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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열전
2019.12.30 17:51

48. 한국편 - 한암선사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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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한암(漢嚴) 선사

(5) 계오(契悟)의 경계(境界)

한암은 30세 되던 1905년 봄에 양산(梁山) 통도사(通度寺) 내원선원(內院禪院)으로부터 조실(祖室)로 와 달라는 초청장을 받고 거기에 가서 젊은 선승(禪僧)들과 더불어 5,6년의 세월을 보냈다.

1920년 봄에 선승들을 해산시키고 다시 평안도 맹산(孟山 : 한암의 고향) 우두암에 들어가서 홀로 앉아 보임(保任 : 깨달은 眞理를 다시 硏磨한다는 뜻)에 힘쓰고 있었다. 어느 날 부엌에 홀로 앉아 불을 지피다가 홀연히 계오(契悟 : 보다 깊은 깨달음)의 경계(境界)하였다.

그 계오한 경계가 성주의 청암사 수도암에서 개오(開悟)한 때와 조금도 차이가 없으나 다만  한 줄기 활로가 분명해졌을 뿐이었다. 때는 한암의 나이 35세 되던 겨울이었다. 그는 이 경지를 보고 난 후 또 우연히 시 두 수를 읊었다.


부엌에서 불붙이다 별안간 눈 밝으나
이걸 쫓아 옛길이 인연 따라 분명하네.
날 보고 서래의를 묻는 이가 있다면
바위 밑 우물 소리 젖는 일 없다 하리.


마을 개 짖는 소리에 손님인가 의심하고
산새의 울음소리는 나를 조롱하는 듯.
만고에 빛나는 마음의 달이
하루아침에 세상 바람을 쓸어 버렸네.


한암은 이때부터 중생이 서로 의탁하여 사는 이 세상에 들지도 않고 거기서 나지도 않으면서 수시수처(隨時隨處)에서 종횡무진으로 선풍을 크게 떨쳤다. 이리하여 한국의 선교사(禪敎史)는 한암에 의하여 한층 빛나게 된 것이다


한암은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에 있었고, 송만공(宋滿空)화상은 예산(禮山) 정혜사(定慧寺)에 있었다. 만공화상은 당시 선(禪)의 경지에 있어서 한암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사로서 그 이름이 높았다. 만공에게도 한암 못지않게 여러 가지 일화가 있다.


여기 한암선사와 만공선사의 사이에서 벌어진 법(法)의 문답 몇 토막을 소개하여 보겠다.


만공은 한암에게 법을 물었다.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니 설상가상(雪上加露)이 되었다. 지장암 도량(道場)내에 업경대(業鏡臺)가 있으니 스님의 업(業)이 얼마나 되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한암은 실로 기상천외(奇想天外)의 대답을 하였다.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마땅히 30방망이를 맞아야 옳다"


만공은 다부지게 되물었다.
“맞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고?"

한암은 여유를 두지 않고 대답하였다.
“지금 한창 잣 서리할 때가 좋으니 속히 올라오라"


만공은 쉬지 않고 다시 말했다.
“암두(岩頭)의 잣 서리할 때에 참예하지 못함은 원망스럽지만 덕산(德山)의 잣 서리할 시절은 원하지 않노라"

한암은 곧 응수하였다.
“암두와 덕산의 명함은 이미 알았거니와 그들의 성은 무엇인가?"


두 선사의 이 동문서답 같은 법문답은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
“도둑이 지나간 후 3천 리가 넘었거늘 문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성을 물어 무엇하랴"

이런 만공의 물음에 대하여 한암은 또 대답하였다.
“금선대 속에 있는 보화관(寶花冠)이 금옥(金玉)으로도 비하기 어렵다"


만공선사는 마지막에 네모진 백지 위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서 한암에게 보냈다고 한다.


또 일정시대(日政時代)에 경성제대 교수로 있던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명승(名僧) 사또오가 한국 불교계를 전부 돌아본 후 마지막으로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의 한암에게 와서 법문답을 한 일이 있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大義)입니까?"

사또오는 말문을 열었다.

조용히 앉아 있던 한암은 이 물음에 대하여 거기 놓여 있던 안경집을 들어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사또오도 만만치 않은 위인이다. 그는 물었다.

“스님은 일대장경 (一大藏經)과 모든 조사어록(祖師語錄)을 보아오는 동안, 어느 경전과 어느 어록에서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까?"

한암은 가만히 사또오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적멸보궁(寂滅寶宮)에 참배나 갔다 오라"


한참 있다가 사또오는 또 물었다.

“스님께서는 젊어서부터 입산(入山)하여 지금까지 수도하여 왔으니, 만년의 경계와 초년의 경계가 같습니까, 아니면 다릅니까?"

한암은 잘라 대답하였다.

“모르겠노라"


사또오가 일어나 절을 하면서 활구법문(活句法門)을 보여 주어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인사하였다. 이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암은 말했다.

