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2013.02.04 14:35

무비스님 천수경 강의 법문녹취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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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늘 1월 8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 강의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월요일이라서 친불회 법회와 겸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합동으로 법회를 보게 됩니다.

 

      계수관음대비주 稽首觀音大悲呪

      원력홍심상호신 願力弘深相好身

      천비장엄보호지 千臂莊嚴普護持

      천안광명변관조 千眼光明遍觀照

      진실어중선밀어 眞實語中宣密語

      무위심내기비심 無爲心內起悲心

      속령만족제희구 速令滿足諸希求

      영사멸제제죄업 永使滅除諸罪業

      천룡중성동자호 天龍衆聖同慈護

      백천삼매돈훈수 百天三昧頓熏修

      수지신시광명당 受持身是光明幢

      수지심시신통장 受持心是神通藏

      세척진로원제해 洗滌塵勞願濟海

      초증보리방편문 超證菩提方便門

      원아칭송서귀의 願我稱誦誓歸依

      소원종심실원만 所願從心悉圓滿

 

<천수경>강의를 지금 해오고 있는 중인데, 지난 시간에 ‘천수천안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까지 했습니다.

 

 오늘은 ‘계수관음대비주 원력홍심상호신’ 여기서부터 할 차례인데, 앞에서 계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열어서 청한다’ 또는 ‘~하여 주십시오’ 하며 관세음보살님께,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에  뭔가 우리들의 바라는 바를 청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물론 관세음보살님의 원력과 그 모습과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심을 찬탄하는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수관음대비주稽首觀音大悲呪라. 

 

여기 <천수경>의 중심은 대비주, 또는 대다라니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사상이 담겨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관음대비주에 계수, 머리를 숙여 예배드립니다. 라는 내용이 바로 <천수경>은 대비주가 중심이고, 그것은 곧 관세음보살님의 정신과 관세음보살님의 자비가 표현되어 있다. 이런 뜻이죠. 그러한 대비주에 머리를 숙여 예배드립니다.


근래에 보면 이 대다라니를 외우는 기도들도 간혹 보이더라구요. 또 스님들 중에서도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라고도 하는 이것을 열심히 외우는 주문 수행법을 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불교에 의지해서 뭔가 불가사의한 힘을 얻고자 한다든지, 능력을 바란다든지, 그런 마음이 있는 분들이 주로  그런 신앙에 빠져 들어요.  글쎄, 그게 좋은 건지 좋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 어떤 큰 능력을 얻은 분들도 역사상 더러 있습니다.


소위 수월스님이라고 지금 연변 쪽에 그 스님의 기념 사찰을 세우려는 운동이 근래에 일어나고 있는데 유명한 ‘북수월 남혜월’이라고 그 당시로서는 큰 도인 스님 두 분을, 북쪽에는 수월스님이고, 남쪽에는 혜월(慧月)스님으로 지칭되던 분인데, 그 수월스님께서는 이 다라니를 아주 열심히 외우셔서 큰 신통력도 있었고, 한 번 들으면 어떤 많은 말도, 경전의 어떤 구절도 잊어버리지 않는 ‘불망념지不忘念地’를 얻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총지聰智라고 그러죠. 다라니를 번역하면 총지라 ‘모두 다 기억한다’ 이런 뜻인데 그런 능력을 얻고 싶어 하는 분들은  다라니를 열심히 외워서 그런 능력을 얻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다라니를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닌데, 그런 방향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신앙하고 그렇게 수행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이 관세음보살님은, 또 관세음보살 대비주에 담겨있는 그 내용은 원력이 아주 높으시다. 높고 깊으시다, 홍심弘深이라고 그러죠.


