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한국어
고승열전
2019.12.24 11:34

22. 한국편 - 정중무상 선사

조회 수 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34. 정중무상(淨衆無相) 선사

정중무상(淨衆無相 684-762) 신라스님 益州金和尙(입당구법歸化僧), 성은 金씨(신라국왕의 제3자). 本國 群南寺로 출가수계한 후 開元16년(728, 성덕왕 27년) 入唐하여 玄宗을 拜謁하고 蜀땅에 들어가 資州(사천성) 德純寺 處寂 (648-732 또는 665-732;智詵의 제자)에게 師事하여 摩納袈婆를 받고 법을 잇다.

항상 頭院行을 하고 깊은 계곡의 바위아래에서 선정을 익혔으며, 후에 成都府 淨衆寺에 주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20년간 독자적인 ‘引聲念佛과 無憶· 無念·莫忘의 三句說法’을 선양하였고 益州節度使 章仇兼瓊의 귀의를 받아 淨衆派를 형성하였다.

그는 깊은 계곡 바위아래에서 참선하곤 하다가 裸身으로 猛獸에게 布施하려 하면 두마리의 맹수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냄새만 맡고 떠나며, 城中에서 낮에는 무덤에서 밤에는 樹下에서 좌선하는 두타행을 계속하니 사람들이 무덤앞에 精舍를 지어주는 등 중국인에게 그는 神異를 자주 보이는 ‘感通의 高僧’ 이었다(송고승전 19). 寶應원년 5월 79세로 示寂하니 益州刺史 韓派(굉)이 碑文을 짓고 ‘東海大師塔’ 이라 하였다.

최근의 學說에 의하여 티벳의 古史書 [바세]에 의하면 티벳불교의 初傳인 ‘라사의 宗論’ 이전에 이미 익주김화상의 淨衆禪法이 티벳트에 소개된 史實이 밝혀졌다.(山口瑞鳳씨의 “티벳불교와 新羅金和尙” 등) 제자로 保庸無住 馬祖道一, 淨衆神會, 王頭陀 등. (曆代法寶記, 송고승전19·무상전, 圓覺經大流抄3,下, 北山錄6, 전당문780·四證堂牌銘)

 

무비 스님

 

[출처 : 염화실]

 


정중무상(淨衆無相)선사〈상〉

 

사천 선종 법계 4대 조사 중 一人

 

무상선사(684~762)는 신라인이며 속성은 김씨이다. 김화상(金和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는 본래 신라왕의 셋째 왕자 출신이라 전해지며 왕이 총애하여 왕위를 계승할 것을 희망했으나 정작 본인은 왕위에는 무심하여 출가하여 사문이 됐다. 그에게는 본래 막내 누이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혼사(婚事)가 진행되자 스스로 칼로 얼굴에 상처를 내어 속가를 등지고 출가했다. 누이가 도를 닦을 마음을 내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녀자도 저와 같이 도에 결연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하물며 대장부로서 어찌 머뭇거리고 있겠느냐”며 부왕의 뜻을 거절하고 머리를 깎았다고 한다.

 

출가하여 제방을 두루 참방하며 수도하다 바다 건너 당나라로 유학의 길에 올랐으니, 당 개원16년(729)이었다. 무상이 장안에 도착하자 당 현종은 그를 영접하고 선정사(禪定寺)에 머무르게 하였다. 후에 무상은 장안을 떠나 사천지방으로 들어가 덕순사(德純寺)의 지선(智詵)선사를 참알하였다. 지선은 홍인의 제자로서 신수, 혜능 등과는 동문 법형제이다. 지선은 홍인문하에서 득법한 연후에 사천지방에 와서 교화하고 있었는데, 이때에 이미 연로하고 몸이 쇠약하여 무상을 그의 입실제자인 처적(處寂. 당화상)에게 안배하였다.

 

신라왕자 출신…출가해 唐 유학

처적 정중종 잇고 보당종 열어

 

그때 처적이 병을 핑계대면서 무상을 만나 주지 않자 무상은 손가락 하나를 태워 연지공양(燃指供養)을 올렸다. 처적은 그의 신심을 보고 사중에 머물게 하였다. 당시 지선의 문하에는 또 다른 한사람의 처적이 있었는데, 그는 뒷산인 북산에 거주하였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북산란야(北山蘭若)처적이라 불러서 두 사람을 구분하였다. 그는 육신통이 있었다.

