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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眞心功德 진심공덕 (33)

 

 

或이 曰 有心修因은 不疑功德矣어니와

혹   왈 유심수인   불의공덕의      

無心修因은 功德이 何來이닛고

무심수인   공덕   하래  

 

曰 有心修因은 得有爲果하고 無心爲因은 顯性功德이니

왈 유심수인   득유위과     무심위인   현성공덕

此諸功德이 本來自具로대 妄覆不顯이라가 今旣妄除일새

차제공덕   본래자구     망복불현       금기망제 

功德이 現前이니

공덕   현전

 

故로 永嘉가 云하사대

고   영가   운

三身四智體中圓이요 八解六通이 心地印이라

삼신사지체중원     팔해육통   심지인

 

 

 

지난 시간에 진심의 정(正)과 조(助)에 대해서 공부를 했는데, 상당히 우리가 불교 수행을 하면서 유의해야 할 점이다 하는 생각이 들고, 꼭 불교 수행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데 우리 인생살이에 있어서 주된 어떤 일과, 그 다음에 또 보조적으로 부수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그런 관계들을 우리가 연관시켜서 생각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의 경전의 이야기는 정(正)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을 닦는 공부다. 또 여기서는 무심공부다 그런 말을 했어요. 무심이라고 하는 것이 저 앞에서도 우리가 들었듯이 마음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마음에 온갖 망상, 번뇌가 없다 하는 그런 말이다 그랬어요.

 

그래서 빈병이라고 하는 말을 가지고 설명을 했었지요. 빈 병 하면은 병이 비었다는 뜻이지 병이 없다는 뜻이 아니니까, 병의 속이 빈 것이 빈 병이지 병이 아예 없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무심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마음에 온갖 번뇌 망상이 없다는 그런 마음이지, 마음이 아예 없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아예 없을 수는 없어요. 마음을 없앨래야 없앨 수도 없고, 없애지지도 않고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우리에게 문제 되는 것은 온갖 쓸데  없는 생각. 망상. 번뇌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무심공부다. 그것을 제거하는 공부를 무심공부! 또 다른 말로 하면은 이제 마음공부!

 

그것을 기도라고 했던지. 구체적인 방법으로 나아가 말하면 기도. 또는 참선. 사경. 독경. 주력 이런 모든 것들이 전부 사실  알고 보면은 그것이 마음공부고 무심 공부고 그야말로 불교에서 가장 값지게 여기는, 마음 닦는 공부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다른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목적을 이루는 동시에 또 궁극적으로는 마음 닦는 공부! 깨닫는 공부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금정산 상봉을 우리가 가려고 한다. 그런데 꼭 금정산 상봉을 가지 않더라도 가는 도중에 볼 거리가 많다고요. 물 흐르는 계곡도 좋고. 바위에 앉아 잠깐 쉬는 것도 좋고. 그 다음에 꽃이 피고지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그것은 중간에 우리가 성취하는 어떤 개인적인 성향이라고 할까? 그런 어떤 꿈이라고 할 수 있다면은, 그런 것을 통해서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은 결국은 계속 올라가다 보면은 어떻게? 상봉에 도달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기도라는 것도 개인의 소망이 있고 꿈이 있어서 기도를 했지마는, 결국은 그 기도가 차츰 차츰 더 나아가다 보면은 결국은 무심공부! 마음 닦는 공부! 성불하는 그런 공부로 이어진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불교의 주된 공부고, 그 주된 공부가 제대로 되려면은 본래적인 그런 또는 부수적인 공부가 필히 따라야 된다 그래 가지고서, 온갖 여러 가지 중선(衆善)이라 그래서 그날 써 놓은 것이 있네요. 중선봉행(衆善奉行)이라 그래요.

 

 자정기의(自淨其意)가 주된 공부라면은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衆善奉行)이 보조적인 공부, 부수적인 공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 중선봉행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우리가 조상을 천도하는 일이라든지. 기타 육바라밀을 닦는 일이라든지. 온갖 사회질서를 지키는 일이라든지 어떤 도덕을 준수하는 일이라든지 등등 여러 가지 부수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이 부수적인 것이라고 해서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되는 거죠. 뭐 밥만 있다고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반찬도 필수적인 거예요. 어떻게 또 보면은 반찬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밥보다도 반찬이 더 좋을 수가 있고, 이 몸에 더 이로울 수가 있는 거예요.

 

 그 와 같은 관계로 생각하면은 아주 간단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우리가 공부를 하다 보면은 아주 편협한 그런 생각을 가진 이를 혹 만나게 됩니다. 편협한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뭔고 하니, 아니 기도 하나만 하면 되지, 참선 하나만 하면 되지. 경전 하나만 보면 되지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거든요.

 

하나만 보면 되지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보조 스님께서 가르치시는 진심의 정과 조의 관계를 모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나만 하면 되지 하는 것은 자정기의! 그 마음을 청정하게 갖는 것! 또 마음을 닦는 일! 무심공부! 이것만 하면 된다 그 소리하고 같은 거예요. 