원력홍심상호신願力弘深相好身 이것은 곧 관세음보살님을 뜻하고,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을 말하고,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정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중생을 다 건지겠다고 하는 어떤 고통 받는 중생도 다 건지겠다고 하는 그 마음이 원력이거든요. 그런 원력이 크고 깊다. 그런 뜻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당신하고 친한 사람, 아는 사람, 또는 불교에 귀의하는 사람 등으로 선별해서 자비를 베풀거나  고통을 구해주는데 그치지 않고. 당신을 비방하는 사람, 당신을 욕하는 사람, 당신에 반하는 사람 등 어떤 사람도 다 거두어주는 그런 마음, 그야말로  무차대비無遮大悲라 그러죠.  막음이 없는 큰 자비심이다. 그런 자비심을 가지신 분이 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그리고 모습도 불교에서는 제일 이상적인 사람의 모습,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관세음보살님으로 나타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은 석굴암의 십일면 관음상도 제일 아름답게 조각되어있고, 소위 우리나라 불화佛畵뿐만 아니라 전체 미술사를 통해서 살펴보더라도 고려 불화를 제일 아름다운 미술, 또 예술성 높은 미술로 평가받는데 고려 불화의 거의 95% 가까운 그림이 전부 관세음보살의 그림입니다. 소위 수월관음이라고 하는 관음도가 거의 다 차지하고 있어요. 거기 보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또 대개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한 말씀이긴 하지만 사람으로서 자비와 지혜와 아름다움과 이런 모든 것을 가장 잘 표현하는 분이 관세음보살님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여기서 상호신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갖춘 분이다. 그리고


천비장엄보호지 千臂莊嚴普護持 그랬죠? 앞에는 ‘천수천안千手千眼’ 했지만, 여기선 ‘천비장엄’ 이라고 씁니다. 천수나 천비나, 팔에 손이 달렸지, 팔 없는 손이 어디 있으며 손 없는 팔이 어디 있겠습니까? 표현을 ‘천비’ ‘천수’ 이렇게 합니다. 천비로서 장엄을 해서 널리 중생들을 보호하고 감싸주고 지켜준다. 천수라는 뜻과 같죠.


 지난 시간에도 염화실 기도문, 소위 관음예문 1절을  읽어드렸지만 ‘얼마나 사랑하였기에 천의 손을 하셨을까? 얼마나 애달팠기에 천의 눈을 하셨을까?’ 천의 손과 천의 눈으로  우리 중생들의 아픔을 감싸준다고 하는 뜻으로, 그게 장엄莊嚴이라는 거죠. 보살의 장엄은 귀걸이, 목걸이하고 아주 호화로운 옷으로 치장하는 것이 장엄이 아니고. 또 자기가 사는 집을 아주 값 비싸게 화려하게 꾸미는 게 장엄이 아니고. 그건 우리 중생들의 장엄이죠. 그런데 불보살의 장엄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자비심慈悲心을 갖추고, 지혜를 갖추고, 툭 터진 마음을 갖추고,  차별 없이 대하는 마음 씀씀이를 갖추는 것. 이게 그 사람을 장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마음의 장엄이 없다면 아무리 겉으로 잘 꾸몄다한들 꾸몄다고 할 수가 없죠. 여기서 장엄이라고 하는 표현을 했는데 천 개의 손으로도 그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들을 보살피는 데는 모자란다는 거죠. 그런 마음으로 장엄해서 널리 중생을 보호하고 지킨다.


천안광명변관조 千眼光明遍觀照 천 개의 눈빛으로 두루두루 관조한다, 살펴본다. 살펴야 중생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아실 테니까 그렇죠.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되는가? 물론 액면대로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자비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널리 두루 살펴서 보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중생은, 모든 생명은 본능적으로 자기 사랑, 자기 보호, 자기 방어를 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러한 마음에서 관세음보살님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보살피고 감싸준다. 이런 표현입니다.


그래서 염화실 기도문인 관음예문에 이런 글이 있죠. “아쉬울 것 없도다, 천의 손이여. 당신 잊고 있을 때도 감싸주시니 나 이제 더 이상 아쉬울 것 없도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가 꼭 찾아야만 관세음보살님이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관세음보살님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잊고 있어도 관세음보살님은 우리를 살펴주신다는 겁니다. 그게 보살이죠. 찾는다고 살펴주고 찾지 않는다고 살펴주지 않으면 그게 성인聖人이라고 할 게 있습니까? 그건 정情이죠.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하는 보통 중생들의 알음알이고, 보통 중생들의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에 불과한 것이지. 사실 성인의 마음이라면 찾는다 안찾는다, 위해준다, 비방한다는 것과도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비방해도 상관없는 것이고, 찾는다고 해서 절을 수천, 수만 배를 하고 온갖 공양구를 올린다고 더 어여삐 더 잘 봐주는 게 절대 아니죠. 또 당신을 비방하고 헐뜯는다고 해서 배척하거나 안봐주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그런 분별을 한다면 그건 불교의 자비가 아니고 성인의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잊고 있을 때도 감싸주시니 나에게 더 이상 아쉬울 것 없도다.” 그랬습니다.

