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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암록 碧嚴錄]下



제97칙 금강경 때문에 경천해지면(金剛輕賤)



[垂示]
垂示云. 拈一放一, 未是作家, 擧一明三, 猶乖宗旨.
直得天地陟變四方絶唱, 雷奔電馳雲行雨驟, 傾湫倒嶽甕瀉盆傾, 也未提得一半在.
還有解轉天關能移地軸底麽. 試擧看.

[수시]
(원숭이가 물건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듯이
안절부절 해서는 결코 작가가 아니며,
하나를 들어 나머지 셋을 밝힌다 해도 종지에는 어긋난다.
비록 천지가 갑자기 변하고 사방에 대답할 방도가 끊기며,
번개가 내려치고 구름이 날고 소낙비가 쏟아지며,
폭포가 엎어지고 산악이 거꾸러지며 물동이로 물을 퍼붓듯이 하더라도,
결코 하나는커녕 반 개도 제창하지 못한 것이다.
천관(天關)을 열어젖히고 지축을 옮겨놓을 수 있느냐?
거량해보아라.


[본칙]擧. 金剛經云, 若爲人輕賤, 是人先世罪業, 應墮惡道,

以今世人輕賤故, 先世罪業, 則爲消滅.



거론하다.(擧.)

「금강경」에 이르기를“사람에게 업신여김과 천대를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金剛經云. 若爲人輕賤.)
- 한 가닥 (제이의제의) 길을 터놓았군.
  그렇더라도 방해될 게 뭐 있나!

(이 사람은) 선세(先世)에 지은 죄업으로(是人先世罪業.)
- 나귀와 말에 가득 실렸구나.

응당 악한 세계에 떨어져야 하겠지만(應墮惡道,)
- 떨어져버렸다.

금생에 사람들의 업신여김과 천대를 받았기 때문에(以今世人輕賤故,)
- 근본죄업을 받아야 하거늘 지말적인 것으로 때우네.
  단지 참으면 될 뿐.

선세(先世)의 죄업이(先世罪業,)
- 어디에도 찾을까?
  콩을 심었는데 싹도 나지 않네.

바로 소멸되느니라”고 하였다.(則爲消滅.)
- 설상가상(雪上加霜) 또 한 겹이군.
  끓는 물이 얼음 녹이듯 하는군.

[평창]
「금강경」에 이르기를
“사람에게 업신여김과 천대를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사람은) 선세의 지은 죄업으로 응당 악한 세계에 떨어져야 하겠지만
금생에 사람들의 업신여김과 천대를 받았기 때문에
선세의 죄업이 바로 소멸되느니라”고 하였다.
평범하게 생각해본다면 경전에 흔히 있는 말일 뿐이다.
그러나 설두스님은 이를 들어 이 뜻을 노래하여
귀신 굴 속에서 살람살이하는 교학가(敎學家)를 타파하고자 하였다.

소명태자(昭明太子)는 이 한 문단을 하나의 과(科)로 나누어
능정업장(能淨業障)이라 하였다.
교학의 대의는 이 경전의 영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남에게 업신여김과 천대를 받는) 사람은 선세에 지옥 업보를 지었으나
선력(善力)이 강한 까닭에 아직은 이를 받지 않는데,
금생에 남들이 업신여기며 천대하므로 선세의 죄업이 바로 소멸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전에서는 무량겁 이후의 죄업을 소멸하여,
무거운 것은 가볍게, 가벼운 것은 아예 받지 않도록 할 수 있으며,
또한 불과(佛果)·보리(菩提)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교학가에 의하면 이 스무 장 남짓 되는 경전을 가지고
자꾸자꾸 돌려 읽는 것을 ‘지경(持經)’이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이(업보)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경전은 반드시 영험이 있다”고 하나,
그렇다면 이 한권의 책을 한가한 곳에 펴놓아 보아라.
거기에 무슨 감응이 있나 없나.

그러나, 법안(法眼)스님은
“불지(佛地)를 깨친 자를 이름하여 이 경전을 ‘지경(持經)’이라 한다”고 하였다.
「금강경」에서도 이러한 말이 있다.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 경전에서 나온다.”
말해보라, 무엇을 가지고 이 경전을 만들었는가를.
누런 책갈피와 붉은 축(軸)을 이것이라 하지나 않았는가!
정반성(定盤星 : 저울 눈금)을 잘못 읽지 말라.

금강(金剛)이란 법의 본체가 견고함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사물이 이를 파괴하지 못하며,
그 기능은 아주 날카로워 모든 사물을 자르는 것이다.
이로써 산을 노리면 산이 꺾이고 바다를 노리면 바다가 고갈되므로
비유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 법도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야(般若)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실상반야(實相般若), 둘째는 관조반야(觀照般若), 셋째는 문자반야(文字般若)이다.

