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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眞心功德 진심공덕 (34)

 

 

三身四智體中圓이요 八解六通이 心地印이라

삼신사지체중원     팔해육통   심지인

乃是體中에 自具性功德也라  

내시체중   자구성공덕야

 

古頌에 若人이 靜坐一須臾 하면 勝造恒沙七寶塔이라

고송   약인   정좌일수유      승조항사칠보탑

寶塔은 畢竟化爲塵이어니와 一念淨心은 成正覺이라

보탑   필경화위진         일념정심   성정각

故知無心功이 大於有心也로다  

고지무심공   대어유심야 

 

洪州水療和尙이 參馬祖問하사대 如何是西來的的意이닛고

홍주수료화상   참마조문       여하시서래적적의

被馬祖의 一踏踏到하야 忽然發梧하사

피마조   일답답도     홀연발오

起來撫掌大笑云하사대 也大奇也大奇라

기래무장대소운       야대기야대기

 

百千三昧와 無量妙義를 只向一毛頭上하야

백천삼매   무량묘의   지향일모두상

便一時에 識得根源去라하시고 乃作體而退 하시니

편일시   식득근원거         내작체이퇴

據此則功德이 不從外來하야  本自具足也라

거차칙공덕   불종외래      본자구족야

 

四祖가 謂懶融禪師曰夫百千法門이 同歸方寸 하고

사조   위라융선사왈부백천법문   동귀방촌

河沙功德이 總在心源하야 一切戒門定門慧門과 神通變化가

하사공덕   총재심원     일체계문정문혜문   신통변화

悉自具足하야 不離汝心이라 하시니

실자구족     불리여심 

 

據祖師語컨댄 無心功德이 甚多언마는

거조사어     무심공덕   심다

但好事相功德者는 於無心功德에 自不生信耳니라

단호사상공덕자   어무심공덕   자불생신이

 

 

 옷 입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옷 입는 것도 보면은 옛날 사람들은 꼭 속 옷은 안으로 들어가야 된다고 하지만, 요즘은 속 옷이 겉으로 막 나오데요. (ㅎㅎㅎ~) 속 옷이 겉으로 막 나와요. 유명한 스타들이 그렇게 입고 나오니까 그 다음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도 그렇게 입고 나오는데, 아 그것도 자꾸 보면은 또 괜찮아요. (ㅎㅎㅎ~ )

 

 그러니까요, 고정관념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해탈(解脫)이 가능한 거예요.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돼요.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야 되고 벗어나려고 하는 생각이 있는 한 얼마든지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오천년의 과거 역사를 걸어왔지마는 얼마든지 새로운 것, 앞으로 발전해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은 거에요. 새삼 이보다 더 발전 할 것이 뭐 있겠나 하지마는 천만에요,

 

 여러분들 Tv에서 패션 쇼 더러 보지요? 같은 옷 한번이라도 본적이 있습니까? 한번도 없는 거에요. 뭐 복고풍 어쩌고 저쩌고 해도 또 달라요. 어째 약간 전체적인 분위기만 옛날 같지 또 거기서는 새로운 변화를 주고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고요. 그래요. 그것이 어째서 가능하냐?

 

心地印이고 體中圓이야.

심지인     체중원

 

 우리 마음속에는 무궁무진한 그런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출발하니까 그런 것이 가능한 거죠. 그러니까 무 하나가지고도 뭐 열 두 가지 반찬이 아니 예요. 얼마든지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스님은 그것을 조리를 하는 것도 아니 예요.  써는 데만 그렇게 변화를 주니까 맛이 달라지고, 분위기가 달라지고. 그리고 며칠이 지나니까 은근히 기대가 되는 거예요.

 

 야!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올라올 것인가? 어디 한번 구경해보자. 그 다음부터 기대를 하게 되더라니 까요. 그것을 기대를 하니까 새로운 것이 오니까 이거 그전에 했던 것이 아니냐고 하니까 . 아! 한적이 한번도 없는 거예요. 이런 것으로 한적은 없다 이거죠.  그것을 썰어서 들여놓은 사람은 다 알아요.

