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2011.12.17 14:23

육조단경 강의 65 - 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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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5 강 - 機緣品- 19

 

 
   一僧이 問師云, 黃梅意旨를 甚?人이 得이니이까 師云, 會佛法人이 得이니라 僧이 云, 和尙이 還得否이까 師云我不會佛法이로라

 
   師- 一日에 欲濯所授之衣나 無美泉하야 因至寺後五里許하야 見山林鬱茂하며 瑞氣盤旋하시고 師振錫卓地하신대 泉이 應手而出하야 積以爲池어늘 乃膝? 浣依石上이러니 忽有一僧이 來하여 禮拜云, 方辯이 是西蜀人이온데 昨於南天竺國에서 見達磨大師러니 囑方辯하야 速往唐土하되 吾傳大迦葉의 正法眼藏과 及僧伽梨하야 見傳六代祖韶州曹溪하니 汝去瞻禮하라하시므로 方辯이 遠來하야 願見我師의 傳來衣鉢하노이다 師乃出示하시고 次問,

 
   上人은 攻何事業고 曰, 善塑하나이다 師, 正色曰 汝試塑看하라 辯이 罔措라가 過數日하야 塑就眞相하니 可高七寸에 曲盡其妙라 師笑曰, 汝只解塑成이요 不解佛性이로다하시고 師舒手摩方辯頂曰永爲天人福田하라하시니라

 
   有僧이 擧臥輪禪師偈曰

      臥輪이 有伎倆하야 能斷百思想이로다

      對境心不起하니 菩提- 日月長이로다

 
   師- 聞之하고 曰, 此偈未明心地하니 若依而行之면 是加繫縛이니라하시고 因示一偈하시니 曰

      慧能은 沒伎倆하야 不斷百思想이로다

      對境心數起하니 菩提- 作?長가

 
**********************************************

 
   지난 시간 마지막 줄에 一僧(일승)이→ 어떤 스님이 問師云(문사운)→ 육조스님에게 묻기를

黃梅意旨(황매의지)를 甚?人(삼마인)이 得(득)이니이까→ 황매의 뜻을 어떤 사람이 얻었습니까? 오조스님의 법맥을... 또는 오조스님의 깨달음을 누가 얻었습니까? 그러니까 師云(사운)→ 육조스님이 대답하기를, 會佛法人(회불법인)이 得(득)이니라→ 불법 아는 사람이 얻었다.

 
  육조스님이 생각하기에는, 이 사람이 무엇을 물었든 지간에 불법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 주는 것이 육조스님으로서 하실 일이라고 생각을 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오조스님의 깨달음. 다시 말해서 그 법맥을 이 사람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것을 누가 얻어 갔느냐? 하는 것은 이 사람에게 크게 도움이 될 일이 아니지요. 또 그것을 누가 얻든지 사실 우리가 생각하더라도 법맥을 누가 이었든지, 그것은 우리들 자신에게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요는 우리자신은 내가 불법을 얼마만치 아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것을 다른 사람 가져갔던지 말았던지, 또 이었든 안 이었든, 사실 석가모니가 깨달았든 안 깨달았든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진짜로 깨달았느냐 말았느냐 이것이 사실은 우리에게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그분이 중요한 것이고,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만치 불법을 이해하느냐? 하는 이것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육조스님께서는 여기서 대답을 역사적인 사실로는 오조스님의 법을, 금방 뒤에 頓漸(돈점)문제가 나오지만, 북쪽으로는 신수스님이 이어 간걸로 되어있고, 남쪽으로는 육조 혜능스님이 이어 간 것으로... 오조스님한테서 두 갈래가 크게 나눠진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불교는 그런 점 때문에, 그런 역사적인 기록 같은 것이 사실은 정확하게 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지금 佛敎史(불교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좀 애를 먹고, 불교도 3000년 설이 있는가 하면 2500년 설이 있고, 또 부처님 출가도 몇 살에 했느냐? 29세에 했느냐 무슨 35세... 어떤 경우는 9세 라고 되어 있는 것도 있고, 어떤 경우는 19세. 또는 20세. 이렇게 들쑥날쑥 한데요. 몇 살에 출가했느냐? 하는 것이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몇 살에 출가했든지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이고,

 
   내가 출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출가의 진정한 의미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늘 근본을 생각하는 뜻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도 제가 가만히 보니까 이 사람이 누가 법을 얻어갔느냐? 하는 것. 이 사람 속뜻은 그래요. 오조스님의 법을 신수스님이 얻었다는 설도 있고, 혜능스님이 얻었다는 설도 있는데, 당신이 얻었느냐? 이렇게 질문한 것이지요 사실은...

