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2013.02.04 14:42

무비스님 천수경 강의 법문녹취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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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오늘 1월 9일 염화실 인터넷법문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南無大悲觀世音 원아속지일체법 (願我速知一切法)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지혜안 (願我早得智慧眼)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도일체중 (願我速度一切衆)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선방편 (願我早得善方便)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승반야선 (願我速乘般若船)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월고해 (願我早得越苦海)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득계정도 (願我速得戒定道)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등원적산 (願我早登圓寂山)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회무위사 (願我速會無爲舍)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동법성신 (願我早同法性身)


어제 이어서 천수경 오늘은 별원(別願)에 대해서 말씀 드릴까합니다.

별원과 16향이 천수경에서 중요시하는 그런 내용이죠.

총원(總願)이 있고 별원이 있다는 그런말씀을 드렸습니다..

총원은 대개 불자로써 반드시 바라는바 원하는바 이것이 공통적인 원이라면 별원은 오로지 관세음보살님께만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별원은 특별한 원이다 이것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知一切法)

대자대대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저희들이 속히 일체의 가르침을 모든가르침을 다 알기를 원하옵니다. 원컨대 모든 가르침을 빨리 알게되기를 원하나이다..

불교에 귀으하면 모든 가르침을 아는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일체법에서 모든존재의 이법을 생각할수도 있음니다마는 그런 깊은의미보다는 천수경에 맞는 그런 수준으로 우리가 이해해야 되겠죠. 불교에 귀의하고 부처님을 좋아하고 불자다 절에간다 뭐 이것이 모두 같은뜻이 되겠는데 육도 스님이 맨처음 절에 갔을때

'그대가 무엇하러 왔는가' 이렇게 물었을때

"부처가 되기위해서 왔습니다. 성불하기위해서 왔습니다" 이런말을 했습니다.

상당히 차원 높은 이야기죠. 그야말로 육조스님만이 할법한 그런 대답이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불교를 알기위해서 왔습니다. 이것이 바람직하죠

불교를 아는데는 물론 부처님을 알아야되고, 부처님가르침을 알아야되고, 부처님의 승단을 부처님을 따르는 교단도 알아야되고, 여러 가지 알아야하는것이 많습니다.

알지못하고 자기나름대로의 선입견만 가지고 절에 다니는분들이 의외로많습니다. 법사스님들이 말씀하는것을 들을려고 하지않고 자기나름대로 이미 불교는 이런것이다. 설정해놓고 절에 다닙니다. 그래서 시중에서 훌륭한 포교사가 뭐라하더라도 그건 포교사가 할 일이고, 스님의 설법은 스님의 일이고 '나는 내가 믿는 불교는 따로 있다' 그렇게 자기불교를 들고 와서 하는 그런 참 위험한일이죠. 모든일에는 역사가 있고 그만치 있는만치 알아야 할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것은 단순한것이 아니죠. 한두마디 누구한테 주워들은거 가지고 불교를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체법(一切法)을 빨리 알기를 원하옵니다.' 라고하는 이런 원이 있습니다.

관음기도 좋아요. 좋은일이죠. 가서 자기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일이 좋은일이긴 합니다마는 천수경대로라면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고 받드는 이유도 내가 일체 가르침을 빨리 알기 소원이기 때문에 빨리 알기를 원한다.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로써는 눈여겨 봐야할 내용이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지혜안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智慧眼)

대자대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원컨대 저희들이 지혜의 눈이 빨리 얻기를 바라옵니다.

일체법을 알아야 지혜의 눈을 얻죠. 알지못하고 지혜를 얻을수가 없죠 지혜눈을 얻어야 인생을 제대로 살수가 있습니다 지혜라고 하는것은 인생과 세상을 꿰뚫어보는 혜안(慧眼)이죠.

혜안을 얻어야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을 한껏 누릴수가 있고 또 세상에 취하해서 사는데 제데로 불수가 있는거죠 그래서 우리가 관음기도를 하는것도 지혜의 눈을 빨리 얻기를 원하는 것이다. 천수경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마음에 새겨야죠.

