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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38강


 45쪽에 14-9번부터 할 차례입니다.

임제스님의 말씀 중에서 아주 유명한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고 하는 말이 있고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흠소십마(欠少什?)” 등등... 한 대여섯 낱말을 꼽을 수가 있는데 다 소중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늘 어떤 상황에 부대끼면서 살아갈 때 자신을 붙들어주고 자신을 잃지 않게 하는 그런 말씀으로는 “수처작주(隨處作主)” 라고 하는 말씀이 상당히 효험의 가치가 높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상황에 있던지 또 어떤 곳에 있던지 거기에 늘 자기 자신으로서 주인 행세를 하라. 그런 말입니다. “자기 자신으로서 주인 행세를 하라.” 계절이 바뀌어 아름다운 풍경이나 경치, 이런데 우리가 현혹되고 또 흔들리고...  그것까지는 설사 좋다고 합시다. 반대로 역경계!


좋은 상황에서 우리가 흔들리고 끄달리는 것을 순경계라 하고, 역경계라고해서 좋지 아니한 상황에서 내 자신이 거기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나는 나로서 내 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그런 마음자세가 되는 것. 이것이 역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것입니다. 역경계에 있어서 작주(作主)를 한다.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주인행세를 한다.왜 주인이라는 말을 쓰는 고 하면


주인의 반대말은 종 아닙니까?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요. 좋든 싫든 관계없이 무조건 자기는 없고, 주인이 이래라 하면 이러고, 저래라 하면 저러고 하는 것이 종인데... 주인은 그런 상황을 마음대로 부린다고요. 자기입장에서 모든 것을 체결하는 거라. 그러하듯 모든 상황에서 역경계가 되었든 순경계가 되었든


내 마음에 아주 들고, 좋은 그런 입장과 그렇지 아니한 입장이든지 간에 우리가 끄달리지 않고 늘 자기 자신을 관철하고, 자기 자신을 예의주시하고, 자기 자신이 늘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그러한 노력. 이것은 확철대오한 사람들은 따로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지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론으로만 알고 있으니까, 사량분별이나 의식적으로 자신으로 당당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됩니다.


마음으로 자꾸 끄달리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는 것으로도 상당한 소득이 있고 또 그렇게 됩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돼요. “나는  끄달리지 않겠다.”  “끄달리지 않겠다.” 자꾸 그렇게 하고 그 경계라고 하는 것은 좋은 경계든 나쁜 경계든 간에 “그것은 경계다.” “내가 아니다.” “내가 역경계의 종노릇을 할까보냐? 나는 나로서 당당하게 있겠다.” 하는 것을 사량분별이나 마음속으로라도 자꾸 이렇게 되 뇌이고 반복해서 생각하므로 해서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가르침이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이고 임제록에서 그것 하나만 우리가 건져도 임제록을 공부한 보람이 있다. 라고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여러 가지 불교의 어떤 상황 속에 살아가면서 마음으로 빛나는 그런 한마디!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우리의 살림살이가 된다면, 부처님 공부하고 불교와의 인연을 맺은 보람이 충분히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은 역시 그런 정신 하에서 어떤 수행자가 물었습니다.

 

14-9 구하는 것이 있으면 괴롭다


問, 如何是心心不異處오 師云, ?擬問早異了也니

문  여하시심심불이처   사운  이의문조이요야


性相各分이로다. 道流야 莫錯하라

성상각분         도류야 막착


世出世諸法이 皆無自性하며 亦無生性하고

세출세제법    개무자성      역무생성


但有空名하야 名字亦空이어늘

단유공명      명자역공


?祗?認他閑名爲實하니 大錯了也로다

이지마인타한명위실      대착요야


設有皆是依變之境이라 有箇菩提依와

설유개시의변지경      유개보리의


涅槃依와 解脫依와 三身依와 境智依와

열반의    해탈의   삼신의    경지의


菩薩依와 佛依니라

보살의   불의


“무엇이 순간순간의 마음이 다르지 않는 경계입니까?”

그대들이 물으려 하는 순간 벌써 달라져 버린 것이니 성품과 형상이 각각으로 나누어졌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착각하지 말아라.

