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진인
2019.01.02 18:14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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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134회]​

  

10장.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기본 사항


10-1. 칠취(七趣)의 세계


(7) 천취(天趣)-천상(天上)의 세계


(7-2). 색계천(色界天)

색계에는 初禪에 3天, 2禪에 3天, 3禪에 3天,4禪에 4天, 오불환천(五不還天)에 5天, 총 18天이 있습니다.

색계의 18天은 홀로 다니고 교제가 없지만 몸의 허물을 아직 완전히 벗지 못한 상태입니다.

(7-2-1).초선천(初禪天)

​초선에는 3개의 하늘(3天)이 있습니다.

초선 3天은 일체의 고뇌가 핍박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비록 옳바른 삼매를 닦는 것은 아니지만 청정한 마음에 모든 망상의 움직임(漏)이 없게 됩니다.


(7-2-1-1) 범중천(梵衆天)


[본문]


[阿難아 世間一切所修心人이 不假禪那하야 無有智慧호대 但能執身하야 不行淫慾하고 若行若坐에 想念俱無하야 愛染不生하면 無留欲界하고 是人應念에 身爲梵侶하나니 如是一類名梵衆天이니라]


아난아! 이 세상의 모든 마음을 닦는 사람들이 비록 선나(禪那)를 의지하지 않아 지혜가 없더라도 다만 몸을 단속하여 음욕을 행하지 아니하고, 다니거나 앉거나 간에 분별심「想念」이 모두 없어져서 애욕의 더러움이 생기지 않는다면 욕계(欲界)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즉시 그 몸이 색계(色界)인 범천(梵天)의 무리가 되는데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범중천(梵衆天)이라 부른다.


[해설]

세상의 마음 닦는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비록 깊은 선나에 의지하지 못하고 지혜를 완전히 얻지 못하였지만, 자기 몸마음의 행실을 바르게 단속해서 음욕을 하지 않고, 일상 생활에서 분별심과 망상을 내지 않으며, 마음이 애욕에 물들지 않으면 욕계에서 벗어나서 색계인 범중천으로 오게 됩니다. 범천은 색계의 초선천이지만 대다수의 하늘사람들이 여기에 살고 있어서 범중천(梵衆天)이라고 합니다.


(7-2-1-2)범보천(梵輔天)


[본문]


[欲習旣除하고 離欲心現하야 於諸律儀에 愛樂隨順하면 是人應時하야 能行梵德하나니 如是一類名梵輔天이니라]


애욕의 습기가 이미 없어지고 애욕을 여읜 마음이 나타나서 모든 계율을 좋아하고 따르면 이 사람은 즉시 범천의 덕(德)을 행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범보천(梵輔天)이라 부른다.


[해설]

욕망의 습(習)이 제거되어서 애욕이 없는 청정한 마음이 나타나고, 모든 계율을 좋아하고 착실하게 따르면 이 사람은 즉시 범천의 덕을 행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일부 범천의 무리들을 범보천(梵輔天)이라고 합니다. 범보(梵輔)는 범중(梵衆)보다 위이고 대범천왕보다는 아래 단계인데, 범천 중생보다는 높고 범천왕을 보좌하는 장관이나 총리급 관리 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7-2-1-3) 대범천(大梵天)


[본문]​


[身心妙圓하야 威儀不缺하고 淸淨禁戒에 加以明悟하면 是人應時하야 能統梵衆德하는 爲大梵王하리니 如是一類名大梵天이니라]


몸과 마음이 묘하고 원만해서 위의(威儀)에 결함이 없고, 금계(禁戒)를 깨끗하게 지켜 밝은 지혜로 환히 깨닫게 되면 이 사람은 바로 범천의 무리를 통솔하는 왕이 되는데,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대범(大梵天)이라 부른다.


[해설]

몸과 마음이 오묘하고 원만해서 위의(威儀)에 결함이 없고 금하는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어 밝게 깨달음으로서 이 사람은 때에 응하여 범천의 중생들을 능히 통솔하는 대범왕이 되는 것이니,이런 부류를 대범천이라고 부릅니다.

대범천에 와서는 계와 혜를 겸비했음을 나타냅니다. 범중천에서 몸을 잘 단속하고 다음 천에서 마음이 현현한 것을 이 대범천에서 쌍으로 섭수하므로 '묘원(妙圓)'이라고 했습니다. 또는 첫 천에서 몸을 단속함으로써 마음을 껴잡고 다음 천에서 마음이 나타남으로써 청정한 덕을 행했는데, 이 天은 몸과 마음이 한결같아 둘이 없는 묘를 이루고 제몫을 충족한 원만함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밝은 깨달음'은 6행의 지혜등이 더욱 밝아졌다는 말입니다. 


