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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45강

 


自是?善知識無眼이라 不得瞋他로다

자시이선지식무안      부득진타


그것은 스스로 그대들 선지식들이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그 학인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되지도 않게 함부로 말할 수가 있느냐? 하는 이것이 붙을 수가 없는 자리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법에는 남여노소. 선후배. 승속을 가리지 않는다. 라고 하는 그 말은 깨달음의 경지를 논(論)하고, 그야말로 진짜 법을 논하는 데는 그런 상식적인 이야기 가지고는 해당이 안 되는 자리다 이거야. 여기서 “학인이 무례하다.” 학인이 꾸짖음을 입고 선지식은 몽둥이로 그를 때리면서 “무례하다”라는 이런 소리는 벌써 방편으로 미끄러져버린 것입니다. 법하고는 관계가 없어져 버리는 거지. 그 때는 벌써. 그렇게 하니

 
自是?善知識無眼이라 不得瞋他로다

자시이선지식무안     부득진타


  “자시이선지식무안(自是?善知識無眼)” 이것은 본래 그대 선지식이 눈이 없는 것이다. 안목이 없는 것이다. “부득진타(不得瞋他)로다” 사람을 꾸짖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람 꾸짖지 마라. 학인! 학인도 모르지만 당신도 모르는 일이다. 당신도 모르면서 학인을 그렇게 꾸짖느냐! 무례하다느니 하는 그것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말이야.


법에 대해서는요. 사실은 참 그럴 수 없이 엄격합니다. 이 방편에 있어서는 온갖 차별이 있고, 남녀노소가 있고, 무슨 닦아 들어가는 게 있고 법신. 보신. 화신이 있고, 보리니 열반이니 하는 게 있고 그렇지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본래자리!


본래 부처인 그 자리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도대체 붙을 수가 없는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그게 우리의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 마음자리죠.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마음자리인데 거기에 무슨 남녀노소가 있고 선. 후배가 어디 있겠습니까?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자리인데... 그러니까 여기서 임제스님의 이러한 표현이 있는 것입니다.

 

有一般不識好惡禿奴하야 卽指東劃西하며

유일반불식호오독노      즉지동획서


好晴好雨하며 好燈籠露柱하나니

호청호우      호등롱로주


?看하라 眉毛有幾莖고 這箇具機緣學人不會하고

이간      미모유기경   자개구기연학인불회


便卽心狂이라 如是之流는 總是野狐精魅??이니

편즉심광      여시지류    총시야호정매망양


被他好學人의 ??微笑하야 言?老禿奴여

피타호학인   익익미소      언할노독노


惑亂他天下人이로다

혹난타천하인


“좋고 나쁜 것을 모르는 머리 깎은 중들이 있어서 동쪽을 가리키다 서쪽을 가리키고, 맑은 날을 좋아하다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며, 등롱(燈籠, 등불을 켜서 어둠을 밝히는 기구)과 노주(露柱, 법당의 드러난 둥근 기둥)를 좋아한다. 그대들은 잘 보아라! 눈썹에 털이 몇 개가 남아 있는가? 이 일에는 기연(機緣)이 갖추어져 있는데 학인들은 알지 못하고 곧 미쳐버리는 것이다. 이런 무리들은 모조리 여우나 귀신 도깨비들이다. 그 좋은 학인들에게 ‘이 눈멀고 머리 깎은 늙은이가 온 천하 사람들을 미혹하고 어지럽게 만드는 구나’라는 비웃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有一般不識好惡禿奴하야 卽指東劃西하며

유일반불식호오독노      즉지동획서


  또 일반 어떤 “호오(好惡)” 좋고 나쁜 것을 알지 못하는 그런 머리 깎은 종이 있어서, 곧 동(東)을 가리키고, 서(西)를 가리킨다. 이것이 맞다. 저것이 맞다. 우리 상식으로 이야기 한다면 관세음보살 기도가 좋다. 무슨 지장보살기도가 좋다. 어디가 영험이 있다. 이런 식으로 지동획서(指東劃西)라는 게 그 말입니다.

