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임제록36강

 


[여여선당 - 20주년 기념법회]


  선택된 사람이다. 가려내기는 안 했지만 전부 선택되어 온 사람이다. 그렇게도 표현할 수가 있는데 이 지극한 도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제일 문제다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전부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내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이걸 가지고 살림살이로 삼고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대로 다 인정해주고 봐주면 그것이 지극한 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쌀을 선택해서 먹기 위하여 쌀 껍질을 벗기잖습니까? 껍질을 벗겨서 겨는 버리는데 사실은 겨의 입장에서 보면요 쌀보다도 더 중요한 것입니다. 껍질이 싸주지 않았으면 쌀이 어디서 존재하겠어요? 우리의 입장에서, 먹는 입장에서 쌀이 중요하다고해서 쌀만 갖고, 겨는 버리지만 겨의 입장에서 보면 겨가 없으면 쌀이 존재하지 안 해! 똑 같이 동등해.


  쌀이나 겨나 그 가치는 똑같다 구요. 우리의 기준에다 두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 가치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겨를 버리면서도 그 가치를 알고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알고... 그렇게 한다면 지극한 도가 그냥 자기 생활이 되는 것이죠.


2.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니라

    (단막증애 통연명백)

   다만 증애하지 아니한다면은 툭 터져서 명백하리라

 

  다만 증애심(憎愛心)만 없으면 단막(但莫) 증(憎)과 애(愛)!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만 없으면은 훤하게 밝아진다." 통연명백(洞然明白)이라! 그러니까 겨는 싫어하고 쌀은 좋아하잖아요. 겨는 증(憎)하고 쌀은 애(愛)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겨를 버리면서도 아! 저것이 없었으면 쌀이 없었는데...


  어쩌면 쌀보다도 더 소중한데 내가 먹는 쌀, 처음 생길 때부터 감싸서 보호하고 돌도 들어가지 않게 하고, 흙도 들어가지 않게 하고, 먼지도 타지 않게 잘 감싸서 내가 먹도록 했는데... 하고 정말 사랑하는 마음, 겨에도 사랑하는 그런 마음을 같이 가져준다면 그러면 통연명백(洞然明白)이라. 도(道)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고 환해! 통연히! 시원스럽게! 동(洞)을 통(洞)이라고 발음을 합니다. 이럴 때는...


  통연히 환하게 밝다. 아! 이것이 도라는 것이구나. 미워하고 사랑할 것도 없고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괜히 내가 선을 그어놓고 기준을 마련해 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밉다 하고, 기준에 맞으면 좋다하는, 그건 내가 만든 틀이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틀! 그 틀과 기준을 마련해서... 인류가 6000여년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그저 기준과 틀을 만들다가 볼일을 다 본 것입니다. 그래서 도(道)하고는 거리가 멀어진 거지.


  그 기준과 틀을 무너트려 버린다. 사실은 우리가" 아~ 사람은 이래야 되지 않느냐고?" "세상에 전부 이렇게 사니까 이래야 되지 않느냐고." 그것도 우리가 만들거나 또는 개인이 만들고 사회가 만든 그런 틀이고 기준일 뿐이 예요. 어떤 규격품일 뿐입니다. 거기서 더불어 함께 살면서 그런 줄 알고 사는 것. 이게 중요한 거예요.


  규격과 틀이 전부다. 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에 끄달리게 되는 것이고, 빠지게 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본래 틀도 없고 기준이 없는 것. 이게 사람의 본래의 삶이다. 라고 생각하고 이 시대는 이 시대에 맞게, 이 가정은 이 가정에 맞게, 이 사회는 이 사회에 맞게 인연 따라서 맞추어 주는 것. 응해주는 것. 이것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


  "아! 그까짓 것 소용없다고..."  또 어디서 이 신심명 강의 조금 듣고는 그만 "아, 그게 본래 기준이니 틀이니 없는데" 하고 이렇게 빗대어 나가면 이것은 잘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잘 지키면서도 틀이 없고, 기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없는 줄 알면서도 또 잘 지켜. 누구보다도 잘 지켜. 그랬을 때는 그 기준에서 어긋나는 사람, 깨어지는 상황을 보더라도 상처를 안 받아.


