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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碧嚴錄]下



제89칙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大悲手眼)



[垂示]
垂示云. 通身是眼見不到. 通身是耳聞不及. 通身是口說不著. 通身是心鑒不出. 通身卽且止.
忽若無眼作麽生見. 無耳作麽生聞. 無口作麽生說. 無心作麽生鑒.
若向箇裏撥轉得一線道. 便與古佛同參. 參則且止. 且道參箇什麽人.

[수시]
온몸이 눈인데도 보지 못하고, 온몸이 귀인데도 듣지 못하며,
온몸이 입인데도 말하지 못하며, 온몸이 마음인데도 비춰보지 못한다.
온몸은 그만두고 만일 눈이 없으면 어떻게 보겠으며,
귀가 없으면 어떻게 듣겠으며, 입이 없으면 어떻게 말하겠으며,
마음이 없으면 어떻게 비추겠는가?
여기에서 만일 자그만 방편의 길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면
바로 옛 부처와 동참하리라.
동참은 그만두고, 말해보라, 어떤 사람을 참방해야 하는가를.

[본칙]擧. 雲巖問道吾, 大悲菩薩, 用許多手眼作什. 吾云, 如人夜半背手摸枕子.

巖云, 我會也. 吾云, 汝作生會. 巖云, 遍身是手眼. 吾云, 道卽太殺道, 只道得八成.

巖云, 師兄作生. 吾云, 通身是手眼.



거론하다.(擧.)

운암스님이 도오(道吾)스님에게 물었다.

“대비(大悲)보살이 수많은 손발을 사용하여, 무엇 할까요?”

(雲巖問道吾, 大悲菩薩, 用許多手眼作什.)
- 당시에 본분납자를 길러내는 솜씨를 보였어야 좋았는데…….
  그대는 평소에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무엇 하느냐?
  화상아, 물어서 무엇할꼬.

“사람이 한밤중에 등 뒤로 베개를 더듬는 것과 같다.”

(吾云, 如人夜半背手摸枕子.)
- 왜 본분납자를 기르는 솜씨를 부리지 않느냐?
  한 봉사가 여러 봉사들을 끌고 가는구나.

“저는 알았습니다.”(巖云, 我會也.)
- 점점 잘못돼가는군.
  같은 배 탄 사람을 모두 속였다.
  같은 구덩이에는 다른 흙이 있을 리  없지(그놈이 그놈이지).
  칼끝에 손을 다치고 말았군.

“뭐냐?”(吾云, 汝作生會.)
- 왜 수고스럽게 다시 묻느냐? 그래도 물어야지.
  한 번 꽉 내질렀다면 좋았으련만.

“온 몸이 손이요 눈입니다.”(巖云, 遍身是手眼.)
- 얼토당토않은 소리하고 있네.
  귀신 굴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구나.
  진흙 속에서 흙덩이 씻는다.

“큰 소리는 쳤다만 열이면 여덟을 말했을 뿐이다.”

(吾云, 道卽太殺道, 只道得八成.)
- 한 구덩이에는 다른 흙이 없다.
  남자 종이 은근히 여자 종을 편드는 격이다.
  문둥이가 짝을 이끌고 간다.

“사형(師兄)께서는 어떠합니까?”(巖云, 師兄作生.)
- 남의 처분을 받아서 어찌하려고, 그래도 한 번 꽉 내질렀어야 했다.

“온몸이 손이요, 눈이다.”(吾云, 通身是手眼.)
- 새우가 뛰어봐야 통을 벗어나지 못하지.
  그대의 눈동자를 바꿔버렸으며 혀끝을 옮겨버렸다.
  충분하겠느냐? 아비를 아범이라 부르는 꼴이군.

[평창]
운암스님은 도오스님과 함께 약산(藥山)스님을 참방하고
40년 동안 눕지 않고 정진하였다.
약산스님은 조동(曹洞)의 일종(一宗)을 배출하였는데
거기에는 3인이 있어 법도가 성행하였었다.
운암스님의 아래에 동산(洞山)스님, 도오스님의 아래에 석상(石霜)스님,
선자(船子)스님의 아래에 협산(夾山)스님이 있으니 바로 그 사람들이다.

대비 관세음보살에겐 8만 4천의 마다라비(母陀羅臂)가 있고
수많은 손과 눈이 있다. 그대에게도 있느냐?

백장스님은 “일체의 언어문자는 모두 돌이켜 자기에게로 귀결해야 된다”고 말하였다.
운암스님은 항상 도오스님을 따르며 묻고 참구하면서 (의심을) 풀었는데,
하루는 “대비보살께서는 수많은 손과 눈으로 무엇을 할까”라고 물었다.


이는 애당초 바로 등줄기를 후려쳐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이 없도록 했어야 할 터인데,
도오스님은 자비심으로 그처럼 하지 못하고 그에게 이런 저런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하신 의도는 그 스스로, 알아차리게 하려고
“사람이 한밤중에 등 뒤로 베개를 더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깊은 밤 등불이 없을 때 베개를 더듬거리는데,
말해보라, 눈은 어느 곳에 있는가를.