 
   혜능스님 당신이 오조스님의 법을 이었다는 것이 사실이냐? 이것을 물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득이 없는 일이지요. 누가 얻어 갔든지. 혜능스님이 얻었든지 신수스님이 얻었든지, 또 줬던지 안 줬던지, 인가를 했던지 안 했던지, 이거는 본인에게는 아무런 소득이 없는 일이라고요. 정말 이 사람에게 시급한 일은 불법을 얼마나 가슴으로 느끼느냐? 스스로 불법에 대해서 얼마나 자신이 깨닫고 있느냐? 하는 것이 이분에게는 중요한 일이지요.

 
  그런 기록들에 대해서 뭐라고 할까요. 확실하지 않는 것. 또는 애매한 것. 이런 것들이 상당히 많은 이유가 그런 데서도 옵니다. 사실은 이런 생각이 중요하긴 하지요. 그래서 육조스님이 대답이 會佛法人(회불법인)이 得(득)이다. 그랬어요. 僧(승)이 云(운) 和尙(화상)이 還得否(환득부)이까→ 그러면 스님은 그 법을 얻었느냐? 그러니까. 언제든지 육조스님의 관심은 물으러 온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하든지 불법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해주느냐? 하는 것이 육조스님의 마음속에 하나의 관심사입니다. 그러니까 깨닫게 해주는 법문으로서

 
   師云(사운)→ 말하기를, 我不會佛法(아불회불법)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불법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 이 말로 보면 “나는 불법을 모르니까 법을 얻은 적이 없다.” 액면대로 이해하자면 그렇게 밖에 해석이 안 되겠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청천벽력 같은 소리지요. “나는 불법을 모른다.”하는 것이...

 
   천하의 대 선지식으로서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깨우쳤고. 자기도 정말 인가를 받아서 오조스님으로부터 信標(신표). 가사와 발우를 받아서 왔다는 사실이 천하에 다 알려진 일인데, 그것을 “나는 불법을 모르기 때문에 내가 받아오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건 무슨 말이냐?

 
   어쨌든 이 사람에게 불법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하나의 큰 법문으로 봐야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정말 육조스님의 행적과 사실에다 비추어볼 때, 청천벽력 같은 소리입니다. “나는 불법을 모른다.” 라는 이 말은... 我不會佛法(아불회불법)이다. “불법을 모른다.” 하는 이 말은... 그런 청천벽력 같은 큰 법문으로서 이 사람을 일깨워 준 것이고, 뭔가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하나의 큰 법문으로 우리가 이해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재차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조금 기이한 행적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師(사) 一日(일일)에 欲濯所授之衣(욕탁소수지의)나→ 당신이 받은 옷을 빨려고 했다. 세탁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 물에나, 중국에 물이 안 좋잖아요. 대개 황톳물인데요.

無美泉(무미천)이라→ 좋은 샘물이 없어서

因至寺後五里許(인지사후오리허)하야→ 여기저기 찾던 중에 좋은 물을 찾으려고 寺後. 절 뒤쪽으로 5리쯤 갔는데,

 
   見山林鬱茂(견산림울무)하며→ 거기에 산림이 우거지고,

瑞氣(서기)가 盤旋(반선)이라→ 서리가 서려 있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지요. 그래서 아, 여기에 좋은 물이 솟아나겠구나! 하고 생각을 해서

師振錫卓地(사진석탁지)라→ 들고 다니는 주장자를 내리치면서 땅에 꽂으니까 마침 거기에 泉(천)이→ 샘이 應手而出(응수이출)이라→ 육조스님이 주장자를 내리꽂는 거기에 맞추어서 샘이 터져 나오더라. 곧 그 샘이 흘러나와 모여서

 
   積以爲池(적이위지)어늘→ 하나의 못을 이뤘는데

乃膝?(내슬궤)→ 무릎을 꿇을 ?(궤)자인데요. 무릎을 꿇고,

浣依石上(완의석상)이라→ 돌 위에다가 옷을 빨았다. 옷을 세탁을 했다. 이 “옷”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받아온 袈裟(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조스님에게서 법을 전수 받으면서 信標로 가사를 내려 받았거든요. 아주 중요한 가사입니다. 그것을 아무렇게나 우리 입고 있는 옷을 빨듯이 그렇게는 할 수 없어서, 좋은 물을 찾아서 빨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神通(신통) 같은. 어떤 기적 같은 이야기입니다.

