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564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임제록48강

 

?取山僧口裏語는 不如休歇無事去니 已起者莫續하고

이취산승구리어   불여휴헐무사거    이기자막속


未起者不要放起하라 便勝二十年行脚이니라

미기자불요방기      편승이십년행각


約山僧見處하면 無如許多般이요 祗是平常이니

약산승견처      무여허다반      지시평상


著衣喫飯하고 無事過時니라

착의긱반      무사과시

 

~ 그대들은 산승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것보다는 모든 생각을 쉬어서 아무 일 없이 지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미 일어난 것은 계속하지 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라. 이렇게 한다면 10년을 행각하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허다한 일(소승, 대승, 출가, 속가, 수행의 단계 등)은 없는 것이니 다만 평소대로 옷 입고 밥 먹으며 아무런 일없이 세월을 보내는 것뿐이다.”

  

?取山僧口裏語는 不如休歇無事去니

이취산승구리어   불여휴헐무사거

 
  그대들이 “산승구리어(山僧口裏語)”를 취하는 것은.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위대한 말, 훌륭한 이야기를 설사 한다고 하더라도 내 말을 취해가진다면 벌써 그물에 걸려드는 것이다.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좋은 말을 해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말이고, 진짜 당신 자신은 또 따로 있지 않느냐 이거야. 당신 자신은, 내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듣는 그 놈!

 

“오대산에 문수를 찾아가는 그 사람이 진짜 살아있는 문수다.” 나의 말을 듣는 그대는 나의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산승구리어(山僧口裏語)”라는 말은 “나의 말” 을 취하는 것은 틀린 이야기다 이거야. 내 말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내가 쌓아놓은 똥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거지. 내 말을 취하는 것은 “불여휴헐무사거(不如休歇無事去)” 차라리 공부 하지 않고 집에 가서 가만히 낮잠이나 자고 아무 일없이 쉬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냥 집에 있으라. 그 말이야.


“사자교인(獅子咬人)하고 한로축괴(韓盧逐塊)라” 사자에게 돌을 던지면 그 사자는 사람을 물어. 그런데 삽살개는 그것이 먹을 것인 냥 던진 돌에 가서 킁킁거리고 냄새를 맡는다 이거야. 말에 쫓아가면 개가 되어버리고, 그 말의 저의를 알아들으면 사자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손가락에 낀 반지, 그것만 쳐다보면 삽살개가 되는 거지. 손가락을 보지 않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쳐다보면 제대로 보는 거죠. 임제스님이 말씀하신 말의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 말을 취하면 달은 못보고 손가락을 보는 것이다” 내 손가락이 근사하다고, 또 반지를 끼었다고 그것으로 쫓아가는 것은 공부하지 말고 낮잠 자는 것이 차라리 낫다. “불여휴헐무사거(不如休歇無事去)” 푹 쉬면서 아무 일 없는 거와 같지 못하다.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잖아요. 정말 제대로 깨달은 사람의 법문은 이렇습니다. 이래야 된다 구요.

 

  

已起者莫續하고 未起者不要放起하라

이기자막속      미기자불요방기

 

  이미 밖을 향해서 구하려고 하는 마음을 만약에 일으켰다면 더 이상 지속하지 마라. 이미 일어났는데 어떻게 하느냐? “막속(莫續)” 더 이상 지속하지만 말라. “미기자(未起者)” 더 이상 일어나지 아니하는 마음으로. “불요방기(不要放起)” 놓아서 일어나게 하지 말라. 더 이상 그런 생각 하지 않도록만 하라. 그렇게만 할 것 같으면

  

便勝二十年行脚이니라

편승이십년행각

 

  십년을 행각하면서 선방에 돌아다니는 것 보다 훨씬 낫다. 밖을 향해서 구하려는 마음! 이미 일어난 것은 지속 시키지 않고 끝내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아니한 것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으키지만 아니하면 십년을 행각한 것보다도 훨씬 낫다. 십년을 참선한 것보다도 한 생각 돌이키면 훨씬 공부가 수승한 것이다. 참! 아주 좋은 법문이 예요.

