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25)

 

지난 시간부터 일미(一味)에 대한 공부를 확실히 하고 있고 37도품을 하나하나 깨달은 장로들의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깨친 바만 집착을 하면 그것은 증상만이라 그랬습니다.

어떠한 수행법이든 그 지향하는 바는 똑같습니다. 한맛[一味]으로 귀착된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고, 일미평등, 둘이 없는 그 경계에 대해서 그 원인이 현재 순간순간 일어나는 이 생각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는 것, 이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래서「대승기신론」에서 홀연염기(忽然念起)라고 해서 홀연히 한 생각이 일어난다, 그랬어요. 홀연히 한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그게 무명이고, 그것이 너, 나를 갈라놓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흔히 너, 나의 경계를 긋는 것은 과거에 있다고 하지만 과거는 지나가서 없습니다. 미래도 역시 오지 않아서 없는 거예요.

우리는 과거가 있으니까 현재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기억으로 만 있는 겁니다. 잘 생각을 해보시면 현재 순간만 있어요.

 

그래서 법성게에서 무엇을 얘기하느냐 하면, 과거 속에도 과거 현재 미래가 있고, 현재에도 과거 현재 미래가 있고, 미래에도 과거 현재 미래가 있지만 이것은 한 생각에 전부다 포섭이 된다, 그랬어요. 현재 일념에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들어간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 이것을 제대로 파헤치면 문제는 해결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음 봅시다.‘일미상(一味相)인 승의제’할 차례입니다. 승의제 모습은 일미의 모습이라는 거죠.

 

爾時,世尊告長老善現曰.

如是如是, 善現,我在微細最微細,

甚深最甚深,

難通達最難通達,

遍一切一味相勝義諦,現正等覺,

現等覺已,爲他宣說,

顯示開解,施設找了.

 

이때 세존께서 장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선현이여, 나는 미세한 것 가운데 가장 미세하고,

깊은 것 가운데 가장 깊으며,

통달하기 어려운 것 가운데 가장 통달하기 어려운

일체에 두루하는 한맛의 모습인 승의제에서 등정각을 나타냈고,

등정각을 나타내고 나서는 남을 위하여 설명하고 나타내 보이며

깨우치도록 시설하여 비추었느니라.

 

승의제라는 것은 일미(一味)의 모습인데, 이 일미의 모습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었다는 거죠. 그래서 이 깨달음을 많은 중생들에게 설명해주고 깨우치도록 했다는 얘기입니다.

결국은 일미를 깨닫는 것을 깨달음이라 한다는 거죠.

『반야경』에서는‘공(空)의 뜻이 깨달음의 뜻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일미(一味)는 공(空)하고 똑같은 얘기죠.

 

한 번 생각을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물질적인 우주와 몸의 구성요소는 흙, 물, 불, 바람, 허공이 있습니다. 이 다섯 개의 원소는 마음에서 나왔다 이거죠.

『능엄경』에도 보면 5대는 마음에서 나왔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나왔다는 이 마음의 근원은『원각경』에서는 원각(圓覺)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물질이라는 것이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거죠. 원각(圓覺)이라는 말은 불성(佛性), 진여(眞如)라 해도 똑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5대가 화합해서 몸도 이루고 우주도 구성하는 거죠.

 

여기 마음이 등장하는데, 역시 양자물리학에서 과학자들이 무엇을 얘기하느냐 하면, 물질을 추구해보니까 물질은 없고 비물질이 나오더라 이거에요. 결국 마음이 물질을 구성한다고 얘기합니다.

이 마음이 물질의 원소[5대]로 구성을 해가지고 몸이나 우주의 형상을 나타내는 겁니다. 이것을 얘기 하는 거예요.

 

저렇게 본다면 분리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우리는 공간에서 저것과 떨어져있다, 이렇게 보는데,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사실 의식이 만들어 낸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이 있는 세계를 세간(世間), 세(世)는 시간, 간(間)은 공간을 얘기하는데, 이 시공간이라는 게 결국 우리 마음의 번뇌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자 해서 출세간(出世間)이라는 말을 씁니다. 시공의 세계는 철저한 고통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늘날에는 과학자들이 얘기하는 겁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불교 안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모든 존재, 모든 세계를 설명하는 보편적 진리입니다.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진리에요. 그것을 오늘날 과학자들이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깨달음을 나타낸다는 게 그런 걸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관찰해서 깨달음이 오느냐? 오면 좋죠. 안 오니까 명상을 하는 거고 수행을 하는 거죠.

 

그 다음은‘승의제는 모든 것은 일미의 모습이다’입니다.

 

何以故, 善現,

我已顯示,於一切蘊中,

淸淨所緣 是勝義諦.

