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76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8. 眞心四儀 진심사의 (28)

 

 

我慢懈怠如是等人의 所不能入이라

아만해태여시등인   소불능입

據此則 通四儀也라

거차칙 통사의야

 

圓覺經에 云 하사대 先依如來奢摩他行하야 堅持禁戒하고

원각경   운        선의여래사마타행     견지금계

安處徒衆하야 宴坐靜室이라 하시니 此는 初習也요

안처도중     연좌정실            차   초습야

 

永嘉가 云 하사대 行亦禪坐亦禪이며 語默動靜體安然이라

영가   운        행역선좌역선     어묵동정체안연

據此컨댄 亦通四儀耳라 總論功力컨댄 坐尙不能息心이어든

거차     역통사의이   총론공력     좌상불능식심

況行住等으로 豈能入道耶리요 若是用得純熟底人인댄

황행주등     기능입도야     약시용득순숙저인

 

千聖이 興來라도 驚不起하고 萬般魔妖라도 不廻顧어든

천성   흥래     경불기     만반마요     불회고

豈況行住坐中에 不能做功夫也리요.

기행행주좌중   불능주공부야

 

如人이 欲讐恨於人하야도 乃至行住坐臥와 飮食動用 하는

여인   욕수한어인       내지행주좌와   음식동용

一切時中에 不能忘了하며 欲愛樂於人도 亦復如是 하니

일체시중   불능망료     욕애낙어인   역부여시

 

且憎愛는 有心中事로대 尙於有心中에 容得이어든

차증애   유심중사     상어유심중   용득      

今做功夫는 是無心事니 又何疑四儀中에 不常現前也리요

금주공부   시무심사   우하의사의중   불상현전야

只恐不信不爲언정 若爲若信하면 則威儀中에 道必不失也라.

지공불신불위     약위약신     칙위의중   도필불실야

 

 

그런 사람은 제한다 이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여기에 제외 된다 이 말이죠. 의혹이 있는 사람. 불신하는 사람. 비방하는 사람. 중죄 업 장이 있는 사람. 아만이 있는 사람. 해태 한 사람은

 

我慢懈怠如是等人의 所不能入이라 하시니

아만해태여시등인   소불능입

 

所不能入(소불능입)이라 하시니

 

능히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거한다.

여기에 제외된다 이 말이죠.

제외된다 라고 그렇게 하셨으니,

 

據此則(거차칙)

 

여기에, 이런 가르침에 열거한 즉 은,

이것은 여기까지가 말하자 면은 기신론 이야기지요.

기신론 이야기가 여기까지 쭉 내려왔습니다.

여기에 근거한 즉은

 

通四儀也(통사의야)라

 

네 가지의 거동에 통한다 네 가지 거동이란

行 住 坐 臥(행 주 좌 와)! 앉고. 걸어 다니고. 머물러 있고 눕고 하는 이런데 다 통한다 이 말이죠. 어디 통하지 않는 데가 없어요. 

 

앞에 의혹 불신 비방 중죄 업장 아만 해태 이것만 없으면, 그러면 行 住 坐 臥 어디든지

“아이고 나는 장사 하는데 되겠습니까?”장사도 좋다 이거죠. “나는 일이 많아서.” 일도 많아도 좋아.  그런데

“나는 사람들 하고 대화를 해야 돼.” 대화를 해도 좋아 상관없어요. 여기에 이제 상관없는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있어요. 이야기가 될는지 안 될 는지는 모르지마는 아무 상관없이 됩니다.

 

일하는 것. 장사하는 것. 뭐 아무리 고된 일을 해도 상관없어요. 고된 일 하는 것 하고 기도하는 것 하고 아무 관계없이 됩니다. 고된 일 해도 기도 되고. 고된 일 해도 참선도 되고. 염불도 되고. 주력도 되고 아무 상관없이 돼요.  

 

 뭐 편안하고 일 없고 그냥 선방에 가서 딱 앉아 있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일이 많다고 해서, “아이고 나는 집안에 일이 많아서.” 일 많은 것 하고 기도 하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자세하게 그 이야기가 바로 뒤에 나와요.

 

그러니까 하는 일이 많아 가지고 공부가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순전히 빨간 거짓말입니다. 절대 그것은 해당 안 되는 소립니다.

