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142회]
11장. 오십마장(五十魔障)
11-6. 각종 마장의 피해에 대한 결어
이와 같이 십신(十信)과 십주(十住)와 십행(十行)과 십회향(十回向)과 사가행(四加行)의 마음을 초월하여 보살의 수행하는 금강십지(金剛十地)와 등각(等覺)이 원명(圓明)하고 여래의 묘장엄해(妙莊嚴海)에 들어가 보리(菩提)를 원만히 하고 무소득(無所得)에 돌아갈 것이다.
앞서 50가지 오음마(五陰魔)에 대한 법문은 과거의 수많은 세월동안 헤아릴 수 없는 수의 깨달은 도인들이 이 법문에 의지해서 궁극의 열반을 얻었습니다. 이와 같이 식음(識陰)을 벗어나면 육근(六根)의 작용이 상호 간에 통해서 서로 공용(共用)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눈으로는 보는 작용만 있었는데, 식음이 없어지면 눈으로 듣는 작용, 촉감,냄새맡는 작용 등 다른 감각기능도 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귀는 듣기만 했는데,귀로 보기도 하고 느끼기도 하는 등 여섯 가지 감각작용이 한가지로 원통(圓通)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근작용이 하나로 원통(圓通)해 지면 보살의 최고위의 수행단계인 금강십지와 등각까지 올라가서 두루하게 밝은 지혜를 얻고 여래의 묘장엄해(妙莊嚴海) 속으로 들어가서 깨달음이 원만해져서 아무 것도 얻을 바가 없는 경지가 됩니다. 그래서 마치 맑은 수정구슬 속에 밝게 비치는 달이 들어 찬 것처럼 마음이 정미롭고 밝게 된다는 것입니다. 금강간혜(金剛乾慧)란 보살십지를 말하며, 보살십지에서도 가장 높은 등각 넘어를 말한다고 합니다. 묘장엄해(妙莊嚴海)는 복덕의 구경이고, '보리를 원만히 한다'는 것은 지혜의 구경이며, '얻을 바 없음에 돌아간다'는 것은 이치의 구경을 말합니다. 복덕은 해탈을 말하고, 지혜는 반야이며, 이치는 법신이니, 3덕의 비밀장엄이 여기에서 모두 구현된다는 것입니다. 11-6-2. 마(魔)의 경계를 잘 판단하고 불정 다라니를 지니고 있어라
앞의 50마(魔)에 대한 법문은 과거의 수많은 깨달은 도인들이 지(止)와 관(觀)의 수행으로 깨달음을 성취하고 밝은 지혜로 비추어 보고 분석해서 정리한 미세한 마구니의 장애입니다. 사마타는 지(止) 또는 정(定)수행을 말하며, 위빠사나는 관(觀) 또는 혜(慧) 수행을 말합니다. 만약 마구니의 경계가 나타날 때에 수행자가 이 50마구니에 대한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으므로 해서 마음을 깨끗히 정화하고 다른 나쁜 샛길로 떨어지지 않으면 마구니는 수행자의 마음에 침투할 틈을 잃어버려 저절로 없어지므로, 마음의 불순한 때만 없애면 천마,대력귀신, 도깨비, 허개비 등의 외마(外魔,밖에서 들어온 마구니)가 아예 수행자의 마음에 접근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구니의 방해가 없기 때문에 깨달음을 추구하면 아무런 장애나 부족함이 없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고, 하근기 수행자도 수행만 열심히 하면 대열반을 얻는데 어렵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법시대의 우둔한 중생들 가운데 선나도 알지 못하고, 법도 설할 줄 모르면서, 삼매를 닦기만 좋아하면 말법시대의 수행자들이 잘못된 샛길로 빠질까 걱정되니, 일심으로 불정다라니(능엄주)를 수지(외고 기억하는 것)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만약 능히 외우지 못한다면 선방벽에 이를 써 붙이거나, 혹은 몸에 지니면 일체의 모든 마구니가 수행자의 마음을 흔들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수행자들은 순조롭고 평탄한 수행의 신작로를 따라가며 이 능엄주를 통해서 구경에 까지 도달하도록 열심히 수행해서 부처님이 주신 최후수범을 공경하고 흠모하며 받들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오음(五陰) 가운데 다섯 가지 허망한 생각으로 근본을 삼았다’고 말씀하셨으나 저희들은 평상시 여래께서 미세한 곳까지 열어 보이시는 것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오음(五陰)은 한꺼번에 소멸되는 것입니까? 차례로 끊어지는 것입니까? 또 이러한 경계는 다섯 겹[五重]은 어디까지가 경계입니까? 원컨대 여래께서는 대자비를 베푸시어 대중의 청명(淸明)한 심목(心目)이 되어 주시고, 말세의 일체중생을 위하여 미래의 눈을 열어주소서!”