 

 그런데 어디 그렇습니까?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이것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하는 거죠. 밥 하나만 먹으면 되지. 그런 법은 없거든요. 그 사람 보면은 참선 하나만 하면 되는 사람은 밥 한 가지만 먹지 않습니다. 오히려 밥 먹을 때 반찬을 더 많이 찾는 사람 이예요.

 

 사람 살아가는 데는 이것이 원리예요. 또 보조 스님이 말씀했다고 해서가 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원리고, 그 원리가 그대로 우리 마음공부 하는데도 바로 적용이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마음공부도 그래요. 내가 지난 시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 시간에도 생각해 보니까 아 진심의 정과 조라고 하는 관계! 주된 것과 부수적인 것! 이것은 참 중요한 관계다. 이것을 조화를 잘 이루었을 때, 사람이 살아가는 모양새를 제대로 갖추고 사는 것이다.

 

세상살이도 똑 같을 것 같애요. 그러니까 어디든지 이것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방화 시설을 관리 하는 문제도 그렇지 않습니까? 한 집안에. 또는 한 회사에. 어떤 건물에 보면은 무슨 화재담당 책임자 해놓고 정과 조가 있고 그렇거든요. 원래 그렇게 있습니다. 뭐 야근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작은 일도 주된 책임자가 있는가 하면은 거기에 보조적으로 또 이차적인 책임지는 사람들이 있듯이, 역시 마음공부도 그렇고, 불교 수행도 그렇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조화를 이루면서 제대로 갖추면서 우리가 공부하는 그런 것들을 생각을 해야지, 뭐 한가지만 좋다고 해 가지고 물론 그것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죠. 그러나 그것은 편협하기 일쑤고. 편견에다 떨어지고. 편견에 떨어지면은 불교의 안목하고는 거리가 먼 거죠.

 

불교 안목이라고 하는 것을 바른 견해고 그것은 중도적인 견해. 중도적인 견해는 어디든지 치우치지 않는 그런 견해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진심의 정과 조의 관계는  참 중요한 이야기구나. 보조 스님께서는 간략하게 말씀 하셨지마는 이것은 참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나 불교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거울을 닦는데 있어서 손 힘만 가지고 닦는 것이 아니라 그게 약을 이용을 해서 손 힘이 거기에 들어 가 가지고 거울을 닦아야 그게 거울이 깨끗하게 잘 닦여 지는 것이지. 손 힘만 있다고 거울이 닦여지지 않는다. 약이라고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런 말을 했고 또 기신론에도 보면은

 

信成就發心(신성취발심)이라고 하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해 가지고 直心(직심)! 深心(심심)! 大悲心(대비심)! 이런 말을 했어요. 심심이라는 것이 선행을 갖추는 것이고. 또 대비심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 다른 사람들. 또는 이웃의 어떤 고통과 어려움을 살필 줄 아는 것. 이런 마음까지 제대로 곁들었을 때, 그 다음에

 

직심(直心), 正念眞如法(정념진여법)이라고 하는 것. 마음 닦는 공부 이것이 제대로 되었을 때 될 수 있다는 그런 몇 가지 들어서 상당히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제차 한 번 걸러보았습니다.

 

오늘은 眞心功德(진심공덕)이라    그랬어요. 열 두 번째는 진심의 대한 공덕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或(혹)이 曰(왈)

 

혹자가 물어 말 하기를

 

有心修因은 不疑功德矣어니와

유심수인   불의공덕의

 

無心修因은 功德이 何來이닛고

무심수인   공덕   하래

 

 

  有心修因은 不疑功德矣어니와!

유심수인   불의공덕의

 

유심으로 어떤 인을 닦는 것! 원인을 닦는 것! 수행을 하는 것! 이런 말입니다. 그런 공덕을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마음을 내 가지고 또 어떤 생각이 분명히 있어 가지고 그게 유심수인 입니다. 있어 가지고 좋은 일을 한다. 그러면 마음이 있고, 그 마음에 따라서 좋은 일을 하니까 공덕이 거기에 따라서 올 것이라 이거예요.

 

 다시 말해서 씨앗을 심으면은 거기서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추수를 하게 되고 그런 것과 같아 가지고 그것은 결국은 의심할 바가 없는데,  

 

無心修因은 功德이 何來이닛고

무심수인   공덕   하래

 

무심으로, 망령된 마음이 없이 인을 닦는 것, 

그것은 공덕이 어떻게 해서 오느냐? 