 
好晴好雨하며 好燈籠露柱하나니

호청호우      호등롱로주


  맑은 날이 좋다. 비 오는 날이 좋다. 동(東)이니 서(西)니 하는 것이 어디 정해져 있나요? 또 갠 날이 좋다. 비 오는 날이 좋다 하는 것도, 짚신 장사하는 사람은 갠 날이 좋지만은 우산 장사하는 사람은 비 오는 날이 좋지. 그게 어디 가치가 좋다. 나쁘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거든. 그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구요. 그러한 어떤 현상적인 차별을 가지고 이리 분별하고, 저리 분별하는 것을 여기 쭉 열거하는 거예요. 지동획서(指東劃西)하며 호청호우(好晴好雨)하며...


“등롱(燈籠)과 노주(露柱)를 좋다고 하나니” 등롱은 이와 사, 이가 좋다 사가 좋다고 그러는데, 등롱(燈籠)은 등불입니다. 등불을 덮어놓은 망(網)같은 것인데 벌레가 불에 타 죽지 못하도록, 나비나 날파리 같은 것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등 주위에다가 망(網)을 해놓은 것입니다. 롱(籠)이라는 것이 가리개를 말하는 거예요. 등(燈)이 예요. 노주(露柱)라고 하는 것은 드러난 기둥! 지금 여기에는 드러난 기둥이 없는데 법당에 가면 법당 안에 기둥만 우뚝 서 있는 것. 벽 쪽에 있는 기둥 말고 안에 드러나 있는 기둥! 그걸 노주(露柱)라 그래요. 그런 것이 법당에는 많잖습니까? 그것이 노주인데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정” 이라 그러고 등롱(燈籠)은 불을 밝히는 것으로써 “유정” 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상대적으로 표현을 합니다.


등롱(燈籠)과 노주(露柱)! 법당에는 등불도 있고 기둥도 있는데, 등불은 그 쓰임새가 많잖아요. 그런데 기둥은 사실 쓰임새가 많으면서도 멍청히 그대로 서 있는 거야. 언제고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는 거야. 등불은 사람이 들고 다니기도 하고, 불도 켜기도 하고, 날이 밝으면 끄기도 하고 그렇게 쓸모가 많은데 그것을 "유정과 무정" 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등롱(燈籠)이 좋다. 노주(露柱)가 좋다. 어쨋거나 우리 상식에 견주어서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이것이 맞다. 저것이 맞다. 유정이 옳다. 무정이 옳다. 이런 식으로 하는데 


?看하라 眉毛有幾莖고

이간      미모유기경


  그대들은 잘 보아라. 그렇게 해가지고 눈썹이 몇 개나 남아 있겠는가? 미모(眉毛)가 몇 줄기나 남아 있겠는가? 이건 무슨 말인고 하니 사법(邪法)을 설하면 눈썹이 빠진다 하는 그런 속설이 있어서, 그런 식으로 불교를 설해가지고 눈썹이 몇 개나 남아 있겠나 하는 그런 표현입니다. 중국의 고사(古史)나 관습을 빗대어서 표현하는 것인데 사법을 많이 설할 것 같으면 눈썹이 다 빠지고 없다 이거야. 이게 좋으니 저게 좋으니 복잡하고 숱한 교리적인 설명이 많잖아요.

 
這箇具機緣學人不會하고 便卽心狂이라

자개구기연학인불회      편즉심광


  이들은 “기연(機緣)” 까닭을 갖추고는 있으나, 기(機)자는 나무 木 변의 機자를 써야 돼요. 까닭을 갖추고 있기는 있으나, 학인이 그 뜻을 알지 못하고 곧 마음이 돌아버린다 이거야. 불교 교리 연구를 깊이 하다보면 온갖 무슨 열반사상. 진여. 여래장 사상. 무슨 화엄사상. 법화사상. 천태사상. 온갖 가르침이 많잖습니까? 사실은.


그것 다! 모두가 이 마음 하나 밝히자는 것인데, 그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근본인 마음자리 생각은 아니하고 그 설명, 그 휘황찬란한 설명! 다시 말해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그것만 자꾸 쫓아가는 것입니다. 손가락도 그냥 손가락이 아니라 반지를 끼고 있으면, 그 반지가 아름다워 가지고 거기에 또 미혹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금강경이 좋다 하면, 금강경 그 구절이 좋아가지고 금강경의 저변에 있는 진짜 뜻은 생각하지 않고 그것만 내 독송하고 베껴 쓰고 있는 거지. 그것도 사실은 장하기는 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반지가 좋아가지고 “반지가 아름답다” 생각하다가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의 생각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공부하는데 있어서 그러한 착각에 빠질 수가 많다는 거예요. 다이아몬드 반지라도 끼고 있어 봐요. 누가 달을 볼 생각을 하겠어요? 그만 다이아몬드 반지 보다가 달을 볼 생각을 못하는 거지. 금반지. 은반지 온갖 반지 많잖아요.