이제 아난이 마지막 질문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난은 지금까지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을 기억하여 잊지 않고 대중 가운데서 일어나 예를 올리고나서, 오음(五陰)이 본래 망상심으로 된 것이라면, 오음의 수행을 통해서 1) 오음을 한꺼번에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2) 차례대로 없애야 하는 것인지, 또한 3) 오음의 다섯 겹은 그 특성이 어디까지가 경계인 것인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11-8. 부처님의 답변
'정미롭고 참되고 맑다'는 것은 본각(本覺)의 순수함을 묘사한 것이며, 본각자리는 청정함이 가득해서 어떤 것도 들어와 물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사 번뇌와 허공까지도 들어 올 수가 없으며, 이 우주만상을 비롯해서 모든 것들은 모두가 망상이 만들어 낸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연아달다가 제 머리가 있는 줄을 모르고 그림자가 제 머리인 줄 잘못 아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11-8-2. 망(妄)은 본래 인(因)이 없는 것이다
아난아! 허망의 생긴 곳을 알면 허망의 인연을 말할 수 있겠지만 허망이 원래 없는 것이라면 허망의 인연을 말하더라도 원래 있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일지 못하고 자연이라 추측함이겠는가?
허망함은 본래 일어난 원인이 없는데, 헤아리고 분별하는 가운데 인연이라는 것을 세워놓기도 하고, 또한 인연을 잘 모르는 이는 자연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진실이 아닌 허환(虛幻)으로 생긴 것인데, 그런데도 '인연이니 자연이니,하고 망념으로 헤아리고 분별합니다. 허망함이 생긴 자리를 안다면 허망함의 인연을 알 수가 있겠지만, 허망함이 원래부터 없는 것이라면 허망함의 인연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원래 없는 것인데, 어찌 알지 못하는 것을 자연이라고 추측을 하겠는가라는 말입니다. 망념인줄 알지 못하고 자연이라고 믿는 사람이야 오죽하겠느냐라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미혹 중의 미혹이요, 집착 중의 집착이라는 말입니다. 11-8-3. 오음이 생긴 근본원인도 망상이다.
부처님이 오음이 일어난 현상이 다 망상이라고 한 뜻은 첫째는 중생들이 오음의 본래 원인을 분명히 보고 파해서 없애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려는 뜻이 있고, 둘째는 중생들이 두루 집착하는 오음에 대한 애정과 계교(計巧;헤아림과 분별심)를 버려서 허망하다는 것에 통달하여 의혹을 없게 하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가) 색음은 견고망상이다
내가 앞에서‘마음에 신맛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생기고, 마음으로 높은데 오를 것을 생각하면 발바닥이 저리는 것이다’고 말했으나, 높은 벼랑이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며, 신 물건이 스스로 올 수 없는 것이다. 너의 몸이 반드시 허망한 것이 아니라면 입에 침이 어떻게 신 이야기로 인하여 나올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알라. 너의 지금의 색신(色身)을‘견고(堅固)한 첫 번째 망상(妄想)이다’고 한다.
'너의 몸이 부모의 망상으로 인하여 태어났다'는 말은 부모가 함께 애욕(愛慾)에 물든 생각을 낸 뒤에 적백 이음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의 마음에 염애(厭愛)의 망상이 아니었다면 아마 망상 가운데 명(命)을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은 부모가 애욕을 갖추었더라도 너의 중음(中陰)이 애증(愛憎)을 짓지 않았다면 태중에 들어 올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부모와 자기 셋의 망상이 성립된 뒤에 태중에서 명근(命根)을 맺었기 때문에, '망상 속에서 명(命)을 전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에 신맛을 생각하면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이고, 마음으로 높은 데 오른다고 상상하면 발바닥이 시큰거리며 저린다는 것은 실제로는 신물건이 없고, 높은 벼랑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너의 몸이 허망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망상만으로 침이 나오는 반응을 하고, 상상만으로 발바닥이 저리는 효과를 주느냐하는 것인데, 따라서 몸이 견고한 것이 아니라 허망한 망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말만 듣고도 입안에 침이 생기고 발바닥이 근질근질 저려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지금 눈앞에서 이익을 따르고, 손해를 어기는 두 가지에 치달리는 것인데, 이것을‘허명(虛明)한 두 번째 망상(妄想)이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내용에서, 망상에 따라서 몸을 부리게 되는데, 지금 자기 앞에서 따르면 좋다고 생각하고 거스르면 싫다고 하는 두 가지 치달리는 생각이 나타나는 것을 이름하여 두 번째의 허명한 망상이라고 합니다. 다. 상음(想陰)은 융통(融通)망상이다.
