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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아들들이 각기 아비에게 아뢰오되, <부친이 아까 허락하신 노리개, 양거(羊車)·녹거(鹿車)·우거(牛車)를 원컨대 이제 내려 주소서.>
[時諸子等各白父言 父先所許玩好之具 羊車鹿車牛車 願時賜與]
 

묘법연화경문구 / 李元燮 저 / 영산 법화사 출판부 / 불기 2541(1997).3.20
 

경문(經文)에 이르되,「원컨대 저희에게 세 가지 보거(寶車)를 내려 주소서.」라 했다. 경문에는 구한다〔索〕는 글자가 없지만, 도리에 있어서는  이 수레를 청하는 말에 의해 수레를 구함을 밝혔을뿐이다.
사람이 있어 말하되, 「이승(二乘)은 수레를 구하되 보살은 구하지 않는다」하고, 열 가지 논란(論難)을 만들어 이를 논했다. 첫째는 이르되, 이승(二乘)은 삼계(三界) 밖에 벗어나  수레를 허락하는곳에 이르렀으므로  깨달음의 수레를 구하지만, 보살은 아직 수레를 허락하는 곳에 이르지 못했으니, 어찌 홀연히 수레를 구하겠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이르되, 대승경(大乘經)에는 보살이  소승의 과(果)를 구하는 일이 나와 있지 않다. 그러므로 수레를 구하는 일이 없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이르되, 소화(所化)의 보살은  초발심(初發心)에서  보처(補處)에 이르기까지 다 범부여서 삼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도리에 있어서 수레를 구하는 일이 있을 수 없고, 능화(能化) 보살은  삼십삼심(三十三心)에서는  견혹(見惑)이 끊어졌으되 사혹(思惑)은 아직 다하지 못했으며, 삼십사심(三十四心)은 곧 부처니, 부처가 누구에게 수레를 구하시랴는 것이다.
넷째는 이승(二乘)의 과는  정사(正使)의 문 밖에 있고, 불과(佛果)는  습기(習氣)와  무지(無知)의 문 밖에 있는데, 이승은 정사를 온통 끊었으나 수레가 안 보이니, 그래서 이를 구하는 터이나, 보살은 습기와 무지를 끊지 못했거니, 어찌 홀연히 수레를 구하겠느냐는 것이다.
다섯째는 이승(二乘)은 방편이라 밝히셨으니, 수레를 구한다 말할 수 있다. 경문에 이르되, 「오직 이 하나만이 진실이고, 다른 둘은 참이 아니다」 하셨으니, 이것으로 헤아리건대 다만 이승만이 구하고 일승은 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여섯째는  대품(大品) 이래 법화경에 이르기 이전에 있어서, 불인(佛因) 불과(佛果)가 다 방편이라면, 궁자(窮子)에게 재산을 물려준 것에서, 이 「진기한 보배」란  다 응당 방편이라 보아야 할것이며, 만약 재물을 물려줌이 진실이라면 대품 등에 불승(佛乘)을 밝힌 것도 이미 진실이거니, 어찌 홀연히 다시 이를 구하겠느냐는 것이다.
일곱째는 방편품의 게송에, 옛날 소승을 설함이 방편이었음을 서술하시되 대승이 방편임은 서술치 않으셨으니, 마땅히 대승이 방편 아님을 알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홀연히 구함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덟째는 만약  삼인(三人)이 함께 구했다면, 어찌 영해(領解)가 없었으랴. 영해가 없었기에, 그러므로 보살은 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아홉째는 대거(大車)를 준 것을 다른  합비(合譬)의 글에서 이르되, 「여러 중생이 삼계의 고(苦)에서 벗어나 열반의 낙(樂)을 얻음을 본 까닭에, 내리되 대승으로써 한 것이다.」 했다. 그런데 보살은 열반을 실현치 않았거니, 어찌 홀연히 구하겠느냐는 것이다.
열째는 여러 아들은 화택에서 나와 맨땅에 편안히 앉았기에, 아비에 대해 수레를 구할 수 있었다. 이승(二乘)은  깨달음이 충족되어 더 이상 수행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편안히 앉아 있는」 셈이어서 수레를 구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살의 수행은 아직 그치지 않아 「편안히 앉는」 도리가 성립하지 않거니, 어찌 홀연히 수레를 구하겠느냐는 것이다.
文云.願賜我等三種寶車.文無索字義者依此請辭明索車耳.有人云.二乘索車 菩薩不索.作十難難之.一云.二乘出三界外.至許車處索果車.菩薩未至許處.那忽索車.二云.大乘經無菩薩索小乘果.故知不索.三云.所化菩薩從初發心.終至補處.皆是凡夫不出三界.義則無索.能化菩薩三十三心見傾思未盡.三十四心便是佛.佛從誰索.四二乘果在正使門外.佛果在習氣無知門外.二乘斷正使盡不見車.是故索.菩薩未斷習與無知那忽索.五明二是方便可言索.文云 唯此一事實.餘二則非眞.以此推之但二索一不索.六從大品已來.至法華已前.佛因佛果皆是方便者.付窮子財 此之珍寶.皆應是方便.若付財是眞實.則大品等明佛乘.已是眞實那忽更索.七方便品偈. 昔說小是方便.不 大是方便.當知佛子大乘非方便那忽有索.八若三人索者何無領解.領解無故.故知不索也.九合賜車文云.見諸衆生出三界苦得涅槃樂.故賜以大乘.菩薩不證涅槃那忽索.十諸子安坐 故就父索.二乘果滿不修行故安坐可得有索.菩薩行未息.無安坐義 那忽索.[참고]

