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2011.12.17 14:21

육조단경 강의 64 - 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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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4 강 - 機緣品- 18

 

 
   禪者智隍이 初?五祖하고 自謂正受라하야 菴居長坐를 積二十年이러니 師의 弟子玄策이 遊方이라가 至河朔하야 聞隍之名하고 造菴問云,

 
   汝- 在此하야 作什?오 隍이 云, 入定이로라 策이 云, 汝云入定은 爲有心入耶아 無心入耶아 若無心入者인댄 一切無情草木瓦石이 應合得定이오 若有心入者인댄 一切有情含識之流가 役應得定하리라 隍이 曰, 我正入定時에 不見有有無之心이로라 策이 云, 不見有 有無之心이면 卽是常定이어니 何有出入이리요 若有出入이면 卽非大定이로다 隍이 無對良久에 問曰, 師嗣誰耶아

 
   策이 云, 我師는 曹溪六祖시니라 隍이 云, 六祖는 以何爲禪定고 策이 云, 我師所說은 妙湛圓寂이라 體用이 如如하야 五陰이 本空하고 六塵이 非有라 不出不入하고 不定不亂하며 禪性이 無住라 離住禪寂하며 禪性이 無生이라 離生禪想하야 心如虛空하되 亦無虛空之量이니라 隍이 聞是說하고 經來謁師한대-

 
   師問云, 仁者何來오 隍이 俱述前緣하니 師云, 誠如所言이니 汝但心如虛空하되 不着空見하면 應用無碍하야 動靜無心하며 凡聖情忘하야 能所俱泯하며 性相如如하야 無不定時也니라 隍이 於是大悟하니 二十年所得心이 都無影響이러라 其夜에 河北士庶가 聞하니 空中에 有聲云하되 隍禪師가 今日에 得道라하더라 隍이 後에 禮辭하고 復歸河北하야 開化四衆하니라

 
   一僧이 問師云, 黃梅意旨를 甚?人이 得이니이까 師云, 會佛法人이 得이니라 僧이 云, 和尙이 還得否이까 師云我不會佛法이로라

 
****************************************

 
   禪者智隍(선자지황)이→ 참선하는 사람. “智隍”이라는 사람이 初?五祖(초참오조)하고→ 처음에 오조스님을 참예하고, 自謂正受(자위정수)라→ 三昧(삼매)를 번역하면 “正受”라고 합니다. 바를 正(정)자. 받을 受(수)자를 “正受”라고 번역한 것. 참 의미 심장 합니다.

 
   “삼매에 들어있다.”고 한 것은 분별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느낍니다. 이 “受”자는 느낄 수자 아닙니까? “感受(감수)한다.” 정확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三昧(삼매)”지요. 木石(목석)같이 無心(무심)하는 것은 삼매가 아닙니다. ‘스스로 삼매를 얻었다.’

 
   菴居長坐(암거장좌)라→ 菴居. 암자에 살면서 長坐不臥(장좌불와). 눕지 않고, “長坐”하기를

積二十年(적이십년)이라→ 20년을 “長坐”를 했는데,

師(사)의 弟子玄策(제자현책)이→ 앞에서(63강) 현각스님을 인도한 그 “玄策”입니다. 그 현책이 遊方(유방)→ 이 분은 돌아다니면서 눈 밝은 사람 만나면, 당신의 스승. 육조스님한테 데려와서 印可(인가)받게 하는 일을 잘 하는 분인가 봐요. 遊方. 돌아다니다가

 
   至河朔(지하삭)하야→ 河朔이라는 땅에 이르러서.

聞隍之名(문황지명)하고→ 지황스님의 이름이 상당히 그 지역에 많이 퍼져있는 것을 듣고는, 일부러 나갔습니다. 造菴問云(조암문운)→ 암자에 나아가서 물어 말하되,

汝(여)→ 그대는 在此(재차)하야 作什?(작십마)오→ 무엇을 하느냐?

 
   隍(황)이 云(운)→ 지황이 말하기를 入定(입정)이로다→ 선정에 들어있다.

策(책)이 云(운)→ 현책이 말하기를

汝云入定(여운입정)은→ 그대가 말한 “入定”은

爲有心入耶(위유심입야)아 無心入耶(무심입야)아→ 떠보는 것이지요? 有心으로 들어가느냐? 無心으로 들어가느냐?

