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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27)

 

지난 시간에 진여(眞如), 승의(勝義), 법무아(法無我)를 하다가 다 못했습니다.

진여(眞如), 우리 마음에 허망하지 않은 참다운 게 있어요. 주객이 상대해서 일어나는 것은 다 허망한데,‘진(眞)’은 주객이 상대를 떠나버린 상태를 진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허망하지 않다는 거죠.

‘여(如)’라는 것은 안 바뀐다는 거죠. 우리 마음의 본질이 여(如)입니다.

이 진여를 설명할 때 보통 불변(不變)과 수연(隨緣)을 얘기합니다.

불변(不變)은 변하지 않는 것을 얘기하고, 수연(隨緣)은 인연으로 따르는 모습이죠. 이것을 비유를 할 때 금에 비유를 많이 합니다.

금은 반지, 귀걸이, 목걸이 온갖 형상을 만드는데 금의 누런 성품은 그대로에요.

그래서 누런 성품은 변하지 않는 불변(不變)에 비유하고, 반지, 귀걸이, 목걸이 등은 온갖 모양을 바꾸는 거니까 인연을 따르는[隨緣] 거예요. 이 두 가지[不變, 隨緣]가 같은 진여를 얘기 합니다.

단지 불변(不變)만 얘기하면 실체론이 떨어지고 절대주의에 떨어지겠죠. 수연(隨緣)만 얘기하면 허무주의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여의 다른 이름이 중도(中道)에요.

 

사람의 겉모습, 얼굴 모습 이런 것은 전부다 수연에 속합니다.

여러분은 다 부모로부터 태어났잖아요. 인연을 따라서 태어난 모습은 수연이지만 여러분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 불변인 거죠.

바뀌지 않기 때문에 죽어서 다시 부모의 인연을 만나서 태어나는 겁니다. 수연하면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본질이 안 바뀌었다는 얘기죠.

그래서 진여의 다른 이름을 수승한 뜻이라고 해서 승의(勝義)라고 하는 거죠. 여기 수승한 뜻은 바로 일미(一味)를 얘기합니다.

그리고 승의(勝義)의 다른 이름이 법무아(法無我)라 그랬습니다.

여기 법(法)은 직접적인 원인[因]과 간접적인 조건[緣]이 만난 것이 법입니다. 그러니까 법은 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인과 조건은 언제든지 바뀔 수가 있는 거죠. 그렇게 매치가 됐을 때 나타난 현상이 법이라 그러는 거죠. 그런데 이 법의 본질은 자아(自我)가 없어요.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 태어날 뿐이지 무엇인가 자아가 있어서 생기게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에요. 그게 법무아(法無我)입니다. 그래서 이게[眞如, 勝義, 法無我] 다 같은 일미(一味)라는 얘기죠.

 

본문에 보면‘둘이 없는 지혜를 의지로 삼기 때문에 일체에 두루하는 한맛의 모습인 승의제를 깊이 살펴 증득한다.’

둘이 없는 지혜[無二智], 이게 중요합니다.

이 말이 뭐냐 하면, 수행을 할 때 이공관(二空觀)을 해야 되요. 이공(二空)은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얘기합니다.

자아라는 것은 없고[我空], 보이는 모든 이 세계도 없다[法空]는 걸 얘기합니다. 그것을 관찰[觀]해가는 겁니다.

 

‘본다[觀]’라고 하는 것을 여러 가지 얘기를 해야 되는데, 예를 들어 수식관을 한다면, 눈을 감고 호흡을 주시하다보면 코 주위가 보이고, 얼굴이 보이고, 몸 전체가 다 보여요.

눈을 감고 있는데 보인다면 그게 관이에요. 이 관이 익어지면 감정, 생각, 느낌, 이런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대상을 제대로 파악한 지혜가 있다, 분별해서 아는 지혜를 유분별지(有分別智)라 그러는데, 이것도 수행을 하다보면 객관적으로 보는 거죠. 이렇게 보는 마음이 무분별지(無分別智)에요.