관음전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시는분들은 반드시 천수경을 외우고 하죠. 외우고 하면 천수경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가르침들 이걸 우리가 마음에 새겨서 기도를 해야 좋은기도 바른기도가 되지 않을까. 이런생각을 늘 해봅니다.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도일체중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度一切衆)

지혜(智慧)의 눈을 얻었으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저희들이 일체중생을 빨리 제도하기를 원하옵니다.

여기는 제도한다는게  어느 수준의 제도를 뜻하느냐 이렇게 꼭 집어서 말씀드리기는 그렇습니다마는 어쨌든 관세음보살님이 누구신지, 불교가 무엇인지, 천수경이 무엇인지 이런것들을 잘 가르쳐서 그 가르침의 바른길을 이해하고 불교를 믿는것, 이것만으로도 일체중생들을 제도하는길이다. 이렇게 볼수가 있습니다.

물론 궁극에가서는 생사해탈을 하고 그 해탈을 모든 사람과 공히 나누는것. 각악 각학 각핵원만 아렇게 나아가야 이렇게 나아가야 완전한 제도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우리가 그렇게까지 욕심은 부리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부처님앞에 귀의하게하고, 부처님가르침을 통해서 인생을 좀더 가치있게 보람되게 유익하게 바르게 살도록하는것 이것이 일단은 중생제도라고 봐야 되겠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선방편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善方便)

대자대비하신 관세음께 귀하며 받드오며, 휼륭한 방편(方便)을 빨리 얻기를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좋은 방편을 얻어야 중생제도도 할 수가 있고,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모두 성취됩니다. 어떤 일이든지 그래요 좋은 방편을 얻어야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방법도 되죠.

좋은 방법을 얻어야 그 일을 효과적으로, 빠른시간안에, 정상적으로 성취 시킬수가 있다. 특히 중생제도를 한다 하는것은 정말 방편이 필요합니다. 그방편으로써 여러 가지가 있죠.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좋은 말을 한다든지, 같이 놀아준다든지, 같은 일을 해준다든지, 등등.. 사습법이라고해서 중생제도의 방법을 여러 가지로 해놨는데 그것만 가지고 꼭 되는것은 아니죠. 좋은 방편이라고 하는것은 ‘그사람에게 딱맞는것' 그것이 좋은 방편이죠.

그래서 꼬집어서 무엇이다 이렇게 할 수가 없는 거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해서 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선방편이 안되는 거죠.

정말 마음에 우러나는 위로의 말씀 그것도 큰방편이 될 수가 있고 여가가지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편 이게 좋은 방편이 되겠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승반야선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乘般若船)

그런 방편을 얻어서 반야(般若)의 배를 빨리 타기를 원하옵니다. 그렇게 될 수가 있는데 반야선(般若船)라고 하는것은 저승을 가는데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탄다, 이런 의미에서 저승에서 해탈(解脫)의 길, 극락(極樂)의 길로 가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극락의 길을 가는데는 지혜의 물로 가겠습니까? 지혜의 배로 갈수밖에 없습니다. 지혜가 없으면 갈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지혜가 제대로 우리한테 갖추어져 있다면 그대로 그 순간 그대로 극락입니다.

이런 의미를 담고 49재를 할 때 보면 반야용선을 그대로 상징적으로 종이배를 만들어서 법당에 걸어놓고 온갖 끈을 달고 해서 영가가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세계로 간 그런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죠. 그것은 그런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하는것이 아니라 법사스님의 주옥같은 염불과 독경과 설법으로 인해서 지혜를 얻고 그러므로써 깨달음의 안목을 갖출때 그순간 그게 육신을 가졌든지 육신을 버렸든지 이승이든 저승이든 어떤상황이던 그는 이미 극락을 누리고 있는것이다. 이렇게 볼수가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이 재지낼때 반야용선을 달아놓는 의미도 잘알고 해야되고 그런것들을 진행하는 스님들은 또 그것을 인연으로해서 좋은 가르침을 전해져야 하지않을까 이런생각도 해봅니다.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월고해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越苦海)

대자대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고해를 빨리 건너가기를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모두가 고해를 건너가기를 원하는것, 이것은 불교의 목적이 ‘이고득락(移苦得樂) 이렇게도 표현하지 않습니까.