 
   若無心入者(약무심입자)인댄→ 만약 無心으로 선정에 들어갔다면, 一切無情草木瓦石(일체무정초목와석)→ 기와장이나 돌 같은 이런 것들도, 應合得定(응합득정)이라→ 응당히. 그리고 틀림없이 “선정을 얻었다.”고 할 수가 있다. 이겁니다. 無心으로 만약에 들어갔다면... 아주 맞는 말이지요.

 
   若有心入者(약유심입자)인댄→ 만약에 有心으로, 마음이 있는 것으로 선정에 들어갔을진댄, 一切有情含識之流(일체유정함식지류)가→ 보통 중생들이 役應得定(역응득정)이라→ 우리들 전부 다. 보통 사람들도 전부 응당히 선정을 얻었으리라. 오도 가도 못하게 딱. 이렇게 외곬으로 몰아가는 겁니다 사람을... 소견이 뛰어나지 못한 사람은 有心이냐? 無心이냐? 여기에 헤매는 겁니다. 거기에 걸리지 않는 한 마디가 있어야 되는데, 거기에 그만 걸려 버리는 겁니다. 有와 無에, 有心과 無心에...

 
   隍(황)이 曰(왈)→ 지황이 말하기를,

我正入定時(아정입정시)에→ 내가 바로 선정에 들었을 시에, 不見有有無之心(불견유유무지심)이로다→ “有心이다.” “無心이다.” 하는 것을, 있는 것을 못 본다 이겁니다. 나는 그런 분별이 없다 선정에 들었을 때...


   策(책)이 云(운)→ 현책이 말하기를,

不見有有無之心(불견유유무지심)이면→ “有心이다.” “無心이다.” 하는 것을, 있는 것을 보지 못 한다면,

卽是常定(즉시상정)이어니→ 그것은 곧 늘 선정이다 이겁니다. 그런데 何有出入(하유출입)이리요→ 항상 “선정”인데, 뭐 “들어가느니” “나오느니”하는 그런 것은 왜 또 거기에 붙느냐? 이겁니다. 何有出入이리요? 왜 붙느냐?

 
   若有出入(약유출입)이면→ 만약에 선정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사실이 있다면,

卽非大定(즉비대정)이다→ 이것은 “大定”이 못 된다 이겁니다. “큰 선정.” 제대로 된 “선정.”이 못 된다. 그러니 隍(황)이→ 지황스님이 無對良久(무대양구)에→ 거기에는, 대답을 못 하고는 가만히 있었다. “良久”라는 것은 가만히 있었다.

 
    問曰(문왈) 師嗣誰耶(사사수야)아→ 당신의 스승은. 당신은 어느 스승을 이어 받았느냐? 누구를 모시고 공부를 했느냐? 이런 뜻이지요. 당신의 스승은 누구냐?

策(책)이 云(운)→ 현책이 말하기를,

我師(아사)는 曹溪六祖(조계육조)시니다→ 조계산에 있는 육조스님이다.

隍(황)이 云(운)→ 지황이 말하기를,

曹溪六祖(조계육조)는 以何爲禪定(이하위선정)고→ 그러면 6조 스님은 무엇으로 선정을 삼느냐?

策(책)이 云(운)→ 현책이 말하기를,

 
   我師所說(아사소설)은→ 우리 스승이 말 하신 바는

妙湛圓寂(묘담원적)→ “妙湛”이라 는 것은 능엄경에 자주 이야기합니다. 우리 마음이 아주 깨끗하고 맑은데, 그것을 “妙湛”이라고 그래요. “미묘하게 맑다.” “미묘하고 맑다.” 그것을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이 정말 깨끗한 마음. 그것을 말로는 “妙湛”이라고 밖에 못 해요. 그러면서 원만히 고요하다. 아주 고요한, 어느 한 구석이라도, 결손이 있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완전무결한 고요다. 妙湛圓寂(묘담원적). 우리 마음자리가...

 
   그래서 體用(체용)이→ 체와 용이 如如(여여)다→ 본체도 맑고, 작용도 맑다 이것이지요. 그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아무리 작용을 해도 작용하는 것 없이 작용한다 이거지요. 五陰(오음)이 本空(본공)하고→ 그쯤 되면, 色(색) 受(수) 想(상) 行(행) 識(식) 五蘊(오온)이 본래 공하고 六塵(육진)이 非有(비유)라→ “六塵”도 있지 않다. 色(색) 聲(성) 香(향) 味(미) 觸(촉) 法(법) “六塵”도 있지 아니함이라.

