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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심경(般若心經) 무가애고 무유공포 앞에서 ‘무가애’라고 하여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을 통해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이익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을 통해 어떠한 경계가 닥치더라도 여여(如如)하여 걸림이 없음을 체득한 보리살타에게 공포가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습니다. 즉, 마음에 걸림이 없는 이는 공포심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마음에 걸림이 없어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라면, 어느 마음을 딱히 찍어 두려움이나 공포심이 몰려올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공포심이라고 하면, 작게 생각하여 두려움, 공포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마음에서 느낄 수 있는 온갖 괴로움, 불안함 등의 모든 괴로운 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선 『대품반야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공포에 대한 해석을 봅니다. 모든 선남자 선녀인이 이 반야바라밀을 듣고 받아 지니며, 가까이하고 독송하며 바르게 사유하여, 일체지(一切智)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면, 이 모든 선남자 선녀인은 혼자서 빈집에 있거나, 혹은 무서운 황야를 가거나, 혹은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있게 되어도 마침내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는다. 여기에서, 반야바라밀을 듣고, 의지하며, 바르게 사유하는 이는, 세 가지에 대한 두려움을 여의게 된다고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혼자서 빈집에 있거나’ 라고 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고 있는 공포심의 대표적인 것이지요. 이 공포심은 ‘무서움’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누구나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특히, 경문에서처럼 혼자 빈집에 있다거나, 혹은, 그 집이 아무도 살지 않는 흉가라면 더욱 두려울 것이고, 밤길을 홀로 걸어가던가 할 때 느끼는 통상적인 공포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공포심에서 쉽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공포심에서 벗어나려면 올바른 사유만 있으면 되는데, 사실은 그것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처음 출가하여 새벽 도량석을 할 때였습니다. 아래 주차장 쪽에 49 재 막재 의식 중 봉송을 하는 소대가 있으며, 그 옆으로 허름한 화장실이 있었지요. 새벽 3 시에 도량석을 할 때, 항상 이 곳만 지나게 되면 은근한 공포심을 느껴야 했습니다. 아마도 49 재 의식 때 봉송을 하는 곳이겠기에 그렇기도 하려니와, 사실 낮에도 그곳에 혼자 서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진다고 느낄 만큼 기분이 안 좋은 곳이었습니다. 더구나 가끔씩 산에 사는 야생 고양이가 두 눈에 불빛을 반사하며 나를 노려볼 때면 가슴이 순간 멎는 것 같기도 했었답니다. 그런데, 공포심을 느끼는 내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노라니, 이 모두가 내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지 어디에 공포라는 것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수행자’라고 했으면서 이런 공포심에 떨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하던지요. 한 번은, 하루 저녁 밤 9시가 되었을 즈음에 혼자 방에서 나와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마음을 관찰하였고,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를 관찰해 보고, 아예 주저앉아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내어 보았습니다. 두려움이라는 마음을 관하여 보니 도무지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것이 두려운 마음이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두려워 하고 있는지, 두렵다면 그 두려운 마음이 무엇인지, 그 느낌이 무엇인지... 관해 보고 찾아보려 하면 저만치 달아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밤낮이라는 개념에 놀아나 두려워하는 내 모습이 먼저 보였습니다. 지구가 자전을 하여 빛을 잠시 막고 있을 뿐인데 내 마음은 거기에 걸려 있었고, 그 마음이 두려움을 몰고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 가운데 두려움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가만 보니, 도무지 찾을 수가 없을뿐더러 관찰하고 있는 순간 이미 두려움은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는 실제로 두려움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도량석을 할 때에도 공포심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시달림을 가서 염습때 보았던 시신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서 공포심을 일으킨 적이 있었지만, 곧장 그 마음을 관찰하고 나면 어느덧 고요해 지곤 하였습니다. 공포심이라는 것에는 역시 고정된 어떤 두려움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만 내 마음속에서 만든 것일 뿐입니다. 혹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빠져 들어감으로써 잠시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집중하여 그 인연을 관찰해 보면 공포심도 사라지게 마련인 것이지요. 다시 말해, 마음이 경계에 걸려들게 됨으로써 공포심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걸림이 없다면 두려움은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무서운 황야를 가거나’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곳은 맹수가 득실거리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 무서운 도둑, 강도가 난무하여 재물과 목숨을 노리고 있는 요즈음의 세상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 니다. 