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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참법문(小參法門)

-2020.3.25.화엄전. 無比스님-

 

보살의 열 가지 계(戒)

 

안녕하십니까.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 또 공부하겠습니다.

‘보살의 열 가지 계’ 그렇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계(戒)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리심을 버리지 않는 계와, 이승(二乘)의 지위를 멀리 여의는 계와, 일체 중생을 관찰하여 이익하게 하는 계와, 일체 중생을 불법에 머물게 하는 계와, 모든 보살의 배우는 것을 닦는 계이니라.”

열 가지 계 중에 몇 가지를 먼저 말씀드립니다.

 

불사보리심계(不捨菩提心戒)


“보리심을 버리지 않는 계”

아주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불교를 믿고 또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고 하는 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첫째 보리심부터 갖추어야 됩니다.

보리심은 뭡니까? 지혜와 자비의 마음, 불심(佛心) 부처님의 마음, 이타심 남을 먼저 이롭게 하려고 하는 마음, 그것을 한마디로 하면 보리심입니다.

보리심을 버리지 않아야 불자로서 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대개 계(戒)라고 하면 사미십계(沙彌十戒)니 오계(五戒)니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니 십중대계(十重大戒)니 그런 등등의 계를 떠올리는데 화엄경은 또 이렇게 차원이 다릅니다.

보리심을 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계입니다.

우리가 계를 지키려면 보리심을 버리지 않아야 돼요.

 

원리이승지계(遠離二乘地戒)

 
“이승(二乘)의 지위를 멀리 떠나는 계”

이승은 뭡니까. 성문(聲聞)과 연각(緣覺)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승적인 삶을 불교를 공부한다고 하면서 너무나도 소승적인 삶에 치우쳐 있는 것을 이승의 지위라고 합니다. 그것을 떠나야 계를 지키는 것이 되는 거예요.

이승을 떠나야 계를 지키는 것이 됩니다.

그것도 멀리 떠나라고 했습니다.

멀리 떠나야 진정한 불자로서 계를 지키는 것이 된다.

살생하지마라, 도둑질하지마라, 거짓말하지마라 물론 그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차원 높고 우선하는 계는 ‘이승의 지위에서 멀리 떠나는 계’ 자칫 잘못하다 보면, 불법이라고 하고 덥석 믿고 좋아하다 보면, 그만 이승에 빠져서 자기자신만을 위해서 참선하고 자기자신만을 위해서 위파사나하고 명상하는 경우에 많이 휘둘리게 됩니다.

그건 차원높은 훌륭한 대승보살 불교가 아니지요.

그래서 여기서 대승보살 불교에서는 이승의 경지를 멀리 떠나라 그것이 계다 그랬습니다.

 

관찰이익일체중생계(觀察利益一切衆生戒)


“일체 중생을 관찰하여 이익하게 하는 계”

일체중생을 관찰하여 이익하게 한다. 중생들을 잘 살피고 중생들에게 무엇이 이익한가?

요즘과 같이 코로나 때문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 때는 거기에 맞는 적절한 보살핌이 있어야 되고 적절한 이익이 있어야 됩니다.

제발 좀 대중들이 모이지 말라 하면 좀 안 모여야죠.

국가에서 그렇게 당부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모여가지고 경찰들과 서로 싸우고 큰소리를 치고 그렇게 하는 현상들을 보면서 참 자유로운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무슨 자유입니까. 방종이죠.

제멋대로 사는 거지 그게 무슨 자유입니까.

자유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내에서 자기의 어떤 자유를 누려야 그게 진정한 자유죠.

전국민들을 염려스럽게 하고 심지어 피해까지 줘가면서 뭡니까, 그 무서운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려가면서 까지 그렇게 집회를 꼭 해야 합니까?

그게 무슨 부처님의 가르침입니까? 무슨 하느님의 가르침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입니까? 공자님의 가르침입니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건 정말 깊이 한 번 생각하고 우리가 철든 행동을 좀 해야 합니다.

 

영일체중생주불법계(令一切衆生住佛法戒)


“일체 중생들을 불법에 머물게 하는 계”

일체 중생들을 불법에 머물게 하는 계

불법은 뭡니까?

깨어있는 안목 깨달음의 길, 그것입니다.

깨달음의 길, 눈뜬 길, 철든 삶의 길,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불법의 길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알고 바른 진리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알고, 모든 중생들이 전부 그런 바른 이치의 길에 머물도록 하는 것, 그것이 계입니다.

뭘 하지마라, 뭘 하지마라, 뭘 하지마라 하는 것 일단 화엄경을 공부할 때는 그런 걸 좀 접어두고, 이런 차원 높은 계를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일체보살소학계(修一切菩薩所學戒)


“모든 보살의 배우는 것을 닦는 계이니라.”

모든 보살이 무엇을 닦습니까?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것이 보살의 배우는 길입니다.

그저 끊임없이 자기 향상을 위해서 열심히 정진하고 노력하고 그리고는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조그마한 힘이라도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베풀고 살피고 가르치고 조그만한 것 하나라도 그렇게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그것이 보살이 배워야 할 것을 닦는 계율이 되겠습니다.