 

圓覺經(원각경)에 云(운)하사대

 

원각경에 이르대,

 

先依如來奢摩他行하야

선의여래사마타행

 

원각경에 있는 말을 또 하나 이끌어 옵니다.

먼저 如來奢摩他行(여래사마타행)을 의지해서,

 

이것도 여래 사마타 행이라고 하는 것은 그칠 止(지)자. 아까 지(止)자를 이야기 했지요. 모든 생각을 고요히 그쳐버리는 그런 상태. 그것을 의지해 가지고

 

堅持禁戒(견지금계)하고

 

禁戒(금계)! 말하자 면은 자꾸 나부대고 공부하는데 방해되는 그런 요소들, 그것은 말하자 면은 공부하는데 계이거든요. 말을 하지 마라. 선방의 계율은 특별해요. 또는 신문을 보지 마라. 책을 보지 마라. 밥을 많이 먹지 마라. 이런 것이 아주 사실은 선방에 큰 계라고요.

 

살생하지 마라. 도둑질 하지 마라. 그런 것은 이야기가 안돼요. 그러니까 어떤 질서. 자기가 처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지켜야 할 어떤 질서! 禁戒(금계)를 굳게 가지고,

 

安處徒衆(안처도중)하야

 

여러 사람 있는데, 이것은 원각경에 있는 말이죠. 도중에 안처해서. 대중들하고 같이 수행하는데 편안히 처해 가지고서

 

宴坐靜室이라 하시나

연좌정실

 

  고요한 방에 편안히 앉아라고 하시나,

  그런 말을 원각경에 하고 있지마는 이 말이죠.

  그러나 이것은

 

此는 初習也요

차   초습야

 

초학자들이 익히는, 처음에 익히는 것이다 이 말이죠. 처음에 익히는 것이다. 그것을 처음에 꼭 누구나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은 아니 예요. 그런 경우도 있고 그 다음에

 

永嘉(영가)가 云(운)하사대

 

영가대사가 말 하기를

 

行亦禪坐亦禪이며 語默動靜體安然이라.

행역선좌역선     어묵동정체안연

 

이것이 아주 좋은 말이거든요.

行亦禪(행역선)! 걸어 다닐 때도 참선,

坐亦禪(좌역선)! 앉아도 또한 참선.

臥亦禪(와역선)! 누워있어도 또한 참선.

그것에 아무 관계없이

 

語默動靜體安然이로다.

어묵동정체안연

 

어(語)는 누구하고 말할 때, 대화를 나눈다. 默(묵) 혼자 묵묵히 있다. 動(동)은 일을 한다. 걸어간다 하는 그런 움직이는 것. 또 淨(정)자는 고요히 있다.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語默動靜(어묵동정)!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 마음의 체! 마음의 체는 편안하다. 자기가 공부하는 자세는 편안하다 이 말이죠. 아무 상관없다 그런 이야기 입니다. 이라 하시니,

 

據此(거차)컨댄

 

이것을 인정 하건댄

 

亦通四儀耳(역통사의이)라

 

또한 네 가지 거동에 통할 따름이라. 귀 耳(이)자는 귀하게 생기지 않고 그것 뿐이다. 그럴 따름이다. 이렇게 새깁니다. 또한 네 가지 거동에 통할 뿐이니라. 

 

總論功力(총론공력)컨댄

 

공력을 총력 하는데,

다 한번 전체적으로 이야기 해보면

 

坐尙不能息心이어든

좌상불능식심

 

  이것을 사실 영명하게 한번 따져보면은 앉는 것도

  오히려 능히 마음을 쉬지 못하거든 어찌 하물며

 

況行住等으로

황행주등

 

行住等(행주등)으로

 

행하고 걸어 다니고

또 어디 머물러 있는 그런 것으로서

 

豈能入道耶리요.

기능입도야

 

능히 도에 들어가리요.

사실 그런 면도 있다 이거죠.

 

若是用得純熟底人인댄

약시용득순숙저인

 

  그런데 순숙한 사람. 공부에 익숙한 사람.

  염불에 익숙한 사람. 기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千聖이 興來라도 驚不起하고

천성   흥래     경불기

 

일천 성인이 온다 하더라도, 달마가 온다. 관세음보살이 온다. 석가가 온다 하더라도 제대로 공부가 된 사람들은 놀라서 일어서지 않는다.

