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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鏡錄 20강 (覺非覺非覺) - ⑦

 

여러 가지 비교대조를 안 한다면 = 차별을 두지 않는다면 사실은 본래미운 것도 없고,

예쁜 것도 없는 겁니다. 그것이 원융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一念萬年은 바로 잡념에서 1념으로 “이 뭣꼬ㆍ이 뭣꼬ㆍ이 뭣꼬ㆍ이 뭣꼬”

“이 뭣꼬ㆍ이 뭣꼬”이것을 할 바에는 차라리 “나무아미타불ㆍ나무아미타불ㆍ나무아미타불”


그것도 요령껏 잘하는 사람은, “나무아미타불” 하면서, 끊겨서 또 하고ㆍ끊겨서

또 하고 자꾸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잘하는 사람은,

요령이 있는 사람은 끊겨서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무아미타불” 아까도 “나무아미타불”이고,


지금도 “나무아미타불”이고 두 번ㆍ세 번ㆍ열 번ㆍ

100번ㆍ1000번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그냥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생멸심을 불생멸로 바꿉니다.


즉 말하면 ‘변화 시킨다.’ 말입니다.

그렇게 공부한 사람은 진짜배기로 관세음보살 耳根圓通이나 똑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좀 어렵지요. 어려우니까ㆍ안 되니까 화두를 드는데요.


화두를 또 들고ㆍ또 들고 여러 번 들라고 하지요.

그러나 그 방법이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이~~~~~~~ 뭣꼬”는 아직도 시작하려면 멀었습니다.

“이~~~~~~~”하면서 그 “이”가 24시간ㆍ28시간ㆍ48시간ㆍ58시간 쭉~~가도 됩니다.

萬年동안 그렇게 가면됩니다.


“뭣꼬” 찾지 말고 그냥 “뭣꼬”는 그 다음ㆍ다음에 두고,

“이”만 그냥 쭉~~~~~~~~~~~~~~~나갑니다. 그러면 一念萬年이 쉽게 됩니다.

그렇게 익혀보면 그것도 가능합니다. “뭣꼬”를 찾을 것 뭐가 있습니까?

“이”로 그냥 계~~~~~~~~~속 나갑니다.

“이 뭣꼬ㆍ뭣꼬ㆍ뭣꼬” ←이렇게 하지 말고요.

 

그래서 조사들이 화두를 지시하는 것이 제대로 똑바로 지시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敎도 잘 하려면 禪理(선리)에 밝아야 되고,

참선도 제대로 통하려면 부처님의 교리도 막힘없이 잘 알아야 됩니다.


禪과 敎를 둘로 보지 말고, 선과 교를 定慧雙修(정혜쌍수)하듯이 둘 다,

다 이렇게 하면, 그래서...


宗鏡錄 20강 (覺非覺非覺) - ⑧

 

원융은 法性圓融! 법성게에서 원융을 많이 말하지요?

圓融의 반대말이 화엄경에 行布(행포)입니다.

行布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十信ㆍ十住ㆍ十行ㆍ十回向. 10바라밀이라든지,

6도만행이 전부 다 行布입니다.


그런데 불교 사전에 발음을 “항포”라고 한다고요.

저는 “항포”라고 읽지 않고, 발음을 “행포”라고 합니다.


원래 萬行分布(만행분포) ←이 말에서 나왔거든요.

行 = 萬行이고, 布 = 分布입니다. 萬行分布를 줄여서 行布라고 한 겁니다.

그러니까 발음을 “행포” 라고하지, 왜 “항포”라고 합니까?


항포 라고 하는 것은 行列(항열) 항자로 보는 것이지요.

이름 지을 때 항열 따르지요?

그 항열은 기러기가 날아갈 때 똑 같이 줄지어서 =

列지어서 가는 것이 항열입니다.

요즘은 “서열”이라고 하지요? 서열이 바로 항열입니다.

 

행포문이라고 하는 것은 평등속의 차별이고,

원융은 차별이지만 차별을 떠난 평등의 원리를 “원융”이라 합니다.

 

無名無相絶一切(무명무상절일체)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어서 일체를 다 초월했으니까

그것이 원융의 도리를 제대로 말한 것이지요.

그러한 절대적인 진리는 그 유명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원리를 개발했잖아요.


석가모니는 벌써 3000년 전에 상대성도...

상대성은 사실은 일반인도 누구든지 다 알고 있습니다.

“좋다ㆍ나쁘다.” 그것이 상대성이거든요.

높고ㆍ낮고 상대성이고, 너와ㆍ나 ←이것이 상대적인 상대성입니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것은 상대적인 그런 원리에서 모든 것을 초월한,

그래서 여러 가지가 아니고,

여러 가지가 본래 하나인 그런 원리를 말할 적에 절대적이라고 합니다.

 

저는 제가 말한 것은 이런 것이 있습니다.

보통 과학자나 철학자나 만유를 논할 때,

多元論(다원론)을 말하지요. 주역에서도 음ㆍ양ㆍ수ㆍ화ㆍ금ㆍ목ㆍ토.