이 경전과 어록이라고 하는 것. 참으로 좋은 말 많고 해보면 정말 재미있거든요. 공부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고 문학적이고 시(詩)적인 표현도 많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하고 재미있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너머에 있는 이면의 어떤 진실을, 그 진정한 뜻을 우리가 파악하고 그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 사실은 목적이지. 거기에 시(詩)적으로 표현했느니 아주 멋지게 표현했느니 하는 것. 그것이 지금 사실은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거든요. 특히 불교학이 발달하고, 일반적으로 불교이론이 고도로 발전해 놓으면 거기에 심취해가지고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그런 예들이 아주 많습니다.


근래 동화사에서 담선법회 같은 것을 제가 가만히 들어보면 선(禪)에 대해서 모두 이 시대에 내로라하는 사람들, 상당히 경험도 많고 또 이론도 갖춘 이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보면 사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또 손가락에 낀 반지! 그 반지가 무슨 “금반지냐, 아니냐.”  “무슨 은반지냐, 아니야 잘못 봤어.” “거기에 녹이 끼었어. 뭐 어떻게 되었어.” 전부 이런 식이거든요. 따지고 보면 전부 그런 식이라.


정말 정작으로 살아있는 법의 자리는 그렇게 말이 많을 수가 없죠. 말이 많을 수가 없다구요. 간단명료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고, 그것도 사실은 “할!”을 하고 방맹이로 한번 후려치는 것. 그것도 사실 많은 거지. 그것도 많은 건데 무슨 구구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엽적인 것으로 쫓아다니거나, 방편설로 쫓아가다 보면 말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보면 그런 내용을 쫓아가다 보면 학인들이 그걸 모르고 마음이 돌아버린다. “변즉심광(便卽心狂)이라” 마음이 곧 돌아 버린다.

 
如是之流는 總是野狐精魅??이니

여시지류   총시야호정매망양


  이와 같은 류(流)들은 모두가 “야호정매망양(野狐精魅??)” 여우, 귀신, 도깨비 이 말입니다. 여우요. 귀신이요. 도깨비! 그러니까 정말 살아 있는 진리는 못 보고, 진리를 설명하는 설명서만 가지고 막 이리 끼우고, 저리 끼우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네가 옳다, 내가 옳다. 그렇게 하는 것을 임제스님의 안목으로 보니까, 전부가 귀신들 노는 것이고, 여우가 노는 것이고, 도깨비가 노는 것이다. 이거야. 지금 정말 눈 밝은, 임제스님 같은 그러한 선지식이 있어서 오늘날 한국불교의 어떤 실상을 본다면 이건 아마 말도 못할 거예요. 이 당시만 하더라도 불교가 이론적으로 많이 흘러가고 있는데 대해서 임제스님의 안목으로 이렇게 보였는데 지금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被他好學人의 ??微笑하야

피타호학인    익익미소


  저 멀쩡한 한 학인의 낄낄거리는 입장. 낄낄거린다는 그냥 비웃는 소리입니다. 미소(微笑), 속으로 비웃는 것을 입어가지고서 그들이 말하기를

 
言?老禿奴여 惑亂他天下人이로다

언할노독노   혹난타천하인


  눈 먼 늙은 종이여. “혹난타천하인(惑亂他天下人)” 저 천하 사람들을 전부 미혹하게 하고 전부 어지럽게 만드는 도다. 그런 소리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눈 먼 사람들이 눈 먼 사람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서울을 간다고 가는데 천지도 모르고, 방향도 모르고, 가는 길도 모르고, 저 드넓은 광장에서 이리저리 허둥대는 그런 입장이나 다를 바 없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그런 뜻입니다.