 

대중들에게 내일 외국에서 온 스님이 참례하러 온다고 하니, 과연 그 다음 날 저녁에 무상이 북산의 처적을 찾아왔다. 북산처적은 자기의 가사를 벗어주고 무상(無相)이란 법호를 내렸다. 이렇게 하여 무상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무상은 이미 당화상인 처적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하였으나 한편으로 북산처적에게 더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최후에는 역시 당화상 처적의 법을 계승하게 되었다.

 

그러면 여기서 정중무상선사의 법계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무상이 속해있는 사천의 선종은 5조 홍인의 십대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지선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자주지선(資州智詵)을 초조로 하여 처적(處寂)-무상(無相)으로 계승돼 정중종(淨衆宗)을 형성하고, 무상의 법계는 다시 무주(無住)에게 전승되어 보당종(保唐宗)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사천의 선종은 자신들 스스로 선종의 정통이라 주장하며 독자적인 선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보당종은 안사의 난 이후 당나라 황실이 사천으로 천도해 옴으로 해서 대력보당사(大曆保唐寺)를 중심으로 크게 발전하게 된다. 무주의 보당종은 지선으로부터 내려오는 자파의 법계가 달마선종의 정통임을〈역대법보기〉를 통해 역설하고 있다. 여기서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달마선종은 신회의 노력에 의해 혜능이 육조가 된 것을 인정하고, 전법의 표시인 혜능의 가사가 측천무후에 의해 궁중으로 반환되어 다시 자주의 지선에게 수여된 경위를 들어서 자파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역대법보기〉에는 부처님 교법의 유전 및 불전에 관한 기록을 창안하고 있으며, 서천 29대 조통설을 열명(列名)하여 기록하고, 달마에서 혜능에 이르는 동토(東土) 6대 조사의 전기를 싣고 있으며, 지선 처적-무상-무주로 전승되는 사천선종 4대조사의 전기를 언급하고 있으며, 보당무주의 어록과 사진찬문을 기록하고 있다.

 

정중무상(淨衆無相)선사〈하〉

 

인성염불.삼구(三句)설법 창안

 

오백나한 포함, 티베트에도 영향

마조스님 스승 아닌 ‘법형제’ 추정

 

무상은 당화상 처적의 문하에서 대략 2년간 수학한 후, 천곡산(天谷山)으로 처소를 옮겨 거주하였다. 무상은 심산유곡의 암굴에서 홀로 두타행(頭陀行)을 닦았다. 며칠 동안 선정삼매에 들어 맹수들도 감복하고 호위할 정도로 수선에 몰두하였다.

 

안사의 난 이후 현종이 사천으로 파천해 왔을 때 무상은 이미 한 사람의 뛰어난 신승(神僧)으로 세간에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 현종이 그를 접견하고 정중사(淨衆寺)에 주석하게 했다. 당 개원20년(732) 4월 당화상 처적은 무상을 불러 가사를 전수하고 “이 가사는 달마조사가 전한 법의인데, 무후에 의해 지선화상에 전해지고, 화상이 나에게 전한 것을 오늘 그대에게 전하노라. 그대는 스스로 잘 보호하여 나의 선법을 크게 선양하도록 하여라. 스승을 능가하여야 훌륭한 제자가 되는 법이니, 그대는 정중사에 머물며 크게 정중선을 일으키도록 하라”고 후사를 부촉하고 원적에 들었다. 이로부터 정중종(淨衆宗)의 선법이 개창되게 된 것이다.

 

무상선사는 정중사에서 개당한 이래 20년간 교화를 펴게 된다. 그는 매년 정월과 12월에 도량을 건립하고 대중을 위해 설법하였는데 적게는 4백, 많게는 천여 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하였다.〈역대법보기〉의 기록에 따르면, 무상은 먼저 인성염불(引聲念佛)을 하게 되는데, 한 목소리의 숨이 다하고 목소리가 끊어졌을 때 삼구설법(三句說法)을 하였다고 한다.

 

이른바 삼구란 무억(無憶. 기억을 없앰), 무념(無念. 망념을 없앰), 막망(莫忘. 망각하지 않음)으로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말하는 것이다.

