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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참법문(小參法門)

-2020.4.1.화엄전. 無比스님-

 

보살은 열 가지 증득하여 앎이 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소참법문 장소를 옮겨서 이렇게 공부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 이어서 읽어보겠습니다.

‘보살은 열 가지 증득하여 앎이 있다’

이것을 52위 지위점차에, 2백 가지 질문과 2천 가지 답을 배대를 했습니다. 일일이 52위를, 글은 그렇게 배대를 해놨지만 낱낱이 딱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크게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마침 공부하는 부분이 ‘십주(十住) 가운데 생귀주(生貴住)를 답하다’ 하는 내용에 해당 되어서, 생귀주라는 말을 저는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생귀주에 대해서 조금 언급하고 넘어갈까 합니다.

생귀주라고 하는 것은 생귀(生貴) 날 생(生)자 귀할 귀(貴)자인데요, 귀한 종족에 태어난다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불교를 믿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일이 귀한 종족에 태어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달라지지요.

출신이 어떠한가를 부처님은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문제 삼았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출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태어나서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서 사람의 인품이라든지 그런 것이 달라지고 또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금강경에도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법에 의해서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된다, 법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게 되어있다 하는 내용입니다.

여기 생귀라는 말은 우리가 이런 공부를 하고 이런 수행을 함으로 해서 부처님의 종족, 부처님의 권속에 우리가 태어난다, 부처님의 권속과 같은 귀한 권속으로 태어난다 는 말이 생귀입니다.

참 좋은 표현이지요.

아무리 출신이 좀 시원찮다 하더라도 우리가 부처님의 법을 만나서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천 번 만 번 변화할 수가 있습니다.

일생을 통해서도 여러 수십 번 태어나고 수백 번도 새로 태어날 수가 있는 길입니다.

생귀라고 하는 낱말을 살펴 보았고요.

‘보살은 열 가지 증득하여 앎이 있다’하는 내용입니다.

열 가지 증득하여 앎이 있다.

*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증득하여 앎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지일체법일상(知一切法一相)
 

“이른바 모든 법이 한 모양임을 알며”

모든 법이 한 모양임을 안다.

보살의 경지에는 모든 법이 일상(一相)이다 그런 뜻입니다.

모든 법은 천차만별합니다만 그 가운데 하나의 모양인 이치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지일체법무량상(知一切法無量相)
 

“모든 법이 한량없는 모양임을 안다.”

모든 법은 천차만별하기 때문에 한량없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한량없는 모양임을 안다. 그런 뜻이고요.

 

지일체법재일념(知一切法在一念)
 

“모든 법이 한 생각에 있음을 아느니라.”

이건 참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어떻게 인식하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내 생각 하나에 모든 것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 ‘천차만별의 모든 법이 한 생각에 있다’ 이런 말입니다.

이 한 가지 이치만 우리가 잘 이해하고 소화를 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이치를 알게 됩니다.

모든 법이 천차만별하지만 한생각에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열 가지 증득하여 앎이 있다’ 하는 것 가운데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 심행무애(心行無礙)
 

“일체 중생의 마음의 행이 걸림이 없음을 알며”

마음의 행이 걸림이 없음을 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배운 사람이나, 사람들의 마음은, 그 마음의 행, 마음의 움직임, 마음의 작용은 걸림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상과 주의주장이 달라서 그 사람을 몸은 구속할 수 있어도 그 사람의 마음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그 마음은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데서 움직이는 것이고,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일체 중생의 마음의 행이 걸림이 없음을 안다. 보살은 그러한 사실을 일찍이 벌써 꿰뚫어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여기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윽박질러도 어린아이의 마음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마음의 행입니다.

또 주의 주장이 달라서 예를들어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표현되지는 않습니다.

나타나지는 않지만 생각은 자유입니다.

그야말로 생각은 자유이기 때문에 걸림이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이고요.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 제근평등(諸根平等)
 

“일체 중생의 모든 근기가 평등함을 알며”

차별한 입장에 있어서는 중생들의 근기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또 평등한 입장이 있습니다.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라고 했듯이 정말 아무런 차별 없이 평등한 입장이 있습니다.

그 평등한 입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숨을 쉬고 삽니다.

어른과 아이가 평등하고요, 배운 사람과 못배운 사람이 평등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평등하고,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다 평등한 입장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보살은 잘 안다 하는 뜻입니다.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 번뇌습기행(煩惱習氣行)
 

“일체 중생의 번뇌와 습기의 행을 알며”

이것 참 중요한 내용인데요.

