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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眞心所在 진심소재 (29)

 

 

 

或이 曰 息妄心而眞心이 現矣라 하시니

혹   왈 식망심이진심   현의

然則 眞心體用이 今在何處이닛고

연즉 진심체용   금재하처

曰 眞心妙體가 遍一切處하니 永嘉가 云 하사대

왈 진심묘체   변일체처     영가   운

不離當處常湛然호대 覓卽知君不可見이라 하시고

불리당처상담연     멱즉지군불가견

 

經에 云 하사대 虛空性故며 常不動故며

경   운        허공성고  상부동고

如來藏中에 無起滅故라 하시고

여래장중   무기멸고

 

大法眼이 云 하사대

대법안   운

處處菩提路요 頭頭功德林이라 此는 卽是體所在也요

처처보리로   두두공덕림     차   즉시체소재야

眞心妙用이 隨感隨現호미 如谷應聲이니

진심묘용   수감수현     여곡응성

 

法燈이 云하사대 今古應無墜라 分明在目前이로다.

법등   운       금고응무추   분명재목전

片雲은 生晩谷하고 孤鶴은 下遙天이라 하시니

편운   생만곡     고학   하요천

 

所以로 魏府元華嚴이 云 하사대

소이   위부원화엄   운

佛法이 在日用處하며 在行住坐臥處와

불법   재일용처     재행주좌와처   

喫茶喫飯處와 語言相問處와 所作所爲호대

끽다끽반처   언어상문처   소작소위

 

 

오늘은 아홉번째 진심소재에 대한 공부를 하겠습니다.

진심소재(眞心所在)! 우리가 마음 마음 하는데 마음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아는 게 참 중요하지요.

 

 대개 불교에 대해서 전혀 상식이 없는, 말하자 면은 아주 순수한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라고 그렇게 물으면은 대개 가슴을 가르칩니다. 가슴속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해요.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라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 참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 불교에는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을 우선으로 하고, 마음이 이 세상의 모든 주체고 또 사람이 삶을 영위해 가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이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마음의 문제만 해결한다면 다른 여타의 문제는 전부 마음에 다 딸려온다. 그래서 불교 공부란 곧 마음공부다. 이렇게 단언을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소위 마음을 닦는다느니. 또 마음을 깨닫는다느니. 또는 마음을 관리한다느니 하는 그런 말들이 불교 안에는 아주 익숙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물이 손 안에 있던지. 아니면 집에 있던지. 어디에 있던지 있는 곳을 알면은 그것을 관리하기가 좀 쉬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안 이야기는 보면은 마음에 대한 어떤 본체와 또 그 마음의 작용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주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서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는 잡힌다고 볼 수가 있지요.

 

 그런데 이것이 어느 당체에 있느냐? 본체의 소재가 어디냐? 지금 우리는 여기 남산동 경전연구실 문수원이라고 하는 바로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죠. 현재 이 시간 내가 있는 곳! 소재! 내가 있는 곳은 바로 이곳이다.

 

 집에도 알릴 수가 있고. 어디 경찰서에 알릴 수도 있고. 또 친구에게 내가 있는 곳을 알릴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데! 또는 이 세상에! 또는 불교 안에 그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들어서도 알고 짐작으로서도 알고 경험으로서도 알고 또 누차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과연 이 있는 곳이 어디냐? 라고 하는 이 문제에 봉착하면은, 굉장히 뭡니까? 아주 애매 하고 또 불분명하고 뭐라고 할까 아리송하다고 할까? 그런 상황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진심직설이라고 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 중에서도 상당히 수준 있는 그런 가르침인데, 다른 여타 문제를 다 제쳐두고 아주 핵심적인 것! 핵심 중에 핵심!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것이 도를 닦는 일이 되었던지. 그냥 밥 먹고 사는 일이 되었던지. 뭐가 되었던지 간에 가장 핵심적인 일이 말하자 면은 마음의 문제라고 이렇게 우리가 단언을 하고, 그 마음! 그것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를 다루는 그런 아주 마음에 대한 전문적인 가르침이다 이렇게 봐도 좋아요. 정말 이것은 전문 서적이죠.

 

불교에 여러 가르침 중에서도 특히 진심의 문제! 이 마음의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그런 가르침이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은 상당히 핵심적이고 중요한 공부를 하는 것임과 동시에, 또 그렇다 보니까 그렇게 어떤 사물을 이해하는 것처럼, 그렇게 얼른 납득이 되는 그런 것은 또 아니 예요.