 
   不出不入(불출불입)하고→ 그쯤 되면, 나오는 것도 없고 들어가는 것도 없고, 不定不亂(부정불란)하며→ 그것은 선정이라고 할 것도 없고, 산란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그래서 禪性(선성)이 無住(무주)라→ 선정이라는 그 성품이. 그 선정의 본성이 어디에 머묾이 없다.

 
   離住禪寂(이주선적)하며→ 떠나고 머물음에 있어서 항상 고요하다. 떠나든지 머물든지, 어디에 있든지 가든지 항상 고요하다. 禪性(선성)이→ 선정이라는 그 성품이. 선정이라는 그 사실. 진실이, 無生(무생)이라→ 본래 나는 것이 없는 것이라.

 
   離生禪想(이생선상)하야→ 생을 떠나서 禪想. 선정의 정신에 입각해서, 心如虛空(심여허공)하되→ 마음이 마치 허공과 같되, 亦無虛空之量(역무허공지량)이니라→ 허공이라는 그 量도 또한 없다. 비유하자니 “허공과 같다.”고 했지만, 허공이라고 하는 量이 없다.

 
   隍(황)이 聞是說(문시설)하고→ 지황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經來謁師(경래알사)한대→ 바로 와가지고서 그렇게 가르치는 스승을 배알하게 되는 것이지요. 예배를 드리지요. “謁”자는 “배알한다.”는 알자입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師問云(사문운)→ 육조스님이 물어 말하기를, 仁者何來(인자하래)오→ 당신은 어디서 왔소? 하니,

 
  隍(황)이→ 지황이, 俱述前緣(구술전연)이라→ 앞에 현책하고 만났던 그런 인연을 전부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 그러니까 師云(사운)→ 육조스님이 말하기를, 誠如所言(성여소언)이니→ 진실로 그대가 말한바와 같다.

 
   汝但心如虛空(여단심여허공)하되→ 그대는 다만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하되, 不着空見(부착공견)하면→ 허공과 같다는 소견에도 집착하지 말라. 이 말입니다. 汝但心如虛空. 마음을 허공과 같이 텅 비워라. 그러되 허공과 같다는 소견에도 집착하지 말라. 그러면 應用無碍(응용무애)다→ 우리 마음을 사용하는데 아무런 걸림이 없다. “자유자재한다.”이 겁니다.

 
   걸림이 없어서 動靜無心(동정무심)하며→ 움직이든지 가만히 있던지, 우리가 무엇을 하던지 사람을 만나든지 일을 하든지, 아니면 혼자 가만히 명상에 젖어있던지, 動과 靜에 무심해요. 그렇다고 분별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집착이 없다는 것이지요. 마치 거울과 같이, 거울이 사물이 오면 잘 비추지만, 떠나 버리면 거기에 아무 집착이 없는 것이지요. 부단히 움직여야 할 상황이면 열심히.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움직이는 겁니다. 조용히 있을 때는 조용히 있는 겁니다. 조용하고 움직임에 대한 그런 집착이 없는 상태가 되어서,

 
   凡聖情忘(범성정망)이라→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情”이 뚝. 떨어져 버려. “忘”은 “잊었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범부다.” “내가 깨달은 성인이다.” 하는 생각마저도 다 없어졌어요.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能所俱泯(능소구민)이예요.→ 能과 所= “주관과 객관” 이 말입니다. 주관과 객관이 함께 없어졌어요. “너다.” “나다.” 하는 것이 함께 없어지며, 性相如如(성상여여)해서→ 성품과 相이, 외적인 현상들이 “如如”하다. “한결같다.” 이 말이지요. 한결 같아서,

 
   無不定時也(무불정시야)니라→ “定”이 아닌 때가 없다. “선정 아닌 때가 없다.” 늘 “선정이다.”이것이지요. 그것이 선정이라는 것이지요. 선정에 들어가서 無心(무심)할 때만 선정이고, 또 나와서 일상사를 분별하고, 처리하고 할 때는 선정이 아니고, 이것은 바람직한 선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할 때는 열심히 하되 거기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그러면서 정확하게 분별해요.

 
   거울에 사물이 비추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는 대로 정확하게 비춰 주듯이... 우리 마음이 그렇게 된 것. 그리고 거울 앞에서 떠나면 또 다른 어떤 사물을 비추지, 거울은 떠나 버린데 대해서 애착을 갖거나 새로 온 사물에 대해서 거부를 하거나 그런 것이 없다 이것이지요. 우리 마음이 그런 상황이 될 때, 그것은 계속 선정이 됩니다. “계속 선정 상태다.” 이것이지요. 선정이라는 것이 우리가 잠깐 입정을 하고 공부를 하고, 또 불교의 모든 의식에는 입정을 잠깐하고 하지요. 그렇게 하는 것은 형식적인 입정이지, 사실 진짜입정은 아니라는 겁니다. 진짜입정은 활발하게 작용하되 그 작용에 떨어지지 않는 것. 작용에 매이지 않는 작용. 그것이 “진정한 선정이다.”이런 뜻입니다.