 

그게 납득이 잘 안 된다 이거에요. 이것이 사실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떤 조작이 있고 어떤 마음이 있고 하는 것은 쉬워요.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당장에 눈에 들어 나고, 또 그것은 또 드러나는 반면에 나중에 없어지기도 해요. 소멸하는 어떤 그런 현상적인 이야기는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데, 이 무심의 문제,이게 도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공덕이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올 수 있느냐? 그것을 이제 물었어요. 그리고

 

曰 有心修因은 得有爲果 하고

왈 유심수인   득유위과

 

유심으로 인을 닦는 것은, 유위의 결과를 얻고

 

得有爲果(득유위과)라고 하는 이것은 조작이 있는 결과! 하는 것이 있는 결과! 그런 것을 얻고. 앞에서 씨를 심어서 결과를 얻듯이 그런 게 있고

 

無心爲因(무심위인)은

 

무심으로 인을 삼는 것은

무심으로서 씨앗을 삼는 것은

 

顯性功德(현성공덕)이니

 

성품의 공덕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공덕을 나타낸다 그랬어요.

 

이 마음은 근본 바탕이 텅 빈 것이고 아무것도 어떤 의지할 데가 없는 것이고, 모양이 있거나 색깔이 있거나 소리가 있거나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 것이 성품인데

 

무심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은 말하자 면은 그런 어떤 형상이 없고 색깔이 없는 그런 성품의 공덕을 나타낸다 그랬어요. 그래서 두 가지 공덕이 있을 수가 있다. 유위의 결과와 성품의 공덕! 이것이 있을 수 있으니

 

此諸功德(차체공덕)이

 

여러 가지 공덕이

 

本來自具(본래자구)로대

 

본래 사람들이 스스로 다 갖춰 있지마는

 

妄覆不顯(망복불현)이라가

 

  망상이 덮여서 나타나지 않다가

  망상이 떡 덮여 가지고 안 나타나는 거에요.

 

此諸功德이 本來自具로대 妄覆不顯이라가

차체공덕   본래자구     망복불현

 

이 말이 참 중요합니다.

내가 아주 고사 중에서 자주 인용하는“용선지벽” 또는 화씨지벽”이라고 하는 그런 옛날에 돌 옥에 관한 이야기지요.

 

옛날에 어느 나라에 훌륭한 선비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큰 옥을 하나 얻었어요. 그런데 그 옥은 겉에는 돌의 성질로 덮여 있고 안에는 아주 값진 옥이라고요. 그래서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그 큰 훌륭한 옥을, 세상에 둘도 없는 옥을 이것은 내가 가질 그런 옥이 아니다. 이것은 국가에 바쳐 가지고 나라의 보물로 삼을 만 하다 그래서 나라에 떡 바쳤어요.

 

 그래서 나라의 왕이 감정을 해 보고는 모르니까, 이것은 돌이지 옥이 아니라고 해서 그 사람을 왕을 속였다고 다리를 하나 잘라서 내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새로운 왕이 또 등극을 했는데, 이 사람은 또 그 옥을 짊어지고 가서 새로 온 왕에게 또 이야기를 했어요. 이것은 아주 훌륭한 옥인데 내가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니 나라에 보물로 삼아야 하고. 왕쯤 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그런 보물입니다 이렇게 아뢰니까,

 

그 왕이 또 이렇게 감정을 해 보고는 제대로 이해를 못해 가지고, 또 왕을 속였다고 멀쩡한 돌인데 옥이라고 하니까 왕을 속였다고 나머지 다리를 하나 또 잘랐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은 때를 기다린 거죠. 그런데 크게 놀라워 하거나 슬퍼하거나 원망하지를 않고 기다렸는데, 그 다음에 문왕이 등극을 했다고 그러죠. 문왕이 왕으로 올랐는데 그 때 이 사람이 옥을 안고 형산이라고 하는 산에 들어 가 가지고, 거기가 왕궁에서 그리 멀지 아니한 산이었던 모양이 예요. 삼일 밤 삼일 낮을 통곡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통곡하는 울음 소리가 얼마나 애절했던지 그게 밤잠을 자는 왕의 귀에까지 들려 가지고, 하도 참 울음 소리가 애절해서 신하를 시켜서 무슨 사연으로 저 사람이 저렇게 슬퍼하는가 가서 한번 알아보라고 하니까, 아 이 사람이 큰 돌을 짊어지고 있는데 온 거에요.

 

그래서 알아보니까 그 전에 두 번이나 왕을 속여 가지고 벌을 받아서 말이지 두 다리가 잘린 사람으로 너무나도 세상에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라. “아 이 사람아, 왕을 속이고 죄를 지어 가지고 말이지 다리 잘린 그런 형벌을 받은 사람이 어째 자네 뿐이냐? 그 다리 잘렸다고 그렇게 삼일 밤 낮을 그렇게 통곡을 하고 애절하게 울 수가 있느냐?” 그렇게 왕이 꾸짖으니까

 

“대왕이시여, 그래서 내가 슬피 우는 것이 아니고, 이 훌륭한 보물을 알아주지 못하는 그것이 원통스러워서 그래서 웁니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 왕이 다리가 두 번이나 잘렸는데도 옥이라고 꾸역꾸역 우기니까 하도 이상해서 세상에 옥을 감정을 잘하는 사람을 다시 물색을 해서 찾아가지고 감정을 시켰더니, 정말 이 세상에 들도 없는 훌륭한 옥이라. 그래서 옥이라고 하는 사실이 알려져 가지고, 그리고 그 다음부터 그 옥을 나라의 보물로 삼고 그 사람에게 몇 개의 군의 땅을, 지역을 할애를 해 가지고서 그 사람의 상으로 줬어요.

