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2011.12.17 14:16

육조단경 강의 62 - 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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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2 강 - 機緣品- 16

 


   懷讓禪師는 金州杜氏의 子也라 初謁嵩山安國帥러니 安이 發之曹溪??하라하야 讓이 至禮拜하니 師曰, 甚處來오 曰, 嵩山이니이다

 
   師曰, 什?物이 任?來오 曰, 說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이다 師曰還可修證否아 曰, 修證은 卽不無나 汚染은 卽不得이니이다 師曰只此不汚染이 諸佛之所護念이시니 汝旣如是인댄 吾亦如是니라 西天般若多羅- 讖하되 汝足下에 出一馬駒하야 踏殺天下人하리라하였으니 應在汝心하고 不須速說이니라 讓이 豁然契會하야 遂執侍左右를 一十五載에 日臻玄奧러니 後往南嶽하야 大闡禪宗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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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듯이 육조스님의 많은 제자 중에서, 그 후손들을 큰 제자 두 사람을 치면 앞에서(61강) 살펴보았던 “靑原行思禪師(청원행사선사)”와 오늘 서두에 나오는 “南岳懷讓禪師(남악회양선사)” 이 분을 칩니다. 그래서 육조스님 밑에 “兩大山脈(양대산맥)”이라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것도 후손이 성하기 때문에 그렇게 취급을 받는 것입니다. 후손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해도 뒤에까지 그런 기록이 전해지지를 않는데, 후손이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다 보니까 그 분들의 이름이 오늘날 까지도 잘 전해지고 있지요. 청원행사스님의 제자로서는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曹洞宗(조동종)계통의 法脈(법맥)을 이은 분들입니다.

 
   조동종은 일본에서는 아주 성해요. 특히 일본에 “영평사”같은 사찰이 조동종 사찰이고, 일본의 조동종은 상당히 성한 종파입니다. 한국에는 조동종이라고 근래에 만든 宗派(종파)가 있긴 있는데 그건 우리가 취급할 수가 없는 것이, 근래에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조동종 후손들은 우리나라에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대신에 남악회양선사의 제자는 우리나라, 소위 한국법맥을 계승한 같은 맥이라고 보는데, 남악회양선사 밑으로 또 임제스님으로 이렇게 내려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맥을 따르다 보니까, 우리나라의 큰 스님들의 법맥을 임제스님으로, 또 임제스님을 거슬러 올라가면 남악회양선사. 육조혜능선사. 이렇게 만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법맥은 남악회양선사의 법맥을 이은 것으로 봐야겠지요.

 
   懷讓禪師(회양선사)는 金州杜氏(금주두씨)의 子也(자야)라→ 남악회양선사는 금주 두 씨의 아들인데 初謁嵩山安國師러니(초알숭산안국사)→ 처음 숭산 慧安(혜안)국사 라고 하는 분을 배알하니까, 安(안)이→ 숭산 혜안국사가 말하기를 發之曹溪??(발지조계참구)하라→ 가서 曹溪한테, 여기서 조계라고 하면 조계산에 계시면서 교화를 펴는 육조스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육조스님한테 가서 참배하라. ?자는 그런 말이고, ?자는 두두릴 구자인데, “문을 두드리라” “물어라.” 물을 “구”라고도 하니까요. 문을 두드리는 것은 안에 계시냐는 뜻이니까요. “??(참구)하라” 가서 참배하고 물으라. 이렇게 지시를 하기에 讓(양)이→ 회양스님이 至禮拜(지예배)하니→ 와서 예배를 했어요.

 
   師曰(사왈)→ 혜능스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유명한 대화예요. 우리 禪宗史(선종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그런 선문답인데요. 甚處來(삼처래)오→ 어디서 왔느냐? “삼”이라고 발음합니다. “심”이라고 하면 “매우” 할 때는 “심”이라고 하고, 이렇게 “삼처” “삼마”할 때는 무엇 “삼”이라고 합니다.