 

왜 그러냐 하면, 선현이여,

나는 이미 모든 온(蘊) 가운데

반연한 바 청정이 바로 승의제임을 나타내 보였느니라.

 

여기 오온(五蘊)을 얘기하는데 그전에 다 설명 했습니다.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 반연한 바가 청정(淸淨)이고

이게 바로 승의제다 이거죠.

『반야심경』에 보면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 하죠. 오온이 다 공하다 할 때 이 공이 뭐냐 하면‘청정(淸淨)’을 얘기합니다.

깨끗하고 번뇌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공(空)하다는 게 그런 말이에요. 청정은 그 본질이 비어 있기 때문에 주객이 떠나있는 자리고 한맛의 세계입니다. 주객이 떠나 있는 그 자리는 주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전에 제가 이런 얘기 했죠.

경허선사께서 길을 가다가 마을 어귀에서 노는 아이들을 불러서 하시는 말씀이“나를 한 대씩 때리면 돈을 주겠다.”이랬어요.

그래서 한 아이가 탁! 때리니까

“난, 안 맞았다.”이러는 거예요.

또 한아이가 탁! 때리니까 아까와 마찬가지로

“난, 안 맞았다.”이러니까,

한 아이가“스님, 돈 안 줄려고 그러죠?”,“준다.”이런 일화가 있는데, 때렸는데 안 맞았다는 말이 뭡니까? 청정한 그 자리는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육조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칼로 사지를 끊어내면 분노를 일으키지만, 우리 본성 자리는 분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랬어요.

열 세 살 먹은 사미[신회]를 탁! 때리면서

“아프냐?”하니까

“아픕니다. 하지만 우리 본연의 마음자리는 이 아픔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 자리가 바로 저런 자리에요.

그런데 우리는 탁 맞으면 아프다는 생각을 하죠? 그러면 상대에게 화를 냅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주객이 나눠진 세계에요. 우리는 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거죠.

 

그 다음에

 

我已顯示,於一切處緣起, 食 ․ 諦 ․ 界 ․

念住 ․ 正斷 ․ 神足 ․ 根 ․ 力 ․ 覺支 ․ 道支中,

淸淨所緣 是勝義諦.

 

나는 이미 일체의 십이처 ․ 십이연기 ․ 사식 ․ 사성제 ․ 십팔계 ․ 사염주 ․ 사정단 ․ 사신족 ․ 오근 ․ 오력 ․ 칠각지 ․ 팔정도 가운데서 청정이 바로 승의제임을 나타내 보였다.

 

그러니까 오온만이 아니고 전부다[37도품] 본질은 승의제다 이거죠. 이게, 모아서 하나로 통한다는 회통(回通)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중요한 것은 굉장히 많은 불교 수행 중에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그 근원적인 일미로 갈 수 있다면, 승의제로 돌아간다면,  제대로 가는 거예요.

불교 수행법이 엄청나게 많더라도 지향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수행법은 났고 어느 수행법은 못하다, 그러니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마라, 이건 아니에요. 단지 이런 것은 있습니다.

이 수행은 내 근기에 맞고 저것은 내 근기에 맞지 않다, 이런 것은 있을 수 있는 거죠. 근기에 따라 서 다를 뿐이에요.

 

여기서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매우 중요한 말인데, 진리가 일미[승의제]라면 수행하는 자체가 뭡니까? 승의제 안에 포함 됩니까, 안 됩니까? 포함 되죠.

그렇다면 오온, 십팔계, 십이처, 사성제, 칠각지, ..... 이것은 전부다 일미 맞잖아요.

이 많은 수행법이 일미라 그러면, 일미는 뭡니까, 깨달음[覺]이잖아요. 그러면 이 말대로 하자면, 내가 수행하는 이 자체가 깨달음의 표현이에요.

 

왜 그러냐. 일미라는 것은 내가 수행해서 깨달은 게 아니고 본래 이 모든 세계가 내가 수행해서 깨치거나 못 깨치거나 그냥 일미에요. 한맛이기 때문에 깨치려고 수행하는 그 자체가 깨달음의 표현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범망경』‘보살심지계품(菩薩心地戒品)’에 보면 보살계를 심지계(心地戒)라고 하고 다른 말로 하면 불성계(佛性戒)라고 얘기 합니다. 그리고『원각경』에는 인지법행(因地法行)이라는 말을 쓰고「대승기신론」에서는 법력훈습(法力薰習)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지법행(因地法行)에서 지(地)는 마음을 비유한 거예요. 그러니까 첫 마음이 법의 모습으로서 행하는 것을 얘기하는데 이것은 원각(圓角)에서 나왔습니다. 원각이 바로 인지법행(因地法行)이에요.