 [본문]


[阿難此三勝流는 一切苦惱의 所不能逼하야 雖非正修眞三摩地나 淸淨心中에 諸漏不動하면 名爲初禪이니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무리에게는 어떤 고뇌로도 핍박을 가할 수 없다. 그것은 이들이 비록 참다운 삼마지를 바르게 닦지는 못했으나 깨끗한 마음속에 모든 번뇌가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를 초선천(初禪天)이라 부른다.


[해설]

위의 세가지 범천은  온갖 고뇌에 핍박을 받지 않게 되었는데, 이렇게 까지 된 것이 비록 진정한 삼마지를 닦아서 완전한 해탈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청정한 마음 가운데 모든 번뇌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초선천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초선의 개념은 마음이 청정해서, 번뇌가 나오지 않는 것이 특색입니다  하늘의 수(數)를 볼 때에, 땅바닥에는 사주세계(四洲世界)가 있고, 그 사주세계 위로 사만이천 유순(由旬) 지점에 사천왕(四天王)이 있었고, 거기서 그만치 또 사만이천 유순(由旬)올라가면 도리천이 있고, 이렇게 차례 차례 올라와서, 욕계 육천(欲界六天), 색계(色界) 18천, 무색계 (無色界)4天, 그래서 이른바 이십팔천(二十八天)이 됩니다. 그런데 보통 세계의 형태를 가지고 논할 때에 초선천을 한 구룹으로 나눕니다. 그래서 욕계 6天 까지를 천상,인간,지옥,아귀,축생 등의 무리가 석여 사는 곳이라 해서 오취잡거지(五趣雜居地)라고  하고, 거기에 반해서 색계의 범왕,범보,범중, 이 세 하늘을 묶어 초선천(初禪天)이라고 하는데, 욕계의 생멸을 여의고 마음이 안정된 세계를 기뻐하는 곳, 즉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모두 루(漏,번뇌망상))가 동(動)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을 일러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 생멸심(生滅心)을 여읜 것이 마음이 안정되는 첫번째 단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7-2-2) 이선천(二禪天)

이선천은 일체 걱정과 우수가 핍박하지 못하는 경지이며,비록 참다운 삼마지를 바로 닦는 것은 아니나 청정한 마음에 거친 번뇌들이 이미 조복된 상태입니다.


(7-2-2-1) 소광천(少光天)


[본문]


[阿難其次梵天은 統攝梵人호대 圓滿梵行하고 澄心不動하야 寂湛生光하리니 如是一類名少光天이니라]


아난아! 다음의 범천은 범천의 무리를 통솔하는 가운데 원만한 범행으로 맑고 부동하여 고요한 빛을 발한 것이니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소광천(少光天)이라 부른다.


[해설]

범천의 사람들을 통솔하여 범행이 원만하고,마음을 맑혀 흔들리지 않으며 고요하고 맑아진 그 자리에서 도의 광채(光彩)가 나기 시작하는데, 그곳을 소광천(少光天)이라고 합니다.


(7-2-2-2) 무량광천(無量光天)


[본문]​


[光光相然하야 照耀無盡하며 映十方盡하야 遍成瑠璃하면 如是一類名無量光天이니라]


빛과 빛이 서로 어울려서 밝게 비침이 끝이 없으며, 시방 세계를 두루 비추어 유리와 같으니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무량광천(無量光天)이라 부른다.


[해설]

소광천에서 나온 그 도의 빛과 빛이 서로 서로 되비쳐서 어울려 비추는 것이 끝이 없어 시방세계를 전부 비추니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게 빛이 나는데, 이와 같은 상태를 무량광천(無量光天)이라고 합니다. 소광천에서 얻어진 선정의 힘이 더욱 미세해져서 온 몸 자체가 선정의 투명한 빛덩어리가 되는 상태입니다.


(7-2-2-3)광음천(光音天)


[본문]


[吸持圓光하야 成就敎體하고 發化淸淨應用無盡하면 如是一類名光音天이니라]


원만한 광명을 받아들여서 교화의 뼈대를 성취하고, 깨끗한 교화의 방편을 발휘하여 응용에 다함이 없으면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광음천(光音天)이라 부른다.​


[해설]

온몸이 투명한 광채로 이루어진 것을 원광(圓光)이라고 하는데, 이 원광으로 교체(敎體)를 삼는다는 것은, 말과 음성을 대신해서 투명한 광채를 이용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편다는 말입니다. 온몸에서 투명한 광채를 발하니 이 빛으로 자연스럽게 가르침의 힘(소리)이 발산되어 그 공덕이 무한정하게 나타나니, 이런 상태를 광음천(光音天)이라고 합니다.


[본문]


[阿難此三勝流는 一切憂愁의 所不能逼이니 雖非正修眞三摩地나 淸淨心中에 麤漏已伏일새 名爲二禪이니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무리에게는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핍박할 수가 없다. 이들이 비록 참다운 삼마지를 닦아 이루지는 못했으나 깨끗한 마음속에 거친 번뇌를 이미 항복 받았으니 이를 제이선(第二禪)이라 부르는 것이다.