 

어떤 사물을 설명하면은 예를 들어서 뭐 이것은 무슨 꽃이다. 또 이것은 무슨 색깔이다. 이것은 붉은색이다. 푸른색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면은 그것은 얼른 이해가 가는데, 이 마음은 부정할 수는 없으면서도 그렇다고 어떤 사물처럼 꼭 히 찍어 내 가지고 지적할 수 없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참 부정적으로 하면서 그렇다고 얼른 납득도 안 되면서 그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보면은 보조스님께서 이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고충을 생각하고, 말하자 면은 마음의 소재에 대해서 당신의 말씀과 경전의 말씀, 또는 다른 과거의 마음을 깨달으신 분들의 말씀을 증거로 이끌어다가, 이렇게 우리에게 이해를 시키려고 하는 그런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或(혹)이 曰(왈)

 

혹자가 말하기를 이 말이죠.

 

息妄心而眞心 現矣라고 하시니

식망심이진심 현의

 

息妄心(식망심)이라.

 

망심을 쉬어버린다. 그런 망령된 마음! 망상! 불분명한 마음! 그것을 쉬어버린다면 참다운 마음이 나타난다. 그것은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벼를 방앗간에서 찧어 가지고서 겨를 다 날려 보내면은 쌀이 나타나는 것처럼, 그렇게 망심을 쉬어버리면은 진심이 나타난다 라고 그렇게 하시니,

 

然則(연즉)!   그렇다면은

 

眞心體用이 今在何處이닛고

진심체용   금재하처

 

진심의 참 마음의 체(體)와 용(用)이,  체는 본체고 용은 작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표현이죠. 용은 작용임과 아울러서 또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 표현이 작용이 되거든요. 그 표현을 하려면은 뭔가 어떤 본체가 있어야 그 표현이 됩니다. 그래서 체와 용이라고 두 가지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하지요.

 

체와 용이

 

今在何處(금재하처)이닛고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

우리가 국어공부 할 때 체언(體言)이니 용언(用言)이니 하는 것도 불교의 체와 용에서 나간 것입니다. 체언이니 용언이니 그런 말을 쓰죠. 체가 있고 작용이 있다. 체용이라는 말이 그렇게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체가 있고 그 작용이 있다 이 말이죠. 그것이 지금 당장에 어디에 있느냐 이거예요. 그 다음

 

  曰(왈)

 

  이 왈은 보조스님이 앞에서는 스스로 물어놓고

  여기서는 스스로 답을 하는 입장이죠. 왈,

 

眞心妙體가  遍一切處하니

진심묘체    변일체처

 

이것이 가장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답입니다.

마음이 어디 있느냐 라고 하니까

진심의 묘체가 遍一切處(변일체처)라고 그랬어요.

 

그 묘한. 아주 미묘한 체가. 왜 묘체라 했는가? 왜 묘자를 붙였느냐? 이것이 알쏭달쏭하거든요. 그야말로 묘하거든요.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있다고 하려니 까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고 그래서 묘(妙)라, 그러면서도 없는 것은 아니고 그래서 불교에서는 묘자를 잘 써요. 그래서 불가사의하다.

 

정말 묘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진정 이 세상에서 묘한 것은 이 마음!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묘한 것이죠. 그래서 마음의 본체에 대해서 묘(妙)자를 붙입니다. 진심의 묘체가

 

遍一切處(변일체처)!

 

일체 처에 두루 하다. 일체 처에 모든 것에 다 있다.

 

이것이 납득이 되든 안 되든 하이 튼 소화가 되든 안 되든 간에 무조건 외워 두세요.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은 모든 것에 다 있다 하면은, 알고 답을 했든. 모르고 대답했든 답은 맞는 답입니다. 일체 처에 다 있다.

 

 춘성 스님이라고 아주 근래에 큰 도인스님이 있었어요. 그 스님 회상에서 나도 도봉산 망월사에 그 스님이 선방을 차려놓고 수좌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나도 거기 가서 한 철 지낸 적이 있습니다.

 

아주 그릇이 커요. 기골이 아주 장대하고 마음이 아주 넓고 아주 훤출한 평소에 생활에서도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그런 스님이 계셨어요. 지금 열반 하신지 한 십년 가까이 됐나요 그런데, 나는 그 스님에 대해서 크게 뭐라고 할까? 깨달은바라고 할까? 내 나름대로 하이 튼 충격을 받은 그런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일인고 하면은,

 

 보통 등산객들이나 관광객들이 절에 이렇게 오면은 절 주변에서 무엇을 잘 안 하려고 하지요. 그런데 절 주변에 가서 음식을 만든다든지 뭐 여러 가지 어지르는 그런 것들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 안 하는데 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면 또 스님들이 기겁을 하고 막 쫓아냅니다. 저쪽에 멀리 가서 하라고. 절 주변에서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거든요. 신도님들도 안 좋아하고 스님들은 더 안 좋아한다고요.

 

그런데 내가 망월사에 그 때 여름에 한철을 살았는데 등산객들이 많이 와요. 도봉산 올라가는 등산 코스인데. 그런데 그 스님은 등산객이나 관광객들이 오는 것을 좋아하고 그 주변에 산에 가서 이렇게 밥을 짓거나 뭐 찌개를 끓이거나 하면 막 불러와요. 자기가 안 좋다고 이리오라고 이리 오라고 그래서 전부 절 마당으로 끌어 들여.  절 마당으로 끌어들여서 마당에서 하라. 왜 비탈진 데서 하느냐 이거죠.

