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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鏡錄 21강 (不守自性隨緣成) - ⑦

 

是故行者還本際(시고행자환본제)면

叵息妄想必不得(파식망상필부득)이라.

그러므로 行者 = 수행자들이 본제에 돌아가려면,

本際라는 것은 근본실제. 본래의 마음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되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叵息妄想必不得(파식망상필부득)이라.

망상을 쉬지 아니하면 반드시  본제에 돌아감을 얻을 수 없다. 본제에 못 돌아간다.


탄허스님도 그렇게 보시더라고요.

“가히 망상을 쉬지 아니하려고 해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叵息을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叵→ 불가 파자입니다. 가히 망상을 쉬지 아니하려고 하여도,

쉬지 않으려고 하는 그 자체도 불가득이다. 無智亦無得(무지역무득) 처럼요.

 

  그런데 해인사 대장경에 균여대사가 쓴 “화엄원통초”가 있습니다.

균여대사의 저술이 圓通鈔(원통초)입니다. 그런데 圓通首座(원통수좌)아닙니까?

나라에서 국사다음 首座가 됐습니다.


균여대사가 성이 황벽 변씨 더군요. 저도 황주 변가인데요.

균여대사가 원통수좌였습니다. 그래서 그 책 이름 을 圓通鈔라고 하는데요.

 

균여대사가 쓴 圓通鈔에는 두 가지로 해석을 해놨더라고요.

제가 처음 말한 “가히 망상을 쉬지 아니하려고 해도 얻을 수가 없다.”

←이대로도 하고, ←이렇게 한 것은 아주 고차원적인 해석입니다.

선방에서 한 소식 한사람들이 저렇게 해석하지요. 보통 시시한 강사스님 보다는

탄허스님이나 강고봉스님이나 그런 분들이 뛰어나시잖아요.

그러니까 해석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번역할 때는 그렇게 못하고 그냥 제 번역은,

강의할 때는 그렇게 하는데요. “망상을 쉬지 않으면 본제에 돌아가지 못한다.

망상을 쉬어버려야 근본실제 = 자성자리에 되돌아 간다.”

←이렇게 해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無緣善巧로 捉如意(무연선교착여의)하야

반연이 없는 善巧! 선교라는 것이 “선교방편!”

그야말로 아주 좋은 솜씨! 좋은 능력을 가지고 여의보를 잡아서,

아까 繁出如意ㆍ雨寶益生 하는 그 如意寶! 쉽게 말하면

여의보가 대방광 불 화엄입니다. 화엄경이니까요. 그것을 가지고서

 

歸家隨分得資糧(귀가수분득자량)이라.

歸家隨分이니까 집에 돌아간다는 것은,

집이 本際입니다. ‘본제에 돌아간다.’ 말입니다.

첫 번째 해석(망상을 쉬지 않으면 본제에 돌아가지 못한다.

망상을 쉬어버려야 근본실제 = 자성자리에 되돌아간다.) 한것도

하나도 틀린 것이 아닙니다.


본제에 돌아가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 아닙니까?

본제에 돌아가려면 망상ㆍ잡념ㆍ번뇌를 떠나버려야 되잖아요.


宗鏡錄 21강 (不守自性隨緣成) - ⑧

 

원각경 문수장이든가요? 거기에

永斷無明(영단무명)하고, 무명을 영원히 끊어버리고

方成佛道(방성불도)라. 비로소 불도를 이룬다는 말이 나오지요.

無明이 번뇌 아닙니까? 또는 망상이고요.


永斷無明하고 方成佛道라.

무명을 영원히 끊고 난 다음에 비로소 불도를 이룬다.

方→ 비로소 방자입니다. 그러니까 망상 쉬는 것이, 무명을 전부 다 끊는 것이지요.

 

 집에 돌아가서, 집에 돌아가는 것은 本際!

본래의 자기 집으로ㆍ본가에 = 본분도리지요.