 

 기도를 해서 관세음보살을 자꾸 불러 가지고 그야말로 일념삼매에 들어 가버리면은, 그 때는 진짜 관세음보살이 와도 소용이 없어요. 온 줄도 모르고. 온 줄 알아도 그까짓 것 나하고 관계가 없다 이거죠. 그래서

 

驚不起(경불기)라

 

일천성인이. 관세음보살이 천 명이 나타나서 온다 하더라도 놀라서 일어나지 않는다. 까딱도 하지 않는다. 그만치 정신이 강화가 되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일천 성인이 온다 라고 하는 말은,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 아닙니까? 공부하는 사람은 성인을 만나거나, 꿈에 부처님을 보았다 그러면 그날 기분이 좋아 가지고 그 날이 아니라 생각만 하면 몇 날간이나 기분이 좋죠.

 

그것이 왜 그렇겠어요? 자기 공부가 없어서 그래요. 자기의 공부가 있으면 부처님이 꿈에 나타난 것 그것 에이 쓸데없다 하고 쫓아버리지. ‘부처님 다른데 나 가보시오 하고 보내버리고 나는 내 공부하기도 바쁘니까 부처님 다른 데로 가보시오.’ 그래야지. 그래야 진짜 공부 인이지.

 

꿈에 부처님 봤다고 ‘아이 기분이 좋다고’ 그냥 들떠 가지고 이것은  공부 인이 아니라고요. 혹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스님들도 보면은 그것이 아깝고 좋아서 버릴 줄을 몰라요. 좋아 가지고 버릴 줄을 모르면 그런 현상이 또 나타나요. 그것은 좋은 공부가 아니 예요.

 

절대 공부 하다가 경을 읽다가 기도 하다가 그런 현상이 나타나거든요. 그것은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기도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되려면은 무념이 되어야 돼요. 부처님이고 관세음 보살이고 그렇게 침범할 틈이 없어야 돼요. 여기 보세요,

 

千聖이 興來라도 驚不起하고

천성   흥래     경불기

 

성인이 오지도 않지 만은,

  온다 해도 놀라서 일어나지도 아니해.

  반대로 또

 

萬般魔妖라도 不廻顧어든

만반마요     불회고

 

만 가지의 마구니와 요귀가 온다 하더라도

머리를 돌이키지 아니해.

 

不廻顧(불회고)!

 

회고 하지 않는다 이거죠.

 

부처님의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그림 보셨어요?  온갖 험상궂은 사람. 유혹하는 어떤 모습. 마구니가 춤을 추는 모습 별별 그런 모습을 가지고 부처님을 유혹 했지마는 눈 한번 돌리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좋은 입장이든지. 그 반대로 안 좋은 입장이든지 그것을 역경계! 순경계! 이렇게 말 하는데, 역경계가 되었던지 순경계가 되었던지 거기에 절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그런 공부가 되어야 된다. 만 가지의 마구니와 요귀라 하더라도 廻顧(회고)! 돌아보지를 않는다.

 

성인이 와도 까딱도 안하고, 마구니가 와도 까딱도 안하고 이쯤 되어야 그래도 듬직하게 마음이 무게가 있는 것이지. 그것을 뭐 몸으로 치면 조금만 추워도 감기가 걸리고 조금만 더워도 어떻고 조금만 어디 다녀와도 피곤해서 아야 아야 하고, 그것은 그만치 몸이 약하다는 뜻이거든요.

 

마음이 약한 사람은 어떠냐?  잠깐 부처님을 봤다. 관세음보살을 봤다고 그만 혹 하고, 또 안 좋은 어떤 모습을 봤다 하면은 그만 또 거기에 혹 해 가지고서, 안 좋은데 이렇게 꺼달리고 저렇게 꺼달리고 그래서 잘못하면은 귀신이 접하기도 하고, 신이 접해 가지고 무슨 아는 소리도 하고 나중에는 물리치려 해도 물리 칠 힘도 없는 거죠.

 

 그래서 다른 신이 접하는 것은 그만치 자기 정신이 약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자기 정신이 튼튼한 사람은 절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자기 의지가 약하면은 온갖 잡다한 신들이 들끓고 있는데 접하게 된다고요.