 

그래서 “연성지벽이라.” 성을 몇 개를 그 사람에게 줬다. 그런 옥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성이 화씨야. 변화씨라고 해서 그래서 또는 고사성어에 보면은 “화씨지벽이라.” 화씨의 옥이다 하는 그런 말로도 나오고 그렇습니다. 

 

 그와 같이 돌의 성질로 덮여 있으니까 안에 훌륭한 그런 옥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옛 이야기가 있듯이 여기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들 마음속에 모든 공덕이 본래 저절로 갖추어져 있어요. 본래 자구라고요.

 

此諸功德이 本來自具라.

차체공덕   본래자구

 

여기 공덕에 대해서 크게 자세한 설명을 하거나 자세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덕이죠. 우리가 흔히 우리가 마음속에 갖추고 있는 공덕을 이야기할 때는 꼭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룩하신 그 공덕! 부처님의 어떤 자비라든지 지혜라든지 그 온갖 만행 만덕이라든지 그 복덕! 부처님 복덕을 구족 하신분이라고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또 지혜와 자비를 구족 하신 분이다.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그런 훌륭한 그 인품 내지 그 복 덕!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똑같이 본래 갖추고 있다 이거죠. 본래자구라는 그 말입니다. 그런데 왜 안 나타나느냐 이거예요. 우리는 왜 그렇지 못하느냐? 그것은 망상이 덮여서

 

  不顯(불현)이라.

 

나타나지 아니한 까닭일 뿐이다. 돌로 뒤 덮여서 옥이 밖에 나타나지 아니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참 우리가 유의해야 할 대목이지요. 

 

 그래서 불교의 공부는 결론만 가지고 이야기 하자면은, 자기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아주 뛰어나고 훌륭하고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그런 인품이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일입니다. 그것 밖에 없어요.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은 견성이다. 또는 성불이다 그렇게 표현을 하지요. 뭐 해탈(解脫)이다 라는 말도 하고.

 

우리들 마음속에 정말 어마어마한 그런 능력이 갖춰져 있고. 또 칠 팔십 년 내지 팔 구십 년 살다가 죽고 마는 그런 일회적인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거예요. 그런 무한한 능력! “아이고 내가 무슨 무한한 능력, 나는 정말 기껏해야 뭐 청소나 하고 빨래나 하고 밥이나 지을 수 있는 그런 능력밖에 아니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마는 전혀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한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그 능력을 우리가 첫째 이해를 안 해주고, 자기 자신의 그런 능력을 스스로 그것을 무시해 버리고. 그것을 또 스스로 이해를 못하니까 드러내려고 하는 생각을 안 하는 거죠. 그래서 스스로 이해를 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공부를 하는 목적이에요.

 

스스로 이해를 하다 보면은 저절로 그것이 드러나게 되고 어느날 손에 만져지고 느껴지고 깨달아지는 거죠. 이 일입니다 불교는 다른 것이 아니에요. 뭐 부처님이 복을 한 보따리 주는 것도 아니고, 또 어디 가서 얻어 오는 것도 아니고. 무슨 직장 생활하는 방법도 물론 있겠고. 돈 버는 방법도 있겠고. 무슨 기술을 익히는 요령도 물론 경전 안에 있을 수 있겠습니다마는,

 

그것보다는 내 자신 속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무한한 능력을 이해하고, 그것을 개발하고. 그것을 스스로 자각하는 그것이 불교예요. 그 이상 또 훌륭한 것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此諸功德이 本來自具라.

차체공덕   본래자구

 

모든 공덕이 본래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妄覆不顯이라가

망복불현

 

망상이 덮여 가지고서 나타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우리가 잘 인지해야 될 대목이지요. 정말 이것 하나 알다가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본래 자신 속에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면은요, 어떤 용기가 생기고. 힘이 생기고.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그런 꿈을 갖는 삶이 이어질 수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今旣妄除(금기망제)일새

 

지금 이야기의 연속으로 보면은

지금의 이 망상이 제거 되었을 새

 

功德이 現前이니

공덕   현전

 

공덕이 앞에 나타났으니   

 

故로 永嘉가 云하사대

고   영가   운

 

영가 증도가에 나오는 이야기지요.

 

三身四智 體中圓이요 八解六通이 心地印이라 그랬어요.