 


約山僧見處하면 無如許多般이요 祗是平常이니

약산승견처      무여허다반      지시평상

 

  나의 소견! 내가 깨달은 소견으로는 허다한 여러 가지가 없다. 경전속이나 가르침 속에서 얼마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까? 뭘 하면 좋다. 어떤 것이 빠르고. 무엇이 수행이고. 이것은 수행이다. 어느 것은 어떻고 저렇고. 불교는 팔만대장경이 있고.... 뒷사람들이 또 자기 소견대로 이리붙이고 저리붙이고 이래 설명하고 저렇게 해가지고 얼마나 말이 많고 잡다한지 몰라. 그런데 임제스님이 보기에는 그러한 허다한 게 아무 소용이 없다 이거야.

 

그러한 불교는 하등에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럼 뭐냐? “지시평상(祗是平常)!” 평상심! 이것이 진짜 불교다! 그래서 제가 “임제록을 진짜 불교다” “법화경은 이것이 불교다”라고 했습니다. 법화경 보다가 임제록 보니까 이게 진짜 불교다 해서 여기에 “진짜” 를 더 붙였지. "임제록은 진짜 불교다" 하하하하 정말 간단해요. 뭘 그렇게 복잡할 이유가 없다고요. 지시평상(祗是平常)이야! 그만 평상대로, 평상이란 뭐요?

 

 

著衣喫飯하고 無事過時니라

착의긱반      무사과시


  옷 입고 벗고 하면 옷 입고 벗고 하고, 먹고 마시고 할 일 있으면 먹고 마시고, “착의긱반(著衣喫飯)” 따로 불교 한다고 떠벌리면서 그렇게 세월 보낼 것이 아니다. 일없이 세월을 보낼지니라. 일없이 세월을 보내라. 하는 이 말은 특별히 마음에서 무슨 불법을 구하려고 하는 그런 어떤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없어야 된다 이거야. 그런 일이 있을수록 잘못되기 일쑤다. 불교 믿는 사람들이 더 잘못되는 것이 바로 이런 예죠. 불교 안 믿는 사람은 아예 허물이 없어요. 믿는 사람이 사정이 잘못 들어서 요상하게 흘러가거든요. 요상하게 흘러간다.

 
그냥 평상으로! “평상에서 더 이상 다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것이 불교입니다. 그러니까 때리고 맞는 것. 그게 불교야! “불법이 무엇입니까?” “여하시불법적적대의(如何是佛法的的大意)오” 임제스님이 황벽스님께 가서 그걸 가서 물었잖아요. “어떤 것이 불법의 진짜 뜻입니까?”  하니까 방망이로 두들겨 팼거든. 그게 바로 불교야! 그게 정말 살아 있는 불교라구요. 그것이 진짜 불교라!

 

그런 사실도 모르고는 임제스님이 대우스님께 가서는 “불법의 뜻을 물었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황벽스님이 나를 때렸습니까?” 하니까, 대우스님은 “야~ 황벽스님이 그렇게도 자비스럽단 말인가? 네 한테는 여러 번 그렇게도 간곡하게 불법을 잘도 일러줬구나!” 하는 이 한 마디에 임제스님이 눈이 번쩍 뜨인 거야. 그 말 한마디에! 대우스님이 억지 쓴다고 그냥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정말 대우스님이 생각하기에는 황벽스님이 임제스님을 얼마나 어여삐 여겼기에 세 번이나 가서 물었는데 한번에 스무 방맹이 씩, 세 번에 걸쳐 60방맹이를 후려쳤거든.