 
   隍(황)이→ 지황이 於是(어시)에 大悟(대오)라→ 그 말에 그만 크게 깨달으니, 二十年所得心(이십년소득심)이 都無影響(도무영향)이러라→ 20년 동안 공부한 마음이 아무런 영향이 없더라. 20년 동안 선정이라고 하고 상당히, 한 번 선정에 들어가면 몇 날 몇일이고 까딱없이 無心(무심)한 三昧(삼매)속에 아마 있어서,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소문이 아주 공부 잘 한다고 자자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육조스님의 그런 정말 훤출한 안목에 견주어보면 그것은 都無影響이라. 도무지 아무런 영향이 없더라. 其夜(기야)에 河北士庶(하북사서)가 聞(문)하니→ 그 밤에 하북에 있는 선비들이나 서민들이 들었는데, 그 스님이 깨닫는 그 순간의 그 날 밤이었습니다.

 
   空中(공중)에 有聲云(유성운)하되→ 공중에 소리가 크게 나는데, 무슨 소린가 하니, 隍禪師(황선사)가 今日(금일)에 得道(득도)라하더라→ “지황선사가 오늘에야 도를 얻었다.”라고 공중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사람들이 다 들었다는 겁니다. 20년 큰 공을 들이다가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깨달았으면, 아마 그 어떤 정신력이 소리가 났을 수도 있지요?

 
  隍(황)이 後(후에) 禮辭(예사)하고→ 뒤에 예배하고, 떠나서 復歸河北(부귀하북)하야→ 다시 하북으로 돌아가서 開化四衆(개화사중)→ 사부대중을 전부 열어서 교화를 했더라. 이 지황스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진정한 선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비록 이론적이긴 하지만 이론적으로라도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선정입니다. 보통 一念(일념)이 돼서 아무 “분별이 없다.” “생각이 없다.” 하는 그런 것은 선정축에도 못 들지요 그거는... 실질적으로 이런 차원에서 보면 선정 축에도 못 들지만, 그러나 그나마도 안 되니까 그거라도 좀 일단 할 필요가 있지요.

 
   一僧(일승)이 問師云(문사운)→ 스님에게 물어 말하되 黃梅意旨(황매의지)를 甚?人(삼마인)이 得(득)이니이까→ “黃梅”란 오조스님. 황매산. 육조스님의 스승인 五祖(오조)스님이 황매산에 계셨으니까... 그 황매산 오조스님의 뜻을 어떤 사람이 얻어 갔습니까?

 
   師云(사운)→ 육조스님이 말하기를,

會佛法人(회불법인)이 得(득)이니라→ 불법 아는 사람이 얻어 갔다. 이럴 때는 알 會(회)자입니다. 불법을 아는 사람이 얻어 갔다. 그랬어요.

僧(승)이 云(운) 和尙(화상)이 還得否(환득부)이까→ 그러면 스님이. 큰 스님이 얻었습니까? 하니까

 
   師云(사운) 我不會佛法(아불회불법)이로라→ 나는 불법 모른다. “나는 불법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불법은 알고 모르고에 관계없지요. “얻었다.” “못 얻었다.”하는 것은 이것도 사실은 말에 모순이, 불법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말에 모순이 상당히 많지요. 얻기는 누가 줘야 얻지요? 주는 것도 아니고, 주는 것도 아니니까 물론 얻는 것도 아니지요.

 
   그렇지만 그것을 형식적으로나마 이야기할 바에는, 그러면 “我不會佛法”이라는 이거는 “불법을 아는 사람이 얻어 갔다.” “나는 불법 모른다.”이런 것은 전부 겉도는 소리지요. 그리고 이 말속에는, 말하자면 불법은 그렇게 알고 모르고하는 것도 아니고, 또 오조스님의 법을 “얻었다.” “못 얻었다.” “줬다.” “얻었다.” 이것도 전부 모르는 소리다 이겁니다.

 
   “전부 모르고 하는 소리다.”이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짤막하지 그 말속에 상당히 의미심장한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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