 [해설]

앞의 세 가지 하늘 상태(二禪天三天)에 있는 수행자는 일체의 근심 걱정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여, 비록 참다운 삼마지를 바르게 닦지는 못하였지만 청정한 마음 가운데에서 거친 번뇌가 이미 조복되었으니, 이러한 부류에 있는 수행자를 이선천(二禪天)이라고 합니다.


(7-2-3) 삼선삼천(三禪三天)

삼선천은 큰 수순(隨順)을 갖추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한량없는 낙을 얻습니다. 비록 참 사마지를 바로 얻는 것은 아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환희감을 얻습니다.

(7-2-3-1). 소정천(少淨天)


[본문]


[阿難如是天人은 圓光成音하고 披音露妙하며 發成精行하야 通寂滅樂하면 如是一類名少淨天이니라]


아난아! 이러한 하늘 사람들은 원만한 광명으로 음성을 이루고 그 음성으로 묘한 이치를 나타내어 정밀한 행동을 이루고 적멸의 즐거움에 통하게 되면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소정천(少淨天)이라 부른다.


[해설]​

앞에서 이선천에서는 선정이 생김으로써 기쁨을 얻었는데, 여기서는 이선천에서 얻은 기쁨은 없어지고, 진짜로 대상 없이 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기쁨, 즉 적멸의 기쁨을 얻게 되는데, 이와 같은 수행자들을 소정천(小淨天)이라고 합니다.그러나 여기서 얻는 적멸락(寂滅樂)은 고요함(靜)이 깊어지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쁨이며, 또 다른 적정(寂靜)의 본성 자체의 락(樂)과 혼동해서는 안되며, 체(體)는 다른데 이름만 같을 뿐입니다 


(7-2-3-2)무량정천(無量淨天)


[본문]


[淨空現前에 引發無際일새 身心輕安하야 成寂滅樂하면 如是一類名少淨天이니라]


허공이 앞에 나타나 끝없이 펼쳐져서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여 적멸의 즐거움을 이루면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무량정천(無量淨天)이라 부른다.


[해설]

정공(淨空)이란 적멸락(寂滅樂)으로부터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데, 외계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것이 적멸락이므로, 외계를 인식하지 않는 공(空)입니다. 따라서 이 정공(淨空)에 의해서 몸과 마음이 가볍고 적멸의 즐거움을 이룬 무리들을 무량정천(無量淨天)이라고 합니다.


(7-2-3-3)편정천(徧淨天)


[본문]


[世界身心이 一切圓淨하고 淨德成就하야 勝託現前에 歸寂滅樂하면 如是一類名遍淨天이니라]


세계와 몸과 마음이 모두 원만하고 청정하며 깨끗한 덕이 성취되어 최상의 의지처가 앞에 나타나 적멸의 즐거움으로 돌아가면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변정천(遍淨天)이라 부른다.


[해설]

앞의 무량정천은 심신(心身) 뿐인데, 여기서는 세계를 더하여 성취하므로 "원만청정(圓滿淸淨)"하다고 했으며, 이로 인해 정덕(淨德)을 성취하여 적멸락의 즐거움으로 돌아가는데, 이와 같은 무리를 변정천(遍淨天)이라고 합니다.앞의 무량천은 밖으로 발현했으나 심신이 텅 비고 고요한 경계일 뿐이라서 세계를 융섭하지는 못했는데,지금은 세계까지 융섭하기 때문에 '변정천'이라고 한 것입니다.


[본문]


[阿難此三勝流는 具大隨順하야 身心安隱하고 得無量樂이니 雖非正得眞三摩地나 安隱心中에 歡喜畢具일새 名爲三禪이니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무리는 크게 수순함을 이루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한량없는 즐거움을 얻게 되는데, 이들이 비록 참다운 삼마지를 닦아 이루지는 못했으나 편안한 마음속에 환희가 다 갖추어졌으므로 삼선(三禪)이라 부른다.


[해설]

소정천,무량정천, 변정천 이 삼선천(三禪天)의 무리들은 적멸락을 얻었으니 좋고 나쁜 것이 없어져서 모든 것에 적절하게 적응이 잘 되어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한량없는 즐거움을 얻게 되는데, 이들은 참다운 삼마지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편안한 마음 속에 환희심을 갖추고 있어서 삼선천(三禪天)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7-2-4).사선천(四禪天)

사선천은 온갖 세간의 고락의 환경으로는 요동시킬 수 없는 경지로 비록 진정한 무위(無爲)의 부동지(不動地)는 아니지만, 소득이 있는 마음에서는 그 공부가 순수하게 정화되었으므로 사선천이라고 합니다
​4선에는 모두 9천(九天)이 있지만, 제 4선의 과보경계에는 다만 삼천(三天)이 있고, 네 번째 무상천(無想天)은 세번째 광과천에서 별도로 갈라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무상천은 외도의 과보 경계입니다. 이 4천 외에 따로 5불환천이 있어서 성현이 정려를 수행하므로 범부천과 같지 않습니다.