 

황벽스님께서 그렇게도 자비스럽고 간곡하게 일러줬느냐? 너무나 부럽다. 나한테는 그렇게 안하더니 왜? 임제에게는 이토록 자비스럽고 간곡한 노파심절의 마음으로 일러주었구나 하는 이런 뜻입니다. 임제스님이 그때사 눈이 확 뜨인 것입니다. “아! 바로 이것이다. 그토록 내가 찾아 헤맸던 불법이 바로 이것이 구나.” 이렇게 알고는 “아! 황벽스님 불법이 참으로 간단하구나!” 너무 너무 쉽고 간단 하구먼. 이랬다 구요.

 

그러니까 대우스님께서 “금방 와가지고는 무슨 잘못이 있어서 황벽스님이 나를 때리느냐고? 나한테 와서 실컷 하소연을 하더니 금방 내가 한 말! 이 한마디에 네가 뭘 아는 게 있어서 그렇게 황벽스님 불법이 간단하다고 그렇게 지껄이느냐?” 고 했더니 임제스님이 있다가 주먹을 가지고 대우스님 옆구리를 팍팍 세 번이나 질렀거든. “이것 아닙니까?” 이랬다 구요. “이것 아닙니까?” 하는 말은 제가 말을 붙인 것이고....


그러니까 이 대우스님이 보니까 야! 참 제대로 알았거든. 아무 토도 없고, 설명도 없고 거기에 설명 붙일게 어디 있습니까? 설명을 붙이면 구구하게 되어 버리지. 그래서 나한테 와서 네가 눈을 떴지만은 사실은 황벽스님의 공부가 다 영글어가지고 와서 나는 살짝 태워준 것에 불과하다. 너는 황벽스님의 제자다! 나하고는 관계없다. 황벽스님께 다시 가거라. 이렇게 해서 황벽스님께 다시 가서 자신이 깨달은 것을 확인하는 이야기입니다. 뒤의 행록(行錄)에서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저 앞의 서문에도 있었지만은 이 이야기는 천 번, 만 번 해도 재미있고 실감나고, 또 그 이야기 과정에서 뭔가 잡힐 듯, 잡힐 듯하고 뭔가 보일 듯, 보일 듯하고 그런 거죠. 그와 같이 바로 지시평상(祗是平常)이야! 때리고 맞고, 착의긱반(著衣喫飯)하고 다른 것이 없어요. 여기서 조사선이 어떻고 법신불이 어떻고 화신불이 어떻고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등각. 묘각이 어떻고 여기에는 아무것도 붙을 끈득지가 없어. 본래 그런 것이 아니거든. 아닌데 그러한 복잡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냥 장사하는 사람이 물건을 쭉 늘어놓듯이 펼쳐놓은 거지. “무사과시(無事過時)니라” “일 없이 세월을 보낼지니라.”

  

?諸方來者가 皆是有心이라 求佛求法하며

이제방래자   개시유심      구불구법

 
求解說求出離三界하나니 癡人이여 ?要出三界하야

구해설구출리삼계         치인      이요출삼계

 
什?處去오 佛祖是賞繫底名句니라 ?欲識三界?아

십마처거   불조시상계저명구       이욕식삼계마

 

不離?今聽法底心地니 ?一念心貪은 是欲界요

불리이금청법저심지   이일념심탐   시욕계


?一念心瞋은 是色界며 ?一念心癡는 是無色界라

일일념심진   시색계   이일념심치    시무색계


是?屋裏家具子니라 三界不自道我是三界요 還是道流의

시이옥리가구자     삼계불자도아시삼계    환시도류


目前靈靈地照燭萬般하야 酌度世界底人이 與三界安名하나니라

목전영영지조촉만반      작탁세계저인    여삼계안명


  “제방에서 온 그대들은 모두가 마음이 있다. 부처를 구하려고 하며, 법을 구하려고 하며, 해탈을 구하여 삼계를 벗어나려고 한다. 어리석은 이들아! 그대들이 삼계를 벗어나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부처와 조사란 보기 좋은 올가미로 만든 이름과 글귀일 뿐이다.