실상반야란 참 지혜[眞智]로서
여러분의 발밑에 ‘하나의 큰 일’이 고금에 빛나고 완전히 알음알이[知見]가 사라져
말끔하게 훌훌 벗고 텅 비어 맑은 그것이며,
관조반야란 참다운 경계[眞境]로서
이는 하루 종일 빛이 쏟아지고 대지를 진동하면서 소리를 듣고 물색을 보는 것이며,
문자반야란 겉으로 드러난 문자(文字)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 말한 자와 듣는 자가 반야인지 아닌지를 말해보라.

옛사람의 말에 “사람마다 한 권의 경전이 있다”고 하였고,
또한 “손에 경권(經卷)을 들지 않고서도 항상 ‘이’ 경전을 굴린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 경전의 영험을 말한다면,
무거운 죄업을 가볍게 전해주고, 가벼운 죄업을 아예 받지 않게 하는데 그치겠느냐?
설령 성인이 갖고 있는 능력에 필적한다 해도 기특하다 할 것이 없다.

듣지 못하였느냐,
방거사가 「금강경」강론을 듣다가 좌주(座主)에게 물었던 것을.
“속인에게 자그마한 질문이 있는데 여쭈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의심이 있거든 물어보시오.”
“경전에 아상(我相)도, 인상(人相)도 없다 하였는데,
아상·인상이 없다면 누가 강론하며, 누가 듣는 것입니까?”
좌주가 대답하지 못하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문자를 따라 의미를 이해할 뿐 이 뜻은 모르겠군요.”
이에 거사가 송을 지었다.
  
   나도 없는 남도 없는데
   무슨 가까움과 먼 것이 있겠는가.
   그대에게 좌주살이 그만 하라고 권하노니
   어찌 참을 구하느니만 같겠는가.

   금강반야의 성품은
   하나의 가는 티끌마저도 없고
   여시아문(如是我聞)에서
   신수봉행(信受奉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그저 붙여본 이름일 뿐.

이 게송은 가장 훌륭하고도 분명하게 일시에 말해버렸다.
규봉(圭峰)스님은 사구게(四句偈)를 하나의 과(科)로 나누기도 했다.
“모습[相]이 있는 바는 모두가 허망한 것이다.
모든 모습이 참모습이 아닌 줄 안다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

이 사구게의 뜻은
‘불지(佛地)를 깨친 자를 이름하여 이 경을 간직한다’고 말한다는 것과 같으며,
또한  “만일 색(色)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길을 가는 것이라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이 또한 사구의 게송이지만,
이 둘 중에서 다만 전체 중에서 그 의미가 완벽한 것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스님이 황룡 회당(黃龍晦堂)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금강경의 사구게입니까?”
“(사구게를 있다고 인정하는 네 자신의) 질문이 벌써 잘못됐는데도 모르는군.”
설두스님은 이 경전의 핵심을 들어 말하기를
“어느 사람이 이 경전을 간직하려 한다면
(그 간직할 것은) 바로 여러분의 본지풍광(本地風光)이며, 본래면목이다”라고 하였다.

조사의 법령에 따라서 시행한다면
본지풍광과 본래면목도 세동강이로 잘라버려야 하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12분교(十二分敎)가 어떻다는 등 꾸며댈 필요가 없다.
‘이 자리’는 설령 만 가지로 헤아린다 하여도 관계가 없다.

요즈음 사람은 오로지 경전만을 전독(轉讀)할 뿐,
무슨 얘기인 줄도 모르고서 그저 말하기를
“나는 하루에 어느 정도 전독할 수 있다”고 하면서,
누런 책 거죽에서 글줄이나 찾으며 글자를 셈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경전 전체가 자기의 본심에서 나왔으니,
이렇게 이해해야만 바로 조금이나마 전독한 것이다.

대주(大珠) 스님은 “빈집 안에서 몇 질의 경전 쌓아놓고 보라.
책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더냐.
자기 속에서 나오는 이 마음이 공덕일 뿐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모두 나의 마음에서 나오며,
한 생각이 이미 신령하니 곧 통하고, 통하면 곧 변화한다”고 하였으며,
옛사람(도생스님)은
“푸르고 푸른 대나무는 모두가 진여(眞如)이며,
무성한 국화는 반야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를 투철하게 알아차리면 바로 진여겠지만,
아직 이를 보지 못했다면 무엇을 진여라 하겠는가?
말해보라.

「화엄경」에서는
“사람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응당 법계의 성품을 관(觀)하라.
모든 것은 마음에서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그대들이 이를 안다면 경계와 인연을 만나더라도 주인 노릇을 하고 으뜸이 되겠지만,
밝히지 못했다면 먼저 엎드려 판결 처분을 듣도록 하라.

설두스님은 안목을 드러내어 아주 정확하게 노래하고
「금강경」의 영험을 밝히고자 하였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明珠在掌, 有功者賞. 胡漢不來, 全無技倆. 伎倆旣無.