<제4禪 9天>


(1)범부천 ① 복생천

            ② 복애천

            ③ 첫째 ;광과천

            ④ 둘째;외도 무상천 - - -그 갈래길

(2) 5나함천(5불환천) ① 무변천  ②무열천 ③ 선견천 ④ 선현천
                          ⑤ 색구경천 - - 유정색변제 ; ⓐ 이근자 - - -아라한 성취

                                                               ⓑ 둔근자 - - -4공천에 들어감


(7-2-4-1)四根本天


(7-2-4-1-1). 복생천(福生天)


[본문]


[阿難復次天人은 不逼身心苦因已盡이나 樂非常住하야 久必壞生일새 苦樂二心俱時頓捨하야 麤重相滅하고 淨福生生하면 如是一類名福生天이니라]


아난아! 이러한 하늘 사람은 몸과 마음이 핍박을 당하지 않기 때문에 괴로움의 원인은 이미 다하였으나 그 즐거움도 항상한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괴롭고 즐거운  두 가지 마음을 함께 버려서 거칠고 무거운 현상이 없어지고 깨끗한 복의 성품이 생겼으면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복생천(福生天)이라 부른다.


[해설]

고통과 즐거움의 두 마음을 동시에 함께 버리면 거칠고 무거운 분별망상이 없어지고 청정한 복의 성품이 생기니, 그러한 부류를 이름하여 복생천(福生天)이라 합니다. 고통과 즐거움의 마음을 둘 다 초월하면 평등한 마음이 있게 되는데, 고통도 버리고 즐거움도 버렸다 해서 이 평등한 마음을 버릴 사(捨), 마음 심(心), 사심(捨心)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네 가지 무량한 마음을 이야기할 때 자(慈), 비(悲), 희(喜),사(捨),라고 하는데, 즐거움을 주는 자(慈), 고통을 없애는 비(悲),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같이 즐거워하는 것을 희(喜), 기쁜 마음,즐거운  마음을 초월해서  부처님 스스로의 마음 속에 오직 평등심만이 있다는 사(捨), 이렇게 네 가지입니다. 사(捨)자는  일명, 평등한 사(捨)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청정한 복의 성품이란 평등한 마음씨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의 씨앗이라는 것은 평등한 마음을 말합니다.

제4선천의 특색은 고통과 즐거움을 둘 다 버리고 평등한 성품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7-2-4-1-2). 복애천(福愛天)


[본문]


[捨心圓融하야 勝解淸淨하고 福無遮中에 得妙隨順하야 窮未來際하면 如是一類名福愛天이니라]


버리는 마음이 원융해져 이해가 청정하고 복덕이 막힘 없는 가운데 묘하게 수순함을 얻어 미래의 세계가 다하도록 계속되면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복애천(福愛天)이라 부른다.


[해설]

버리는 마음이 원만하고 융통하여 훌륭하게 아는 것이 청정하여 복(福)이 한정없는 가운데 묘하게 수순함을 얻어서 미래의 세계가 다하도록 계속되면 이와 같은 수행자 그룹을 복애천(福愛天)이라고 합니다. 평등한 마음이 원융하면 , 그 평등한 마음 자체가 곧 복(福)의 성품입니다. 말하자면 부처님께 복을 받기 위하여 절에 가서 부처님 상에 절을 하는데, 내 마음 속에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마음이 평등한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이 평등해져서 다같이 원수를 용서할 줄 알고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착하게 살면서 복을 받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복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될 일도 잘 안되는 것입니다. 요근래 모 사찰에서 스님과 신도회간에 아귀다툼을 하면서 싸움을 벌렸는데, 그래가지고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는 씨앗인 마음이 평등해질 수 있겠습니까? 불자들은 어떠한 상황이라도 남을 미워하고 갈등하고 남의 결점을 드러내서 챙피를 주고 공격하는 그런 불미스러운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스스로 신도와 승려들이 청정한 불도량을 아귀다툼의 지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참 그런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불자로써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7-2-4-1-3)광과천(廣果天)


[본문]


[阿難從是天中하야 有二岐路하니 若於先心에 無量淨光으로 福德圓明하야 修證而住하면 如是一類名廣果天이니라]


아난아! 이 하늘에는 두 갈래가 있다. 만약 앞의 마음에서 한량없는 깨끗한 광명으로 복덕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이와 같이 닦아 증득함에 머무르면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광과천(廣果天)이라 부른다.


