 있지만, 동시에 삼라만상이 하나라는 사실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8) 그러나 우리가 동전의 앞면을 볼 때에는 뒷면을 보지 못하고 뒷면을 볼 때에는 앞면을 보지 못하듯이, 우리가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을 따로따로 구분할 때에 우리는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이 다르다는 구분만 할 뿐,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이 또한 떨어질 수 없는 하나라는 사실은 잊어 버린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분별이 가진 습관적인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진실을 보려면 하나에 서서 양면을 보아야 하는데, 양면을 각각 따로 보고 그것이 전체인양 오해하는 것이다. 이런 오해를 일러 망상(妄想)이라 한다.

 

(19) 세계를 분별할 때에 항상 하나하나의 삼라만상을 구분해 보기만 할 뿐, 삼라만상이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모른다. 이처럼 분별은 언제나 하나의 전체에 통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즉, 분별은 언제나 변견(邊見; 한 쪽으로 치우친 견해)이다.

 

(20) 치우친 변견은 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망상(妄想)이라 한다. 우리가 가진 중생심(衆生心)이라는 병(病)은 바로 분별로 말미암은 망상인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분별하고 이해하고 살아가는 세계는 곧 분별이고, 변견이고, 망상이다.

 

(21) 우리가 망상 속에 있으면 진실(眞實)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번뇌(煩惱)를 느낀다. 즉 망상 속에 있으면 꼭 본래의 자신을 잃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본래의 자신을 잃어 버린 듯하여 본래의 자신에 대한 갈증이 나는 것이 바로 번뇌이다. 마치 부모를 잃고 헤매는 아이가 불안해 하며 부모를 그리워 하듯이, 번뇌는 불안 속에서 헤매며 구원(救援)을 바라는 심리이다. 그러므로 번뇌를 길을 잃고 헤맨다는 뜻인 미혹(迷惑)이라고도 이름한다. 망상이 곧 번뇌이다.

 

(22) 망상이라는 병은 진실한 본래 모습인 실상(實相)이라는 건강(建康)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세계, 현재의 삶은 그대로 완전한 실상이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분별하기 때문에 스스로 치우친 변견에 떨어져 스스로 헛된 망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망상이라는 병은 실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만들어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는 실체가 없는 허망한 병인 것이다. 그러므로 실재하지 않는 헛된 모습을 본다고 하여 망상(妄想) 혹은 망상(妄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23) 망상이라는 병은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착각(錯覺) 때문에 일어난 헛된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망상이라는 병을 치료하면 될 뿐, 다시 실상(實相)이라는 건강(建康)을 찾을 필요는 없다. 병이 치유되면 건강인 것이지, 다시 얻어야 할 건강이 따로 있지는 않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파사(破邪) 즉 현정(顯正)이라고 한다. 삿됨을 부수는 것이 곧 바름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삿됨을 부수는 파사(破邪)와 바름을 드러내는 현정(顯正)은 동일한 것이라는 말이다.

 

(24) 불교는 이처럼 망상이라는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처방된 것이다. 망상이라는 병의 본질은 곧 분별이요 변견이며, 불교라는 치료약의 본질은 곧 분별과 변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으로서 연기법(緣起法) 혹은 중도(中道)라고 부르는 것이다.

출처 : 무심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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