 

몸에 틈이 생기면 병이 침범하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구니가 침범하고 귀신이 침범한다고요.  온갖 신이 침범해 가지고 나를 조종하고 나를 부리고 그래서 그 때는 내가 없어지는 거죠. 신이 하자는 데로 하는 거예요

 

그전에도 이야기 했지마는 그 전에 택시타기 아주 어려울 때, 이 놈의 신은 시내만 나가면 시내버스 타기 싫어하고 계속 택시만 타자고 그래요. 돈도 없는데 계속 택시만 타고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어디를 가버리고 남에게 놀아나는 거죠.

 

그래서 우리 불교라고 하는 것은 마음운동 하는 도구를 가지고서, 내 마음을 아주 튼튼하게 강화해 가지고 내 인생을 내 의지대로 영위해 나가는 그런 것이, 불교공부 또는 불교신앙의 목적이다. 우리가 그렇게 정리를 해야 될 줄 압니다.  그 다음에

 

마구니가 온다 하더라도 돌아보지 않거든 

 

豈況行住坐中에

기황행주좌중

 

어찌 하물며 걸어 다니고 또 머물러 있고

또 앉아 있는 가운데

 

不能做功夫也리요.

불능주공부야

 

어찌 능히 공부를 짓지 못하겠느냐? 

 

공부를 못할 것이 뭐 있느냐 이거죠. 걸어 다니면 걸어 다니고. 앉아있으면 앉아있고 누구하고 대화하면 대화하고 밥지으면 밥짓고 청소하면 청소하고, 빨래하면 빨래하고 볼일이 있어서 차 타고 어디 가면 가고, 그것 하느라고 공부 못할 것이 뭐가 있느냐 이겁니다.

 

만 가지 마구니가 와도 돌아보지 않고 일천 성인이 온다고 해도 내가 까딱도 안 하는 판인데. 여기 이제 좋은 비유가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를 여기에다 딱 이야기 해 놓았어요. 

 

   如人이  欲讐恨於人하야도  乃至行住坐臥와

   여인    욕수한어인             내지행주좌와

 

     飮食動用하는    一切時中에 不能忘了하며

   음식동용        일체시중     불능망료

 

여기 한 가지 있어요. 이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컨대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원결 관계가 다 있어요.

뭐 아버지를 죽인 원수든지. 내 재산을 망하게 한 원수든지. 나를 분노하게 만든 원수든지. 내 무엇을 빼앗아간 원수든지 원수를 갚고 싶다 이 말입니다.

 

원수를 갚고자 恨(한)! 원한을 갚고자 하는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문제를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이 밥 먹는다고 원한이 잊어져요?  걸어 다닌다고 원한이 잊어져요?  누구하고 이야기 한다고 그런 사람이 그 원한이 잊어질 줄 압니까? 안 잊어져요. 

 

乃至行住坐臥와 飮食動用하는

내지행주좌와   음식동용

 

  음식을 먹고 움직이고 하는데

 

一切時中에 不能忘了하며

일체시중   불능망료

 

능히 잊어버리지를 못해.

 

어떤 사람이 원한 관계가 마음속에 딱 있으면요, 환장하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지고서 ‘이놈 죽여야지. 어떻게 하든 갚아야지.’ 그렇다고요. 그런 것을 안 겪어본 사람들은 참 행복한 사람 이예요. 친구 사이에도 그렇고 이웃사이에도 그렇고. 살다가 보면은 많지요.

 

그전에 신문에 어느 집을 짓는데 바로 옆에 이층을 지어 가지고 이렇게 창문이 들어다 보인다고 했다던가  해 가지고 나중에 이 사람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어요. 이사를 가 가지고 사니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 분노를 도저히 못 참아서 그래 가지고 그 집에 가서 죽였잖아요. 이사 가 가지고 몇 달 있다가 그쯤 되면 그냥 잊어버리고 살아야 되거든요

 

그런데 못 잊고 나중에 와서 금년 봄엔 가 그것이 신문에 났지요. 못 잊고 쫓아와 가지고 살인을 했잖아요. 그런 사람은요, 누구하고 어떤 관계라도 아무리 즐거운 일을 해도 항상 머리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한가지 예에요.

 

不能忘了(불능망료)하며

 

능히 잊어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염불을 잊어버려요?  자기가 안 해서 그렇지 관세음보살을 잊어버려요? 안 하니까 잊어버리지. 하나도 안 잊어버린다고요. 그런 원한 관계도 안 잊어버리고 그렇게 잘 기억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잊어버리면 말도 아니죠. 여기 그 다음에 다른 예입니다.