부처님의 자비 또는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를 이렇게 믿고 들어가야 돼요.  열심히 목 터져라고 부른다고 해서 돌아봐주고, 안부르면 돌아봐주지 않는다. 이렇게 믿으면 잘못 아는 것이고 잘못 믿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가 찾지 않아도 돌봐준다. 이렇게 믿어야죠. 그렇게 생각했을 때 우리 마음이 관세음보살님을 위하는, 관세음보살님을 향하는 마음이 없다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죠.


“외로울 것 없도다, 천의 눈이여. 당신 찾기 전에도 돌봐 주시니 나 이제 더 이상 외로울 것 없도다.”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외롭다, 아쉽다, 고통스럽다, 힘든다, 이런 마음이 있을 수가 없죠. 제대로 관세음보살님을 믿는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마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항상 관세음보살님은 나를 지켜주고, 나를 보호해주고, 나를 사랑해주고, 언제나 내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어도, 설사 내가  실망하고 비난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관세음보살님은 나를 지켜주고, 나를 돌봐주고 있다.  이렇게 믿고 들어가는 것이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제대로 된 신앙이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게 ‘천비장엄보호지 천안광명변관조’ 하는 내용을 부연 설명한 것입니다.


 진실어중선밀어 眞實語中宣密語.


진실한 말과 密, 비밀스러운 말, 아주 중요한 말이란 뜻이죠. ‘밀’이란 말은, 예를 들어,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말, 요긴한 말. 이것을 밀어로 사용하죠.  그러나 그것은 진실한 말이어야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진정한 밀어는 진실한 말이다. 그냥 하는 소리는 거짓이 있을 수 있지만 , 정말 진실한 말은 밀어이고, 밀어야말로 진실한 말이어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대비주를 밀어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진언, 주문, 다라니라는 의미로서 밀어라 표현하는데 그런 밀어야말로 진실한 말이다. 그래서 진실한 말 가운데 밀어를 드날린다.


무위심내기비심 無爲心內起悲心.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어떤 조작이 없고, 억지가 없고,  인위적이지 않고, 너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마음. 그런 마음 안에서 자비의 마음을 일으킨다.

우리는 한 마음 내려면 억지로, 한 쪽에는 일어나지 않으려는 것을 옆에서 권한다든지, 이를 악문다든지, 내가 해야 된다고 하는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마음을 써서 비로소 어떤 일을 하고, 그 마음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이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심은 그런 것이 아니죠. 무위심無爲心입니다. 무위심 안에서 자비로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지, ‘아이구, 이거 내가 중생을 보살펴야지. 성인으로서 내가 중생을 잊어버려서 되겠나?’ 하는 인위적인 마음을 우정 일으켜서 내는 그런 자비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관세음보살님의 자비, 불교의 자비를 이렇게 이해해야 되는 거죠.  이런 크나큰 자비와 지혜의 마음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저 깊은 곳에 다 갖추어져 있는데 인연을 만나지 못하고 계기가 되지 않아서 발현 하지 못할 뿐이죠. 무위심無爲心안에서 비심悲心을 일으킨다. 정말 우리가 눈여겨 두어야 할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자비스런 마음은 억지의 마음이 아니라 참으로 바람 불듯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마음. 또  자비심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좋은 자비심이지, 누굴 위한다든지 베푼다든지,  우리가 마음 내키지 않는 경우에  억지로 하는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안해야 돼요. 그럴 경우에는. 왜냐면 그런 경우에는 해도 마음의 갈등만 생기고 크게 복도 되지 않습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도연초>라고 하는 일본 스님이 쓰신 책에 “할까 말까 하는 경우에는 대개 안하는 것이 낫다.” 이런 말이 있어요. 나는 일상생활에 있어서 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할 때 그 말로 기준을 삼아 행동할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선뜻 흔쾌히 일어나지 않는 것은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게 낫죠. 여기 <천수경>에서는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이라는 말 속에 그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 다음 속령만족제희구 速令滿足諸希求 그러한 마음을 일으켜서 모든 사람들이 희구하는 것을 속히 만족하게 하소서.