그는 대뜸 “저는 알았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너는 어떻게 알았지?”
“온몸이 손이요, 눈입니다.”
큰 소리는 쳤다만 열 개 중에 여덟을 말했을 뿐이다.
“사형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온몸이 손이요, 눈이다.”
말해보라, 운암스님이 온몸이 손이요 눈이라 한 말이 옳은지,
도오스님이 온몸이 손이요 눈이라는 말이 옳은가를.
이는 엉망진창인 듯하지만 도리어 깨끗이 씻은 듯하다.

요즈음 사람들은 흔히들 알음알이로 이해하고서
“운암스님의 ‘온몸이 손이요 눈이라’는 말은 옳지 않고,
도오스님의 ‘온몸이 손이요 눈이라’는 말이 옳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옛사람의 언구를 되씹으면서
옛사람의 말에 놀아난 것으로
옛사람의 뜻이 결코 말에 있지 않다는 점을 모른 일이라 하겠다.


이 모두가 부득이하여 이처럼 한 것뿐인데,
요즈음은 이에 주각(注脚)을 붙이고 법칙으로 받들어 말하기를
“이 공안을 깨칠 수만 있다면 바로 참구는 끝마친 것이다”고 한다.
이는 손으로 온몸을 더듬고 등롱(燈籠)과 노주(露柱)를 더듬고서
‘온몸이 눈이요 손이라’는 화두로 오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안다면 그 옛사람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활구에서 참구했었지,
사구(死句)에서 참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드시 이는 정진(情塵)내지는 의상(意想)이 뚝 떨어져
말끔히 훌훌 벗고 텅텅 비어 말끔한 경지에 이르러야
대비보살의 화두를 볼 수 있다.

듣지 못하였는가, 조산(曹山)스님과 어느 스님이 문답했던 것을 .
조산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사물을 따라 형체를 드러내는 것이 마치 물속에 어린 달과 같을 때는 어떠한가?”
“노새가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열 개 중에 여덟을 말했을 뿐이다.”
“스님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우물이 노새를 쳐다보는 것과 같다.”

그대가 언구에서 본다면
도오․운암스님의 올가미를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설두스님은 영리한 작가였다.
다시는 언구의 아래에서 죽지 않고 곧바로 끝없이 뛰어넘으면서 송을 하였다.


[송]遍身是. 通身是. 拈來猶較十萬里. 展翅鵬騰六合雲. 搏風鼓蕩四溟水. 是何埃壒兮忽生.

那箇毫釐兮未止. 君不見. 網珠垂範影重重. 棒頭手眼從何起. 咄.



온몸이 손이요, 눈이오. (遍身是)
- 사지 팔절(四肢八節)이다.
  그러나 아직 납승의 궁극적인 법이 있는 곳은 아니다.

온몸이 손이요, 눈이어라.(通身是.)
- 정수리의 반쪽에 불과하다.
  아직도 고정된 틀 속에 있다.
  눈이 멀었다.

어쩌구저쩌구 했다간 10만 리나 멀어진다.(拈來猶較十萬里.)
- 놓아주어서는 안 된다.
  어찌 십만 리일 뿐이랴.

나래를 편 붕조는 육합(六合)의 구름 위를 날며,(展翅鵬騰六合雲.)
- 시원찮은 경계로다.
  그래도 기특한 데가 있는 줄 알았더니만.
  점검 당했군.

나래치는 바람은 깊은 바다[四溟水]를 들끊게 하니 (搏風鼓蕩四溟水.)
- 별 대단한 게 못 된다.
  천하인이 그를 어찌하지 못하리라고 여겼는데 영 틀려버렸군.

웬일로 이쪽에서 웬 먼지[埃壒]가 홀연히 생겨나더니(是何埃壒兮忽生.)
- 참선하는 사람을 위해 거듭 해설을 붙였다.
  (그 따위 것) 잘라버려라!
  이를 어디에다 붙이려고…….

저쪽에서 가는 털은 어이하여 정처 없이 날리는가!(那箇毫釐兮未止.)
- 다르다. 전혀 다르다.
  훅 불어서 날려버려라. 싹 끊어버려라.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君不見.)
- 또 그 짓하는군.

제망의 구슬[帝網珠]로 법을 드리우니 겹겹이 그림자가 쌓이는 것을.(網珠垂範影重重.)
- 대단한 설두스님이 이처럼 거취를 하다니. 애석하다.
  여전히 주절대는군.

주장자 끝의 손과 눈이 어디에서 일어날까?(棒頭手眼從何起.)
- 쯧쯧! 도적이 떠난 뒤 활을 당기는구나.
  그대를 놓아줄 수 없다.
  온 천하 사람이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는군.
  놓아주려면 반드시 한 방 먹어라.
  (원오스님은) 말한다.
  “말해보라, 산승이 옳은지 설두스님이 옳은지를.

쯧쯧!(咄.)
- 세 번 네 번 할(喝)을 한 뒤에 무엇 하려고.