[해설]

복애천 이후 두 갈래의 기로에서 만약 먼저 마음에 한량없이 청정한 광명의 복과 덕이 둥굴고 밝아서 닦아 증득하여 머무는 무리는 광과천(廣果天)에 납니다. 둘 갈래 길은 하나는 곧바로 가는 길이니 광과천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돌아가는 길이니 무상천(無想天)입니다.


 (7-2-4-1-4).무상천(無想天)


[본문]


[若於先心에 雙厭苦樂하고 精硏捨心호대 相續不斷하고 圓窮捨道하면 身心俱滅하고 心慮灰凝하야 經五百劫어니와 是人旣以生滅爲因일새 不能發明不生滅性하야 初半劫滅하고 後半劫生하리니 如是一類名無想天이니라]


만약 앞의 마음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의 두 가지를 모두 싫어하고 버리는 마음을 정밀하게 연마하여 상속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버리는 길을 끝까지 다한다면 몸과 마음이 다하고 마음과 생각이 식은 재처럼 엉켜서 오백 겁을 지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이미 생멸(生滅)로 인(因)을 삼았기 때문에 불생멸성(不生滅性)을 발명하지 못하여 처음 반 겁(半劫)은 멸하여 없어지고, 뒤이 반 겁은 태어나 따르게 되는데, 이와 같은 일부 무리를 무상천(無想天)이라 부른다.


[해설]

만약 앞의 마음에서 고통과 즐거움이 모두 싫어져 '버리는 마음(捨心)'을 정밀히 연마하여 그 사심(捨心)이 계속 이어져 중단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버리는 도(捨道)와 신심(信心)도 함께 사라지니 마음 속의 근심이 화로 속의 재처럼 되어 오백겁을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미 생멸(生滅)을 인(因)으로 삼아 불생멸(不生滅)의 성품을 밝혀내지 못하여 처음 반 겁은 없어지고  뒤의 반 겁은 태어나 따르게 되는 것이니, 그러한 수행자그룹을 이름하여 '무상천(無想天)'이라 합니다. 앞서 광과천에서는 복덕이 증장하고 이 천에 와서는 사구선정이 증장하는데, 여기에 의지하면 열반을 얻을 수 있다는 망상이 바로 두 천으로 갈라진 원인입니다. 앞서 복애천에 이르기 까지에는 고통과 즐거움을 쌍으로 싫어하고 번뇌를 굴복시키고, 또 공부도 많이 해서 즐거움과 고통을 버리는 상태까지 왔으나, 불생불멸할 존재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궁사도(圓窮捨道)까지는 했지만, 또 어렵게도 생멸심(生滅心)으로 인(因)을 삼았다는 것이 문제인데, 이것이 바로 얻을 바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멸은 몹쓸 것이니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심(捨心)이 되지 못하는 것은 생멸심(生滅心) 때문이고 진정한 수도(修道)를 하기 위해서는 생멸심이 아주 없는 요동치 않는 상태에 돌아 가야만 진정한 수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멸심(生滅心)은 버리려 하고 열반심을 얻으려 하는 그런 취사심, 이것을 취하려고 하고 저것을 버리려하는 것도 생멸심인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수도했기 때문에 오백겁동안 심성이 멸한 상태에 있다가, 그 다음에 다시 심성이 살아나는데, 그 되살아 난 상태를 가지고 그 몸을 버리고 다음 세계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무상천(無想天)이라 하는 이유는 생멸심(生滅心)을 버리고 열반심을 좋아하는 생멸심(生滅心), 즉 能(主觀)과 所(客觀)가 나눠진 마음, 이원적인 마음 때문에,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열반에 들어가봐야겠다는 그런 추구력이 주효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는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세계를 무상천(無想天)이라고합니다.


 [본문]


[阿難此四勝流는 一切世間의 諸苦樂境으로 所不能動이니 雖非無爲의 眞不動地나 有所得心에 功用純熟일새 名爲四禪이니라]


아난아! 이 네 가지 수승한 무리는 일체 세간의 가지가지 괴로움과 즐거움으로는 움직이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비록 집착이 없는[無爲] 참다운 부동지(不動地)는 아니지만 그 얻고 싶은 마음에 공용(功用)이 순숙(純熟)해졌기 때문에 이를 사선(四禪)이라 부르는 것이다.


[해설]

이들 네 가지 무리들, 즉 복생천,복애천,광과천,무상천,은 일체 세간의 온갖 즐거움과 고통의 경계에 부닥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록 무위적인 참 부동지는 아니지만 얻을 바가 있는 마음 안에서는 공용(功用)이 순숙해졌으니 이를 제사선(第四禪)이라고 합니다. 얻을 바가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마음은 생멸(生滅)을 여의고 열반(涅槃)을 얻어야 겠는데, 열반의 자리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자리이므로, 아무런 생각도 없는 방법으로 내 마음을 다지는 수행을 하는데, 그럴 때에 아무리 생각없는 무념의 상태가 왔더라도 얻어진 결과의 그 바탕을 볼 때에, 얻을 바가 있으리라는 마음, 아무 생각도 없는 그 자리에는 열반이 나타나리라는 기대감, 이러한 마음에 의해서 공부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얻을 바가 있으리라는 마음 위에서 공용(功用), 공부하는 작용이 원전히 익어 있는 데가 바로 이 사선천입니다.