 

지난 시간에 유분별지에서 무분별지로 어떻게 가느냐 했는데, 바로 관(觀)이에요. 화두 참구할 때는 눈 목(目)자 위에 손 수(手)자가 있는 간(看)자를 씁니다.

우리가 멀리 있는 것을 자세히 보려고 할 때 눈썹 위에 손을 펴서 올리고 보는 것처럼 자세히 본다는 말이에요.

관(觀)이나 간(看)이나 똑같은 말이에요. 그래서 달마스님은 관심(觀心)이라는 말을 쓰셨고, 역대 조사스님들은 간화(看話)라는 말을 썼습니다. 또 부처님은 이것을 관법(觀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느냐 하면, 진여(眞如), 승의(勝義), 법무아(法無我)가 한맛[一味]인데, 한맛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될 때 어떨까, 이것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여러분이 일미의 눈을 가지고 있다면, 여기 있는 찻잔은 무엇으로 보입니까? 일미로 볼 겁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이해가 잘 안되시리라 보는데,『서장(書狀)』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대혜(大慧)스님이 허사리라는 거사에게 맑을 담(湛), 그러할 연(然), 담연(湛然)이란 불명을 지어주면서 일체 경계를 만났을 때 담연이라는 도장으로 찍으면 하나하나 경계가 다 담연해진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누가 나를 비난을 한다면 내 담연의 도장으로 찍으면 비난이 담연으로 바뀐다는 거죠. 그러면 그 비난의 소리를 듣고 화가 날 리가 없죠. 마음이 담연해지는 거예요.

누가 칭찬을 하면 마음이 들떠야 되는데, 담연의 도장을 찍어버리면 칭찬이 담연으로 바뀌어서 마음이 담연해지는 거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어떠한 경계를 만나도 담연의 도장을 찍으면

하나하나 다 해탈해버린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 명상을 해가지고 일미라는 진리를 체득했다면 앞으로 만나는 경계마다 일미라는 도장을 탁탁~ 찍으면 다 일미가 되는 거죠.

그래서『화엄경』에서도 무생(無生)이라는 도장으로 만나는 경계마다 찍는다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빠디삼비다막가(Pa.tisambhidaamagga, 無碍解道)라는 초기수행논소에도 그게 나와 있어요.

예를 들어서 몸과 마음을 관찰을 해보니까, 몸도 마음도 매순간 무상하게 변하더라, 그러니 이게 진실한 게 아니구나, 이렇게 알았다 이거에요. 이렇게 알았다고 무상(無常)을 체득한 것은 아니에요. 계속 관찰해보니까 몸과 마음이라는 것이 집착하면 다 고(苦), 괴로움이더라. 더 깊게 관찰해보니까 주체가 없는 무아(無我)더라, 그래서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삼법인(三法印)이 나오는 거죠.

그렇다고 삼법인을 체득했다고 보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뭐가 중요하냐. 관찰을 해서 몸과 마음이 무상(無常)하다는 것, 매 순간 변한다는 것을 관찰 했다, 그런데 이 무상(無常)이 자기 마음인 줄 알아야 되요.

무상(無常)이 자기 마음인 줄 아는 순간 무상의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보고 이 세계를 보게 될 때 그때 진실로 무상을 체험하는 겁니다. 그게 지혜입니다. 보이는 이 세계가 마음이 투영된 세계라고 얘기 했잖아요.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거사님 이거 시계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럼 이 시계가 거사님에게 시계라고 불러 달란 적 있습니까?

“아니요.” ㅎㅎㅎ...

이 시계의 모양은 어떻습니까?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거사님은요?

“그냥 그렇습니다.”

두 분이 왜 다릅니까? 이 시계라는 대상이 밖에 있다면 똑같이 얘기해야 되는데,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고, 그냥 그렇기도 하고, 이렇게 다르게 얘기한다는 말이에요.