 
  忽有一僧(홀유일승)이 來(래)하여→ 그 순간에, 옷을 빨고. 가사를 빨았는데 홀연히 어떤 스님 한 사람이 와서는

禮拜云(예배운)→ 예배 하면서 말하기를 方辯(방변)이→ 자기는 방변 이라는 사람인데, 是西蜀人(시서촉인)이온데→ 서촉 사람이다. 서쪽에 촉나라 사람인데,

昨於南天竺國(작어남천축국)에서→ 지난 날,

南天竺國에서 見達磨大師(견달마대사)러니→ 달마대사를 뵙게 됐다. 달마대사를 “친견했다.” 이겁니다. 그래놓고

 
   囑方辯(촉방변)하야→ 달마대사가 방변에게 부촉하기를 速往唐土(속왕당토)하되→ 빨리 唐土에. 당나라에 가서, 吾傳大迦葉(오전대가섭)의 正法眼藏(정법안장)과 及僧伽梨(급승가리)→ 내가 正法眼藏과 僧伽梨를 大迦葉. 부처님이 가섭존자에게 전하고, 가섭존자가 전하고, 전하고 해서 28대 달마조사에게 이르고, 달마조사에서 다시 육조스님에게 까지 이르른 그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正法眼藏”이라는 것은 깨달음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고, 책 이름도 “정법안장”이라는 책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책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 正法의 “바른 눈”이라는 뜻입니다. “바른 법의 눈” “법에 대한 안목.” 이 뜻이지요. “법에 대한 안목.” 또 그것을 인정 하면서 내려준 “僧伽梨(승가리)” 가사 이름이 승가리입니다. “승가리” “웃가외” 이런 식으로 조 별로 가사 이름이 정해져 있는데요.

 
   그것을 전해서 見傳六代祖韶州曹溪(견전육대어조소주조계)→ 지금 거기를 소주라고 그러지요. 조계산. 지금 보림사. 소주에 조계산 보림사라는 거기에 육조스님이 오래 살았거든요. ‘거기에 전해 줬으니 汝去瞻禮(여거첨례)하라→ 그대가 가서 우러러서 예배를 드리라.’ 달마스님이 그러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방변이라는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고 왔다는데...

 
   이것이 지금 육조스님이라고 하면, 달마스님을 “東土初祖(동토초조)”라고 할 때 달마스님으로부터 六代祖(6대조)에 이른 것인데, 1대조를 30년으로 치더라도 삼육십팔. 180년이 지난 뒤, 이야기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방변이라는 사람이 온 것이 육조스님이 살아생전에 왔으니까 천축에서 설사 당나라까지 오는데 아무리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더라도 2~3년 밖에 더 걸렸겠어요? 지금은 몇 시간이면 오지만...

 
   그 당시 아무리 많이 걸려도 2~3년 아니면 4~5년 걸리면 올 수 있는 그런 거리인데, 그러면 이 이야기가 이상한 것이지요. 달마스님이 살아 있다는 뜻이고, 그 살아 있는 달마스님으로부터 방변이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그래서 이 방변이라는 사람은 친견하려고 마침 왔다는 것이지요. 와서 빨고 있는 가사를 마침 친견하고 예배를 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됩니다 이것이... 이것은 상당히 초 상식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方辯(방변)이 遠來(원래)→ 멀리 와서

願見我師(원견아사)의 傳來衣鉢(전래의발)하노이다→ 방변이 먼데서부터 와서, 그 우리스승. 달마스님이지요? 달마스님께서 傳來한 옷과 발우를 친견하기를 원합니다.

師乃出示(사내출시)하고→ 빨아놓은 가사를 내서 육조스님이 보이고,

 
   次問(차문)→ 묻기를 上人(상인)은 攻何事業(공하사업)고→ 어떤 사업을 하느냐? 당신 뭘 하는 사람이냐? 이렇게 물으니까 曰(왈) 善塑(선소)하나이다→ 조성. 佛像(불상)이나 어떤 형상 조성을 잘 한다 이겁니다. 善塑. 흙을 이겨서 어떤 형상을 조성하는 일을 잘 한다 이것이지요.  師(사)→ 육조스님이 正色曰(정색왈)→ 정색하면서 말하기를 汝試塑看(여시소간)하라→ 그래, 그렇다면 내 모습을 잘 조성을 해서 보여라. 그랬어요.