 

 그 때는 물을 채워서 이렇게 썰었지 않느냐. 오늘은 물이 없이 이렇게 썰었다는 거죠. 똑같이 마름모꼴로 썰어도 물을 채운 것 하고. 물을 뺀 것 하고 그것은 다르잖아요. 그것 참 스스로 우리가 칼로 가지고 썰어 먹을 때. 또 숟가락으로 삦어 먹을 때. 그 무를 숟가락으로 삦어 먹어보면 그것도 괜찮아요. 잘 안 삦어지거든요.

 

 팔해육통 중에서 특히 여덟 가지 해탈 했지마는 해(解)자는 해탈을 뜻하는 것이고, 해탈은 불교가 지향하는 어떤 꿈이요 사실은 목표입니다. 그 해탈을 늘 염두에 두고 항상 어떤 새로운 삶을 우리가 펼치려고 하는 그런 자세가 있을 때 해탈이 가능하다는 거죠.

 

 그래서 해탈은 첫째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고정관념으로부터 해탈이다. 그렇게 알아야 됩니다. 뭐 생사해탈 멀리 있는 것을 지금부터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서부터 해탈을 생각을 해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여기 해탈이 목표가 아니고 심지인 체중원이라고 하는 것이 주안점이에요. 그 어떤 것도 전부 내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다. 앞에서 구슬이야기를 했듯이 단 어떤 부정적인 생각! 어떤 화석화 돼 버린 그런 생각!

 

“안 된다. 아이 나는 재주가 없다. 나는 못 배웠다. 나는 둔하다. 여자가.” 뭐 이런 화석화 돼 버린 그런 잘 못된 부정적인 생각! 이것이 문제라고요. 이게 망상이 덮여서 나타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그 말입니다. 특히 자녀들 교육에 이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현재 이 자리에 계시는 분들도 첫째 중요하지마는 그 다음에 또 자녀들에게도 어떤 그런 자세! 이것이 참 중요한 것이거든요. 이렇게 살 줄 알아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들 보통 굳어진 그런 어떤 생활을 하는 것, 편할지는 몰라도 하나도 늘 푼수 없는 생활 이에요. 자꾸 벗어나야 되는 거죠.  

 

乃是體中에 自具性功德也라

내시체중   자구성공덕야

 

乃是(내시)  이것은,

 

體中(체중)에

 

체(體)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심 체입니다. 마음!

마음의 체 가운데 스스로 성품의 공덕을

구(具)! 갖추고 있는 것이다.

 

古頌(고송)에

 

옛날 시

  불교에서는 송이라는 말을 잘 쓰는데 시라는 뜻도 돼요.

  옛 사람의 게송에 말하기를

 

이것은 아주 선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게송 중에

하나입니다. 이것은 밑줄 쫙이에요. 

 

若人이 靜坐一須臾 하면 勝造恒沙七寶塔이라

약인   정좌일수유      승조항사칠보탑

 

寶塔은 畢竟化爲塵이어니와 一念淨心은 成正覺이라

보탑   필경화위진         일념정심   성정각

 

  여기 까지 넷 구죠. 일 곱자 넷 구인데,

이것은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용기를

북돋우고, 어떤 자긍심을 키우는 그런 말씀입니다.

 

若人(약인)이

 

만약에 어떤 사람이

 

靜坐一須臾라

정좌일수유

 

고요히 앉는다. 얼마동안?

一須(일수) 잠깐 동안만

 

한 일분 일초만 앉아도, 一須(일수)라는 말이 그런 뜻이거든요. 잠깐 동안이라도 아주 짧은 시간을 수문간 이라 그러잖아요. 이게 정좌라는 게 뭐겠습니까? 몸도 마음도 고요하게 앉은 그런 앉음새, 몸이 앉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물론 몸도 앉는 게 중요하지마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사 서서 서 있다 하더라도, 마음이 한 순간이라도 텅 비어서 아무 망상 없이 고요한 그런 상태가 될 것 같으면은, 잠깐만 그런 마음을 유지 한다 하더라도

 

勝造恒沙七寶塔이라

승조항사칠보탑

 

勝(승)! 훨씬 뛰어나고 훨씬 수승하다.