 

그리고 또 비가 좀 오면은 전부 처마 밑으로 끌어들입니다. 비 맞지 말고 처마 밑으로 오라고. 법당 처마 밑에 와서 하라 이거예요. 고기를 굽든지 찌개를 하든지 밥을 하든지 전부 법당 처마 밑으로 전부 끌어들입니다. 내가 그것을 보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완전히 우리의 상식을 뒤바꿔놓는 일을 하시더라고 요. 다니면서 전부 끌어 들이는 거예요  비 맞지 말고 처마 밑에 와서 하라고. 뭐 등산객들 관광객들이 산에 와서 하니까. 술을 마시고 고기를 굽고 별별 일을 다 하거든요.

 

그런데 전부 처마 밑으로 끌어들여 가지고 처마 밑으로 들어오니까 뭐 방으로 들어오지 부엌에 들락거리지 엉망이 되는 거죠. 그것을 좋아하시는 거예요. 사람들이 와 가지고 그렇게 비를 안 맞고 하는 것을. 뭐 여기서 좀 끓여먹고 간들 무슨 흔적이 있습니까?  아무 표도 없거든요. 가버리면 그 뿐이죠.

 

그래서 대중들이 나와서 청소한번 하면 깨끗하게 끝내는데, 그것을 가지고 시시비비하고 옳으니 그르니 하고 되느니 안 되느니, 되느니 안 되느니 그래 봐야 한 시간 안에 다 해결되는 문제죠. 한 시간만 지나면 다 깨끗이 언제 있었더냐는 듯이 그런 허망한 일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못 참고 절대 안 되는 것처럼 선을 긋고 그런 식으로 하거든요.

 

그런데 그 스님은 법당 처마 밑이나 또 법당에 들어가도 아무 말도 안 해요. 그렇게 아주 그릇이 크고 마음이 툭 트이고 아주 자유 자재한 그런 근래에 참 보기 드문 그런 스님이셨어요. 나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스님을 한 사람만 뽑아라고 한다면은 춘성 스님이다  늘 그래요.

 

팔십이 되었는데도 자기 친구가 따로 없어요. 대중들과 함께 이렇게 공부하시다가 상경 죽비를 딱 치고, 잘 시간이 되면 어정 어정거려서 탁자 밑에 목침을 쌓아놓았는데 거기 가서 목침을 하나 딱 들고 나와요. 나와서 당신 깔고 앉았던 방석을 배에 딱 걸치고 그냥 누워요.  팔십 객의 잠자리가 그것 뿐이라고요. 그래서 대중들하고 큰 방에서 같이 자는 거예요.

 

보통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아주 큰 스님이라고 하더라도요 자기 방. 자기 이불. 폼 잡고 온갖 것 바로 주변에 사람들 못 오게 하고. 오려고 하면 무슨 절차를 그렇게 복잡하게 밟아 가지고 오고 그러거든요.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은 그런 것이 전혀 없어요. 정말 내가 본 중에 스님다운 툭 트인 스님이더라고 요. 에피소드가 많아요. 누가 재를 지낸다고 도인스님에게 재를 지내면 천도가 잘 된다고 해 가지고, 재물을 받아 가지고 올라오다가 그것을 다 줘버리고 오늘 재 잘 지냈다고 하고.

 

 그래 놓고 법당에 가서 위패를 세워놓고 염불 해 주고 아무 재장은 하나도 놓지않고 염불만 다 해버려요. 재장은 이미 다 주었다 이거죠.  다른 사람한테 다 큰 공덕 지었으니까 그것으로 재는 잘 지냈다는 거죠. 그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한용운 스님의 유일한 상좌예요. 딱 한 분뿐인 그런 상자인데 춘성이라고 봄 春(춘)자 재 城(성)자. 그 스님 밑에서 그 스님 모시고 살던 한철이 아주 저도 걸망 지고 다니면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 그런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一切處(일체처)에 들어있다. 언젠가도 내가 한번 이야기 했지마는, 젊을 때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는 중이었다던가. 그런데 목사가 뭐 기독교 믿으라고 자꾸 이야기를 하면서 뭐 하느님은 “무소부재다.”라고 말이지, 없는 데가 없다고 하느님 설명을 잔뜩 하는데,

 

그래서 춘성스님이 다른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지마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러면 하느님은 없는 데가  없다는 말이냐?”  없는데 가 없다고 그러니까 “그러면 하느님은 똥 통속에도 있겠네.” 그러니까 “아이 하느님한테 그런 망발이 어디 있느냐고 불경스러운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하면서 발끈 화를 내 가지고 스님을 그냥 사정없이 쏘아 부치더니, 나중에 그 사람이

 

“그러면 부처님도 없는 데가 없느냐고,”

“없는 데가 없지.” “그러면 부처님도 똥통 속에도 있겠네.” “아이 똥이 부처님인데 똥 통속에 있고말고 할 것이 뭐 있느냐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그런 일화도 있고, 그보다 더 아주 심한 일화가 있는데, 그것은 지금 할 수가 없어요 다음에 해야 돼요. (ㅎㅎㅎ~)

 

遍一切處(변일체처)!