 

종밀의〈원각경대소초〉에도 마음에 지난 일들을 추억하지 않는 것이 무억(無憶)이며, 미래의 영고성쇠에 염려하지 않음이 무념(無念)이며, 항상 지혜와 상응하여 어지럽지 않음이 막망(莫忘)이라고 설하고 있다. 또한 바깥 경계(外境)에 끄달리지 않음이 무억이며, 내심에 미혹되지 않음이 무념이며, 수연(隨緣)하여 의지함이 없음이(無寄) 막망이라 설하여, 삼구설법이 계정혜 삼학의 등지(等持)임을 주장하고 있다. 무상은 이러한 삼구설법을 총지문(摠持門)이라 말하고 있다.

 

〈역대법보기〉에는 “망념이 일어나지 않음(念不起)이 계문(戒門)이요, 정문(定門)이며, 혜문(慧門)이다. 무념(無念)은 계정혜를 구족한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이 문을 통해 깨달았다”라고 하였다. 즉 무상이 설한 삼구설법은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염불기(念不起)”의 무념(無念)의 경계가 심지법문(心地法門)이 된다.

 

이것은 또한 혜능과 신회를 중심으로 하는 남종선의 핵심사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상은 염불기를 거울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생각(妄念)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거울의 앞면이 만 가지 상(像)을 비출 수 있는 것과 같고, 생각이 일어나면 거울 뒷면이 비출 수 없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무상은 이러한 삼구, 삼학의 법문이 달마로부터 전해내려 오는 것이라고 하여 사천 선종의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창안한 인성염불 역시 매우 독창적인 염불 수행법으로써 훗날 남산 염불문선종(南山念佛門禪宗)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무상은 중국의 오백나한에 속해 있으며, 티베트불교의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어, 신라 출신의 선사로서 중국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큰 스승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이〈사증당비(四證堂碑)〉에 나란히 기록된 무상(無相), 무주(無住), 마조(馬祖), 서당(西堂)에 근거하여 무상을 마조의 스승이라 칭하고 선종법계를 고치려는 시도는 선종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류이다. 무상과 마조는 당화상 문하의 법형제로 추정하고 있다.

 

[불교신문]


월암스님 선원 수좌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4 고승열전 1. 인도편 - 오비구와 카샤파 삼형제 短長中庸 2019.12.20 19
53 고승열전 10. 중국편 - 영가현각, 한산습득, 남양혜충 短長中庸 2019.12.20 6
52 고승열전 11. 중국편 - 백장회해, 대매법상 短長中庸 2019.12.20 5
51 고승열전 12. 중국편 - 조주종심, 작소도림 短長中庸 2019.12.20 9
50 고승열전 13. 중국편 - 임제의현, 영명연수 短長中庸 2019.12.20 2
49 고승열전 14. 중국편 - 대혜선사, 고봉원묘 短長中庸 2019.12.23 1
48 고승열전 15. 한국편 - 의상대사 短長中庸 2019.12.23 0
47 고승열전 16. 한국편 - 혜초(慧超) 화상 短長中庸 2019.12.23 0
46 고승열전 17. 한국편 - 균여(均如) 대사 短長中庸 2019.12.23 4
45 고승열전 18. 한국편 - 균여대사 ② 短長中庸 2019.12.24 0
44 고승열전 19. 한국편 - 혜통화상 短長中庸 2019.12.24 2
43 고승열전 2. 인도편 - 사리불과 목건련 短長中庸 2019.12.20 5
42 고승열전 20. 한국편 - 자장대덕 ① 短長中庸 2019.12.24 7
41 고승열전 21. 한국편 - 자장대덕 ② 短長中庸 2019.12.24 6
» 고승열전 22. 한국편 - 정중무상 선사 短長中庸 2019.12.24 3
39 고승열전 23. 한국편 - 일연선사 ① 短長中庸 2019.12.24 2
38 고승열전 24. 한국편 - 일연선사 ② 短長中庸 2019.12.24 6
37 고승열전 25. 한국편 - 백운경한 ① 短長中庸 2019.12.24 7
36 고승열전 26. 한국편 - 백운경한 ② 短長中庸 2019.12.24 13
35 고승열전 27. 한국편 - 보조지눌(普照知訥) ① 短長中庸 2019.12.26 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