깨어나면 생각이고 자면 꿈이니 너의 상음(想陰)의 요동하는 망정(妄情)을‘융통(融通)한 세 번째 망상(妄想)이다’고 한다.
생각으로 말미암아 색신(色身)을 부리게 되는데, 몸은 생각하는 것이 아닌데도 어째서 몸이 생각따라 사용되어 여러 가지 모습을 취하게 되느냐는 하는 것입니다. 즉 마음이 허상을 내면 몸이 취한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의 작용이 다르지만 상응할 수 있는 이유는 상음(想陰)이 그것을 소통해 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형상을 취하고자 하면 생각이 이에 따르고, 깨면 바로 생각하는 마음이요, 자연 모두가 꿈이니 바로 상념이 요동치는 망정(妄情)을 융통망상(融通妄想)이라고 합니다. 5음 자체가 모두 생각으로 된 것이지만, 상음에 생각의 작용이 가장 많기 때문에 특별히 생각 '想'자를 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음의 경계는 잠을 잘 때든 깨어 있을 때든 모두 생각의 형태입니다. 꿈도 생각이고, 생각도 꿈입니다. 육체는 장애가 있어서 질료에 막히지만 생각은 걸림없이 취상(取像)하기 때문에 융통망상(融通妄想)이라고 한 것입니다. 색음은 질애(質礙), 수음은 영납(領納), 상음은 취상(取想), 행음은 천류(遷流),식음은 요별(了別)의 성질을 갖습니다. 이 중에 상음의 취상(取想)은 여러가지로 마음에 어떤 모습을 만들어 냅니다. 예컨대 남자나 여자가 제각각 남자상이나 여자상이 있어서, 어떤 형태든 자기 마음 속에서 좋아하는대로 취하는 것입니다.
아난아! 이것이[行陰] 만일 네가 아니라면 어찌하여 몸이 변천하며, 만약 반드시 이것이 진실한 것이라면 네가 어찌 깨닫지 못하겠느냐? 그러므로 너의 모든 행음(行陰)이 생각생각에 머물지 아니하니 이것을‘유은(幽隱)한 네 번째 망상(妄想)이다’고 한다.
변화하는 이치가 머물지 않고 계속되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옮겨져서 손톱 발톱이 자라고 머리카락이 생겨 나오며, 기운이 떨어지고 얼굴이 쭈구러드는 것이 밤낮으로 이어지는데 일찍이 이를 알지 못하고 있으며, 이 행음이 만약 아난 너라면 어찌 몸이 달라지는 것을 아니라고 할 것이며,즉 네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며, 이것이 반드시 진실한 너라면 어찌 알지 못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즉 네가 이님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네가 아니라면'과 '너라면' 둘 중에 연결할 수 없게 되니, 참이 아니고 허망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행음이 허망하다는 것입니다.이렇게 바로 너의 행음이 순간순간 머물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숨어서 이어지는 네 번째 유은 망상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이치'는 변화의 성질인 행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행음의 움직임이 자기에게 모르게 은밀하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마. 식음(識陰)은 미세하고 정밀한 망상이다.
또한 너의 정명하고 맑은 움직이지 않는 자리를 이름 하여 항상한 것이라고 한다면, 몸에서 보고 듣고 아는 것이 생겨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정명하고 맑은 움직이지 않는 자리'란 제8식을 가리킵니다.