그렇다면 시계는 당연히 두 개가 있어야 되는데 현실적으로 하나라는 말이에요.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시계를 바라볼 때 내 감정과 생각을 덮어씌워서 보기 때문에 내 감정과 생각을 덮어씌워서 본 그 세계는 내 마음이 투사된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게 전부 투사시켜서 이름 붙여가지고 내 감정과 생각을 덮어 씌워서, 의미부여 해서 그렇게 인식을 하면서 살아가니 진실을 모르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내 감정 뽑아내고, 생각을 걷어내고, 이름을 걷어내고, 이게 무엇이냐고 했을 때 진실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때 일미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더 드러내야 될 게 뭐냐 하면,

고정되게 보이는 것,

분리되어 보이는 것,

스스로 존재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것,

이 생각도 걷어 내야 되는 거죠.

다 걷어내면 그 본질인 일미가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보이는 이 세계가 전부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덮어씌워서, 양념을 쳐서 본단 말이에요. 그래서 여기서 벗어나는 게 명상수행을 하자는 겁니다.

본문에도 관행(觀行)이라는 말을 쓰는데, 관행은 사마타觀과 위빠사나觀을 얘기하는 겁니다.

사마타觀은 그칠 지, 지관(止觀)이라하고

위빠사나觀은 볼 관, 관관(觀觀)이라고 합니다.

내 사상과 철학을 근거로 보는 게 아니고 순수하게 보는 거예요.

진짜 맞나 안 맞나 확인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무상(無常) 관찰을 한다면 무상 이것은 사상이나 철학이나 종교가 아닙니다. 무상은 변하는 거잖아요.

흘러가는 강물이 사상입니까, 철학입니까, 아니면 종교적 교리입니까? 흘러가는 물은 그냥 흘러갈 뿐이지 거기에는 사상, 철학, 종교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상이라는 것은 사상이나 철학이나 종교가 아니고 현실적으로 변하는 거죠.

모든 것은 변하는 겁니다. 이것을 거부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저항하고 거부합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있는 거죠.

 

그래서 내가 변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아무 전제도 없이 순수하게 보는 거예요. 그것이 수행이고 명상입니다.

무엇인가 사상이나 철학을 전제해서 본다면, 전제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그것은 가짜에요. 그것은 자기가 조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둘이 없는 지혜[不二智]라는 것은 관(觀)을 통해서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어떤 지혜가 생기느냐 하면. 내라고 하는 내 몸 안에 주재하는 자아도 없고[我空], 그렇다고 내 밖에 스스로 존재하는 실체도 없다[法空]는 거죠. 이렇게 아는 것을 지혜라 그러는 겁니다.

여기서 공통점은 공(空)이고, 공(空)은 일미(一味), 한맛이죠.

그래서 여기서 얘기하는 게 뭐냐 하면‘둘이 없는 지혜로 승의제를 증득한다’그랬어요.

무엇으로? 관행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

이 뒤에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얘기가 분별유가품에서도 또 나옵니다.

원효스님께서 분명히 얘기 했습니다. 불교에서 모든 수행은 사마타와 위빠사나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다 그랬습니다.

다음에 더 얘기하고 넘어 갑니다.

 

是故,善現,

由此道理,當知勝義諦

是遍一切一味相.

 

이런 까닭으로 선현이여!

이 도리를 말미암아 승의제는

일체에 두루 하는 한맛[一味]의 상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다음은

‘승의제는 원인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

 

復次善現,

如彼諸蘊 展轉異相

如彼諸處 ․ 緣起 ․ 食 ․ 諦 ․ 界 ․ 念住 ․ 正斷 ․ 神足 ․

根 ․ 力 ․ 覺支 ․ 道支 展轉異相,

若一切法 眞如 ․ 勝義 ․ 法無我性 亦異相者,

是則眞如 ․ 勝義 ․ 法無我性, 亦應有因,

從因所生.

 

또한 선현이여!

저 모든 온(蘊)이 시간적으로 상을 달리 하듯이,

저 모든 처 ․ 연기 ․ 식 ․ 제 ․ 계 ․ 염주 ․ 정단 ․ 신족 ․

근 ․ 역 ․ 각지 ․ 도지도 시간적으로 상을 달리한다.

만일 모든 법의 진여 ․ 승의 ․ 법무아의 성품도 또한 상을 달리하는 것이라면

이는 곧 진여 ․ 승의 ․ 법무아의 성품도 또한 응당 인이 있으며,

인으로부터 생긴 것이다.