삼신사지 체중원     팔해육통   심지인

 

우리가 수행을 해서 수행한 최후의 결과를 어떻게 정리를 할 수 있는가 하면은 “三身四智(삼신사지) 八解六通(팔해육통)” 다른 능력도 많겠지마는 이런 네 가지 제목으로서 흔히 표현을 합니다.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능력이 뭐냐? 우리하고 다른 점이 뭐냐? 그게 결국은 우리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지마는, 마음속에서 나왔다 치고 그 분이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뭐냐? 이렇게 이야기 했을 때,

 

또 우리가 수행을 쌓고. 참선을 하고. 도통을 하고. 견성을 해서 내가 갖출 수 있는 그런 어떤 내용들을 간추려서 이야기를 한다면은 “三身四智(삼신사지) 八解六通(팔해육통)”여기서 소개하는 이거에요. 그런데 그것은 뭐야?

 

體中圓이요 心地印이라 그랬어요.

체중원     심지인

 

三身四智(삼신사지)도 우리의 신체, 체(體)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의 자체가운데 원만히 갖추어져 있고,

 

八解六通(팔해육통)도

 

여덟 가지 해탈(解脫)과 여섯 가지 신통도

 

心地印(심지인)이라,

 

내 마음 땅에 도장 찍는 터로 있다 이거예요. 가서 그냥 찍으면 되는 거죠. 표현만 하면 되는 거예요. 내 마음속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까. 그것을 표현만 하면 되는 거에요.

 

그래서 三身四智(삼신사지) 하는 것은, 삼신(三身)은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그러지요.  모든 부처님에게는 세 가지의 몸이 있는데 그것은 법신이나 보신이나 화신이다 그런 말을 해요. 이것은 불교의 A B C나 마찬가지죠.

 

이 법신 보신 화신이라는 것이 완전한 것은 물론 부처님에게만 한정된 것이지마는, 우리 보통 인간에게도 이 삼신을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삼신이라고 하는 것은 법신은 우리 마음의 세계라면은, 보신은 우리가 자기 개개인의 어떤 능력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있어요. 그 영향력을 보신이라고 그래요. 과보의 몸이다.

 

그 영향력을 여러분들 한 번 살펴보십시오. 다 달라요. 각자 다 다르다고요. ‘아이고 주부가 무슨 영향력이 있겠나.’주부도 주부 따라서 사람 따라서 다 그 영향력이 달라요.

 

내가 어젠가 그저껜가 범어사에서 어떤 신도님을 한분 만났는데, 이십년이나 밥을 한번도 안 해 봤대요, 스무 살이 된 아들이 있다든가 뭐 어떻다 하든데 밥을 한번도 안 해 봤대요. 그 정도 영향력이 있는 주부가 있어요. (ㅎㅎㅎㅎㅎ~) 밥을 한번도 안 해 봤대요. (ㅎㅎㅎ~) 그 정도 영향력이 있는 주부가 있다니까요. (ㅎㅎㅎ~) 내가 놀랬어요.

 

그런 영향력은 좀 그렇고 영향력도 여러 가지 예요. 사람 따라서 그게 보신이에요. 과보의 몸이라고요. 자기가 갖추고 있는 어떤 닦은 공덕! 자기가 지은 인연! 이것이 주변에 자기 가정이든 사회든 국가에든 간에, 어느 정도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느냐? 이것이 보신인데,

 

우리를 가지고 보신이라고 하고 보통 사람들을 가지고 보신이라고 하면은 좀 이해하기 쉽도록 말을 해서 그렇지 좀 미안한 평이지요. 최소한도 보신이라 하면은 부처님 정도 되어야 돼요. 부처님 공덕의 어떤 영향력, 그것을 닦은 과보의 영향력은 오늘 이 시간까지도 우리에게 그 끼치고 있거든요. 이쯤 돼야 그 영향력이 참 근사하죠.

 

이것을 전기불로 가끔 표현을 하는데, 예를 들어서 한 삼십촉짜리는  조그마한 한 두 세평 되는 방 하나 겨우 비춰요. 이거 삼십촉 가지고 신문 같은 것을 보려면은 잘 안보입니다. 그런데 한 백 촉짜리 전구쯤 되면은 환하다고요. 아주 밝아서 이것은 대여섯 평 방안에 켜놓아도 아주 환하게 밝습니다.

 

똑같은 성질의 전구인데도 삼십촉짜리는 덜 밝고. 백 촉짜리는 아주 환하게 밝고. 한 오 촉짜리는 겨우 신발 찾을 정도로 그렇게 밖에 안 밝아요. 그게 영향력이라고요. 여러분들은 몇 촉짜리 전구가 되는지 한번 점검을 해 보시라고요.

