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시절 부설(浮雪)은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 시대에 찬란했던 문화의 중심지인 신라의 수도 경주 성내에서 진씨댁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의 이름은 진광세(陳光世)이며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한 재질에 용모가 비범하여 그 부모가 기뻐함은 물론이요, 동네 사람들에게 까지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아 가며 곱게 자라나 진씨댁(陳氏宅)에 큰 인물이 났다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부설은 글을 배울 때도 한 번 배운 것은 다시 묻는 일이 없고, 오히려 배우지 않은 것도 복습하듯 깨우쳐 나갔다. 또한 아이들끼리 놀 때도 아이 놀이가 아니고 어른들이 노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서쪽을 향하여 몇 시간씩 있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 밑에 혼자 앉아 있기도 하며, 중을 만나면 기꺼워하고 살생하는 것을 보면 비웃고 하더니, 20세가 되던 해에 홀연히 집을 등지고 출가(出家)할 결심을 하고 불국사 원정선사(圓淨禪師)를 찾아가 중생이 불법(佛法)에 들어가는 길을 안내 받고 원정스님께 출가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원정스님께 돌아가 몸을 의지하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승려로서 지켜야 할 모든 행동규범을 익혀 광세(光世)란 이름을 버리고 법명(法名)을 받으니 부설(浮雪)이란 호(號)로 비구(比丘)가 되었다. 아무리 만행(萬行)을 쉬고자 하여도 밤을 쉬어서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집 저 집으로 쉬어 갈 곳을 찾는데 동네 사람이 구무원(仇無罵)의 집으로 가서 쉬기를 청하라고 일러 주기에 찾아가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하니 주인이 쾌히 승낙 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세 사람은 하룻밤을 자고 가기로 하고 여장을 풀었다. 이 무렵 (백제 의자왕 10년경) 김제군 성덕면 묘화리(金堤郡 聖德面妙載里=지금의 妙羅里)에는 성은 구씨(仇氏)요, 이름은 무원(無駑)이라는 불교(佛敎)신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늦은 나이에 딸 하나를 얻었으니 무남독녀(無男獨女) 외동딸이었다. 귀여운 자손으로 태어나 이름은 묘화(妙花)라고 하였는데, 꿈에 연꽃을 보고 잉태하여 태어난 딸로 태몽 때문에 묘화(妙范)라 이름했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무남독녀 묘화는 말을 못하는 천성(天性)의 벙어리였다. 이로 인하여 구씨(仇氏) 내외는 그를 몹시 한스럽게 생각하였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 소녀가 부처님 곁에 피었던 금단의 꽃인 연꽃을 꺾은 죄 값으로 이승의 벙어리가 되어 추방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묘화는 자랄수록 얼굴은 백옥 같고 자태는 연꽃 같으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인근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비록 말은 못하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선녀(仙女) 같은 묘화를 본 총각들은 앞을 다투어 청혼하였으나 묘화는 모두 거절하였다. 구무원(仇無罵)은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덕망이 높고 인심이 후하기로 소문이 나있어 수행승(修行僧)을 만나면 크게 환영하여 식사를 대접하고 쉬어 가게 하였다. 세 분 스님을 영접하여 사랑채에 모시고 중생이 불법에 들어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며, 도를 닦던 덕담과 불교의 이치를 가르치는 설법을 듣기 소원하던 차에 세 수도승을 일시에 대면하게 되었으니 기쁨으로 음식물 대접하고 구무원과 세 수도승이 통성명을 하고 여러 날 걸어 강원도 오대산까지 가게 된 이야기며 법담으로 밤이 깊어만 갔다. 묘화는 말하기를 부설(浮雪) 스님과 소녀(少女)는 전생(前生)에도 인연(因緣)이 있었고, 금생(今生)에도 인연이 있으니 인과(鬪課)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 바로 불법(佛法)이라 하면서 전생과 금생 그리고 후생의 삼생연분(三生緣分)을 이제야 만났으니 죽기를 맹세하고 부설스님을 남편으로 섬기겠다고 한바탕 이야기를 늘어놓자, 부모는 20여 년이란 세월을 말을 못하다가 말문이 터지게 된 것도 대견하지만 부처님의 진리(眞理)를 말함에는 입만 딱 벌리고 할 말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더더욱 전생, 금생, 후생에서의 삼생연분(三生緣分)을 만났으니 부녀자로서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묘화(妙花)에게 감히 간섭하여 말릴 수조차 없었다. 부설(浮雪) 스님도 자작자수(自作自受=자기가 저지른 죄로 자기가 그 罪果를 받음)와 인(圈)으로 하여금 과(果)가 따르는 법이며 자기를 만나기 위하여 생후 20년간을 말을 안 했던 묘화(妙花)를 차마 어찌 할 수 없어서 두 불도의 길동무를 작별하니 영희(靈熙), 영조(靈照) 두 스님은 오대산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가고 부설(浮雪) 스님은 거사라 자칭하고 묘화의 집에 머무르기로 하고, 묘화와 부설 .두 사람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혼례식을 올렸다. 