모든 사람들이 희구하는 것. 어떤 희구도, 어떤 바라는 바도, 어떤 구하는 것도 다 만족하게 하는 방법은 우리가 계산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충족시켜서 만족시키는 경우도 있고, 더 이상 구하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이해시켜서, 깨닫게 해서 만족하게 하는 경우도 있죠. 불교에서는 대개 예를 들어 ‘내가 돈을 만 원 구해야 되겠다’ 면 그 만 원을 집어줘서 그 마음을 만족시키는 경우보다는,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런 경우보다는 만 원이라는 돈이 필요치 않게 되어버리는, 필요치 않게 이해시켜주는 그런 경우로 만족을 시켜주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걸 우리가 잘 이해해야 돼요. 말하자면 중생들이 불교에서 또는 부처님께 바라는 바는, 내가 바라는 바를 설정해놓고 그것만 채워지기를 원하죠.  그것 때문에 기도를 하는데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중생을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채워지면 또 그 다음, 또 그 다음..... 머지않아 또 그런 식의 욕심과 희망심이 자꾸 불어나니까 근본적으로 그것마저도 필요치 않는 깨달음을 통해서 만족시켜주는 거죠. 그런 만족은 영원한 만족이 되죠. 중생은 어떤 한계를 설정해놓고 “그것만 채워주십시오!” 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못됩니다. 그것 채우고 나면 또 그 다음 채워야 되고, 또 그 다음 채워야 되니까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비움으로서 만족을 주는 것이 부처님의 마음이라면, 중생은 채움으로서 만족을 바라는 마음이죠. 어쩌면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어요. 모두 부처님 앞에 와서 자기가 설정해 놓은 것을 채우려고 달려드는데 부처님은 그런 마음마저 없애라. 그런 마음마저 쉬어라. 놓아버려라. 방하착放下着하라. 이렇게 했을 때 진정한 만족을 누리게 되고, 그 만족은 상당히 오래 가고 어쩌면  영원할지도 모른다는 가르침입니다. 내용 알고 보면 참 힘 풀리죠. 불교 믿고 싶지 않죠. 사실은. 우리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은 영 다르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 그대로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은 중생을 위하는 마음은 뛰어나지만 중생들이 바라는 고것 가지고는 부처님 마음에 차지 않거든요. 그렇게 채워서는 부처님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인聖人의 마음으로는 그걸로 채울 수가 없죠. 중생 마음도 만족해야 되고, 성인의 마음도 만족해야 되는 길입니다.


영사멸제제죄업 永使滅除諸罪業 영원히 모든 죄업들, 모든 업장들을 멸죄하게 하여지이다. 우리 <염화실> 기도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죠. “기나긴 겁 동안에  쌓고 지은 죄 홀연히 한 생각에 없어지이다. 불꽃이 마른 풀을 태워버리듯 하나도 남김없이 없어지이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제一念頓湯盡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아주 유명한 구절이 있죠. <천수경>에서도 곧 뒤에 나옵니다. 우리의 모든 업장과 죄업이 다 소멸하여지라고 하는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천룡중성동자호 天龍衆聖同慈護 그 다음 대비주는 또는 관세음보살님은  천룡과 천신과 용들과 온갖 성인들이 함께 자비로서 보호한다.


백천삼매돈훈수 百天三昧頓熏修 모든 삼매를 여기서는 백천 삼매라고 하는데 이 대비주를 통해서 어떤 마음이든지, 우리가 하나의 마음을 쓰면 그 모든 마음 하나하나가 전부 완전무결하게 성취되는 것을 백천삼매돈훈수라고 합니다. 한 가지 마음을 성취하면 다른 것들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선정력禪定力이 뛰어난 분들은 어디든지 집중하면 그 순간 바로바로 그 문제에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래요. 그러나 선정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모든 일에 전부 산만합니다. 선정력이 뛰어난 사람은 모든 일에 집중력이 뛰어나죠. 하나의 집중력이 뛰어나면 다른 일에도 집중할 수가 있습니다. 그게 백천삼매돈훈수죠. 백 천 가지 삼매가 한꺼번에 훈수된다, 닦아진다는 말이죠. 관음대비주는 바로 그러한 능력이 있다. 이런 뜻이죠. 관음대비주를 좀 더 광의적으로 해석을 하면 부처님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죠. 그 다음 구절은 <천수경>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수지신시광명당 受持身是光明幢

수지심시신통장 受持心是神通藏


수지하는 이 몸은 광명의 깃발이요, 수지하는 이 마음은 신통의 창고이다.