波旬失途. 瞿曇瞿曇. 識我也無. 復云. 勘破了也.



밝은 구슬[明珠]이 손아귀에 있으니(明珠在掌.)
- 위로는 은하수로 통하고 아래로는 황천에 사무쳤다.
  무슨 소리하는가!
  사방팔방에 두루하고 팔면에 영롱하다.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리라.(有功者賞.)
- 겨우 조금 분명하군.
  그(설두스님)의 송을 나(원오스님)도 찬성한다.
  만약 공이 없을 때는 어떻게 상을 내리려느냐?

오랑캐나 중국놈이 찾아오지 않으니(胡漢不來,)
- 안팎에 소식이 끊겼다.
  그래도 조금 멀었다.

전혀 자취가 없구나.(全無技倆.)
- 더더욱 관계가 없다.
  어느 곳에서 찾겠느냐?
  먹통을 타파하고 만나보라.

이미 자취가 없구나.(伎倆旣無.)
- 쉬어라. 누가 이처럼 말했느냐.

파순(波旬)이 길을 잃는다.(波旬失途.)
- 속셈을 감파해 버렸다.
  이 외도 마왕이 종적을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구담(瞿曇), 구담이여.(瞿曇瞿曇.)
- 부처님 눈으로도 볼 수 없다.

나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識我也無.)
- 쯧쯧! 감파해 버렸구나.

(설두스님은) 다시 말한다.“감파해 버렸다.”(復云, 勘破了也.)
- 한 방망이를 칠적마다 매 맞은 자국이 또렷하다.
  그러나 이미 말 이전에 있다.

[평창]
“밝은 구슬이 손아귀에 있으니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리라”는 것은
누구든지 이 경전을 간직하여 영험을 얻는 자에겐
밝은 구슬을 상으로 내리겠다는 것이다.

공을 세운 자가 이 밝은 구슬을 얻어 자연히 사용할 줄을 알아,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로 나타나고, 중국놈이 오면 중국놈으로 나타나
삼라만상이 종횡으로 밝게 나타난다.
이게 공훈이 있는 것이다.
법안스님은 말하기를
“불지(佛地) 깨친 자를 이름하여 이 경전을 간직하였다고 하겠다”고 했는데,
위의 두 구절로 (법안스님의) 공안을 모두 송한 것이다.
“오랑캐나 중국놈이 찾아오지 않으니 전혀 자취가 없구나”라고 했는데,
이는 설두스님이 콧구멍을 비틀어버린 것이다.
더더구나 오랑캐·중국놈이 찾아온다면 그들을 비춰 나타내주겠지만
모두가 찾아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까?
여기에 이르러서는 부처님 눈으로 엿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
말해보라. 이는 공훈인지 죄업인지, 오랑캐인지 중국놈인지를…….

이는 바로 영양(羚羊)이 벼랑에 뿔을 걸고 있는 것처럼 자취가 없으니,
소리와 종적을 말하지 말라.
호흡소리마저 없는데 어느 곳에서 찾겠는가?
모든 하늘에서 꽃을 공양하려 해도 공양할 길이 없고
마구니 외도가 엿보려 해도 문이 없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동산(洞山)스님은 일생을 사원에 주석하였으나
토지신(土地神)이 그의 종적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하였는데,
하루는 부엌 앞에서 쌀과 국수를 던져버리는 것을 보고서 동산이 화를 내어
“삼보의 상주물(常住物)을 어찌 이처럼 짓밟을 수 있다더냐”라고 말하였을 때,
마침내 토지신은 (동산스님을) 한 번 뵐 수 있게 되어 대뜸 절을 올렸다 한다.
설두스님의 “자취가 이미 없으니”라는 말은
자취가 없는 곳에 이르면 파순도 길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모든 중생을 어린아이로 여기셨다.
한 사람이라도 신심을 내어 수행하면 파순의 궁전이 흔들리고 부서지므로
파순이 얼른 수행자를 찾아와 어지럽게 만든다.
설두스님의 말은, 설령 이처럼 파순이 찾아온다 해도 길을 잃게 되어
그 곁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설두스님은 다시 가슴을 치며 스스로 뻐기며 말하였다.
“구담, 구담이여, 나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파순에 대하여서는 말을 말기로 하더라도
예컨대 부처가 찾아온다 해도 나를 알 수 있겠냐는 것이다.
석가 노인도 보지 못하는데 여러분은 어느 곳에서 찾을 수 있겠느냐?
다시 “감파해 버렸다”고 말하였다.

말해보라,
이는 설두스님이 구담을 감파한 것인가?
구담이 설두스님을 감파한 것인가?
안목을 갖춘 이라면 핵심을 파악 하거라!

출처 : 나를 찾는 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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