사사로이 총별(總別)로 나누어 이를 반박하겠다.
색(索)은  구청(求請)의 별명이다. 마음에 있는 것을  구색(求索)이라 하고, 입에 있는 것을  청색(請索)이라 하고, 몸에 있는 것을  걸색(乞索)이라 하니, 청맹관이가 알기를 구함과 같고, 굶주린 자가 밥을 청하는 것과 같고, 길을 잘못 든 자가 길을 묻는 것과 같다. 무릇  진리에 도달치 못한 경지에 있는 바에야 어찌 구하지 않아도 될 리가 있겠는가. 구하는 까닭에  주며, 주는 까닭에 기뻐함이니, 지금의 글에도 고루 요청과 허여(許與)와 환희가 있다.
법설(法說) 속에서  천 이백인(千二百人)은  신자(身子)를 우두머리로 하여  은근(殷勤)히 삼청(三請)했고, 보살의 무리 속에서는 미륵을 우두머리로 하여, 「불구소생자(佛口所生子)가 대수(大數) 8만이 있엇, 합장하와 공경하는 한 마음으로, 구족도(具足道)를 듣잡고자」했다. 또  비설(譬說) 처음에서는 신자(身子)가 중근(中根)인 사람을 위해 설법하실 것을 청하고, 또 일반적으로  사중(四衆)을 위해 청하고, 곁들여 하근(下根)을 위해 청했다.
경문(經文)에 이르되,「좋사오니 세존이시여, 원컨대 사중(四衆) 위해 그 인연 설하오소서.」라 했다.
이런 요청을 받으신 부처님께서는 법설(法說)에서 허락해 이르시되,「네 이미 간곡하게 세 번이나 청했거니, 어찌 설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라 하시고, 비설(譬說)에서는 허락해 이르시되,「마땅히 비유로써 다시 이 뜻 밝히리라.」하시고, 인연설(因緣說)에서는 허락해 이르시되,「나와 너희들이  숙세(宿世) 인연을 내가 이제 마땅히 설해 주리라.」하셨다.
이렇게 요청과 허여가 있었으므로 법설이 끝나자 신자(身子)가 기뻐하고, 비설이 끝남에 있어서는  가섭(迦葉)등이 기뻐하고, 숙세설(宿世說) 끝에서는  부루나(富樓羅)가 기뻐했다. 또  합비(合譬)의 글에 이르되,
「여러 아들 밤낮 없이 영원하도록 그것으로 노닐어 보살들 함께 이  수레 타  바로 도량 이르게 하리로다.」
하니, 이 또한 기쁨을 나타낸 것이다.
기쁜 까닭에 주심을 알며, 주시는 까닭에 청함을 아니, 삼주(三周)의  삼의(三義)는  명문(明文)에 뚜렷한 바가 있다. 어찌 편벽되이 이승은 수레를 구하고 일승은 구하지 않는다 할 수있겠는가.
私以總別駁之.索是求請之別名.在意名求索.在口名請索.在身名乞索.如汕者求知.如飢者請食.如迷者問道.凡居不達之地.何有不索之理.由索故許與.許與故歡喜.今文具有請與歡喜.法說中千二百人.身子爲首.慇懃三請.菩薩衆中彌勒爲首.佛口所生子.大數有八萬.合掌以敬心.欲聞具足道.譬說之初.身子爲中根人請.又總爲四衆請.傍爲下根請.文云.善哉世尊.願爲四衆說其因緣.法說許云.汝已殷勤三請豈得不說.譬說許云.當以譬喩 更明此義.因緣許云.我及汝等宿世因緣.吾今當說.法說竟 身子歡喜.譬說竟 迦葉等歡喜.宿世說竟 樓那歡喜.又合譬文云.令諸子等 日夜劫數 常得遊戱.與諸菩薩 乘是寶乘 直至道場.以喜故知與.與故知請.三周三義 明文炳然.何故偏言二索一不索.[참고]

개별적으로 반박하겠다.
첫째로  삼장교(三藏敎)에 한해서 보살은 번뇌를 끊지 못했다고 밝힌 점에 대해서다. 법화경에 의하면 사구(四句)가 있으니, 비설(譬說)에서도 장애가 제거되고 나서 대승의 근기가 움직이는 것과, 장애가 제거되지 않은 채 대승의 근기가 움직이는 일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든 근기가 움직인 바에는 구함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別駁 其一.齊三藏明菩薩不斷惑.依法華有四句.謂障除大機動.障未除大機動.機動則知索.[참고]

그 둘째에서는 이르되, 「대승경에는 보살로서 소승의 깨달음을 구하는 일이 나와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대승경전인  대품(大品)은 이르기를,「삼승(三乘)의 사람이 똑같이  무언설(無言說)의 도(道)를 가지고 번뇌를 끊어 열반에 든다.」고 했다. 번뇌를 끊어 열반에 들어감이 동일하다면, 어째서 구하지 않으랴.
其二云.大乘經無菩薩索小乘果.大品云.三乘之人.同以無言說道.斷煩惱入涅槃.斷煩惱入涅槃同.何故不索.