일체 중생의 번뇌와 습기를 안다.

모든 사람의 밖으로 드러난 모습,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그런 것들은 무엇에 의한 것인고 하면 전부 번뇌와 습기의 작용입니다.

번뇌와 습기의 작용이예요.

우리가 평소에 어떻게 업을 지어서 그 업을 축적하며 또 어떻게 익혀서, 어떻게 무엇을 익혀서 그것을 축적해 놨는가 하는 것이 습기죠. 그것이 결국 발현되는 것, 번뇌와 습기, 축적된 번뇌와 습기가 앞으로 드러나고 작용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삶입니다.

그 사람의 삶이 다른 것이 아니예요. 번뇌와 습기의 작용입니다.

그러한 것을 우리는, 몽매한 중생들은 전혀 모릅니다.

모르고 만나서 같이 산다는 게 정말 고행이죠.

모르고 만나서 그걸 견디고 서로 하나하나 이해해 가면서 수십 년을 같이 살아도 또 모르는게 있고 하니까요.

그런데 보살은 그러한 것을 이미 일찍이 환하게 꿰뚫어 알고 있다 하는 뜻입니다.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 심사행(心使行)
 

“일체 중생의 마음이 하는 바의 행을 알며”

일체 중생의 마음이 하는 바 행을 안다. 그 사람 마음이 어떤 행을 하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궁리를 하고 어떤 꾀를 부리는가, 그것도 역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 따라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할 줄 아는 것도 그렇습니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해도요, 그 사람의 그 축적된 능력에 따라서 생각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보살은 환히 꿰뚫어 안다.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 선불선행(善不善行)


“일체 중생의 착하고 착하지 못한 행을 아느니라.”

중생들끼리는 그거 위선으로 하는 것 잘 모르지요. 그러나 보살은 위선으로 해도 알고, 또 위악으로 하는 수도 있습니다. 우정 착하지 아니한 듯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보살은 다 꿰뚫어 안다.

일체 중생의 착하고 착하지 못한 행을 아느니라.

 

지일체보살(知一切菩薩) 원행자재(願行自在) 주지변화(住持變化)
 

“모든 보살의 원과 행이 자재하게 머물러 가지며 변화함을 안다.”

보살의 원과 행이 자재하게 머물러 가지며 변화하는 것을 안다.

일체보살은, 일체보살의 원과 행이 자유자재하고 그것이 또 머물러 가지고 자기 것으로 하고 그리고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안다.

 

지일체여래(知一切如來) 구족십력(具足十力) 성등정각(成等正覺)
 

“모든 여래가 열 가지 힘을 구족하고 등정각 이룸을 아나니”

부처님을 어떤 능력을 갖췄는가를 표현할 때 십력(十力) 열가지 힘이라고 하는 표현을 화엄경에서는 자주 씁니다. 그런 열 가지 힘을 구족하고 또 궁극에는 등정각을 이룬다. 그러한 것까지도 보살은 환하게 꿰뚫어 안다 하는 말씀입니다.

*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법의 선교 방편을 얻느니라.”

‘열 가지 증득해서 안다’ 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보살은 열 가지 힘이 있다
 

다음은 ‘보살은 열 가지 힘이 있다’ 그랬습니다.

열 가지 힘이 있다.

이건 앞에서 말한 열 가지 힘하고도 또 좀 다른 차원의 힘인데요.

*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힘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일체법자성력(一切法自性力)
 

“이른바 모든 법의 제 성품에 들어가는 힘과”

모든 법이 제 성품, 자기의 성품, 자기 자성(自性)에 들어간다.

일체법은요 자기 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성에서 발현된 것이 일체현상법입니다.

일체현상이 있으면 거기에는 자성이 있습니다.

감나무는 감나무의 자성이 있기 때문에 감나무 잎을 피우고 감나무 꽃이 열리고 감이 열리고 결국 홍시가 됩니다.

또 밤나무는 밤나무에 감이 열리지 않습니다, 밤나무는 밤나무의 자성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밤꽃이 피고 밤이 열립니다.

사과나무도 배나무도 다 그렇습니다.

그와 같이 모든 사람도 또 각자의 자성이 어떤 변하지 않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면서, 실체는 없으면서 각자 전부 자기의 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성품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 인생을 펼쳐 보이고 그 인생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현상은 일체법이고, 자성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본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일체법여화력(一切法如化力)
 

“모든 법이 변화와 같은 데 들어가는 힘과”

모든 법은 변화한다. 변화와 같은 데 들어가는 힘이 있다. 그것도 역시 ‘일체법이 자성에 들어가는 힘과’ 라는 것과 역시 유사한 내용입니다.