14-16 계율도 읽히고 경론도 배웠다


道流야 出嫁兒는 且要學道니라

도류    출가아   차요학도


祗如山僧은 往日에 曾向毘尼中留心하고

지여산승   왕일    증향비니중유심


亦曾於經論尋討라가 後方知是濟世藥이며

역증어경론심토      후방지시제세약


表顯之說이라 遂乃一時抛却하고

표현지설      수일내일시포각


卽訪道參禪하니라 後遇大善知識하야

즉방도참선         후우대선지식


方乃道眼分明하야 始識得天下老和尙하야

방내도안분명      시식득천하노화상


知其邪正하니 不是娘生下便會요

지기사정      불시낭생하편회


還是體究練磨하야  一朝自省하니라

환시체구연마       일조자성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출가한 사람은 무엇보다 도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지난날 계율에 마음을 두기도 하였고, 경론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나중에서야 그것들이 세간을 구제하는 약이며 겉으로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인 줄을 알았다. 드디어 몽땅 다 버려 버리고 도에 대해서 묻고 선을 참구하였다.

  그런 뒤에 큰 선지식을 만나 뵙고 나서야 마침내 도안(道眼)이 분명해져서, 비로소 천하의 노화상들이 삿된 지 바른 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것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면서 바로 안 것이 아니다. 깊이 연구하고 갈고 닦아서 어느 날 아침에 스스로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道流야 出嫁兒는 且要學道니라

도류   출가아    차요학도


  출가한 사람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道)”를 배우는 일이다. 공부하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공부하는 것이다!


祗如山僧은 往日에 曾向毘尼中留心하고

지여산승   왕일    증향비니중유심


  다만 이 산승은 옛날에 일찍이 비니중(毘尼中)을 향해서 마음을 머물렀고 계율을, 옛날 중국에서 스님들이 공부해 가는 과정이 승려가 되면 계율을 5년 내지 6년, 심한 경우에는 한 10년 가까이 율학을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제스님께서도 그 관례에 따라서 “비니중(毘尼中)” 비니라는 것은 계율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율학 가운데서 마음을 머물렀고, 계율을 여러 해 공부했다는 말이죠.

 
亦曾於經論尋討라가

역증어경론심토


  또한 일찍이 경론을 찾고 또 찾았다. 경(經)을 공부하고, 논(論)을 공부하고, 경(經)을 해석하는 것이 논(論)이거든요. 대개 무슨 지도론이니 백론(百論)이니 중론(中論)이니 해서, 경을 해석하고 또 경의 이치를 개론 형식으로 하는 것이 대개 중국에도 있지마는 인도에서 이루어진 것이 많아요. 보면 인도에서 이루어진 것이 많은데, 그런 설명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을 또 공부를 많이 했다 하는 것입니다.

 
後方知是濟世藥이며

후방지시제세약


  그리고 나서 “방지(方知)” 뒤에사 바야흐로 알았다. 뭘 알았는고 하니 “시제세약(是濟世藥)” 이건 세속을 건지는 약이고, 세상을 건지는 약이라는 것을


表顯之說이라 遂乃一時抛却하고

표현지설     수일내일시포각


  그냥 표현하는 설명인 줄 비로소 알고는 드디어 다 버렸다. 여러 해 계율을 공부한 것도 버려 버리고, 그 숱한 경을 공부한 것도 버려 버리고, 논도 다 버리고는 “이게 아니다!” 이것 문자만 공부해 가지고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다 버려 버리고는

 
卽訪道參禪하니라 後遇大善知識하야

즉방도참선        후우대선지식


도를 묻고 참선에 들어갔었다. 그리고는 뒤에 큰 선지식을 만나가지고서

 
方乃道眼分明하야

방내도안분명


  바야흐로 도를 보는 눈이 분명해졌다. 황벽스님의 회상에 왔잖아요. 그렇게 이론적으로 경전공부를 많이 했지만, 다 버려 버리고 황벽스님의 회상에 와서, 여기의 대 선지식은 "황벽스님" 입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에 또 대우스님을 만났죠. 황벽스님 회상에 3년 있으면서 황벽스님께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 하고 물으러 갔다가 세 번 묻고 세 번 호되게 얻어맞고는, 대우스님께 가서 비로소 눈을 뜨고는 다시 황벽스님회하에 왔죠. 대우스님의 말씀대로 “너는 나하고는 관계없다. 황벽스님의 제자다.” 이렇게 이야기가 되어서 다시 황벽스님께 와서 여러 해 있었죠. 나중에는 스스로 법석을 마련해가지고 오늘날 그야말로 참 천하의 임제스님이 된 그런 연유입니다. 도안(道眼)이 분명(分明)해져서

