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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암록 碧嚴錄]下



제96칙 조주의 삼전어(趙州三轉語)



[수시]

[본칙]擧. 趙州示衆, 三轉語.



거론하다. 조주스님은 삼전어(三轉語)로 대중에게 설법하셨다.(擧. 趙州示衆, 三轉語.)
- 무슨 말하느냐. 세 단락(등급)이 같지 않다.

[평창]
조주스님이 삼전어(三轉語)를 대중에게 말한 뒤에 이어서
“진짜 부처는 집안에 앉아 있다”고 말하였다.
이 한 구절은 참으로 어줍잖다.

옛사람은 진리를 가려낼 줄 아는 안목[一隻眼]으로 사람들을 지도함에
간략히 이 말을 빌려 소식을 전하였지만,
이는 사람을 지도하느라고 (마지못해) 그런 것이다.
그대가 한결같이 바른 법령[正令]만을 제창한다면
(그대 밑에 따르는 사람이 없어져) 법당 앞에 풀이 한 길이나 깊이 자랄 것이다.
설두스님은 맨 끝의 잘못된 한 구절을 싫어하여 삭제해버리고 세 구절만을 노래한 것이다.

진흙 부처는 물을 건너면 풀어져버릴 것이며,
쇠 부처는 용광로를 지나면 녹아버릴 것이며,
나무 부처는 건너면 타버릴 것이다.
이를 알기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설두스님 1백칙의 송고(頌古)는 말을 늘어놓거나 사량분별을 했지만
유독 이 세 송에는 납승다운 숨결이 있다.
이 송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대들이 이 세 송을 철저히 깨칠 수 있다면
참구를 그만두더라도 말 안 하겠다.


[송]泥佛不渡水 神光照天地. 立雪如未休, 何人不雕僞.



진흙 부처[泥佛]는 물을 건너지 못하니(泥佛不渡水,)
- 콧구멍까지 젖어 흐물거린다.
  바람도 없는데 물결이 일어났다.

신광(神光)이 천지를 비추네.(神光照天地.)
- 뭐 상관할 거 있나.
  토끼를 보자마자 매를 날려 보내는군.

눈 위에 계속 서 있었더라면,(立雪如未休,)
- 한 사람이 헛소문을 내자 모든 사람이 실제인 양 전한다.
  점점 더 잘못되어가는군.
  누가 그대 오는 것을 보았으랴.

어느 누가 허풍을 떨지 않았으랴.(何人不雕僞.)
- 절에 들어가면 (무슨 절인지) 간판을 살펴봐라.
  하루종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무엇일까?
  화상(설두스님)이 바로 그였구나.

[평창]
“진흙 부처[泥佛]는 물을 건너지 못하니
신광(神光)이 천지를 비추네”라는 한 구절의 송은 명쾌하다.
말해보라, 무엇 때문에 갑자기 신광을 끌어들였을까?
이조(二祖)스님이 처음 태어났을 때
신비스러운 광채가 방안을 밝게 비추어 은하수까지 뻗쳤으며
또 하루 저녁은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조스님에게
“왜 여기에서 오래 머무느냐?
그대가 도를 얻을 시기가 다가온다.
마땅히 남쪽으로 가도록 하라”고 했다.
이조스님은 신인을 만났다 하여 마침내 신광(神光)이라 이름 하였다.
오랫동안 이수(伊水)·낙수(洛水)가에 살면서 많은 서적을 널리 보았지만
매양 탄식하며 말하였다.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은 육례(六禮)와 법도에 관한 것뿐이다.
요즈음 소문을 듣자니 달마대사가 소림사에 주석한다던데…….”
이내 그를 찾아가 조석으로 참례하고 물었으나
달마스님은 단정히 앉아 면벽(面壁)할 뿐이어서 가르침을 들을 수 없었다.
이에 신광이 자신을 반성하여 말하였다.
“옛사람은 도를 구하고자 뼈를 두드려 골수를 뽑고,
피를 뽑아 주린 사람을 구제했으며, 머리털로써 진흙을 덮어주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호랑이 먹이가 되기도 하였다.
예전에도 이처럼 하였는데,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어떠한가?”