그 셋째에서는 이르되, 「삼십삼심(三十三心)을 보살이라 하고, 삼십사심(三十四心)에서  사혹(思惑)을 온통 끊어 곧 부처가 되니, 부처가 누구를 좋아 구하랴」 하였다. 이는 아직도 삼장교(三藏敎)의 도리이긴 하나, 견장(見障)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대승의 근기가 움직이는 터에, 하물며 삼십삼심(三十三心)이면서 대승의 근기가 움직이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 움직인다면 곧 구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其三云.三十三心名菩薩.三十四斷思盡卽成佛.佛從誰索.此猶三藏義.見障未除大機尙動.況三十三心而當不動.動卽知索.

그 넷째는 「보살은  습기(習氣) 무지(無知)를 끊지 못했으므로 응당 구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끊으면 성불하니, 부처가 누구를 좇아 구하랴」했다. 이는 삼승(三乘)의 통교(通敎)의 도리거니와, 구박(具縛)의 장애가 있는 처지에서도 대승의 근기가 움직이는 터에, 하물며  잔습(殘習) 무지만이 남은 단계에서 어찌 움직이지 않겠는가.
其四.菩薩未斷習氣無知 不應索.斷盡成佛 佛從誰索.此三乘通敎義.具縛障存尙大機動.況殘習無知耶.

그 다섯째에서는 「오직 이 하나만이 진실」이라는 경문(經文)을 들어, 「진실은 곧 진리니, 어찌 홀연히 다시 구하랴」하였다. 그러나 영기서 말씀한  회통(會通)된  절대(絶待)의 유일(唯一)은 일(一)밖에 다시 무엇도 없는 것인데 비해, 옛날의 이승(二乘)과 대립하는 유일(唯一)은 일(一) 밖에 다시 무엇이 있는 것이어서, 일(一)의 이름은 같아도 그 실체(實體)는 다르다. 그러므로 대립하는 유일(唯一)에 머무는 보살로서 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보살은 안 구한다 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와력(瓦礫) 어목(魚目)을 들고  야광(夜光) 월형(月形)이라 말함과 같으니, 어리석은 무리는  비웃고 지혜 있는 사람은 가엾이 여길 것이다…….」
 其五唯此一事實.實卽是眞 那忽復索.被會絶待之唯一.一外更無法.昔待二之唯一.一外更有法.一名同而體異.闇執瓦礫魚目.謂夜光月形.愚豈而智愍(云云).

그 여섯째는 「반야경(般若經)에서 법화경에 이르기전까지는  재법(財法)을 부여함이 같으니, 응당 구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당신은  공반야(共般若) 불공반야(不共般若)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단 말인가. 불공반야에 있는 사람이라면 구할 필요가 잆을 것이나, 공반야의 보살로서는 응당 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其六.般若已來 法華已上.與付財法同.不應有索.汝不聞共不共般若.不共不須索.共者不應不索(云云).

그 일곱째로 「방편품 첫머리에서, 예전에 소승을 설한 것은 방편이라 서술하셨으나, 예전에 대승을 설하신 것까지 방편이라고는 서술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대승은 방편이 아니니, 그러므로 보살은 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대는 수량품(壽量品) 중에서,「내가 젊어 출가하여  삼보리(三菩提)를 얻으니라.」하시고, 내지는 중간(中間)에「혹은 소승을 설하며, 혹은 대승을 설하며, 혹은 자기의 불신(佛身)을 설하며, 혹은 남의 불신을 설했니라.」하신 다음.
「이 모두가 내 방편이었으니, 제불(諸佛) 또한 그러하시다.」고 말씀하신 것을 듣지 못했는가. 보살이라 하여 어찌 구하지 않을 수 있으랴.
其七.方便品初.昔說小是方便.不 昔說大是方便.大非方便.是故不索者.汝不聞壽量品中.我少出家得三菩提.乃至中間 若小若大 若己若他 皆我方便.諸佛亦然.寧得不索.

그 여덟째는, 「만약 보살이 구했다면 응당  영해(領解)가 있어야 할 것인데, 영해했음을 나타낸 글이 없다. 그러므로 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당신은  법설(法說)의 끝에서  천룡(天龍)과 사중(四衆)이 다 영해 했음을 듣지 못했는가. 이들이 보살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해야 할 것인가. 또 법사품(法師品)에서는  삼승(三乘)에게 다 기(記)를 주셨는데, 만약 영해하지 않았다면 어찌 홀연히  기를 주셨겠는가.
其八.若菩薩索 菩薩應領解.領解旣無 故知不索.汝不聞法說竟.天龍四衆皆領解.其非菩薩謂是何耶.又法師品中.三乘皆與記.若不領解那忽與記.