 
  그대들은 삼계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지금 그대들이 법문을 듣고 있는 그 마음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이 한 생각 탐내는 마음이 욕계(欲界)고, 한 생각 성내는 마음이 색계(色界)며, 한 생각 어리석은 마음이 무색계(無色界)다. 이 삼계는 발 그대들이 집속에 있는 살림살이들인 것이다. 삼계가 스스로 ‘내가 바로 이 삼계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서 아주 분명하게 만물을 비추어 보고 세계를 가늠하는 그 사람이 삼계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諸方來者가 皆是有心이라 

이제방래자   개시유심


모든 사람이 전부 마음이 있고 뭔가 생각을 가지고 있다.

 

求佛求法하며 求解說求出離三界하나니

구불구법      구해설구출리삼계

 

  부처를 구하고 법을 구해. 뭔가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어가지고 부처를 구하고, 법을 구하고 해탈을 구하고, 삼계에서 벗어날 것을 구한다.

 

 

癡人이여

치인

 

전부 그런 짓 하는 사람들은 전부 어리석은 사람이다.

 

  

?要出三界하야什?處去오

이요출삼계     십마처거

 

그대들이 삼계를 벗어나서 어디 가려하느냐? 삼계를 벗어나고 자시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거야.

 

  

佛祖是賞繫底名句니라

불조시상계저명구

 

  부처니 조사니 하는 그 말! 불교에서는 얼마나 권위를 가진 훌륭한 그런 명칭입니까? 부처니 조사니 하면 껌벅 넘어가고, 그냥 목을 매달고, 천배 만 배 그냥 억 만 배 퍼부어대는 그런 높은 분 아닙니까? 그런데 “시상계저명구(是賞繫底名句)니라” “상계(賞繫)” 아주 보기 좋은 목걸이와 같은 그런 명구다. 아주 보기 좋은 목걸이라는 것은 계박(繫縛)! 속박하는 그런 문구다. 부처! 하면 근사하잖아요? 사람을 옭아매는 올가미다.

 

이것을 다이아몬드로 올가미를 만들고 금. 은을 가지고 올가미를 만들었다 해서 그 올가미에 속박 안 될 수가 있나요? 어떠한 좋은 물건을 가지고 속박을 해도 죄수는 속박 당했을 뿐이야. 다이아몬드로 만든 것을 가지고 속박을 했다손 치더라도 속박당하지 않는 것 보다는 못하잖습니까? 다이아몬드로 만든 수갑이더라도 수갑이 채워진 그 사실이 엄청난 일이고, 중요한 것은 그 수갑으로부터 벗어나는 일밖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그 말입니다. 부처라고 하는 것. 조사라고 하는 것. 이 훌륭하고 존귀한 명칭, 존귀한 말. 이것이 “시상계저명구(是賞繫底名句)다” 아주 보기 좋은 올가미다 이겁니다. 보기 좋은 올가미의 명구, 좋고 유명한 구절이다 이거지. 우리는 전부 부처니, 조사니 하는 그 올가미에 매여 있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올가미에 매여가지고 살아가고 있잖습니까?

 

우리 불자들은 사실 전부 올가미에 걸려서 살아가고 있다 구요. 올가미에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천배, 만 배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올가미에 매여가지고, 절 한배만 해도 망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덮어놓고 불교를 떠나있는 것이 올가미에 매이지 않는 것이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에 있으면서 떠나 있는 것이다.”

 

  

?欲識三界?아

이욕식삼계마

 

  그대는 삼계라고 하는 것을 알고 싶으냐? 삼계가 도대체 뭔지? 우리가 욕계. 색계. 무색계 흔히 그러잖아요. 욕망의 세계, 물질의 세계, 또 물질마저 벗어난 고차원의 정신세계, 이것을 욕계, 색계, 무색계라 그런다 구요.