고통의 바다를 전부 건너간다. 그래서 즐거움을 얻는다.  이것이 불교의 목적이라고 그러는데 여기보면 순서가 반야용선을 타고 고통의 바다를 건너간다 이렇게 이어져 있죠. 자세히보면 연결이 매끄럽게 되는 데도 있고 조끔 어색한데고 있고 그러나 쭈욱 연결이 됩니다.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득계정도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得戒定道)

대자대비하신 관세음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원컨대 저희들이 계(戒)와 정(定)의 길을 빨리 얻기를 바라옵니다.

계정도 또는 계족도 옛날책에는 이렇게도 되어 있죠. 계정의 길이죠. 계정의 길이라면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 오분향(五分香)의 길이다. 이렇게 볼수가 있습니다.

요건 염불이다 보니까 시험식을 통해서 생략이 됐습니다. 계정 하면 계정혜 삼학이며, 삼학을 통해서 해탈을 하며 그 해탈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공유할수 있는 해탈지견의 길로 나아가는것. 이것이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는 궁극의 목적이다. 관세음보살님께 이러한것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를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음보살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많은데, 여기에 천수경에서 바라는 원이 얼마나 해당이 되는지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등원적산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願寂山)

계정혜 길을 밟아서 가다보면 원적산(願寂山) 이란곳에 올라간다. 이렇게 연결이 되어 있네요.

원컨대 저희들이 원적이라는 산에 빨리 오르게 해주십시오.

원적이라 하는 것은 스님들이 열반에 드셨을 때를 원적이라 표현도 합니다만은 그것은 온갖 번뇌가 완전무결하게 완전히 사라졌다. 멸진되었다 그래서 들고 일어나고 시끄럽게 흔들리던 그런 모든 상황들이 고요해졌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죽음보다 더 그런 것을 나타내기 쉬운 것은 없죠.

아무리 시시비비가 많고 잘잘못이 많다 하더라도 죽어버리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게 끝이에요. 그야말로 원적입니다. 어떤 시시비비가 일어나더라도 돌아가신 분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남아있는 사람들의 일이라 돌아가신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거죠.

우리가 가끔 그런 입장을 나의 입장으로 돌이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이 텅 비어지고 홀가분해요. 비록 순간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가슴에 깊이 새겨지고 또 후대에 자기 살림살이가 된다면 정말 살아 있어도 홀가분하게 깃털처럼 가볍게 인생을 살수가 있고, 그때쯤 되면 설사 죽음을 맞이한다하더라도 죽음이라 하는 일이 그야말로 여행 갔던 사람이 고향에 돌아오는 것 같이 정말 안도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그런 경지가 될 것입니다.

도가 높으신 이들은 대개 죽음을 그렇게 맞이하죠. 그랬을 때 죽음의 문제는 두려움의 문제가 아닙니다.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라면 죽음도 아니죠. 우리가 말하는 죽음의 의미는 그 사람에게는 아니죠. 근래에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열반에 드는 것을 봤습니다.

특히 금년에 많은 분들을 보았는데 그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정말 어떤 경전을 한권 읽는 것보다 더 그러한 문제를 깊이 사유하는 것이 더 가슴에 와 닿고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원적이라는 것은 사실 그런 의미는 아니죠.  이야기가 조금 옆길로 새서 그런 이야기가 발전이 되었습니다마는 여기는 그야말로 이렇게 씩씩하고, 강하고, 아주 힘차게, 살아있으면서 "모든 부질없는 생각과 행동과 말들이 완전무결하게 원만히 고요해진 그런 마음상태" 이걸 원적이라 합니다.