무엇보다 수승 한고 하니

 

항하강의 모래숫자와 같은 칠보로 된 탑을 조성하는 것 보다도 훨씬 낫다. 큰 절 백 개 짓는 것 보다도 훨씬 낫고, 불상 천 개 만 개 짓는 것 보다도 낫고. 여기 칠보탑(七寶塔)이라고 하는 말은 옛날에 불상을 조성하기 이전에 탑 신앙이 먼저 예요. 초기에는요, 불상을 모시지 않았습니다. 불상을 안 모시고 탑을 모셨어요. 부처님이 열반하시니까 부처님의 사리를 탑에다 넣고, 그것을 탑을 쌓고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탑을 공경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탑은 곧 부처님이에요.

 

그런데 한 두 군데의 탑이 아니고 항하강의 모래 숫자와 같이 많고 많은 탑! 그리고 그 탑도  화강석으로 쌓고 흙으로 쌓고 벽돌로 쌓는 것이 아니고 칠보로서 탑을 쌓는 것. 그런 훌륭한 불사를 했다 하더라도 그 보다도 훨씬 뛰어나고 수 승하다.

 

무엇이 그렇죠?

 

靜坐一須臾하면

정좌일수유

 

  잠깐만이라고 고요히 앉아 있다면은

고요히 앉아서 마음을 밝히는 그 일이 훨씬 낫다.

왜 그런고 하니,

 

寶塔은 畢竟化爲塵이어니와

보탑   필경화위진

 

 칠보탑(七寶塔)을 아무리 높이 많이 쌓았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결국은 필경에 가서는, 결국에 가서는 변화해 가지고 다 먼지가 되고 말아요. 다 부서지고 깨어져서 티끌이 되고 만다고요. 다이아몬드로 탑을 쌓아도 결국은 다이아몬드고도 깨어지고 말아요. 비 바람치고 지진이 일어나고 하면 다 깨어지고 말아요.

 

저기 미얀마에 가면은 이런 말들이 굉장히 실감이 납니다. 미얀마의 소도시에 이렇게 가면은 아주 넓은 들에 탑이 그냥 수 천 수 만개가 있어요. 온 들에 그냥 탑 천지예요. 그러면 그 나라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자기가 태어나서 자기 혼자 힘으로, 자기 개인 탑 하나 세우는 게 원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탑이 있는 거에요.

 

그래서 흙으로 된 탑. 벽돌로 된 탑. 또 돌로 된 탑. 큰 탑. 작은 탑 별의 별 그런 탑이 많았어요. 아마 그게 탑 신앙이 그렇게 크게 발전해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거기 보면은 지금도 관광객이 드나들고 아주 관리가 되고 있는 탑이 있는가 하면은, 반 이상의 탑이 전부 허물어 졌어요.

 

전부 그냥 무너지고 잡초가 우거지고 그렇고 한 반은 관리가 잘 되어 있고 그렇더라 고요. 아주 많으니까 관리하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탑이 많이 허물어진 모양입니다.  참 애석한 마음도 들고 그런데 왠 탑을 그렇게 많이 쌓았나 온 들에 그냥 탑이 예요.

 

탑이 있고 그 사이 사이에 곡식을 심어놓았어요. 탑이고 곡식이고 밭이고 탑이고, 논이고 탑이고 그냥 그래요. 그래서 탑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변화해서 먼지로 돌아가고 만다. 그런데

 

一念淨心은 成正覺이라

일념정심   성정각

 

  한순간 마음 깨끗하게 가진 그 마음은 결국은 정각을!바른 깨달음을 이룬다.