 
   辯(변)이 罔措(망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過數日(과수일)하야→ 며칠이 지나서. 한참 살펴봤겠지요. 육조스님의 모습이라든지 또 그 모습에서 풍겨 나오는 정신이라든지, 이런 것을 잘 살펴보고는 며칠이 지나서

塑就眞相(소취진상)하니→ 육조스님의 眞相을 塑就 했다. 조성을 했더니 可高七寸(가고칠촌)에→ 그 높이가 七寸에 曲盡其妙(곡진기묘)라→ 어쩌면 그렇게 육조스님하고 똑같이 만들었는가. 아주 세밀하게. “曲盡其妙”라는 것은 그 미묘한 모습까지 아주 자세하게 잘 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師笑曰(사소왈)→ 육조스님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汝只解塑成(여지해소성)이요→ 그대는 다만 塑成. 조성하는 것만 잘 알지, 不解佛性(불해불성)이라→ 불성은 알지 못한다. “塑成”했는데 사실은 塑像(소상)을 해야 부드러운 글이 됩니다. 塑像(소상)이라고 하면 “모양을 잘 만든다.” 는 뜻이지요. 모양은 잘 만들지만 그 속에 있는 “佛性”은 그대가 알지를 못한다. 어쨌든 깨우쳐주는 것이 문제니까요. 어떤 사람을 만나든 간에, 조각가를 만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깨우쳐주는 것이 중요하니까 이런 법문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師舒手摩方辯頂曰(사서수마방변정왈)→ 스님이 팔을 펼쳐서 방변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永爲天人福田(영위천인복전)하라→ 길이 “天人의 福田” 이 되도록 하라. 사람 모습을 조성을 잘 하니까. 불상도 조성을 하고 祖師像(조사상)도 조성을 하고 해서, 천하 사람들의 “福田 이 되도록 하라.” 이렇게 일러 줬다는 기록도 전해 내려와서 이런 것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조금은 특이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육조스님의 육조단경 같지 않은 내용이기도 해요. 그러나 이런 특별한 일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니까 기록해 놓은 것 같습니다.

 
   有僧(유승)이→ 어떤 스님이, 擧臥輪禪師偈曰(거와륜선사게왈)→ “臥輪禪師” 게송을 들어내서 이야기를 하는데, “臥輪禪師”라는 이가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臥輪(와륜)이 有伎倆(유기량)→ “臥輪”이라는 사람이 재주가 있어서 能斷百思想(능단백사상)이로다→ 능히 100가지 생각을 다 끊어 버린다. 그러니까 완전히 선정에 들어서 아무 망상 없이 지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것이지요. “그런 재주가 있다.”

 
   對境心不起(대경심불기)하니→ 어떤 경계를 대하더라도 마음이 동요하지를 아니해. 아무 생각을 안 일으킬 수 있다 이겁니다. 물론 일으키려면 일으키지요. 그러나 안 일으키려면 충분히 안 일으킬 수가 있다. 우리는 어떤 경계를 보고 안 일으킬 수가 없지요? 우스운 것을 보면 웃어야 되고, 기분 나쁘게 하면 화를 내야 되고, 그런데 이 “臥輪禪師”라는 이는 아마 그렇지 않았나 봐요. 菩提(보리)가 日月長(일월장)이다→ 깨달음에 대한 공부가 날로, 날로 커간다. 이것이 보통 공부인 들이 바라는 바입니다. 망상이 뚝 끊어지고...