계 정 혜 해탈 해탈지견향이 완전무결하게 나의 살림살이가 됐다면 그 사람이 무슨 망상이 있고 무슨 시끄러운 것이 있겠습니까..그게 원적산이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회무위사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會無爲舍)

원적산에 가면 집이 한 채 있어요. 그 집 이름이 무위사(無爲舍)야. 마음이 원적이 되었다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을 해도, 아무리 활동을 많이 하고, 정말 열심히 원력을 가지고 살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습니다. 무위죠. 함이 없는 일입니다. 그 집에서는 집이 한 채 꼭 있다는 이야기는 되어있으나, 그 말은 상징적인 이야기고요. 정말 모든 번뇌 망상이 다 사라진 원적의 입장이라면 그의 삶은 일체가 다 해독하는 것이 없는, 하는것이 없이, 열심히 하는 그런 삶이 되겠습니다.

영가증도가(永嘉證道歌) 첫 문절에 '절학무위한도인(絶學無爲閒道人)' 그러죠. 배울것 다배우고 더 이상 더 배울것이 없고, 할것 다하고 더 이상 할것이 없는, 많이 배워서 또 많이 해서 배울것이 없다. 할것이 없다 하는것이 아니고. 마음으로부터 어떤 흔적도 남아 있는것이 아니죠.

배우는것이 없고, 배우는것 없이 배우고, 무엇을해도, 어떤행위를 해도 그행위는 하는것없이 하고 하되 또 하는것이 없는 그런 마음의 흔적과 어떤 미련과 또 마음의 자취가 전혀없는 그런 행위입니다. 이걸 무위니 절약이니 무악이니 이런 표현을 하는거죠.

뭐 손발 다 묶고, 눈귀 다 막고, 아무것도 목석(木石)처럼 하지 않는 을 뜻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런건 외도들이나 생각하는 것이고 정상적인 불법의 소견으로는 정말 더 열심히 불교를 알면 알수록 더 활발하게 더 열심히 더 씩씩하게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이 소중한 진리의 가르침을 전해주기위해서 열심히 사는것, 다른 사람보다도 훨씬 더 열심히 사는 그런 삶을 표방합니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살되 마음으로부터 어떤 흔적과 자취를 남기지 않고 하는것 함이 없는상태 함이없는 상태에서 열심히 하는것 말은 쉽습니다만은 아주 어려운 일이죠 이러한 삶을 이뤄가고 있는 사람이 사는곳이 무위사 무위의 집입니다.

거기에 우리 모두 같이 저희들이 빨리 모이기를 원하옵니다.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동법성신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同法性身)

저희들이 빨리 법성신(法性身)과 하나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법성신, 진리(眞理)의 몸이죠. 우리 모두가 궁극에 가서는 진리의 몸이 되어 지이다. 이것이 관음보살님께 기도하는 발원(發願)이다. 이렇게 말씀 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조금 연결해서 살펴보면

처음에 모든 가르침을 빨리 알고, 가르침을 알아서는 지혜의 눈을 얻고, 지혜의 눈을 얻은 뒤에는 일체중생들을 제도하고 일체중생들을 제도해서는 또 좋은 방편을 얻고 그래서 그방편을 통해서 반야선을 타고 반야선을 타고는 고해를 건너가고 고해를 건너가서는 길이하나 나오는데 그것은 계 정 혜 해탈 해탈지견향의 길이더라.

그길을 따라서 쭉 가다보면 산이 하나있는데 그산은 원적산이더라. 그원적산에 올라가니 집이 한 채 있더라 그집은 무위사더라 무위사에 들어가서는 무엇을 하느냐 하면은 우리모두가 진리의 몸으로 살아가자 다같이 진리의 몸이 되어 주십시오. 그대로 홀연히 진리로 사는것, 그게 어디 강을 건너고 산에오르고 모두 무슨 통지문을 보고 쭉모여드는 그런 형국이 아니고 모두가 각자 앉은 그 자리에서 진리를 체득했을때 그것을 원아조동법성신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0원 이라고 하는것은 다른말로 별원이라고 표현하는데 천수경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6향(6向)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我若向刀山 刀山自?折)

아약향화탕 화탕자고갈 (我若向火湯 火湯自枯渴)

아약향지옥 지옥자소멸 (我若向地獄 地獄自消滅)

아약향아귀 아귀자포만 (我若向餓鬼 餓鬼自飽滿)

아약향수라 악심자조복 (我若向修羅 惡心自調伏)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 (我若向畜生 自得大智慧)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我若向刀山 刀山自?折)

법성신이 되었을때,다시 말해서 불교가 나에게 체학 내몸이 되었을때 내 살림살이가 되었을때 그럴때 그효과가 어떻게 되어야 되는가..쉽게 표현하면 불교를 믿고 불교에 몸담고 아주 불자로써 신행 생활을 열심히 했다 그랬을때 뭔가 효과가 나타나야 되는거예요.