 

법의 힘이 영향을 준다는 법력훈습(法力薰習)은 진여에서 나왔습니다. 진여자체가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러면 심지계(心地戒), 즉 불성계(佛性戒)는 불성(佛性)에서 나왔습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내가 육체적으로 괴롭고 정신적 고뇌가 있다면 어떤 생각이 일어납니까? 괴로우면 어떻게 합니까? 병원이든 약국이든 가죠? 그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가는 거죠.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약을 찾거나 병원을 찾는데, 조금 다른 사람들이 있어요.

괴롭고 힘들면,‘이 괴로움이 어디에서 올까?’이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어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분들은 명상을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렵고 힘든 것을 해결하고자하는 마음이 뭐냐 하면, 바로 인지법행(因地法行)이고 법력훈습(法力薰習)이고 불성계(佛性戒)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향로에 향을 피우면 허공에 향연기가 올라가면서 잠시 후면 사라지죠. 그러면 향연기가 피어오르기 전의 허공이나 피어오르고 난 후에 허공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똑같은 허공이에요. 그런데 향연기가 피어오르면 허공이 이것을 없애는 작용을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허공은 변함이 없는 거죠.

 

마찬가지로 번뇌가 일어나면, 고통이 일어나면, 원각(圓角)이나 진여(眞如), 또는 승의제(勝義諦)에서 없애는 작용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 없애는 작용이 인지법행(因地法行)이고 법력훈습(法力薰習)이고

불성계(佛性戒)라고 하는 겁니다.

쉽게 얘기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분명히 진여가 작용 했는데, 승의제라는 일미의 마음이 작용을 하긴 했는데, 이런 이치를 알고 가는 사람이 선근이 있는 사람이고 엉뚱한 데로 가는 사람은 선근이 부족한 사람이에요.

 

이런 이치를 알고 수행을 하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습니다.

깨치고 보니까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래서 어록에 보면 무각(無覺), 무수(無修), 무증(無證)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수행하면 각(覺), 이것만이 진실이다, 깨달았다, 하고 증상만이 생기는 거예요. 수행자체가 깨달음의 표현인줄 알아야 되요.

 

그런데 이런 이치를 잘 알면서도 수행을 안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 고통에서 못 벗어나는 거예요. 그렇지만 알고 수행을 하면 깨달음을 얻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수행하면 자칫 잘못하면‘내가 깨달았다’는 증상만이 오는 겁니다. 깨치고 보면, 깨달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원래 우리가 깨달음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뿐이에요.

 

여기에서‘오근 ․ 오력 ․ 칠각지 ․ 팔정도 가운데서 청정이 바로 승의제임을 나타내 보였다.’하는 말이 그런 얘기에요.

그래서 수행 자체가 깨달음의 표현이다. 원각의 표현이고, 일미의 표현이고, 진여의 표현이고, 불성의 표현이다,

그러면 우리 살아가는 것은 어때요? 수행을 하거나 안하거나 우리도 알고 보면 불성의 표현이고, 원각의 표현이고, 일미의 표현이고, 진여의 표현이죠. 그래서 우리는 일미 속에 사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 하나라는 것도 사실은 버려야 되거든요. 그래야만이 온전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대상을 인식할 수 있다면 주객이 나눠져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라고 하면 하나 아닌 것이 등장을 합니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지만[萬法歸一], 그 귀처를 우리가 공부를 하고 있는 거죠.

 

다음시간에 하겠습니다.

 

[출처] 43.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25) |작성자 byunsdd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6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48. 심의식상품(心意識相品) (2) 短長中庸 2019.11.20 32
115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47. 심의식상품(心意識相品) (1) 短長中庸 2019.11.20 28
114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46.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28) 短長中庸 2019.11.20 30
113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45.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27) 短長中庸 2019.11.20 23
112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44.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26) 短長中庸 2019.11.20 27
»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43.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25) 短長中庸 2019.11.20 25
110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42.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24) 短長中庸 2019.11.20 30
109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41.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23) 短長中庸 2019.11.20 28
108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40.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22) 短長中庸 2019.11.20 26
107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39.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21) 短長中庸 2019.11.20 25
106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38.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⑳ 短長中庸 2019.11.18 25
105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37.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⑲ 短長中庸 2019.11.18 24
104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36.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⑱ 短長中庸 2019.11.18 33
103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35.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⑰ 短長中庸 2019.11.18 25
102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34.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⑯ 短長中庸 2019.11.18 30
101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33.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⑮ 短長中庸 2019.11.18 13
100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32.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⑭ 短長中庸 2019.11.18 7
99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31.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⑬ 短長中庸 2019.11.15 7
98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30.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⑫ 短長中庸 2019.11.15 7
97 지운스님의 해심밀경 강의 - 29.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⑪ 短長中庸 2019.11.15 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