 

일체법여환력(一切法如幻力)
 

“모든 법이 환술과 같은 데 들어가는 힘과”

모든 법이 변화와 같고 환술과 같고

 

일체법개시불법력(一切法皆是佛法力)


“모든 법이 불법인 데 들어가는 힘이니라.”

일체법(一切法)이 개시불법(皆是佛法)이니라.

변화하면서 환술과 같고 그러면서 또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텅 비어 공한 것이어서 불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법(空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문(空門)의 도(道)를 얻었다. 일체법이 다 공한 도리에서 도를 얻었다 하는 이치와 같은 내용입니다.

 

일체법(一切法) 무염착력(無染着力)
 

“모든 법에 물들지 않는 힘과”

모든 법에 물들지 않는 힘, 보살은 그렇습니다.

일체 법에 물들지 않습니다.

중생은 그저 보면 보는 대로, 들으면 듣는 대로, 그냥 물들고 집착합니다.

그러나 보살은 ‘하루종일 밥을 먹어도 쌀 한 톨 씹지 않는다’ 하는 말이 있듯이, 어떤 상황에서 일상을 살더라도 그 일상에 물들지 않는다. 물들지 않는 힘이 있다.
 


일체법(一切法)심명해력(甚明解力)
 

“모든 법을 매우 밝게 아는 힘과”

모든 법을 매우 밝게 안다.

보살은 모든 법을 매우 밝게 안다.

 

일체선지식(一切善知識) 항불사리존중심력(恒不捨離尊重心力)
 

“모든 선지식을 항상 떠나지 않고 존중하는 마음의 힘과”

그렇습니다. 보살은 모든 선지식을 항상 떠나지 않고 존중하는 마음의 힘이 있습니다.

저는 선지식하면 으레 ‘화엄경을 선지식이다’ 라고 말씀을 드린 바가 여러 수백 번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화엄경을 떠나지 않고 화엄경을 존중하는 마음의 힘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곧 선지식입니다.

선지식을 항상 떠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이나, 화엄경을 항상 떠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이나 똑같은 의미입니다.

 

일체선근(一切善根) 순지무상지왕력(順至無上智王力)
 

“모든 착한 뿌리로 하여금 가장 높은 지혜의 왕에 수순하여 이르게 하는 힘이니라.”

가장 높은 지혜의 왕은 뭡니까?

부처님이 깨달으신, 부처님이 터득하신 지혜입니다.

모든 착한 선근(善根)으로 하여금 그런 경지에 수순하여 이르게 하는 힘이니라. 이러한 힘을 보살은 지녔기 때문입니다.

흔히 십력을 이야기 할 때의 내용하고는 많이 다르지요? 십력하고는 또다른 힘의 모습입니다.

 

일체불법(一切佛法) 심신불방력(深信不謗力)
 

“모든 불법을 깊이 믿고 비방하지 않는 힘과”

보살이 깊이 믿고 비방하지 않지요. 당연히 깊이 믿으면 비방할 까닭이 없습니다.

지혜가 있어서 불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비방할 일이 아니지요. 그저 찬탄하고 찬탄하고 다른 사람에게 권장하고 그렇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세상을 사는, 정말 바른 이치이기 때문에 비방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한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일체지심(一切智心) 불퇴선교력(不退善巧力)
 

“온갖 지혜의 마음이 물러나지 않게 하는 공교한 힘이니”

온갖 지혜의 마음이 물러나지 않게 하는 공교한 힘이니 선교방편의 힘이니 그런 뜻이지요.

지혜의 마음, 깨달음의 지혜는 한 번 터득하면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물러나질 않습니다. 절대 물러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여러 가지 힘을 갖추느니라.”


보살은 열 가지 평등함이 있다.

 

그다음에는 ‘보살은 열 가지 평등함이 있다’

평등함이 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평등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일체중생(一切衆生)

 

“이른바 일체 중생에 평등함과”

참 보살은요 일체 중생에 평등합니다.

우리는 그저 보았다 하면 차별하고 친소(親疏)가 있게 마련이고, 미운 사람 고운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미운 사람 고운 사람 친한 사람 친하지 않는 사람 그저 만나는 족족 거기에 아주 차별적인 표현을 할 수 밖에 없이,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보살은 그런 경지를 떠난 거지요.