 

그러니까 한마음 청정하게 가지고 한마음 고요하게 가지는 그 순간이 자기에게는 훨씬 좋다 이 말이죠. 이런 것도 잘 못 이해하면 다시는 절에 가서 보시하고 복 지으려고 안하고, 절 짓는다 하고 탑 쌓는다 해도 보시 안하고 그냥 그저 오나 가나 앉아서 배기려고 하게 생겼어요. (ㅎㅎㅎ~)  사실은 그쯤 되면 괜찮아요. 그럼, 불자가 그쯤 수준은 되어 야죠. 그런데 너무 병적으로 그렇게 떨어지면 곤란하지마는 이런 정도는 또 이해하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아! 아주 유구한 어떤 역사 속에서 그런 내 삶 속에서, 삶의 역경 속에서 결국 남는 것은 뭐냐? 내 한마음 고요하게 갖는 것! 내 한마음 깨끗하게 가져 가지고 결국은 깨달음을 이루는 것! 그것만 남아요. 사실은 그래요.

 

뭐 대통령을 수 백번을 해도 그것은 남는 것이 아니고. 천하를 다 가졌어도 그것도 남는 것도 아니고 남는 것은 사실 없어요. 오랜 삶의 역사 속에서 보면은. 남는 게 뭐 있습니까? 그런데 제대로 깨달음을 이루었다면은 그것은 남는다 이거죠.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우리 인간이 일회적인 인간이 아니니까. 한번만 살고 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더 그렇죠. 그래서

 

若人이 靜坐一須臾 하면 勝造恒沙七寶塔이라

약인   정좌일수유      승조항사칠보탑

 

寶塔은 畢竟化爲塵이어니와 一念淨心은 成正覺이라

보탑   필경화위진         일념정심   성정각

 

만약에 어떤 사람이 한 수일 동안 만이라도 고요히 앉을 것 같으면은,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칠보탑을 조성한 것보다 수승하다. 돌로 된 칠보탑은 필경에 변화해서 먼지가 되거니와, 일념의 청정한 마음은 정각을 이룬다.

참 좋은 말입니다. 이게 아주 선방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요.

 

그래서 자기들이 참선하고 있는 그 일을 이런 것을 가지고 어떻게 타당성을 거기서 찾고, 또 어떤 가치를 찾고 그렇습니다. 물론 이런 면이 분명히 있어요. 그러나 앞에도 이야기 했듯이 마음 닦고 하는 것은 정(正)과 조(助)가 필요하다.

 

一念淨心(일념정심)도 훌륭하지마는 그 외에 부수적으로 꼭 당연히 해야 할 일, 그런 선을 행하는 그런 일도 좋다. 필요하다 하는 것입니다.

 

故知無心功이

고지무심공

 

故知(고지)  고로 알라.

 

無心功(무심공)이  무심공부가

 

大於有心也로다

대어유심야

 

무심공부가. 일념정심이라든지. 靜坐一須臾(정좌일수유)라든지 이런 것이 전부 무심공부 거든요. 무심공이 라는 것도 역시 무심공부 입니다. 마음 닦는 공부가 유심보다도 크다.

 

大於有心(대어유심)

 

유심 보다도 훨씬 크다.

그리고 한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하는데

 

洪州水療和尙이

홍주수료화상

 

홍주에 있는 수료화상이라고 하는 스님이

 

參馬祖問 하사 대

참마조문

 

마조라고 하는 스님을

참(參)! 참배 하고서 묻기를

 

如何是西來的的意이닛고

여하시서래적적의

 

이것을 우리 영화 제목으로는 뭐라고 했지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그랬죠.

서쪽에서 오신 뜻은 이 말은 그 말입니다.

서래의(西來意)하니까.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

 

如何是西來的的意 그랬어요.

여하시서래적적의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온

 

的的意(적적의)란 말은

 

  아주 확실한, 빈틈없는 . 그것 뿐인, 그런 의지.

  확실한 그런 뜻이 무엇입니까? 이 말입니다.

 

그래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그런 뜻이 되죠. 그런 말이 되고. 이쪽에서 보면은 서쪽에서부터 이쪽, 동쪽으로 왔으니까 동쪽으로 온 확실한 뜻은 뭡니까? 그것을 물었어요. 이런 질문 내지 대화는요, 우리 조사 스님들의 어록에 보면은 부지기수로 있습니다. 그랬는데 그 때

 

被馬祖(피마조)의

 

마조 스님이 있다가

다짜고짜 수료화상을 갖다가

 

被馬祖의 一踏踏到하야 忽然發梧하사 그랬어요.