 

일체 곳에, 모든 것에 다 있다 이런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 가슴을 가리키면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대답하는데 가슴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죠. 물론 가슴속에도 있습니다마는 가슴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내 몸 속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곳에 다 있다 라고 그렇게 이해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저기 범어동 하늘 끝, 저 멀리 있는 가물거리는 그 어떤 하늘 끝 별에 부처님이 있느냐? 아니면 마음이 있느냐?  그런다면은  물론 있는 것이죠. 그래도 있습니다.

 

永嘉(영가)가 云(운)하사대,

 

이것은 영가 증도가에 나오는 말씀인데

영가스님이 말씀하시기를

 

不離當處常湛然호대 覓卽知君不可見이라 하시고

불리당처상담연     멱즉지군불가견

 

不離(불리)!

 

떠나있지 않다. 어디를?

 

當處(당처)!

 

당처라고 하는 말은 바로 이 자리가 당처입니다.

현재 우리가 이렇게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 이 순간 이 자리가 바로 당처인데, 당처를 떠나지 아니하고 항상 湛然(담연)하다. 맑다 이 말입니다. 환하게 그렇게 밝고 맑게 항상 그렇게 있다 이거예요. 바로 이 순간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이겁니다. 그런데

 

覓卽知君不可見이라

멱즉지군불가견

 

그 바로 이 자리에 있으니까 찾아져야 될 것이 아니냐. 눈 앞에 모든 것이 소소 영영 하게 다 비쳐요. 이것은 연필이고. 이것은 책이고 뭐 마이크고 무슨 옆에 있는 것은 사람이고 온갖 것을 다 분별하는데, 그런데 마음은 어느것이냐?

 

覓卽(멱즉)!

 

찾을 覓(멱)자예요. 찾아본 즉 은

그대가 볼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가히 보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을 알 것이다.

 

찾아본 즉 은, 그대가 가히 볼 수 없음을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볼 수가 없어요. 이 자리에 있기는 있는데 보지는 못한다. 이것이 영가스님 말씀입니다. 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항상 환하게 있기는 있지 만은, 그러나

 

覓卽知君(멱즉지군)!

 

찾아보면 보이지가 않는다. 찾아지지 않는다.

그것을 당신들은 알 것이다.

 

君(군)! 군이라고 하는 말은 그대들은 아마 눈에 그렇게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이미 비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영가스님의 말씀을 이끌어왔고 그 다음에 

 

經(경)에  다른 경전에서 또 이런 말을 했어요.

 

云(운)하사대   말씀하시기를

 

虛空性故며 常不動故며 如來藏中에 無起滅故라 하시고

허공성고   상부동고   여래장중   무기멸고

 

이것은 경전의 말씀인데 우리의 마음! 마음 마음 하는데 달마스님도 그랬지요.

“마음 마음 마음 하지만은 참 마음은 찾기 어렵다.”

좁을 때는 바늘 하나도 꽂을 수 없는 그런 작은 것인가 하면은, 넓을 때는 온 우주를 다 감싸고도 남는 그런 넓은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경전이나 조사 스님들 말씀에 많지요. 그래서 여기 이 경전은

 

虛空性(허공성)이다.

 

우리의 마음이란 허공의 성질과 같다 그랬어요.

 

허공은 어떻습니까?  지금 어디 없는 것이 없죠. 허공이란 이 공간이 어디 없는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손으로 잡아서 이것이 허공이다 할 것은 없어요. 그것 참 묘하지요. 그런데 우리 마음이 허공의 성질하고 같다 이 말입니다. 허공성! 허공과 같은 성질인 까닭이다. 그 다음에

 

常不動故(상부동고)며

 

항상 움직이지 않는 연고다 그랬어요.

 

常不動(상부동)이라는 말은

 

꽉 차있으니까, 허공이 움직입니까?  허공은 움직이는 게 아니 예요. 그냥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부동이라는 말은 전체적으로 그 자리에 그냥 있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항상 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묘용의 입장! 작용의 입장에서 보면 움직이는 것이죠. 움직이기도 하고 별별 게 다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그 본체에 있어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如來藏中에 無起滅故라

여래장중   무기멸고

 

如來藏(여래장)이라고 하는 말은

 

여래장! 여래장! 해서보면 하나의 여래의 사상으로, 여래장 사상이라고 그래서 상당히 불교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 하나의 사상으로서, 어떤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그런 말이기도 한데, 여래라고 하는 말은 부처님을 두고 하는 말이죠.