이른 바 일체 중생에 평등함과

 

일체법(一切法)
 

“일체 법에 평등함과”

법에 평등하다 뭐 두말할 나위 없는 이치입니다.

 

일체찰(一切刹) 일체심심(一切深心) 일체선근(一切善根)
 

“일체 세계에 평등함과, 일체 깊은 마음에 평등함과, 일체 선근에 평등함이니라.”

일체 선근에 평등하고 일체 마음에 평등하고

 

일체보살(一切菩薩)
 

“일체 보살에 평등함과”

보살이 일체 보살에 평등하다고 하는 것, 당연한 이치입니다.

 

일체원(一切願) 일체바라밀(一切波羅蜜) 일체행(一切行)

일체불(一切佛)에 평등함


“일체 원(願)에 평등함과, 일체 바라밀다에 평등함과, 일체 행에 평등함과, 일체 부처님에 평등함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없이 평등한 법을 얻느니라.”

평등함 평등함 우리가 말은 쉽게 합니다만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 평등을 실천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첫째 마음에 친소(親疏)가 있으니까요.

처음 본 사람도 친소가 생깁니다.

생전 처음 봤는데 좋게 보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게 보이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않게 보이는 사람은 그렇지 않게 행동하고, 좋게 보이는 사람은 좋게 행동하고,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렇게 움직입니다.

그것이 중생의 마음이예요.

그런데 그건 다 잘못된 것이지요.

여기서 말했듯이 보살은 모든 법에 평등하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고 일체 평등한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이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대하는 일’이 되겠습니다.

 

보살은 열 가지 불법의 참된 이치의 글귀가 있다
 

그다음에는 ‘보살은 열 가지 불법의 참된 이치의 글귀가 있다’ 그랬어요.

*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불법의 참된 이치의 글귀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열 가지 불법의 참된 이치, 불법에 대한 실의구(實義句)그랬습니다. 실다운 실(實) 참 실(實)자, 또 진리라는 의(義) 뜻 의(義)자, 그리고 글귀라는 구(句)자 실의구(實義句).

그것을 ‘참다운 이치의 글귀’ 이렇게 번역을 했는데요.

 

일체법(一切法) 단유명(但有名)
 

“이른바 일체 법이 이름만 있음과”

일체 법이 이름만 있다. 참 의미 깊은 말씀입니다.

아무나 이런 말을 함부로 쓸 건 아니지요.

일체 법은 이름 뿐이다. 단지 이름일 뿐이다.

조금 불법 공부를 하고 조금 깊이 생각한 사람은 이해가 될 겁니다. 일체법이 이름만 있다.

 

일체법(一切法) 유여환(猶如幻)
 

“일체 법이 마치 환술과 같다.”

우리는 어떤 현상을 대하게 되면, 그것이 딱 굳어진 상태로 그대로 있어서, 나를 기쁘게도 하고 나를 슬프게도 하고, 나에게 어떤 침해를 주는 것으로도 생각하고, 경계에 따라서 그저 마음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고 움직입니다.

사실은 알고 보면요, 그 경계라고 하는 일체법은 환술과 같은 거예요. 이름 뿐인 것입니다.

 

일체법(一切法) 유여영(猶如影)
 

“일체 법이 그림자와 같다.”

그림자 붙들고 시비할 일 없지요. 일체 경계가, 내가 만나는 일체 대상들이 그림자라면 그걸 가지고 뭘 그렇게 아웅다웅하고 시시비비 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아, 참 깨달아야 할 대목입니다.

 

일체법(一切法) 단연기(但緣起)
 

“일체 법이 다만 인연으로 생김과”

글쎄요. 환술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다만 이름뿐이다 하는 것은 설사 당장에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다음에 말씀하신 ‘일체법이 다만 인연으로 생김’ 그랬습니다.

일체법이 다만 인연으로 생겼다.

따지고 보면 전부 인연으로 된 것이니까 그거 시간만 기다리면 됩니다. 기다리기만 하면 다 인연은 시한부 인연이기 때문에, 그 시한부 인연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저절로 풀리게 되어 있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그저 아등바등하고,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 하지요.

기다릴 줄 알면 돼요.

왜냐, 인연은 시한부 인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데 마음에 안들고, 그 사람은 인격이 안되고, 자격이 안되고, 생각이 잘못됐고 그래서 속을 끓이는 사람들이 좀 많습니까?

그렇지만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습니다.