아난아! 마땅히 알라. 이 고요가 참되지 아니하여 마치 급류의 물이 보기에는 고요한 듯하나 흐름이 빨라서 볼 수 없을지언정 흐름이 없지 않는 것과 같다. 만일 상념의 근원[想元]이 있지 않다면 어찌 망습(妄習)을 받으리요? 상념의 근원이 있어 너의 육근이 서로 작용하여 열리지(開通) 않기 때문에 이러한 망상(妄想)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만약 참으로 정진(靜眞)한 것이라면 망상이 되풀이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인데, 이것은 본각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너희들이 옛날에 어떤 기이한 물건을 보고 여러 해를 지내면서 기억하는지 잊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가 뒤에 갑자기 다른 예전의 물건을 다시 보게 되면 무슨 까닭으로 기억이 되살아나 조금도 잊어버리지 않게 되는가?라고 말하는데, 즉 식음의 자리는 진실한 본각 자리가 아니고 망식(妄識,파동의식)인 제8식인 아뢰아식이기 때문에 여기에 모든 것이 저장되었다가 기억이 되살아나 조금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정명하고 맑아 요동하지 않는 가운데 순간순간 느낌의 훈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느냐?라고 묻고 있는데, 이 말은 단 한 순간,한 물건도 잊어버리지 않고 무량한 종자를 저장해 놓고 있어서 무량한 습기를 쌓아 놓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말씀입니다. 맑게만 겉으로 보인다고 해서 참된 것이 아닌 것이, 마치 빨리 흐르는 물은 물결이 빠르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고요한 것처럼 보여서 흐름이 빠른 것을 보지 못하지만 흐르지 않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고속으로 돌아가는 프로펠라는 마치 서있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물이 빨리 흐르면 어느 때는 물이 흐르는지, 않는지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고요해 보여도 미세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식음이 망상(생각)의 근원이 아니라면 어떻게 망상(파동성)의 습기가 저장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식음이 망상의 성질이 있기 때문에 망상의 종자가 저장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망상, 생각이라는 것은 의식의 파동성 움직임인데, 식음은 파동성의 씨앗들을 저장하므로, 망상의 파동의식을 생기게 하는 근본이며, 그래서 미세하지만 식음인 제8아뢰아식도 미세한 파동의식인 망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식음은 정진(靜眞)이 아니라, 망습(妄習)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이 망습이 없어지려면 6근이 서로 작용할 때에 서로 막히고 나눠져 있던 근(根)들이 합해져서,근들이 풀려서 원통(圓通)에 들어가서 하나가 되지 않으면 망상의 종자는 없어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6근이 원통이 되어야 망상이 소멸한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온갖 불규칙한 파동성의 종자들이 모두 서로 서로 상쇄되어 절대공진(絶大共振)의 일점(一點) 속에 합일 공진되지 않으면 미세한 파동성의 망상들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그러므로 현재 보고 듣고 알고 느끼는 견문각지 가운데서 익힌 훈습의 종자들이 없는 것 같이 보이는 그 식음 자리를 다섯번째의 전도된 미정망상(微精妄想)이라고 합니다. 미정망상은 식음자리가 오음 가운데 가장 미세한 망상의 자리이며, 제8 아뢰아식의 자리입니다. 11-8-4. 오음(五陰)의 인계(因界)와 생멸
오직 색(色)과 공(空)은 색음의 가장자리[色邊際]에 귀속되고, 접촉과 떨어짐은 수음의 가장자리에, 기억과 망실은 상음의 가장자리에, 소멸과 생성은 행음의 가장자리에, 고요함에 들어가고 고요함에 합하는 것은 식음의 가장자리에 귀속되는 것이다.