그해 12월 9일 밤 큰 눈이 내릴 때,
이조스님이 섬돌 아래에 서서 꼼짝 않고 있으니
동이 트자 무릎 위까지 눈이 쌓였다.
달마스님은 그를 가엾게 여기고서 말하였다.
“그대는 눈 속에 서서 무엇을 구하려느냐?”
이조스님은 슬피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자비로 감로문을 여시어 널리 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주십시오.”
“모든 부처님의 오묘한 도는 광겁(曠劫)토록 철저히 노력하여 얻은 것이다.
보통 사람으로는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셨고,
참기 힘든 것도 다 참았다.
어떻게 작은 덕과 작은 지혜,
경솔한 마음과 거만한 마음으로 참 진리를 바라고자 하느냐.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조스님은 가르침을 듣고서 도에 향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져서,
가만히 예리한 칼을 들어 스스로 왼팔을 잘라 달마스님 앞에 드리니,
달마스님은 법기(法器)임을 알고 마침내 그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눈 속에 서서 팔을 끊은 것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이냐?”
“저의 마음이 편안치 못합니다.
스님께서는 마음을 편안케 해 주십시오.”
“마음을 가져오너라. 너에게 편안을 주리라.”
“마음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겠습니다.”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 뒤 달마스님이 그의 이름을 혜가(慧可)라고 고쳐주었으며,
그 후 삼조(三祖) 승찬(僧燦)스님을 제접하고,
전법이 끝나자 서주(舒州)의 완공산(皖公山)에 은거하셨다.
때마침 후주(後周) 무제(武帝)가 불법을 파멸하고 승려를 배척하자
스님은 태호현(太湖縣)의 사공산(司空山)을 왕래하며
일정한 거처가 없이 십여 년을 지냈으나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도선율사(道宣律師)의 「고승전(高僧傳)」에
이조스님의 사적이 실리기는 했으나 자세하지 않고,
「삼조전(三祖傳)」에 다음과 같이 기재돼 있다.
“이조스님은 오묘한 법을 세간에 전하지 않다가
다행히도 끝에 가서 그가 당시에 눈 위에 서 있었던 것을 참으로 깨쳤다.”

이 때문에 설두스님은
“눈 위에 계속 서 있었더라면 어느 누가 허풍을 떨지 않았으랴”라고 하였다.
눈 위에 서 있는 것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지나치게[足] 공손한 모습으로 아첨하고 속이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본받음으로써
모두 아첨하고 허풍을 떠는 풍조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는 아첨하고 속이는 무리인 것이다.

설두스님은 진흙 부처[泥佛]는 물을 건너지 못함을 노래하면서
무엇 때문에 문득 이 인연을 인용하여 썼을까?
그가 참구한 것은 눈곱만치도 알음알이로 하지 않고 말끔한 경지였기에
이처럼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조(五祖)스님께서는 평소에 사람들에게 이 세 수의 송을 살펴보도록 하였다.
왜 듣지 못하였느냐.
동산 수초(洞山守初)스님이 송을 지어 대중 법문을 하였다.

   오대산 위 구름은 밥을 짓고
   고불당(古佛堂) 앞에서는 개가 하늘에 오줌을 누네.
   찰대간 끝에선 떡을 튀기고
   세 명의 오랑캐가 밤에 도박을 하네.

또 두순(杜順)스님은 말하였다.
  
   회주(懷州)의 소에게 벼를 먹이니
   익주(益州)의 말이 배부르다.
   세상에 제일가는 의사를 찾아
   돼지 왼쪽 허벅지 위에 뜸질을 한다.

또 부대사(傅大士)의 송은 다음과 같다.

   빈 손에 호미를 잡고
   무소[水牛]를 몰고 간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노라니
   다리는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네.
   돌 사람[石人]의 재주 그대와 닮아서
   저속한 노래를 부를 줄 아는군.
   그대도 돌 사람과 같다면
   설곡(雪曲)으로 화답하리라.

이 말을 안다면 설두스님의 송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송]金佛不渡罏. 人來訪紫胡. 牌中數箇字, 淸風何處無.



쇠 부처[金佛]는 용광로를 지나지 못한다.(金佛不渡罏.)
- 눈썹을 태워버렸다.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사람이 찾아와 자호(紫胡)스님을 방문했네.(人來訪紫胡.)
- 또 이처럼 하는군. 목숨을 잃을까 두렵구나.

팻말 속 몇 개의 글자여,(牌中數箇字.)
- (개는 그만두고라도) 글자를 모르는 고양이도 운운할 필요 없다.
  천하의 납승이 입을 떼지 못한다. 목숨을 잃을까 두렵다.

맑은 바람 어딘들 없으랴.(淸風何處無.)
- 또 이처럼 하는군.
  머리 위도 질펀하고 발밑도 질펀하다.
  또다시 말한다.

[평창]
“쇠 부처는 용광로를 건너지 못한다.
사람이 찾아와 자호스님을 방문했네”라는 이 한 구절 또한 송이다.
무엇 때문에 “사람이 찾아와 자호스님을 방문했네”를 인용하였을까?
이는 모름지기 작가의 용광로라야 비로소 그처럼 될 것이다.

자호스님은 산문(山門)에 한 팻말을 세웠는데,
그 속에 다음과 같은 글자를 써넣었다.
“자호에 개 한 마리가 있는데 위로는 머리를,
가운데로는 허리를, 아래로는 다리를 물어뜯는다.
머뭇거리면 목숨을 잃으리라.”

사람이 찾아오기만 하면 일할(一喝)을 하고 “개를 보라”하고,
스님이 머리를 돌리기만 하면 자호스님은 바로 방장실로 되돌아 가버렸다.
말해보라, 무엇 때문에 조주스님을 물어뜯지 못했는지를.