피마조   일답답도     홀연발오

 

마조의 일답답도함을 잊고, 피(被)! 잊고

홀연히, 문득

 

發梧(발오)라.  깨달았다.

 

一踏踏到(일답답도)라고 하는 말은

 

한발로 그 사람을 밟아버렸어요.

 

그 수료화상이라고 하는 이를, 그 묻는 사람을 다짜고짜 아무 말도 없이 그냥 한번 걷어 차서 그 사람을 밟아버렸어요. 밟을 踏(답)자인데, 말하자 면은 소나 말이 예를 들어서 밑에 사람을 밟을 때 그런 답자예요. 그 사람을 한번.밑에다 놓고 발로 그냥 밟아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어이 없는 거죠. 점잖은 사람들끼리 이게 뭐예요.

 

마조 스님이라 하면은  그 당시 아주 훌륭한 조사 스님이고, 수료화상이라는 이도 천하에 아주 대 선지식인데 그런데 깨닫지를 못했죠.  그래서 이런 경우를 당하고 홀연히 깨달아서 

 

起來撫掌大笑云 하사 대

기래무장대소운

 

그러고는 떡 일어나 가지고, “아, 이런 것은 백번 밟혀도 좋겠네.” 아이 한번 밟히고 깨달으면 백번 천번 밟히고도 남는 일이지. 그리고 일어나서

 

起來撫掌大笑云이라

기래무장대소운

 

손바닥을 비비면서, 만지면서 크게 웃는 거예요.

크게 웃으면서 말하기를

 

也大奇也大奇라

야대기야대기

 

“야, 너무 신기하다.” 또한

“크게 신기하고 또한 크게 신기하다.”

글자대로 새기면 그거에요.

야! 훌륭하고 훌륭하다. 기가 막힌 벌이다.

그 말입니다.

 

  也大奇也大奇라

야대기야대기

 

그 무엇이 그렇게 크고 기특하냐?

大奇(대기)라는 것은 크게 기특하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도 뭐라고 그랬죠? “기재 기재라” 그랬어요. 이 기(奇)자를 써 가지고. “신기하고 신기하다.” 똑같은 경우입니다. 부처님이 샛별을 보고 견성오도! 아침에 샛별을 보고 깨닫고 나서 “신기하고 신기하다.”표현이 비슷해요.

 

 也大奇也大奇라.

 야대기야대기

 

“야, 크게 신기하고 크게 신기하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고 하니, 뭐라고?

 

 百千三昧와 無量妙義를 只向一毛頭上하야

 백천삼매   무량료의   지향일모두상

 

 便一時에 識得根源去라.

 편일시   식득근원거

 

 百千三昧(백천삼매)와

 

 삼매도 백 천 삼매가 있어요.

 

 삼매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경전에도 보면은 삼매가 많고 특히 화엄경에 보면 수많은 삼매가 있고, 또 십정품(十定品)이라고 해 가지고 삼매만을 이야기한 그런 품이 또 있어요. 열 가지 큰 삼매를 이야기 하는데, 거기에 보면 열 가지 큰 삼매에 따르는 백 천만 가지 삼매가 또 쭉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 훌륭한 삼매, 그리고

 

無量妙義(무량료의)를

 

한량없는 미묘한 뜻, 묘의를. 그런 것들을 다만 

 

只向一毛頭上하야 便一時에 識得根源去라 하시고

지향일모두상     편일시   식득근원거

 

識得根源去(식득근원거)

 

그 근본 근원을 다 알았다. 이런 표현을 했는데

 

一毛頭上(일모두상)이라고 하는 것은

 

한 털끝이라고 하는 게 그것이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아주 작은! 터럭 끝이라는 게 그게 뭐 끝이 잘 보입니까? 옆으로 모여졌을 때나 잘 보이지 터럭 끝은 잘 안보이죠. 아주 작은 면적. 아주 작은 부분. 그 위에, 거기서 그 일을 통해서 그런

 

百千三昧와 無量妙義를

백천삼매   무량료의

 

근본을 다 알아버렸다. 말은 그 말입니다.