 
   기도를 하든 참선을 하든 경을 보든, 망상이 다 끊어져서, 能斷百思想(능단백사상). 온갖 망상이 다 끊어져서 어떤 경계를 대하더라도, 기쁜 일 슬픈 일 어떤 일을 보더라도,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을 보더라도 목석처럼 마음이 아주 꿋꿋하게 동요하지 아니하고, 그러는 가운데 깨달음이 날로, 날로 성장한다.] 라는 상식적으로 수행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아주 공부가 잘 되어가고, 수행이 아주 순조롭게 잘 되어가는 모습이라고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師(사) 聞之(문지)하고 曰(왈)→ 육조스님이 그걸 듣고는 말하기를, 此偈未明心地(차게미명심지)다→ 이 게송은 아직 마음을 밝히지 못했다. 마음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이 한 소리다. 若依而行之(약의이행지)하면→ 만약에 이것을 의지해서. 이 게송을 의지해서 행한다면,

是加繫縛(시가계박)이라→ 繫縛만 더 한다. 아주 속박. 얽히고 속박되는 것만 더할 뿐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이 내용은 뒤에 頓漸(돈점)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신수스님이(5강) [身是菩提樹(신시보리수)요.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라. 時時勤拂拭(시시근불식)하야, 勿使惹塵埃(물사야진애)하라. 때때로 갈고 닦아서 망상의 때가 끼지 않도록 하라. 이런 게송 하고 아주 흡사하지요. 身是菩提樹(신시보리수)요. 이 몸 이라는 것은 깨달음의 나무이고.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라. 우리 마음은 마치 밝은 거울과 같은 것이다. 거울에 자꾸 때가 끼면 되느냐? 옛날에는 銅(동)으로. 구리로 만든 거울이니까요. 옛날에는 구리가 거울 역할을 했습니다. 구리 같은 것도 번쩍번쩍하게 하게 닦아놓으면, 얼굴이 잘 비치거든요. 거울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얼마 안 있으면 동판이니까 거기에 뭐가 잘 끼지요. 습도가 높을수록 잘 끼고... 열심히 기왓장 가루를 만들어서 닦아야 된다든지, 요즘은 좋은 약이 나와서 잘 닦입니다만, 그래야 되거든요. 그렇게 마음을 닦는 걸로 상식적으로는 알려져 있습니다.]

 
   육조스님과 신수스님과의 차이점이 바로 그 점이고, 뒤에 나올 頓(돈)과 漸(점). 점 점 닦는다. 아니면 한꺼번에 다, 이 공부라는 것이 순식간에 해치우는 것인가? 그 문제의 갈림길이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거든요.

 
   이것도 보면 그와 같습니다. 菩提(보리)가 日月長(일월장)이라는 것이 날로 달로. 道(도)라는 문제가 날로 달로 자꾸 成長(성장)해 간다. 자라간다. 이것이 漸修(점수)지요. 점 점 닦는 것입니다. 날로 달로 자라간다는 것이 매일매일 성장한다는 뜻인데, 이 마음의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심지를 밝히지 못했다. 마음을 밝히지 못했다. 이것을 의지할 것 같으면 더 속박만 더할 것이다.

 
   불교 공부는 해탈이 목적인데, 그 반대로 속박이 더 늘어 간다면 공부 하나마나. 안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는 이야기지요. 말은 아주 간단해도 이 구절이 상당히 깊고 복잡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공부를 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도 제쳐놓고, 또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도 제쳐놓더라도 불교의 마음의 공부. “진정한 불교공부는 이런 것이다.”라는 불자로서는 바른 길은 이해하고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바르게 이해는...

 
   닦느냐 안 닦느냐 그것은 평생의 과제이지만, 마음을 닦느니. 또는 마음을 깨닫느니 하는 이 문제는 도대체 어떤 길을 찾아서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되어 가는가? 라는 것. 이것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된다는 의미에서 이런 것은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어야할 문제지요. 그러면서 因示一偈(인시일게)하시니 曰(왈)→ 그로 인해서 육조스님이 게송을 하나 보인 것이지요. 뭐냐 하면

 
   [慧能(혜능)은 沒伎倆(몰기량)이라→ 臥輪(와륜)은 有伎倆(유기량)이라 했는데, 혜능은 “伎倆”이 없다. “아무 재주가 없다.” 그래서 不斷百思想(부단백사상)이로다→ 온갖 생각. 온갖 망상을 끊지를 못해. 재주가 없으니까, 끊을 재주가 없으니까 못 끊는다 이겁니다. 망상이 일어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둔다 이겁니다.

 
   對境心數起(대경심수기)하니→ 경계를 대하면 “心數”가 일어나. “心數”라는 것은, 교리적으로 말하면 唯識(유식)이나 俱舍(구사)에 “심왕” “심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왕은 마음의 근본을 “심왕”이라고 그래요. 8識. 7識. 6識까지를 “심왕”이라고 한다면, “心數(심수)”라는 것은 마음의 근본에 근거해서 일어나는 온갖 마음작용들. 이것이 전부 심수입니다.