  나도 상처 안 받고 상대방도 안 받아. 본래 기준이 없는데 우리가 만든 기준이니까, 괜찮아! 괜찮아! 괜찮은 거라고 이렇게 이해를 할 수 있다 구요. 그러니까 예술이나 뭐 다른 어떠한 것도 틀을 뛰어 넘고 격을 뛰어넘는 어떤 파격적인 그런 안목!


  그게 아주 독창적이고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 나가는 길이 됩니다. 요즈음 보니까 차(茶)가 여러 가지가 다 있더라구요. 별별 차를 다 만들어요. 이게 문리(文理)가 난 거예요. 차 만드는데 문리가 난거라. 꼭 차 잎이라야만 차(茶)가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아니라. 이제는...


  어느 정도 기준을 뛰어 넘은 거야. 틀에서 벗어났다 구요. 그렇다고 아무거나 독초를 갖다가 하는 게 아니거든요. 아무것이나 차가 된다고 독초를 갖다가 차를 하면 쓰나? 그게 말하자면 통연명백(洞然明白)이 된 거라. 차에 대해서는 최소한도 통연명백(洞然明白)이 되었다. 독초는 안 쓰면서도 사람에게는 이롭고, 향기롭고, 맛이 있고, 품위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차가 될 수 있는 소재다.


  제가 그전에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오대산 상원사에서 겨울 한 철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때 한 4~50명, 상원사에서 많이 모여서 잘 지냈어요. 해제를 하고는 다 내려갔어요. 눈이 아주 많이 쌓이고 제가 그해 수두를 봤는데 ...

오늘은 20주년 기념일이니까 느긋하게 이야기를 하죠. 이 강의를 서  너 번 씩 나누어서 해도 괜찮지요? 꼭 임제록만이 아니고... 다 종지는 하나니까.


  이 대목을 잘 알면요. 통연명백(洞然明白)까지만 사실은 잘 알면, 그 다음에는 별 문제없다 이렇게 봅니다. 그 옛날에 늑담진정화상인가? 하여튼 유명한 그런 도인한테 어떤 왕이 신심명이 훌륭하다고 하는데, 이 신심명에 대해 주해를 좀 달아 달라는 거야. 설명을 좀 달아주면 좋겠다고... 이 도인은 중국에서 제일가는 도인이라. 학문도 깊고 도안(道眼)도 뛰어난 분인데... 오대산 이야기하다가 또 뛰어넘어가지고...(웃음)


  주해를 왕이 써달라고 하는데 어떡해? 써주어야지. 그래서 써주는데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維嫌揀擇), 단막증애 통연명백(但莫憎愛 洞然明白)." 여기까지 큰 글자로 딱 쓰고, 그 다음부터 주해는 작은 글씨로 쭉 써잖아요? 그래 작은 글씨로 끝까지 써주었어요. 그 왕도 대단한 왕이라. 아, 읽어보고, 읽어보고 자기가 여러 수십 번 읽어봤는데, 결국은 그 네 구절 통연명백(洞然明白)까지가 주(主)고, 그 나머지는 주해(註解)더라. 그것을 부연 설명하는 것이 그 밑의 구절이더라.