그러면 一毛頭上(일모두상)이라는 게 여기서 뭐지요?

한번 밟는 일이에요. 그것은 뭐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한순간 밟는데 뭐 한시간이 걸리겠어요. 두 시간이 걸리겠어요. 그런데 일 이초 사이에 사람 한번 이렇게 밟는 그 순간, 그 하찮은 일! 그 짧은 순간! 그 작은 일! 그 소소한 그런 일을 통해서

 

百千三昧와 無量妙義가

백천삼매   무량료의

 

전부 내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 버렸다. 그 근본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표현을 했어요. 그게 말하자 면은 저 앞에  三身四智體中圓(삼신사지체중원)이요, 八解六通(팔해육통)이 心地印(심지인)이라 라고 하는 그런 말하고 연결이 다 되는 거죠. 다 알았다 하시고,

 

乃作禮而退 하시니

내작예이퇴

 

그리고 나서는 예배를 떡 올리고는 물러난 거죠.

옛날 조사 스님들이 깨닫는 기연을 보면은 아주 신기해요. 이렇게 한발로 걷어 밟히고는 또 깨닫고. 어떤 이들은 눈 위에 미끄러지고는 깨닫고. 또 일을 하다가요 돌을 잘 못 건들어 가지고 돌이 뚜르르 굴러가 가지고 대나무에 “툭” 부딪치는 그 소리에 또 깨닫기도 하고.

 

또 복숭아꽃이 확 핀 모습, 꽃 핀 모습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마음이 공부가 이렇게 어떤 절정에 달해놓으면은, 그런 하찮은 아주 작은 계기에 그렇게 깨닫게 된다고요.

 

부처님도 역시 공부가 익어놓으니까 매일 보던 아침 샛별인데, 항상 뜨는 샛별인데 그 샛별! 아침에 샛별! 그것을 보고 척 깨달았거든요. 그게 그날만 뜬 것도 아니고 늘 뜬 것이고 늘 보던 것인데  그 순간에 말하자 면은 공부가 어떤 절정에 달했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乃作禮而退 하시니

내작예이퇴

 

예배를 짓고는 물러나시니

 

據此則功德이

거차칙공덕

 

이런 경우에, 이런 사정에 일거해서 본다면은 공덕이 

 

不從外來하야  本自具足也라

불종외래      본자구족야

 

이 말이 중요합니다. 모든 공덕이

 

不從外來(불종외래)여.

 

밖으로 좇아 온 것이 아니죠. 그리고

 

本自具足也(본자구족야)라

 

  이 말이 중요한 거죠. 본래 스스로 다 구족 하고 있다.

이것은 천 번 만 번 이야기 하는 것이고, 경전마다 항상 이야기 하는데 이것을 제발 우리가 믿어야 돼요. 우리들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 정말 정말 무한한 능력이 우리들 자신 속에 본래 다 갖추고 있다 라고 하는 것, 그래 가지고 어떤 일도 꼭 하고 싶은 일은 할 수가 있고,  원력을 강하게 세우고 그렇게 씨앗을 그렇게 심으면은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는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四祖가 謂懶融禪師曰

사조   위라용선사왈

 

四祖(사조)가

 

  四祖(사조) 승찬 대사지요. 

그분이 라용이라는 선사에게 일러 말하기를

 

夫百千法門이 同歸方寸 하고

부백천법문   동귀방촌

 

보십시오 자, 백 천 가지 법문이

 

同歸方寸(동귀방촌)이라

 

다같이 방촌으로 돌아 간다.

方寸(방촌)은 우리 마음을 방촌이라 그래요. 본래 방촌은 사방일촌, 여기 심장을 두고 하는 이야기에요. 심장이 크기를 재면 보통 사방일촌 이거든요. 심장이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지마는 대개 방촌이라는 말은 사방일촌이 라 그런 말입니다.