세간이나 출세간의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으며, 또한 생멸의 성품도 없다. 그저 허망한 이름뿐이며 그 이름을 쓴 글자도 또한 텅 빈 것이다. 그대들은 이처럼 그 부질없는 이름을 진실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매우 잘못 된 것이다. 설사 그러한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의지해서 변화한 경계들이다. 이른바 보리의 열반의 의지와 해탈의 의지와 세 가지 불신의 의지와 경계와 지혜의 의지와 보살의 부처의 의지 등이다.”


問, 如何是心心不異處오

문  여하시심심불이처

 
  ‘어떤 것이 마음 마음이 달라지지 아니한 곳입니까?’ 그랬거든요.마음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 곳! 이것은 상황에 따라서 마음 마음이 계속 달라지니까요. 그럼 달라지지 아니하고 변하지 않는 그 자리는 어디냐? 이랬어요. 우리는 늘 상황 따라서 마음이 달라지고 변해가고 끌려가고, 동물들은 특히 바다에 사는 고기들은 보호색이이라는 것이 있어가지고 어떤 환경에 가면 그 환경에 딱 맞는, 그 환경하고 똑 같은 색으로 자기 몸을 바뀌어버려요. 그러면 눈에 띄지 않거든요.


자기를 해치는 보다 더 큰 고기들로부터 피할 수가 있으니까, 우리들도 그런 식으로 어찌 보면 순간순간 그렇게 바뀌어가고, 달라져가고, 변화해가는 그러한 현상이 있는가하면 그렇게 바뀌어가고 달라져가고 순간순간 변화하는 그런 현상을 접하면서도 또 변하지 아니하는 우리의 본체가 있다고 하는 사실, 그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교가 깨달은 마음의 깊은 곳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師云, ?擬問早異了也니

사운  이의문조이요야


  그대가 물으려고 하면, 그러한 사실 ‘마음 마음이 변하지 아니한 부동한 마음’ ‘여여한 마음’ 그것을 알고 싶어서 물으려고 할 때, 이미 벌써 변해버리고 달라져 버렸다. 조이요야 (早異了也)라, 벌써 그 때는 마음이 변해버리니까 물으려고 하는 그 한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했을 때는 여여부동한 자리인데, 물으려고 한 순간 한 생각을 일으켰으니까 벌써 변해버린 거죠. 그러니까 이건 어떻게 들어 보일수가 없다. 들어 보이려고 하면 이미 그것은 보이는 나도 그렇고, 보는 너도 그렇고, 다 변해버린 상태니까. 어떻게 변하지 아니한 것을 보여줄 수가 있겠나? 진짜 변하지 아니한 모습을 도대체 보여줘야 되겠는데 물으려고 하고 알려고 할 때 이미 변해버렸다. 그렇게 되면


性相各分

성상각분


  성(性)과 상(相)이 각분(各分), 본성하고 현상하고 눈에 나타난 어떤 모습하고 눈에 나타난 현상의 본질하고 이게 전부 나눠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하고 마음에서 일어난 물결, 그걸 의식이라고나 할까요? 생각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마음의 물결하고 마음의 합치하고 이미 나눠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변하지 아니한 것을 사실은 봐야 됩니다.


파도! 아주 심하게 요동치는 물결 속에서 물을 봐야 된다 구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망상과 분별, 상황에 따라서 흘러가는 어떤 마음 작용에서도 변하지 아니하는 것을 또 봐야 됩니다. 사실은... 따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아니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변하는 속에서 변하지 아니한 것을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파도 속에서 물을 봐야하듯이 우리의 출렁거리는 마음에서 여여부동한 우리의 마음을 또 거기서 알아야 된다 구요. 이미 흘러나와버리면 성상각분이라, 각각 나누어진다.    


道流야 莫錯하라

도류야 막착


도 닦는 여러분들이여, 착각하지 말라.