 
  5위 75법. 다섯 가지 심왕에 75법이 일어나고, 또 5위 100법이라고 해서 100가지가 일어나는... 심수는 보통 20가지 정도로 나열이 되는데, 예를 들어서 분한마음. 사랑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자기 허물이 있으면 그걸 덮어 버리려고 하는 마음. 탐심. 진심. 치심. 교만 하는 마음. 의심하는 마음. 온갖 그런 것이 이렇게 많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 그런 것이 참 조금 자질구레한 교리이긴 하지마는, 그런 것이 어떻게 보면 아주 실제적이고, 조금 골치는 아프지만, 그런 유식이나 구사론 같은 것들이 불교의 교리적인 입장에서는 아주 참 제대로 된 것이지요. 거기에 보면 “心數”에 대해서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종류가 어떤 것이 있을까? 전부 다 밝혀 놨어요. 소상하게 밝혀 놨습니다.

 
   우리 보통 자기 허물을 덮어 버리려는 마음. 이것은 늘 우리가 행하는 일이면서도 별로 관심을 안 갖지요. 그런데, 그런데서는 밝혀 놨습니다. 그것도 “心數”중에 하나에 들어갑니다. 교만 하는 마음. 의심하는 마음. 이런 것이 전부 “心數”속에 들어가는데, 경계를 대하면 그런 온갖 망상이 다 일어난다는 겁니다. 육조스님은...

 
   菩提(보리)가 作?長(작마장)가→ 그런데 菩提가 어떻게 자라겠는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요. 말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말인데요. “菩提”라는 覺(각)이고 道(도)인데, 이것은 자라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탑 쌓듯이 쌓아가는 것이 아니고 무슨 곡식이 그날그날 하루에 1Cm씩 자라듯이 그렇게 자라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에요. 본래 완전무결하게 가지고 있는 것인데...

 
   가지고 있는 그대로... 사람이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 일어나야지, 생각이 안 일어나면 그거는 목석이지 그것이 뭐 그렇게 자랑꺼리가 되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禪宗(선종)의 아니면 불교의 아주 정상적인 그런 깨달음의 길이라는 것은 보통 우리가 상식적으로 불교는 이런 것이고, 마음을 잘 닦고, 마음을 자제를 잘 하고, 어떤 문제를 보더라도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움직여도 점잖은 척 가만히 있는 것이 수행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보통 선입견에 의한 불교의 상식인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 나름으로 생각하는 것이지, 정말 정상적인 깨달음을 이룬 선지식들은 그렇게 설명 안하는 겁니다. 여기 그대로입니다. 對境心數起(대경심수기)입니다. 이거는 거짓말도 아니 해요. 경계를 대해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옳다 이겁니다. 아주 점잖은 선비는 마음이 안 일어나요. 마음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겉으로는 최소한도 표현을 아니해요.

“喜怒哀樂(희로애락)을 不如怒色(불여노색)”이라 그래요. 喜怒哀樂을 不如怒色이라. 희로애락을 얼굴에 표현하지 않는 것. 이것을 수행이라고 보거든요. 喜怒哀樂을 不如怒色. ←형상에 표현 아니 한다 이겁니다.

 
   얼굴빛으로 표현 아니 하는 것. 이것이 아주 수행이 잘 된 사람이고, 점잖은 사람이 라고 보는데 불교는 전혀 그렇지 아니해요. 그런데 불교인들도 대개 그런 상식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거의 99%지요또. ‘아, 그것이 수행이구나. 그렇게 돼야 수행이 제대로 된 것이구나.’ 이렇게 대개 알고 있지요. 그런 인격자를 만나면 아주 수행이 잘 된 사람이라고...