 

심장인데 심장을 두고 한 소리가 아니고, 마음을 두고 흔히 이렇게 지칭을 해요. 심장도 마음은 마음이니까. 그래서 백 천 가지 법문이 전부 내 마음으로 돌아간다. 내 마음에 있다 이 말이죠. 그리고

 

河沙功德이 總在心源하야 

하사공덕   총재심원

 

  항 하강의 모래숫자와 같이 많은

 

  河沙功德(하사공덕)

 

이것도 하사라고 하는 것은 항 하강의 모래라는 그런 뜻이에요. 항 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그런 공덕이

 

總在心源(총재심원)하야 

 

總(총)! 모두 다,  心源(심원)에 있다. 마음에 있다.

總在心源(총재심원)에 있어서,

마음! 근원자리에 있어서, 내 마음에 있어서

 

一切戒門定門慧門과

일체계문정문혜문

 

모든 계 정 혜 이것이 삼학(三學)이죠.

계(戒)와 정(定)과 혜(慧)! 이것이

 

神通變化가 悉自具足하야 不離汝心이라 하시니

신통변화   실자구족     불리여심

 

다 스스로 구족 해(갖추어) 가지고서

내 마음을 떠나있지 아니했다.

전부 내 마음속에 다 있다.

 

오늘 이야기가 전부 그거네요. 진심공덕! 그 훌륭한 공덕들이 전부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 달마에게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전부 우리들 개개인의 마음속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것은 다 똑같습니다. 배우고 못 배우고도 하등의 상관이 없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똑같다. 그 말입니다. 참 이런 가르침은요, 불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뭐 괜히 사람은 무슨 종이라고 하고. 누구를 뭐라고 하고 이런 식으로 당치도 않는 이야기거든요.

 

사람을 갖다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 사람이고 사람의 무한한 능력이 얼마나 큰 일을 하는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더 이상 참 갈 수 없는 훌륭한 존재에요 여기 보십시오,

 

悉自具足하야 不離汝心이라,

실자구족     불리여심

 

그대의 마음을 떠나있지 않다.

 

戒門定門慧門 神通變化

계문정문혜문 신통변화

 

이것이 전부 그렇다.

이야기가 전부 통일된 이야기 아닙니까?

 

三身四智體中圓이요 八解六通이 心地印이요

삼신사지체중원     팔해육통   심지인

 

百千三昧와 無量妙義가 一毛頭上에

백천삼매   무량료의   일모두상

 

전부 그 근원자리를

 

一毛頭上(일모두상)

 

다, 자기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 속에 있다는 소리를 알았고, 그래서

 

據祖師語컨댄

거조사어

 

조사 스님들의 말씀을 일거 하건대

 

無心功德이 甚多언마는

무심공덕   심다

 

무심의 공덕이 심히 많아. 끝도 없이 많건마는

 

但好事相功德者는

단호사상공덕자

 

사상의 공덕을 좋아하는 자는, 눈 앞에 보이는 것,

‘아이고 아무리 마음 속에 공덕이 많이 있어도 뭐, 당장에 오늘 벌이가 잘 되야 공덕이지 그것 뭐 아 오늘 벌이가 시원찮은데 마음 속에 암만 공덕이 있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런 식으로만 계속 나가는 사람이 사상 공덕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사상공덕을 좋아하는 자는

 

於無心功德에 自不生信耳니라

어무심공덕   자불생신이

 

 무심공덕에 있어서 스스로 그 믿음을 내지 아니할 따름이다. 꼭 우리가 유의해 둬야 할 그런 일입니다. 우리는 참 문제에요. 눈앞에 보여진 것, 눈앞에 있는 이해 타산. 당장에 눈앞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 그것만 계산하거든요.

 

정말 우리들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어마어마한 그 공덕! 거기에 우리가 눈을 돌릴 줄 아는 그런 훈련을 우리가 받아야 됩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러나 자꾸 이런 먼저 깨달은 분들의 가르침을 접하고 해서 가끔 한번은 ‘야, 이참 내 마음의 공덕이 큰가? 그렇다면 비록 한끼 굶어도 괜찮겠구나. 또 오늘 돈 좀 못 벌어도 아! 내 마음 속에 그런 훌륭한 공덕이 있다는데, 그거 뭐 오늘 수입 좀 안 좋은들 무슨 상관이 있나.'가끔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요. 그렇게 큰 생각이 발전을 하면은 정말 내 마음 속에 훌륭한 그런 불생불멸의 무한한 공덕이, 그리고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되는 거죠.