(7-2-4-2).오불환천(五不還天)


[본문]


[阿難此中復有五不還天하니 於下界中에 九品習氣를 俱時滅盡하고 苦樂雙亡하야 下無卜居일새 故於捨心이 衆同分中에 安立居處니라]


아난아! 이 가운데 다시 다섯 가지 돌아오지 않는 하늘「五不還天」이 있으니 이들은 아래 세계에서 구품(九品)의 습기(習氣)를 모두 끊고 괴롭고 즐거움의 두 가지를 다 잊어서 아래 세계에는 있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버리는 마음이 같은 무리「衆同分」를 찾아서 있을 만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 머무는 것이다.


[해설]

오불환천(五不還天)은 아나함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하계(欲界)의 구품습기(九品習氣)가 동시에 다 없어지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둘 다 잊어버려서 아래 세상(欲界)에는 있을 곳이 없으므로, 따로이 있을 곳을 마련하여 모여 사는 곳입니다. 때문에 불환천(不還天)은 사선천(四禪天)의 천왕(天王)들이 듣고 흠모하기만 할 뿐 알거나 보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이 세상의 넓은 들과 깊은 산에 있는 성스러운 도량은 다 아라한들이 있는 곳이나, 속세의 범인들은 능히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위의 원문을 중심으로 옛 스승들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내용을 들여다 보면, 하계(下界)란 상계(上界)의 반대인데, 욕계,색계, 무색계 중에 맨 아래인 욕계(欲界)를 하계(下界)라 하고, 색계,무색계를 묶어서 상계(上界)라고 합니다. 이유는, 욕계의 번뇌는 우리 범부로서 끊기 어렵기 때문에 욕계의 번뇌를 하계(下界)라 하고, 색계,무색계에는 세밀하여 끊기가 어렵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정돈되어 있기 때문에 묶어서 상계(上界)라고 합니다.

아나함(阿那含)은 번역하면 '돌아오지 않음(不還)'입니다. 범부로서 수행을 시작하게 되면 첫 단계가 수다원(須陀洹)이고, 두 번째가 사다함(斯陀含)이고, 세번째가 아나함(阿那含), 네번째가 아라한(阿羅漢)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욕계,색계,무색계를 총망라해서 볼 때, 우리 중생들이 익힌 번뇌가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소위 견도혹(見道惑)과 수도혹(修道惑)의 두 가지인데, 견도혹(見道惑)은 도(道)를 보는데 장애가 되는 미혹(迷惑), 다시 말하면 무엇에 푹 빠졌다 할 때, 제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두드러진 번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욕계,색계,무색계에서 이것은 정도(正道)다, 그게 아니다 하는 이른바 물, 불을 가리지 못하게 하는 겉으로 표현되는 거친 번뇌(見道惑)이고, 수도혹(修道惑)은 겉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속으로 은근히 끙끙 앓으면서 잊지 못하는 번뇌가 수도혹(修道惑)입니다. 그런데 욕계,색계,무색계를 총망라해서 견도(見道), 겉으로 나타나는 번뇌를 끊어버리면 수다원과(須陀洹果)가 됩니다. 그래서 수다원을 얻어 가지고, 일단 하늘로 올라와서 오불환천(五不還天)에 그 분들이 태어나는데, 하늘에 올라와서 생각해 보니, 견도혹(見道惑)만 끊고 아직 수도혹(修道惑)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수도혹을 끊기 위해선 다시 공부하러 인간세상에 돌아 온다는 것입니다 (一來果). 그렇게 공부를 해서 수도혹(修道惑)을 얼마만치 끊어 들어가면 계속해서 과위(果位)가 올라가게 되는데, 결국 본문(本文)에 보면 구품습기(九品習氣)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수도혹(修道惑)이란, 아무리 점잖은 사람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고, 이렇다 할 저명인사도 망신을 당하게 되는데,뻔히 알면서도 실수를 하는게 속으로 끓어오르는 번뇌 때문인데, 그것을 끊는 것이 수도혹(修道惑)입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끊기가 너무 세분(細分)되고 어려워서, 끊을 때는 삼계(三界)를 구품(九品)으로 나눕니다.그래서 욕계를 한구분해서 오취잡거지(五趣雜居地) 그리고 색계, 무색계가 각각 사천(四天)씩 있어서, 그것 여덟하고 합해서 구(九)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계, 색계, 무색계를 모두 아홉으로 구분해 나누어서 욕계에 해당되는 수도혹이 어느 정도인지를 지금 따로 떼놓습니다. 그런데 욕계에 해당하는 수도혹을 끊으려고 하다보니 너무 많아서 일단 거친 것부터 끊고 또 차차 끊고, 끊어가는 욕계에 해당되는 수도혹을 다시 아홉등분으로 나누게 되는데, 이것을 일러서 욕계의 구품습기(九品習氣) 또는 욕계의 구품 수도혹(修道惑)이라 합니다.  그래서 욕계의 구품(九品) 수도혹(修道惑)을 반쯤 끊으면 사다함(斯陀含)이 되고, 욕계 구품 수도혹을 완전히 끊으면 아나함(阿那含), 즉 불환과(不還果)가 됩니다.