불법을 수지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좁은 의미에서는 <천수경>이고, 더 좁게 말하면 <다라니>입니다. 다라니이니 천수경이니 하는 것은  부처님 마음, 불교라고 하는 전체의 의미를 뜻하는 거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는 이 몸은 곧 광명의 깃발이다. 광명은 뭡니까? 어두울 때 길을 비추고, 항해하는데 길을 밝히고, 사람이 길을 가나, 차가 길을 가나, 배가 길을 가나 빛이 없으면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불교라고 하는 이 가르침.  이것은 바로 우리 인생의 어두운 길을 지혜로써 밝게 비추는 광명의 깃발이다. 이런 뜻입니다. 불법의 이치를 제대로 공부하고 깨달아서  자기의 살림살이가 된 사람은 어디에 가도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그야말로 광명의 깃발이 되어 모든 것을 바로 이해하고 바로 해결하는 리더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광명당光明幢이라고 하는 아주 멋진 말이죠. 불교라고 해서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으면, <천수경>이라고 합시다.  <천수경>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해서 이 안의 의미를 잘 깨달아서 자기의 살림살이로 만든 사람은  어디가나 중생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어두운 삶에 아주 밝은 광명의 깃발 노릇을 하는 거죠. 그래서 항상 선두에 서서 여러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당연히 되어야 하는 거구요. 부처님 제자가 세상의 리더가 못되면 누가 되어야겠습니까? 불교를 아는 사람이 당연히 되어야 되고, 또 세상에서 앞장 선 사람은  이 불교의 이치를 알아야 돼요.


 요즘은 우리 교육이 옛날과는 달라서 내가 늘 아쉬운 것은 불교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교화하라는 뜻은 아니고, 최소한도 공자, 맹자의 가르침이라도 가지고 세상을 교화했으면, 세상 사람들을 가르쳤으면, 아니면 자녀들을 최소한도 <명심보감> 하나라도 교육을 시켜야 옳지 않겠나 하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전부  교과서가 그것으로 되어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으니. 최소한도 <명심보감>정도는 6년 과정이나 아니면 중고등학교 과정에서라도 교과서로 활용이 되면  그래도 세상이 좀 낫지 않을까?  교육시킨다고 다 사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교육을 통해서 얼마든지 사람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생각도 합니다.

여기는 우리 불자들이 <천수경>을 배워 <천수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세상을 밝히는 광명의 깃발로서 역할을 다 하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천수경의 가르침을 받아가지는 그 마음은 바로 신통의 창고다. 신통은 뭡니까? 모든 문제를 해결 다 하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온갖 신통 묘용이 갈무리되어 있는 창고와 같다. 자녀들 문제, 경제 문제, 세상 문제, 사람 관계 문제 등 어떤 문제든지 문제가 일어나면 이 <천수경>이라고 하는 아니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이 창고 속에 해결의 열쇠가 다 있다는 뜻입니다.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는 정말 멋진 말이죠.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 수지심시신통장受持心是神通藏. 아주 힘이 솟구치는 그야말로 힘의 종교임을 이런 데서 볼 수가 있습니다.


세척진로원제해 洗滌塵勞願濟海


진로를 다 세척해서, 우리들의 마음에 낀 때를 다 씻어서 고해의 바다 건너기를 원하옵니다. 그리고 초증보리방편문 超證菩提方便門


보리를 초증하는, 보리를 바로 깨닫는, 초증이라는 말은 그 말입니다.  보리를 바로 증득하는 좋은 방편문이 되어 주소서. 또는 좋은 방편문입니다. 이 <천수경>이 그렇다는 뜻이예요.