그 아홉째는 「삼계(三界)의 고(苦)에서 벗어나  안온(安穩)한 낙(樂)을 얻었다면 주시고 구하고 하려니와, 보사은 고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안온한 낙을 실현하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삼장교(三藏敎)의 도리일 따름이다.
其九.出三界苦 得安隱樂.乃賜乃索.菩薩未出未證.是故不索.猶是三藏義耳.

그 열번째는 「여러 아들이 화택에서 나와 편안히 앉으니, 그래서 수레를 주셨다. 이승(二乘)의 행(行)이 그치는 것을 편안히 앉는다 함이니, 보살의 행은 그치지 않았으므로, 편안히 앉는다는 말에 해당되지 않는다. 어찌 홀연히 수레를 구하랴」 하였다. 그러나 이는 앞에서 말한 삼장교(三藏敎)의 도리일 따름이다. 무릇 행(行)이 그치고 나서 구하는 경우와, 행이 안 그친 상태에서 구하는 경우가 있을 뿐 아니라, 보살의 여러 행(行)은 곧 여러 가르침이다. 가르침은 구하는 것에 의해 얻어지나니, 어찌 구하지 않는다 할 수 있겠는가.
其十.諸子安坐 爾乃賜車.二乘行息名安坐.菩薩行不息非安坐.那忽索車.猶是前義耳.自有行息索 行未息索.又菩薩行行.卽是乘乘.乘由索得 何謂不索.

그 거짓되이 삼장교(三藏敎)의 도리를 거듭한 까닭에 이 십난(十難)을 만든 것을 보건대, 관견(管見)의 한 반점(斑點)일 뿐 모두가  전체적인 모습은 아니다. 이제 마땅히 그대를 위해 분별해서 이를 설해 주겠다.
스스로 혹(惑)을 끊지 않으며 수레를 구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삼장교의 보살이 이것이다. 스스로 혹을 끊으며 수레를 구하는 경우가 있으니, 통교(通敎)의 보살이 이것이다. 스스로 혹을 끊기도 하고 혹을 안 끊기도 하면서, 수레를 구하기도 하고 안 구하기도 하는 경우가 있으니, 별교(別敎)의 보살이 이것이다. 스스로 혹을 끊는 것도 아니요 혹을 안 끊는 것도 아니면서, 수레를 구하는 것도 아니요 안 구하는 것도 아닌 경우가 있으니, 원교(圓敎)의 보살이 이것이다.
觀其詭累三藏.故設此十難.管見一斑 都非大體.今當爲爾分別說之.自有不斷惑不索車.三藏菩薩是.自有斷惑索車.通敎菩薩是.自有亦斷惑亦不斷惑亦索亦不索.別敎菩薩是.自有非斷惑非不斷惑非索非不索.圓敎菩薩是.

또 구하고 안 구하는 문제를  오미(五味)에 적용하면, 유미(乳味)에는 두 가지 취지가 있으니, 첫째는  혹(惑)을 끊기도 하고 안 끊기도 하며, 불승(佛乘)을 구하기도 하고 안 구하기도 함이요, 둘째는  혹을 끊는 것도 아니고 안 끊는 것도 아니며, 불승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안 구하는 것도 아닌 그것이다. 낙미(酪味)에는  한 가지 취지뿐이니, 끊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는다. 생소(生 )는  네 가지 취지를 갖추고 있으며, 숙소(熟 )는  다만 세 가지취지뿐이며, 제호(醍 )는  하나의 취지다. 전체의 큰 정신을 말한다면, 그 도리가 이와 같다.
又歷五味 乳味兩意.一亦斷亦不斷.亦索亦不索.二非斷非不斷.非索非不索.酪味一意 不斷不索.生 備四意.熟 但三意.醍 一意.宏綱大統 其義如此.

하나 하나의 구(句)와 하나 하나의 취지에 다시 각기 사구(四句)가 있으니, 장애가 제거되고 나서 대승의 근기가 움직이는 것 장애가 아직 제거되지 않은 단계에서 대승의 근기가 움직이는 것 장애가 제거되기도 하고 제거되지 않기도 한 단계에서 대승의 근기가 움직이는 것 장애가 제거된 것도 아니며 제거되지 않은 것도 아니면서 대승의 근기가 움직이는 것이 그것이다. 이  근본적 취지를 보지 못하고, 하나를 취하고 셋을 비난하니, 기이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
於一一句一一意.復各四句.謂障除機動.障未除機動.障亦除亦未除機動.障非除非不除機動.斯宗不見 執一非三深可悲愍.[참고]