그 후 두 사람은 바로 이웃 마을인 고현리(古縣里=속칭 부서울) 월미산 아래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고현리는 옛 현청 소재지로 널리 알려진 곳인데 백제시대에 무근촌현(武斤村縣)이라 칭하였고, 신라시대에 와서 무읍(武邑)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시대에 와서 부윤현으로 또 다시 개칭되면서 만경현에 예속되었다가 폐현이 된 곳이다. 남매가 성장하자 거사(居士)는 병(病)이 있다는 거짓 핑계로 서해(西海) 백강변(白江邊)에 초려(草麗=초가집)를 지으니 이곳이 망해사(望海寺)이다. 부설은 이곳에서 석가세존이 6년 동안 한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불경을 외웠음과 달마대사(達磨大師)가 9년 동안이나 벽을 바라보고 앉아 참선했음을 본받아 심공을 잠수하던 중 어느 날 옛날 친우(親友)인 영희(靈熙), 영조(靈照) 두 대사(大師)가 참례를 마치고 두능(杜陵=지금의 만경) 해안에 자리 잡은 망해사로 찾아와 희롱적인 태도를 보이자 부설(浮雪)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3인의 공부의 서투름과 의숙 함을 시험하여 보자" 면서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은 낙수병(諾水添) 3개를 처마에 높이 매어 달고 세 사람이 지팡이로 일시에 때리자고 하니 두 대사(영희, 영조)가 이에 응락하고, 낙수병을 때리니 두 개의 병은 깨어지면서 물이 쏟아져 버렸다. 그러나 부설거사가 때린 병은 깨어졌으나 물은 처마에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또 부설거사와 결혼한 구묘화(仇妙花)는 환하게 밝은 대낮에 바람과 구름으로 조화를 부려 때 아닌 비와 눈을 내리게 하였고, 그 비 한 방울이나 눈 한 조각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신통한 도술을 보였다고 한다. 이 때 부설거사는 두 대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들이 두루 높은 지식 있는 이를 찾아보았고 오랫동안 총림(叢林)에서 세월을 보냈는데 어찌하여 생(生)과 멸(滅)을 자비심으로 돌보고 보호하며 진상(眞常)을 삼고 환화(幻化)를 공(空)으로 하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본성을 지키지 못하는가 다가오는 업(業)에 자유가 없음을 증험하고자 하니 상심(常心)이 평등(平等)한가 평등(平等)하지 못한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미 그러하지 못하니 지난날의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자는 경계는 어디로 갔다는 것이며 함께하라는 맹세는 아득히 멀구나.] 그 후 부설거사와 묘화부인은 등운(登雲)과 월명(月明) 두 자녀에게 출가하여 승려가 되게 하고, 두 자녀를 위하여 지금의 변산(邊山)에 있는 등운암(登雲庵)과 월명암(月明庵)을 지었으니. 부설과 묘화의 유적(遺蹟)이라 하겠다.
耳聽無聲絶是非(이청무성절시비) 分別是非都故下(분별시비도방하) 但看心佛自歸依(단관심불자귀의)
귀에 소리 없는 소식 들으니 시비가 끊인다. 분별과 시비를 모두 놓아 버리고, 단지 마음의 부처를 보았으니 심불에 돌아가 의지하겠노라.」
金銀玉帛積似邱(금은옥백적사구) 臨終獨自孤魂逝(림종독자고혼서) 思量也是虛浮浮(사량야시허부부)
금은보화 비단이 언덕만큼 쌓였어도 죽을 땐 다 버리고 외론 넋만 돌아가니, 생각하면, 이 또한 모든 것이 부질 없을레.
爵位재高已白頭(작위재고이백두) 閻王不伯佩金魚(염왕불백패금어) 思量也是虛浮浮(사량야시허부부)
이제 겨우 고위(高位)인데 머리는 백발이네 염라대왕은 금어(金魚)도 겁을 내지 않나니 생각하면, 이 또한 모든 것이 부질 없을레.
千首詩輕萬戶候(천수시경만호후) 增長多生人我本(증장다생인아본) 思量也是虛浮浮(사량야시허부부)
시 구절 천 편으로 만호 제후 조롱해도 인아(人我)의 미망(迷妄)만이 다생(多生)토록 더욱 느니, 생각하면, 이 또한 모든 것이 부질 없을레.
感得天花石點頭(감득천화석점두) 乾慧未能免生死(건혜미능면생사) 思量也是虛浮浮(사량야시허부부)
하늘에선 꽃비 내리고 돌도 고개를 끄덕여도 알음알이 지식으론 生死超脫(생사초탈)을 면치 못하나니 생각하면, 이 또한 모든 것이 부질 없을레.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 가는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대로 살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대로 보고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정 물건 사고파는 것은 세월대로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낸다.
■ 繼 吟(계음)
그대와 함쩨 적적한 것을 법으로 삼아서
구름과 학을 대리고 함께 지냈네.
둘이 아닌 것이 둘이랄 것조차 없음인 줄 알았으니
前三三 後三三을 누구와 함께 논할건가?
한가히 뜨락을 바라보니 꽃은 한 창 피어 웃고
무심히 창가에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었노라
곧장 여래지를 찾아 들 수 있을진대
어찌 구구하게 오랜 세월 참구하랴?
■ 和 韻(화운)
알아들음은 평등을 따르나 행에는 평등함이 없으니 (알아듣는 것은 마음과 마음이니 평등하나 행동은 서로 다르니)
(깨달음은 마음 홀로 얻고 중생제도는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있다.)
진리에 맡긴 세상살이 마음 아니 넓으며 (그럴 수도 있다며 억지 부리지 않는 마음으로 처세하니 그 마음도 넉넉하다.)
(처자식 떠나지 않은 채 득도하니 몸도 마음도 상할 일이 없다.)
구슬 속의 그림 손바닥에 쥐니 붉고 푸름 확연하나 (정신 속의 사연들 생각으로는 실감나지만)
(내가 지어내서 내가 되돌아보는 기억 속의 얽매임이다.)
색과 소리 가둘 틀 없음을 확실히 얻으니 (색깔, 소리란 찰나마다 변화하는 헛것임이 새삼 인정되니)
(단지 산 속에서 공염불하며 쓸데없는 시간 허비할 일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