 

그런데 藏(장)이라고 하는 말은 창고다. 또는 갈무리 되어 있는 곳, 이런 뜻입니다. 여래가 그 속에 갈무리 되어 있는 것. 그것을 여래장(如來藏)이라 그래요.

 

냉장 하면은 아주 차갑게 갈무리 하는 곳을 우리가 냉장고 라고 그렇게 합니다. 차갑게 갈무리 하고 있는 곳. 그래서 여래장 이라고 하면은 여래를 그대로 속에 감추고 있는 곳, 그것이 여래장인데, 경전에는 여래장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여래장 속에는

 

起滅(기멸)이 없다.

 

일어나고 소멸하는 것이 없다.

 

그러니까 맨 앞에 허공성이라고 하는 그런 낱말을 우리가 이해하면은, 그 말도 같이 이해가 됩니다. 여래장이라고 하는, 다시 말해서 이 마음이라고 하는 그 자리는 일어나고 소멸하는 것이 없다. 그 본체를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렇다고 한결같이 일어나고 소멸하는 起滅(기멸)이 없다 라고 만 알면은 곤란해요. 작용의 입장에는 또 기멸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니 여래장이라고 하는 것을  좀 더 우리가 가치 있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 우리가 마음을 흔히 불성(佛性) 그래요. 부처의 성품이다. 부처의 소질을 가졌다 그런 말도 하고.  또 우리 마음을 여래 장이라고도 합니다. 여래가 들어있다 이 말이죠. 불성! 부처님의 성품이다. 부처의 어떤 본 바탕! 부처의 소질! 그런 의미입니다. 또

 

여래장(如來藏)!

 

  여래를 모시고 있다 이거죠.

  내가 여래를 감추고 있다.  

  우리가 여래장이죠. 여래를 이 속에 감추고 있어요.

 

그러고 보면은 아주 훌륭하지요. 그러니까 정말 보호도 잘 해야 되고. 잘 가꾸어야 되고. 오래도록 유지도 해야 되고. 또 잘 먹여 줘야 되고. 운동도 좀 많이 해 줘야 되고 그래야 돼요. 왜냐?  여래가 그 속에 들었으니까 우리 껍질은 여래를 모시는 법당이라고요.

 

그  법당이 튼튼해야 여래가 거기서 잘 계시지. 법당이 비가 샌다든지. 허물어지고 기둥이 썩는다든지 그러면은 여래가 그 속에서 견뎌 낼 수가 없지요. 여래에게도 죄송하잖아요. 여래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여래를 그 속에 갈무리하고 있으니까. 이 몸을 일단 잘 간수해야 됩니다.

 

 불성이라고 하는 말! 여래장이라고 하는 말! 참 우리 인간의 가치를 한껏 높여준 그런 말씀입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런 말씀을 통해서 인간의 가치를 사실은 더 이상 높일 수 없는 거죠. 얼마나 인간의 가치를 높이 평가 했습니까.

 

못난 사람들끼리 그냥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을 깔보고. 사람의 숫자가 워낙 많다가 보니까 사람에 대해서 크게 가치구별을 안 하는데, 사실은 사람같이 소중한 것이 없고. 사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없죠.

 

그래서 부처님은 사람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서 높인 것이 아니라. 본래 그러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성이고 여래장입니다. 아무리 못난 중생이고 무식하고 가진 것이 없는 그런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래장이고 불성이라는 사실을 알면은, 다른 것 뭐 가진 것이 있느니 없느니 거기에 연연해 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지위가, 또는 내가 세상에서 대접을 받느니 못 받느니 집안에서 받느니 못 받느니 그런 것, 전혀 연연해 할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우리는 불성을 가진 중생. 또 여래장 중생이라고 이렇게 대접 받는데, 사실은 그 이상 더 바랄게 뭐 있습니까? 이런데 대한 신념이요, 제대로 서고 이런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면 이것은 큰 재산입니다.

 

정말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 보다 큰 보람과 참 이익은 없죠. 이것이 제대로 가슴에 와 닿느냐 하는 것이 문제기는 문제인데. 제대로 와 닿기만 닿으면 정말 우리는 큰 소득을 얻는 것이고 세상에 그 어떤 큰 소득보다도 더 큰 소득이 이 불성이라고 하는 낱말! 또 여래장이라고 하는 낱말! 우리가 제대로 느끼는 그런 일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느끼면 정말 천금을 얻는 것 보다도 더 가치 있는 그런 일이 됩니다.

 

大法眼(대법안)이 云(운)하사대

 

대법안이라고 하는 것도 스님의 이름입니다.

그분이 말하기를

 

處處菩提路요 頭頭功德林이라.

처처보리로   두두공덕림

 

참 좋은 표현이죠. 

 

處處菩提路(처처보리로)요

 

어디에 있든지 곳곳이 전부 보리의 길이다.

깨달음의 길이다 이거죠.

어디가 보리의 길이 아닌 데가 없고

 

頭頭功德林(두두공덕림)이라.