세상 사람들은 수레의 수효를 잡음이 같지 않고, 수레의 본체(本體)를 설함이 같지 않았다. 혹자는 말하되, 처음에 삼거(三車)를 설하시고, 뒤에 그 중의 둘을 통합해 하나로 돌아오게 하셨다 했다. 혹자는 말하되, 처음에 삼거가 있다 설하시고, 뒤에 그 셋을 통합해 하나로 돌아가게 하셨다 했다. 혹자는 말하되, 처음에 사거(四車)가 있다 설하시고, 뒤에 그 중의 셋을 통합해 하나로 돌아오게 하셨다 했다.
멋대로인 이런 견해들에 대해, 이제 경문(經文)을 내놓는 것은 이런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라는 데에 있다.
世人執車數不同.說車體不同.或言初說三車.後會二歸一.或言初說有三.後會三歸一.或言初說有四.後會三歸一.所以出經勿信人語.[참고]

이 경문(經文)에서, 옛날의 부처님이 성문을 위해 사제(四諦)의 법을 설해 응하시고, 연각인 사람을 위해 십이인연(十二因緣)의 법을 설해 응하시고, 보살인 사람을 위해 육바라밀(六波羅蜜)의 법을 설해 응하셨음을 인용한 바 있거니와, 금불(今佛)이 삼승(三乘)을 설하신, 그 수효도 또한 이와 같다 해야 할 것이다.
화엄경 제 8에서는 이르시되,「근기가 열등하여  생사를 싫어하는 자를 위해서는 성문의 도를 보이시고, 근기가 둔해 인연의 가르침을 바라는 자를 위해서는 연각의 도를 설하시고, 근기가 뛰어나 자비심이 있는 자를 위해서는 연각의 도를 설하시고, 근기가 뛰어나 자비심이 있는 자를 위해서는 보살의 도를 설하시고, 근기가 더없이 뛰어나  대사(大事)를 바라는 자에게는 무량(無量)의 불법을 설하신다.」하고, 화엄경 36에서는 또 이르시되,「삼해탈법(三解脫法)은 성문승(聲聞乘)을 내고, 무쟁법(無諍法)은 연각승(緣覺乘)을 내고, 육도(六度) 사섭(四攝)은 대승을 내고, 지일체법(知一切法)은  불승(佛乘)을 낸다.」하고, 또  제구지(第九地)에서는 성문승의 모습  지불승(支佛乘)의 모습 보살승의 모습  여래승(如來乘)의 모습에 대해 설하셨다.
此文引昔佛爲聲聞說應四諦法.爲緣覺人說應十二因緣法.爲菩薩人說應六波羅蜜法.今佛說三數亦如此.華嚴第八云.下劣厭沒者.爲示聲聞道.根鈍樂因緣.爲說緣覺道.根利有慈悲.爲說菩薩道.無上樂大事.說無量佛法.三十六又云.三解脫法出聲聞乘.無諍法 出緣覺乘.六度四攝 出大乘.知一切法出佛乘.又第九地 說聲聞乘相 支佛乘相 菩薩乘相 如來乘相.

지론(地論)에서는  제이지(第二地)를 해석하는 중에, 십불선(十不善)이 모이면  삼도(三途)에 떨어지고, 십선(十善)이 모이면 천계(天界)에 난다 관(觀)했다. 그리고  상등(上等)의 십선과  사제(四諦)의 관지(觀智)와 어울리면 성문이 되고, 또 상등의 십선과  남으로부터 배우지 않은 관지와 어울리면 연각이 되고, 또 상등의 십선과  구족청정(具足淸淨)의 관지가 어울리면 보살이 되고, 또  상상(上上)의십선과  일체종지(一切種智) 일체불법(一切佛法)이 어울리면 부처가 된다고 했다.
영락경(瓔珞經) 13에서는 이르되,「시방(十方)의 부처님들은 삼승(三乘)을 설하심에 있어서, 일승(一乘) 속에서 다시 각기 삼승을 분개(分開)하시니 합치면  구승(九乘)이 되지만, 구승 모두가  평등대혜(平等大慧)에  회입(會入)한다.」고 하셨다.
성설(聖說)이 이와 같으시니, 융통(融通)하지 못해서 서로 시비하여, 법을 비난하며 사람을 헐뜯는 과실은 막대하다 해야 할 것이다.
地論釋第二地.觀十不善集墜三途 十善集生天.上十善與四諦觀智合成聲聞.又上十善與不從他聞觀智合 成緣覺.又上十善與具足淸淨觀智合.成菩薩地.又上上十善與一切種一切佛法合成佛.瓔珞第十三云.十方佛說三乘.一乘中又開三合九乘.九乘悉會入平等大慧.聖說如此 不能融通.互相是非 非法毁人 過莫大焉.