 

결혼을 한지 하이 튼 몇 년이 됐는지 모르지마는 스무 살 먹은 아들이 있다는데 한번도 밥을 안 해 봤다고 하는 그런 영향력도 있는데, 그런데 다른데 영향력이 있는가 하면은 그것도 아니 예요. 집에만 그렇지 다른 데는 자기말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그런 말을 하더라 고요. 그런 것도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신도 있기는 있는 모양입니다. 그게 보신이고,

 

같은 마음을 가지고 , 다시 말해서 같은 법신을 가지고 같은 전기의 성질인데 그 전구에 따라서 오 촉짜리도 밝힐 수 있고. 삼십 촉짜리. 백 촉짜리. 아니면 수억만 볼트의 화신! 내가 가끔 그런 표현을 하는데, 그것은 바로 석가모니 같은 이들이지요.

 

그래서 우리 마음에서 가지고 있는 어떤 그런 힘을 한껏 다 발휘했을 때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그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에요. 우리 역사상에서 아주 길이 빛나는 그런 훌륭한 인물들은 상당한 그런 어떤 영향력을 끼쳤지 않습니까?

 

똑 같은 마음을 가지고 어째서 그 사람은 그렇게 빛나고 우리는 깜박 깜박 그저 한 두 평짜리 방이나 겨우 비치고 그러느냐 말이죠. 똑같은 마음인데 그게 자기가 얼마나 공덕을 지었느냐?  얼마나 인연을 많이 닦았느냐?  거기에 그것이 나타납니다.

 

여러분들도 젊을 때 뭔가 한 가정에 공덕이 많고 어떤 노력을 많이 기우려 놓으면, 나중에 큰 소리 탕탕 치고 아주 그렇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게 하나의 영향력이 아닐까? 아무것도 자기가 어떤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맨 날 갖다 주는 월급만 가지고 살림을 꾸려가고 그러면은  끝까지 큰 소리 못치고 그냥 살아요. (ㅎㅎㅎ~)  거 참 묘하고, 묘한 도리죠.

 

그리고 법신 보신 하고 그 다음에 화신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응신이라는 말로도 하고 화신이라고도 하는데, 다시 말해서 어떤 경우에 따라서 어떤 모습으로 내가 나타나느냐?  예를 들어서 여기에 오면은 아주 불교공부를 착실하게 아주 잘하는 그런 불교 신도고, 또 다른 어떤 경우에 가면은 무슨 학생일 수도 있고. 또 어디 가면은  모임에 가면은 무슨 회장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단체에 자기가 어떤 큰 책임을 맡은 그런 사람일 수도 있고.

 

또 가정에서는 주부일 수도 있고. 학교에 가면은 선생님일 수도 있고. 그것이 이제 경우 따라서 자기가 나타내는 모습이 다른 것을 화신이라 그래요. 부처님을 천백억 화신이라 그러죠. 변화되는 그런 어떤 모습을 중생의 경우에 따라서 나타낸다. 그런 표현을 우리가 쓰지 않습니까? 그것이 삼신(三身)이고,

 

사지(四智)는 네 가지 지혜라고 하는 것인데 부처님의 지혜를 그냥 지혜라 해도 좋습니다마는, 대개 큰 거울 같은 그런 지혜다. 대원경! 그러죠. 대원! 얼마나 근사합니까? 대원경지(大圓鏡智)!

 

큰 거울은 어떻습니까? 가는 사람마다 다 비쳐줘요. 뭐 거울은 반대하고 싫어하고 또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 그런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그렇다는 거죠. 그 다음에 평등경지(平等鏡智) 도 그와 유사한 것인데, 아주 골고루 그 지혜가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것이 평등경지! 또

 

묘관찰지(妙觀察智)! 모든 것을 아주 잘 관찰 해서 세세하게 하나도 놓치지 아니하는 그런 지혜! 그것이 묘관찰지, 그 다음에

 

성소작지(成所作至)! 이것은 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내요. 우리는 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안 되잖아요. 그런데 부처님의 능력은 하려고 하는 것은 다 이룬다. 그래서 성소작지라. 그래서 묘각(妙覺)이 지혜(智慧)로 이렇게 분류도 되고, 그 다음에

 

그것이 다 우리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다. 체중원이다. 이게 중요해요. 그까짓 것 삼신사지가 되었던지. 사십 오지가 되었던지.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능력도 우리의 마음가운데 다 원만히 갖추어져 있고, 팔해육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덟 가지 해탈(解脫)이라고 하지마는 뭐 해탈하면 다 아는 해탈 아닙니까? 생사로부터 해탈. 고통으로부터 해탈. 온갖 속박으로부터 해탈. 일체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이게 불교에서 참 좋은 말이에요.

 

불교의 여러 가지 낱말 중에 이 해탈이라는 말이 아주 좋아요. 듣기만해도 시원하지 않습니까?  특히 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하게 벗어날 수 있고. 또 직장에 매여있는 사람! 가정에 매여있는 사람! 직장이 좋고 가정이 좋고 그런 구속. 어떤 소속 이런 것이 참 좋은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늘 좋은 것은 아니죠. 한 번쯤은  확 그냥 벗어나버리고 싶은, 그런 감을 느낄 때가 또 부지기수로 사실은 많아요. 사람은 소속되어 있는 것이 좋아요. 그러나 그 소속으로부터 완전히 그냥 떨쳐버리고 벗어나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도 모든 사람들에게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것 참 묘한 거죠.