 

  

不離?今聽法底心地니

불리이금청법저심지

 
  그대가 지금 이 설법 소리를 듣는 바로 그 마음자리를 벗어나 있지 않다. 이 한마음에서 욕계니 색계니 무색계, 천당, 지옥이니 하는 것이 벌어진다 이거지. 이 한 마음자리에서 벗어나서 도대체 또 무엇이 있느냐? 그래서 여기서는 해석을

 

  

?一念心貪은 是欲界요

이일념심탐   시욕계

 


  그대들의 한 생각의 마음이 탐심 하는 것! 무엇이든 탐욕하면 욕심의 세계다. 우리들은 늘 탐욕심이 일어나죠. 좋은 것 보면 탐심이 나고, 신문광고에서 근사한 것이 있으면 그것도 갖고 싶고, 가다오다 새 아파트 보면 한번씩 쳐다보고, 이것이 탐심의 발로이거든요.

 

  

?一念心瞋은 是色界며

일일념심진   시색계

 

  그대들의 한 마음 성내는 것. 내 마음이 안 좋으면 화가 싹 나잖아요. 밖으로는 표현을 안 해도 속으로는 꼬롬해가지고 있는, 그런 마음을 짓는 것. 이것이 삼계 중에 색계에 해당된다.

 

  

?一念心癡는 是無色界라

이일념심치   시무색계

 

  그대들의 한마음! 어리석은 이것이 무색계다. 욕계. 색계. 무색계를 돌아다닌다. “삼계를 벗어난다.” 하는 이 말은 불교에서는 걸핏하면 하는 말 아닙니까? 삼계로부터 해탈! 삼계로부터 벗어나야 된다하는 이 말은 자나 깨나 하는 소리인데 벗어나야하는 그 삼계는 도대체 무엇이냐? 탐. 진. 치 이것이다.

 

  

是?屋裏家具子니라

시이옥리가구자

 
  너희 집에 있는 가구다. 무슨 밥 해먹는 기구, 화장대, 책상 이것저것 펼쳐놓은 그런 가구다. 탐. 진. 치가 너희 집 가구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의 집속에 이 가구 들여놓지 않은 사람 한명도 없지요? 이 가구, 평소에는 없는 것 같아도 어느 날 또 불쑥 나타나지. 마음이 편안 할 때는 세 가지 가구가 하나도 없어. 텅 빈 방으로 여겨지다가 어느 순간 쑥 나타납니다. 이런 가구가 나에게는 없었구나 싶었는데 쑥 어디서 나타난다구요. 이것이 습관이 된 사람은 진심의 가구도 잘 나타내고, 또 집에다가 화내는 가구를 꽉 채워놓고 사는 사람도 있고 또 욕심의 가구 또한 꽉 채워놓고 사는 사람도 있고, 불교공부를 해서 어지간히 되었다는 사람도 평소에 편안할 때는 하나도 없는데 어느 순간 경계를 만나면 그러한 세 가지 경계가 불쑥불쑥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거지. 길가다가도 나타나고.   

     

 三界不自道我是三界요

삼계불자도아시삼계

 

  삼계가 스스로 내가 삼계(탐심. 진심. 치심)다. 이것을 내가 탐심이다. 내가 진심이다. 치심이다 이렇게 스스로 그렇게 하지를 아니해! 내가 그때그때 그런 가구를 불쑥불쑥 드러내는 거지. 가구라고 친다면 그 세 가지의 탐. 진. 치를... 본래 탐심. 진심. 치심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어느 순간 나타나는 거지. 본래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화가 나더라도 화를 내지 않아야 되죠. 본래 탐심을 가지고 있거나 진심을 가지고 있거나 치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데 어느 상황에서 그것이 나타나는 것이다. 본래는 없는 것이다 이 뜻입니다.