本分家鄕(본분가향) = 性本鄕! 거기에 돌아가서

분에 따라서ㆍ자기 깜량대로ㆍ자기능력대로 資糧(자량)을 얻는다. 말입니다.

자량이라는 것은 공부에ㆍ道에 들어갈 때 처음이 資糧입니다.

견도위에 오르기 전에요. 見道位(견도위), 修道位(수도위)

←이런 것 나오잖아요. 그것에 들어가기 전이 資糧位입니다.

자량위가 삼현, ??같은 것이 모두 資糧位에 속하지요. 자량도 비유로 말한 겁니다.


먼 곳에 목적지에 갈 때 노자가 필요하고, (노자라는 資자입니다.)

식량도 필요하거든요. 옛날은 식량을 가지고 갔거든요.


그러니까 資糧이라는 것은 노자와 식량인데요.

비유로, 그러니까 부처님의 피안에 =

부처님의 깨달음의 그 세계에 들어갈 때 필요한 노자와 같고,

식량과 같은 기본 준비물입니다. 쉽게 말하면 필요한 물건들입니다.

 

以陀羅尼無盡寶(이다라니무진보)

다라니의 무진장의 보배로써,

다라니는 總指(총지)지요? 총지니까 주문도

다라니가 있고, 마음에 우주만법을 다 포함하고ㆍ

포괄하고 있는 그 무궁무진한 그러한 마음 자체도 다라니라고도 합니다.

 

莊嚴法界實寶殿(장엄법계실보전)이라.

법계의 진실한 보전을 장엄한다.

법계는 청정법계! 비로자나부처님이나,

노사나부처님이나 그런 부처님처럼 法界의 實寶殿을 = 진실보전을...


초발심자경문 발심장에는

夫諸佛諸佛이 莊嚴寂滅宮(부제불제불장엄적멸궁)은 나오지요?

여러 부처님들이 적멸궁을 장엄하는 것은,

그 적멸궁이 여기서 말하는 實寶殿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화엄경선재동자가 미륵보살을 만났을 때,

미륵누각에 들어가서 끝없이 신통력을 가지고 많은 시간동안 다 구경하고,

다 보려고 해도 끝이 안 보이더라고 하잖아요.

그것도 미륵보살이 實寶殿을 그렇게 보여준 겁니다.


미륵보살은 당래 성불을 부처님과 다를 바 없는

그러한 선지식 중에 최고 선지식이지요.

그래서 어떤 데는 보면 미륵신앙 하는 데는, 미륵보살이라고 안하고

“미륵존불ㆍ미륵존불” ←이렇게 염불하는 데도 지금 있습니다.


宗鏡錄 21강 (不守自性隨緣成) - ⑨

 

窮坐實際中道床(궁좌실제중도상)하야

實際라는 것은 근본실제.

本際나 實際나 같은 말입니다. 진실한 본제!

그 자리가 중도 제 1의 際 “중도의 평상”입니다.

 

窮坐라는 것은, 약찬게에는 安坐라는 말이 나오지요.

安坐如是國土海(안좌여시국토해)! 이와 같은 국토의 바다에 편히 앉았다.

비로자나부처님ㆍ석가모니부처님이 화장세계에 앉아있다.

그렇게 安坐라고 했습니다.  야보송에는 獨坐라고 나오지요.

금강경 오가해에 야보스님은,  獨坐一爐香(독좌일로향)하야. 또

 

유마경에서는 사리불이 나무 밑에서 참선을 할 때,

가만히 앉아서 宴坐(연좌)했다. 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宴坐ㆍ獨坐ㆍ安坐 다 비슷한 말인데요. 窮坐가 더 멋지지요.


의상대사가 쓴 것은 연좌를 쓴 것도 아니고ㆍ독좌를 쓴 것도 아니고ㆍ

안좌를 쓴 것도 아니고, 독좌하고 많이 흡사합니다.


혼자 앉아있는 것이 獨坐고, 窮坐는 궁극적으로 = 마지막으로 막바지

‘궁극적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다.’ 말입니다. 窮하게 앉았으니까 혼자 앉아있는 것이지요.

