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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참법문(小參法門)

-2020.3.30.화엄전. 無比스님-

 

보살은 열 가지 중생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안녕하십니까.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 계속해서 공부하겠습니다.

‘보살은 열 가지 중생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보살은 참 중생들의 온갖 선하지 못한 일, 또 착한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일, 고통을 받고 있는 일, 이런 것에 대해서 얼마나 안타까와 하겠습니까?

여기는 대비(大悲)라고 하는 말을 했는데, 대자(大慈)보다도 오히려 대비를 더 크게 봅니다.

우리는 흔히 자비, 자비, 자비심, 자비행 이렇게 표현을 하지만 사실은 대비와 대자는 또 약간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대비(大悲)는 슬픔을 말하는 것입니다.

큰 슬픔을 일으킨다.

*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중생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나니, 무엇이 열인가.”

 

관찰중생(觀察衆生) 무의무호(無依無怙)
 

“이른바 중생이 의지할 데 없고 믿을 데 없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며.”

중생들이 의지할 데가 없고 믿을 데도 없습니다.

참 누구를 믿겠습니까? 무엇을 믿겠습니까?

모든 것이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하게 달라져 가고 바뀌어 가는데 사람인들 믿으며, 법인들 믿으며 또 어떤 상황, 환경 그 무엇도 사실은 크게 의지할 것이 못 되고,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중생들이 그러한 데 살면서 늘 고통을 겪고 슬픔을 겪고 있으니까 그러한 것을 보살들은 잘 관찰하고서 큰 슬픔을 일으키지요.

 

관찰중생(觀察衆生) 성불조순(性不調順)
 

“중생의 성품이 고르고 순하지 못함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중생들의 성품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조순(調順)이라고 했는데, 조순은 아주 부드럽고 조화롭고 순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에게 그러한 성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품이 있지 못하는 것을 살펴보니까 ‘아 참 중생들이 너무 완강하고 고집불통이고 또 어리석기 그지없고’ 그러한 사실을 알고는 슬픔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지요. 보살은 늘 중생들의 그러한 상황을 알고 슬픔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관찰중생(觀察衆生) 빈무선근(貧無善根)
 

“중생이 가난하여 선근이 없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중생이 선근이 없습니다.

오늘날 코로나로 저렇게 어려움을 많이 겪고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 틈을 노려서 또, 머리를 굴려가면서 자기 이익을 편법으로 취하려고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평소에야 두 말할 것 없습니다.

평소에는 그저 남을 속이고 사기를 치고 폭리를 누리고 부정과 부패로써 하니까 보살이 그러한 사실을 보고 얼마나 불쌍히 생각하겠습니까?

중생이 가난한 것도 모두가 그런 일 때문입니다.

중생이 가난하야 선근이 없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세세생생 착하게만 살아왔다면 그리고 정직하게만 살아왔다면 왜 가난할 리가 있겠습니까?

가난할 까닭이 없습니다.

선근이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거죠.

그러한 것을 보살은 잘 알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관찰중생(觀察衆生) 장야수면(長夜睡眠)
 

“중생이 긴긴 밤에 잠들어 있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키며”

중생이 긴긴 밤에 잠들어 있다 이거 뭡니까?

깨어있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고 정말 캄캄한, 눈 앞의 이익만을 생각해서, 앞에 어떠한 상황이 전개되는지도 생각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살아가는 모습, 긴긴 밤에 잠들어 있다 라고 하는 것은 꼭 잠을 자야만 잠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깨어있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고 사는 중생들의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크게 슬픔을 일으킨다.

 

관찰중생(觀察衆生) 행불선법(行不善法)
 

“중생이 착하지 못한 법을 행함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이건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 하고 유사한데요. 착하지 못한 법을 행함을, 착하지 못한 법, 그저 자기 눈 앞의 이익만 보면 어떤 나쁜 일도 막 자행합니다.

참 근래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근래 뿐만 아니라 중생들의 삶이 늘 뉴스에 보도되고 신문에 나고 하는 것을 보면‘참 어찌하야 중생들이 사는 세상이 이와 같은지’ 정말 우리 보통 사람이 생각해도 안타깝기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진정한 보살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얼마나 참 슬픈 생각을 하겠습니까?

자기 자신의 문제가 있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중생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와 슬픔을 느낀다’ 라는 말씀입니다.

 

관찰중생(觀察衆生) 욕박소박(欲縛所縛)

 
“중생이 욕심에 얽매임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보살은 중생이 너무 욕심에 얽매여서 그 욕심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고는 정말 혀를 차면서 참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겠습니까?

크게 슬픔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소욕지족(少慾知足)이라고 하는 말이 있죠. 욕심이 없어야 만족함을 알고, 욕심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부자다. 이러한 말도 있고 그렇습니다.

보살들이 큰 슬픔을 일으키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관찰중생(觀察衆生) 몰생사해(沒生死海)
 

“중생이 생사의 바다에 빠져 있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생사의 바다에 빠져 있음을 관찰하고, 어떻습니까?