  이렇게 설명을 하고 그렇게 이해를 한 거예요. 여기서 제가 빨리 진도를 나가지 않는 것도 그래서 그렇습니다. 증애(憎愛), 간택(揀擇) 이것이 전부 상대로 이루어진 것 아닙니까? 밑에도 전부 상대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 중도(中道)다.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아까 차(茶) 이야기를 했듯이... 오대산에서 경험한 것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 수두를 보면서 물을 하루에 서른 짐 씩, 처음에는 홈으로 되었는데 그것이 얼어가지고... 물을 져다가 대중들이 세수도하고, 먹고 활용을 했지요. 여럿이 돌아가면서 물을 졌는데 해제를 하고 다 가버리니까, 다섯 명인가 그렇게 남았었어요. 그 겨울 상원사 선방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공양주 채공을 보게 되는 거라. 한철동안은 한 사람이 공양주면 공양주의 소임 맡지만... 해제하고 난 뒤 소임은 맡으면 일주일간 씩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때는 해제중이고 사람들이 들쑥날쑥하니까, 그렇게 하다가 같은 도반 스님인데 저기 김룡사 암자에 살아요. 그래 그 도반이 채공이 되더니 그때 상원사의 무짠지는 짜기로 유명합니다. 그야말로 짠지야. 무김치 그걸 갖다가 그저 시종일관 그저 그거야. 그걸 가지고 주 반찬으로 먹는데, 이 스님이 나가서 일주일을 하는데 일주일간 계속 그 무김치 한 가지를 가지고, 통무우 김치인데 그걸 가지고 계속 다르게 해오는 거라. 계속 다르게... 그 스님은 도통한 스님이라. 제가 보기에는.


  그전의 채공은 늘 요령대로만 딱딱 썰어 오더라구요. “무김치는 그렇게 썰어야 된다.” 이렇게 딱 생각을 하는 거라. 그런데 이 스님은 무김치가 계속 다른 모양으로 나오는 거지. 길게 썰었다가, 짧게 썰었다가, 깍두기처럼 썰었다가, 물을 채웠다가, 물을 뺏다가, 매끼마다 그렇게 나오는 거야.


  어떨 때는 그냥 들여다 놓고 칼도 안 들여놔. 그럼 어떻게 먹으라는 말이냐? "너희 숟가락을 베어 먹어. 그러면 더 맛있어." 그래서 숟가락으로 베어 먹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도마를 들여놓고 스스로 썰어 먹게도 하고, 나중에는 방법이 안 나오니까 별별 그런 방법까지 나와요.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탈피한 거지. 이 사람은...


  그렇게 하니까 맛이 다른 거야. 모양이 다르고 맛이 다르고. 며칠이 지나니까 대중들이 기대를 하는 거라. “오늘을 어떤 모양으로 나올까.” 매끼마다 기대를 하고 내내 다른 모양으로 변화를 주면서 하더라는 거지.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하는 간택(揀擇), 증애(憎愛)! 이것만 딱 떨어져 버리면 통연명백(洞然明白)이라니까. 시원해 그만! 삶이 시원해! 아무것도 걸릴게 없어.


  남이 그렇게 하는 것도 내가 봐 줄 수가 있어. 머리에 물 이상하게 들여 가지고 옷 이상하게 입고, 오토바이 타고 소리 쌩 울리면서 그냥 길거리 질주하는 것도 봐 줄 수가 있어요. 그리고 줄을 섰는데 앞에서 시간 오래 걸리며 꾸물대는 것 있죠? 그런 사람도 봐 줄 수가 있어요. 아, “저 사람은 나에게 인내심을 키워주도록 하기 위해서 저렇게 꼼지락거리는 구나.” 또 저렇게 희안하게 해가지고서 세상을 요란스럽게 달리는 폭주족도 아, “저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구나.”


  저 사람이 “나의 스승이고 나의 선지식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다니까. 이런 것을 안 배우면 그렇게 생각할 줄을 몰라. "아, 저 죽일 놈 망할 놈 말이야 혼자만 세상사나? 저러다가 사고 나면 너만 죽나? 딴 사람 다 죽는데..." 이렇게만 볼일이 아니라니까. 그렇다고 그걸 장려한다는 뜻은 아니고. 그렇게 우리가 소화를 했을 때 내 자신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버립니다. 내 자신의 문제... 내 자신에게 문제가 해결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혐간택(維嫌揀擇)이다.