이건 그 효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앞에 원아조동법성신까지는 관음보살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그런 수행을 표현했다면 그수행의 결과가 이러한 결과로 나타나야된다 여기는 다른 수행을 이야기하지 않고 천수경이다보니 관음사상을 진심으로해서 하는것이고 관세음보살님께 발원하고 기도하는 것을 중심으로해서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별원에서 나무대비관세음이라고 쭉 나오고 앞에서도 계수관음대비주라고 해서 관세음보살님을 찬탄하고 발원하고 하는 그런 것으로 되어 있죠

그렇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관세음보살님에대한 신앙 관음기도 이것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거의 한국불교 신도들의 80%이상이 관음신앙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무장은 잘되어 있어요. 그렇게 해서 그다음에 나타나야 할 공효라고 하는데 공부의 효과가 바로 6향 이죠, 어떠해야 되는가 이걸 가지고 공부의 점검 하는 것으로 봐도 좋습니다.

내 불교 수행 관음기도 이런 모든 것들이 과연 여기에 이런효과에 어느정도 상행이 되는가


내가 만약 칼산에 갔을때 칼산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칼산이 (자최절) 저절로 꺽어지고 .

불교를 믿고 관음기도를 많이 했다 수행을 많이 했다 이랬을때 칼산을 만나면,우리는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수한 칼산을 만납니다. 지장전에나 어떤 그림에 보면 그야말로 산에 칼이 삐쭉삐쭉 서있는 그림도 볼수 있지만 그건 상징적인것이고 사실 우리들은 이세상을 산다고 하는것이 거의 칼산을 비집고 다니는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가까운사람 먼사람 일체 할것없이 전부가 삐끗하면 칼산에 찔리고 칼에 상처 입고 우리들 자신도 잘못하면 그 칼로써 상처주고 심한경우에는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그런 칼을 들고 설치고 있습니다.

그게 칼산입니다. 얼마나 말한마디 악한말을 하면 상대의 가슴에 칼로 오려내는듯한 충격을 줍니까. 그런 예들이 많거든요. 세상이 전부 사실은 칼산입니다. 정말 잘살피고 신중히 하고 조심해서 살아야하는 그런곳이고 말할때도 그렇고 행동할때도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불자 불교를 공부한 사람들은 관음기도를 많이 한사람은 그칼산이 저절로 ?L여 진다. 나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죽일놈이라고 말이 나올 그순간에 우리는 뭐라고 나갑니까. '관세음보살'하고 이렇게 관세음보살님이 나가지 않습니까..칼이 나가고 화살이 나가고 총알이 나가야 할 그 순간에 관세음보살님이 나가고 연꽃이 나가는거죠.

이게 습관화 되어야 합니다. 물론 불교를 깊이 깨달아 가지고 해탈의 경지에서는 다른 표현이 필요하겠습니다마는 우리수준에서 얘기하자면 도산자최절 이라는거는 바른 이런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불교의 이치를 잘알면 나에게서 나아가야할 칼산이 저절로 꺽어지고 다른사람이 나를 향해서 날려오는 그런 칼들이 저절로 꺽여지는 나에게 와서는  아무 쓸데없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그러한 마음 씀씀이가 되어야 합니다.


아약향화탕 화탕자고갈 (我若向火湯 火湯自枯渴)

내가 만약에 화탕지옥에 향했을때, 화탕이 뭡니까. 분노의 불길을 화탕이라고 합니다.

펄펄끓는거죠. 우리 마음에 분노가 일어날 때 얼마나 고통이 심합니까 그걸 화탕지옥이라 합니다. 그사람을 상처주는 그런일들을 도산지옥이라고 하고 화탕지옥은 매일 매일 겪는 그런거죠 '해의빛도 달의 빛도 비치지 않는 그너머에 화탕지옥이 있다 거기에는 18개의 지옥이 있으니' 이건 무엇을 말하냐하면은

우리중생들의 마음이 캄캄할때를 뜻하는것입니다.