 

천상천하유아독존!  누구도 그 자리! 나 혼자!

선요 같은데 조사 선문에 이런 말이 나오지요.

참선해서 최고 최 상승 경지에 올라가면 그 자리가

孤孤逈逈(고고형형)이라고 선요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외롭고ㆍ외롭고 멀고 먼.

畢竟成佛(필경성불)ㆍ畢竟涅槃(필경열반)! 그러니까 畢竟空과 같은 겁니다.

 

20공문이나 여러 가지 空중에도 필경공이 최고 아닙니까?  畢竟도 궁극 아닙니까?

막바지, 이제 더 이상 없는 성불의 최고 꼭대기, 정상에 간 겁니다.


요즘에는 대통령들보고 “정상”이라고 그러지요. “정상회의 한다.”고...

그러니까 정상 = 막바지 = 궁극.

窮坐 = 畢竟空의 그 자리에 혼자 앉았다. = 窮하게 앉았다.


궁좌라는 것은 이렇게 여러 가지를 써놓고 보면 그 의미와 흡사한데,

멋있는 글자입니다. 다른 글자로 바꾸려면 조금 힘듭니다.

窮坐가 참 좋게 잘 썼습니다. 獨坐보다 더 낫잖아요?

窮坐! 궁극적으로 막바지 최고 최후 절정의 성불할 때니까요.

그래서 窮坐實際中道床!



여기는 성불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성불하고 보니까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그 자리거든요.

그래서 舊來不動名爲佛(구래부동명위불)이라.

옛적부터 不動한 것!

여기에 不動이 처음에도 나오고 마지막에도 나오지요.


諸法不動이라고 나왔지요?

諸法不動本來寂과 같이 여기도 舊來不動!

옛적부터 변동이 없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불변의 그 자리!

그것을 “부처”라고 이름 한다. = 名爲佛!


宗鏡錄 21강 (不守自性隨緣成) - ⑩

 

掛錢偈(괘전게).


諸佛大圓鏡 畢竟無內外 (제불대원경필경무내외)라.

여러 부처님이 깨달은 大圓鏡地 그 자리는

필경에 안과 밖이 없이 內ㆍ外를 다 떠난 자리지요.

 

爺孃今日會 眉目正相視(아양금일회미목정상시)라.

아양이라는 것은 부모를 “아양”이라고 하지요.

爺 ←아버지 아. 孃 ←어머니 양.


본래 자기의 본명원신을 지금 뜻하는 것입니다.

서장에서는 本命元辰(본명원신)이라고 많이 나옵니다.


부모로부터 타고난, 부모이전에도 있었습니다.

本命元辰 → 主人公(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을 지금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받아난 그 자리를 쉽게 인식을 하기 때문에,

主人公을 爺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大圓鏡地 그 자리입니다.

 

今日會, 금일에 모여서

眉目正相視(미목정상시)라.

눈과 눈썹과 얼굴을 대표할 때 눈썹이 예쁘고,

눈썹 그리는 것이, 화장 다하고도 눈썹 안 그리면 그것 불완전한 겁니다.


그 사람의 면목이라는 말을 眉目으로도 씁니다.

다른데 면목이라고 쓰는 것이 “본래면목” 그러지요?

면목이라고 쓰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기가 더 쉽지요.


“本來面目” ←주인공의 본분자리를 가리키는 겁니다.

서장에는 本分草料(본분초료)라고 하지요.

草料라는 것은 소나 말한테 주는 사료거든요.

본분초료라는 말이 대혜 서장에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草料라고 할 때는 비유로 쓴 겁니다.

화두공안 같은 것이, 그것이 다 조사들이 법문에서

깨우치도록 하는 그러한 법어가 다 본분초료입니다. 선 법문이 거기다 비유한 겁니다.

 

여기는 眉目이 本來面目을 말한 겁니다.  서로 바로 眉目을 내보인다. 말입니다.

드러내 보이는 것이지요.


출처 :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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