또 건괘ㆍ곤괘ㆍ건감간진손이곤태 ←이렇게 여러 개가, 8괘가 나오지요?


만법이 나오는 그런 것을 논할 때는 “多元論”이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多元論이 더 들어가면, 통일 원리로 들어가면 2원론이 됩니다.

좋고ㆍ나쁜 것 = 음과 양뿐입니다.


그러니까 다원론이나 2원론은 상대성원리입니다.

다원론ㆍ2원론보다 더 깊이 본체로 들어가는 것은 1원론입니다.

 

  다원론ㆍ2원론ㆍ1원론 ←이것은 사회적으로 모든

과학자나 철학자나 물리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말하는데요.

저는 여기다가 한 가지 더 붙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가장 최고가 超元論(초원론)입니다.


超元論이라는 말은 안 씁니다.

1원론ㆍ다원론 또는 2원론을... 불교에서는

1원론을 제일 많이 말하고, 또 최 상승 법에서는 超元論을 말하지요.

 

여기서 無名無相絶一切 하면 1원론이지만,

사실은 부처님의 본뜻은 超元論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까지도 떠나야 되지요.


그래서 옛날 조사들이 무심의 경지가 도를 닦는

차원에서 무심이 되면 공부가 굉장히 아주 잘 된 겁니다.

그런데 조사들이 그런 말씀까지 해요.


宗鏡錄 20강 (覺非覺非覺) - ⑨

 

 莫把無心云是道(막파무심운시도)하라.

무심을 가지고 도라고 말하지 말라.

無心이 是道! 무심의 경지에 오르면 진짜 ‘도를 터득했다.’라고 그렇게 보는데요.

무심까지도 이렇게 여기서는 낮추어서 말한 겁니다.


莫把無心云是道하라. 무심을 잡아서 무심이 도라고 말하지 말라.


無心도 猶隔一重關(무심유격일중관)이라.

무심이 절대 1원론에 간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것도 아직은 공부가 덜된 겁니다.

무심 되어서 무심 되었다고 자랑하다가 납작코가 되는 것이지요.


無心도 猶隔一重關이라.

아직도 ‘그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말입니다.

무심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무심도 아직은 공부가 덜 되어서

一重關 = 한 겹의 관문을 또 통과해야 된다.’ 말입니다.


重 ←2중ㆍ3중할 때 겹 중자입니다.

한 겹의 관문이라는 것은 막혀 있잖아요.

그 관문을 통과해야 = 조사관을 뚫어내야 되거든요.

關 ←조사관문이라는 관자입니다.


그래서 한 겹의 관문이 오히려 막혀 있으니까

무심도 공부가 덜 됐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莫把無心云是道하라. 無心도 猶隔一重關이라.

이것은 超元論을 말하는 것이지요.

 

超元論입장에서 무심까지도 점수를 막 안주는 겁니다.

무심이 되어도 아직까지 불합격입니다.

그런 무심에 주저앉고 무심을 최고로 여겨서 “내노라.” 하면 안 되거든요.


그러면 我相도 있을 수 있고,

衆生相도 있을 수 있잖아요.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까지 다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까지 타파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경지는

 

證智所知非餘境(증지소지비여경)

‘증득한 지혜로 알바요 그 밖의 여타의 경지는 아니다.’ 말입니다.

부처님처럼 깨달아서 완전히 圓成實性(원성실성)으로

四智보리를 성취하는 것이 證智입니다.


묘관찰지ㆍ성소작지ㆍ평등성지ㆍ대원경지!

이렇게 성불의 ??대를 증득했다고, 信ㆍ解ㆍ行ㆍ證할 때 證이 마지막이지요.


‘증득한 지혜로, 그 이름과 상이 없고 일체가

끊어진 도리! 그 법성을 證智로 알 수가 있고, 그 밖의 경계는 아니다.

분별ㆍ차별심, 보살ㆍ성문ㆍ연각,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들은

모른다.’ 이 말입니다. 오직 부처님만이 압니다. 법화경에,

오직 부처님만이 알고, 너 사리불과 같은 사람이 수 천만 억의

항하 모래 수 같이 많이 있어도 모른다. 라고 해 버렸지요.

그때 법화경에서 사리불은 형편없었지요.


보통 때는 사리불이 “지혜제일 사리불”해서,

부처님 다음가는... 사리불이 오래 살았으면

마하가섭한테 전통이 안 갈 것인데...

사리불하고 목건련이 첫째인데요.


그 분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가섭ㆍ아란이 부처님법장을 전수받게 되었지요.

 

 眞性甚深極微妙(진성심심극미묘) 진성이나 법성이나 같은 말입니다.

진성은 매우 깊어서 극히 미묘하다.

말 할 수가 없이 아주 심오하고 신비하고 해서...


微妙라는 것은 ‘불가사의’를 보통 微妙라고합니다.

생각할 수도 없고, 말 할 수도 없이 “아주 미묘하다. 미묘 난사라.”

‘생각 할 수도 없다.’ 말입니다. 그래서

 

不守自性隨緣成(불수자성수연성)이라.

자성을 지키지 않고 인연을 따라 이룬다.


출처 :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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