 

그래서 사상공덕! 눈앞에 보이는 공덕만 좋아하는 사람은 여기 무심공덕! 우리 마음의 공덕을 우리가 잘 믿지를 않는데, 어떻게 참 보조 스님이 잘 알고 이렇게 지적을 한 것 같애요. 그러니까 이런 말씀은 아주 의미 있는 가르침이죠. 의미 있는 이런 말을 잘 새겨 가지고 정말 여기 전편에 전부 우리들 마음 속에 모든 것이 완전무결하게 갖추어져 있다 라고 하는 그런 가르침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는 부처 되고 말이죠. 누구는 세세 생생 중생노릇하고 마느냐? 결국은 그 한마음을 가지고 그 속에서 그냥 자아 낸 것이지 절대 누가 준 것이 아니에요. 석가모니도 누가 준 게 아니고. 잘난 사람도 누가 줘서 그런 게 아니고 자기 자신 마음을 제대로 다듬어간, 그런 노력이 바로 우리가 수행이라고 할 수 있고. 무심공부라고도 할 수가 있고. 불교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기여하는 가장 큰 그런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앞에서 옥 이야기를 했지요. 연성지벽(連城之璧)이라는 옥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 우리의 어떤 고정관념! 또 부정적인 생각! 나는 이런 사람인데 하는 나에 대한 그런 어떤 한계성이 수자상(壽者相)이에요. 금강경에도 말한 그게 수자상 이거든요.

 

전부 우리는 한계의식에 사로잡혀있습니다. 그런 한계의식에 사로잡혀있고 선을 이렇게 딱 그어놓고 ‘아이 이것인데’라고 이렇게 어떤 선을 그어놓고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 거에요. 그 이상의 것을 꿈꾸지도 않고 그러니까 제대로 자기의 훌륭한 모습을 찾지도 못하고, 개발하지도 못하고 하는 거기에 폐단이 있습니다. 제일 큰 폐단이 그거에요.

 

남을 보는 것도 그렇고 내 자신을 보는 것도 그래요. 자기 자신을 어떤 한계를 설정 해. 제한을 한다고요.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딱 제한을 해버려요. 절대 제한을 할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에요.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묘한 거에요. 

 

내가 아주 이것이 몇 수 십번 이야기 하는 것이지마는, 마음만 먹으면은 얼마든지 어떤 일도 가능하다. 그래서 칠십 먹은 할머니가 한글을 배워 가지고 팔십에 시를 써 가지고 책으로 냈는데, 그 주옥 같은 시를 썼다고 했는데 작년인가 제 작년인가 신문에 아주 크게 나서 TV로도 나오고 그랬지 않습니까? 내가 그래서 책을 보여준 적도 있고 그랬어요.

 

 그런 일들이 이 세상에 한 두 가지입니까? 부지기수거든요. 마음이라고 하는 그런 묘한 그런 물건이 없으면은 그게 불가능해요. ‘나는 나이를 먹었다. 나는 못 배웠다’ 라고 하는 그런 한계를 딱 그어놓고 그 이상 생각을 안 하면 그런 사람들에게 전혀 불가능하지요. 런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아니에요. 얼마든지 어떤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또 그 위에 있는 어떤 무한한 능력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이 진심의 공덕 장에는 거의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불교의 생명이고 또 불교를 공부하는 진정한 그런 의미와 보람이 바로 이런 우리들의 내면에 여러 앎도 있지 않나, 우리가 이렇게 단언을 해도 사실은 상관없어요. 그만치 이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얼른 납득이 설사 되지 않는 그런 일이라 하더라도, 어 쨌거나 납득이 되고 안 되고 그것을 생각해서 말씀한 것이 아니고, 이것은 우리 인간이 갖추고 있는 그 마음의 본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 이러한 내용이 갖추어 있다 하는 이것은 언제든지 잊어서는 안되고, 마음에 두고두고 새겨야 할 그런 내용이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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