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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碧嚴錄]下



제90칙 지문의 반야(智門般若)



[垂示]
垂示云. 聲前一句千聖不傳. 面前一絲長時無間. 淨裸裸赤灑灑. 頭髼鬆耳卓朔.
且道作麽生. 試擧看.

[수시]
소리 이전의 한마디는 일천 성인이 전하지 못하고,
면전(面前)의 한 실오라기는 긴 시간 끊이지 않는다.
이는 훌훌 벗고 텅텅 비어 말끔하되 머리는 더부룩하고 귀는 쫑긋하다.
말해보라, 무엇인가를. 거량해보리라.

[본칙]擧. 僧問智門, 如何是般若體. 門云, 蚌含明月.

僧云, 如何是般若用. 門云, 兎子懷胎.



거론하다.(擧.)

어떤 스님이 지문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반야의 체[般若體] 입니까?”(僧問智門, 如何是般若體.)
- 온몸에 그림자가 없다.
  온 천하 사람들을 아무 소리 못 하게 하는군.
  반야의 몸 그까짓 거 뭐하는데 쓰려고.

“조개가 밝은 달을 머금었다.”(門云, 蚌含明月.)
- 빛이 만상을 머금고 있다는 것은 그만두고
  방망이 끝의 바른 눈에 대한 일은 어떠한가?
  굽은 것은 곧은 것을 간직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또 한 겹이다.

“무엇이 반야의 용[般若用] 입니까?”(僧云, 如何是般若用.)
- 3천 리 밖으로 물러났다. 반야의 용을 뭐하려고.

“토끼가 새끼를 뱄다.”(門云, 兎子懷胎.)
- 험하구나.
  쓴 외는 뿌리까지 쓰고 단 외는 꼭지까지 달다.
  그림자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니, 지문스님의 소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나온다면 이는 반야의 체인지 반야의 용인지를 말해보라.
  흙 위에 진흙을 더하는구나.

[평창]
지문스님이 말한 “조개는 밝은 달을 머금었고, 토끼가 새끼를 뱄다”는 것은
모두 중추절(中秋節)의 뜻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옛사람의 의도는 조개와 토끼에 있지 않다.
그는 운문스님 회하의 존숙이시다.
한 구절 속에 반드시 세 구절, 즉 하늘과 땅을 덮는 구절[函蓋乾坤句],
많은 물줄기를 끊는 구절[截斷衆流句],
파도를 따르고 물결을 쫓는 구절[隨波逐浪句]을 갖추고 있다.
이는 꾸며서 그런 것이 아니고 저절로 훌륭히 하였던 것이다.
준험한 곳에서 그 스님의 물음에 대답하여
조금 칼날을 드러내니 참으로 기특하다 하겠다.

그러나 옛사람은 끝내 그림자를 희롱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방편의) 길을 제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볼 수 있도록 마련해주었다.
“어떤 것이 반야의 체이냐”는 스님의 물음에 지문스님은
“조개가 밝은 달을 머금었다”고 말하였다.
이는 한강(漢江)에서 생산되는 조개 속에 맑은 진주가 있는데,
중추절이 되면 조개는 수면으로 떠올라 입을 벌리고 달빛을 빨아들여
교감(交感)되어 진주가 생긴다 한다.
합포주(合浦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중추절에 달이 뜨면 진주가 많이 나오고,
없으면 진주가 적게 나온다고 한다.

“어떤 것이 반야의 용이냐”고 묻자, 지문스님은
“토끼가 새끼를 뱄다”고 하였다.
이 뜻은 다름이 아니라 토끼는 음(陰)에 속한 동물이다.
중추절에 달이 뜨면, 입을 벌려 달빛을 삼키고 바로 새끼를 배어 입으로 낳는다 하니,
이 또한 달이 뜨면 새끼가 많고 없으면 적게 낳는다는 것이다.

그 옛사람의 대답에는 잡다함이 없으니
그저 그 뜻만을 빌어서 반야의 광채에 답변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 뜻은 언구에 있지 않았는데,
후세 사람은 그저 언구 위에서 살림살이를 한다.

듣지 못하였는가, 반산(盤山)스님의 말을.

   마음 달 오롯이 둥글어
   빛이 만상을 삼키었다.
   빛은 경계를 비추지 않고
   경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도대체 어떠한 물건일까?

요즈음 사람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이를 빛이라 말하는데,
이것은 알음알이로써 이해하는 것으로 마치 허공에 말뚝을 박는 꼴과 같다.
옛사람의 말에 “그대들의 육근(六根)의 문에서
주야로 큰 광명이 쏟아져 나와 산하대지를 비추나니,
안근(眼根)에서 광명이 쏟아질 뿐만 아니라
코·혀·몸·의근(意根) 모두에서 광명이 쏟아져 나온다”고 하였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곧바로 6근을 하나로 뭉뚱그려
눈곱만큼의 일도 없이 말끔히 훌훌 벗고 텅텅 비어 씻은 듯이 되어야
이 화두의 귀착점을 볼 수 있다.
설두스님은 바로 그랬기 때문에 송을 하였다.