 
始識得天下老和尙하야

시식득천하노화상


비로소 천하노화상을 식득(識得)한다.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知其邪正하니 不是娘生下便會요

지기사정      불시낭생하편회


  천하노화상(天下老和尙)! 사람! 선지식이라는 그 그릇과 법과 그 도가 얼마인지 내가 다 안다 이겁니다. “지기사정(知其邪正)이라” 삿된 것인지 바른 것인지를 환하게 알았으니 “낭생(娘生)” 어머니가 낳아준 그대로 곧 아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해서 알았지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안 것이 아니다. 어머니가 낳아준 그대로 안 것이 아니고

 
還是體究練磨하야  一朝自省하니라

환시체구연마       일조자성


  또한 “체구(體究)” 아주 골똘히 연구하는 것입니다. 골똘히 연구하고 이것이 비록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고, 문자이고, 이론이고 방편이지만 그 문자나 이론 방편을 열심히 공부하고 또 열심히 정진하는 것을 연마(練磨)라고 봐야 되겠죠. 그래서 어느 날 “자성(自省)”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돌아보게 되었다. 성(省)은 돌아 볼 省 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 성불이라고 하는 것. 이것이 본래로 우리들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어머니가 낳아준 그 모습 그대로 가지고 있어가지고는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알 길이 없으니 열심히 공부하고 또 방편설이지만 방편설을 열심히 보고 연구하므로 해서 어느 날 그것이 다 축적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율을 보고, 경론을 보고, 어록을 본 이 모든 것이 축적이 되어 오늘날 내가 이렇게 깨달음을 얻었다. 하는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내버려 둬가지고 뭔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 곡식이 땅에 떨어져서 그냥 자랍니까? 싹만 틔운다고 곡식이 되는 것이 아니죠. 거름도 주고 물도 주고 김도 매주어야 하고, 온갖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뒤에야 비로소 가을에 곡식을 거둘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더욱 더 그렇다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업도 마찬가지죠. 세상 사업은 더욱 그런 것이 확실하지요. 이렇게 해서 깨달음을 설사 얻었다 하더라도, 임제스님께서 자주 표현하시는 법어! 파격적인 그런 표현과 아주 격을 깨뜨리고 상식을 뛰어넘는 그러한 표현이 여기에 또 나옵니다.

 

14-17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道流야 ?欲得如法見解인댄

도류   이욕득여법견해


但莫受人惑하고 向裏向外하야

단막수인혹      향리향외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법다운 견해를 터득하려면 남에게 마혹(속임)을 당하지 말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道流야 ?欲得如法見解인댄

도류   이욕득여법견해


  그대가 여법한 견해를 얻고자한다면 “여법(如法)하다”라는 말은 더 설명할 필요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진짜 좋은 견해! 진정견해(眞正見解)라는 말도 잘 쓰죠. 진정견해(眞正見解)는 참되고 바른 견해, 여법견해(如法見解)는 법과 같은 견해, 여법한 그 견해를 얻고자 한다면 이게 중요하거든요. 불교 공부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참된 견해다. 바른 소견이다. 바른 안목이다 이거야. 여법한 견해를 얻으려면

 
但莫受人惑하고 向裏向外하야

단막수인혹      향리향외


  “불수인혹(不受人惑)”이라고도 합니다. 막수인혹(莫受人惑)이나 불수인혹(不受人惑)이나 같습니다. “남의 미혹을 받지 말라.” 남에게 속지 말라 이거야. 여기서 남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경계도 남이고, 부처님도 남이고, 문수보살도 남이고 전부 남이예요. 부모, 처자도 전부 남이야. 여기서는 “내 한마음” 이외에는 전부 남입니다. 그래서 불수인혹, 다른 사람에게 그 미혹을 받지를 마라. 다만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로서 당당하게 무위진인(無位眞人)으로 있으면 그것이 최고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향리향외向裏向外” 밖이나 안을 향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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