자호스님은 또 어느 날, 밤이 깊었는데 시렁 뒤에는 큰 소리로
“도적놈 잡아라, 도적놈 잡아라”하고 외친 후,
캄캄한 곳에서 한 스님을 만나자 멱살을 잡아 세우며
“도적을 잡았다. 도적을 잡았다”라고 하니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 접니다 접니다.”
“그렇긴 하다만 인정할 수 없구나.”

그대가 이 말을 알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을 물어뜯어,
어느 곳에서나 맑은 바람 늠름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팻말 속의 몇 개의 글자를 결코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이를 알고자 한다면 끝까지 몽땅 깨쳐야만 하리라.
송은 다음과 같다.

[송]木佛不渡火, 常思破窖墮. 杖子忽擊著, 方知辜負我.



나무 부처[木佛]는 불을 건너지 못하니(木佛不渡火.)
- 불타버렸다. 나만이 알 수 있다.

항상 파조타(破竈墮 : 조왕신을 제도하신 스님)가 생각나네.(常思破窖墮.)
-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뭐 안 될 것이 있느냐.
  문둥이가 짝을 이끌고 가는구나.

주장자를 홀연히 내려치니(v)
- 산승의 손 안에 있다.
  산승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누구 손엔들 없겠느냐.

나를 저버렸다는 걸 알겠네.(方知辜負我.)
- 그대와 같다. 어찌해볼 수가 없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아이고, 아이고! 삼십 년 뒤에나 비로소 되겠군.
  차라리 영겁에 빠져 있을지언정 모든 성인에게 해탈을 구하지 않겠다.
  여기에서 알아도 은혜 저버림을 면치 못한다.
  어떻게 해야 저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주장자가 남의 손아귀에 있음을 면치 못하리라.

[평창]
“나무 부처는 불을 건너지 못하니 항상 파조타가 생각나네”라는 한 구절도 역시 송이다.
설두스님은 “나무 부처는 불을 건너지 못한다”는 것으로 인하여
“항상 파조타가 생각난다”고 하였다.

숭산(嵩山)의 파조타스님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언행도 알 수 없었다.
숭산에 은거하다가 하루는 제자를 거느리고 산간 마을로 들어가니,
매우 영험스러운 사당이 있었는데
사당 안에는 유일하게 솥 하나가 안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원근을 막론하고 여러 사람들이 계속 제사를 올리느라
짐승을 죽이고 삶는 일이 매우 많았다.


스님이 사당 안에 들어가 주장자로 솥을 세 차례 치면서 말하였다.
“쯧쯧! 그대는 본래 질그릇 흙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신령함이 어디로부터 오겠으며,
성스러움이 어디에서 일어난다고 이처럼 짐승의 생명을 삶아 죽이느냐.”
말을 마치고 또다시 세 차례를 치자
솥이 저절로 깨지면서 갑자기 푸른 옷에 높은 관을 쓴 사람이 앞에 서서
절을 한 후 말하였다.
“저는 부엌신입니다.
오랫동안 업보를 받아오다가
오늘에야 스님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의 설법으로 이곳을 벗어나
하늘나라에 태어났기에 일부러 찾아와 감사드립니다.”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에게 본래 있던 성품이지, 내가 억지로 한 말은 아니다.”
그 신은 두 번 절을 한 후 사라져버렸다.
이에 시자가 물었다.
“저희들은 오랫동안 스님을 모셨지만 아직껏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는데,
부엌신은 왜 대뜸 깨달음을 얻어 바로 하늘나라에 태어났습니까?”
“나는 그에게 ‘너는 본래 질그릇 흙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신령함이 어디로부터 오겠으며 성스러움이 어디로부터 일어나느냐’고 말했을 뿐이다.”


시자와 스님 모두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스님은 말하였다.
“알았느냐?”
“모르겠습니다.”
“(법문을 청하려거든) 절을 올려봐라.”
스님 둘이 절을 하자, 스님은 말하였다.
“깨지고 깨졌으며, 떨어지고 떨어졌다.”
이에 시자는 홀연히 크게 깨쳤다.

그 뒤 어떤 스님이 이를 안국사(安國師)에게 말씀드리자, 국사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물아(物我)가 하나[一如]임을 몽땅 알았구나.”
부엌신이 이를 깨달았던 것은 그렇다 치고,
시자에게는 오온(五蘊)의 몸이 그대로 있는데도 “깨치고 떨어졌다”고 말하였다.
부엌신과 시자가 모두가 깨침을 얻었다.
사대 오온(四大五蘊)과 질그릇·진흙이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그렇다면 설두스님은 무엇 때문에
“주장자를 홀연히 내려치니, 나를 저버렸다는 걸 알았네”라고 말하였을까?
이는 아직 주장자(본래 면목)을 얻지 못한 때문이다.
말해보라, 설두스님은 “나무 부처는 불을 건너지 못한다”는 공안을 노래하면서
무엇 때문에 파조타의 공안을 인용했을까?
노승은 핵심만을 말해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설두스님의 뜻은 잘잘못과 알음알이를 단절하였고 말끔한 경지였기 때문에,
자연 파조타스님이 몸소 알았던 것이다.

출처 : 나를 찾는 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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