[송]一片虛凝絶謂情. 人天從此見空生. 蚌含玄免深深意. 曾與禪家作戰爭.



한 덩어리 해맑음에는 언어와 정식[謂情]이 붙을 수 없으니

(一片虛凝絶謂情.)
- 마음으로 헤아리기만 하면 바로 빗나가고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틈이 생긴다.
  부처님의 눈으로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

인간·천상이 이로부터 공생(空生 : 수보리)을 보았네.

(人天從此見空生.)
- 수보리에게 서른 방망이를 먹였더라면 좋았을걸.
  이 늙은이를 무엇 하려고?
  설령 수보리라해도 3천 리나 멀리 떨어지리라.

조개는 (달빛을) 머금고 토끼는 새끼 배었다는 깊고 깊은 뜻을

(蚌含玄免深深意.)
- 그래도 바로 그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무슨 의도가 있느냐?
  다시 깊고 깊은 뜻을 들먹여서 무엇 하겠는가?

일찍이 선가(禪家)와 더불어 법전(法戰)을 하였네.

(曾與禪家作戰爭.)
- 전쟁이 끝났으니 천하가 태평하다.
  알았느냐.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한다.
  (설두)스님, 몇 대나 얻어맞았소?

[평창]
“한 덩어리 해맑음에는 언어와 정식이 붙을 수 없으니”라는 것은,
설두스님이 한 구절로써 훌륭하게 송을 하여, 자연스레 옛사람의 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6근(六根)이 맑고 맑으니 이것이 무엇일까?
이 한 덩어리는 맑고 밝으며 고요하니,
천상에서 찾을 것이 없으며 남에게 구할 것도 없다.
항상 변함없는 광명이 눈앞에 나타나 천 길의 벼랑에 우뚝 서 있는 듯하다.
위정(謂情)이란 언어와 정식[情塵]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끊어버려야 한다.

법안(法眼)스님의 원성실성(圓成實性) 송은 다음과 같다.

   이치가 다하여 정식과 언어[情謂]를 잊으니
   어떻게 똑같다고 말할 것마저 잊으랴.
   서리 내린 밤 밝은 달이
   발길가는 대로 앞 시내에 어린다.
   과일이 익으니 원숭이 살찌고
   산이 깊으니 길을 잃겠구나.
   머리 드니 조각달빛이
   원래 서쪽에 머물렀구나.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마음은 6근(六根)이요, 법은 6진(六塵)이라.
   두 가지는 마치 거울 위의 흔적,
   티끌과 때가 다할 때 비로소 빛이 나고
   마음과 법을 모두 잊으면 본성이 참다우리.

   세 칸 초가집에 사노라니
   한 줄기 신기한 빛 일만 경계 한가롭다.
   시비를 가지고서 나를 분별하지 마오.
   덧없는 생애 천착한들 무엇하리.

이 송에서도 한 덩어리의 해맑음에는
언어와 정식이 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천상이 이로부터 공생(空生)을 보았다”고 했는데,
듣지 못하였는가, 수보리가 하늘과 한 대화를.
수보리가 바위에 한가로이 앉아 있노라니,
하늘나라에서 많은 꽃비를 내리며 찬탄하니, 수보리가 말하였다.
“공중에서 꽃비를 내리며 찬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범천(梵天)입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찬탄하는가?”
“저는 존자께서 반야바라밀다를 훌륭하게 설하심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나는 일찍이 반야에 대하여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찬탄하는가?”
“존자께서는 설하심이 없었고 저도 들음이 없었습니다.
설하심도 없고, 들음도 없는 이것이 진실한 반야입니다.”
그리고 다시 대지를 진동하며 꽃비를 내렸다 한다.

이를 살펴보면, 수보리는 반야를 훌륭히 설하였지만,
반야의 ‘체’와‘용’은 설하지 않으셨다.
이를 볼 수 있다면 바로 지문스님의 “조개는 밝은 달을 머금었고,
토끼는 새끼를 뱄다”는 화두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옛사람의 뜻은 언구에 있진 않으나
대답에는 깊고도 심오한 종지가 담겨 있는 것을 어찌하랴.

설두스님이 “조개는 머금고 토끼는 새끼를 뱄다는 깊고 깊은 뜻이여”라고 말하니,
여기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선가(禪家)와 더불어 법전(法戰)을 한 것이다.
천하의 선승들이 법석을 떨면서 이러쿵저러쿵하지만
결코 한 사람도 꿈속에서마저 보지 못하였다.
지문스님·설두스님과 동참하고 싶다면 반드시 스스로가 착안하여야 할 것이다.

 
출처 : 나를 찾는 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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