 

頭頭(두두)는  낱낱이.

사물 하나하나 전부 낱낱이 공덕의 숲이다. 공덕 아닌 것이 없다 이거죠. 낱낱이 공덕의 숲이고 곳곳이 보리의 길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구 구절 하나에 이런 말이 있어요.

 

念念菩提心 處處安樂國이라.

염념보리심 처처안락국

 

염념! 생각생각 순간순간,

보리심! 보리는 깨달음이거든요.

깨어있는 마음 열려있는 마음 눈뜬 마음.

 

우리는 너무 캄캄하게 이렇게 지내고 있어서 그렇지, 정말 깨어있는 마음일 것 같으면 곳곳이 전부 안락국입니다. 어디고 안락국이 아닌 데가 없어요. 참 이것이 안타까운 일이죠. 마음이 깨어있어야 돼요. 마음이 늘 열려 있어야 되고 마음이 눈을 열고 뜨고 있어야 되는 거죠. 매 순간마다 깨어 있는 마음이라면은 곳곳이 안락한 세계다.

 

어디 안락한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다른 순간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서도 마음만 환히 열려있고 그러면 전부 안락한 세계다. 참 기가 막히는 가르침이죠. 여기도 처처가 보리의 길이요. 두두가 공덕림이라 그랬습니다.

 

상황이 어떻고. 처지가 어떻고 시대가 어떻고. 내 팔자가 어떻고. 내 운명이 어떻고.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이 어떻고 온갖 그냥 주변의 인연들을 탓하는데, 그 인연들을 탓할게 아니라 내가 정말 깨어있는 마음을 가진다면, 어디 공덕림이 아닌 것이 없고 안락국 아닌 게 없다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 좋은 법문이 예요.

 

  處處菩提路요 頭頭功德林이라.

처처보리로   두두공덕림

 

 

  頭頭功德林(두두공덕림)이라.

 

  사물 하나하나가 공덕의 숲이다 이거죠.

 

此는 卽是體所在也요

차   즉시체소재야

 

이것은 곧, 이 체의 소재다.

 

 이 체라고 하는 것은 심체! 마음의 체가 있는 곳이다. 바로 마음이 그 자리에 있다 이거죠. 마음이 그 자리에 있으니까 처처보리로요요  두두공덕림이 될 수가 있다.

 

  眞心妙用이 隨感隨現호미

진심묘용   수감수현

 

眞心妙用(진심묘용)!

 

우리 참 마음의 미묘한 작용,

 

참 묘체라고 할 수 밖에 없어요. 정말 이 마음은 묘한 것이거든요. 조금만 추우면 추운 줄 그냥 알고 더우면 더운 줄 알고. 조금만 신경을 건드리면 화가 푹 나고. 조금만 좋게 하면 그냥 또 기분이 좋아서 웃고,  별별 그런 작용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묘한 작용이죠.

 

누구도 그런 작용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그것은 어떻게 할 길이 없습니다. 누가 만든 것도 아니고 어떤 주제가 있어서 그렇게 시키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그렇게 할 줄 알아요.

 

 그러니까 옆에 사람이 화를 내거든 “참~ 어떻게 하면 저렇게 화를 낼 줄 알까?  참 묘하다.” 그렇게 봐야 돼요. 화내는 것 보면은 참 묘하잖아요. 가만히 객관적으로 이렇게 놓고 보면요, 참 불안하고 마음 답답하고 신경 쓰이고 그렇죠, 객관적으로 딱 떼어놓고 보면은 화내는 일이 그렇게 묘할 수가 없는 거죠. 무엇이 들어서 저렇게 화낼 줄을 아나?

 

 그 화내는 당체를 우리는 살필 줄 알아야 돼요. 마음공부를 이쯤 했으면은 화를 내면 화를 내는 당체! 무엇이 들어서 그렇게 화를 내는가. 화내는 그 작용이 참 정말 위대하고 묘하구나! 이렇게 살필 줄 아는 그런 자세를 우리는 가져야 되는 거죠. 그러면 크게 그런 문제에 휘둘리지를 않습니다. 사실은 휘둘리지 않아 야죠.

 

 평생 그냥 거기에 휘둘리고 거기에 빠져 들어가고 거기에 좌왕 우왕 하다가 그렇게 세월 다 갔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거기에 그렇게 휘둘릴 일이 아니라고요. 그것을 이렇게 관망하는 그런 입장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다면은, 참 사는데 크게 힘들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眞心妙用(진심묘용)이 隨感隨現(수감수현)이라 그랬지 않습니까? 느낌을 따라가지고서 따라 나타낸다.

 

 

隨感隨現(수감수현)이라.

 

덥다! 그게 수감이거든요. 느낌을 따라가지고서 따라서 "아이 덥다. 아이 이것 부채라도 뭐. 에어컨이라도  좀 없나.” 하고 당장에 표현을 하지 않습니까? 그게 수현입니다. 따라서 나타낸다.

