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한국어
설법
2010.01.03 15:30

如是我聞 - 두 개의 독화살

조회 수 814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如是我聞 - 두 개의 독화살



서재영(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과학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 향상되면서 굳이 종교를 믿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종교를 믿으나 안 믿으나 행복하게 사는데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정말 아무런 차이가 없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부처님께서 가란다죽원에 계실 때 설하신 설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잡아함 제17권에 수록된 ?화살경(箭經)?이 그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리를 모르는 범부들은 괴롭다는 느낌[苦受]·즐겁다는 느낌[樂受]·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不苦不樂受]을 받는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진리를 아는 거룩한 제자들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정말 범부와 불법을 믿는 사람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음과 같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범부들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고통이 발생하고, 고통이 깊어져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되면 슬픔에 잠겨 원망하고 울부짖으며 마음이 미친 듯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들은 감각기관으로 느껴지는 ‘몸의 고통[身受]’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마음의 고통[心受]’까지 느끼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전쟁터에 나간 병사가 두 개의 독화살을 차례대로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것과 같다. 범부가 두 개의 화살을 맞는 이유는 존재의 실상과 불법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오욕에 대해 즐겁다는 느낌[樂受]이 일어나면 오욕의 즐거움에 탐닉하고, 그것 때문에 탐욕의 지배를 받는다. 반면 괴롭다는 느낌[苦受]이 일어나면 버럭 화를 내고, 그것 때문에 분노의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진리를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몸에 고통이 생겨 설사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되더라도 슬픔에 빠져 원망하고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감각기관으로부터 오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는 오직 ‘몸의 고통[身受]’만을 느낄 뿐이며 ‘마음의 고통[心受]’은 받지 않기 때문이다. 거룩한 제자들이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이유는 즐겁다는 느낌이 발생해도 그것에 탐착하지 않고,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도 화내지 않아서 욕망과 분노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개의 화살로 표현되는 ‘감수 작용[受]’이다. 첫 번째 화살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오는 ‘육신의 고통’이고, 두 번째 화살은 첫 번째 화살을 맞고 나서 생겨나는 ‘마음의 고통’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육체의 노쇠와 질병과 죽음의 고통을 피해 갈 수 없다. 그것은 부처님의 제자나 성인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당했을 때 범부는 육신의 고통에 신음하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닥친 고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와 좌절, 절망과 공포라는 정신적 고통도 함께 받게 된다.

문제는 첫 번째 화살은 아무도 피할 수 없지만 두 번째 화살은 마음을 어떻게 가지는가에 따라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 거룩한 제자들도 첫 번째 화살은 피해가지 못한다. 그들도 춥고, 배고프고, 질병의 고통을 느끼며, 늙고 병들고 마침내 죽어간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모든 존재가 피해갈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육신의 고통이라는 첫 번째 화살을 맞아도 그것 때문에 분노하거나 두려워하며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다. 우리가 불교를 믿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화살을 피할 수만 있다면 비록 첫 번째 화살을 맞는다고 할지라도 그 고통으로부터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말기 암이라는 첫 번째 화살을 맞는 순간 사람들은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혀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다. 그리고 그 같은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을 더욱 깊게 만든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밝은 마음으로 대처하는 환자들은 첫 번째 화살에 의해 무너져 내리지 않고 오히려 병을 극복해 낸다.

로마시대의 철학자였던 에픽테토스(Epictetus)는 노예 신분이었다. 그는 노예로 살면서 여러 가지 부당한 대우와 불행한 상황을 만났지만 항상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일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괴팍한 주인의 마음이나 세상을 바꾸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바꿈으로써 고난과 역경에 초연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사업에 실패하거나 늙고 병들고 죽는 것과 같은 일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에픽테토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힘쓰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지만 할 수 없는 일에 맞서 저항하며 몸부림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마음 다스리는 것을 잘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바로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고 첫 번째 화살의 독기를 해독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삶의 고난과 힘든 일을 당했을지라도 그것에 자극받아 분노하거나 좌절하며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역경과 고통이라는 첫 번째 화살을 맞았을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도록 마음을 챙겨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관찰해 보고 분노하거나 좌절하고 있다면 두 번째 화살을 맞은 것이므로 독기가 퍼지기 전에 뽑아버려야 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는 불자들과 그렇지 못한 범부들이 가진 차이점이다


  1. [부처님 이야기]-16. 부처님의 지난적 인연

  2. [부처님 이야기]-17. 아기 부처님의 첫 법문

  3. [부처님 이야기]-18. 개가 된 구두쇠

  4. [부처님 이야기]-19. 우루빈나의 신통력

  5. [부처님 이야기]-2. 욕심이란 씨앗

  6. [부처님 이야기]-20. 말썽쟁이 데바닷다

  7. [부처님 이야기]-3. 수미산에 태양의 궁전

  8. [부처님 이야기]-4. 4주세계 북쪽 나라 울단왈

  9. [부처님 이야기]-5. 사천왕도 동산놀이를 한다

  10. [부처님 이야기]-7. 세상의 말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11. [부처님 이야기]-8. 제석천과 아수라의 싸움

  12. [부처님 이야기]-9. 하늘 무릎서 태어나는 아기

  13. [예불문] 지심귀명례 바른 이해

  14. ‘이판’ ‘사판’ 스님들 ‘夏安居’에 왜 들어가나

  15. ◈무재칠시(無財七施)◈

  16. 卍자의 유래

  17. 天下大事(천하대사) 必作於細(필작어세)

  18. 如是我聞 - 두 개의 독화살

  19. 法 係 譜 (법 계 보) - 전등록

  20. 自性頓修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2 Next
/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