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백운 경한(白雲景閑 1299-1375) - 無心無念禪을 강조한 麗末의 禪僧 - (2) 景閑의 선사상
1. 산승은 지난해에 강남과 강북을 돌아다니면서 선지식만 있으면 모두 찾아뵈었소. 그 선지식들은 사람들을 가르치되 혹은 趙州無字로 혹은 萬法歸一 로, 혹은 父母末生前面目으로, 혹은 學心外照攝心內照로, 혹은 澄心入定으로 하였으나 마침내 다른 말이 없었소. 최후의 가무산 천호암의 석옥화상을 찾아뵈옵고, 여러 날 그 집에서 모시고서 다만 그 무념의 진종을 배워 부처님의 더없는 묘도를 원만히 깨쳤던 것이오. 2. 내 소견에 의하면 공부하는 사람을 다루는 자는 화두나 垂語, 혹은 色이나 소리 언어로써 합니다.(중략) 또 가장 묘한 방편이 있습니다. 무심이나 혹은 무념으로써 하는 것입니다.
3. 바로 가리킨 마음은 다만 평상시의 일없는 그 마음으로서, 거기는 아무런 비밀한 앎이나 이치의 길이 없고, 무심과 무위에 꼭 합하면 천기가 저절로 열리어 아무 구애도 없고 아무 집착도 없소.
4. 이른바 시방의 사람들이 모두 한데 모여 사람마다 무위를 배우면, 그것이 곧 선불장이요, 마음을 비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오.
조금 장황스러운 느낌은 있지만, 이상의 내용을 통하여 경한이 강조하고 있는 무심무념선의 개략을 살펴보았다. 그가 당시 유행하던 화두를 통한 선수행을 멀리한 채 무심무념의 방법을 택하였다는 점은 매우 독특한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다음의 ‘無心歌’는 그의 이러한 경지를 유감없이 나타내주고 있다.
만일 사람의 마음이 억지로 이름 짓지 않으면, 좋고 나쁨이 무엇을 쫓아 일어나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은 경계만 잊으려 하면서 마음은 잊으려 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잊으려 하면서 경계를 잊으려 하지 않는다. 마음을 잊으면 경계가 저절로 고요해지고 경계가 고요해지면 마음은 저절로 움직이지 않나니, 이것이 이른바 無心의 眞宗이니라"
“지금 말한 무심이란 세간의 흙이나 나무 · 기왓장 · 돌 따위가 아무런 識이 없는 그런 무심이 아닌 것이오. 털끝만큼 어긋난 차이가 천리의 간격을 이루는 것이니, 자세히 살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오”라고 대중들에게 훈시하였다.
경한은 다시 대중들에게 “參學하는 일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서, 그의 선사상을 간명하게 밝히고 있다. 즉, 참학이란 반드시 화두를 통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경전을 보아야 하는 것도 반드시 論을 짓거나 疏를 연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사방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요, 반드시 시끄러움을 피해 고요함을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요, 또 마음을 움직여 밖을 비추거나 마음을 맑게 하여 안을 비추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결국 진실한 참학이란 “열두 시간과 行 · 住 · 坐 · 臥 四威儀 가운데서 생사의 큰일을 생각하되 心意識을 떠나 범성의 길을 참구해 내야 하는 것이니, 무심과 무위를 배워 그것을 면밀히 기르고 언제나 생각이 없어 언제나 어둡지 않으면 마침내 의지할 데가 없어 명연한 자리에 이른즉 자연히 도에 합한 것이다”라는 방법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경한의 경우도 <禪敎通論>이라는 글에서 이같은 사상을 피력하고 있다. 이 글은 그의 어록 전체 분량 가운데서 매우 미세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선과 교에 대한 그의 견해가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정리된 느낌을 준다.
그는 먼저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요, 선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므로 부처님의 마음과 말씀은 결코 서로 어긋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였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네는 손수 이 뜻을 주고 받았으며 조사님네는 서로 이 마음을 전한 것으로서, 각기 그 이름과 글귀를 따라 차이가 있는 듯 하지만 선과 교의 이름은 다르나 그 본체는 같아서 본래 평등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다음의 인용문은 그의 선교관에 대한 진수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되새겨 봄직한 훌륭한 문구로 생각된다.