 

느낌을 따라서 자기가 느끼는 대로 거기에 따라서 또 나타내죠. 좋게 해주면 좋은 표현을 하고 안 좋게 해주면 안 좋은 표현을 하고. 금방 그냥 0.1초도 안 걸려요. 금방 금방 나타내는 거죠. “수감수현이라.” 느끼는 대로 나타낸다. 그렇게 해석해도 좋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뭐 부처님만 그런 게 아니고 어떤 특정인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그래요. 이것이 우리 진심의 묘한 작용이죠. 마음의 묘한 작용이다. 그것이 마치 무엇과 같은 고 하니,

 

如谷應聲(여곡응성)이다.

 

골짜기에 소리를 응하는 것과 같다. 메아리!

 

“대성대문(大聲大聞)이라.” 크게 소리지르면 크게 울리고 작게 지르면 작게 울리는 거죠. “아” 하면 “아”라고 울리고 “어”하면 “어”라고 울리고 그래 가지고 메아리가 잘 울리는 골짜기에 가면은, 재미가 있어 가지고 자꾸 무슨 소리를 해본다고요. 하면은 말한 대로 그대로 울려 나오는 거예요.

 

 “미워한다” 하면 “미워한다” 하고 울리고 “좋아한다” 하면 “좋아한다” 하고 울리고, “수감수현이 여곡응성이라.” 골짜기가 사람 소리에 응하는(맞추는) 것과 같다. 수감수현이니까 느끼는 대로 따라서 표현을 하는 것이 그와 같다 이거죠.  조금도 여부가 없어요. 그렇게 나타내는 우리마음 작용은 조금도 여부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법등이라고 하는 이가 또 말씀하시기를

 

法燈(법등)이 云(운)하사대,

 

云(운)은 말씀 하사되,

 

今古應無墜(금고응무추)라

 

無墜(무추)라. 떨어질 墜(추)자예요. 지금이나 또 옛날이나 응당 떨어져 있지 않다. 이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떠나있지 않다.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分明在目前이로다.

분명재목전

 

분명히 목전에 있다. 눈 앞에 이거죠. 한번도 떠나있지 않다. 추자는 떨어질 墜(추)자지마는 떨어진다는 말은 어떤 자리에서 떠나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떠나있지 않다 이 말입니다. 떠남이 없다. 그래서 분명히 이 눈앞에 있어요. 여러분들 눈앞에 지금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을 육안으로(눈으로) 보려고 하면은 잘 안보여요. 오히려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일지도 몰라요. 사실은 감으나 뜨나 거기서 거기지마는 분명히 눈 앞에 있다. 처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모든 것에 다 있다 그랬죠.

 

遍一切處(변일체처)

 

모든 것에 다 있다. 그래서 내 눈앞에 있다는 것이 당연하죠. 이런 이야기들을 경전이나 다른 스님들의 말씀을 이끌어다가 그렇게 증거로 삼습니다. 있음이로다. 그 다음에

 

片雲은 生晩谷하고 孤鶴은 下遙天이라.

편운   생만곡     고학   하요천

 

자, 눈앞에 있다 라고 했으니까

분명히 눈앞에 있다 그랬죠.

 

分明在目前이로다

분명재목전

 

분명히 눈앞에 있다.

 

지금 눈 앞에 벌어져 있는 상황을 여기서 시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지금 눈앞에는 어떤 모습이 있습니까?  책이 있고 여러 가지 모습이 그 나름대로 있겠죠. 이런 것을 시적으로 잘 표현해도 좋습니다.

 

 여기는 이 스님의 표현은 소위 눈앞에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이렇게 그려도 또 참 멋져요. 이왕에 마음을 그리는 것입니다. 뭐라고 하더라도 가시 넝쿨이다. 뭐 낭떠러지다.  누가 싸우고 있다. 이렇게 표현해도 이것도 역시 목전에 표현한 것임에는 틀림없는데, 그러나 이왕에 그리면 여기에 표현하고 있는 것. 

 

片雲은 生晩谷하고 孤鶴은 下遙天이라.

편운   생만곡     고학   하요천

 

이 다섯자 실어서 片(편)! 한 조각 구름은 生晩谷(생만곡)이다. 만곡이라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해 늦은 골짜기! 지금 해가 기웃기웃 넘어가고 있는 그런 골짜기에서 생기고, 만곡이라고 하는 것이 골짜기 이름이 아니 예요.  해가 넘어가고 있는 그런 늦은 오후에 골짜기에서 구름이 피어 오른다 이 말이죠.