 
   어떻게 하더라도 속에 일어나는 희로애락에 대한 생각을 꾹 눌러서 밖으로 표현 잘 안하는 것. 이것이 ‘수행이 제대로 된 사람이다.’ 흔히 우리들이 사람을 잴 수 있는 안목이 그것 뿐이고요또. 그 척도에 들어오면 수행이 된 사람이고, 그 한계 안에 들어오지 아니한 사람은 이해를 못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는 것이지요. 도인도 아니고 수행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는 겁니다. 거기에 우리가 불교를 제대로 좀 깊이 있는. 정상적인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움이 있는 것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 나름으로 짐작하는 것은 진짜 불교 아니에요. 그렇다면 불교가 모두 쉽게요?...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거든요. 어렵다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이 어려운 것입니다. “菩提” 라는 것. 이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하루하루 달라지는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미 깨달아 있는 것입니다. 이미 깨달아 있는 것을 우리가 모를 뿐입니다. “모른다.” “안다.”고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밤에 어둠속에 있다가 어느 순간 어디가 동쪽일까? 알고 싶은데, 문을 이쪽에 해놨으니까 ‘아 이쪽이 동쪽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해 뜨는 것을 보니까 이쪽이 동쪽이 아니고 이쪽이 서쪽입니다.

 
   그런데 동쪽으로 알았던 것이 잘못 되었고, ‘이쪽은 서쪽이다.’라고 아는 것이 무슨 漸次(점차)가 필요하고 단계가 필요합니까? 단계는 아무 필요 없어요. 그냥 우리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을 바로 잡는 것뿐입니다. 바로 잡는 데는 순간밖에 안 걸립니다. 아는 것은 아주 순식간이지요. 그것은 “시간”이라고 치지를 않아요. 불교에서는 그것을 “시간”이라고 치지를 않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그것은 뭐 시간 걸릴 것이 없잖아요? “저쪽은 서쪽이다.”라고 일러줘도, “아니야 동쪽 일꺼야.” “동쪽 일꺼야.” 계속 자기고집 하다가, 어느 순간 보니까 아, 진짜 서쪽이거든요. 자기고집 하던 시간은 이건 어디까지나 모를 때이고, 아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그것을 “頓悟(돈오)”라고 그래요. 지금 이제 “頓漸法(돈점법)”이 나옵니다. 頓 = 몰록. 한꺼번에. 순식간에. 그래 모르면 모르는 것이고, 알면 완전하게 아는 것입니다. 모 아니면 도입니다 이것은... 불법은 그런 겁니다. 본래 깨달아져 있고, 본래 완전무결하다고 하는 사실에 무슨 자라나고 하루하루 수행이 되어가고, 잘 되어가고 성장해가고, 이것이 있을 까닭이 없다는 겁니다. 매일매일 닦을수록 빛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진짜 불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알지요. 매일매일 수행하고, 고행하고 정진하고 함으로 해서 뭔가 ‘차츰차츰 마음의 거울이 밝아질 것이다.’ 그렇게 밝아지는 것은 설사 밝아졌다 하더라도 그렇게 밝아지는 것은 銅休(동휴). 동으로 만든 거울처럼 또 어두워져요. 안 닦으면 또 캄캄해져 버려요. 그거는 불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 닦으면 캄캄해지는 그런 마음. 그거는 닦으나 마나 아닙니까? 닦을 때는 밝고, 안 닦으면 캄캄하고...

 
   그것 때문에 부처님이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6년 고행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 피나는 고행을... 인생 다 바쳐가면서 조사스님들이 그런 피나는 고행을, 닦으면 밝아지고 안 닦으면 캄캄하고 하는 그런 人性(인성)을 위해서, 모든 자기 자신을 포기 하면서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고요. 본래 깨달아져 있고, 본래 완전무결하고 한번 완전무결하다고 하는 사실을 안 이상은, 더 이상은 물러 설 데도 없는 어두워지고 밝아지고 하는 것이 전혀 없는. 본래부터 없는 완전무결한 것을 위해서지, 닦으면 밝고 안 닦으면 어두워지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참으면 점잖고 수행이 됐고, 안 참으면 수행이 안 됐고, 이런 참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겁니다. 닦으면 밝아진다는 것은 유교에서도 마찬가지고 도교에서도 마찬가지고, 보통 상식적인 불교에서도 마찬가지고 그거는 거의 똑 같아요. 동양이나 서양이나... 그거는 불교 아니라도 그런 소리는 대개 세상 사람들이 다 해요. “그 사람 인격이 아주 훌륭하다.”고, 그 말의 뜻이 그런 뜻 아닙니까? “수행이 됐다.” 하는 뜻이거든요.