世出世諸法이 皆無自性하며

세출세제법    개무자성


  세상법이나 출세간의 법이나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그것은 우리가 세간법이다. 출세간법이다 해서 나누어놓고 보니까 그렇지 세간법도 한쪽뿐이고 출세간법도 한 쪽 뿐이라. 그냥, 변견(邊見)이고 편견(偏見)이고, 양변이라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세간이고 출세간으로 나눈다고 하는 사실이 벌써 치우친 것이죠. 양변에 떨어진 것이고 치우친 것이라. 그것을 우리가 은밀히 따져보면 ‘개무자성(皆無自性)이야.’ ‘모두다 자성이 없다.’ ‘고정 불변하는 자성이 없다.’ ‘독립된 그런 성품이 없다.’ 그래서


亦無生性하고

역무생성


  생성(生性), 현상을 나타내 보이는 어떤 성품이 없다. 그러니까 달리 나타난 것과 같이 보여. 현상은 틀림없이 그렇게 보이지만 거기서 하나의 눈을 더 뜨고 보면 제가 간혹 ‘엑스레이 적 안목이다.’ 하는 그런 말을 하는데 엑스레이로 우리 신체를 찍으면 살 같은 것은 안 찍혀요. 살을 투과해서 뼈만 찍힌다고...


우리가 현상을 볼 때도 그런 엑스레이 적 안목, 보다 더 심도 있는 안목을 가지고 보면 뭐 세간법이다, 출세간법이다, 이렇다, 저렇다, 있다, 없다, 선이다, 악이다, 옳다, 그르다 하는 것. 전부 아무것도 없어. 개무자성이야. 알맹이가 없어. 그리고 거기서 생긴다, 없어진다 하는 것도 역시 없고 역무생성(亦無生性)이야, 생기는 성품도 본성도 없다. 그리고


但有空名하야

단유공명


  다만 헛된 이름만 있을 뿐이다. 세간법이다, 출세간법이다, 선이다, 악이다, 있다, 없다, 남자다, 여자다 하는 그런 차별상들이 오로지 그런 헛된 이름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아,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안목이구나.” 이렇게 알아야 됩니다.우리는 이러한 차원의 안목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이러한 차원을 가지고 있는 선지식의 말씀을 통해서 의식적으로나마 짐작을 하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짐작을 하고 자꾸 세뇌가 되었을 때 눈을 뜨기가 쉬워지고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자꾸 이러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의 말씀을 듣는 것이 내가 그러한 안목을 갖는데 제일 가까워집니다.


名字亦空이어늘

명자역공


  명자(名字)도 따지고 보면 전부 공(空)이다. 이름이니 글자니 하는 것도 획 하나하나가 조작이 되어서 글자가 되고 이름이 된 것이지 그것 하나하나 분석해 버리면 없는 것입니다. 마치  이 마이크라는 것도 쇠붙이 조각 여러 개가 이것저것 조합이 되어서 하나의 마이크가 되었는데 이것을 분해해버리면 없는 것이고 공(空)이라. 그와 같이 명자도 또한 공한 것이다.


?祗?認他閑名爲實하니

이지마인타한명위실


  그대들은, 이(?)는 우리들 보고 다 하는 소리입니다. 지마(祗?), 다만 그렇게 “우리가 해 오던 대로” 이런 뜻입니다. 다만 그렇게 해 오던 대로 오인하고 있다. 무엇을? 한명(閑名), 저 부질없는 이름들, 부질없다, 쓸데없는, 실체가 없는 그런 이름들만 오인해가지고 위실(爲實)이라, 실다운 것으로, 사실인 것처럼 그렇게 여긴다. 실(實)을 삼는다.


大錯了也로다

대착요야


  “크게 그르친 것이다.” “크게 그르쳐버린 것이다.” 우리가 이름에 속아 사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전부 어떻게 보면 이름에 속아 사는 거야. 특히 이 불교라고 하는 것, 쭉 나열이 되는데 경전을 통해가지고 우리가 어떤 실상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 실상은 깨닫지 못하고 가르치고 있는 문자들, 명자들, 이름들, 방편들, 여기에 그냥 놀아나는 거야.


다시 말해서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에 그냥 떨어져 사는 것입니다. 계속 우리가... 그런 식입니다. 숱한 이론, 숱한 명자(名字)는 전부 손가락에 불과한거죠. 손가락은 달을 보자고하는 임시방편이지 그게 달은 아니잖아요. 달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은 손가락이 필요 없어. 달을 제대로 못 본 사람을 위해서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킬 뿐이지.


