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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문론 十二門論]

 


7. 유와 무를 관찰하는 문(觀有無門)

또 모든 법은 공하다. 왜 그러한가?
유와 무는 동시에 얻을 수 없다. 또한 동시가 아닐 때도 얻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한다.

유와 무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네. 무를 떠나서도 유가 존재하지 않고
무를 떠나지 않고서도 유가 존재하지 않네. 유는 항상 존재하지 않네.

유[有性]와 무[無性]는 한 법 속에 동시에[共]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태어날 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고 죽을 때는 태어남이 존재하지 않는 같다. 이것에 대해서는『중론』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만약 “무를 떠나서 유가 존재하기에 과실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무를 떠나서 어떻게 유가 존재하겠는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법이 발생할 때 자체를 포함해서 일곱 법이 동시에 함께 발생한다.『아비달마』에서 “유와 무상성은 동시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무상성은 소멸의 상(相)이기에 무이다. 그러므로 무를 떠나서 유가 발생하지 않는다.
만약 무상성을 떠나지 않고서 유가 발생한다면 유는 항상 무일 것이다. 만약 상주함이 있는 것[有常]이 무라면 최초에 머묾이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괴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머묾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유는 항상 무일 것이다”고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무상을 떠나서 유가 발생한다고 한다면 이것도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무상을 떠나서 실제로 유는 발생하지 않는다.

유가 발생할 때 이미 무상성이 존재하기에 유가 아직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소멸할 때 (무상성이) 일어나서 유를 괴멸하게 한다. 이와 같이 발생[生]과 머묾[住]과 소멸[滅]과 쇠이[老]는 모두 시간을 기다려서야 일어날 수 있다. 유가 발생할 때 발생[生]이 작용을 해서 유를 발생하게 한다.
발생과 소멸의 중간에는 머묾[住]이 작용을 행해서 유를 유지한다. 소멸할 때는 무상성이 작용을 행해서 이 유를 소멸하게 한다. 쇠이[老]는 발생을 변하게해서 머묾에 다다르게 하고 머묾을 변하게 해서 소멸에 다다르게 한다. 무상성은 상주함을 얻는 것을 괴멸하게 해서 네 가지의 것을 성취하게 한다. 그러므로 법이 비록 무상성과 함께 발생하긴 하지만 유가 항상 무인 것이 아니다.

그대가 소멸의 상인 무상성이 유와 함께 발생한다고 말한다면 발생할 때 유는 괴멸할 것이고 소멸할 때 유는 발생할 것이다. 또 발생과 소멸이 둘다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소멸할 때는 발생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발생할 때는 소멸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발생과 소멸은 상반되기 때문이다.
또 그대가 무상성이 머묾과 함께 발생한다고 말한다면 유가 괴멸할 때 머묾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머물 때 괴멸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러한가? 머묾과 괴멸은 상반되기 때문이다. 쇠이할 때는 머묾이 존재하지 않고 머물 때는 쇠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가 “발생과 머묾과 소멸과 쇠이와 무상성이 본래 함께해서 발생한다”고 말한다면 그렇다면 뒤섞이게 된다.
왜 그러한가? 이 유가 만약 무상성과 함께 발생한다면 무상성은 괴멸의 상이니, 모든 사물들은 발생할 때 괴멸의 상이 없고 머물 때도 괴멸의 상이 없다. 그 때 이 무상의 상이 없지 않겠는가? 예컨대 인식하기에 식(識)이니 인식하지 않는다면 식의 상이 없다. 감수하기에 수이니 감수(感受)하지 않는다면 수의 상이 없다. 억념(憶念)하기에 념(念)이니 억념하지 않는다면 념(念)의 상이 없다.
발생[起]이 발생[生]의 상이니 발생하지 않는다면 발생의 상이 아니다. 보존하고 유지하게 하는 것이 머묾[住]의 상이니 보존하고 유지하게 하지 않는다면 머묾의 상이 아니다. 변이[轉變]가 쇠이[老]의 상이니 변이하지 않는다면 쇠이의 상이 아니다. 수명이 소멸하는 것이 죽음의 상이니 수명이 소멸하지 않는다면 죽음의 상이 아니다. 이와 같이 괴멸은 무상성의 상이다.
괴멸을 떠나서는 무상성의 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발생과 머묾의 때에 비록 무상성이 존재하긴 하지만 유를 괴멸시킬 수 없고 후에 유를 괴멸시킬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함께 발생하겠는가? 그렇다면 유가 괴멸할 때마다 무상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무상성이함께 발생하긴 하지만 후에 유를 괴멸시킨다”고 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이와 같이 유와 무는 함께해서 성립하는 것도 아니고 함께하지 않고서 성립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유와 무는 공하다. 유와 무가 공하기에 모든 유위법들이 공하다. 모든 유위법들이 공하기에 무위법들도 또한 공하다. 유위법과 무위법이 공하기에 중생도 또한 공하다.

출처 : 나를 찾는 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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