 

일반 신도들이 스님들을 볼 때 그래요.

“아이 스님들은 가정이라고 하는 그런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말이지, 무슨 해가 졌다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있나, 무슨 몇 날 며칠을 외박을 하니 집으로 전화 할 일이 있나, 아무도 없어서 참 좋겠다.”

 

천만에 그렇지 않아요. 얼마나 거기는 그런 대로 구속이 심한데요. 구속이 심하고 어떤 소속감이라고 할까? 그런 것도 있고요. 또 너무 자유로우면 구속되고 싶어요. (ㅎㅎㅎ~) 아이 정말 그래요. 구속되고 싶다고요. 그래서 소속감이라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아주 고마워요.

 

어떤 근사한 단체에 여러분들 가입해 보십시오. 괜히 어깨가 우쭐하고 그렇다고요. 나도 그런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 그런 것이 있어요. 여러분들 여기 문수원에 한 일년쯤 공부하고 다니면 ‘아이 나는 문수원에 한 일년쯤 공부했어.’ 하면 아주 뿌듯하고 흐뭇한 그런 감을 아마 가질 거에요. 자기도 모르는 그런 소속감! 그것도 일종의 소속감이에요. 인간에게는 그런 본능이 있습니다.

 

소속되면은 벗어나고 싶고. 벗어나 있으면 소속되고 싶고 그런 아주 상반되는 그런 감정들을 본능적으로 다 갖추어 있다 이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팔해탈! 부처님의 해탈을 여덟 가지로 표현을 하는데, 여덟 가지 까다로운 표현을 다 익힐 필요도 없고, 어쨌든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났고.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그렇다고 자기 멋대로 그저 고삐 풀린 망아지가 아니고 누구보다도 질서를 잘 지키고. 누구보다도 아주 주체적인 삶을 살고. 누구보다도 어떤 해야 할 것과 안 해야 할 것을 꼭 제대로 지킬 줄 아는 그런 삶을 살면서도 마음으로부터는 환하게 벗어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끝나는 뭐까지 벗어나는고 하면은 죽음까지도 벗어나 있는 사람, 그러니까 불교에서 생사해탈 그러지요. 궁극에 가서는 생사해탈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육신통(肉身通)인데 그런 해탈(解脫)을 통해서 또 신통이 여러 가지가 있게 마련인데, 보통 육신통은 우리들도 할 수가 있다 그래요. 그런데 누진통(漏盡通)! 번뇌가 다하는 신통은 불교만이 가능하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천안통(天眼通) 하면은 요즘 텔레비전 같은 거나, 컴퓨터 인터넷 같은 것은 전부 천안통 이에요. 가만히 앉아 가지고 다 보거든요, 환희 본다고요. 그것이 천안통 이에요. 미국에서 중계하면은 여기서 다 보잖아요. 그런 어떤 기계를 동원을 하고 어떤(? …) 하지마는 그것도 일종의 천안통 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육통 중에 천안통은 견성을 하면은 그냥 갖추어져 있는 거에요. 자기가 보고싶으면 언제든지 마음만 내면은 달나라고 화성이고 거기까지 안 가도 환하게 볼 수가 있어요. 그것이 천안통!

 

그 다음에 타심통(他心通)! 다른 사람의 마음을 환히 꿰뚫어 보는 것. 그 다음에 신족통(神足通)! 지금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빠른 시간에 가지요. 여기 신족통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 신족통 이라고 하는 것은 비행기타고 가야 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서울 가고 싶다 그러면은 “싶다”라고 그러는 그 순간에 이미 서울에 가 있어요. 생각 따라서 바로 그 자리에 이미 가 있는 것, 이런 것도 신족통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타심통, 천안통. 천이통이라고 하는 것도 있어요. 천이통(天耳通).! 이것도 하늘 천(天)자에 귀이(耳)자인데. 천안통 하고 마찬가지로 천안통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천이통은 귀로 듣는 거죠. 타심통. 천안통 천이통. 신족통. 그 다음에 누진통(漏盡通)! 번뇌가 다한 것. 그 다음에 또 뭐 있죠? 그런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그런 신통들, 이것을 가지고 아주 수행의 큰 결과라 라고 그렇게 하는데 그것도 결국은     

 

心地印(심지인)이라,

 

 여러분들 마음속에 도장을 새겨 놓듯이 그대로 다 갖추어져 있다 이거죠. 도장은 새겨놓으면 갖다가 계속 찍기만 하면 찍는 대로 나타나는 것 아니에요 여러분들 이름을 도장을 새겨놓으면 갖다 찍으면 계속 그 이름만 나타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팔해 육통도 전부 우리 마음속에 다 있어요. 표현만 하면 되는 거죠. 그래서 다른 것은 놓아 두더라도 이 해탈문제를 가지고 내가 가끔 여러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해탈이라고 하는 게 이것이 그렇다고 뜻을 왜곡하는 것은 아닌데, 이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는 우리의 고정관념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해탈(解脫)입니다. 해탈(解脫)은 불교에서 아주 훌륭한 낱말이기 때문에 더욱 내가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고정관념에서부터 벗어나고, 그것이 모든 구속에서부터 벗어나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어떤 아프고 쓰라림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래서 결국은 죽음으로부터도 벗어난다.