마찬가지로 경을 많이 배웠다고 해서 무슨 이론에 밝다고 해서 그 실상을 빨리 깨닫는 것은 절대 아니 예요. 그런데 전혀 이해가 없어도 한 순간, 한마디에 척 눈을 떠버린 사람이 많아요. 특히 육조스님같은 이들... 그런 이들은 축적된 이론이 없어도 그렇게 눈을 떴다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임제스님께서는 우리가 너무 문자 속에 끄달려서 그것을 살림살이로 삼고,거기에 푹 파묻혀서 헤어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집착을 때주느라고 아주 심한 말씀을 많이 합니다. 너무너무 심한 말씀을 많이 해요. 아주 충격적이고, 보통 우리의 일반적인 신앙상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입니다.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엄청난 말씀을... 설사 경전에서 나열되어 있는 별별 좋은 명칭들, 열반이니 보리니 해탈이니 무슨 보신, 화신이니 하는 이런 것들이 설사 있다하더라도


設有皆是依變之境이라

설유개시의변지경


  “개시의변지경(皆是依變之境)이라.” 의지해서 변화된 경계다. 이것은 무엇에 의존한 것이냐? 결국 우리 한 마음에서 이런저런 분별을 일으켜가지고 만들어놓은 그런 현상들 아니냐 이거지. 의지해서 변화된 가성의 경계죠. 가성의 경계들입니다. 그 가성의 경계도 결국은 주인이 있어요.어떤 주인공에서 변화된 거라.


말하자면 인형극을 볼 때 인형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은 뒤에서 인형을 조절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데 우리는 가상을 조절하는 사람은 생각을 안 하고 움직이는 인형만 보는 거야. 불교의 근본을 보면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늘 근본에 눈을 떠 도록,  다시 말해서 달을 보도록, 그러면 손가락은 필요 없다 이거지. 굳이 거론할 이유도 없고... 간단하게 표현하면 그런 뜻입니다.


有箇菩提依와

유개보리의


  예를 들어서 의지해서 변화한 그런 경계들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뭐냐? 보리(菩提)! 보리! 보리라고 하는 것. 우리 불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말입니까? 보리수가 있고, 보리자, 여의주도 있고 보리라고 하는 말, 깨달음이니 도(道)니 하는 이런 식으로 하는데 그런 “보리”라고 하는 낱말을 하나 떡 만들어 놓고는, 물론 우리 마음에서 조작한 것이죠. 그래 놓고는 거기에 떡 의지하는 거야.


“보리(菩提)라고 하는 의지처(依支處)” 이런 뜻입니다. 또 보리, 열반가지고 요즈음 단순법회에서 얼마나 떠들고 싸우고, 열반이냐, 해탈이냐, 무슨 견성이냐 하는 이걸 가지고 얼마나 떠들고 싸우는지 단순법회에서. 그게 같은 뜻이냐? 다른 뜻이냐? 뭐 나는 같은 뜻으로 본다. 다른 뜻으로 본다. 해가지고서 전부 여기에 놀아나는 거야. 그냥 만들었는데... 한 생각을 일으켜가지고 열반이다, 해탈이다, 견성이다, 성불이다, 이렇게 떡 만들어 놓으니까 그만 거기에 퍽 넘어가가지고는 그냥 그걸 가지고 오늘날까지 그냥 단순법회를 해 쌌는거야. 그러면서 이걸 가지고 야단이야 요즈음...

 

‘무식한 수좌들 공부 좀 하라.’ 하는 이런 선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또 그런 소리를듣고는 수좌들이 칼을 갈아가지고 그 장소에 나와서는, 그 사람이 그동안 쓴 글을가지고 조목조목 따져서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썼는데 이것이 틀린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막 인신공격을 하고 지금 야단이야. 상당히 경각심을 일으키고 있어요. 말하자면 참선 공부하는 사람들은 무식해서는 안 된다 하는 그런 경각심을 아주 상당히 일으켜. 그냥 야단이야.

 

대중석상이 아니면 주먹도 오고가고 할 그런 상황이고 테러까지도 있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더라고 내가 보니까. 거기에 갖다온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제가 녹음테이프를 낱낱이 다 듣거든요. 녹음테이프를 들으니까 두 번, 세 번, 열 번까지도 세세하게 또 들을 수 있지.