 
   是甚?(시삼마)할 때도 “삼”이라고 발음하고, 甚處來(삼처래)오. 정식으로 강원에서 공부했느냐 안했느냐 하는 것도 이 글자 발음을 어떻게 하느냐 그거 들어보면 그냥 알아요. 지금 불교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아요. 그런데 대개 혼자 공부하는 사람들은 甚處來(심처래)오. 이렇게... 아, 저 스님은 별로 족보가 없는 공부구나. 그렇게 알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글자가 몇 개 있어요. 그런 것이 다 함정인데, 제대로 순서를 밟아서 공부한 사람들은 그런대로 글자 하나라도 발음을 정확하게 하고 그렇지요. 그래봐야 뜻이 달리 다른데 가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그렇습니다.

 
   曰, 嵩山(왈, 숭산)이니이다→ 숭산입니다. 숭산에서 왔습니다. 그랬어요. 師曰, 什?物(사왈, 십마물)이 任?來(임마래)오→ 이것을 “즙”이라고도 발음하는데, 대개 什?物(십마물)이 任?來(임마래)오 무슨 물건이 什?. 이렇게 왔느냐? 什?物= 무슨 물건. 보통 古語文體(고어문체)로 쓰면 何物(하물)이 如此來(여차래)오. 이렇게 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이것은 소위 그 당시 말투. “白話體(백화체)”라고 하는데,

 
  지금 중국말에는 이런 것은 또 잘 안 써요. 그 시대. 그 시대 따라서 말을 표기하는 글자들이 조금씩 다르니까... 什?物(십마물)이 任?來(임마래)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것이 아주 유명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8년간 대답을 못했다는 겁니다, 사실은... 8년간...

 
   8년간 아무 대답도 못하고 끙끙대다가, ‘과연 내가 숭산에서 온 것은 틀림없는데, 무슨 물건이 과연 여기에 왔는가?’ 최소한도 이 몸뚱이 보고 질문하는 것은 아니고... 이 몸뚱이 가지고 대답했어도 답이 될 수 없는 입장이지요. 그리고 또 머리 굴려서 예를 들어서 마음이 몸뚱이를 운전해서 끌고 왔다. 이렇게 죽은 대답을 해가지고는, 될 일이 아니지요. 정말 소신 있는. 확실한 어떤 한마디의 대답이 나와야 되는데, 그 대답을 못한 것이지요.

 
   불교를 이론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대답 다하지만, 이 사람은 지금 그런 차원이 아니기 때문에 대답을 못하고 8년을 끙끙대다가 어느 날, 홀연히 눈이 열려서 쫓아 올라가서는 “스님. 그때 나한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라고 물었지요?” 傳燈錄(전등록). 그러니까 조사스님들의 역사를 기록한 전등록 같은 데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물었지요?”하니까, “아 그래 물었다. 그 동안 왜 아무 말이 없었느냐?” 지금 그 정말 천근만근의 무게와 같은 그런 질문 한 마디를 짊어지고, 8년 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순식간이 지난 거나 다를 바 없지요. 자나 깨나 오로지 그 생각 하나였으니까요. “그래 물었다.”고 하니까 마치 어제일 같이 대답을, 서로가 대화를 하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 다음 말입니다.

