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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열전
2019.12.24 11:41

23. 한국편 - 일연선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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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일연 (一然) 선사

일연 선사의 행적과 생애에 관한 자료로 一然碑文(갖춰서 高麗國華山曹溪宗麟角寺迦智山下普覺國尊碑井銘序)에 의해 알 수 있다. 이 비는 현재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수동 인각사 경내에 두 동강이 난 채 남아 있으며, 비문(陽記·陰記)이 심히 마멸돼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던 차 1979년 9월에 이르러 양호한 고탁본들이 발견되고 그간의 꾸준한 자료 연구들의 성과로 지금은 비문이 거의 복원돼 있다.

이 비문은 1295년 8월에 門人 竹虛가 普의 王義之(321-379)書體를 集字해 양가는 대문장가 閔凊(1248-1326)가 짓고 음기는 眞靜大禪師 淸珍(1251-1322. 寶鑑國師 混丘)이 찬했다. 古碑들 중 이 비문이 神韻이 감돈다 해서 일찍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던 모양이다.

나는 기왕의 비문 연구와 일연 선사에 대한 연구 성과물을 토대로 선사의 생애를 정리해 볼까 한다. 鄭仲夫(1106 -1179)가 쿠데타를 일으켜(1170년) 武人정권을 창출한 뒤 崔民執政期(1196-1258)로 접어들어 숱한 誅殺과 政爭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한편 몽고 元이 침입해 와(1231년) 국토는 쑥대밭이 돼 최대의 국난을 당하고 만다. 1259년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해 몽고의 속국이 되면서 원의 간섭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 철저히 강요되던 내우외환의 시기에 일연 선사는 생존했었다.

한 마디로 고려국이 내외로 나약해지면서 민중의 삶은 피폐해졌고 민족적 자존심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무너지는 비운을 맞고 있었던 암울한 수난기에 선사는 일생을 보냈는데, 우리는 그가 민족적 환난 앞에서 佛子로서 어떻게 살았으며 그의 정신은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점을 염두 두고 그의 생애를 읽고자 한다.

그는 경상도 章山郡(지금 慶山郡)에서 부친 金彦弼과 모친 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1206년熙宗2 內寅 6월 12일 辛西) 모친은 태양이 방에 들어 와 배에 비치는 꿈을 사흘밤이나 연거푸 꾸고서(服夢) 잉태, 출생했다 해서 아들 이름을 見明(광명을 보다)이라 불렀고, 따로 부른 이름(字)이 晦然(그윽히 어둡다)였는데 나중에 一然(오로지 한가지다)으로 고쳤다. 부모가 평민이었으나 일연이 현달한 뒤에 부친은 左僕射로 모친은 樂浪部 夫人으로 추봉됐다.

일연은 자라면서 사람됨이 훤출하고 몸가짐이 의젓하며 두툼한 코에 입은 방정하며 걸음걸이는 소처럼 느린듯 힘차고 눈빛은 호랑이눈처럼 매섭게 생겼다.

요즘 말로 太陰體質에 속하는 듯한데 가장 원만한 종교인이 될 소질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선대로 佛緣이 깊었던지 그는 일찍이 입산수도할 의지를 품고 있다가 아홉 살 때(1214년) 海陽(지금의 光州) 無量寺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고 총명한데다 열심히 독파하되 한 번 똑바로 앉아 정진하면 밤새 버텼기에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길 정도였다. 열네 살 되던 해(1219년 고종 6) 4월 3일 설악산 陳田寺의 大雄장로에게 나아가 삭발하고 具足戒를 받았다.

진전사는 본래 迦智山門의 開山組인 道義가 40년간 은거한(821-860) 곳이며 廉居 體澄 등이 師資相承한 사찰이었다. 일연은 8년간 진전사에서 수도정진하면서 승려라면 누구나 포부를 펼만한 승려 국가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의 스물두 살 때(1227년 고종 14) 국가수여 대사 선발시험인 選佛場에서 上上科(僧科의 壯元)에 합격해 包山(지금 玄風 毘瑟山) 寶帳庵에 머물면서 늘 마음에 禪理를 參究했다. 비문엔「心存禪觀」이라 했는데 이는 그가 이젠 명실공히 대사로서 높은 자질과 禪悅을 갖추는 수행으로 일관했음을 의미한다.

이 당시는 몽고가 침략해 와 전 국토가 전란과 약탈의 늪에 접어든 때로 위기의식이 고조했고, 일연은 전란을 피하고자「阿羅波遮那(a`ra'pa'ca'na) 」라는 文殊菩薩 5字呪를 염해 감응을 기대 했다. 갑자기 벽 사이에 보살이 나퉈 ‘無住庵!’이라고 했다.

그땐 그 뜻을 알지 못하다가 다음 해(1237년 고종24) 여름 포산에 있는 妙門庵에 기거하면서 그 암자 북쪽에 무주암이 있음을 알고 비로소 전년의 보살의 現示로 깨닫고 무주암에 옮겨 살았다. 여기서 일연은 꾸준한 화두참구에 의해 깨침을 얻고 있다.

이때 늘 ‘중생계도 줄지 않으며 불계도 늘지 않는다(生界不減佛界不增)’라는 화두를 참구했다. 홀연히 하루는 활연한 깨침이 있어 말하기를, “오늘 내가 삼계가 환몽과 같음을 알았으며 대지엔 가는 티끌만큼의 걸림도 없음을 알았노라!" (吾今日乃知三界如幻夢見大地無纖豪礙) 했다.

-<일연비문에서>-

무비 스님

 

[출처 :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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