“그 근원을 통달하면 선도 없고 교도 없는데, 그 갈래를 벌려놓는 이가 각기 선과 교를 고집하는 것이다. 거기에 어두우면 모두를 잃을 것이요, 그것을 고집하면 둘을 다 해칠 것이다. 한데 녹여 버리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요, 결정하여 바르게 하면 바르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니, 바르고 그름은 오직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만 한 생각에 기틀을 돌릴 수만 있으면 저절로 모든 법이 한꺼번에 사라져 마침내 선 · 교의 구별은 없어질 것이다"
경한의 어록을 보면 마치 교학승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가 상당히 해박한 경전지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록의 여러 곳에서 언급하였듯이 그는 경전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을 비판하였으며, 따라서 그의 선교일치적 사상경향은 선승으로서의 위치를 보다 강조한 것이었다고 보아야 하겠다.
조사선을 색 · 소리 · 언어를 통한 悟得의 대표적인 예를 열거하면서 후학들이 알기 쉽게 조사선의 경지를 터득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 개략적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3. 혹은 색과 소리로 법을 보여 사람을 가르쳤으니, 그것은 방망이를 들거나 拂을 세우며 손가락을 퉁기거나 호통(喝)을 치는 등 갖가지 작용이 다 조사선이다. 그러므로 소리를 듣는 때가 깨달을 때이며 빛깔을 보는 때가 깨달을 때이다.
그는 무심무념선을 강조하면서 고려 후기에 새로운 선풍을 일구어 놓았다. 여기서 석옥의 嫡嗣기 태고냐 경한이냐 하는 부분은 논외로 하였지만, 경한이 석옥의 사상에 갚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결과 석옥의 사세송이 경한에게 전달되었다는 점 등은 불교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비록 그의 선사상이 揚名을 꺼려하는 본인의 성향과, 또는 고려 말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충분한 師資傳承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차차 잊혀져 갈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날 새롭게 그의 선사상을 조명해 보는 작업은 절실하게 요청되는 바이다.
특히 당시 增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주장은 儒佛交替期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2. 혹은 이치를 깨친 이가 있더라도 극히 소수의 사람으로서 中道를 깨치는 법칙과 이치에 들어가는 문은 알지 못하고 그릇 많이 듣기만 배우고 我見만 높이면서 세상의 이익을 아주 벗어났다 하오.
권상(卷上)에서는 과거칠불(過去七佛)과, 석가모니불로부터 불법을 계승한 천축국의 제1조(祖) 마하가섭(摩詞迦葉) 이하 보리달마(菩提達磨)까지의 28존자, 그리고 중국의 5조사 및 그 법통을 이은 후세의 국사 중 안국대사(安國大師)에 이르기까지의 것이 수록되었다. 권하(卷下)에는 아호대의화상(鵝湖大義和尙)부터 대법안선사(大法眼禪師)까지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대령선사(大嶺禪師)의 것도 수록되어 있다.
중심 주제인 직지심체는〈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오도(悟道)의 명구를 줄여 나타낸 것이다. 판본은 경한이 입적한 3년 뒤인 1377년(우왕 3) 7월 청주목의 교외에 있던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인 주자로 찍어낸 것이 초간본(初刊本)이 된다. 상하 2권 중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하권 1책(첫장은 결락)뿐이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있다.
이 주자본은 활자의 주조술과 조판술이 미숙했던 고려시대에 관서(官署)가 아닌 지방의 사찰이 주성하여 찍은 것이기 때문에 활자의 크기와 글자의 모양이 고르지 않고 부족활자를 목활자로 섞어 사용했기 때문에 인쇄상태가 조잡하다.
그러나 문헌상으로만 전해지던 고려 주자본 중 유일하게 전래된 활자본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이 되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최초로 금속활자를 창안하고 발전시킨 문화민족임을 실증하여 그 긍지를 세계에 과시한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무비 스님
[출처 : 염화실] |
고승열전
2019.12.2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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