  도(道)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지 무슨 이걸 벽에다 걸어놓고 쳐다보자는 것도 아니고, 무슨 반찬으로 써 먹자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지도(至道)야! 지극한 도(道)입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 다른데 그걸 우리가 수용할줄 아는 것. 수용할줄 아는 그것이 유혐간택(維嫌揀擇)이라. 오직 간택을 싫어할 뿐이다. 지극한 도는 그리고 단막증애(但莫憎愛),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만 없으면  통연명백(洞然明白)이다. 시원하고 툭 터지고 환하다 이겁니다. 사람 사는 것이 환하다. 더 이상 닦고 자시고 찾고 할 것이 아니다. 그 인연 따라서 그냥 흘러가면 되는 거야. 인연 따라서... 그런데 그 이치하고


3. 毫釐有差하면 天地懸隔하나니

    (호리유차 천지현격)

    호리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처럼 벌어지나니


  조금이라도, 털끝만치라도 그 원칙. 그러니까 유혐간택(維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하는 이 원칙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천지현격(天地懸隔)이다. 하늘과 땅처럼 나누어지는 거야. 어긋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한 생각만 틀려도 그것이 하늘과 땅으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동. 서로 가는 간격이 1m 또는 1cm 그 정도 거리지만 그게 반대방향으로 가니까 결국은 천지현격(天地懸隔)이지.


  처음에는 털끝만치 간격이 벌어지지만은 끝에 가서는 천지현격인거라. 그런 이치입니다. 호리유차 천지현격(毫釐有差 天地懸隔)이라는 말이... 그러니까 이 도라고 하는 것. 우리의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하는 지도(至道)! 이것은 결국은 선택과 간택하고 증애(憎愛)하는 것. 이런 상대적 편견에 떨어져 있는 것. 상대적 편견 그것은 우리는 참으로 잘 소화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편견! 선이다 악이다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우리 기준으로 선(善)이다 악(惡)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스님의 첫 법문이 발우하고 가사를 가지고 도망을 가는데 도명존자! 장군 출신인 이 도명존자가 쫓아와가지고 그걸 뺏으려고 하잖습니까? 그걸 뺏으려고 하는데 바위 위에다가 떡 얹어 놓았다 구요. 그걸 안 주려고 하다가는 얻어터질 테니까. 그래서 "바위 위에 얹어놓았으니 네가 가져가려면 가져가라." 이랬다 구요.


  "사람만 상하게 하지 말고 네가 가져가라." 그랬거든. 육조스님도 보면 대개 연약한 스님이었던지 도대체 힘으로는 안 되었던 모양이라.

그 도명존자는 사람 상하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발우 떼 하고 가사를 뺏으러 왔는데. 그걸 바위 위에다가 떡 놓아두었으니 좋다고 드니까 안 들린다 말이야. 그래 "아이고, 이 큰스님의 행자지만 도력이 있는 것 같다." 해서 그러고 보니까 머리도 깎지 않은 행자가 법을 이어받았잖아요.


  그래 도명존자가 “ 내가 사실은 법문을 들으려고 왔습니다.” 그랬잖아요. 처음에는 악한 마음으로 뺏으려고 왔는데 아이, 도력이 있는 행자를 보니까 덜컥 겁도 나고 아, 이런 좋은 선지식을 만났을 때 내가 법을 얻어야지. 하고 선한 마음을 일으켰다 구요. 순식간에 악이 선으로 바뀐 거야. 악이 선으로 바뀐 거라. 뺏으러 왔다가 법을 배우려고 했으니 그래 육조스님이 있다가 “不思善 不思惡하라.”그랬어요.


  네가 나에게 뺏으러 온 것은 악이야. 그런데 당장 나의 법력을 보고 법을 배우겠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선이야. 그렇지만 "선도 생각 말고 악도 생각마라." 참으로 좋은 마음 낸 것까지는 좋다. 그렇지만 도라고 하는 것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야. 하는 그 말 한마디에 도명존자가 깨달았잖아요. 그 순간에 삶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선도 악도 아니야. 어떻게 보면 쉬운 것 같으면서도 그런 어려운 대목이죠. 복잡해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한 생각 돌이킨다고 하는 것이 그리 어렵습니다. 호리유차 천지현격(毫釐有差 天地懸隔)이라!