햇빛도 달빛도 비취지 않는 어두운곳이라 하는 말이 정말 그 어떤 마음에 지혜의 빛이 전혀 비치지 못할때를 뜻하는거죠.

그러면은 전부 분노가 일어나고 사사건건 살아가는것이 마음에 안들고,마음에 안들면 화나고 전부 그런거죠 우리마음 쓰는데 따라서 그렇게 됩니다.

불교를 공부하고 관음기도를 열심히하고 불교를 잘 믿어서 그런상황에서 분노꺼리, 화내고 울화통이 터질 그런상황에서도 우리 불자들은 화탕자고갈 화탕지옥이 저절로 고갈되어버린다. 분노의 불길들이 저절로 다 말라버린다.

그게 불교를 믿는 효과죠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는 효과가 되어야 되는거고 수행하는 효과가 되어야 하고 참선하는 효과가 되어야 됩니다. 이게 안되면 참선을 하느니, 기도를 하느니, 경을 봐야 되느니, 이건 저부터라도 마찬가지예요.

누구든지 여기에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 벗어나서 딴소리하고 도덕이 있느니 없느니 말을 함부로해서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그런이들은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고,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가 없는거죠


아약향지옥 지옥자소멸 (我若向地獄 地獄自消滅)

내가 만약 지옥을 향했을때 도산과 분노의 불길로써 분노가 한번 일어나면 그분노가 그냥 사그러드는것이 아니라 그 후속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 납니까. 그런 일들이 자질구레한 많은 고통들이 따릅니다. 일체고통들이 따르는 지옥이다. 그런 표현을 했어요 도산도 지옥이고 화탕도 지옥입니다마는 그 외에 지옥들을 '지옥' 이렇게 간편하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만약에 일체 다른고통스런 지옥들을 향했을때 지옥같은 고통들이 저절로 소멸하여지이다.

소멸하여지이다 이렇게 원하는것도 아니고 말하자면 나무대비관세음해서 궁극적으로 원아조동법성신까지 됐을때 저절로 이런 공부의 효과, 수행의 효과 기도의 효과 불교를 공부한 효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 이런  말이예요.


아약향아귀 아귀자포만 (我若向餓鬼 餓鬼自飽滿)

아귀는 뭡니까. 주린귀신이라고 했습니다 주린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저도 몰라요.

그런데 이세상사람들이 알고 보면 전부 주린귀신들입니다.

각자 주린곳이 있어요. 돈에 주린사람이 제일 많고 명예에 주린 사람이 많고, 금년에 교계에나 바깥세상에나 장들을 뽑는다고 얼마나 지금 세상이 시끄럽습니까. 그게 다 주린 귀신들이예요 장이 되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 종회의원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 종정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 이게 전부 아귀입니다. 거기에 헐떡거리는 거죠. 허덕이는 것입니다. 그런것들의 상황이 있을때 아귀같은 주린마음 헐떡거리는 마음이 저절로 만족하여지이다. 포만이라고 하는것은 주린배가 가득히 배부르는 그런 느낌을 포만이라고 그러죠. 지족 만족할줄을 아는 현재상태에서 만족할줄을 아는 그런 상태를 넓게 이야기합니다. 또 보통사람들은 평소에 나오듯이 안해요 그런데 길을 가다가 백화점앞을 지나가다가 창가에 아주근사한 시계나 옷이나 여러 가지 사람의 눈을 유혹할만한 물건들을 진열해 놓으면 지나가다가 저절로 멈춰서요. 바쁜 볼일이 있는데도 저절로 눈길이 갑니다.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상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요. 이게 벌써 자기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던 아귀성 아귀적인 속성이 발동을 한것입니다.

그런예가 많죠 사람들은 부분부분마다 각각 성향에 따라서, 자기 신분에 따라서, 자기 생활양상에 따라서 자기 수준에 따라서 아귀성이  다 달라요.