요즘은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도둑, 강도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문을 보면, 이웃 사람에게 강도, 강간을 당하는 사람, 어린아이를 유괴하여 강간하는 사람, 심지어는 부모, 자식와 자식이 서로를 죽이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얼마 전, 매스컴을 통해 돈이 없어 자식 손가락을 잘랐다는 부모의 이야기를 들었고,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자르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야말로 무서운 황야의 맹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두 번째 공포의 의미는, 주위가 온갖 위험한 맹수로 들끓고 있는 요즘같은 험난한 세상을 의미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공포는 다만 사람에게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자동차라는 무서운 맹수가 달려들어 우리의 목숨을 앗아갈지, 비행기가 갑자기 추락하여 덮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휴식을 즐기며 쇼핑을 잘 하다가도 갑자기 백화점이 무너져 내려 수많은 이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보았고, 학교, 직장 출근길에 다리가 무너져 강에 빠져 죽는 것도 보았습니다. 길을 걷다가도 언제 도시가스가 폭발할 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뿐이겠습니까. 세상은 온통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우리 사회는 온갖 오염된 물질들로 병들어 있고, 그러다 보니 그러한 오염된 것들을 섭취하는 인간의 기관도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요즈음은 병명도 알 수 없는 온갖 질병들이 판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언제 어디에서 질병이 엄습해 올 지 모르는 것도 이러한 두려움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WTO[세계 보건 기구]에서는 현대인의 질병 가운데 약 80%는 물을 잘못 마시는 데에서 그 원인이 발견된다고 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수질이 오염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물조차 사먹어야 하는 세상이 너무나도 빨리 와 버렸습니다. 먹고사는 가장 기본이 되는 물의 오염도가 이 정도라면 다른 음식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 당연합니다. 모두가 두려움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야심경에서는 이러한 모든 공포심도 반야바라밀다라는 수행을 통해 쉽게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러한 공포심이 객관세계가 오염되는 데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공포심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모두가 내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있게 되어도’ 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이것은 위에서 보았듯이 사람을 서로 믿지 못하고, 서로를 위협하는 세상을 표현한 말입니다. 요즘은 사람들 사이에 가면 행복해야 하거늘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대중들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 같은 감정도 문제가 됩니다. 요즘 사회문제로 크게 대두되는 것이 바로 소위 ‘왕따’ 라는 집단소외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산업화, 도시화, 근대화가 가져온 인간 소외현상의 하나로, 군중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두려움, 공포감의 현대화된 현상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생기는가 하면, 학생들은 학교 생활을 올바로 하지 못하고, 거리를 방황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이러한 것들 외에도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나의 경쟁자가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무관심도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모두가 따뜻한 내 이웃이고 도반이 되어야 할텐데, 우리는 항상 이웃, 친구를 경계하고, 견제하며, 경쟁의식 속에서 이겨야 한다는 논리를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어찌 인간 소외 현상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마음을 나누어야 할 때입니다. 서로가 현대의 경쟁 논리로서, 경쟁자로서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을 나눌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도반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장이 많이 열려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공포심이야말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 가운데 가장 괴로운 감정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보시바라밀을 실천할 때 재시(財施)와 법시(法施)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두려운 마음을 없애주는 무외시(無畏施)를 큰 보시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재시는 재물, 돈에 시달려 굶주리는 이를 위한 보시이고, 법시는 진리에 목마른 이에게 법을 베풀어주는 보시이지만, 무외시는 마음이 불안한 이를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최고의 보시이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은, 이 모든 공포심에서 후련하게 벗어나, 진정으로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로우며 행복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출처: 목탁소리(www.moktaksori.org)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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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법상스님 반야심경(般若心經) 67 - 구경열반 短長中庸 2009.12.29 8310
155 법상스님 반야심경(般若心經) 66 - 원리전도몽상 短長中庸 2009.12.29 8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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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법상스님 반야심경(般若心經) 64 - 심무가애 短長中庸 2009.12.29 7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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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법상스님 반야심경(般若心經) 59 - 도성제(道聖諦) 短長中庸 2009.12.29 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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