4년을 그 소임을 보든 5년을 그 소임을 보든 아니면 8년을 보든 10년을 보든 그래봤자 그거 일생을 통해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멀지 아니한 시간입니다.

왜냐, 모든 것이 인연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다 인연은 흩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일체법(一切法) 업청정(業淸淨)

 

“일체 법이, 업이 청정함이니라.”

업이 텅비었다는 뜻입니다. 여기 청정(淸淨)이라는 말은요.

우리가 전부 업에 의해서 살기는 살지만, 그것도 잠깐입니다. 잠깐 그런 업의 힘이 있는 동안만 그렇게 그 업력에 따라서 살게 되어 있어요.

우리 모두가 업력 때문에 이렇게, 이런 주장을 하고 저런 주장을 하고, 이런 고집 부리고 저런 고집 부리고 살지만 그거 다 업력이기 때문에, 그 업력은 근본적으로 사실은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텅 빈 것이예요.

텅 빈 것이라서 그러한 사실들을 보살들은 환히 안다 하는 것입니다.

 

일체법(一切法) 단문자소작(但文字所作)
 

“일체 법이 다만 글자로만 지어짐과”

일체법은 이렇다 하고 저렇다 하고 얼마나 문자로 기록을 합니까?

문자로 기록 해놓으면 뭔가 실체가 있는 것 같고, 근사한 뭐가 있는 것 같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그저 문자일 뿐입니다.

말일 뿐입니다. 말일 뿐이고 문자일 뿐이예요.

그러한 사실을 보살은 훤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체법(一切法) 실제(實際)
 

“일체 법의 진실한 경계와”

일체법의 진실이 뭡니까?

일체법(一切法)은 개시무상(皆是無常)입니다.

일체법은 다 무상(無常)하다고 하는 사실이 진실입니다.

 

일체법(一切法) 무상(無相)
 

“일체 법이 모양이 없음과”

일체법은, 진실은 모양이 없는 것이니까, 그대로 모양 없는 모습이 진실이고, 진실한 모습은 모양없음이고.

 

일체법(一切法) 제일의(第一義)

 
“일체 법의 제일가는 뜻과”

텅비어서 무상하다고 하는 이치를 아는 것, 그것이 제일가는 뜻입니다. 제일의(第一義)

텅 비어 공(空)하다고 하는 사실을 아는 것, 일체법이 텅 비어 공하다고 하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제일의입니다. 또 공하면서도 공한 그대로가 또한 진리다 하는 사실 이것이 제일의입니다.

 

일체법(一切法) 법계(法界)
 

“일체 법의 법계이니”

법의 세계이니 그랬습니다. 일체 법은 공하고, 또 허망하고, 문자일 뿐이고, 이름 뿐이고, 그래봤자 그 사실을 다 포함해서 법의 법계다.

일체 법의 법계다. 법의 세계다 하는 뜻입니다.

*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일체 지혜의 지혜인 위없이 진실한 이치에 들어가느니라.”

아 참 이 단락은 정말 우리가 늘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삶의 현상들을 그대로 이야기 하는 것인데, 이러한 실체를 우리가 잘 모르고 거기에 속아서, 속아서 허덕입니다.

실체가 있는 줄 알고, 세월이 지나고 나면 사실 어지간한 사람도 다 그걸 깨달아 아는데, 당장에 당면했을 때 그게 모르니까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정신차리고 하면 어지간히 다 알아요.

아는데 당장에 우리가 어떤 사실과 봉착했을 때 거기에 그만 정신을 잃고, 우리가 그 이치를 깜빡해 버리는 거죠.

그러한 것을 자꾸 반복하고, 반복하고 하다 보면 후회하게 되고 또 후회도 여러 번 하게 되고 ‘아 내가 왜 그랬는가, 왜 그랬는가’ 하고 그런 뉘우침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지혜가 나고 철이 들고 그렇지요.

우리들 중생으로서는 그것이 한계니까요.

그래서 이 성인의 가르침, 화엄경과 같은 이 위대한 가르침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공부해도 하나도 소용없더라 ’해도 그래도 공부하는 길 밖에 달리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부지런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출처 : 염화실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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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의 열 가지 수기받는 법)

  15.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의 열 가지 중생을 성취함)

  16.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의 열 가지 차별한 지혜, 열 가지 다라니)

  17.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의 열 가지 행(行))

  18.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이 의지하는 것1)

  19.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이 의지하는 것2)

  20. 無比스님의 소참법문-華嚴經 離世間品(보살이 의지하는 것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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