 

片雲은 生晩谷하고

편운   생만곡

 

 그전에 어떤 스님하고 버스를 타고 나이아가 라 폭포를 이렇게 가서 보고는 돌아오면서 하는 말이

“야 구름 공장이 어딘고 했더니 바로 저기 나이아가라 폭포가 구름공장 이구나.” 구름이 계속 피어 오르거든요. 폭포가 떨어지니까 안개가 계속 피어 오르니까 “구름공장이 어딘가 했더니 저기가 바로 구름 공장이구나. 저기서 구름을 만들어 가지고  세상에다 펴는구나.”그런 말을 하더니

 

여기가 바로 晩谷(만곡)! 해가 이렇게 지는 그런 골짜기에서 구름이 이렇게 피어 오르는 모습! 이것이 스님의 눈에 비치는 소위 마음의 모습입니다. 말하자 면은 이 스님 눈에 비친 마음이죠. 그리고

 

孤鶴은 下遙天이라

고학   하요천

 

외로운 학은, 혼자 나르는 학이죠. 먼 하늘에서 떨어 질듯이 내린다. 下는 내려온다 이 말이죠. 이것은 生자하고 下자하고 대꾸죠. 生은 피어 오르는 것이고 구름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 생이라면은,  下는 외로운 학이 땅으로 내려오는 거죠. 멀리 저 높은 하늘에서 멀 遙(요)자 입니다. 먼 하늘에서. 높은 하늘에서 보다 멀 요(遙)자가 더 시적이죠.

 

 저 멀고 높은 하늘에서 밑으로 썩 이렇게 지쳤는가 나무에 앉으려고 밑으로 내려온다. 그래서 生과 下가 아주 대로서 아주 멋지죠. 또 뭡니까 구름과 학! 그리고 片(편)자가 구름 雲(운)자, 그것은 또 같은 뜻이죠. 片도 또 조각 구름이니까 외로운 모습이고, 외로울 孤(고)자 고학도 또 외로운 모습이고, 이런 것이 어떤 시적인 감각으로 보면은 그냥 글자 하나 하나가 그냥 예사롭게 모여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말하자 면은 다시 말해서 눈 앞에 펼쳐진 이 아름다운 시적인 어떤 경계 그대로가 뭐라고? 진심이다 이거 예요.  참 표현을 잘 했잖아요, 진심! 이렇게 대답하면 아주 근사하지요. 앞에는 대답이 뭐라고? 마음이 어디 있느냐? 하면 모든 것에 다 있다.

 

그런데 그것도 옳은 대답인데 그 보다 더 수준 높은 대답은 이런 대답 이예요. 그런데 지금 눈 앞에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말하면 그것은 남의 소리고, 여기서처럼 눈 앞에 있는데 그대로 대답을 해야 돼요.

 

 

차를 마시는 중이라면은 차를 한잔 척 마시면서

“차 맛이 좋다.” “그 차 참 맛이 좋다.”

“차 맛이 참 좋다.” 그러면 이 이야기하고 똑 같은 것이 되죠. 예를 들어서 차를 마시다가 그런 대화가 오고 갔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수행승이 조주 스님께 와서

“어떤 것이 도입니까.” 그렇게 물으니까

“아침 먹었느냐?” 하니까 “아침 먹었습니다.”

“그래 아침 먹었으면 가서 발우나 씻어.” 설거지나 해라 이 말이죠.  참 진심소재를 잘 나타낸 거죠. 밥 먹었으면 가서 그릇 씻어야지. 밥 먹고 그릇 안 씻으면 되나요? “밥 먹었으면 그릇 씻어라.”

 

그 이상 어떻게 더 대답할 길이 없어요. 그대로 예요.

이 스님의 눈에 비친 진심의 소재다. 아주 조주 스님의 참 그 말이 아주 멋진 대답이죠.  또 그리고 유명한 말,

 

 “끽다거 하라.” “ 차나 마시고 가거라.”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 “차나 마시고 가거라.”

지금은 사람과 사람이 만났으니 차 한잔 나누는 게 당연한 도리거든요. 그래서 “차나 한잔 대접하고 차나 한잔 마시고 가거라.”

 

그 자리에서 분명히 있고 또 있는 줄 알아야지. 그 외 뭐 부처님이 가라사대 하고 뭐 어쩌고 해봐야 그것은 다 십만 팔 천리, 이미 그것은 아주 돌아도 한없이 돌아가는 그런 길입니다. 

 


所以로 魏府元華嚴이

소이   위부원화엄

 


위부(魏府)라고 하는 것은 지명이고, 원화엄(元華嚴)! 성이 원씨이고, 이분은 화엄의 대가라고 해서  별명이 화엄입니다. 위부원화엄!

 

云(운)하사대

 

위부원화엄이라고 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佛法이 在日用處하며

불법   재일용처

 

야, 이것 아주 결론적으로. 멋진 소리가 나옵니다.

 

佛法이 在日用處하며

불법   재일용처

 

在行住坐臥處와 喫茶喫飯處와 語言相問處와

재행주좌와처   끽다끽반처   언어상문처

 

所作所爲(소작소위호대)

 

불법이 어디라고? 在日用處(재일용처)!

  일용처에 있다는 말입니다. 일용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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