 

원인으로부터 생긴 것은 바뀔까요, 안 바뀔까요? 바뀝니다.

여러분은 부모가 원인이 되어서 태어났잖아요. 저도 부모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원인에 의해서 생긴 결과는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는 겁니다.

우리는 그 모습에 취하면 안 되죠. 그 모습은 원인에 의해서 태어났지만 우리 본질은 원인에 의해서 태어난 게 아니에요.

 

그래서

若從因生,應是有爲

 

만일 인으로부터 생겼다면 반드시 그것은 유위다.

 

유의는 있을 유(有)자 할 위(爲)자,‘함이 있다’는 뜻이죠.

 

若是有爲,應非勝義,

若非勝義,應更尋求餘勝義諦.

 

만일 그것이 유위라면 마땅히 승의가 아니다.

만일 승의가 아니라면 응당 다시 다른 승의제를 찾고 구해야 한다.

 

승의제의 진리를 다시 구해야 된다는 거죠.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진여(眞如), 승의(勝義), 법무아(法無我), 이 세 가지는 인(因)으로부터 생긴 결과가 아니라 이거죠.

원인에 의해서 온 결과가 있다면 그것은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여(眞如)나, 승의(勝義)나, 법무아(法無我)라고 할 수 없는 겁니다.

우리 본질은 진여(眞如), 승의(勝義), 법무아(法無我)에요.

 

그래서 지난번에 그런 얘기를 했죠.

육조혜능 스님이 열세 살 먹은 사미 신회의 머리를 때리면서

“아프냐?”

“아픕니다. 그렇지만 우리 본성은 아픔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얘기 했죠.

그래서 육조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사지를 끊어 낸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느냐, 그러나 우리 본성은 그 증오심을 받지 않는다, 그랬어요. 왜냐하면, 본성인 불성 또는 진여는 주객이 없거든요. 화는 주관과 객관이 상대해야만 나는 겁니다.

 

우리가 주객이 상대했을 때 항상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지 주객을 떠난 자리는 그런 것은 안 받아들이는 거죠.

그래서 또 말씀드리지만, 경허선사가 아이들이 때릴 때

“나는 안 맞았다”그러는 겁니다.

우리 본성은 그것을 안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래서『원각경』에도 똑같이 얘기 합니다.

진여의 다른 이름이 원만한 깨달음, 원각(圓覺)이에요. 원각은 바뀌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는 게 원각이다 그랬어요.

 

『금강경오가해』에도 부처님을 그렇게 얘기를 하죠.

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을 만나면 무너져버리고

나무로 만든 부처는 불을 만나면 타버리고

쇳덩어리로 만든 부처는 용광로에서 녹아 버리니까 지나갈 수 없죠.

그러니까 진짜 부처님이 아니죠.

진짜 부처는 물을 끼얹어도 젓지 않고

불로 태워도 타지 않는 게 부처님이라는 거죠.

그게 법신이고 우리에게 다 있는 거죠.

그래서 여기‘만일 승의가 아니라면 응당 다시 다른 승의제를 찾고 구해야 한다.’라는 말이 그런 뜻이에요.

 

善現,

由此眞如 ․ 勝義 ․ 法無我性

不名有因,非因所生,

亦非有爲 是勝義諦.

得此勝義,更不尋求餘勝義諦.

 

선현이여!

이로 말미암아 진여 ․ 승의 ․ 법무아의 성품은

인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며, 인의 소생이 아니고,

또한 유위가 아니니, 바로 승의제이니라.

이 승의제를 얻었으면 다시 다른 승의제를 구하지 마라.

 

승의제는 유무도 아니고 색깔도 아니고 인과도 아닙니다.

그것은 비어 있는 겁니다. 변하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거기에만 집착하면 안 되겠죠. 그것은 불변의 입장이지만 또한 인연의 모습을 따릅니다.

 

오늘 얘기한 것 중에 결론적인 얘기는 승의제는 인과가 아니라는 얘기에요.

여기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마칩니다.

 

[출처] 45.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27) |작성자 byuns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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