 

欲愛樂於人(욕애낙어인)도

 

사람을 좋아한다 이거죠. 누구를“사랑한다.”

사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잘 알 거예요.

그런 사람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니

 

또한 다시 이와 같애. 안 그래요? 잔다고 잊어버려요?

친구하고 어디 즐거운데 여행 간다고 잊어버려요? 절대 안 잊어버려요. 친구하고 여행은 갔지만 마음은 다른데 가 있어요.

 

 누구를 미워하는 일도 마찬가지죠. 누구를 좋아하는 일도 마찬가지. 밥을 먹어도 그 생각. 잠을 자도 그 생각. 좋아하는 일이나 미워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예요. 어디 일한다고 설거지 한다고 빨래한다고 잊어버려요? 천만에 안 잊어버려요. 어디 가서 장사하고 무슨 고된 노동을 한다고 잊어버려요? 절대 안 잊어진다고요. 

 

그런 일들도 또한 그와 같은데 어떻게 관세음보살을 잊고  화두를 잊느냐 이거죠. 亦復如是(역부여시)하니, 

 

且憎愛(차증애)는

 

憎(증)! 미워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은.

 

有心中事(유심중사)로대

 

有心中(유심중)!

 

마음이 있는 유심 중에 일이로 대

   

尙於有心中(상어유심중)에

 

오히려 유심 가운데 또한

 

容得(용득)이어든

 

용득(容得)! 수용한다 이 말이죠. 그것을 딱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자나깨나 어디를 가나 일을 하나, 그것을 딱 용납하고 수용하고 있거든.

 

今做功夫(금주공부)는

 

  지금의 기도를 하든지 참선을 하든지 하는

  이 공부하는 일은

 

  是無心事(시무심사)니

 

  무심사예요.

  무심이 되고자 하는 그런 일이다. 무심사니,

 

又何疑四儀中에

우하의사의중

 

어찌 四威(사위)! ‘행 주 좌 와’ 가운데서

 

不常現前也리요

불상현전야

 

항상 현전하지 않는 것을 의심하겠는가.

 

이것은 틀림없이 된다 이거죠. 사랑하고 미워하고 좋아하는 일도 항상 안 잊어버리고 하는데 이 공부하는 일이 그보다 천 배 만 배 더 좋은 일인데 이것을 잊어버렸을 것이냐?  ‘행 주 좌 와’ 누워있던 앉아있던 항상 내 앞에 턱 나타나서 항상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을 수가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只恐不信不爲언정

지공불신불위

 

只恐(지공) 다만 염려하는 것은

 

두려울 恐(공)자인데 다만 염려하는 것은 뭐냐? 불심이죠. 안 믿어요. 이것을 믿지 않으니까 도대체가 안 되는 거죠. 그리고 또 한가지는 뭐죠? 不爲(불위)죠. 안 해요.

하지를 않는다 이 말입니다. 그것이 제일 염려되는 거죠.

 

只恐不信不爲언정

지공불신불위

 

믿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 것이 염려될 지언 정,

 

若爲若信(약위약신)하면

 

만약 공부를 하거나

또는 그것을 철저히 믿거나 할 것 같으면

 

則威儀中(칙위의중)에

 

위(威) 가운데

 

道必不失也리라.

도필불실야

 

儀(의)! 사의(四儀)라 그래요. ‘행 주 좌 와’ 네 가지 위라. 네 가지 거동.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죠 뭐. 이 네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지 않습니까? ‘행 주 좌 와!' 그 가운데서 도가 반드시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기도를 하면 기도. 화두면 화두. 주력이면 주력. 염불이면 염불 그 어떤 일에도 믿고 한다면은 틀림없이 이것은 지속되고 꾸준히 잘 된다. 그러니까 그 예를 참 잘 들었잖아요.

 

어떤 원한 관계에 있어서 그것을 못 잊을 경우 또는 사람을 잊지 못해서 그것을 못하는 경우! 그런 일도 한 순간도 잊지않고 이렇게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데,  염불이라든지 참선 기도 이것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이거죠.