[평창]
“온몸이 손이요 눈이며, 온몸이 손이요 눈이어라”고 한 것을 두고,
“등 뒤로 베개를 더듬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손으로써 몸을 더듬는 것이 곧 이것이다”고 말하니,
이처럼 이해한다면 모두가 귀신의 굴 속에서 살릴살이를 하는 격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온몸이 손도 아니고 눈이 아닐 것이다.
이를 정식(情識)으로 그이 대비(大悲) 화두를 알고자 한다면
곧 만리나 멀어질 것이다.

설두스님은 한 활구(活句)를 들어서 말하기를
“이를 어쩌구저쩌구 했다가는 10만 리나 멀어진다”고 하였으며
뒷구절에서는 운암스님과 도오스님의 기특한 것을 노래하여
“나래를 편 붕새[鵬]는 육합(六合)의 구름 위를 날며
나래치는 바람은 깊은 바다[四溟水]를 들끓게 한다”고 하였다.
큰 붕조가 용을 삼키려고 나래로 바람을 치며 파랑을 일으키면
바닷물은 3천 리까지 갈라진다.
이때 용을 잡아 삼킨다 한다.

설두스님의 말을 살펴보면
“그대들이 큰 붕새처럼 바람을 치고 파랑을 일으킨다면
매우 웅장한 일이라 할 수 있지만,
대비의 천수천안(千手千眼)이라 한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는 대비의 화두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쪽에서 웬 먼지가 홀연히 생겨나더니,
저쪽에서 가는 털이 정처 없이 날린다”고 하였다.

또한 설두스님은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하여 일시에 자취를 쓸어버리긴 하였지만,
뒤에선 여전히 잘못된 말을 지껄였고
여전히 올가미 속에 있었는데야 어찌하겠는가.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제망(帝網)의 구슬로 법을 드리우니 겹겹이 그림자가 쌓이는 것을”이라고 하였는데,
설두스님은 제망(帝網)의 밝은 구슬[明珠]을 인용하여 규범을 보인 것이다.
손과 눈을 말해보라. 귀착점이 어디에 있었을까?

화엄종(華嚴宗)에서는 4법계(四法界)를 세웠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이법계(理法界)’이니 한결같은 평등의 이유를 밝혔으며,
둘째는 ‘사법계(事法界)’이니 완전한 이치가 현상 속에 실현된 이유를 밝혔으며,
셋째는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이니 이치와 현상이란 서로가 원융하여
크고 작음에 장애가 없다는 이유를 밝혔으며,
네 번째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이니
한 현상은 일체의 현상 속에 두루 들어가고 편하며,
일체의 현상은 일체의 현상을 두루 포함하여
동시에 서로 함께 하며 장애가 없다는 이유를 밝혔다.
그러므로 “한 티끌만 말해도 대지 전체를 포괄하게 된다.
하나하나의 티끌이 가히 없는 법계를 포함하니,
한 티끌이 이미 그러하다면 모든 티끌도 그러하다.”

망주(網珠)란 제석천왕(帝釋天王)의 선법당(善法堂) 앞에
마니주(摩尼珠)로 보망(寶網)을 만든 것이다.
한 마니주 속에 모든 마니주가 투영되어 나타나고,
모든 마니주가 한 마니주 속에 다 함께 나타나 서로서로 투영하여 거듭거듭 나타나며,
주(主)․객(客)이 무궁무진한데, 그로써 ‘사사무애법계’를 밝힌다.

옛날 현수국사(賢首國師)는 거울과 등불의 비유를 세워 말한 바 있다.
열 개의 거울을 동그랗게 나열하고 그 가운데 등불 하나를 설치하고서
동쪽 거울을 바라보면 나머지 아홉 개의 거울에 비친 등불이 또렷하게 일제히 나타나며,
남쪽 거울을 살펴보아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처음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보리도량(菩提道場)을 떠나지 않으신 채 많은 도리천(忉利天)을 오르내리셨으며
모든 곳까지 이르러, 7처 9회(七處九會)에 「화엄경」을 설하셨다.

설두스님은 제망의 구슬로써 ‘사사무애법계’를 보인 것이다.
그래서 6상(六相)의 의미는 매우 명백하다.
그것은 바로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이다.
이중 한 모습만 말해도 6상이 다 포괄되는 데도 중생은 매일 쓰면서도 알지 못할 뿐이다.
설두스님은 제망의 구슬을 들어 법을 설하여 대비의 화두를 비유하였다.

이와 같이 그대들이 이 마니주의 그물 속에서 주장자(납승의 본분사)를 잘 밝히고
신통묘용으로 출입에 걸리적 거림이 없어야 천수천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장자 끝에 손과 눈이 어디에서 일어날까”라고 하여,
그대들이 그러므로 설두스님은 주장자 끝에서 깨침을 얻고,
일갈(一喝)에서 이를 알도록 한 것이다.

덕산스님은 문에 들어서기만 하면 바로 주장자로 쳤는데 말해보라,
손과 눈이 어느 곳에 있었는가를.
그리고 설두스님은 무엇 때문에 맨 끝에서 “쯧쯧!” 이라고 착어를 했을까?
참구하라.


출처 : 나를 찾는 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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