 
   曰, 說似一物(왈, 설사일물)이라도 卽不中(즉부중)이니이다→ 설사, 이것은 말씀 說(설)자를 쓸 때도 있고, 베풀 設(설)자를 쓸 때도 있고, 어떤 글자라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말 “설사”하고 똑 같아요. 설사 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뭐 가령 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곧 맞지 않는 소리입니다. 맞을 中자. 맞지 않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무슨 물건이 왔느냐?’라고 그렇게... 스님도 알고 보니까 질문에 모순이 많습니다. 이런 뜻이지요. 벌써 질문에 모순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 나는 괜히 말 따라 가다가 8년이나 세월을 보냈다. 이것이지요. 설사 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한마디를 위해서 8년을 정말 용맹정진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스승에게 이런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그 후손이 또 길어요. “뿌리가 견고 하면 잎이 무성하다.” 서예 하는데 가면 그런 글자 쓰게 돼요. 참, 그것도 의미심장한 말이지요. “뿌리가 견고 하면 잎이 무성하다.” 그리고 “냇물의 근원이 멀면, 흐름도 길다.” 멀리까지 흘러간다. 그런 말이 있듯이 이렇게 스승의 그런 법을 깨닫기까지 이런 세월이 흘렀으니까 그 후손이 흘러가는 것이지요. 멀리까지...


   師曰 還可修證否(사왈 환가수증부)아→ 그러면 그것을 또한 “修證” 하느냐? “修證”할 수 있느냐? 닦고 증득하는가? 그런 질문을 했어요. “修證” 하는가?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보아 왔듯이 “무수증불”이라. 저 앞에서도(60강) [無上大涅槃(무상대열반) 圓明常寂照(원명상적조)]해서, 이 한 물건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뭐라고 “닦는다.” “증득한다.” 한 단계. 한 단계 십신 · 십주 · 십행 · 십회향. 이렇게 한 단계 · 한 단계 올라간다는 것은 사실은 해당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는 “修證 하는가?”라고 물었는데, 曰, 修證(왈, 수증)은 卽不無(즉불무)다→ 하려면 할 수 있다 이겁니다. “닦는다.” “증득한다.”하는 것이... “卽不無”라 하는 것은, “있다.”라는 말 보다는, 없지는 않습니다마는,

 
   汚染(오렴)은 卽不得(즉부득)이니이다→ 더 이상 물들지는 않습니다. 그 한 물건. 한 물건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붙일 수 없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물들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더럽혀지지는 않습니다. 본래 청정한 것입니다. 이런 뜻이지요.

 
   汚染(오렴) 卽不得(즉부득)이니이다. 이걸 가지고 논란이 참 많습니다. “修證이 없지 않다.”라는 말에도 모순이 있다고... “汚染 卽不得”이라는 말은, 그건 완전한 말인데... “修證 卽不無”라는 말에는 문제를 제기 하면 문제가 된다.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卽不無”라고 했기 때문에, 굳이 거기에 “꾸민다.” “보탠다.” 하면 그거는 가능한 일이다. 이것이지요.

 
   이를테면 같은 한마음.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덕이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고, 또 덕이 있어도 그 德化(덕화)가. 덕의 그 영향력이 큰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이 있고, 마치 전등불이 30촉짜리는 한 방을 비추고, 한 100촉짜리쯤 되면 더 환하게 밝고, 3촉짜리쯤 되면 신 겨우 찾을 정도이고, 그와 마찬가지로 그런 것은 있을 수 있다 이것이지요. 그런 것은 있을 수 있지만, 그 당체에 대해서 “더럽혀 진다.” 닦았다고 더 깨끗하고 안 닦았다고 더럽고.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汚染 卽不得”이라는 말은요.

 
  “修證 卽不無”나 “汚染 卽不得”이다. 그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이것은 닦아 증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닦아 증득해야만 되는 것이고, 이런 의미는 아니에요. 깨달은 사람은 역사적으로 아주 많지요. 무수히 많지만, 석가모니부처님 같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도 있고, 전혀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고, 어느 정도 세상에 빛을 발하다가 가신 분들도 있고, 그런 차이는 있다 이거지요. 그러나 한 물건이 영원한 점이라든지, 더 이상 더럽혀진다든지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不得”이라는 말이,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師曰(사왈) 그러니까 “修證”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고, 只此不汚染(지차불오렴)→ 다만 이 汚染되지 않는다는 그 한 물건의 사실에 대해서 이것이 諸佛之所護念(제불지소호렴)이다→ 무든 부처님이 그것을 아끼고 마음속에 간직 하는 바다. 그것을 생명으로 삼는다. 또 그것을 모든 부처님은 당신의 재산으로 여긴다. 이런 뜻입니다. “諸佛之所護念”이란 말은요.