“‘할구’라고 말하여 버렸으니 벌써 ‘사구(死句)’가 되고 말았군"

사또오는 3일 동안 유숙하고 한암이 살던 상원사를 떠났다.


뒷날 여러 사람이 모인 어느 강연석상에서 사또오 교수는, “한암스님은 일본 천지에서도 볼 수 없는 인물임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둘도 없는 존재다"라고 한암을 평한 일이 있다. 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 조선총독부의 일인 고관들과 우리나라를 방문한 일인 저명인사들이 상원사로 한암을 찾아오는 일이 잦았다. 그들은 한암과 법담(法談)을 몇 마디 주고받고서는 반드시 깊은 감명을 받고 그의 곁을 떠났다. 한암과 그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기발하고도 선묘한 선리 문답이 벌어졌다.


(6) 득의(得意)의 만년(晩年)


한암은 50세 되던 1925년 서울 근방의 봉은사(奉恩寺)의 조실(祖室) 스님으로 있었다. 그러나 곧 맹세하기를,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상춘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 하면서, 또다시 오대산(五臺山)에 들어갔다. 그 후 27년 동안 그는 동구 밖에 나오지 않은 채, 76세의 나이로 일생을 거기서 마쳤다. 그때에 그의 법랍(法臘 : 중이 된 해부터 세는 나이)은 54세였다.

 

그는 오대산에 처음 들어올 때 소지했던 단풍나무 지팡이를 중대(中臺) 뜰 앞에 꽂았다. 일영(一影)을 재어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꽂힌 자리에서 잎사귀와 가지가 돋아 나와서 하나의 훌륭한 정자나무가 되었다. 지금 오대산 중대 앞에 있는 정자나무가 바로 스님의 지팡이였다고 한다.


부석사(浮石寺)에는 의상법사(義湘法師)가 꽂았다는 지팡이가 있고, 순천 송광사(松廣寺)에는 보조국사(普照國師)가 꽂았다는 지팡이가 지 금도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런데 신라 고승과 고려 국사의 지팡이와 지금 그 자리에 있다고 하는 나무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나무가 바로 옛날 고승들이 꽂았던 지팡이라고 한다.


역사가 오랜 절 마당에는 여러 가지 전설과 비화가 있다. 어찌보면 마당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굴러다니는 돌 하나에도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런지 모른다. ‘오대산’하면 ‘방한암’ ‘방한암’하면 ‘오대산’이라고 할 만큼 오대산과 한암 사이에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다. 따라서 오대산에 있는 사찰과 암자와 적멸보궁의 주변에는 한암의 면목을 전하여 주는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한암은 주변에 여러 가지 이야기만 남겼을 뿐 평소부터 저술하여 후세에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겨우『일발록(一鉢錄)』한 권을 저술하였는데, 상원사가 1947년 불에 탔을 때 그 한권의 원고마저 재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아까운 일이다.


한암의 밑에서 득법(得法)한 제자도 몇 사람 있는데 그 가운데서 보문(普門)과 난암(暖庵)이 가장 지행(志行)이 뛰어나서 자못 종풍(宗風)을 크게 떨치더니, 보문은 아깝게도 일찍 돌아갔고, 난암은 일본에 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한암은 1951년에 가벼운 병이 생겼다. 병이 난 지 7일이 되는 아침에 죽 한 그릇과 차 한잔을 마시고 손가락을 꼽으며, “오늘이 음력 2월 14일이지" 하고 말한 후 사시(巳時 : 午前 열시)에 이르러 가사와 장삼을 찾아서 입고 선상(禪床) 위에 단정히 앉아서 태연한 자세를 갖추고 죽었다.


옛날부터 득도(得道)한 분들이 모두 생사에 자재(自在)함은 그 수도가 용무생사의 경계에 이른 까닭이다. 당(唐)나라의 등은봉(鄧隱峰)선사는 거꾸로 서서 돌아갔다고 하며 관계(灌溪)는 자기 몸을 태울 화장(火葬) 나무를 미리 준비하였다가 그 위에 앉아서 제자들에게 불 지르라고 한 마디 명령하고, 그 불이 다 붙기 전에 돌아갔다고 한다.

 

고려의 보조국사는 법상(法床)을 차려 놓고 제자들과 백문백답(百文百答)을 끝마친 다음, 법상에서 내려와 마루에 걸터앉은 채 그대로 조용히 열반하였다. 죽음이 범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공포와 괴로움이 되고 있으나 보조국사나 한암선사같이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서는 죽음이 아무런 거리낌도 되지 못한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만나더라도, 밤에 잠이 들듯이 아주 태연하게 죽을 수 있다.


이리하여 9살에 “반고씨 이전에 무엇이 있었느냐"고 ‘궁극(窮極)’을 캐묻던 어린 소년은 76세 때에 바로 그 반고 이전의 궁극의 세계로 조용히 사라져 갔다. 아니, 어쩌면 한암선사는 그 궁극의 세계를 넘어서 더 멀리로 날아 갔을런지도 모른다.

 

무비 스님

 

[출처 :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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