  

 

還是道流의 目前靈靈地照燭萬般하야

환시도류   목전영영지조촉만반

 

  도 닦는 여러분들이여! 눈앞에서 아주 신령스러운 그것이 “조촉만반(照燭萬般)” 만 가지를 환히 비춘다. 조촉(照燭)은 비춘다는 뜻입니다. 촛불을 켜서 비추어 본다. 만 가지 상황들을 다 이렇게 비추어 보고서

 

  

酌度世界底人이 與三界安名하나니라

작탁세계저인   여삼계안명

 
  세계를 헤아리며 만 가지를 바라본다. 저 사람은 마음이 드는 사람, 저 사람은 싫은 사람, 이것은 마음에 드는 소리. 저것은 싫은 소리. 이렇게 해서 탐. 진. 치는 거기서 자꾸 생기는 거지. “작탁세계(酌度世界)” 라고 하는 것은 눈앞에 펼쳐진 모든 상황들을 헤아리는 그 사람이 곧 삼계와 더불어 이름을 안명(安名)했다. 삼계라고 하는 이름을 만들었다. 그래서 삼계가 생긴 거지. 본래 삼계가 있어서 삼계가 된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 보통 삼계해탈, 또 삼계를 벗어난다는 것을 “출삼계(出三界) 파지옥(破地獄)”이라 해서 종을 칠 때도 파지옥(破地獄) 출삼계(出三界)지옥을 깨뜨리고 삼계에서 벗어난다. 하는 염불을 하거든요. 그와 같이 삼계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는 ABC이고 기본적인 사고로서 염불에서나 경전에서 흔한 말인데 여기서 임제스님께서 아주 시원스럽게 삼계라고 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세계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천체망원경을 가지고 별을 보고서 어디쯤에 있는 별이 욕계, 색계, 무색계다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으로부터 탐. 진. 치. 삼독이 그러한 세계를 만든 것이 곧 삼계다 이거지. 여기서는 “너희들 집에 들여 놓은 가구다” 이렇게 표현해 버렸잖아요. “너희들 집에 있는 가구니라” 가구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때에 따라서 이것이 상황을 살펴 “목전영영지조촉만반(目前靈靈地照燭萬般)” 마음이 어떤 상황을 살펴보고, 또 어떤 사건을 당했을 때 거기서 살펴서 만들어 내는 것이며 그것을 탐. 진. 치라고 이름하고 욕계. 색계. 무색계라고 이름 하게 되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삼계는 삼독심이다” 라고 제가 제목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삼독심(三毒心)과 삼계! 이 문제만 우리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 또 이 단락에서 임제스님의 견처, “나의 산승견처는 팔만대장경처럼 많고 복잡하지 않다” “지시평상(祗是平常)이며 착의긱반(著衣喫飯)이다” “밥 먹고 옷 입고 하는 일이지 다른 것 없다” 하는 이 표현들은 아주 뛰어난  내용들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7 무비스님 - 누구와도 인격적 만남, 책 놓지 않는 깨어 있는 스님 file 短長中庸 2011.12.28 5702
»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8강 短長中庸 2009.12.15 5640
55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7강 短長中庸 2009.12.15 5254
54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6강 短長中庸 2009.12.15 8930
53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5강 短長中庸 2009.12.15 4896
52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4강 短長中庸 2009.12.15 4763
51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3강 短長中庸 2009.12.15 5479
50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2강 短長中庸 2009.12.15 4595
49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1강 短長中庸 2009.12.15 4601
48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40강 短長中庸 2009.12.15 4909
47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39강 短長中庸 2009.12.15 4840
46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38강 短長中庸 2009.12.15 4472
45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 20주년 기념법회...신심명) 녹취록 제37강 短長中庸 2009.12.15 5235
44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 20주년 기념법회...신심명) 녹취록 제36강 短長中庸 2009.12.15 4806
43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 20주년 기념법회...신심명) 녹취록 제35강 短長中庸 2009.12.15 5449
42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 20주년 기념법회...신심명 원문) 短長中庸 2009.12.15 4874
41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34강 短長中庸 2009.12.15 3254
40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33강 短長中庸 2009.12.15 3215
39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32강 短長中庸 2009.12.15 3409
38 無比스님 임제록 강의 (여여선당) 녹취록 임제록 31강 短長中庸 2009.12.15 351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