 
   우리가 재산을 제일 아끼지요? 가장 소중하게 보호하고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護念”이 그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한 물건. “汚染” 되지 않은 그것이 부처님들의 생명이요. 재산이요. 모든 것이다. 그런 말이지요.

 
   汝旣如是(여기여시)인댄→ 그대가 이미 그렇다면,

吾亦如是(오역여시)다→ 그대가 이미 이와 같고, 나도 또한 이와 같다. 나도 또한 그렇다. 그 한 물건에 대한 사실은 부처님이나, 나나 그대나 그리고 미래에 올 많은 사람들. 똑 같은 영원한 생명이고 무한한 어떤 능력을 지닌 그 한 물건의 문제다. 이런 뜻입니다.

 
   西天般若多羅- 讖(서천반야다라- 참)하되→ 西天에. 인도에 “般若多羅”라는 유명한 스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讖하되. 예언을 하되, 讖은 예언이라는 뜻입니다.

汝足下(여족하)에→ 너의 발밑에

出一馬駒(출일마구)하야→ 한 말 망아지가 나와서,

踏殺天下人(답살천하인)하리라→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리라’ 라고 했다.

 
   육조스님까지. 육조스님제자. 그 제자 밑에 망아지가 한 마리 나와서는,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는 일이 있을 것이다. 라는 예언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육조 혜능스님 밑에, 지금 이 스님. 남악 회양스님 밑에, “馬祖道一(마조도일)”이라는 말 馬(마)자가 들어가는 스님이에요. “마조도일”이라는 이가 회양스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지요.

 
   마조도일 밑에, 百丈海(백장해). 백장스님이, 全(전) 백장. 後(후) 백장. “百丈野狐(백장야호)”라고 해서 그것도 아주 유명한 “百丈淸規(백장청규)” 인구에 회자되는 一日不作(일일부작)이면 一日不食(일일불식)이라. 하루 노동하지 아니하면 하루먹지 아니한다. 무노동 무임금 이야기를 그 때 벌써 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깨달은 분의 안목이라고 하는 그것이...

 
   직접 관계되는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생각이 들지는 모르지만 천하의 백장. “百丈古佛(백장고불)”이라는 그런 이들이거든요. 그런데 “무노동이다. 무임금이다”그랬어요.  一日不作(일일부작)이면 一日不食(일일불식)이라. 하루 노동 안 하면 하루 밥 못 먹는다 이겁니다. 먹을 수 없다.

 
   그 백장스님이 이 마조스님의 제자예요. 馬자가 들어가는 제자. 백장스님 밑에 황벽스님. 황벽스님 밑에 임제스님입니다. 그 유명한 임제. 이 “임제”라는 산이 아주 높아버리니까 그 뒤에 스님들이 전부... 우리가 여기서 보면 임제봉우리가 높아버리니까 그 뒤에 백장스님이다. 마조스님이다. 심지어 이 남악 회양스님. 육조스님까지. 오조스님까지 다 가려버려요. 그래서는 보일까 말까할 정도로 그렇게 임제스님이 높은 도력의 봉우리. 견해의 봉우리지요. 지혜의 봉우리가 높이 솟아버렸습니다.

 
   우리나라 도인스님들은 전부 “임제스님 법을 이어 받았다.” 전부 “임제스님 법을 이어 받았다.” “임제스님 법을 이어 받았다.”고 한결같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야 이것은 말하자면, 진정 부처님의 正通思想(정통사상)을 이어 받은 것이 되고, 바로 부처님의 그 아주 핵심 법을 세상에 펴는 사람이다. 하는 것이 인정을 받게 되거든요.