그러니까 아나함(阿那含)이라는 말은 돌아오지 않는다, 즉 사다함(斯陀含)이 되면 일왕래(一往來)라 해서 한 번만 더 인간세상에 오면 되고, 이 아나함만 되며, 즉 욕계의 구품 수도혹을 다 끊어 버리면, 인간 세상에 돌아오지 않고 여기서 말하는 오불환천(五不還天)에 있으면서 더 공부를 해서 아라한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상은 운허스님의 구품 습기에 대한 자세한 가르침이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욕계에 해당되는 습기가 없으니까, 욕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련이 없습니다. 미련이 없는 자리에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쌍으로 다 없어서 다시 욕계에 찾아 올 이유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사심(捨心)의 수행으로서 , 고통과 즐거움을 다 버린 마음으로 비슷한 수준의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을 만한 적당한 자리를 정하여 있게 되는 것입니다.


 (7-2-4-2-1). 무번천(無煩天)


[본문]​


[阿難苦樂兩滅하야 鬥心不交하면 如是一類名無煩天이니라]


아난아! 고락(苦樂)이 둘 다 없어져서 다투는 마음이 서로 어울리지 아니하면 이러한 일부 무리를 무번천(無煩天)이라 부른다.


[해설]

오불환천 중에서는 이 천은 하품,제일 낮은 하늘인 것 같습니다. 고통과 즐거움이 모두 없어져서 다투고 갈등하는 마음이 없다고 해서 무번천(無煩天)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수다함과를 얻고, 인간세계에서 죽어서 하늘에 왔다가 다시 내려가서 아나함과, 즉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서 일곱 번을 인간으로 났다가 천계에 났다가 해야 됩니다. 요즘도 "너 같은 게 나를 따라오려면 일곱번 죽었다 깨나 봐라"하는 그런 말을 쓸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여기 불교에서 말하는 여기의 용어가 일반사회에 속어로 퍼진 말입니다.


(7-2-4-2-2).무열천(無熱天)


[본문]​


[機括獨行하야 硏交無地하면 如是一類名無熱天이니라]


뜻을 드러내고 거두어들이는 것「機括」이 따로따로 행해져서 서로 상대하지 아니하면 그러한 일부 무리를 무열천(無熱天)이라 부른다.


[해설]​

생각을 내고(機) 거두는 것(括)이 홀로 행해져서 서로 상대할 경계가 없으니, 그러한 부류를 무열천(無熱天)이라고 합니다. 즉 생각이 일어나든 거두어 들이든 딴 생각이 그 사이에 섞이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이르면 좋아하고 싫어함의 감정에 전혀 얽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열(熱)이 없다는 것은 어떤 감정의 반응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무열천(無熱天)이라고 한 것입니다.


 (7-2-4-2-3). 선견천(善見天)


[본문]


[十方世界를 妙見圓澄하야 更無塵象一切沈垢하면 如是一類名善見天이니라]


시방세계를 오묘하게 보는 것이 원만하게 맑아서 다시 티끌의 형상과 일체의 깊이 잠긴 허물이 없으면 그러한 일부 무리를 선건천(善見天)이라 부른다.


[해설]

시방세계를 오묘하게 본다는 것은 색(色)이 공(空)임을 본다는 것이며, 이렇게 온갖 다양한 형상의 현상세계가 공(空)임을 뚜렸이 보는 능력이 생김으로서 마음이 원만하게 맑아져서 외부세계와 내면세계가 하나가 되어 일체가 걸림이 없이 본다고 해서 선견천(善見天)이라고 했습니다.
          

(7-2-4-2-4).선현천(善現天)


[본문]​


[精見現前하야 陶鑄無礙하면 如是一類名善現天이니라]


정밀하게 보는 것이 앞에 나타나 지혜로 비추어「陶鑄」 걸림이 없으면 이러한 일부 무리를 선현천(善現天)이라 부른다.


[해설]

마치 맑은 거울 속에는 사물의 영상(影像)이 자유롭게 나타나듯이 모든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 걸림이 없다고 해서 선현천(善現天)이라고 합니다. 