어떤 사람들은 이성에 대한 아귀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 명예에 대해서 아귀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 돈에 대해서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 각각 분야별로 그런 아귀적인 속성이 다 있습니다. 그게 다 헐떡거리는 마음이죠. 그런 관계에 대해서 불교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 관음기도를 제대로 한사람, 참선을 제대로 한사람은 아귀적인 속성이 저절로 포만 만족한것을 알아지이다. 알아야 한다. 저절로 포만 해진다. 이런것입니다.


아약향수라 악심자조복 (我若向修羅 惡心自調伏)

아수라도 할얘기가 많습니다마는 실제로 아수라가 있는지는 몰라요. 본적도 없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마는 인간에게서 아귀나 아수라나 많이 봅니다,

수없이 보고 스스로도 느끼는 것이 아귀나 아수라죠.

시시비비 그런마음 싸움 좋아하고, 시비걸기를 좋아하고, 헐뜯기를 좋아하고, 그저 남이 안되는것을 즐겨하고, 또 남이 잘되는것을 보면 시기 질투 헤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일어납니다. 늘 좋지않은 그런 정보를 갔다가 인터넷에 띄어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언짢게 만든다던지 그런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사람들의 마음이 아수라의 속성입니다.

시비하고 싸움하고 그런 성격을 가진사람들이 있죠.

그런데 불교를 공부하는사람, 불교를 믿는 사람, 천수경에서는 관음기도를 잘하는 사람은 저절로 그런 악한 마음이 조복되어 진다. 이런 뜻입니다.

내가 아수라를 향했을때 악한마음이 저절로 조복되어진다.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 (我若向畜生 自得大智慧)

여기서 축생이라고 했지만은 소나 돼지나 말이나 토끼나 원숭이나 그런 축생을 뜻하는게 아닙니다. 인간들의 축생적인 성향을 축생이라 이렇게 표현했지요.

공연히 잘 있다가 문득 축생의 성질이 활동을 하지요, 이건 어리석어서 그래요.

그리고 그 뒤에 보면은 대지혜를 얻어지다. 이렇게 했습니다.

불교가 어렵다는 것은 이런 상징성에 대한 바른 올바른이해가 어려워요.

예를 들어서 내가 만약 축생이 되었을때 소나 돼지나 이런 것들이 지혜를 얻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혜를 얻으면 고기가 맛이 더 있나요,

자기 혼자 먹는 것을 찾아 먹을 줄 아나요, 안 그래요 축생은 축생 다워야 하죠.

축생으로 표현 했지만 축생같은 인간을 말합니다. 축생적인 인간을 말하는 거죠.

그런 축생적인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혜가 없다는 거죠, 지혜가 없으면 축생이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축생적인 그런 성향이 발동 할 수가있다.

그럴때 불교 공부를 많이 한 사람 관음기도를 잘한사람은 참선을 잘 한 사람은

"자득대지혜" 큰 지혜를 얻게 된다. 이게 천수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바로 눈 앞에 내 자신이 도산지옥에 떨어지고 화탕지옥에 떨어지고 또 일체의 여러 고통이 떨어지고 아귀가 되기도 하고 아수라가 되기도 하고 축생이 되기도 하는 이런 시급한 문제들을 제쳐놓고 무슨 다른 어떤 다른 축생들을 아수라를 이야기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것들을 잘 이해하는, 경전을 잘 이해하는 열쇠가 되지 않겠나. 저는 그렇게 봅니다.

천수경에서  눈여겨 봐야할 그런 대목인데 관세음보살에게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고 발원하고 했을때 이와 같은 여섯가지 효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

또 그렇지 못한 저희들은 빨리 나타나야 되겠지요. 나타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불교공부하는 마음이고 또 이런 효과가 나타나면 불교 믿어서 큰이익을 얻은거죠.  큰이익을 본것이고 불교를 공부한 보람이 있다 그런것이죠

오늘 천수경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늘도 많은분들이 동참하셨습니다.

일흔 다섯분이 창에 계시는데 81명이 들어와계시고 그래요

근래에 염화실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길상화^^_()()()_
출처 : 염화실 다음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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