오수음(五受陰)은 오취온(五趣蘊)이라고도 하며, 한 생각 미망으로 이것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고 덮는다는 뜻입니다. '인계(因界)'라는 말은 오음의 원인,즉 인(因)은 원인이라는 것이고, 계(界)란 음(陰)자와 같으므로 '오음이 생기는 요인'을 의미합니다. 색음(色陰)에서는 색(色)은 유상(有相)의 경계이고 공(空)은 무상(無相)의 경계인데, 색을 떠나면 마음은 공(空)이 됩니다. 그러나 색은 다했으나 공(空)을 다하지 못하면 색음경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수음에서는 취착하는 것을 촉(觸)이라 하고, 싫어하여 떠나는 것을 이(離)리고 합니다. 모든 취착을 끊었지만, 싫어하는 것을 잊지 못하면 아직 사수(捨受:버리고 받아드림)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부처님은 환(幻)을 떠난 후에 다시 떠난 것마저 떠날 것을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촉을 다했으나 떠남을 다하지 못하면 수음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줄 알겠으니, 버리고 등지는 것이 모두 구경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음(想陰)에서는 유념(有念)은 기억이 되고 무념(無念)은 망각이 되니, 모든 생각은 소멸했으나 무념을 잊지 못하면 아직 정념(情念)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때문에 부처님은 유념과 무념이 함께 미민(靡泯)에 돌아간다 하였으며, 조사가 " 무심이 도라고 하지 말라, 무심도 오히려 한겹의 관문이로다"하였읍니다. 따라서 기억을 다 하였으나, 잊음을 다 하지 못하였으면 상음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일체 무상(無相)이 다 구경은 아닙니다. 행음(行陰)에서는 의식의 미세한 흐름이 멸한 듯 하나 실은 멸한 것이 아니고, 여전히 맑게 흔들리며 미세한 흐름이 있으니, 정(定)에 든 사람도 손톱이 자라고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에 벗어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생(生)은 다 했으나 멸(滅)이 다 하지 못함은 행음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말하며, 일체 멸진정이 모두 구경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식음(識陰)에서는 유입(有入)으로 담입(湛入: 고요함에 들어감)을 삼고 무입(無入)으로 합담(合湛: 고요함에 합쳐짐)을 삼습니다. 담입이란 행음의 흐름이 없어지고 식해(識海)로 들어가는 것인데, 경에서 "성체가 원래 맑은 데 들어가서 묵은 습기를 한 번 맑히면 마치 물결이 소멸하여 맑은 물이 된 것과 같다" 한 것입니다. 무입(無入)으로 합담(合湛)을 삼으니, 합담은 경에서 "내외가 맑고 밝아 들어가도 들어간 바가 없다."한 것입니다. 합(合)자는 일점(一點)에 합쳐진 것처럼 부동(不動)의 뜻이 있으니, 흐름이 워낙 빨라서 그 흐름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합담(合湛)은 그 경계가 얕은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처음에 담입(湛入:고요함에 들어감)이라고 한 것은 다만 행음이 비로소 소멸하여 식해에 처음 들어갔을 때를 나타냅니다. 마지막 합담(合湛)이라고 한 것은 식해(識海)에 오래 머묾을 다시 지적한 것이며, 담명이 청정하고 지극하여 구우(區宇)가 점차 열리는데 장차 통하고자 하나 아직 통하지 못한 경계를 말합니다. 식음(識陰)이 다 하면 수행위는 초주(初住)에 들어가는 원통을 증득한다고 합니다.
오음이 원래 여러 겹으로 중첩되어 생겨난 것이므로, 생길 때는 식(識)으로 인하여 있고, 없어질 때는 색(色)으로부터 소멸합니다. 생길 때는 옷을 입을 때처럼 안에서 밖으로 나아가고 미세한 데에서 거친데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이치에 미혹하면 식(識)이 있게 되며 나아가 색(色)이 있게 됩니다. 소멸할 때는 옷을 벗을 때처럼 밖에서부터 안으로 이르고 거친 데서 미세한 데로 이릅니다. 그러므로 이치를 깨닫게 되면 색이 다하게 되며 나아가 식이 다하게 됩니다 오음(五陰)이 허망한 것이라는 원리와 이치는 즉각 단번에 깨닫지만,사실상 이를 제멸시키는데는 색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수음,상음,행음을 거쳐 식음에 이르기 까지 점차적으로 차례차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85)'부터 그 후의 몇회에 걸쳐서 보면 여섯 매듭(六結)을 푸는 법문이 있으며, 거기에 갑바라라는 사람이 부처님에게 준 수건으로 매듭을 6개 지어서 순서대로 그 매듭을 푸는 과정의 범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분명치 않아서 다시 또 묻느냐?'고 말한 것은 앞에서 든 법과 비유가 명료하지 않은 데가 없으니 아난 네가 그 즉시 알아차려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알아들었다 하겠는데, 어째서 여섯 매듭을 푸는 과정에 대한 법문을 할 때는 소홀히 듣고 있다가 이제와서 또다시 묻느냐는고 꾸짖는 장면입니다.
너는 마땅히 이 망상의 근원을 가지고 마음을 열고 통달하여 장래 말법시대에 모든 수행자들에게 전하여 헛된 망상을 깨닫게 하여 이를 깊히 싫어하게 하고 스스로 열반이 있음을 알게 하여 삼계에 집착하지 않도록 이끌라는 부처님 마지막 당부 말씀입니다.5음이 완전히 허망임을 통달했다면 깊고 간절히 싫어져서 거기서 떠날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는 것입니다. 모두 자기로 인하여 허망하게 생겼으므로 다시 자력으로 스스로 멸제하하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무한진인- |
무한진인
2019.10.08 18:12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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