4. 欲得現前이어든 莫存順逆하라

    (욕득현전 막존순역)

   앞에 나타남을 얻고자 할진댄 순하고 거슬림을 두지 말라


  현전(現前), 앞에서 환히 나타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지극한 도가 내 눈앞에 환히 드러나도록 하려면 순(順)과 역(逆)을 두지 말라. 막존순역(莫存順逆)! 순(順)은 내가 순(順)하다 하는 것이고 역(逆)은 거슬리는 거야. 너무 순하다 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또 너무 거슬리는 것도 문제가 있어. 사람의 관계가 그렇잖아요. 너무 따르는 것도 문제이고 또 거슬리고 빗나가는 것도 그게 문제가 있는 거지. 순과 역을 두지 말라. 순과 역을 둔다고 하는 것이 벌써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5. 偉順相爭이 是爲心病이다  

    (위순상쟁 시위심병)

   어기고 순하는 것이 서로 다투는 것 이것이 마음의 병이 되나니


  위순상쟁(偉順相爭), 어긴다. 이것은 거슬리는 것입니다. 순역(順逆)! 했으니까 역순(逆順)! 이렇게 해야 할 텐데 글자를 바꾸어 가지고 위(偉), 어긴다. 어길 역(逆)자니까. 뜻은 같습니다. 어기고 순종(順宗)하는 것이 서로 다투는 거라. 갈등이 생기는 거죠.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그게 말하자면 순하면 좋아하고, 어기면 싫어하잖아요.


  또 내가 남에게도 그렇고 남이 나에게 하는 것도 그런 거라. 늘 그 속에서, 그 와중에서, 우리는 치다꺼리하고 인생을 엮어가는 것 아닙니까? 거기서 좀 툭 터져 버리면... 툭 터져 버리면 그만 간단한거야. 그만 간단한거라. 그래서 위순(偉順)! 어기고 순(順)하는 것. 내가 남에게 하거나, 남이 나에게 하는 거나 하는 거기서 늘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난다.


  상쟁(相爭)! 서로 다툰다. 이것이 마음의 병이다. 시위심병(是爲心病)이다. 이것이 마음의 병이다. "위순상쟁 시위심병(偉順相爭 是爲心病)이다." 이것을 크게 써 놓고 집에 붙여놓아요. 이것이 "위순상쟁 시위심병(偉順相爭 是爲心病)이다." 병이 없으면 되는 거지 뭐. (웃음) 마음의 병이 없으면 되는 거야. 마음의 병이 뭐냐? 위순상쟁(偉順相爭)이야. 돈이 들어오면 좋고 나가면 싫어하고... 그것도 위순(偉順)이야. 위순상쟁이라.


  그게 다 인연 도리로 나가고, 인연 도리로 들어오는 건데 그 인연의 도리를 모르고는 그만 나가는 것은 잘못됐다 생각하고, 들어오는 것은 잘 됐다 생각하고 그러는 거야. 나가는 것도 인연이고 들어오는 것도 인연이야. 그런데 그 도리로 돌아가는 것. 수련무작(修練無作)으로, 인연  따라서 억지 쓰지 말고 살아라. 인연 따라서 억지 부리지 않고 또 인연을 따라서 엉뚱한 짓 않고 사는 것. 이게 좀 도를 아는 사람이라.


6. 不識玄旨하면 徒勞念靜하리라

    (불식현지 도로염정)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한갓 수고로이 생각만 고요하게 하고자 할     뿐이로다


  현지(玄旨), 깊은 뜻이라고 이렇게 했는데, 뭐 그렇게 크게 깊은 뜻도 아니 예요. 여기의 지극한 도를 두고 하는 소리라. 지극한 도의 유혐간택(維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하고, 이 원칙에서 호리(毫釐)라도 차별이 있으면, 지극한 도는 간택(揀擇)도 싫어하고, 증애(憎愛)도 싫어하는데 거기에도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그만 천지현격(天地懸隔)이라.