 
   우리나라에 있는 비석을 보면, 전부 “임제후손” “임제후손” “임제 몇 대손” “임제 몇 대손” 또 “임제가풍을 이었다.”하는 그런 말을, 큰 스님들 비석을 보면 다 볼 수가 있는 이유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 남악 회양스님 밑에 마조도일스님이 나올 것 이라고 하는 예언.

 
   汝足下(여족하)에 出一馬駒(출일마구)하야→ 너의 발밑에서 한 말 망아지가 나와서,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고... 수많은 제자가 마조스님 밑에 탄생하게 되거든요. 수많은 제자들이... 그 당시는 도인이 “깨 쏟아지듯이 쏟아진다.”이런 표현을 하는데요. 깨를 털어봤어야 알지요? 특히 참깨를요. 초가을이 참깨를 벨 철이거든요. 참깨를 베어서 말리려면 세워놨다가 입이 벌어지면 멍석 위에 이불보 같은 아주 넓은 천을 펴놓고 털면, 참깨가 아주 잘잖아요? 그 숫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아주 많이 쌓인다고요. 많이 쏟아졌다는 겁니다.

 
   “깨가 쏟아지듯이 쏟아졌다.”고... 그렇게 비유할 정도로 그 당시 마조스님 무렵에 많이 쏟아졌다. 그래서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는 말이, “많은 사람들이 쏟아졌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汝足下(여족하)에 出一馬駒(출일마구)하야 踏殺天下人(답살천하인)하리라 하였으니

 
   應在汝心(응재여심)하고→ 꼭 네 마음속에다 두고,

不須速說(불수속설)이니→ 빨리 그렇게 말할 것은 아니다 이겁니다. 馬자 들어가는 제자가 내 제자로 올텐데, 그 밑에 “수많은 제자가 나올거다.” “수많은 도인이 나올거다.” 이런 식으로 어쭙잖은 소리 하지 말고. 네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천기누설 하지마라.”이겁니다. “천기누설 하지마라.”

 
   讓(양)이→ 남악회양이 豁然契會(활연계회)라→ 시원하게 툭 터지게 마음에 딱 계합하여 딱 맞아 떨어져서,

遂執侍左右(수집시좌우)를 一十五載(일십오재)예요.→ 8년간 깨닫기까지 있었지요? 그리고 드디어 좌우에서 執侍하기를. 지키고 시봉하기를 15년을 했어요. 그 8년 동안은 선방에 대중 속에 있었지요? 그리고 깨닫고 나서 비로소 비서 노릇을 한겁니다.

 
   큰 스님의 시봉을 제대로 하려면 깨닫지 않으면 시봉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야 도를 물으러 오는 사람에게 뭔가 좀 거들지요. 이것이 익었는지 덜 익었는지... 또 시자가 좀 거들어서 도움이 될런지 안 될런지 그것을 조실스님 못지않은 안목을 가져야 된다고요. 그러니까 깨닫고 나서 15년 이란 세월동안 육조스님 밑에서 시봉을 했다.

 
   日臻玄奧(일진현오)라→ 그러면서 매일매일 더욱 더 깊고 그윽한 그런 경지에 나아가게 되더라.

後往南嶽(후왕남악)하야→ 남악산에 이르러서, 그래서 남악회양. 이름이 懷讓(회양)이고, 南岳(남악)에 갔다고 해서 “남악”을 “호”로 쓰지요.

 
   大闡禪宗(대천선종)하니라→ 크게 禪宗을 드날렸다. 남악회양이 마조도일을 만나고, 마조도일 밑에, 백장이 나오고, 백장 밑에 황벽이 나오고, 황벽 밑에 임제가 나오고면서 그 무렵에 무슨 曹洞宗(조동종). 曹山(조산). 洞山(동산). 또 그 유명한 趙州(조주). 이런 이들이 그 무렵. 임제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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