 

어일체법(於一切法) 무소득계(無所得戒)
 

“일체 법에 얻을 것이 없는 계”

참 차원이 다르죠.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반야심경에서도 그랬습니다.

무소득(無所得) 얻을 바 없다 라고 하는 이치를 터득하는 것, 이것을 계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조그마한 행동 하나를 가지고 잘잘못을 따지는 계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일체선근(以一切善根) 회향보리계(廻向菩提戒)


“일체 착한 뿌리로 보리에 회향하는 계”

선근으로써 선행으로써 어떻게 회향해야 한다? 보리에, 깨달음에 회향해야 한다. 지혜와 자비에 회향해야 한다.

선행은 보통 사람들도 많이 합니다. 또 선행하기를 많이 권장합니다. 모든 종교는 다 그렇게 하고 특히 불교는 중선봉행(衆善奉行)이라고 해서 모든 선을 잘 행하는 것이 불교다. 그냥 불교가 아니고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렇게까지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은 깨달음으로 회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눈을 뜨는 곳으로 회향해야 된다는 것이고 지혜와 자비로 회향해야 된다는 것이고 이타행으로 회향해야 된다 는 뜻입니다.

 

불착일체여래신계(不着一切如來身戒)


“일체 여래의 몸에 집착하지 않는 계”

일체 여래의 몸에 집착하지 않는 계.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모습에 집착을 한 나머지 출가를 하셨습니다. 그건 또 집착해서 얻은 소득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소득에 머물고 있으면 안되죠.

거기서 또한 벗어나야 됩니다.

일체 여래의 몸에 집착하지 않는 계, 여래는 진리의 몸입니다. 형상이 아니예요.

형상을 보고 우리가 감동을 하는 것은 지극히 저급한 입장에서는 필요한 방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되는 거죠.

여래의 몸에 집착하지 않아야 됩니다.

 

사유일체법(思惟一切法) 이취착계(離取着戒)


“일체 법을 생각하되 집착을 여의는 계”

일체 법을 생각하되 집착을 여의는 계 그렇습니다.

불법, 얼마나 좋습니까?

구절구절이 주옥같은 가르침입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법입니다. 집착하기 좋죠. 일단은 집착해야 합니다. 그러나 집착했다가 다시 그 집착에서 얼른 또 벗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일체 법을 생각하되 집착을 여의는 계라고 계율로서 제정했습니다.

다른 사미10계나 비구 250계나 비구니 348계나 그런 데는 이런 조항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화엄경에는 이것이 계라고 ‘열 가지 보살의 계’ 지켜야 할 계다 라고 하였습니다.

법을 좋아하되 좋아하면서 사유하고 깊이 생각하더라도 집착을 여의어야 된다.
 


제근율의계(諸根律儀戒)
 

“모든 근(根)의 계율과 의식의 계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모든 근 우리는 6근에 대해서 6근을 단속하는 계가 있지요. 그러한 것들도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된다.

앞에서 차원 높은 계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또 언제나 진정한 진리의 가르침은 중도(中道)의 가르침이 되기 때문에 그런 차원 높은 계만을 가지고 주장하면 거기에 또 치우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6근을 단속하는 온갖 계행과 율의를 또한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된다 하는 뜻입니다.

*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고 광대한 지계(持戒)바라밀다를 얻느니라.”

이런 차원 높은, ‘보살이 이 이세간품에서 가져야 할 계’를 소개하고 이 법에 편안히 머물게 된다면 여래의 위없고 광대한 지계바라밀을 얻느니라.

높고 위없고 광대한 지계바라밀, 계를 가진 바라밀을 얻게 된다 그랬습니다.

참 화엄경은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정말 깊이가 있고 차원이 높고 그래서 정말 읽을 때마다 감동합니다.

성불하십시오.


출처 : 염화실 카페 


  1.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수기(授記)를 얻음, 선근으로 회향함이 있다)

  2.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바라밀, 열 가지 지수각이 있다)

  3.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밝음이 있다)

  4.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 지혜의 관찰, 법을 말함이 있다)

  5.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법을 설함, 지님, 변재가 있다)

  6.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보리에 들어가는 바다와 같은 지혜가 있다)

  7.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불가사의함이 있다)

  8.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불법에 깊이 들어감, 의지가 있어서 보살행을 행함, 열 가지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낸다)

  9.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산과 같은 더 올라가는 마음이 있다)

  10.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삼매에 들어감, 두루 들어감이 있다)

  11.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의심 없는 마음을 낸다)

  12.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자재, 무착, 평등심,출생지혜, 변화, 힘으로 유지함이 있다)

  13.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장엄이 있다, 열 가지 부동심을 낸다)

  14.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중생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15.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지광조(智光照),무등주(無等住)가 있다)

  16.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지혜를 얻음이 있다, 한량없고 그지없는 광대한 마음을 낸다)

  17.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청정(淸淨),열 가지 인(印)이 있다)

  18.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크게 기뻐 위안함이 있다)

  19.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크게 일으킴,가장 지극한 큰 일이 있다)

  20.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하열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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