이제  화법사교(化法四敎)에 입각해 분별하겠다. 만약  삼승(三乘)의 법문(法門)은 다르되 진제(眞諦)는같다고 설하면  삼장교(三藏敎)요, 만약 삼승의 법문도 같고 진제도 다같다고 설하면  통교(通敎)요, 만약 삼승의  삼삼구승(三三九乘)을 설하거나, 만약  사승(四乘)의 얕고 깊은 계급이 각기 같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똑같이 평등대혜(平等大慧)에 든다고 설하면 별교(別敎)요, 만약 삼승 구승(九乘) 사승(四乘)의 하나 하나가 다  평등대혜에 어울려 대립이 없고 다름이없다고 설하면 원교(圓敎)인 것이 된다.
또  오미(五味)에 적용해 분별하면, 유미(乳味)는  다만 보살승 불승을 밝힐 뿐이고, 낙미(酪味)는  다만 서로 다른 삼승을 밝힐 뿐이고, 생소미(生 味)는 자세히 삼승 사승 구승의  하나 하나의 차별이 서로 문란해질 수 없음을 밝히고, 숙소미(熟 味)는  오직 다른 취지의 삼승을 제외하면 다른 것은 생소미의 내용과 같고, 제호미(醍 味) 속에서는 오로지 불승만을 설하시니, 다시 다른 가르침이라 존재치 않는다. 만약 이런 취지를 안다면 여러 이설(異說)도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나, 만약 모르는 자라면 오직  쟁론(諍論)만 더해가게 될 것이다.
今約敎分別之.若說三乘法門異 而眞諦同者.三藏敎也.若說三乘法門同 眞諦皆同者 通敎也.若說三乘三三九乘.若說四乘淺深階級各各不同 而同入平等大慧者.別敎也.若說三乘九乘四乘 一一皆與平等大慧相應 無二無異者.圓敎也.又歷五味分別.乳味 但明菩薩乘佛乘.酪味 但明異三乘.生 味 備明三乘四乘九乘 各各分齊不相濫.熟 味 唯除異三乘.餘如生 也.醍 中 純說佛乘.無復餘乘也.若識此意 異說無妨.若不知者 ·增諍論耳.

세인(世人)들의  불승(佛乘)을 밝힌 것을 살피건대  승(乘)과 체(體)를 다르게 보고 있다. 광택(光宅)은  불과(佛果)의  절대적  진무생(盡無生)의 이지(二智)를 취해  거체(車體)라 했다. 그러고는 멀리  오백 유순(五百由旬) 밖에 나감을  옛날에 대립시켜 고(高)라 하며, 고루  만덕(万德)을 포함함을 옛날에 대립시켜 광(廣)이라 한다고 했다.
장엄(莊嚴)은  인(因)이 만행(萬行)을 이끄는 것을 취해 체(體)라 하고, 상구(上求)를 고(高)라 하며, 하화(下化)를 광(廣)이라 했다.
또 옛날의 한 사람은  공덕으로 보는 주장을 취하지 않고, 공덕은 범부와 공통이라 하여, 오직 지혜를 취해 체(體)로 삼으려 했다. 또 옛날의 어떤 사람은 복덕과 지혜를 취해 함께 체(體)로 삼으로 했다. 그리하여 경에 이르되, 「이 수레 타면 무루(無漏)한 근(根)과 역(力)과 각(覺)과 도(道)와 선정과 해탈 삼매로 스스로 즐기리라.」한 글을 인용해, 불승의 체(體)가 어찌 지혜뿐이겠느냐고 했다.
또 한 사람은  유(有)의 이해를 취해 체(體)라 하고, 공(空)의 이해는 움직임이 없으므로 취하지 않았다. 진무생지(盡無生智)가 곧 유의 이해다.
또 일설에는 소승은  공의 지혜를 취해 거체(車體)로 삼으니, 경문(經文)에 이르되, 「저희가 긴긴 세월 공법(空法)을 닦아……」라 하신 것이 그것이라 하고, 대승도 또한  실혜(實慧)의 방편으로 거체(車體)를 삼으니, 거체는  유(有)를 비유하고, 유(有)에는 운동이 있는 까닭이라 했다.
나〔章安〕의 생각에 의하면, 앞의 여러 학승(學僧)들은 불승(佛乘)의 체(體)를 해석하면서, 앞을 다투어 엉뚱하게도  구도(具度)를 가리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찌 여러 소경들이 코끼리를 만지고 나서 그 꼬리와 이(齒)를 다투는 것과 다르랴. 천태지자(天台智者)에 의하건대 제법실상이 바로 거체(車體)요, 온갖  중보(衆寶)로 꾸민 것은 다 장엄구(莊嚴具)일뿐이라 밝히셨다. 이것에 대하여는 아래의 사거(賜車)의 글 중에서 마땅히  점출(點出)해 보일 것이다.
世人明佛乘 乘體有異.光宅取佛果究竟盡無生二智爲車體.遠出五百由旬之外 對昔爲高.具含萬德 對昔爲廣.莊嚴取因總萬行爲體.上求爲高 下化爲廣.舊不取功德.功德與凡夫共.唯取智慧爲體.舊又取福慧共爲體.文云.乘是三車.以無漏根力覺道禪定解脫三昧.而自娛樂.豈但智慧耶.又一師但取有解爲體.空解無動故不取.盡無生智 卽有解也.又一小乘取空慧爲車體.文云 我等長夜修習空法(云云).大乘亦以實慧方便爲車體.車體譬有.有有運動故也.私謂諸師釋佛乘之體.而競指具度.何異衆盲觸象 諍其尾牙.依天台智者.明諸法實相正是車體 一切衆寶莊校 皆莊嚴具耳.至賜車文中當點出.