 

 그리고 슬픈 일도 그래요. 여기는 분노와 사랑! 두 가지를 이야기 했는데, 슬픈 일! 예를 들어서 부모가 돌아가셨다. 아주 예기치 않던 사람이 돌아가셨으면 슬픔이 가득 차 있습니다.  정말 발 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슬픔에 꽉 차있어요. 온 우주가 그냥 무너질 듯이 슬픈 거죠

 

그런데도 참 묘하게도 그 사람은 밥 때가 되면은 밥을 다 찾아 먹어요.  잠 잘 때가 되면은 잠을 다 자고 그리고 장례준비를 다 한다고요. 준비하는데 뭘 어디 가서 주문을 하고 뭐 어디다 전화하고 전부 다 하고. 예를 들어서 문상을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 누가 와서 부주 돈을 얼마를 냈는지 전부 기억을 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것을 기억을 하고 분별을 하고 활동을 그대로 평상시처럼 한다고 해서 슬픔이 떠나느냐?  슬픔은 슬픔대로 가득히 가슴속에 가만히 있어요. 친구가 문상을 와 가지고 그 동안 밀렸던 이야기 충분히 저 뒤따라 가서 쉬면서 할 수 있어요. 그러면 한다고 그 사람이 그 이야기 하는 동안에 슬픔이 가시느냐? 천만에 ,

 

슬픔은 슬픔대로 그 사람의 온 몸에 가득히 있고. 가득히 있으면서 친구하고 할 이야기 다하고, 시장에 가서 준비할 것 다 주고 받고. 무슨 이렇게 물건 사는데요, 물건 사는데 속이는지 사기를 치는지 바가지 씌우는지 다 알고. 다 알면서도 슬픔은 슬픔대로 다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앞에 여기서 사의(四儀) 가운데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일하는 것 하고, 관계없이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 한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슬픔은 슬픔대로 있으면서 자기가 할 일은 할일 대로 다하고 할 일까지 다하면서  슬픈 대로 슬픔은 그대로 있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제대로 하면은요, 기도를 제대로 하면은 어떤 일을 하든지 기도는 기도대로 가슴속에 있어요. 있고 자기하는 일 설거지를 하나 안 놓치고, 운전을 하나 운전할 때 화두 들면은 어떻게 됩니까?  잘못하면 사고 낼 것 아닙니까?

 

천만에 화두 제대로 드는 사람 염불 제대로 하는 사람 기도 제대로 하는 사람 사고는 더 안내요. 괜히 다른 망상하다가 사고를 내지. 망상하다가 사고내지 관세음보살 열심히 하다가 사고 낸 적은 없어요.

 

그래서 내가 예를 든 것이 딱 맞잖아요. 여기에 보조스님이 예를 든 것. 원수를 갚고자 하는 일! 사람을 사랑하는 일! 내가 이야기 했던 어떤 슬픔을 당했을 때의 일! 어떤 경우라도 똑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요, 참으로 묘한 게 되어서 아무 관계없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마음공부를 하는데 사의 가운데 어떤 상황이라도 다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너무 고집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해야만 된다 라고 하는 그런 고집을 하지 말라 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오늘 진심직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0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40강(眞心所往) 短長中庸 2010.01.01 4502
39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39강(眞心所往) 短長中庸 2010.01.01 4542
38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38강(眞心無知) 短長中庸 2010.01.01 4420
37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37강(眞心無知) 短長中庸 2010.01.01 4630
36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36강(眞心驗功) 短長中庸 2010.01.01 4486
35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35강(眞心驗功) 短長中庸 2010.01.01 4265
34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34강(眞心功德) 短長中庸 2010.01.01 4336
33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33강(眞心功德) 短長中庸 2010.01.01 4310
32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32강(眞心出死) 短長中庸 2010.01.01 4065
31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31강(眞心出死) 短長中庸 2010.01.01 4422
30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30강(眞心所在) 短長中庸 2010.01.01 4430
29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29강(眞心所在) 短長中庸 2010.01.01 4331
»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28강(眞心四儀) 短長中庸 2010.01.01 4762
27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27강(眞心四儀) 短長中庸 2010.01.01 4302
26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26강(眞心息妄) 短長中庸 2010.01.01 5128
25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25강(眞心息妄) 短長中庸 2010.01.01 3088
24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24강(眞心息妄) 短長中庸 2010.01.01 3572
23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23강(眞心息妄) 短長中庸 2010.01.01 4173
22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22강(眞心息妄) 短長中庸 2010.01.01 3356
21 無比 스님 진심직설 법문 제21강(眞心息妄) 短長中庸 2010.01.01 3381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