 

그러면은 생사해탈을 하려면은 첫째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이 어딘고 하면은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는 경우에 한 가지 예를,  내가 그전에 오대산 상원사 겨울 결제 한철을 그 때는 한 사십 명이 결제를 해 가지고 잘살았어요. 거기는 눈도 굉장히 많이 오죠. 상원사 선방이 그 때가 아주 잘될 때입니다.

 

그런데 해제를 할 때 해제하는 날 오라는 데도 없고 가라는 사람도 없는데, 전부 걸망 지고 다 나가는 거에요. 다 내려가고 다섯 명인가 남 더라고요. 해제가 정원보름 아닙니까? 다 가버리고 보름날 저녁에 물이 다 얼어 가지고 물을 물지게로 저다가 저녁에 채워놓아야 내일 아침에 밥도 하고 세수도 하고 그것 가지고 하루종일 써요.

 

그래서 저녁에 물지게를 지고 왔다 갔다 하면서 두 사람이 졌는데 한 사람은 해제했다고 갔으니까 내 혼자서 졌는데, 그 밝은 달빛아래 하얀 눈길을 혼자 물지게를 몇 번 밤이 얼마나 되는 줄도 모르게 혼자 그 물지게를 저다 나르면서 굉장히 하이 튼 눈물을 참 많이 흘렸던 그런 때인데 그 이야기가 문제가 아니고,

 

다섯 명이나 남았는데 해야 할 일은 똑 같더라 고요. 사십 명이 있으나 다섯 명이 사나 해야 할 일은 똑같아요. 예불하고 종송하고 체공 하고 무슨 밥하고 일체 해야 할 것은 똑 같은 거죠. 그런데 순번을 그날 저녁에 다시 짜 가지고 돌아가면서 공양주하고 체공을 시켰는데, 체공을 쭉 돌아가면서 일주일씩 하는데,

 

??라고 하는 스님이 체공을 떡 들어가더니 반찬이라고 해야 무 김치 딱 한가지예요. 오대산에는 아주 짜고 물김치도 아니고 하이 튼 아주 이상하게 물김치 종류지요. 그런 김치 한가지인데 그것을 가지고 겨울 내내 반찬 하는 거에요.

 

그전에 김장 때 담은 김치 그것을 꺼내 가지고 써는데 그것이 거의 일정하게 썰어내더라 고요. 좀 길쭉하게 이렇게 썰어내 놓는데 그런데 이 스님이 하면은 매 끼 다르게 썰어 내 놓는 거에요.  ‘그래 아 참 해탈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해탈의 생활화! 바로 이것이구나!’ 어떻게 알았느냐?

 

동(冬) 무 같이 생긴 그 무 김치인데 거기는 이상하게 배추랑 무랑 물을 적당히 부어 가지고 똑같이 담구어요. 물은 붓지 않지. 거기에서 나오는 물인데  아주 짜지요. 그런데 그것을 길게 썰었다가 짧게 썰었다가  깍두기 같이 썰었다가 뭐 물을 채웠다가 물을 뺐다가 나중에는 그냥 줘요.

 

그냥 줘서 숟가락으로 떠서 먹게 하다가 또 칼을 들여놓았다가 자기 마음대로에요. 그래서 숟가락으로 삦어 먹을 때 맛이 다르고. 칼로 썰어 먹을 때 맛이 다르고 길게 썰었을 때 맛이 다르고 짧게 썰었을 때 맛이 다르고 물이 있을 때 맛이 다르고 물이 없을 때 맛이 다르고

 

처음에 한 이틀은 몰랐다고요. 이렇게도 썰고 저렇게도 썰 이는 모양이다 그랬는데 그 다음에 보니 웬걸 아니 예요. 매끼 다른데 일주일이면 삼 칠은 이십 일, 무 하나를 가지고 스물 한번이나 변화를 주더라니 까요.

 

그래서 ‘아 해탈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고정관념으로부터 무는 이렇게 썰어야 한다는 법은 세상에 없어. 배추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그런 법은 없다고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생각을 하면은 항상 새로운 어떤 것이 얼마든지 가능해.

 

지금까지 해온 것 전혀 무시해도 상관없습니다. 싹 무시해버려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 때 그 감명을 못 잊고 자주 이야기를 해요. 해탈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이야기를 잘하는데 해탈이란 바로 그런 데서부터 출발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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