번뇌 망상을 씻어버리는, 온갖 번뇌를 버리고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길이 되기도 하고, 보리를 바로 증득하는 방편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원아칭송서귀의 願我稱誦誓歸依


원컨대 내가 지금 칭송하고. ‘정구업진언~’하며 소리 높여 목탁치고 외우고 하는 것이 칭송이죠. 칭송하면서 귀의하오니


소원종심실원만 所願從心悉圓滿


원하는 바 이 마음으로부터 모두 원만하여지이다. 이게 뭡니까? 원아소원종심실원만이야. 종천從天도 아니고, 하늘로 부터도 아니고, 종불從佛, 부처로부터도 아니고, 바로 내 마음으로부터 다 원만하여지이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성인들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들의 근기에 맞춰서 다 이야기하는 것 같다가 사이사이에서  성인들의 본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그런 거죠. 보통 사람들이 들어서 이해할 만하다가 소원종심실원만所願從心悉圓滿  그랬어요. 결국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이나 모두가 내 한 마음으로부터 발생한 것이고, 내 마음 안에 있는 것이고, 또 내 마음이 그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심실원만從心悉圓滿 이라고 했어요. 마음으로부터 다 원만하여지이다. 원하는 바가 전부 이 마음에서부터 원만하게 하여주십시오. 라는 내용이 바로 <천수경>을 열면서 제목을 일컫고, 제목을 통해서 ‘~하여주십시오’ 하는  계청의 내용이 됩니다. 그 다음에


10원 6향이라고 하는 <천수경>안의 유명한 글이 있어요. 열 가지 원과 여섯 가지 어떤 쪽으로 향하는 것. 십원十願이라고 하는 것은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 이라고 하는 건데, 별원別願이라고 해요. 별원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히  원하는 것. 이런 뜻입니다. 뒤에 가면 총원總願이라고 있죠. 사홍서원 같은 것은 전반적인 원이라면, 별원은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하면서 특별히  관세음보살님에게 원願을 발하는 내용입니다.

10원 6향이 <천수경>에서 유명한데 관세음보살님에게 열 가지를 원하고 그 원이 성취되어서 결국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가? 그게 6향으로 표현됩니다. 그 6향은 잘 아시는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아약향화탕  화탕자소멸 아약향지옥  지옥자고갈 아약향수라  악심자조복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입니다.

그러니까 도산지옥, 화탕지옥, 그냥 지옥, 아귀, 아수라, 축생. 이것이 우리 삶의 양상을,  중생들이 사는 세상을 이렇게 표현하는데 이런 세상사에서 불교가 어떻게, 무슨 역할을 해야 되는가? 이런 내용이죠. 오늘은 별원 이전까지,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의 내용은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소원종심실원만所願從心悉圓滿 이라고 하는, 원하는 바가 모두 각자의 마음으로부터  다 원만하여지이다. 원만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있어서는 안 되는 거죠. 자기 마음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자기 마음에서 원만해지는 것이지만 자기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이 이루어지도록 하는데는  방편이 필요합니다. 무엇인가 방편이 필요합니다. 경을 읽든지, 참선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하는데 관세음보살에게 기도를 해도 결국은 내 마음으로부터 원만 성취되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죠. 그러니 그런 방편을 통해서 내 마음으로부터 원만히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여기까지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천수경>강의 여기까지 하기로 하구요.


동참하신 분들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친불회 회원님들 오셨고, 법우성 불자님, 무영수님, 대원혜님, 대원성님, 선법행님, 여여성님, 묘운행님, 원행님, 수정화님, 심우행님, 무량화님, 청운화님, 청정행님, 은우님, 원일거사님, 꽃물들다님, 여울님, 백련화님, 정안행님, 마니주님, 청정화님, 한홍님, 도류님, 묘하님, 대월혜님, 해바라기님, 맑은날님, 환희지님, 여여성님, 은하님, 불퇴지님, 만월님, 발심화님, 돌부리님, 항상님, 무아심님, 제법실상님, 우담화님, 묘현님, 현우님, 자혜성님, 정각행님, 은빛물결스님, 청솔님, 여연행님, 미륵골님, 무상행님, 법성화님, 날마다좋은날님, 로스트님, 대덕행님,  은사님, 고운님, 있는그대로님, 관음성님, 관음도님, 수경심님, 바람향기님, 법일님, 진성심님, 초연화님, 캔들댄스님, 만덕심님, 원심행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법석을 빛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출처 : 염화실 다음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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