(7-2-4-2-5).색구경천(色究竟天)


[본문]


[究竟群畿하고 窮色性性하야 入無邊際하면 如是一類色究竟天名이니라]


모든 기괄(畿括)을 끝까지 궁리하고 색(色)의 성품까지 궁리해서 끝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면 이러한 일부 무리를 색구경천(色究竟天)이라 부른다.


[해설]

'기괄(機括)을 끝까지 궁리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움직이는 기미,시초를 쫓아서 탐구한다는 뜻입니다. 만물의 생성의 기초바탕을 끝까지 추궁하여 들어가서 만물이 움직이기 이전, 생겨나기 이전을 탐색한다는 것입니다.

또 '색의 성품까지 궁리해 들어간다'는 것은 물질이 생겨나기 이전의 본 바탕을 추적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색(色)이고, 색성(色性)의 성(性)이란 물질이 생기기 이전의 근본바탕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선현천의 경지에서 더 공부하면 거울 속에 나타나는 색상(色像)이 역력하지만 그 성품은 거을의 밝은 면 외에는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거울의 성품입니다. 즉 모든 사물을 대할 때에 색성(色性)의 성(性)을 궁구한다는 말이 그 말인데, 그 자체가 끝까지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모른다면 그 색성(色性)에 걸려 버리게 되겠지만 여기는 그것을 구경(究竟)하고 색의 성품을 궁구(窮究)했기 때문에 무변제(無邊際)에 들어가게 됩니다. 소위 금강경에서 말하는 상(상)이 상(상)이 아님을 본다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걸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른다는 것입니다. 색성(色性)이 있는 한 색성(色性)의 근본을 알아서 무변제(無邊際)로 찾아드니 이러한 형태의 세계, 또 이런 이들이 올라가서 태어나는 세계를 색구경천(色究竟天)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색구경천은 색계(色界)의 마지막이 되는, 물질의 마지막이 되는 근본을 똑바로 이해하는 하늘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색계의 마지막이 되는 맨 꼭대기라 해서 일명 유정천(有頂天)이라고 합니다. 유상(有相)의 세계, 말하자면 형상이 있는 세계에서는 마지막이라는 말이고, 여기서 지나면 사무색천(四無色天=無色界)이 됩니다.


[본문]


[阿難此不還天은 彼諸四禪의 四位天王도 獨有欽聞이요 不能知見하나니 如今世間의 曠野深山에 聖道場地는 皆阿羅漢의 所住持故로 世間麤人의 所不能見이니라]

 

 아난아! 이러한 불환천(不還天)에 대해서는 저 모든 사선천의 천왕들도 유독 공경하고 듣기만 할 뿐 알거나 보지 못하는데, 이는 마치 세간의 넓은 들과 깊은 산의 성스러운 도량에 여러 아라한이 머물러 있을 때 세간의 추악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해설]

이 오불환천에 대해서는 색계의 복생천, 복애천, 광과천, 무상천의 천왕(天王)들도 좋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알거나 보지도 못하는데, 이는 마치 지금 세상의 깊은 산속에 완전히 깨친 아라한들이 머물러 있는 데도 속세의 범부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오불환천과 제4선천과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에, 똑같은 색계에 속하는 하늘이지만, 오불환천은 사선천의 왕들조차도 공경만 하고 절대 모르는 그런 심오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본문]


[阿難是十八天은 獨行無交어니와 未盡形累일새 自此已還을 名爲色界니라]


아난아! 이 열 여덟 하늘은 홀로 다니고 정욕으로 어울리지는 않으나 형상의 더러움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여기까지를 색계(色界)라고 부른다.


[해설]​

이 색계 18천(天)은 홀로 수행을 닦는 것이어서 사람들간에 서로 어울려 교제하는 것이 없는 것이지만, 아직 완전히 상(相)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들을 색계(色界)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 열여덟 하늘에서 홀로 수행한다"는 말은 욕계의 영역 경계를 벗어나서 외계의 모든 반연을 떠났기 때문에 철저히 내심(內心)의 세계에 탐구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색계(色界) 18하늘(天)은 외부와는 접촉하지 않고 철저하게 내면의 자기 심성(心性) 하나만을 붙잡고 살기 때문에 독행무교(獨行無交)이지만, 아직은 색(色)의 영역 속에 있기 때문에 형상의 누(累,오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색(色,물질,육체)에 의지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이 다음에는 무색계(無色界), 즉 사공천(四空天)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면 상황이 전혀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지금 색계를 벗어나서 색이 없는 세계, 즉 무색계(無色界)에서 공(空)을 수용하는 세계가 되기 때문에 전혀 다른 형태로 넘어가는 고비가 색구경천(色究竟天)입니다.

-무한진인-


출처 : 무한진인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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