 
   불교는 사실은 그런 수행이 아니라고요. 그런데 그런 수행 인줄로 알고 있는 것이 대다수입니다. 아주 프로들도 거의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불교에 아주 “내 노라” 하는 수십 년 절밥 먹고 있는 프로들도 대개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육조스님이 뭐 억지 쓰자고 한 소리도 아닙니다. 점잖기로 소문난 육조스님이 왜 억지를 쓰겠어요? “나는 생각이 일어나는 대로 전부 생각한다.”이겁니다.

不斷百思想(부단백사상)이로다. 온갖 생각을 하나도 끊지를 못해. 對境心數起(대경심수기)라.

 
   봄에 꽃피면 그 아름다운 꽃을 알고 가을에 낙엽지면 쓸쓸함도 느낀다. 이겁니다. 그것은 그냥 우리 보통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것은 “일어난다.” “안 일어난다.” 하는 그것은 사소한 문제입니다. 깨달음의 문제 하고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겁니다. 깨달음이 作?長(작마장)가. 깨달음이 거기서 어떻게 자라고 말고 할 것입니까? 그러면 자라는 것은 물 안주면 다시 말라 버리겠네요? 자라는 것은 물 안주면 말라 버려야 옳다고요. 본래 菩提(보리)는 자라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이 다음에 頓漸(돈점)품이 나오기 때문에 제가 좀 부연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법화경이라든지 화엄경이라든지 경전도 결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전은 한결같습니다. 한결같이 똑 같아요. 그런데 방편으로 하신 말씀은 정말 그렇지가 않지요. 이 “臥輪스님”의 이야기처럼 대개 이렇게 되어 있고, 신수스님의 이야기처럼 그런 식으로 되어 있는 경전이 또 적지가 않지요. 그러나 결정적인 경전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법화경이나 화엄경 같은 것은 절대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래 조사스님들이 최상승 경전. 대승의 최고경전을 좋아하는 이유가 조사스님들의 깨달음의 가르침하고 똑 같거든요. 육조스님말씀하고 너무나도 같거든요. 같으니까 조사스님들은 대개 대승경전 중에서도 최상승 경전만을 좋아하지요. 왜냐하면 소견이 같으니까요. 그러나 대개 또 방편을 많이쓴 경전을 보면 臥輪(와륜)이 有伎倆(유기량)하여 能斷百思想(능단백사상). 이라고 이렇게 해 놓은 식으로 가르치는 그런 경전도 또한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방편이라고 봐야겠지요.


   書狀(서장)에 大慧(대혜)스님 같은 이들도 거기는 대개... 그 당시 송나라 때 아주 최고, 중국 천하의 최고 지성인들만 참배를 한 그런 선지식입니다. 부처님도 그런 제자. 그런 신도를 둔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대혜스님의 신도가 최고 지성인들만 신도로 뒀어요. 어떻게 인연이 그렇게 됐어요. 부처님은 워낙 폭이 넓으니까 아주 최고 지성인으로부터 몰상식한 망나니 같은 그런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아주 폭이 넓지마는...

 
   대혜스님은 아주 순전히 그 당시 아주 최고 지성인들만 상대했어요. 학식으로나 벼슬로나 아니면 어떤 다른 면으로나 물론 스님으로서의 제자도 많지만, 일반 거사분들 제자가 더 많아요. 스님들 보다... 스님들은 회상에서 거느릴 수 있었다손 치더라도, 제대로 된 제자가 거사들 같이 많지 않은데, 거사들은 훨씬 많습니다. 거사들을 많이 상대하다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거사가 자기 아들이 죽어서, 자꾸 슬퍼해서 어찌 할 바를 모른다는 편지를 보냈는데, 대혜스님이 그래요. 슬플 때 실컷 슬퍼해야 된다. 자식이 죽었는데 애비가 슬퍼하지 않는다면 그 무슨 인간이냐? 당연히 슬퍼해야 된다. 슬퍼 할 줄 알아야 그것이 도인이지, 슬퍼 할 줄 모르고 거기에 알맞은 수행이 됐느니 어쨌느니 해서, 무심하고 그렇다면 그것이 무슨 도 닦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이야기들도 서장에 나오거든요.

 
   거의 일반 거사들을 상대로 하다 보니까 그런 세속적인 이야기들. 세속의 어떤 문제들. 이런 것들도 간혹 보이는데, 그런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말하는 수행과, 실지로 우리가 정말 불교의 진수를 이해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육조스님은 역사상 최고의 선지식이니까 더 이상 나아갈데 없는 훌륭한 가르침을 편 것이 사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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