옛사람은 해석하여 이같이 말했다.
「작은 수레란  작은 깨달음의 과(果)다. 이 과(果)에 유위(有爲) 무위(無爲)의 공덕이 있는 중, 바로 유위를 취해 그것을 가지고 수레의 운반을 비유하니, 운반해  무여(無餘)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위의 과(果) 속에는 복(福)과 혜(慧)가 고루 갖추어져 있어서, 혜로 정(正)을 삼고 복은 구도(具度)에 속한는데, 그 혜(慧)에 열이 있는 속에서, 팔지(八智)는 인과(因果)에 통하고  진무생지(盡無生智)는 오직 과위(果位)일 뿐이다. 이 이지(二智)를 취해 그것으로  수레의 과(果)를 비유하셨으니, 이런 도리 때문에  수레가 문밖에 있다고 하신 것이겠다.」
그러나 만약에  대품(大品)에서「이 수레는 삼계(三界)에서 나가  살바야(薩婆若) 중에 이르러 머문다.」고 말씀하신 것을 의거한다면, 아직 삼계에서 나가지 못했을 때는 이 수레를 타고 다투어 화택(火宅)을 나가는 것이 되니, 어찌해 다시 수레가 문밖에 있다 할 수 있으랴. 그리고 만약 진작부터 수레가 문밖에 있다면, 무엇을 타고 화택에서 나가랴.
그런데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다만 수레란 인과에 다통한다는 사실이니, 삼십칠품(三十七品)에서  견사혹(見思惑)을 끊는 것은 다 인(因)의 수레요, 진무생지(盡無生智)는 다 과(果)의 수레라 부른다. 그리하여 반드시 인의 수레에서 혹(惑)을 온통 끊는 것에 말미암아, 바야흐로 과의 수레인 진무생지를 얻게 되는 바, 그러므로 수레가 문밖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할 수 있다.
다만  과(果)는 정(正)이요 인(因)은 방(傍)일 뿐이니, 과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수레는 문밖에 있는 것이 되고, 만약  내인(內因)에서 번뇌를 끊는다는 입장에 서면 운반의 도리를 수레라 하는 것이 된다. 이같이  외과(外果)는 운반하지 않으니, 어찌 수레라 할 수 있느냐는 이론이 성립한다. 그러나 과(果)에 번뇌를 끊는 운반의 도리가 없기는 해도, 반드시 진무생지를 가지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게 됨을 생각하면, 마땅히 좋은 문반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舊解.小車者 小果也.果有有爲無爲功德.正取有爲 以譬車運.運入無餘也.有爲果中 具有福慧.以慧爲正 福屬具度.其慧有十.而八智通因果.盡無生智 唯是果位.乃取二智 以譬車果.以是義故 車在門外.若依大品云.是乘從三界出.到薩婆若中住.若未出時.已乘是乘 爭出火宅.何故復言車在門外.若先在外 乘何而出.然但乘通因果.三十七品斷見思惑.皆是因乘.盡無生智 皆名果乘.要因因乘斷除惑盡.方得果乘盡無生智.故言車在門外.但果正因傍.就果爲言 車在門外.若內因斷結 運義名乘.外果不運 何得名乘.然果無斷惑之運.要以盡無生智.入無餘涅槃.方是好運也.

만약 인(因)을 타고 과(果)에 이른다면, 무슨 생각으로 다시 수레를 구하겠는가. 이와 관련하여 옛사람은 말했다.
「구하는 것에  기색(機索)과  정색(情索)이 있다. 기색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나, 정색이란 무엇인가. 부처님이  진무생(盡無生)의 가르침을 설하심에 미쳐, 아라한은 이 과(果)를 실현하고 나서  천안통(天眼通)을 써서 시험삼아 미래의 일을 관찰했던 바, 오히려 변역생사(變易生死)가 크게 남아 있음을 보고, 스스로 제가 얻은 진무생의 깨달음을 의심했다. 그리하여 만약 자기가 얻은 것이 참다운 무생(無生)이라면 어찌해 그 생사가 큰 것 같음이 있음을 보랴 하고, 예전의 가르침은 무상(無上)의 것이 아니라 여겨, 생각 속에서 부처님에게  먼저 허락하신 것을 줍소사 구하기에 이르니, 이를 정색이라 한다.」
 若乘因到果.何意方更索車.舊云 機索情索.機索者可解.情索者.佛說盡無生敎.羅漢證此果已用神通天眼.試觀未來.猶見變易生死浩然.自疑所得盡無生證.若實無生 云何見有如其浩然 昔非究竟 情中從佛索先所許 是爲情索.