그저 살려고 아등바등 또 단순하게 의식주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한 정도가 아니라, 욕심부리는 것이 업(業)이 되어서, 죽을 길인지 살 길인지도 모르고 그저 헤매는 것 그것이 생사의 바다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는 보살들이 큰 슬픔을 일으킨다.

 

관찰중생(觀察衆生) 장영질고(長嬰疾苦)


“중생이 병고에 길이 얽혀 있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병고에 얽혀있음을 보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그렇습니다.

본의 아니게 사람들은 얼마나 병고에 얽혀 있습니까?

병고에 허덕입니까?

이런저런 불의의 사고도 있고, 타고난 병도 있고, 과거생에 이런저런 어리석어서 지은 일들 때문에 금생에 그 과보로도 병고를 겪게 되고요. 그러한 것, 어떤 이유에서든지 병고는 참 힘들고 눈물겨운 일입니다.

옆에 사람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억만분의 일도 그것을 나눠가지지 못합니다. 또 설명할 길도 없습니다.

설명한들 무슨 그게 나눠지겠습니까?

그러한 사실을 보살은 훤히 꿰뚫어 보고 슬픔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관찰중생(觀察衆生) 무선법욕(無善法欲)


“중생이 착한 법에 욕망이 없음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참 중생들은 선한 법에 욕망을 일으켜야 되는데, 선한 법에 욕심이 많아야 됩니다.

착한 일 하는 데 욕심이 많아야 되고, 정직한 일을 하는 데 욕심이 많아야 되고, 남 돕고자 하는 데 욕심이 많아야 되고, 봉사하고 보살행 하는데 욕심이 많아야 되는데, 정작 그런 데는 욕심이 전혀 없고, 그저 자기 이익만을 취하려고 하는 데 욕심이 많으니 보살들은 그러한 사실을 잘 살핌으로써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슬프겠습니까? 그러한 말씀입니다.

 

관찰중생(觀察衆生) 실제불법(失諸佛法)

 
“중생들이 모든 부처님의 법을 잃어버림을 관찰하고 슬픔을 일으키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부처님 법 하면 일단은 정직한 것, 그리고 착한 것, 인과의 법, 연기의 이치,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우리 한마음의 이치, 마음 한 생각 잘 쓰고 잘 돌이키면 현재 이 사바세계도 그대로 극락세계가 될 수 있는 그런 이치도 또한 부처님의 법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법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니까 그러한 중생들의 모습을 관찰하고는 얼마나 보살이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겠습니까?

*
“보살이 항상 이 마음으로 중생을 관찰하느니라.”

보살은 이러한 중생들의 여러 가지 현상들을 속속들이 잘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라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것은 화엄경의 어떤 단계라든지 52위 점차라든지 그런 것과 전혀 관계없이, 이러한 한 단락 한 단락, 한 구절 한 구절만 가지고도 우리 삶의 큰 교훈이 됩니다.

마음에 새겨서 내 인생을 보다 더 바르게, 그리고 순조롭게, 또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지침이 됩니다.

이세간품을 52위 지위점차에 맞춰서 배대를 해서 설명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런 것은 칼로 두부모를 자르듯이 정확하게 나눠져 있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것에 크게 매이지 않고 그대로 한단락 한단락, 한 구절 한 구절에 부처님 마음이 스며 있는 것을 우리는 이렇게 느끼고 감동하고, 감동하다 보면 내가 또 조금씩 조금씩 변할 수도 있고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출처 : 염화실 카페 


  1.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수기(授記)를 얻음, 선근으로 회향함이 있다)

  2.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바라밀, 열 가지 지수각이 있다)

  3.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밝음이 있다)

  4.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 지혜의 관찰, 법을 말함이 있다)

  5.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법을 설함, 지님, 변재가 있다)

  6.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보리에 들어가는 바다와 같은 지혜가 있다)

  7.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불가사의함이 있다)

  8.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불법에 깊이 들어감, 의지가 있어서 보살행을 행함, 열 가지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낸다)

  9.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산과 같은 더 올라가는 마음이 있다)

  10.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삼매에 들어감, 두루 들어감이 있다)

  11.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의심 없는 마음을 낸다)

  12.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자재, 무착, 평등심,출생지혜, 변화, 힘으로 유지함이 있다)

  13.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장엄이 있다, 열 가지 부동심을 낸다)

  14.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중생을 관찰하고 큰 슬픔을 일으킨다)

  15.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지광조(智光照),무등주(無等住)가 있다)

  16.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지혜를 얻음이 있다, 한량없고 그지없는 광대한 마음을 낸다)

  17.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청정(淸淨),열 가지 인(印)이 있다)

  18.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크게 기뻐 위안함이 있다)

  19.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크게 일으킴,가장 지극한 큰 일이 있다)

  20.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은 열 가지 하열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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