 

  그러니까 이러한 도리가 현지(玄旨)야. 깊고 깊은 뜻이다.


이것을 알지 못할 것 같으면 도로염정(徒勞念靜)이라. 그래 보통 공부한다는 게 뭐냐? 생각을 고요히 가라앉히라. 염정(念靜)! 생각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느라고, 일어나는 생각을 아! 이놈의 생각 왜 일어나는가? 왜 일어나는가? 아무리 생각을 물리치려고, 물리치려고 해도 또 생각이 일어나니까 어떨 때는 주먹으로 자기 머리를 쥐어박는다.


  제가 어떤 스님을 보니까, 법당에 가서 자기 이마를 마루에다 대고 쾅쾅 찢는 스님을 봤어요. 하도 망상이 일어나니까. 하도 망상이 일어나니까 견딜 수가 없는 거야. 망상은 나쁜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니까 그런 거라.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자기가 생각을 잘 못 해 놓고서는 일어나는 망상을 가지고 가라앉히려고, 가라앉히려고 염정(念靜), 생각을 고요하게 하려고 한갓 수고롭게만 할뿐이다.


  도로염정(徒勞念靜)이라. 망상 그것이 진짜인데, 무명(無明)이 바로 불성(佛性)이거든요. "무명실성(無明實性)이 즉불성(卽佛性)이다." 번뇌망상(煩惱妄想)이 그게 진짜야. 그게 진짜인데 그걸 없애려고, 없애려고 하고 가라 앉혀서 생각을 조용하게 하려고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합니까? 안되니까 머리를 쥐어박기도 하고, 생각이 머리에서 나오는 줄 알고 그 머리를 쥐어 박기도하고...


  그걸 법당 마루바닥에다 쾅쾅 찍기도 하고 그런다 구요. 실제로 참선하는데 가보면요. 용맹정진 열심히 하는데 가보면 별별 사람이 다 있어요. 뜻대로 안 되니까 하여튼 자기가 정해놓은 뜻대로 안되니까 화가 나고,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답답하고, 그러니까 그런 일도 나고 그런 것입니다. 그게 현지라. 이 깊은 도리를 알지 못할 것 같으면, 겨는 나쁜 것이고, 쌀만 좋은 것이다 하는 이 생각을 하는 거야. 그래 쌀이 눈에 안 띄고 겨만 눈에 띄니까 환장할 일이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7 무비스님 - 누구와도 인격적 만남, 책 놓지 않는 깨어 있는 스님 file 短長中庸 2011.12.28 5702
56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8강 短長中庸 2009.12.15 5640
55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7강 短長中庸 2009.12.15 5254
54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6강 短長中庸 2009.12.15 8930
53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5강 短長中庸 2009.12.15 4896
52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4강 短長中庸 2009.12.15 4763
51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3강 短長中庸 2009.12.15 5479
50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2강 短長中庸 2009.12.15 4595
49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1강 短長中庸 2009.12.15 4601
48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0강 短長中庸 2009.12.15 4909
47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39강 短長中庸 2009.12.15 4840
46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38강 短長中庸 2009.12.15 4472
45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 20주년 기념법회...신심명) 녹취록 제37강 短長中庸 2009.12.15 5235
»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 20주년 기념법회...신심명) 녹취록 제36강 短長中庸 2009.12.15 4806
43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 20주년 기념법회...신심명) 녹취록 제35강 短長中庸 2009.12.15 5449
42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 20주년 기념법회...신심명 원문) 短長中庸 2009.12.15 4874
41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34강 短長中庸 2009.12.15 3254
40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33강 短長中庸 2009.12.15 3215
39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32강 短長中庸 2009.12.15 3409
38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31강 短長中庸 2009.12.15 351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