만약 경문(經文)에 찾아본다 해도 글에 이런 말이 없으며, 만약 구하는〔索〕 도리를 검토한다 해도 도리에 있어서 응당 그럴 수 없으니, 글에 어째서 없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검토하건대  아래의 글에서 이르되, 「제 얻은 것에서 멸도상(滅度想) 내어」라 하셨는데, 이미 천안(天眼)으로 생사가 미래에 있음을 보았다면, 무슨 까닭에 다시 멸도상을 일으키랴. 이는 스스로 모순된 일이라 해야 한다.
또 경에서는 「부처님 멸도(滅度) 후의 아라한은 다른 부처님을 만나뵙지 못한다면 이해하지 못한다.」하셨는데, 이미 스스로 천안으로 생사를  조견(照見)했다면  어찌 부처님을 뵙고야 이해할 필요가 있겠는가.
또  초선(初禪)의 천안은  이선(二禪)도 못보거니, 하물며 변역생사를 보겠는가. 이 또한  섭대승론(攝大乘論)의 취지와 어긋남이 확실하다.
또 아라한이  무루업(無漏業)을 얻어 천안을 써서 변역(變易)의 미래에 있을 생사의 과보(果報)를 볼 수 있다면, 곧 당시의 사람 중에서  오계(五戒) 십선(十善)을 닦는 자들도, 응당 스스로 그 미래의 과보를 볼 수 있었을것이다.
마땅히 알지니, 계외(界外)의 과보가 어찌 천안으로 볼 수 있는 경지이랴. 그러므로 이런 도리를 사용해서 정색(情索)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若尋經文 文無此語.若推索義 義不應然.文無可解.推者 下文云.自於所得 生滅度想.旣以天眼見有生死.何故復起滅度之想.此則自相矛盾.又佛滅後羅漢.不値餘佛 不能決了.旣自以天眼 照見生死.何須見佛而決了耶.又初禪天眼.尙不見二禪 況見變易.亦與攝大乘乖也.又羅漢得無漏業.用天眼見變易未來生死果報者.卽時人修五戒十善.應自見其未來果報.當知界外果報.豈是天眼所見耶.不用此判情索也.

이제 내가 정색(情索)이라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거해  진지(盡智) 무생지(無生智)로 무여열반에 들어간다 여겼던 것이나, 방등시(方等時) 속에서  보살의 불가사의함을 보고  정명(淨名)의 탄척(彈斥)을 들었다. 그리하여 만약에 내가 얻은 깨달음이 진실했다면  대사(大士)가 응당 나를 꺾지 못했을 것이며, 만약에 내 깨달음이 진실한 것이 아니었다면 부처님이 응당 진실하다 설하지 않으셨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러므로 「망연(茫然)하여 말할 바를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대품(大品) 중에 이르러서는 대승의 법을  이해했다. 곧 이를 듣고  대승을 원하는 마음이 일어나 바야흐로 나아가 대승의 도리를 닦고자 했으나, 제가 참말로 도를 얻었는지 못 얻었는지를 알 수 없었으니, 이런 일들은 다 생각 속에서 대승의 도리를 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자(身子)의 영해(領解)의 글을 살피건대, 옛날에  의정(疑情)을 지녀 「모든 보살은 기(記) 받아 부처 되리라 하심을 뵈었으되, 저희들은 이 일에 끼지 못했다.」하여, 「오, 깊이 자책(自責)하여, 세존께 도(道) 잃은 여부를 묻잡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는 곧 옛날 방등시에 이미 정색(情索)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今言情索者.昔日依敎 謂盡無生能入無餘.而於方等中.見菩薩不思議.聞淨名彈斥.若我所得是實.大士不應折挫.若我非實.佛不應說眞.故云茫然不知所云.至大品中領知大法.聞此樂大心起.方欲進修大乘.而不能知得與不得.此等皆是情中已索大乘之義.故身子領解 提昔疑情.見諸菩薩授記作佛 不豫斯事.嗚呼自責 欲以問世尊.爲失爲不失.卽是指昔方等已有情索也.

이제  구색(口索)을 덧붙인 것은, 방편품의 첫게송을 들었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부처님이 모두가 방편이었다고 설하심을 듣고, 곧 지금의 방편이라는 말씀에 집착해, 그렇다면 옛날에 설하신 것은  아직 구경(究竟)의 것이 못되었던가 하고 의심하니, 그러므로 「나는 이제 이 도리의 취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렇게 과거의 의정(疑情)이 뒤흔들린 까닭에 발언(發言)해  삼청(三請)하여, 옛날에 설하신 가르침의 진실한 취지를 구하니, 근기는 대승에 있으면서 마음은 옛날의 진실을 구한것이고, 또  마음은 대승을 구하면서 입으로는 옛날의 진실을 물은것이 된다. 육도(六度) 통교(通敎)의 보살도  마찬가지다.
今加口索者.因聞方便品初偈 略聞佛說 是方便.卽復執今方便 疑昔未極.故云我今不知是義所趣.動宿疑情 故發言三請.索求昔日所說之實.機在大乘 情求昔實.又情求大乘 口問昔實.六度通敎例爾.

 「사리불아, 그때」 이하는 셋째인  등사대거(等賜大車)의 비유니, 양장(兩章) 양광(兩廣) 양석(兩釋)이 있다.
從舍利弗爾時下.三等賜大車.有兩章兩廣兩釋.

첫째는  등자(等子)요, 둘째는  등거(等車)다(이것이 兩章)이라는 뜻).
一等子.二等車.
 
  

출처 : 세존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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