전부 열반이라는 말이나 해탈이라는 말이나 이것이 전부 의변지경(依變之境)이라, 우리 마음에서 변화된 하나의 경계일 뿐이고 허상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인형이야. 뒤에서 조작하는 사람은 볼 줄 모르고 놀아나는 인형을 가지고 시시비비 해 쌌는 거지.


涅槃依와 解脫依와 三身依와

열반의   해탈의    삼신의


  열반이니 해탈이니 얼마나 고급스런 용어입니까? 불교 안에서는 그냥 주옥같은 낱말들 아니 예요. 열반(涅槃)이니 보리(菩提)니 해탈(解脫)이니 삼신(三身), 법신. 보신. 화신. 얼마나 기가 막히고 신성시된 그런 낱말들입니까? 그렇지만은 한 눈 제대로 뜨고 본 사람이 보면요 다 우습지도 않는 그런....


마술 같은 것이나 요즈음 영화시설이 하도 발달이 되어서 영화 같은 것 보면 그런 것 많아요. 사람이 내 움직이다가 핵심에 딱 빠져보면 전부 종이가 되어 깔려버려. 바닥에 아무 쓸모없는 종이가 되어 깔려버려. 마치 그와 같은 거라.


境智依와菩薩依와 佛依니라

경지의  보살의    불의


  경계(境界)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삼라만상을 말하는 것이라면 지혜(智慧)는 그 삼라만상을 제대로 꿰뚫어보는 것이고, 지혜를 여기서는 지(智)라 그래요. 경지(境智), 경계를 꿰뚫어보는 지혜라고 하는 것.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런 것 까지도 의변지경(依變之境)이라, 의지해서 변화된 경계다.


보살의(菩薩依)! 아, 근사하죠. 보살이라고 하는 의지처. 여기서는 옷 의(依)자로 쓸 경우도 있어요. 옷 의(依), 옷이다 이거야. 그러면 더 쉽게 이해하지. 옷 이름이 보살이고 옷 이름이 불의(佛依)라. 그건 껍데기 아니냐? 사람은 아니잖아. 이 옷 입었다가...부처 옷 입었다면 부처라 하고 보살 옷 입었다면 보살이라 하고... 의지할 의(依)자나 옷 의(依)자나 결과적으로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옷도 껍질이고 의지했다고 하는 것도 의지해서 변화된 경계니라. 하는 이것도 역시 껍질이라. 알맹이는 아니라 구요.


“보살의 의지처와 불의의 의지처” 이것들이 다 유개(有箇), 유(有)자를 거기다 새겨야 돼. 그런 것이 있으니 보리라는 의지처, 열반이라는 의지처, 해탈이라는 의지처, 삼신의(三身依)라는 의지처,  경지라고 하는 의지처, 보살이라고 하는 의지처, 부처라고 하는 의지처 이런 것들이 있으니, 다 열거를 못해서 그렇지 이것 뿐 이겠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 상식이 다 여기에 포함되겠죠. 그 중에 가장 고급스런 것을 다 추려놓았네. 보리, 열반, 해탈, 삼신, 경지의, 보살, 불 무슨 성문 연각 같은 것은 포함도 안 되는구만. 그런 것들이 있으니


?向依變國土中하야 覓什?物고

이향의변국토중      멱십마물


“그대들은 의지하여 변한 국토에서 무엇을 찾고 있느냐?


?向依變國土中하야 覓什?物고

이향의변국토중      멱십마물


  그대들은, 그대들은 의변국토중(依變國土中)을 향하여, 의지해서 변화된 그런 국토, 그런 세계라는 뜻입니다. 의지해서 변화된 그런 세계. 그게 보리니 열반이니 해탈이니하는 우리의식으로 나열되어 있는 세계죠. 거기서 멱십마물(覓什?物)고, 거기서 무슨 물건을 찾을 것이냐? 전부 가짜배기인데, 전부 그냥 가짜배기들만 잔뜩 있는데 거기서 무슨 물건을 찾으려고 하느냐? 의변국토중(依變國土中), 의지해서 변화된 그런 세계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하느냐? 보리라고 하는 말, 열반이라고 하는 말, 부처라고 하는 말, 보살이라고 하는 말, 거기서 무엇을 찾으려고 하느냐? 멱십마물(覓什?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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