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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문론 十二門論]

 


4. 상을 관찰하는 문(觀相門) ①

또 모든 법은 공하다. 왜 그러한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두 법은 모두 상(相)이 존재하지 않네.
상이 존재하지 않기에 두 법은 모두 공하네.

유위법은 상으로써 성립하지 않는다.

무엇을 유위의 상이라고 하는가?

모든 사물들에는 각각 유위의 상이 존재한다. 가령 소는 뿔이 있고 등이 불룩 튀어나와 있고 목덜미가 축 늘어져 있고 꼬리 끝에 털이 나 있는데 이것이 소의 상이다. 가령 물단지는 밑바닥이 평평하고 배가 불룩하고 목이 가늘고 입술이 투박한데, 이것이 물단지의 상이다.
가령 수레는 바퀴ㆍ굴대ㆍ끌채[轅]ㆍ멍에[]이 있는데 이것이 수레의 상이다. 가령 사람은 머리ㆍ눈ㆍ배ㆍ등골뼈ㆍ어깨ㆍ팔ㆍ손ㆍ발이 있는데 이것이 사람의 상이다. 그렇듯이 발생과 머묾과 소멸이 만약 유위법의 상이라면 유위법인가, 무위법인가?

만약 유위법이라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만약 발생이 유위라면 다시 3상(相)이 존재할 것이네.
만약 발생이 무위라면 어떻게 유위의 상(相)이라 하겠는가?

만약 발생이 유위법이라면 3상(相)이 존재할 것이고, 이 3상에 다시 3상이 존재할 것이다. 이와 같이 계속해서 뻗어나가면 무한역행이 된다. 머묾과 소멸도 그러하다. 만약 발생이 무위법이라면 어떻게 무위법이 유위법에 대해서 상을 만들겠는가?
발생과 머묾과 소멸이 없는데 누가 이 발생을 인지할 수 있겠는가? 또 발생과 머묾과 소멸이 분별되기에 발생이 존재한다. 무위법은 분별되지 않기에 발생이 존재하지 않는다. 머묾과 소멸도 그러하다. 발생과 머묾과 소멸이 공(空)하기에 유위법들이 공하다. 유위법이 공하기에 무위법도 공하다. 유위법에 의존하기에 무위법이 존재한다. 유위법과 무위법이 공하기에 모든 법이 다 공하다.

그대가 “3상에 다시 3상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무한역행이 되니 발생은 유위법이 아니다”고 말한다면, 이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발생한 발생의 발생은 그 근본 발생을 발생하게 하고
발생한 근본 발생은 다시 발생의 발생을 발생하게 하네.

법이 발생할 때는 자체를 포함해서 일곱 법이 함께 발생한다. 첫째는 법(法), 둘째는 발생, 셋째는 머묾, 넷째는 소멸, 다섯째는 발생의 발생[生生], 여섯째는 머묾의 머묾[住住], 일곱째는 소멸의 소멸[滅滅]이다. 이 일곱 법 중 근본 발생[本生]은 그 자체를 제외한 여섯 법을 발생하게 한다.
발생의 발생[生生]은 근본 발생[本生]을 발생하게 하고 근본 발생은 다시 발생의 발생을 발생하게 한다. 그러므로 삼상은 비록 유위법이라 하더라도 무한역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머묾과 소멸도 이와 같다.

만약 이 발생의 발생이 다시 근본 발생을 발생하게 한다고 말한다면 발생의 발생은 근본 발생에서 발생하는데 어떻게 근본 발생을 발생하게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발생의 발생[生生]이 근본 발생[本生]을 발생하게 한다면 근본 발생은 발생의 발생을 발생하게 하지 않는다. 발생의 발생이 어떻게 근본 발생을 발생하게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 근본 발생이 저 발생의 발생을 발생하게 한다고 말한다면, 근본 발생이 저것에서 발생하는데 어떻게 발생의 발생을 발생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근본 발생[本生]이 발생의 발생[生生]을 발생하게 하고 발생의 발생이 발생하고 나서 다시 근본 발생을 발생하게 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발생의 발생[生生法]은 근본 발생을 발생하게 한다. 그래서 발생의 발생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 발생이 실제로는 자체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발생의 발생을 발생할 수 있겠는가. 만약 “발생의 발생이 발생하고 있을 때 근본 발생을 발생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출처 : 나를 찾는 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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